신명기(11-02)
축복과 저주를 상징한 산들
신명기 11장 18-32절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쫓아다닙니다. 성공의 비결을 듣기 위해 강연회나 세미나도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찾아다닙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처럼 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라 한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의 기준을 들으면서,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그들의 성공적인 삶을 분석해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어떻게 성공했는지 장단점들을 분석해보고, 장점은 받고 단점은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사람들보다 더 성공적인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모세는 12장에의 율법 강론에 앞서서 마지막으로 그들 앞에 축복과 저주의 선택지를 내놓습니다. 축복과 저주는 사실 신명기 신학의 요체라 할 수 있습니다. 순종하면 복을 누리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이 역사의 교훈은 많은 용사들과 왕들이 불순종의 길로 이탈함으로써 심판을 받았고, 일부지만 신실한 영웅들과 그를 따른 백성은 신명기가 보장한 복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축복과 저주의 양자택일 앞에 서 있습니다.
반복된 쉐마 강론(18-20)
불순종한 자들은 목숨은 부지할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참다운 생명은 누리지 못합니다. 이것이 기본적인 성경의 원리입니다. 피조물은 창조주를 의지하고서야 참다운 길이 열립니다. 이 원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8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19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20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18-20)
위의 말씀은 세 번째 나오는 말씀입니다. 어디든 언제든지 그 말씀을 떠나서 의미 있고 생명 있는 말씀이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일한 명령으로 반복하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규례와 율법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삶에 모든 역영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고 동행하라는 뜻입니다.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을 향해서 열려 있을 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모세는 12장의 본격적인 율법 강론을 위해 서론 부분에서 결론적인 권면을 전합니다. 본문은 6:4-9절의 쉐마 헌장의 반복입니다.
21절에 나오는 새로운 표현인 ‘하늘이 땅을 덮는 날과 같으리라’는 ‘땅 위에 하늘이 있는 날 동안에’ 혹은 ‘땅 위에 하늘이 있는 한’이 가장 적절합니다(ESV, NIV). 이것은 그들이 만일 쉐마의 훈시대로 순종의 삶을 산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에서 세대무궁토록 잘 지낼 것이라는 약속하셨습니다. 쉐마 헌장이 강조하고 또한 신명기 전체에서 모세를 통해 설교되는 신명기의 핵심 주제이자 단어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순종’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분의 율법을 순종하여 지키며, 그분의 율법을 순종하여 지키는 자는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한 국가에 속한 국민은 그 나라의 헌법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국민이며 그 분의 법이 곧 그 나라의 ‘헌법’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율법’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쉐마 헌장이 요구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헌법은 다른 신들의 나라의 헌법들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과 애굽의 헌법과 문화적 관행, 즉 그들의 규례와 풍속을 따라선 안 됩니다(레위기 18, 20장). 그들의 문화와 전통은 사악하고 가증하며 사람을 더럽히는 것들입니다(레위기 18:3,30, 20:23).
항상 주어진 말씀을 영적으로 자기 체질화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성도들의 주변에 있어 상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도들이 시험에 들 때나 힘들 때나 기도할 때 어떤 경우도, 항상 말씀을 통해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사단은 성도들이 말씀에 무장되어 있을 때 함부로 넘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은 방패가 되는 것입니다.
순종을 통해 얻을 땅의 경계(21-25)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찾아할 땅의 경계는 생각보다 넓지 않지 않습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힘의 통치가 아니라 사랑의 통치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힘의 나라가 아니라 섬김과 사랑의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차지할 경계를 지정해 주십니다.
21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의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과 같으리라 22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의지하면 23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라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차지할 것인즉 24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서해까지라 25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밟는 모든 땅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21-25)
이스라엘이 말씀을 순종하며 산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세세토록 잘 지낼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며 살고 있는 모든 족속들을 모두 쫓아내고 그 땅을 점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더 크고 강한 나라들을 제압할 것이며, 결국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영토의 경계선을 확보할 것입니다.
여기서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이라는 표현과 ‘너희가 밟는 모든 땅’이라는 익숙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이제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으며 진정한 이스라엘인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우리에게는 더 이상 영토 개념이 없으며, 이제 영적인 영역, 개념만 있을 뿐입니다. 이 영역은 주권이 행사되는 범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왕이시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면, 우리는 그분의 왕국의 시민이며 그분의 영토에서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영적인 ‘땅 밟기’가 필요하지만 실제적인 어떤 이방 종교의 사찰이나 종교 시설에 들어가서, 혹은 이방 종교를 믿는 선교지에서 하는 구약적 개념의 ‘땅 밟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울도 신약의 전도자들도 그런 행위를 한 적이 없으며 오직 영적인 싸움을 벌이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의 통치에 맞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영적인 ‘땅 밟기’를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차지할 약속의 땅의 범위가 간단히 설명됩니다(24). 그것은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서해까지입니다. 이러한 간략한 묘사로는 정확한 약속의 땅의 경계 설정이 힘듭니다. 이것은 아마도 남쪽 아라바 광야동쪽 레바논; 북쪽 유브라데 강; 서쪽 지중해를 지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1:7에서 모세가 이미 설명한 범위인데 요약하면 현재의 24절과 일치합니다. 북쪽으로 유프라테스 강 상류, 동쪽으로 요단 동편의 길르앗과 레바논 지역, 남쪽은 아라바 광야 너머 아카바 만까지, 동쪽은 지중해 해안 이 화장된 국경선의 약속의 땅의 범위는 이미 출애굽기 23:30-31에서 예고되어 있습니다. 또한 분명 이 국경선은 훗날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성취된 경계선들과 거의 일치합니다. 사실 오경에서 약속의 땅은 두 단계로 나뉘어 설정됩니다. ‘최초의 약속의 땅’과 ‘확대된 약속의 땅’입니다. 애초에 약속의 땅은 단지 요단강 서편이었습니다. 따라서 첫 단계에서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게 할당된 요단 동편의 땅은 약속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민수기 34:1-15에는 이 일차적 약속의 땅인 요단 서편의 경계가 동서남북을 따라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명됩니다. 요약하자면, 북쪽으로는 하맛 어귀은 요단강, 남쪽은 가데스 바네아, 그리고 서쪽은 중해 연안입니다. 따라서 요단 동편 땅은 포함되지 않으며 북쪽은 유브라데 강이 아닌 하맛 어귀까지로 제한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장차 약속의 땅의 범위를 확대해서 그들에게 주겠다고 출애굽기 23:30-31에서 미리 예고하셨습니다: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을 때까지 내가 그들 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내가 네 경계를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강까지 정하고 그 땅의 주민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 이 진술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국경이 홍해에서 블레셋 바다(지중해)까지, 광야(아마도 남방 광야)에서 그 강(구약에서 그 강은 유프라테스 강을 말하며 여기서는 그 강의 상류다)까지 이른다는 것으로 신명기의 진술과 일치합니다. 이 국경선은 훗날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성취된 경계선들과 거의 일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 땅을 다 얻을 때까지 대적들을 ‘조금씩 쫓아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애굽기 13:30).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요단 동편은 넓은 의미의 ‘약속의 땅’의 범위에 들어갑니다. 신명기는 현재 이 확대된 약속의 땅의 경계를 설명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가나안 땅에 선택이 아니라 이미 약속되어진 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약속으로 믿고 순종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축복과 저주의 선포: 그리심 산과 에발 산(26-32)
땅을 정복하는 일도 믿음으로 얻는 선물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도 그 약속의 땅을 누리는 길이 됩니다. 성도의 성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서 순종할 때, 자연스럽게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26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27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28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29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30이 두 산은 요단 강 저쪽 곧 해지는 쪽으로 가는 길 뒤 길갈 맞은편 모레 상수리나무 곁의 아라바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의 땅에 있지 아니하냐 31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려 하나니 반드시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할지라 32내가 오늘 너희 앞에 베푸는 모든 규례와 법도를 너희는 지켜 행할지니라(26-32)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면 복을 누릴 것이나 그분의 ‘도’를 떠나 알지도 못하던 그 땅의 신들을 따라간다면, 저주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27-28). 모세는 이 양자택일 앞에서 백성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특별한 의식을 진행하라고 명령합니다. 그것은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반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는 행사입니다. 모세는 이 두 산이 요단 강 저쪽 곧 해 지는 쪽으로 가는 길 뒤 길갈 맞은편 모레 상수리나무 곁의 아라바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의 땅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심 산은 세겜을 사이에 두고 서로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는 산들입니다. 세겜은 현대의 나블루스(Nablus) 동쪽에 소재한 성읍이었는데, 그리심 산은 남쪽, 에발 산은 북쪽에 위치합니다. 구약의 세계에서는 동쪽을 기준으로 오른쪽인 남쪽이 더 선호되는 방향이고, 왼쪽인 북쪽은 열등한 방향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남쪽과 오른편의 그리심 산이 축복 선포의 산, 북쪽과 왼편의 에발 산의 저주 선포의 산이 되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나중에 27장에서 더 구체적인 축복과 저주 선포의 의례 절차를 설명합니다(27:11f). 각 지파는 다음과 같이 자리를 배치해야 합니다. 그리심 산-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베냐민; 에발 산-르우벤, 갓, 아셀, 스불론, 단, 납달리 레위 사람들이 가운데 서서 다양한 금지 계명들을 나열하면서 그것을 어기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을 하나씩 선언할 때마다 모든 백성은 아멘으로 응답했습니다. 훗날 여호수아는 아이 성을 정복한 후에 모세의 이 명령을 따라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앞에서 이 의례를 실천에 옮겼습니다.
성도들의 주변에도 그리심과 에발 산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순종하여 축복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그리심 산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반대로 불순종해서 저주와 형벌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을 보고 신앙의 경종을 울려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을 주셨고, 그 언약에 따라 순종하면 복을 누릴 수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복을 쫓아가지 않아도 복은 자연스럽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도 이스라엘처럼 끝도 없는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믿을 만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이 자라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믿음을 붙들어 주신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 배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05 신명기(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명기(28) - 신명기 12장 20-32절 - 이방인들과는 다른 생활 (1) | 2023.11.07 |
---|---|
신명기(27) - 신명기 12장 1-19절 - 택하신 곳에서 드릴 제사 (0) | 2023.11.07 |
신명기(25) - 신명기 11장 1-17절 - 더 없이 중요한 선택 (2) | 2023.11.06 |
신명기(24) - 신명기 10장 1-22절 - 두 번째 십계명을 주신 여호와 (0) | 2023.11.06 |
신명기(23) - 신명기 9장 13-29절 - 하나님의 진노와 모세의 중재 (1) | 2023.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