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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3 (01-02)


진리를 인정하는 자를 본받으라

요한 3 1 9-15


DNA가 생물학적 유전자라면, MEME 문화적 유전자라 불립니다. 가까이하면, 좋아하면 닮는다는 개념을 가진 사회학적 신조어입니다. 모방하고 따라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문제는 대상입니다. 사도는 가이오가 본받지 말아야 할 대상과 본받아야 할 대상을 제시합니다.

  

가이오가 한 일에 대한 칭찬에 근거해 저자가 보낼 순회 전도자들을 잘 영접하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그들을 영접하지 않았던 부정적 사례를 소개합니다. 저자 교회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디모드레베가 순회 전도자들을 거절하고 내쫓아다는 것입니다. 이 일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저자는 가이오에게 자기가 보밸 데메드리오를 잘 영접하라고 명령합니다.

 

디오드레베에 대한 책임(9-12)

시기보다 오래된 원죄가 또 있겠습니까? 자기부정이 없는 환대는 불가능합니다. 진리가 전해지기보다 자기가 높아지는 데만 혈안이었습니다. 디오드레베는 으뜸이 되려고 사도 일행을 비방하고 순회 전도자들을 박대하고 그들을 선대하는 자들을 교회에서 쫓아내기까지 했습니다.

9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11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2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9-12)

디오드레베는 장로 요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힘으로 공동체를 장악하려고 하였습니다. 장로가 보낸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지 않고 영접한 자들마저 공동체에서 쫓아내버림으로써 사도를 반대하였습니다. 그는 성경적인 교회보다 자신이 원하는 교회를 만들려고 하였고, 섬기기 위해 낮아지는 지도력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와 특권을 복음과 공동체의 일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1) 디오드레베가 한 일들(9-10)

2-8절에서 수신자 가이오를 칭찬한 후 9절에서 갑자기 디오드레베 이야기로 전환합니다. 특별한 설명 없이 디오드레베를 언급한 섬으로 보아 가이오가 알고 있는 사람인 듯합니다. 또한 가이오처럼 교회 지도자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요한의 영향을 받은 지교회의 지도자인 듯합니다.

저자는 교회를 어지럽힌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 때문에 순회 전도자들을 교회들에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저자가 쓴 요한이서 같은 편지를 전달했었는데(9), 디오드레베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0절은 그가 한 일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우선 그는 우리를 폄하했습니다. 저자가 직접 간 것도 아니고 디오드레베가 저자를 직접 폄하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1인칭 복수형은 9절에서 순회 전도자를 우리로 표현한 것의 연장으로 그들이 저자가 보낸 사람이기에 저자와 함께 파송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디오드레베가 그들을 악한 말로 비방한 것은 바로 저자를 비방한 것과 같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디오드레베는 그들을 맞아들이지도 않고 맞아들이려는 자도 쫓아냈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영향력 있는 지도자급 위치에서 순회 전도자를 거절한 듯합니다.

요한이서 10-11절에서 저자가 거짓 교사들을 집에 들이지 말라고 하는 모습과 동일한 형태입니다. 디오드레베는 저자가 보낸 사람들을 바지 거짓 교사들처럼 취급하여 모든 교제를 금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을 교회에서 내쫓았습니다. 역시 저자 교회에서 거짓 교사들을 내쫓은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마치 저자/순회 전도자 그룹과 디오드레베가 서로 충돌하는 모습입니다. 정확히 무슨 이유에서 디오드레베가 이렇게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거짓 교사들이나 적그리스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순회 전도자들을 거절한 것은 저자의 권위를 거절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저자는 디오드레베를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자라고 표현한 듯합니다(9). 더 나아가 이 일은 저자의 복음 진리를 거절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순회 전도자들은 바른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디오드레베의 일은 단순히 형제를 영접하지 않는 사랑의 부족 차원이 아니라, 진리 차원에서 심각한 일탈 행위입니다.

(2) 가이오에 대한 권면과 부연 설명(11)

디오드레베에서 가이오로 초점을 옮깁니다. 저자가 디오드레베를 언급한 것은 가이오에게 타산지석의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자여라는 친밀한 표현(요한3 1, 5)을 시작으로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명령합니다. 요한 3서에서 처음 사용된 명령입니다. 디오드레베의 경우를 언급한 이유일 뿐 아니라, 편지 전체를 통해 가이오에게 전하려는 핵심 주제가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디오드레베처럼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디오드레베처럼 형제들을 거절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요한삼서 12절에서 소개하는 데메드리 오를 영접하라는 것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단순히 디오드레베처럼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선과 악의 대조를 통해 따라 행할 것과 행하지 말 것을 분별해서 행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선과 악은 단순히 행위의 옳고 그름이 아닙니다. 빛의 영역, 곧 하나님의 통치 영역과 그 반대인 어둠의 영역에 속한 것과의 대조입니다. 디오드레베가 저자가 보낸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지 않은 것은 진리 계명과 사랑 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마치 어둠의 영역에 속한 자처럼 행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비록 디오드레베가 교회 지도자이지만, 그런 행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합당치 않은 일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거절해 그분과의 관계를 끊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상당히 심각한 경고입니다. 디오드레베 일의 심각성을 전달할 뿐 아니라, 가이오로 하여금 절대로 본받지 말아야 할 일임을 강조합니다. 

(3) 데메드리오에 대한 추천(12)

디오드레베에 대한 주제를 끝내고, 데메드리오라는 새로운 주제로 옮겨갑니다. 요한삼서에서 세 번째로 언급된 이름입니다. 수신자 가이오에게 데메드리오를 추천합니다. 하지만 데메드리오에 대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설명 대신 여러 증인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그가 믿을 만한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세 가지 증인을 열거합니다. 첫 번째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여러 사람들에 의해 공인(公認)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신뢰성을 더해줍니다. 두 번째는 동일한 진리입니다. 데메드리오가 복음의 진리를 증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7절에서 말한 예수의 이름을 위해 세상에 나간 순회 전도자 중의 하나이기에 가이오가 영접해야 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자와 가이오가 공유하고 있는 진리를 전하는 자이기에 우리 편입니다. 따라서 이 사람을 영접하는 것은 사랑 계명을 행하는 것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진리 계명을 지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 증인은 우리입니다. 저자를 포함한 공동체가 보증한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저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가이오에게는 데메드리오에 대해 많은 신뢰를 줄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 증인과 관련해 저자는 우리의 증거가 사실이란 것을 가이오가 알고 있다는 표현을 첨가합니다. 저자의 증거가 얼마나 신빙성 있는지를 확신시키는 것으로, 저자와 가이오와의 관계를 기반으로 데메드리오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임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런 추천 표현에 의하면 데메드리오는 저자가 보낸 사람으로서 아마도 요한삼서를 가지고 가이오에게 갈 사람인 듯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하는 순회전도자이지만, 가이오와 아는 사이가 아닌 듯합니다. 뿐만 아니라, 데메드리오는 바른 복음을 가지고 신실하게 전하는 귀한 사람입니다. 저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보증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기에 그가 가이오에게 가면, 잘 영접하고 필요한 것을 채울 뿐 아니라 다른 곳으로 잘 갈 수 있도록 환송해야 합니다. 이미 디오드레베가 순회 전도자들을 거절한 경우가 있었기에 저자는 데메드리오 같은 사람들을 더 잘 영접하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을 영접하는 것은 진리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고 형제를 사랑하는 사랑 계명에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요한 3 12절은 편지 전체 내용의 수렴점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문안 인사와 결어(13-15)

자신을 높이려는 자와 주를 높이려는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한 자가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를 닮은 것 같습니까? 가이오 앞에는 디오드레베와 데미드리오가 았습니다. 박대하는 자와 환대하는 자, 진리를 훼방하는 자와 돕는 자가 있습니다.

13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14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 15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13-15)

장로는 악한 지도자를 이기는 길은 보복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것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디오드레베가 지시한 것을 거부하고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고 후원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또 가이오에게 동역자를 소개합니다.

(1) 방문 계획(13-14)

방문 계획으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얼굴을 보고 교제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합니다. 날짜를 정해 놓고 꼭 가겠다기보다는 기회가 되면 방문하겠다는 의미입니다.

(2) 문안 인사(15)

마지막 인사말로 편지를 맺습니다. 두 가지 내용을 언급합니다. 하나는 수신자 가이오에게 평화를 전하는 문안 인사입니다. 또 하나는 다른 교인들과 가이오 사이에 주고받는 문안 인사입니다.


악을 이기는 길은 악에 맞서는 것만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악이 겁박해도 선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악인들의 반대 속에서도 환대의 선행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모르는 악한 자를 추종하는 것이나 악한 명령에 굴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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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3서 (01-01)


진리 안에서 환대한 사람

요한 3서 1장 1-8절


요한 2서와 3서는 비슷한 듯 다릅니다. 둘 다 ‘진리’를 강조하는데, 요한이 서는 진리를 ‘아는’ 것에, 요한 2서는 진리를 ‘행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거짓은 박대해야 하지만, 진리는 환대해야 합니. 요한은 가이오가 순회전도자들에게 베푼 환대의 사랑을 듣고 벅찬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장로가 가이오에게 쓰는 편지로 신약에서 가장 짧은 편지입니다. 내용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합니다. 발신자와 수신자를 소개한 도입(1-4), 가이오에 대한 칭찬(5-8), 디오드레베에 대한 책망과 데메드리오에 대한 추천(9-12)과 편지의 마무리(13-15)입니다. 특히 앞 두 부분(1-8)은 가이오로 인한 기쁨과 칭찬을 전달하는 내용입니다.

 

편지의 도입(1-4)

오늘날 세상은 영혼에 대한 생각보다 몸과 물질의 복에 너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영적인 축복에는 무관심한 듯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혼이 되는 것을 우선으로 삼고 기준으로 삼을 때, 나의 몸과 일 가운데 베푸시는 참된 복을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병든 몸과 빈약해진 살림 속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을 통찰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1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1-4)

장로 가이오의 몸과 일과 영혼이 모두 잘되기를 기도합니다. 몸은 부정하고 영만 거룩하다고 한 이단 영지주의와는 달리 전인격적인 건강을 빌어준 것입니다.

(1) 발신자와 수신자(1)

전형적 편지 양식을 따라 발신자와 수신자를 소개합니다. 요한이서와 동일한 형태입니다. 요한이서의 경우처럼 단지 ‘그 장로’라고 말해도 알 수 있을 만큼 독자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며, 연장자일 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다. 수신자는 가이오다. 편지 전체를 통해 2인칭 복수 지시어가 없는데, 가이오가 편지의 유일한 수신자임을 의미합니다. 이런 면에서 요한삼서는 신약의 편지 중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 중 하나입니다.

가이오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편지 내용에 의하면 저자의 복음 전파로 예수를 알게 된 사람으로서 저자와 영적인 아버지-아들의 관계로 표현할 정도로 친분 있는 사람이다. 당시 저자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여러 가정교회들 중 한 곳의 지도자인 것으로 보입니다. 가이오를 향한 저자의 관심과 애정은 서신 전체에 걸쳐 사용한 사랑 표현에서 알 수 있습니다. 동사(1)와 호격(‘사랑하는 자’, 1,2,5,11)으로 총 네 번 사용한다. 요한이서와 상당히 다릅니다. 특히 수신자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내가 사랑하는’이라는 표현은 애정성이 담뿍 담겨 있습니다. 이와 함께 수신자 소개에서 주목할 또 다른 요소는 진리입니다. 개역개정이나 새번역 성경은 부사적으로 해석해 ‘참으로’ 혹은 ‘진실로’라고 번역하지만, 요한2서 경우와 마찬가지로 ‘진리 안에서’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진리는 요한1서와 2서에서처럼 예수에 대한 정체성과 사역을 포함한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란 표현은 이런 진리를 저자와 수신자가 서로 공유하고 있음을 알립니다. 진리에 대한 강조는 3절에서 다시 등장하며 4절까지 4번 나타납니다(1, 3[x2], 4절). 편지 본론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은 듯합니다.

(2) 수신자를 위한 기원과 이유(2-4)

편지의 인사말 부분으로 1인칭 ‘나’와 2인칭 ‘너’와의 관계가 나옵니다. 영혼이 잘 지내는 것처럼 모든 것에 대해 잘 지내고 건강하기를 기원한다는 인사를 전합니다(2). 기본적으로 건강과 삶의 모든 부분에서 수신자 가이오가 잘 지내기를 바란다는 말인데, 저자는 여기에 ‘당신의 영혼이 잘 지내는 것처럼’이라는 표현을 첨가합니다. 영적 차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이 인사말은 영적 영역과 건강의 영역, 그리고 삶의 제반 부분을 아우르며 그 모든 영역에서 잘되기를 기원하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내용 때문에 이 인사말은 종종 특별한 신학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미 주전 2세기경부터 편지 인사말에 건강을 기원하는 것이 등장했고, 이후 건강에 대한 기원은 많은 편지에서 안부를 묻는 일상 표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건강과 삶의 제반 부분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은 특별할 것 없는 인사말 내용입니다. 비록 영적 영역을 함께 고려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자체가 독특한 신학을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요한이서나 바울 서신의 표현들이 더 의미 있고 독특합니다. 은혜와 자비나 평화를 전하는 것은 당시 일반 서신에서도 흔히 있는 것이지만, 그것의 기원을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언급한 것은 그리스도인들만의 구별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요한3서의 인사말은 신학적으로 큰 의미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잘되다’라는 표현은 번영하거나 성공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관용적으로 삶의 평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구절을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그리고 건강까지 고려한 번영 신학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단지 수신자를 위한 저자의 애정을 담은 인사말 표현으로 보아야 합니다.

2절에서 수신자의 안녕을 비는 이유를 말합니다, 형제들이 와서 그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크게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이 형제들은 저자가 보낸 순회 전도자들인데 가이오의 교회에 머물렀던 적이 있고 다시 저자 교회로 돌아와 가이오에 대해 이야기한 듯합니다. 특별히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바르게 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저자는 그 소식에 크게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를 말한 것은 진리 차원에서 저자와 같은 입장을 갖고 있음과 그에 근거한 삶을 잘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계속 그 안에 거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은 저자의 참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를 설명하는 4절을 통해 강조됩니다. 그의 최고의 기쁨은 복음으로 낳은 영적 자녀들이 진리 안에 계속 거한다는 소식을 듣는 것입니다. 역시 진리 차원을 중요시한다. 아마도 거짓 교사들의 영향력 때문인 듯합니다. 이런 표현들은 영적 아들인 가이오를 사랑하는 목회자의 마음과 함께 자기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확인시켜 진리 안에 계속 거하는 삶을 살도록 권면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가이오에 대한 칭찬과 기대(5-8)

진리에 이끌려 사는 성도, 진리가 부르는 소리를 알아듣고 따라가는 양을 보는 것보다 더한 기쁨이 참 목자에게는 없습니다. 무엇에 기뻐하는지를 보면 어떤 지도자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외적인 성장에만 매달리지 않고 진리를 향한 성도의 내적인 성숙을 기대하고 기뻐하는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입니다.

5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6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7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5-8)

가이오는 순회 전도자들을 잘 영접하고 후원하였습니다. 장로는 그들이 교회 앞에 가이오를 자랑할 만큼 모범이 되었다고 격려합니다. 앞으로도 그들을 잘 전송하되 ‘하나님께 합당하게’ 하도록 부탁합니다.

(1) 가이오에 대한 칭찬(5)

2-4절에 이어 가이오에 대한 주제를 계속 이어갑니다. 앞부분이 가이오에 관한 간접 정보에 대한 반응이었다면, 이 부분부터는 그에 대한 칭찬과 기대를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먼저 ‘사랑하는 자여’라는 표현을 시작으로 가이오가 행한 것을 칭찬합니다. 형제들과 특별히 낯선 사람들을 위해 수고한 일들은 신실한 것을 행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형제들이란 3절처럼 복음을 전하는 순회 전도자들이고 낯선 자들은 그중에 가이오가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영접하고 필요한 것들을 돕는 일은 귀한 일이었음을 확인합니다. 가이오가 했던 일을 칭찬할 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잘 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형제들을 영접하고 환송하라는 6b절 내용과 데메드리오를 영접하라는 12절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2) 가이오에 대한 형제들의 증언(6a)

칭찬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3절에서처럼 가이오의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이 이미 그에 대해 좋은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주목할 것은 가이오의 사랑을 증언한 점입니다. 동일한 순회 전도자를 영접한 것이지만, 3절은 진리 안에서 행한 것으로 칭찬했지만 6b절은 그것이 사랑의 행동이었음을 부각한다. 예수의 복음과 함께하는 것이기에 진리 차원의 일이지만, 형제들 필요를 채우는 것이기에 사랑의 차원이기도 합니다. 진리와 사랑이 함께 가는 귀한 삶이라는 말입니다.

(3) 가이오에 대한 기대와 이유(6b-8)

가이오에 대한 칭찬은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잘 영접하고 필요한 것을 채워 보내는 일을 계속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번째 이유는 복음 사역을 할 때 그들의 실제적 필요들을 누군가 채워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7). 그들은 주의 이름을 위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만 무보수로 일한다. 만일 그들이 일하면서 전도한다면 집중과 효율 면에서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계속 그 일을 잘 할 수 있기 위해 교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선교사들이 안정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교회가 도와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 목음 사역자들을 영접하고 돕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함께 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8). 직접 가지는 않지만 함께 동역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순회 사역자들을 가이오가 계속 잘 영접하고 할 수 있으면 필요한 것을 채워 보내기를 바랍니다.


환대만 있는 건 아닙니다. 냉대와 박대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무릎 쓴 가이오의 용기와 환대는 그만큼 그 ‘영혼의 잘 됨’의 증거일 것입니다. 복음이 형성한 사람을 보시기 바랍니다. 환대의 복음은 환대의 사람을 낳습니다. 이보다 더 강력한 진리의 증거가 또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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