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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3서 (01-01)


진리 안에서 환대한 사람

요한 3서 1장 1-8절


요한 2서와 3서는 비슷한 듯 다릅니다. 둘 다 ‘진리’를 강조하는데, 요한이 서는 진리를 ‘아는’ 것에, 요한 2서는 진리를 ‘행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거짓은 박대해야 하지만, 진리는 환대해야 합니. 요한은 가이오가 순회전도자들에게 베푼 환대의 사랑을 듣고 벅찬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장로가 가이오에게 쓰는 편지로 신약에서 가장 짧은 편지입니다. 내용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합니다. 발신자와 수신자를 소개한 도입(1-4), 가이오에 대한 칭찬(5-8), 디오드레베에 대한 책망과 데메드리오에 대한 추천(9-12)과 편지의 마무리(13-15)입니다. 특히 앞 두 부분(1-8)은 가이오로 인한 기쁨과 칭찬을 전달하는 내용입니다.

 

편지의 도입(1-4)

오늘날 세상은 영혼에 대한 생각보다 몸과 물질의 복에 너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영적인 축복에는 무관심한 듯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혼이 되는 것을 우선으로 삼고 기준으로 삼을 때, 나의 몸과 일 가운데 베푸시는 참된 복을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병든 몸과 빈약해진 살림 속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을 통찰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1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1-4)

장로 가이오의 몸과 일과 영혼이 모두 잘되기를 기도합니다. 몸은 부정하고 영만 거룩하다고 한 이단 영지주의와는 달리 전인격적인 건강을 빌어준 것입니다.

(1) 발신자와 수신자(1)

전형적 편지 양식을 따라 발신자와 수신자를 소개합니다. 요한이서와 동일한 형태입니다. 요한이서의 경우처럼 단지 ‘그 장로’라고 말해도 알 수 있을 만큼 독자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며, 연장자일 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다. 수신자는 가이오다. 편지 전체를 통해 2인칭 복수 지시어가 없는데, 가이오가 편지의 유일한 수신자임을 의미합니다. 이런 면에서 요한삼서는 신약의 편지 중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 중 하나입니다.

가이오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편지 내용에 의하면 저자의 복음 전파로 예수를 알게 된 사람으로서 저자와 영적인 아버지-아들의 관계로 표현할 정도로 친분 있는 사람이다. 당시 저자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여러 가정교회들 중 한 곳의 지도자인 것으로 보입니다. 가이오를 향한 저자의 관심과 애정은 서신 전체에 걸쳐 사용한 사랑 표현에서 알 수 있습니다. 동사(1)와 호격(‘사랑하는 자’, 1,2,5,11)으로 총 네 번 사용한다. 요한이서와 상당히 다릅니다. 특히 수신자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내가 사랑하는’이라는 표현은 애정성이 담뿍 담겨 있습니다. 이와 함께 수신자 소개에서 주목할 또 다른 요소는 진리입니다. 개역개정이나 새번역 성경은 부사적으로 해석해 ‘참으로’ 혹은 ‘진실로’라고 번역하지만, 요한2서 경우와 마찬가지로 ‘진리 안에서’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진리는 요한1서와 2서에서처럼 예수에 대한 정체성과 사역을 포함한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란 표현은 이런 진리를 저자와 수신자가 서로 공유하고 있음을 알립니다. 진리에 대한 강조는 3절에서 다시 등장하며 4절까지 4번 나타납니다(1, 3[x2], 4절). 편지 본론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은 듯합니다.

(2) 수신자를 위한 기원과 이유(2-4)

편지의 인사말 부분으로 1인칭 ‘나’와 2인칭 ‘너’와의 관계가 나옵니다. 영혼이 잘 지내는 것처럼 모든 것에 대해 잘 지내고 건강하기를 기원한다는 인사를 전합니다(2). 기본적으로 건강과 삶의 모든 부분에서 수신자 가이오가 잘 지내기를 바란다는 말인데, 저자는 여기에 ‘당신의 영혼이 잘 지내는 것처럼’이라는 표현을 첨가합니다. 영적 차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이 인사말은 영적 영역과 건강의 영역, 그리고 삶의 제반 부분을 아우르며 그 모든 영역에서 잘되기를 기원하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내용 때문에 이 인사말은 종종 특별한 신학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미 주전 2세기경부터 편지 인사말에 건강을 기원하는 것이 등장했고, 이후 건강에 대한 기원은 많은 편지에서 안부를 묻는 일상 표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건강과 삶의 제반 부분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은 특별할 것 없는 인사말 내용입니다. 비록 영적 영역을 함께 고려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자체가 독특한 신학을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요한이서나 바울 서신의 표현들이 더 의미 있고 독특합니다. 은혜와 자비나 평화를 전하는 것은 당시 일반 서신에서도 흔히 있는 것이지만, 그것의 기원을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언급한 것은 그리스도인들만의 구별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요한3서의 인사말은 신학적으로 큰 의미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잘되다’라는 표현은 번영하거나 성공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관용적으로 삶의 평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구절을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그리고 건강까지 고려한 번영 신학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단지 수신자를 위한 저자의 애정을 담은 인사말 표현으로 보아야 합니다.

2절에서 수신자의 안녕을 비는 이유를 말합니다, 형제들이 와서 그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크게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이 형제들은 저자가 보낸 순회 전도자들인데 가이오의 교회에 머물렀던 적이 있고 다시 저자 교회로 돌아와 가이오에 대해 이야기한 듯합니다. 특별히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바르게 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저자는 그 소식에 크게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를 말한 것은 진리 차원에서 저자와 같은 입장을 갖고 있음과 그에 근거한 삶을 잘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계속 그 안에 거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은 저자의 참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를 설명하는 4절을 통해 강조됩니다. 그의 최고의 기쁨은 복음으로 낳은 영적 자녀들이 진리 안에 계속 거한다는 소식을 듣는 것입니다. 역시 진리 차원을 중요시한다. 아마도 거짓 교사들의 영향력 때문인 듯합니다. 이런 표현들은 영적 아들인 가이오를 사랑하는 목회자의 마음과 함께 자기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확인시켜 진리 안에 계속 거하는 삶을 살도록 권면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가이오에 대한 칭찬과 기대(5-8)

진리에 이끌려 사는 성도, 진리가 부르는 소리를 알아듣고 따라가는 양을 보는 것보다 더한 기쁨이 참 목자에게는 없습니다. 무엇에 기뻐하는지를 보면 어떤 지도자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외적인 성장에만 매달리지 않고 진리를 향한 성도의 내적인 성숙을 기대하고 기뻐하는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입니다.

5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6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7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5-8)

가이오는 순회 전도자들을 잘 영접하고 후원하였습니다. 장로는 그들이 교회 앞에 가이오를 자랑할 만큼 모범이 되었다고 격려합니다. 앞으로도 그들을 잘 전송하되 ‘하나님께 합당하게’ 하도록 부탁합니다.

(1) 가이오에 대한 칭찬(5)

2-4절에 이어 가이오에 대한 주제를 계속 이어갑니다. 앞부분이 가이오에 관한 간접 정보에 대한 반응이었다면, 이 부분부터는 그에 대한 칭찬과 기대를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먼저 ‘사랑하는 자여’라는 표현을 시작으로 가이오가 행한 것을 칭찬합니다. 형제들과 특별히 낯선 사람들을 위해 수고한 일들은 신실한 것을 행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형제들이란 3절처럼 복음을 전하는 순회 전도자들이고 낯선 자들은 그중에 가이오가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영접하고 필요한 것들을 돕는 일은 귀한 일이었음을 확인합니다. 가이오가 했던 일을 칭찬할 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잘 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형제들을 영접하고 환송하라는 6b절 내용과 데메드리오를 영접하라는 12절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2) 가이오에 대한 형제들의 증언(6a)

칭찬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3절에서처럼 가이오의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이 이미 그에 대해 좋은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주목할 것은 가이오의 사랑을 증언한 점입니다. 동일한 순회 전도자를 영접한 것이지만, 3절은 진리 안에서 행한 것으로 칭찬했지만 6b절은 그것이 사랑의 행동이었음을 부각한다. 예수의 복음과 함께하는 것이기에 진리 차원의 일이지만, 형제들 필요를 채우는 것이기에 사랑의 차원이기도 합니다. 진리와 사랑이 함께 가는 귀한 삶이라는 말입니다.

(3) 가이오에 대한 기대와 이유(6b-8)

가이오에 대한 칭찬은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잘 영접하고 필요한 것을 채워 보내는 일을 계속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번째 이유는 복음 사역을 할 때 그들의 실제적 필요들을 누군가 채워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7). 그들은 주의 이름을 위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만 무보수로 일한다. 만일 그들이 일하면서 전도한다면 집중과 효율 면에서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계속 그 일을 잘 할 수 있기 위해 교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선교사들이 안정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교회가 도와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 목음 사역자들을 영접하고 돕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함께 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8). 직접 가지는 않지만 함께 동역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순회 사역자들을 가이오가 계속 잘 영접하고 할 수 있으면 필요한 것을 채워 보내기를 바랍니다.


환대만 있는 건 아닙니다. 냉대와 박대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무릎 쓴 가이오의 용기와 환대는 그만큼 그 ‘영혼의 잘 됨’의 증거일 것입니다. 복음이 형성한 사람을 보시기 바랍니다. 환대의 복음은 환대의 사람을 낳습니다. 이보다 더 강력한 진리의 증거가 또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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