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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 (01-02)


사랑과 기도의 자리

유다서 1장 1-16절


병에 걸리면 귀가 얇아집니다. 한 가닥 소망이라도 잡기 위해, 민간요법이라고 구하려합니다. 대부분은 병을 더 키우는 경우를 봅니다. 병원에 입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담당 의사에게 자신의 건강을 맡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담당의사의 지시를 따라 치료를 받아야만 건강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영적으로도 자신의 교회의 목회자에게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교회 속에 숨어 있는 거짓 형제들 문제에 대한 실제적 권면 부분입니다. 이전 부분(3-16)이 거짓 형제들의 상태와 심판받을 운명에 대한 것에 집중했다면, 17-23절은 독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일련의 명령으로 제시합니다. 사도들이 전해준 복음의 내용에 댜 천착해 자신을 지키고 거짓 영향력으로 어려움 당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합니다. 이후 24-25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송영으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17-19)

경건하지 않은 자는 자기 욕망을 따라 사는 조롱꾼들의 등장에 미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신 거룩한 믿음, 성령의 기도, 사랑이 말세를 사는 성도들이 사탄에 맞서 승리할 수 있는 길입니다. 구원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의 거처로 다 지어진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공사 중이고 건설 중인 성도들입니다.

17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18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19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17-19)

 성도가 지켜야 할 자리는 사랑과 기도의 자리입니다. 성령께 의존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교만한 거짓 교사들은 분열과 비방의 열매를 맺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랑과 기도의 열매를 맺습니다.

 (1) 사도들의 말(17-18)

본문 3-16절에서 설명한 거짓 형제들의 문제에 대해 독자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명령법으로 전달하기 시작합니다. 3절에서 언급한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표현을 다시 사용함으로써 독자들과 거짓 형제들과의 차별을 보여줍니다.

첫 명령은 이전에 사도들이 말한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 사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로서 독자들에게 믿음의 도를 전해준 자들입니다(3). 그들은 말세에 자기의 불경건한 정욕을 따르며 조동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교회를 어지럽힐 사람들이 있을 것을 예언처럼 말한 것입니다. 사도들이 예언한 사람들은 정욕을 따르는 살과 말의 영역에서 문제를 가진 자들입니다. 앞서 설명한 거짓 형제들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저자가 사도들이 전해준 말을 기억하라고 명령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구약뿐 아니라 사도들 역시 거짓 형제의 심각성을 이미 경고했기에 그들을 더 조심해야 함을 확인시키려는 것입니다. 둘째,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가르침이 참임을 확인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 안에 거짓된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된다면 사도들의 말이 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그들이 전한 진리의 가르침 역시 참임을 보증한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그들 가르침의 기원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기에 독자는 자신들에게 전해진 믿음의 도를 굳건하게 지켜야 하고(3), 자신들이 들은 진리 위에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20).

(2) 거짓 형제들의 상태(19)

사도들의 예언적 경고처럼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거짓 형제들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분열시키고 육신에 속해 정욕대로 사는 자들입니다. 궁극적으로 그들은 성령이 없는 자들입니다. 성령이 없다는 것은 능력이나 기적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새 언약 백성, 곧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 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령은 신자가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가장 중요한 표증이며, 미래 온전한 구원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성령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참조, 로마서 8:9). 결국 거짓 형제들은 교회 안에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자녀가 아닙니다.

  

성도 자신에 대한 명령(20-21)

기도는 상대방과 맞서 싸우는 응전(應戰)의 길입니다. 그렇게 해야 된다는 생각만으로는 싸울 수 없습니다. 진리의 영인 성령을 의지하는 ‘기도’없이 거짓의 영인 성령을 의지하는 ‘기도’없이 거짓의 영에 맞서 이길 수 없습니다. 이단들이 기승을 부린 시대에서 교회는 꼭 알아야 할 진리를 알고, 기도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20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20-21)

 독자들에 대해 두 번째 명령을 합니다. 거짓 형제들의 위험에 대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수신자를 하나님 안에서 사랑 받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지킴 받은 자로 표현한 1절 내용과 연결됩니다. 곧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의 지킴을 받은 신자이기에 그 정체성에 맞게 이제는 그분의 사랑 안에서 진리로 자신을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저자는 자신을 지키라는 명령 앞뒤로 분사들을 사용하여 어떻게 지킬지에 대해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지극히 거룩한 믿음으로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이 믿음은 사도들에 의해 전해진 믿음의 도로(3) 거짓 형제가 주장하고 살아가는 근거와 반대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도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독자들이 흔들리지 않고 잘 설 수 있게 하는 디딤돌입니다. 둘째,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거짓 형제들에게 성령이 없다고 말한 19절 내용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들과 달리 하나님과 새 언약 관계 안에 있고 그 관계의 보증이자 능력인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거짓의 위험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 성령 안에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셋째, 영생에 이르도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를 진짜 믿고 따르는 성도의 끝은 거짓 형제와 다릅니다. 거짓 형제들에게는 심판과 멸망이 있지만, 참 성도들에게는 영생이 입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미래에 임할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대하며 오늘 자신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결국 성도가 거짓에 대항해 자신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의 자비와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것이고, 그분들에 대한 진리 위에 기도와 미래 소망을 통해 굳게 서는 것입니다.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명령(22-23)

범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용서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라고 합니다. 그들을 인정하거나 수용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고 도움을 주는 일마저 금해서는 안 됩니다.

22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23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22-23)

저자의 명령이 성도의 개인 차원을 넘어 공동체 다른 지체에 대한 것으로 확장됩니다. 거짓 형제들에게 영향 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입니다. 정도의 심각성에 따라 세 가지 명령을 합니다. 첫째, 의심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합니다. 거짓 형제들의 영향으로 흔들리는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내치지 말고 불쌍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둘째, 불에서 사람들을 끌어내듯 구원하라고 합니다. 상징적 표현으로 첫째 상황보다 조금 더 안 좋은 상황을 염두에 둔 듯합니다. 첫째가 흔들리고 의심하는 상황이라면 둘째 상황은 불에서 끄집어내야 할 정도로 거짓 형제들의 영향 속에 있는 상황입니다. 저자는 그런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도와 진리로 돌아오게 하라고 합니다. 셋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 미워하지만 두려움으로 자비를 베풀라고 합니다. 역시 상징적 표현으로 거짓 형제의 악영향에 더 깊숙이 관여된 상황인 듯합니다. ‘육체로 더럽힌 옷’이란 죄로 물든 옷이라는 의미로 거짓 형제를 따라 악한 행위를 한 사람들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저자는 그들의 행위를 미워하고 단죄하되, 자기 역시 조심하면서 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라고 말합니다. 비록 이 명령들이 거짓 형제들의 영향력에 빠진 여러 사람들을 다루고 있지만, 저자가 말하려는 내용은 한 가지입니다. 문제 있는 사람들의 상태나 정도와 상관없이 진리 안에서 사랑으로 대하여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불쌍히 여기고 도우라는 것입니다. 마치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한 여인에게 최를 최라고 말하면서도 그 여인의 죄를 용서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예수의 모습과 같습니다. 거짓으로 분열된 공동체를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개인이 먼저 삼위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 위에 굳게 서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동일한 진리와 사랑으로 대하고 도와야 합니다. 이는 또한 문안 인사에서 말하는 하나님으로 인한 자비와 평강과 사랑을 경험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영(24-25)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자기 영광 앞에 흠 없이 즐거움으로 서는 그 날까지 보호하시고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날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사탄의 미혹도 간교해지고 거세지겠지만, 그럴수록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더 꼭 감싸주실 것입니다.

24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25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24-25)

이제 유다서는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찬양 속 하나님에 대한 묘사는 교회의 문제 상황과 편지 앞부분의 내용과 관련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영광과 위엄과 능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한 분 하나님께 있음을 찬양합니다. 거짓 형제들이 하나님과 예수를 업신여기지만, 사실 그분들은 무한한 찬양을 받으실 존재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능력으로 독자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보호하시고 큰 기쁨 안에서 흠 없이 당신 앞에 서게 하실 분입니다. 거짓의 위험에서 진리와 사랑으로 독자들을 지키고 거짓 형제들과 완전히 다른 삶으로 계속 살아가게 하는 분입니다.

결국 이 찬양은 편지의 결론이자 독자를 향한 기도문입니다. 독자들은 이 찬양에 아멘으로 응답하여 거짓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눈 감으면 코 베이는 세상입니다. 거짓의 유혹과 미혹과 현혹을 정확히 판독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복음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기억 없이는, 기도하지 않고는 주의 긍휼을 바라지 않고는 언약의 시간을 살 수 없습니다. 보배로운 당신의 믿음도, 믿음의 공동체도 지킬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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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 (01-01)


거짓 교사를 분별하라

유다서 1장 1-16절


 유다서는 유한 서신 사이에서 줄곧 무시를 당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주신 경고와 옛 시대를 거울삼아 현재의 영적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는 유다서의 권면은 항상 유익하고 적실합니다. 그 대응은 믿음을 위협하는 거짓 교사들의 실체와 문제점을 아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교회 속에 숨어 있는 거짓 형제들의 험을 경ㅊ계하라고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전해준 예수님의 복음 대신 꿈을 통한 계시를 중시해 모든 권위를 무시하는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원래 쓰려던 편지 주제를 갑자기 바꿀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던 듯합니다. 저자는 편지의 반 이상을 거짓 형제들의 실체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설명하는 데 할애합니다. 그만큼 그 문제가 저자와 독자들에게 심각하다는 것을 전달합니다.

 

편지의 도입(1-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며, 긍휼과 평강을 베푸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안전한 것은 그 은혜 덕분이고, 그분 말고는 아무도 우리를 책임져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성도들은 믿음의 도를 지키기 위해 힘써 사워야 합니다. 몰래 들어온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하고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하였으며, 경건한 윤리를 무시하고 참다운 자유를 훼손한 채 방종을 정당화하고, 그리스도를 인간으로 격하시켰습니다.

 1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2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1-2)

 교회 안에 ‘몰래’ 들어온 자들이 있습니다. 신령한 자로 가장하지만, 의도가 불순한 불온한 자들입니다. 은혜를 빙자하여 영적 방만과 성적 방종을 부추기며 영적 생태계를 교란하는 자들입니다. 경계하고 상대하려면 가장된 경건에 속아서는 안 되고, 그 속셈을 간파해야 합니다.

 (1) 발신자와 수신자(1)

 유다는 편지이기 때문에 그 시작은 당시의 일반적인 편지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입 부분으로 발신자와 수신자 소개가 있습니다.

 ➀ 발신자(1a)

발신자는 유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자 야고보의 형제로 말합니다. 야고보의 형제면 예수의 형제지만, 그런 표현 대신 종이라고 말합니다. 혈연보다 예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겸손한 표현입니다. 본론에 나온 예수의 권위를 부인한 거짓 형제와 대조됩니다.

 ➁ 수신자(1b)

수신자는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신자를 말하는 보편적 표현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를 첨가해 저자의 관심사를 드러냅니다. 하나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 받은 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지킴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예수와의 관계상을 중심으로 신적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절의 하나님의 사랑은 2절에서 신자에 대한 문안 인사로 연결되고, 3절에서 본론을 시작하는 저자의 사랑을 거쳐 21절에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라는 명령으로 이어집니다. ‘지키라’는 표현은 이후 거짓 교사들의 위험에 대한 경고와 21절에서 신자가 자신을 지키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수신자에 대한 표현 역시 편지 내용에 대한 복선 역할을 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계속 진리에 머물러 거짓으로부터 신자를 지키는 것과 관련 있습니다.

 (2) 문안 인사(2)

 자비와 평강과 사랑이 충만해지기를 바라는 문안 인사를 합니다. 자비는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21절에서 자신을 지키라는 명령과 함께 예수의 자비를 기다리라는 말로 다시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분의 자비는 개인 차원에서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22-23절은 주님의 자비가 거짓 진리로 어려움 겪는 사람들에게 확장되기를 원합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21절에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으로 연장됩니다. 수신자 묘사처럼 편지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것이며 진리를 통해 하나님/예수와의 관계 안에서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편지를 기록한 이유(3-4)

 구원은 기계적이나 자동적이지 않습니다. 비인격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출애굽한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최종 구원에 이른 것은 아니었으며, 믿지 않는 자는 광야에서 멸하시고 큰 심판 때ᄁᆞ지 흑암에 결박해 두셨습니다. 음란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도 은혜를 멸시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3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3-4)

 ‘사랑하는 자’라는 친밀한 표현으로 본론을 시작합니다. 편지를 쓴 이유를 소개합니다. 일반적 구원에 대한 것을 쓰려다가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우라는 내용으로 선회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도란 사도들이 독자들에게 전해준 복음의 내용을 의미합니다(17). 갑자기 독자에게 안 좋은 상황이 닥친 듯합니다. 그 상황은 4절에서 설명됩니다.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 때문입니다. ‘가만히’라는 표현은 그들의 숨은 의도가 악하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거짓 순회 교사들인 듯합니다.

저자는 그들을 네 가지 표현으로 묘사합니다. 첫째, 그들의 심판은 오래전부터 선고되었습니다. 둘째, 그들은 불경건한 자들입니다. 셋째, 그들은 은혜를 방탕의 기회로 바꾸었습니다. 넷째, 그들은 예수의 주재권을 부인합니다. 이 중 넷째가 그들 문제의 핵심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의 주되심을 인정하지 않기에 그들의 삶은 비윤리적이고 불경건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죄인들을 향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거짓 형제들에 대한 심판(5-16)

 성도들은 분별의 책임이 있고, 교회의 지도자들은 거짓 교사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말씀에 충실하고, 삶과 말이 일치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앞에는 시기와 탐욕과 불평으로 살아가는 가인과 발람과 고라의 길이 있고, 주님과동행하는 삶이 있습니다. 열매 없고 거품 같은 삶이 있고, 거룩한 자와 함께 심판에 참여할 자가 있습니다.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5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8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9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10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11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12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13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14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16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5-16)

거짓 교사들은 시기와 탐욕과 불평으로 살아온 그들을 기다리는 건 심판뿐입니다. 그들의 미래는 뿌리 뽑힌 나무입니다. 물 없는 구름처럼 그들의 가르침과 신념이 얼마나 거짓된 거품이고, 허풍이었는지를, 예언을 무시한 자들의 미래입니다.

 (1) 하나님의 심판과 거짓 형제들(5-10)

 거짓 형제들에 대한 심판이 설명됩니다. 이미 독자들이 알고 있는 것이지만 다시 주지시킵니다. 그들에 대한 심판이 오래전 하나님의 심판과 동일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세 가지 예를 듭니다(5-7). 첫째, 출애굽 때 믿지 않고 반역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심판입니다. 둘째, 자기에게 허락된 위치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둔 것입니다. 셋째, 소돔과 고모라와 이웃 도시늘의 심판입니다. 이 셋 모두 하나님의 주되심과 권위를 거절해 심판 받는다는 공통전이 있으며 둘째와 셋째는 성적 문제도 함께 있습니다. 4절에서 거짓 형제들을 묘사한 것과 유사합니다. 그렇기에 그들 역시 하나님의 심판 대상입니다. 과거 하나님의 심판이 현재 거짓 형제들에게도 적용됨은 8-10절을 통해 설명됩니다. 그들은 꿈을 자기들 삶의 방식을 정당화하는 게시의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성적으로 방탕했고 하나님/예수의 권위와 천사의 권위도 무시했습니다(8). 천사장 미가엘도 사탄에 대한 최종 판결을 하나님께 두었는데, 그들은 자기들이 마치 최종 권위자처럼 행세하며 천사들이나 영적 존재들에 대해서도 다 알고 있는 듯이 거만하게 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는 것은 오직 육체적 욕심과 방탕뿐입니다. 마치 이성 없이 본능을 따라 사는 짐승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2) 화 있을진저 거짓 형제들이여(11-13)

 행위 영역과 관련해 거짓 형제들의 비참한 상태를 계속 설명합니다. 그들은 구약에 나오는 세 명의 악인, 곧 모든 악을 행하는 가인과 돈을 위해 이스라엘을 성과 우상에 빠지게 한 발람, 그리고 모세와 아론의 권위를 거역한 고라(11)와 같은 자들입니다. 앞에서 묘사한 거짓 형제의 모습과 일치하는 예들입니다. 그들은 뻔뻔하게도 독자들과 함께 애찬을 먹고 지도자 행세를 합니다(12). 그러나 그들은 사실 자기들만 위해 사는 자들이고 성도의 신앙과 교제를 망치는 숨은 장애물입니다. 교회를 파괴하는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운명은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고,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이며, 부끄러움을 계속 내뿜는 거친 바다 물결이고, 영원한 흑암으로 돌아갈 떠돌이별과 같이 될 것입니다.

 (3) 에녹의 예언과 거짓 형제들(14-16)

 에녹 1서 1:9에 나오는 에녹의 예언을 통해 거짓 형제들의 모습과 그들에 대한 심판을 재차 설명합니다. 그 예언은 주님이 수만의 거룩한 천사들을 대동하고 모든 사람들의 경건하지 않은 일과 불경건한 죄인들이 주님을 거역해 비방했던 말들에 대해 심판하러 오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에녹 1서가 정경이 아닌 중간기 문헌에 속한 것이지만, 저자는 그 속에도 진리의 요소가 들어 있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기본적으로 죄인을 심판하러 오시는 주님은 정경의 내용과 일치하고 심판 대상의 모습은 거짓 형제들의 모습과 동일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들의 악한 모습은 16절에서 두 가지 차원에서 부연됩니다. 하나는 행위 차원으로 그들은 자기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말의 차원으로 그들은 원망과 불평의 말을 하고 자기를 자랑하고 이익을 위해 아첨하는 자들입니다. 저자는 둘 중 말의 차원을 더 강조합니다. 지금까지 거짓 형제들을 묘사한 것에 의하면, 그들은 (1) 꿈을 통해서 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2) 자기들 계시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예수의 주되심을 무시하고 천사들도 자기 아래로 여깁니다. (3) 그로 인한 교만으로 말의 영역에서 주의 권위를 거절하고 불평하며 원망하고 아첨합니다(참조. 16). (4) 자기 이익과 돈을 사랑합니다. (5) 영위 영역에서도 절제함 없이 정욕대로 사는 불경건한 자들입니다(참조. 18). (6) 교회에 몰래 들어와 신짜 신자인 체하고 영향력을 행사해 교회를 분열시킵니다(참조. 19). (7) 그들은 성령이 없는 가짜 신자입니다(참조, 19). (8)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우습게 여겼던 주님이 수많은 천사들과 함께 오실 때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싸워야 할 대상을 알았으니 이제 가야 할 길과 지켜야 할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진리와 무관한 소모전은 이제 그만하고, 진리를 위한 싸움에 참전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형성된 영적인 생태계를 교란하는 자들을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진리 전쟁은 가상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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