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01-02)
사랑과 기도의 자리
유다서 1장 1-16절
병에 걸리면 귀가 얇아집니다. 한 가닥 소망이라도 잡기 위해, 민간요법이라고 구하려합니다. 대부분은 병을 더 키우는 경우를 봅니다. 병원에 입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담당 의사에게 자신의 건강을 맡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담당의사의 지시를 따라 치료를 받아야만 건강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영적으로도 자신의 교회의 목회자에게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교회 속에 숨어 있는 거짓 형제들 문제에 대한 실제적 권면 부분입니다. 이전 부분(3-16)이 거짓 형제들의 상태와 심판받을 운명에 대한 것에 집중했다면, 17-23절은 독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일련의 명령으로 제시합니다. 사도들이 전해준 복음의 내용에 댜 천착해 자신을 지키고 거짓 영향력으로 어려움 당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합니다. 이후 24-25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송영으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17-19)
경건하지 않은 자는 자기 욕망을 따라 사는 조롱꾼들의 등장에 미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신 거룩한 믿음, 성령의 기도, 사랑이 말세를 사는 성도들이 사탄에 맞서 승리할 수 있는 길입니다. 구원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의 거처로 다 지어진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공사 중이고 건설 중인 성도들입니다.
17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18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19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17-19)
성도가 지켜야 할 자리는 사랑과 기도의 자리입니다. 성령께 의존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교만한 거짓 교사들은 분열과 비방의 열매를 맺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랑과 기도의 열매를 맺습니다.
(1) 사도들의 말(17-18)
본문 3-16절에서 설명한 거짓 형제들의 문제에 대해 독자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명령법으로 전달하기 시작합니다. 3절에서 언급한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표현을 다시 사용함으로써 독자들과 거짓 형제들과의 차별을 보여줍니다.
첫 명령은 이전에 사도들이 말한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 사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로서 독자들에게 믿음의 도를 전해준 자들입니다(3). 그들은 말세에 자기의 불경건한 정욕을 따르며 조동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교회를 어지럽힐 사람들이 있을 것을 예언처럼 말한 것입니다. 사도들이 예언한 사람들은 정욕을 따르는 살과 말의 영역에서 문제를 가진 자들입니다. 앞서 설명한 거짓 형제들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저자가 사도들이 전해준 말을 기억하라고 명령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구약뿐 아니라 사도들 역시 거짓 형제의 심각성을 이미 경고했기에 그들을 더 조심해야 함을 확인시키려는 것입니다. 둘째,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가르침이 참임을 확인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 안에 거짓된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된다면 사도들의 말이 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그들이 전한 진리의 가르침 역시 참임을 보증한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그들 가르침의 기원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기에 독자는 자신들에게 전해진 믿음의 도를 굳건하게 지켜야 하고(3), 자신들이 들은 진리 위에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20).
(2) 거짓 형제들의 상태(19)
사도들의 예언적 경고처럼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거짓 형제들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분열시키고 육신에 속해 정욕대로 사는 자들입니다. 궁극적으로 그들은 성령이 없는 자들입니다. 성령이 없다는 것은 능력이나 기적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새 언약 백성, 곧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 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령은 신자가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가장 중요한 표증이며, 미래 온전한 구원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성령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참조, 로마서 8:9). 결국 거짓 형제들은 교회 안에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자녀가 아닙니다.
성도 자신에 대한 명령(20-21)
기도는 상대방과 맞서 싸우는 응전(應戰)의 길입니다. 그렇게 해야 된다는 생각만으로는 싸울 수 없습니다. 진리의 영인 성령을 의지하는 ‘기도’없이 거짓의 영인 성령을 의지하는 ‘기도’없이 거짓의 영에 맞서 이길 수 없습니다. 이단들이 기승을 부린 시대에서 교회는 꼭 알아야 할 진리를 알고, 기도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20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20-21)
독자들에 대해 두 번째 명령을 합니다. 거짓 형제들의 위험에 대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수신자를 하나님 안에서 사랑 받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지킴 받은 자로 표현한 1절 내용과 연결됩니다. 곧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의 지킴을 받은 신자이기에 그 정체성에 맞게 이제는 그분의 사랑 안에서 진리로 자신을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저자는 자신을 지키라는 명령 앞뒤로 분사들을 사용하여 어떻게 지킬지에 대해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지극히 거룩한 믿음으로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이 믿음은 사도들에 의해 전해진 믿음의 도로(3) 거짓 형제가 주장하고 살아가는 근거와 반대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도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독자들이 흔들리지 않고 잘 설 수 있게 하는 디딤돌입니다. 둘째,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거짓 형제들에게 성령이 없다고 말한 19절 내용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들과 달리 하나님과 새 언약 관계 안에 있고 그 관계의 보증이자 능력인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거짓의 위험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 성령 안에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셋째, 영생에 이르도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를 진짜 믿고 따르는 성도의 끝은 거짓 형제와 다릅니다. 거짓 형제들에게는 심판과 멸망이 있지만, 참 성도들에게는 영생이 입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미래에 임할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대하며 오늘 자신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결국 성도가 거짓에 대항해 자신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의 자비와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것이고, 그분들에 대한 진리 위에 기도와 미래 소망을 통해 굳게 서는 것입니다.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명령(22-23)
범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용서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라고 합니다. 그들을 인정하거나 수용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고 도움을 주는 일마저 금해서는 안 됩니다.
22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23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22-23)
저자의 명령이 성도의 개인 차원을 넘어 공동체 다른 지체에 대한 것으로 확장됩니다. 거짓 형제들에게 영향 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입니다. 정도의 심각성에 따라 세 가지 명령을 합니다. 첫째, 의심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합니다. 거짓 형제들의 영향으로 흔들리는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내치지 말고 불쌍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둘째, 불에서 사람들을 끌어내듯 구원하라고 합니다. 상징적 표현으로 첫째 상황보다 조금 더 안 좋은 상황을 염두에 둔 듯합니다. 첫째가 흔들리고 의심하는 상황이라면 둘째 상황은 불에서 끄집어내야 할 정도로 거짓 형제들의 영향 속에 있는 상황입니다. 저자는 그런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도와 진리로 돌아오게 하라고 합니다. 셋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 미워하지만 두려움으로 자비를 베풀라고 합니다. 역시 상징적 표현으로 거짓 형제의 악영향에 더 깊숙이 관여된 상황인 듯합니다. ‘육체로 더럽힌 옷’이란 죄로 물든 옷이라는 의미로 거짓 형제를 따라 악한 행위를 한 사람들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저자는 그들의 행위를 미워하고 단죄하되, 자기 역시 조심하면서 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라고 말합니다. 비록 이 명령들이 거짓 형제들의 영향력에 빠진 여러 사람들을 다루고 있지만, 저자가 말하려는 내용은 한 가지입니다. 문제 있는 사람들의 상태나 정도와 상관없이 진리 안에서 사랑으로 대하여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불쌍히 여기고 도우라는 것입니다. 마치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한 여인에게 최를 최라고 말하면서도 그 여인의 죄를 용서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예수의 모습과 같습니다. 거짓으로 분열된 공동체를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개인이 먼저 삼위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 위에 굳게 서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동일한 진리와 사랑으로 대하고 도와야 합니다. 이는 또한 문안 인사에서 말하는 하나님으로 인한 자비와 평강과 사랑을 경험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영(24-25)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자기 영광 앞에 흠 없이 즐거움으로 서는 그 날까지 보호하시고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날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사탄의 미혹도 간교해지고 거세지겠지만, 그럴수록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더 꼭 감싸주실 것입니다.
24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25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24-25)
이제 유다서는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찬양 속 하나님에 대한 묘사는 교회의 문제 상황과 편지 앞부분의 내용과 관련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영광과 위엄과 능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한 분 하나님께 있음을 찬양합니다. 거짓 형제들이 하나님과 예수를 업신여기지만, 사실 그분들은 무한한 찬양을 받으실 존재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능력으로 독자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보호하시고 큰 기쁨 안에서 흠 없이 당신 앞에 서게 하실 분입니다. 거짓의 위험에서 진리와 사랑으로 독자들을 지키고 거짓 형제들과 완전히 다른 삶으로 계속 살아가게 하는 분입니다.
결국 이 찬양은 편지의 결론이자 독자를 향한 기도문입니다. 독자들은 이 찬양에 아멘으로 응답하여 거짓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눈 감으면 코 베이는 세상입니다. 거짓의 유혹과 미혹과 현혹을 정확히 판독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복음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기억 없이는, 기도하지 않고는 주의 긍휼을 바라지 않고는 언약의 시간을 살 수 없습니다. 보배로운 당신의 믿음도, 믿음의 공동체도 지킬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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