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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03-02)


진리 안에서 인간관계

디도서 3장 8-15절


불조심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한 번 실수해서 불이 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부탁한 말 역시 그러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한 번 부탁한 것을 잘 가르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가르침(2:10-3:7)을 요약합니다. 선한 일에 힘써야하는 교훈에 대해서는 굳세게 말해야 하지만,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변론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단호하게 멀리하고, 믿음의 식구들 간에는 진실한 사랑의 교제를 이어가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권면의 강조(8-11)

사도 바울은 디도에게 마지막 권면과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의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선한 일을 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 합니다. 선한 일은 아름답고 유익하지만, 무익한 것들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8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9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10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11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서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8-11)

올바른 것을 강조해 성도들이 바르고 선한 길로 가도록 돕는 것은 좋고 유익합니다. 그 무익한 일들 중에 ‘어리석은 논쟁’과 ‘쓸데없는 족보 이야기’, ‘모세의 율법’에 대한 말다툼을 피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단들은 무익한 논쟁을 좋아합니다. 가령 ‘어리석은 논쟁’에 대해서 한 가지 예를 생각해 본다면, 중세시대에는 ‘바늘 끝에 천사가 몇이나 앉을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 크게 논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쉽게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가령 답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성도들의 신앙 성장에 무슨 유익을 주겠습니까!

이러한 것들은 쓸모없는 것일 뿐 아니라 교회에 혼란과 분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성도들은 근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무익한 것에 시간과 물질을 낭비하지 말고 아름답게 유익한 것에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반대자들에게 대한 최종적인 지침을 디도에게 제시합니다. 훈계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헛된 가르침을 베풀면서 공동체의 분열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도에게 이런 사람들에게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11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서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10-11)고 가르칩니다.

원래 이단들은 기독교의 교리적인 부분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타락한 자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삶의 열매가 타락의 열매인 육신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교회 안에서 용납하면, 연약한 성도들을 유혹하고, 또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 모르기 때문에 미혹됩니다.

그 이단들에게 회개할 가능을 생각하여 한 두 번은 타이르며 경고하지만, 계속해서 논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면, 교회에서 떠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면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회개할 만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회개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적으로는 잘못된 이단의 결과 무엇인지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이단을 관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회 밖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선한 일과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힘쓸 때 선한 습관을 기르게 됩니다. 선한 습관은 우리 인생을 아릅다고 유익하게 만들어 줍니다. 선한 습관을 기르기 위해 당신은 매일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맺음말(12-15)

성도들이 살아가는 공간은 교회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성도들도 사회의 시민으로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 권력에 대한 건강한 관심을 가지고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 땅에 공의를 세워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사랑으로 서로를 세우고 예비시키는 교회들의 아름다운 연합과 지원은, 지금도 복음 전파에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12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노라 13율법교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들로 부족함이 없게 하고 14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 쓰기를 배우게 하라 15나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12-15)

마지막으로 바울은 앞으로 자신의 계획을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과동하기로 작정하였노라”(12)고 알립니다.

그 동안 디도에게 맡겼던 일들을 마감하고, 그 대신 데마와 두기고를 그레데로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율법사 세나와 아볼로를 먼저 보내고, 그들이 선교 여행하는데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부탁합니다. 이렇게 여러 동역자들이 합력해서 사역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디도에게도 니고볼리로 오라고 요청합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악한 사람들과는 반대로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에 힘 쓰기를 배우게 하라”(14)고 권고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선한 일에 본보기가 되라고 권합니다. 성도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오늘날도 지도자가 먼저 다른 사람을 잘 섬기는 일을 하면, 사람들이 그 일을 본을 받아 서로 필요한 것을 나누어 주는 선행에 힘쓸 것입니다.

함께 있는 사람들의 안부를 전합니다. 바울과 동역자들 간의 협력과 성도들 간의 사랑의 인사는 진리에 기초한 성도의 교제의 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으로 “나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찌어다”(15)라고 문안하면서 마무리합니다. 그레데 성도들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빌며 편지를 마칩니다. 주 은혜의 말씀에 동료들을 부탁하는 믿음을 봅니다.

무익하고 헛된 일을 피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어리석은 논쟁이나 쓸데없는 말다툼을 피하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신앙생활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믿음의 성장을 피해야할 일들은 무엇입니까?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피해할 일들을 피하고 힘써야 할 일들을 힘써야 합니다. 성도들은 믿음의 사람으로서 선한 습관들을 기르며, 헛된 일로부터 벗어나서 유익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삶에 은총의 열매로 풍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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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03-01)


그리스도인의 인간관계

디도서 3장 1-7절


속담 중에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는 아무리 상대방이 우리를 헐뜯고 욕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웃으며 부드럽고 공손하게 대하면 싸움을 피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많지만,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대하면 복이 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는 부드러워야 하지만, 죄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합니다.

 

본문은 바울 사도는 사회생활에 대한 성도들의 태도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속 정부와 세상 사람들에게 온유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 이유는 성도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교회 밖 사람들과의 관계(1-2)

소금이 짠맛 나는 것이 당연하고, 빛이면 등잔 위에 얹어 놓은 등불처럼 어둠을 사르고 밝히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전혀 다른 가치관과 삶의 목표, 방식으로 구별되어 사는 이들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세상과 동떨어져 살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할지 바울은 디도에게 가르쳐 줍니다.

1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2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1-2)

사도 바울은 디도에게 그레데 섬에서 있는 성도들을 바르게 가르치라고 권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 밖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보여야 할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갑니다. 인간관계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세속적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수용할 수 없는 삶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전혀 무시하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나옵니다. 그 질문에 사도 바울은 그레데의 성도들이 다스리는 자와 정부 지도자들의 권위에 순종하고, 모든 사람에게 부드럽고 겸손하게 대하도록 가르치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과의 갈등이 일어나면 복음을 전하는데 문제가 발생하지 않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행실이 게으르거나 악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고 권했습니다(2:5).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구원하셨습니다(2:14).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바른 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이 힘 있게 전파할 수 있도록 하면, 성도들의 잘못된 언행으로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항상 선한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하게 씻어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셨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새롭게 된 사람답게 이전과는 다르게 살고 있습니까?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깨끗함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습니까?

 

새로운 사람, 새로운 삶(3-7)

성도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삶이 달라야 합니다. 믿지 않을 때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변화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그 변화된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삶을 통해 변화된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3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4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3-7)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를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3)라고 소개합니다. 성도들도 과거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게 죄악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방해 사람이라 할지라도 긍휼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긍휼을 베풀어야할 이유를 구지 설명한다면,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인 우리들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다라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전에는 하나님을 떠나 세상 일의 노예가 되었고, 육체의 즐거움을 따라 악한 일을 하며 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모든 사람에게, 특별히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부드럽고 공손하게 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올바른 행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구원받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올바른 행동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입니다. 욕하거나 다투지 말고 모든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야 합니다. 친하고 당신에게 잘 해주는 친구들뿐 아니라 서먹하고, 헐뜯는 친구들에게도 부드럽고 공손하게 대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좋게 지내를 힘써야 합니다.


 

사람을 준비시키고 싸움에 대비하며 다음을 예비하는 일은, 교회 안퍆에서 필요한 준비 태세입니다. 경건한 성도요 성숙한 시민으로 교회는 사람을 준비시켜야 합니다. 이단과 허탄한 세상 문화에도 교회가 흔들리지 않도록 영적 싸움에 대비해야 합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들고 나아가 전하는 전도자들을 공급하고 연결하고 후원해야 합니다. 그것이 선한 일을 열심히 하려 하는 하나님 백성의 마땅한 준비 태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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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02-01)


진리에 합당한 성도의 모습

디도서 2장 1-15절


 

좋은 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먹어야 효과가 있습니다. 교육도 아무리 좋은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을 따라 살면 훌륭한 교육이 됩니다. 하지만 교육을 받고도 따르지 않으면 아무런 교육에 대한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참된 가르침인 복음을 배우고 따름으로 그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에 대한 능력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효과를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바울 사도는 디도가 그레데에서 거짓 교사를 거짓 교훈을 방어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더 나가서 적극적으로 성도들을 언행의 본을 통해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목표인 선한 일에 열심하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양육(1-10)

진리는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인생 끝까지 역사합니다. 누구도 예외가 아닙니다. 늙은 남자들은 위엄을 갖추고, 늙은 여자들은 거룩해야 하고, 젊은 여자들은 좋은 아내와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젊은 남자들은 자기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지도자는 모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1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 2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3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4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5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6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7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8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9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10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1-10)

그레데 교회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은 어떤 자입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버린 사람이며, 그리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가장을 파괴하는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디도에 대한 개인적인 권면(2:1)으로 시작하여 다양한 계층의 성도 양육에 관한 권면(2:2-10)으로 나아갑니다. 바울은 노년의 남성(2:2) 노년의 여성과 젊은 여성(2:3-5), 젊은 남성(2:6-8), 노예(29-10)로 구분하여 각각 권면합니다. 본문은 디모데전서 5:1-6:29 내용과 유사합니다.

⑴ 건전한 교육(1)

디도를 향한 바울의 개인적인 권면입니다. 본 절은 ‘그러나 너는’의 강조로 시작합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건전한 교리에 적합한 것을 가르치라’고 강권합니다. 유대인의 거짓교사들은 족보 이야기와 장로들의 명령을 따라 헛된 교훈을 가르침으로 그레데 교회와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삶과 믿음이 분리되어 모순적으로 살고 있었습니다(1:16). 따라서 바울은 거짓 교사들과 비교되는 진실한 목회자로서 디도의 사역을 기대하며 권면합니다. 그레데 성도들이 삶과 믿음이 일치하기를 원했습니다.

⑵ 늙은 남자 성도의 양육(2)

바울은 연장자들부터 거론합니다. 늙은 남자 성도에 관한 권면입니다. 바울은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2)라면서, 노년 남성에게 가르쳐야 할 네 가지 덕목이 나타납니다. 늙은 남자들에게 요구되는 덕망 있는 생활 습관으로 첫째, ‘결제함’은 원래 어원적으로 술 등에 취하지 않은 맑은 정신 상태를 뜻합니다(디모데전서 3:2,11). 다음으로 ‘경건함’은 존경할만한 고귀한 신앙 인품을 말합니다(디모데전서 3:8,11). 존경을 받아 위엄과 엄숙함을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신중함’은 근신하는 마음으로 말이나 행동을 삼가는 것, 즉 자제력을 뜻합니다. 이 덕목은 디도서에 자주 언급되는데 바울은 자제력을 모든 성도에게 요구되는 덕목으로 간주합니다(디모데전서 3:2; 디도서 1:8; 2:4,5,6). 당연히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에서 나온 절제력으고 깊은 사고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덕목은 믿음, 사랑, 인내에 있어 ‘건강함’입니다. 목회서신에서 믿음, 사랑, 인내는 신앙의 핵심 요소입니다(디모데전서 6:11; 디모데후서 3:10; 참조. 데살로니가전서 1:3).

⑶ 늙은 여자 성도에 대한 권면(3)

이제 바울은 늙은 여자 성도에 관한 권면합니다. 이 단락은 젊은 여성에 관한 권면도 포함합니다(2:4b-5).먼저 경건한 여인에게 마땅한 거룩한 행실을 권면합니다. 다음으로 ‘남을 헐뜯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 덕목은 집사의 아내에 관한 권면에서도 언급됩니다(디모데전서 3:11). 신약성경은 사탄을 ‘헐뜯는 자’(요한계시록 12:10)로 묘사하는데 남을 모함하는 것은 사탄의 속성 중의 하나입니다(디모데후서 3:3). 그 다음으로 ‘술에 중독되지 말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이 덕목은 집사에 관한 권면에서도 나타납니다(디모데전서 3:8). 바울이 노년 여성의 덕목과 관련하여 특별히 험담이나 술 중독을 언급한 것은 당시 그레데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끝으로 ‘선한 일을 가르치는 자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노년 여성이 젊은 여성에게 신앙인의 성숙한 삶에 관하여 가르칠 것을 권합니다.

⑷ 젊은 여성 성도에 대한 권면(4-5)

3절의 마지막 구절은 4-5절과 연결됩니다. 바울의 주장에 따르면 노년 여성이 선한 일을 가르치면 젊은 여성의 신앙은 성숙하게 되고, 젊은 여성의 신앙이 성숙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4절에서 바울은 젊은 여성의 덕목으로 ‘남편을 사랑함’, ‘자녀를 사랑함’, ‘자제함’(2:2), ‘순결함’(디모데전서 2:9; 5:2), ‘가사에 충실함’, ‘친절함’, ‘남편에게 복종함’(에베소서 5:22; 골로새서 3:18) 등을 언급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젊은 여성의 신앙 성숙을 언급하면서 가정에서 충실한 내조의 역할에 초점을 둡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가정에서부터 신앙의 향기를 드러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족을 섬기고 가정에서 맡은 역할을 신실하게 감당합니다. 이러한 가정생활을 통하여 경건한 믿음의 개근을 이루어 가고 자손대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입니다.

⑸ 젊은 남자 성도에 대한 권면(6-8)

젊은 남자 성도에 관한 권면입니다. 본문은 젊은 남자에 관한 권면(2:6)과 젊은 디도에게 권하는 개인적인 권면(2:7-8)으로 구성됩니다. 6절에 장로, 노년 남성, 젊은 여성의 덕목과 관련하여 언급된 형용사 ‘신중한’(1:8; 2:2,6)의 부정사형이 나타납니다. ‘신중하다’는 어원적으로 ‘자제하다’로 번역하는 것이 낫습니다. 바울은 젊은 남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자제력을 언급합니다. 다시 바울은 젊은 사역자인 디도를 향한 개인적인 권면입니다(7-8). 본문은 디모데전서 4:12-16의 내용과 유사합니다. ‘선한 일’은 디도의 사역과 직결되는 일로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 것과 관련됩니다(참조. 디모데후서 2:21). 바울은 젊은 지도자인 디도에게 먼저 선한 일의 본을 보이라고 권면합니다. 계속해서 가르치는 일과 관련하여 부패하지 아니하고, 단정하고,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도록 권면합니다. ‘부패하지 아니함’은 가르치는 동기와 관련된 것으로 부당한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청렴함입니다(참조. 1:11). ‘단정함’은 가르치는 자세와 관련되는데 지도자로서 지녀야 할 위엄을 가리킵니다(디모데전서 2:2). ‘책망할 것이 없는 말’은 가르치는 내용과 관련된 것으로 비난받을 것이 없는 건전한 교훈을 뜻합니다(2:1). 바울은 디도에게 가르치는 자로서 청렴하고 위엄을 지니며 건전한 교훈을 가르치라고 권면합니다. 끝으로 바울은 자신의 권면대로 행하면 거짓 교사들이 건전한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에게 나쁘게 말할 것이 없으므로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고 언급합니다.

⑹ 노예인 성도들에 대한 권면(9-10)

바울은 신분상 노예인 성도들에 관한 권면을 제시합니다. 본문은 디모데전서 6:1-2의 내용과 유사합니다. 바울의 권면은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 ‘거슬러 말하지 않는 것’, ‘훔치지 않는 것’, ‘참된 신실성을 드러내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순종하는 것’은 원래 군대에서 상관의 수하에 예속되는 것을 뜻하는데 다른 사람의 지배하에 자신을 종속시키는 것입니다(베드로전서 2:18).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이란 구절에 사용된 유아레스토스(εύάρεστος는 바울 서신에서 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과 연관되어 나타납니다(로마서 12:1;14:18: 고린도후서 5.9: 에베소서 5:19; 빌립보서 4:18). ‘참된 신실성을 드러내는 것’은 온전한 충성을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골로새서 3:22). 10b절에서 바울의 권면에 따라 행하면 하나님의 교훈이 빛나게 될 것이라고 밝힙니다.

 

구원과 주의 재림에 대한 권면(11-15)

은혜가 성도를 양육합니다. 그럴 때 성도는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이기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재림하실 날을 소망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모든 교회의 가르침과 운영 원리에 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은혜, 사랑과 긍휼의 은혜, 산한 일을 열심히 하는 백성을 낳으려는 목표가 분명한 은헤의 원리가 반영되어야 합니다.

11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5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11-15)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의 생활(2:11-12),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2:13-14), 그리고 디도를 향한 바울의 개인적인 권면(2:15)으로 이루어집니다. 바울은 1-10절에서 실제적인 권면하고, 이제 11-15절에서 권면의 근거가 되는 교리를 진술 합니다. 이러한 서술적 특징은 3:1-7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⑴ 성도의 생활(11-12)

구원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진술입니다. 11절은 단락의 주제 문장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음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남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의미합니다(참조. 요한복음 1:14). 12절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성도의 생활에 대하여 서술합니다. 본절에서 성도의 생활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우선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경건하지 않은 것과 세속적인 욕심을 버립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신중하게 의롭게 경건하게 살아갑니다. 신중하게는 이전 단락에서 자주 나타난 형용사 소프론(σωφρων, 1:8, 2:2,5)의 부사형으로 ‘자제력 있게’의 뜻입니다.

⑵ 주의 재림에 대한 소망(13-14)

주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진술합니다. ‘복스러운 소망’(13)은 12에 언급된 ‘영생의 소망’과 같은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입니다. 14절은 그리스도의 대속과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 삼으시기 위함이라고 서술합니다. 또한 불법에서 구속하고 정하여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선한 일’은 디도서에서 자주 언급되는 용어입니다(1:16; 2:7; 3:1,8,14).

⑶ 권위 있는 책망을 위한 권면(15)

바울은 디도에게 권위 있는 책망을 함으로 누구도 그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고 당부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도 동일한 권면을 합니다(디모데전서 4:2). 성도는 이 세상에서 경건하게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하게 바랍니다. 주께서 다시 오실 때에 부활의 몸을 입고 영생을 누릴 소망을 가집니다. 이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이자 특권입니다.


 

진리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공동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닮은 자로 변화시킵니다. 진리의 은혜로 선한 열매를 인격과 삶에서 맺는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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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01-02)


거룩한 교회를 지켜야할 의무

디도서 1장 10-16절


 

질병은 초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면 쉽게 치료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병을 방치하면 점점 켜져서 큰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이나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제 때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로 비화해 버린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 잘못된 이단사설이 거짓 이단은 빨리 처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그레데 섬에 남아서 교회를 돌아보도록 하였습니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힘들기 때문에 교회 지도자를 세우라고 권하면서 지도자의 자격을 말했습니다. 그 후에 그와는 대조적으로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을 거론합니다.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거짓 교사들인 할례당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그들의 입을 막고 꾸짖으라고 권면합니다.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계(10-11)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을 두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건강한 지도자입니다.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에서도 신앙과 인격이 일치한 지도자로서 존경 받는 사람입니다. 이런 지도자가 있다면 그 교회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다음으로 올바른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그 가르침은 바른 복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복음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가 나타나야 합니다.

10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11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10-11)

바울은 친 아들과 같은 디도에게 그레데 섬에서 남겨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떨쳐 놓았습니다. 그것은 그릇된 가르침을 배격하고 올바른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홀로 사역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바울은 사역을 도울 장로를 세우라고 권했습니다. 본 절은 ‘거짓 교사들의 정체’(10)와 ‘영향력’(11)에 관해서 서술합니다.

⑴ 할례파 거짓 교사(10)

본 절에서는 그레데 섬 교회에 거짓 교사 무리가 형성된 배경과 상황을 말합니다. 교회 안에 외부에서 들어온 유대인들의 영향을 받아서 헬례를 주장하고 불필요한 논쟁을 늘어놓으면서 복음이 가르침과 권위에 흠을 내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10)이라고, 세 단어를 특별히 사용하여 그들의 정체를 밝힙니다. 첫째로 거짓 교사들은 ‘불순종’하는 자들입니다. 6절에서 장로들은 순종하는 자이여야 했지만, 그들은 진리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고 어리석은 변론과 논쟁에 치우친 자들입니다(3:9). 장로들에 관련하여 사용된 용어가 본 절에도 나타납니다(참조. 딤전 1:9). 두 번째는, 거짓 교사들은 ‘헛된 말’을 하는 자들입니다. 유대인의 신화나 족보, 율법에 대한 논쟁에 몰두하여 의미 없는 말을 지껄이는 자들입니다(1:14; 3:9; 참조. 딤전 1:4-7;4:7; 딤후 4:4). 그들은 거짓 교리로 성도들을 미혹하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속이는 자’들입니다(참조. 갈 6:3).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정체를 밝히고 유대인 중에 거짓 교사들이 많음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바울이 디도를 그레데 섬에 남겨놓은 이유는 거짓 교사들을 막으란 것입니다. 그들은 주로 유대교에서 개종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할례를 받은 것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우월성을 내세였습니다. 복음에 아직 어린 이방인 성도들에게 율법이 포함된 기독교 거짓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사역자와는 달리 그들의 관심사는 영혼이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사사로운 이익이었습니다. 탐욕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의 가르치지 않고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허망한 이론들을 만들어 사람들을 속여 잘못된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모두 헛된 말이었고, 오히려 공허한 말을 만들어 사람들을 속이고 순수한 믿음을 망쳤습니다. 그들의 중심은 바른 진리가 아니라 사람들을 속여 자신의 배만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보다 악한 행동을 합니다. 더 나가서 행복한 가정을 망가뜨렸습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교회 존재를 위협하고 파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⑵ 거짓 교사들의 영향(11)

이제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영향에 대해 설명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고, 교회 안에서 거짓된 가르침을 가르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디도에게 ‘입을 막으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문자적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다’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거짓 교사들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권하는 바울의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다른 가르침이 있다고 용납하지 말고, 단호하게 더 이상 전하지 못하도록 기회를 뺏으라는 뜻입니다.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11b)은 거짓 교사들의 영향력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마땅치 아니한 것’은 가르치지 말아야 하는 교훈을 의미합니다. 이곳에서 ‘가정들은’이란 성도의 가정들을 뜻할 수 있고 가정 교회들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 교회는 자기 집을 예배 장소로 제공하는 부유한 성도의 집에서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가정 교회의 형태이었습니다(몬 1:2). 그들의 의도는 ‘더러운 이득’인데, 가르치는 자가 탐욕 때문에 합당하지 않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참조. 딤전 6:5; 벧후 2:3). 거짓 교사들은 그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하여 가르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침으로 교화 성도들을 혼란케 하였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이미 그 마음속에 세속화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돈과 권력과 성적인 범죄가 따릅니다. 이것들이 이단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이러한 거짓 주장과 행동으로 가정들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입을 막아야 했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거짓 교사들을 침묵케 하도록 강력하게 경계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본문 메시지는 바리새인 누룩을 조심하라고 경계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시킵니다(마 16:6; 막 8:15). 지도자는 바른 교훈을 가르치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한편,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을 경계하여 건전한 교회를 세워갈 책임이 있음을 명심하게 됩니다. 거짓 교사들의 입을 막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성도들의 믿음을 흔들고, 여러 가정들을 망쳐 놓는 악한 자들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날도 이단들은 무단히 노력을 합니다. 믿는 가정만 찾아다니면서 이단 사설을 전파는 사람들이 있고, 교회의 연약한 점을 들추어 낸 사람도 있습니다. 성도들은 디도처럼 이단들이 우리 교회에 들어서지 못하도록 방어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항상 이단들의 활동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그런 자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엄중한 책망을 권면(12-16)

동서고금으로 거짓 교사들의 특징은 위선적인 사람들입니다. 겉으로는 깨끗한 척하고 더러운 것을 엄격하게 구분한 것처럼 하지만, 그들의 마음과 양심에는 더러움으로 가득합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사사로운 이득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가정과 교회를 파괴하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12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13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14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12-14)

오래전부터 그레데 지역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세속 문화가 주관하고 있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예수님을 닮기보다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그레데 사람들을 더 닮았습니다. 그들은 세속적인 문화를 변화시킬 능력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그 거짓 교사들을 엄중한 책망을 명령하고(12-13a), 책망해야할 이유를 분명하게 밝힙니다(13b-14).

⑴ 그레데 사람의 정체(12-13a)

바울은 자신이 제시한 이유를 더욱 확고히 해 줄 수 있는 증언을 첨가합니다. 그는 ‘그레데 인들은 항상 거짓말 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12)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레데 섬 출신 신인 에피메니메스(Epimenides)의 시에서 그레데인의 사기성과 잔인함, 욕심과 태만 등을 잘 표현하는데, 이런 시가 나올 정도로 그곳의 환경은 하나님 나라와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러므로 거짓 교사들은 복음을 반대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삶은 복음이 요구하는 삶보다는 세속적인 그레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습과 다를 바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리 잘못을 판단한 능력이 없더라도, 그들이 사는 모습이나 행동 그리고 인격을 보면, 이미 그들이 얼마나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서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에피메니메스의 시를 인용하여 자신이 하는 권면에 대해 정당성을 변호합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 ‘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13a)고 권면합니다. 본 절에 언급된 ‘그들’은, 즉 책망의 대상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짓 교사들을 뜻할 수 있고, 거짓 교사들의 영향 아래 있는 그레데 교회 성도들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단락이 거짓 교사에 관한 언급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문맥상으로 보면 그들이 거짓 교사들이라고 보는 견해가 설득력을 더 합니다. 또한 바울은 다른 목회서신에서 거짓 교사들의 회개 가능성을 언급합니다(디모데전서 1:20; 디모데후서 2:24-25). 그런데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영향을 받은 자들을 구별하는 11, 13b-14절의 내용에 따르면 그들을 일반 성도들로 보는 견해 역시 타당성을 지닙니다. 본 절은 ‘그 고소 때문에’로 시작하는데 바울은 인용에 근거하여 가혹한 책망을 정당화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음식이나 절기와 관련된 의식적 규정들이었습니다. 음식을 속된 것과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면서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음식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가진 사람들에게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로마서 14:14)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정말 속된 것과 거룩한 것에 대한 구분을 예수님의 말씀을 판가름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태복음 18:11)고 말씀하셨습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들을 더럽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서 더러운 것들이 나오는 더러운 말과 이론들이 더 더럽게 만듭니다. 이처럼 거짓 교훈의 특징은 말씀에서 주는 진정한 의미 자체보다 말씀에서 파생된 잘못된 가르침을 더 추종하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이것이 마치 자신만의 특권인 것처럼 주장하며, 신령한 진리인 것처럼 가르친 것입니다.

⑵ 엄한 책망을 한 이유(13b-14)

책망할 이유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14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13b-14)라고 서술입니다. 바울은 강력한 권징의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먼저, 엄한 책망은 온전한 믿음을 위한 것입니다(2:1-2). 다음으로 책망은 거짓 교훈에 현혹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는 유대인의 신화를 뜻합니다(디모데전서 1:4). ‘사람들의 명령’은 유대 장로들의 유전에 따르는 의식과 결례의 계명을 뜻합니다(디모데전서 4:3-5). 거짓 교사들들은 그레데 교회에서 유대인의 신화나 족보에 몰두하고 유대인의 유전에 따라 행하도록 미혹하는 일이 많았습니다(1:10,14; 3:9; 참조. 골로새서 2:22; 디모데전서 1:4). 그리하여 바울은 디도에게 그들의 영향력으로부터 교회를 건전하게 보존하도록 엄중히 책망을 권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권징이 사라지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강력한 권징을 명령합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권징의 필요를 가르치셨습니다(마태복음 18:15-20). 권징은 교회를 온전하게 하고 성도들의 신앙을 바로 세우는 한 방편입니다. 건전한 교리에 입각한 권징은 건강한 교회를 위하여 반드시 시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의 위선(15-16)

거짓 사람들의 특징은 ‘빈 깡통이 요란하다.’는 말처럼, 겉으로는 하나님을 가장 많이 아는 것처럼 자랑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선한 일을 합니다. 하지만 생활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모습 속에서 선한 일에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백성(2:14)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15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16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15-16)

거짓 교사들은 외적인 정결에는 노력했지만, 속은 더러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자체만 가지고 더럽고 정결한 것은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 속에서 모든 것이 다 거룩해졌고 정결해졌습니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이중성을 간파하고 그것을 설명해 나갑니다.

⑴ 마음과 양심의 오염(15)

바울은 디도에게 그레데 섬에서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교훈을 막을 뿐 아니라 성도들에게 잘못된 가르침이 오염되지 않도록 지도해야 했습니다. 썩은 이론은 썩은 감자와 같습니다. 썩은 감자는 다른 감자들에게 썩은 물을 전파하여 썩게 만듭니다. 이것은 잘못된 교훈이 다른 성도들을 물들이고 망치게 합니다. 성도들이 물들이지 않도록 과감하게 꾸짖으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의사가 병든 부분을 과감하게 절단해 버리듯이 꾸짖어서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항상 거짓 교사들과 이들을 따르는 사람들은 엄히 꾸짖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더럽히지는 것을 막고, 성도들이 복음의 진리를 잘 따르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⑵ 거짓 교사들의 행위(16)

엄히 꾸짖으므로 인해, 그들과 혹은 성도들이 참된 믿음으로 회복됩니다. 생활이 회복되어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교회 또한 날마다 건강하게 세워져 갔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우월성을 주장하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악한 행동을 합니다. 그들은 실질적으로는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은 아는 사람답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지만, 용납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오염된 진리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방어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바른 진리를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분별력과 지혜를 주셔서 거짓된 가르침에 속지 않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진리의 말씀 안에서 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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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01-01)


살아 있는 교회에 대한 두 가지

디도서 1장 1-9절


우리나라 속담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서로 협력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협력 공동체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나 몇몇 사람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구성원 모두가 한 마음으로 교회의 목적을 향해 협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도에게 여러 장로들을 세우고 그들과 합력해서 일을 처리해 나갈 것을 부탁합니다.

 

사도 바울은 부족한 일을 바로 잡고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도록 디도를 그레데에 두고 떠났습니다. 서두에서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둔 이유를 설명하고, 장로이자 감독인 목회자의 자격에 관하여 권면합니다. 그 목적을 두 가지로 말하는데, 남은 일을 정리하는 것과 장로를 세우는 문제에 대해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이 두 목적을 중심으로 디도서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사말(1-4)

교회가 많아지고 교회 안에서 사역을 위해 참으로 분주합니다. 그런데도 교회를 향한 실망과 비난의 목소리도 높아집니다. 세상은 교회를 행해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겠습니까? 아니 성경은 교회가 교회다워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하겠습니까? 교회는 지도자가 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바울은 그레데에서 사역한 디도에게 서신을 통해 교회 바른 지도자들에 대해 권고하고 있습니다.

1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3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4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1-4)

사도 바울은 그레데 섬에 디도를 두고 온 뒤, 그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레데 섬에서 사역을 해야 하는 디도가 좀 더 효과적으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디도서의 특징은 바울 서신의 서두에서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감사와 기도의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본문은 서신의 발신자(1-3), 수신자(4a) 그리고 첫 인사(4b)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⑴ 발신자 바울(1-3)

먼저 발신자 바울은 편지를 쓰고 있는 디도에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소개합니다. 자신의 사역은 선택 받은 하나님 백성들의 영생의 소망에 기초한 믿음과 지식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① 하나님의 종(1a)

‘하나님의 종’이라 칭호는 본 절에 특별히 나타납니다. 이 칭호는 구약에서 아브라함(시편 105:42), 모세(민수기 12:7), 다윗(사무엘하 7:8-9) 그리고 선지자들(예레미야 7:25; 다니엘 6:20; 아모스 3:7)에게 사용되는데, 하나님의 권위를 함축하는 표현입니다(민수기 12:5-8; 이사야 42:1-9). 바울은 이 칭호를 사용함으로 하나님의 종으로서 자신의 권위를 나타냅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사도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고린도전서 1:1; 고린도후서 1:1; 에베소서 1:1; 골로새서 1:1; 디모데전서 1:1; 디모데후서 1:1).

②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1:1b-3)

바울은 자신의 사도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첫째는 바울의 사도직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믿음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구약의 이스라엘을 계승하는 하나님의 백성인데,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입니다(디모데후서 2:10; 디도서 2:14). 이 구절에서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과 믿음에 근거한 것임을 시사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을 믿음으로 인도하는 것이 사도로서 자신의 사명임을 밝힙니다(참조. 고린도전서 1:17). 둘째, 그의 사도권은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위한 것입니다. ‘진리의 지식’은 그 진리를 아는 자들을 경건한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함은 목회서신의 중심주제 중 하나입니다. ‘진리의 지식’은 그 진리를 아는 자들을 경건한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함은 목회서신의 중심주제 중 하나입니다(디모데전서 2:2; 3:16; 4:7,8; 6:3,5,6,11; 디모데후서 3:5). 바울은 성도들로 하여금 경건한 삶으로 이끄는 진리의 지식을 얻게 하는 것이 그의 사도직의 한 목적이라고 밝힙니다(참조. 디모데전서 2:4). 셋째, 그의 사도직은 영생의 소망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영생을 약속하셨고 그것은 그의 아들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데, 바울은 이 소망을 선포하는 것이 사도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임을 언급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진리의 지식과 경건을 밀접하게 연결시켜 언급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인생관과 세계관의 변화로 인한 삶의 변화를 동반합니다. 그리하여 그 지식을 소유한 자들에게 경건의 능력을 부여합니다(디모데후서 3:5).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그의 기뻐하시는 일에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합니다.

⑵ 수신자 디도(4a)

바울은 수신자 디도에 대해 소개합니다. 디도를 향해 ‘참 아들’이라 부릅니다. ‘참아들’은 합법적인 아들의 의미인데 바울은 특별히 디모데와 디도에게 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참조, 디모데전서 1:2). 그만큼 바울과 디도의 관계가 유난히 각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디도는 바울의 회심 후 예루살렘 방문 때에 바울과 동행하였습니다(갈라디아서 2:1). 바울의 복음 전파를 위한 첫 여정에 동행한 것입니다. 또한 그는 고린도 교회에 가서 바울의 심정으로 사역하였습니다(고린도후서 8:16-17). 그리고 바울의 최후 선교 여행에 동행하던 중 바울의 위임을 받고 그레데 선교 여행에 동행하던 중 바울의 위임을 받고 그레데 섬에 남아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디도서 1:5).

⑶ 첫 인사(4b)

바울이 디도에게 전한 첫 인사의 내용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라고 합니다. ‘은혜’는 당시 헬라인의 인사에 해당하고 ‘평강’은 히브리인의 인사에 해당합니다. 바울은 보편적으로 그의 서신의 사도에서 ‘은혜와 평강’의 인사를 전합니다(로마서 1:7; 고린도전서 1:3; 고린도후서 1:2; 갈라디아서 1:3; 에베소서 1:2; 빌립보서 1:2; 골로새서 1:2; 데살로니가전서 1:1; 데살로니가후서 1:2). 이 구절에는 바울서신의 사도에 일반적으로 나오는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칭호 대신에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라는 칭호가 특별히 나타납니다. ‘구주’라는 칭호는 디도서에서 구원의 교리와 관련하여 거듭 나오는데 예수께서 구세주이심을 강조합니다(2:10,13; 3:4,6). 이것으로 살펴보아서, 그레데 교회에 복음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유대인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또 성장하키기 위해 목회자들을 통해 도와주십니다. 그것은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러한 사역은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목회자들과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협력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바르게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를 세우는 사역(5-9)

하나님의 교회에서 평신도 지도자 즉, 장로님이나 권사님의 기준은 교회의 성장에 기여도나 재력 또는 사회적 명망 등을 중요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직분은 감투나 명예직으로 전락되고 맙니다. 바울은 디도가 그레데 교회에 장로들을 세우는 일에서 장로의 자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5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6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찌라 7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8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9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5-9)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풀려난 후에 디도와 더불어 그레데 섬에 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레데 섬을 떠나면서 디도를 남겨두어 목회사역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1:5). 후일에 바울은 디도에게 편지를 보내 목회와 관련된 여러 가지 권면을 하였습니다. 본문은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 및 감독의 자격에 관한 권면입니다. 그 내용은 장로의 자격에 대한 권면(1:5-6), 감독의 자격에 관한 권면(1:7-9)으로 구성됩니다.

⑴ 디도의 사명(5a)

디도가 그레데에 존재한 이유는 첫째는 부족한 일, 즉 거짓 가르침을 바로 잡는 일입니다. 그의 사역은 집중적으로 1장 10절에서 3장 11절까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바른 가르침을 전할 장로들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1:5-9). 경건한 백성을 날은 진리의 지식과 그것을 전할 온전한 지도자가 하나님의 교회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⑵ 장로의 자격(5b-6)

먼저 디도에게 맡겨진 중요한 사역 중 하나는 각 성의 장로들, 즉 지도자들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본문에서 지도자의 자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바울은 디도에게 장차 세워야 할 장로의 자격에 대한 권면입니다. 6절은 장로의 자격에 관한 서술입니다. ‘책망할 것이 없고’라는 것은 장로의 자격에 대한 총체적인 표현인데, ‘고소당해 비난받을 일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이 덕목은 이어서 언급되는 감독의 자격에서도 우선적으로 언급됩니다(1:7; 참조, 딤전 3:2). 바울은 다음으로 가정의 범주에서 장로의 자격을 말합니다. 장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고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한다고 언급합니다(딤전 3:2,4-5). 교회의 지도자인 목회자는 먼저 가정의 지도자로서 신앙의 본을 보이고 목회자는 먼저 가정의 지도자로서 신앙의 본을 보이고 신실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또한 바울의 권면에 의하면 장로는 방탕하거나 혹은 불순종한다는 비난을 받지 않는 자이어야 합니다. ‘방탕’이란 용어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행동을 포괄하는 문맥에서 나타납니다(엡 5:18; 벧전 4:4). ‘불순종하는’이란 형용사는 잘못된 교훈과 관련하여 사용됩니다(딤전 1:9; 딛 1:10).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방탕하거나 진리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를 장로로 세우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⑶ 감독의 자격(7-9)

먼저,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 책망할 것이 없는 자이어야 합니다. ‘청지기’는 집을 배경으로 하는 단어인데, ‘집을 관리하는 자’를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교회를 하나님의 집으로, 지도자를 그 집을 세우는 자로 묘사합니다(고린도전서 3:9c-11). 5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권면은 감독의 자격에 대한 총체적인 표현입니다. 이어서 언급되는 내용은 감독으로 피해야 할 부정적인 자질과 추구해야 할 긍정적인 자질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7절에 감독이 피해야 할 자질로 완고함, 성마름, 술을 탐닉함, 난폭함, 부정한 이득을 탐함 등이 나열됩니다. ‘더러운 이득을 탐하는 것’은 다음 단락에서 거짓 교사들의 특징으로 언급됩니다(1:11). 8절은 추구해야 할 자질로 나그네를 대접함, 선을 좋아함, 자제함, 의로움, 거룩함, 절제함을 언급합니다. ‘나그네를 대접함’은 특별히 복음을 전하며 순회하는 복음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딤전 3:2; 참조. 요삼 1:9-10). ‘신중하며’는 건전한 마음으로 자제하며 근신하는 행동을 뜻합니다. 바울은 감독뿐 아니라 그레데 교회 성도들에게 전반적으로 이 덕목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2:2,5,6), 9절에서 감독은 신뢰할 만한 말씀의 교훈대로 행하여야 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리고 그 까닭을 건전한 교훈으로 권면하고 대적하는 자들을 책망하기 위함이 전파자들을 환대하는 것이라고 밝힙니다. 바울이 가정의 범주에서 목회자의 자격을 언급한 것은 주목한 만합니다. 그는 디모데전서에서 목회자는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리하여 ‘만약 어떤 자가 자기 가정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합니다(디모데전서 3:4-5). 목회자는 우선 한 가정의 신앙 리더로서 경건한 신앙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디도에게 장로들을 세우는 이유는 장로들과 협력하여 교회 안에 잘못된 사역을 막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잘못을 막는 사람들은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움을 받는 장로들은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모범을 보이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장로가 되기 위해서는 내면적인 성품과 외면적인 생활(특히 가정생활)이 일치해야 하며,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교회는 바른 지도자와 그 지도자가 전하는 바른 교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상황일 때,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 세대에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안팎의 존경을 받고, 내외적인 자격을 갖춘 지도자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바른 가르침이 있을 때, 교회로서의 바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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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개론


이 서신 전체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실질적인 지침을 전하고, 디도에게 정직하게 인도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신자들에게 복음 메시지를 왜곡할 수 있는 거짓 가르침을 물리치라고 촉구하는 목회자의 마음을 목격합니다. 바울의 말은 그레데에 있는 신자들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신앙 공동체에서 비슷한 도전과 씨름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디도서의 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감옥에 투옥된 후에, 출옥이 된 바울은 지중해 가운데 있는 그레데 섬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갔습니다. 사역을 마치고 그곳을 디도에게 남아서 사역하도록 했습니다. 본 서신은 헬라어 원전에서는 ‘프로스 티톤(προς Τιτον)’으로, 한국 성경들에서는 디도에게 전달될 편지라는 의미로 수신자 ‘디도’의 이름을 따라서 ‘디도서’라고 부릅니다.

 

저자와 기록

시기 본 서의 저자는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이라는 사실은 본서의 내적 증거(1:1-4)와 디도에 대한 바울의 친밀성(고린도후서 2:13; 8:23) 및 본서에 나타난 바울적 문체와 사상으로 보아 바울 저자가 분명합니다.

 

수신자 디도

본서의 서두에서 ‘디도’는 헬라인으로 그 이름은 ‘공경하다’란 뜨입니다(갈라디아서 2:2). 그의 인적사항은 거의 알 수 없는데, 그의 사역과 관련된 기록을 바울 서신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디도를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로 소개한 점으로 보아, 디도는 사도 바울의 전도를 받고 신앙을 갖게 된 듯합니다. 디도는 두 가지 면에서, 초대 기독교사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 한 가지는 예루살렘 총회에 바울과 함께 참석했다는 점이며(사도행전 15:2; 갈라디아서 2:1,3), 또 한 가지는 고린도 교회의 어려운 문제들을 수습해 주었다는 점입니다(고린도후서 7:6-7; 8:6, 16-23). 디도는 엄밀히 말해 현대적 의미의 ‘목회자들(Pastors)’과는 다릅니다. 디도는 사도 바울이 특수한 임무를 주어 파송한 사도의 대행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 특수한 임무란 초대 사도 시대에만 해당되는 사역으로서, 여기저기 다니며 이미 사도 바울이 시작했던 교회 개척의 일을 진전시키며, 그 결과를 사도에게 보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디도서의 메시지

본 디도서는 그레데 교회의 특별한 목회 상황을 반영한 서신입니다. 그래서 본 서신을 ‘목회서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서신의 주요 내용은 그레데 교회의 거짓 교사들과 그레데의 무질서한 사회 상황을 배경으로 따라서 본 서신은 그레데 교회의 상황에 어울리는 실제적인 권면이 주요 내용을 이룹니다. 디도서의 핵심 메시지는 바른 지도자를 세우는 것, 거짓 교사들에 관한 경계, 경건한 생활과 진리의 지식과 관련된 것입니다.

⑴ 바른 지도자상

디도에게 위임된 중요한 일은 각 성에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즉 장로 혹은 감독의 자격 요건에 관하여 자세하게 언급합니다. 바울 서신 중에서 디도서와 디모데전서는 지도자의 자질에 관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합니다. 두 서신은 목회적인 관점에서 올바른 지도자상에 대한 내용을 제시합니다. 디도서는 특히 그레데 교회의 상황을 반영하여 지도자의 도덕적인 자질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지도자는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지켜 행함으로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지도자의 도덕적 불감증이 팽배해지고 그 권위가 무너진 한국교회 현실에서 디도서가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⑵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계

그레데 교회는 유대적인 거짓 교사들, 할례파에 속한 자들로 인하여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특히 그들은 부도덕한 이익을 취하려고 가르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유대인의 족보 이야기와 율법 논쟁에 착념하여 분열을 일으키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이에 바울은 디도에게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으로부터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도록 권면합니다. 그들이 가르치지 못하도록 제재하고 강하게 책망할 것을 권면합니다. 디도서는 거짓 교사들의 교훈으로부터 교회를 보존하고 성도들을 지키는 것이 지도자들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임을 깨닫게 합니다.

⑶ 진리의 지식과 경건한 생활

디도서는 진리의 지식과 경건한 생활을 불가분리적으로 밀접하게 관련시켜 언급합니다. 바울은 그의 사도직에 관한 서술에서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언급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경건한 삶을 동반한다고 말합니다. 디도서에서 그의 실제적인 권면은 교리적인 진술에 근거함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리하여 본 서신은 건전한 교리가 경건한 생활의 밑바탕이 되고 경건한 신앙생활은 건전한 믿음의 교리로부터 출발하게 됨을 강조합니다.

 

디도서 개요

1:1-4 인사

1:5-9 로에 관한 훈령

1:10-16 이단에 1차 대한 경고

2:1-10 의무의 목록(교회 질서)

1-3 늙은 사람

4-8 젊은 사람

9-10 

2:11-3:8 그스도인의 생활을 위한 교훈

11-15 고백으로써 확인

3:1-2 개별적 권고(사회속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3-7 세례식 고백

강조된 권고

3:9-11 이단자들에 대한 2차 경고

3:12-15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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