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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13-02)


선한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개혁하는 느헤미야

느헤미야 13장 15-31절


 

신앙 공동체는 정체성과 관계성의 균형 속에서 살아갑니다. 정체성만 강조하여 세상과의 관계를 단절해서도 안 되고, 관계성에 치중하다가 정체성이 약화 되어서도 안 됩니다. 역사적 상황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집니다. 느헤미야 시대는 공동체의 신앙 정체성을 명확히 세워야 했습니다.

 

  • 세 번째 개혁은 안식일 준수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예루살렘 외곽에 사는 유대인들이 성내로 들어와 물건을 매매하는 것을 발견하고 안식일에는 모든 상거래를 금지합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혼합결혼과 관계됩니다. 느헤미야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통혼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 일에 참여한 엘리아십의 손자 ‘하나’를 추방합니다.

 

느헤미야의 안식일 개혁(15-22)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안식을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을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강력한 불신의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조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안식일에 대한 준수사항을 무시하여 멸망을 자초했던 것을 기억하고 순종해 나가야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15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16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예루살렘에서도 유다 자손에게 팔기로 17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18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 하고 19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갈 때에 내가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나를 따르는 종자 몇을 성문마다 세워 안식일에는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20장사꾼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 번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자므로 21내가 그들에게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후부터는 안식일에 그들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22내가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15-22)

 

느헤미야는 성전을 전화하고 레위인의 사역을 회복시켰습니다. 그 이후에는 안식일 준수를 위한 개혁도 진행했습니다. 이 단락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추진했던 세 번째 개혁인 유다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안식일 준수에 대한 내용을 다룹니다.

 

(1) 백성들이 안식일 계명을 어김(15-16)

 

안식일은 계명 중에 핵심적인 계명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온 느헤미야는 유대 백성들이 안식일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을 발견합니다(15). 안식일에 노동하거나 물건을 사고파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진정으로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안식일이 지켜야 했습니다. 안식일에 일하고 매매하는 일은 분명히 사라져야 할 악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이전에 했던 맹세를 어기는 행동입니다(참조 10:31). 백성들은 안식일에 노동하고 상거래를 함으로 안식일을 한 주간의 다른 날과 동일하게 여긴 것입니다(15-16).

예컨대 그들은 술틀을 밟고, 곡식단과 포도주와 여러 가지 과일들을 지고 예루살렘에 들어와 그것들을 판매했습니다. 심지어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이 상주하며 유다 백성들과 상거래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2) 느헤미야가 지도자들을 책망함(17-18)

 

느헤미야는 백성과 지도자들에게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알립니다(15-17).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안식일 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18; 참조, 예레미야 17:19-27). ‘우리와 이 성에 내린 이 모든 재앙’(18b)은 예루살렘의 파괴, 나라의 멸망과 포로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느헤미야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을 매우 심각하게 여겼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 느헤미야의 조치(19-22)

 

느헤미야는 이어서 안식일 준수를 위한 실제적인 조치를 취합니다(19-22).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안식일에 성문을 닫고 경비를 세워, 안식일에 물건들을 성안으로 들여오지 못하게 합니다(19). 느헤미야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상인들은 성 밖에서 밤을 새웠는데, 성안의 백성들이 밤중에 몰래 물건을 사러 나올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20). 느헤미야는 이 사실을 듣고 강한 어조로 꾸짖고 경고합니다(21a). 느헤미야의 경고는 즉각적으로 효력을 발휘합니다. 본문은 이후 장사꾼들이 다시 안식일에 성안에 들어오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음을 보고합니다(21b).

느헤미야는 추가적인 조치로 레위인들에게 명하여 성문을 지키도록 합니다(22a). 그리고 이전에 성전 곳간을 정화하던 때처럼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드립니다(22b).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신실한 사랑과 자비(헤세드)를 베푸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개혁을 노력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면 개혁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헤미야는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안식일 준수’는 십일조와 더불어 느헤미야가 강조한 대표적인 율법 규정입니다. 안식일 준수에 대한 관심은 이미 유다 멸망 전후에 활동한 예언자들의 메시지에 특별히 강조되어 나타납니다(이사야 56:2; 58:13; 예레미야 17:19-27; 에스겔 20:12,20). 이어 유대인의 증표로 인식됩니다. 느헤미야가 귀환 공동체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안식일 준수를 강조한 것은 이런 배경입니다.

 

이방 여인과의 통혼을 금지함(23-31)

이방인과 결혼은 이스라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일이었습니다. 2세들이 점점 유대인의 언어를 잊어가며 결국에는 민족 정체성을 상실하며 하나님과의 소통 단절을 의미하는 비극적인 일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혼합결혼이 혼합종교가 되고,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은 솔로몬 시대를 떠올리며 그것이 유대 사회의 존립과 직결된 얼마나 중한 죄인지 강조합니다.

 

23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24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25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26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는 많은 나라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그를 범죄하게 하였나니 27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28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29내 하나님이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30내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맡게 하고 31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23-31)

 

느헤미야가 단행한 네 번째, 다섯 번째 개혁은 이방 여인과의 통혼을 금지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엄히 책망하고, 두어 사람은 때리고 머리털을 뽑기까지 합니다.

 

(1) 유다 사람들의 통혼과 느헤미야의 책망(23-25)

 

당시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했던 이전의 맹세(10:30)를 어기고,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삼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의 자녀들이 유다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24). 동족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공동체의 연합과 일체성을 깨뜨리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문제에 단호하게 대처합니다. 그는 이 일에 관련된 백성들을 책망하고 저주할 뿐 아니라 심지어 머리털을 뽑기까지 합니다(25a). 여기에서 ‘머리털을 뽑다.’로 번역된 단어는 ‘수염을 뽑는 행동’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수염을 뽑히는 것은 대단히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졌습니다(참조, 사무엘하 10:4; 이사야 50:6).

 

(2) 솔로몬 왕의 잘못된 결혼 예시(26-27)

 

느헤미야는 그들로 하여금 다시는 이런 죄를 범치 않겠노라고 하나님 앞에 맹세하게 합니다(25b). 이어서 그는 이 일의 심각성을 보여주기 위해 솔로몬 왕의 타락을 실례로 제시합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역사에서 교훈을 찾도록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왕이었지만, 정략결혼을 통해 맞아들인 이방 여인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했습니다(26b). 솔로몬의 타락은 나라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결국 이스라엘이 분열되는 불행한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느헤미야는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행동을 ‘큰 악’이요 ‘하나님께 범죄하는 행동’으로 규정합니다(27).

‘범죄하다’로 번역한 단어는 언약적인 용어로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행동’을 가리킵니다. 느헤미야가 이방 여인과의 통혼을 ‘언약적인 범죄’로 간주했다는 것은 귀환 공동체가 처한 위기를 방증합니다. 이방 여인과의 통혼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본 것은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라는 공동체의 정체성과 관계됩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그 땅의 백성’과 ‘이방 지역의 주민들’은 제의적으로 부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정한 이방 여인과의 결혼은 거룩함을 침해하는 행동이고, 성전을 오염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임재가 공동체로부터 떠나게 되어 민족의 멸망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3) 제사장 하나를 추방함(28)

 

느헤미야를 더욱 분노하게 한 것은 본이 되어야 할 제사장들이 이런 일에 앞장섰다는 것입니다(28).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한 명이 호론 사람 산발랏의 딸을 아내로 취한 것입니다. 산발랏은 암몬 사람 도비야와 함께 성벽 재건을 방해한 유다의 대적입니다(참조 2:10, 19; 4;1,7; 6:1-2,5,12,14). 산발랏과 도비야는 지속적으로 유다 공동체를 와해하려는 시도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공격이 얼마나 집요하고, 그들의 음모가 얼마나 교활한 방식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느헤미야는 곧바로 엘리아십의 손자에게서 제사장 자격을 박탈하고 공동체에서 추방합니다(28b).

 

(4) 기도(29-31)

 

그들을 하나님의 심판에 맡깁니다(29). 여기서 ‘그들’은 28절에 언급된 인물들 전체를 가리키는데, 그렇다면 할아버지 엘리아십과 아버지 요야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느헤미야가 이들을 정죄한 법적인 근거는 제사장 직분에 대한 규정입니다(레위기 21:7-14). 이 규정에 의하면, 대제사장은 자기 백성 중에서 처녀를 아내로 취해야 합니다(레위기 21:13-15).

대제사장의 혈통인 엘리아십의 손자는 이 쥬정을 지켜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것입니다. 엘리아십의 손자의 행동은 제사장 직분을 더럽힌 행동이었기에, 별도의 정결의식이 필요했습니다(30a). 그 후에야 비로소 느헤미야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직무에 복귀시킵니다(30b). 느헤미야는 끝으로 백성들에게 지시하여 번제단에 쓸 나무와 곡식의 첫 열매를 성전에 가져오도록 합니다(31a; 참조 10-13). 이것은 성전 제의와 운영에 대한 느헤미야의 관심을 보여줍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짤막한 기도로 회고록을 마칩니다(31b). 느헤미야 회고록에 자주 등장하는 기억 문구(remamber formula)는 사건의 종결을 표시하는 기능을 합니다(5:19; 6:14; 13:29). 느헤미야의 기도는 순간순간 하나님을 의지했던 느헤미야의 경건한 신앙을 보여즙니다. 율법(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기도)이 느헤미야 개혁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느헤미야서의 종결은 에스라처럼 열려 있는 형식(open-ended conclusion)을 취합니다. 다시 말하면, 개혁의 진행만 있고 끝은 없습니다. 이것은 귀환 공동체가 앞으로도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해나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종교개혁자의 표어처럼 개혁된 공동체(교회)는 계속해서 개혁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 각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춰보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개혁자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에베소서 4:13).


철저하고 과감한 결단 없이는 결코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경계와 울타리가 명확해야 공동체의 정체성이 분명해집니다. 느헤미야의 개혁 조치는 공동체의 경계와 울타리를 명확히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진리의 경계선이 모호해진 시대에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신앙의 진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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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13-01)


뒷걸음질 친 개혁을 바로잡은 느헤미야

느헤미야 13장 1-14절


 

‘관성의 법칙’이 있습니다. 해마다 새로운 뱐화를 다짐하지만 옛 습관으로 돌아가려는 힘입니다. 느헤미야가 1차 임기를 마치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유다 공동체는 과거의 습관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뒤로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단호한 개혁 조치를 시행합니다.

 

  • 느헤미야 13장은 느헤미야의 추가적인 개혁 다섯 가지를 소개합니다. 지금까지 느헤미야는 12년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성벽을 재건하고 공동체 건설에 헌신했습니다. 잠시 페르시아를 다녀온 후 두 번째 개혁을 추진합니다. 첫 번째 개혁(느헤미야 5장)이 주로 경제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두 번째 개혁은 공동체 내의 다양한 문제를 다룹니다.

 

공동체의 정체성 확립(1-9)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문제를 보고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이 중단되면 언제든 이방인과 같이 되어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성경 묵상은 자신의 영혼이 살고 죽는 것과 관련된 중요한 일이며 결코 신앙의 장식품이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잘못되어 가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혀서 잘못됨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1그 날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2이는 그들이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3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느니라 4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의 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5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만들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6그 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느니라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이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7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만든 악한 일을 안지라 8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9명령하여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전의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놓았느니라(1-9)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 재위 20년에서 32년까지 12년 동안 유다 총독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에서 활동했습니다. 12년이 지나자 느헤미야는 자신이 이전에 아닥사스다 왕에게 약속한 대로(참조 2;6)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갔다가, 이후 왕의 허락을 받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6).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 머문 기간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약 2-3년 정도 걸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 섞인 무리를 분리함(1-3)

 

다시 돌아온 느헤미야는 자신의 부재 기간 중 공동체 안에 우려스러운 사건들이 발생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공동체’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사건입니다(참조, 에스라 9:2). 이에 느헤미야는 곧바로 자신의 두 번째 임기의 개혁을 추진해 나갑니다. 그 첫 번째는 귀환 공동체로부터 섞인 무리를 분리하는 일입니다(1-3).

‘그 날’(1)은 불특정한 시점을 가리키는데, 그 전 문맥의 ‘그 날’(12:44)과 관계되기보다, 13:4-7에 나와 있는 대로, 느헤미야가 다시 유다 총독으로 귀환한 이후의 어느 시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불러 모아 모세의 율법을 듣게 합니다. 원문은 ‘그날 백성의 귀에 모세의 책이 낭독되었다’로 되어 있어, 이 모임을 주도한 사람이 누구인지 명시하지 않고 있지만, 정황상 느헤미야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낭독한 본문은 이방 민족과의 관계를 다루는 신명기 23:3-5로, 이 규정에 의하면,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신명기 문맥에서 ‘하나님의 총회’는 제의적 모임(cultic congregation)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총회에서 암몬과 모압 사람을 배제하는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행진을 막했기 때문입니다(민수기 22-25장). 낭독한 율법의 말씀을 듣자 그 자리에 참석한 백성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섞인 무리’를 회중으로부터 분리합니다(3).

여기에서 ‘섞인 무리’는 당시 유다인들과 함께 거주하는 주변 국가 사람들이거나 이방인과의 결혼을 통해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참조. 에스라 9:2). ‘이스라엘 가운데서 섞인 무리를 분리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아마도 이방인들을 ‘거룩한 성회’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한 것으로 추축됩니다. 이것은 느헤미야의 관심이 귀환 공동체를 거룩한 공동체로 세우는 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귀환 공동체의 정체성 확립은 당시 느헤미야에게 절박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2) 성전에서 도비야의 기물을 제거함(4-9)

 

이후 느헤미야는 본격적으로 공동체 개혁 작업에 착수합니다. 느헤미야가 발견한 또 하나의 문제는 대제사장 엘리아심의 잘못으로 인한 성전의 오염입니다(4-7). 당시 제사장 엘리아십이 친밀한 관계를 맺은 도비야를 위해 성전 안에 큰 방(곳간)을 마련해 둔 것입니다(4b,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느헤미야서에서 도비야는 암몬 사람으로 성벽 재건 공사를 방해한 대표적 인물입니다(느헤미야 2:10-19; 4:3; 6:1,12,17,19), 그렇지만 도비야는 당시 몇몇 유다 지도자들과 결혼 관계를 통해서 유대를 맺었던 것으로 보입니다(6:17-18).

느헤미야가 잠시 페르시아로 돌아간 사이 암몬 사람 도비야가 성전의 한 ‘방’에 살면서(7), 성전 ‘곳간’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입니다(5). 4-5절에서 ‘방’으로 번역된 단어는 7절의 ‘방’과 달리 ‘창고’의 의미로 쓰입니다(참조. 에스라 8:29; 느헤미야 10:37-39). 이 방은 백성들이 바친 제물, 십일조, 거제물들을 저장해두는 장소, 즉 성전 곳간입니다(4-5). 아마도 도비야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 방을 쓰고 있었고, 엘리아십은 그를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레위인에 대한 배려(십일조)(10-14)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예배가 들어서야 할 마음이나 공동체에 하나님께서 주인 되셔서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것들이 자리하면, 도비야 같은 것, 세상 것들이 자리를 잡기 마련입니다. 도비야가 앉아 있다면 어서 비우고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에 거룩함을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10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11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12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13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창고지기로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을 버금으로 삼았나니 이는 그들이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 14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10-14)

 

느헤미야의 두 번째 개혁은 제의 종사자의 처우 개선에 대한 것입니다. 십일조가 제대로 겉히지 않아 레위인들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흩어졌습니다. 성전 관리와 제사가 소홀해졌습니다. 느헤미야는 지도자들을 꾸짖고 십일조를 다시 수납했습니다.

 

(1) 느헤미야의 책망(10-11)

 

느헤미야는 곧바로 도비야가 어떻게 성전 곳간 안에서 거주할 수 있었는지 조사에 착수합니다(10a). 그 결과 느헤미야는 백성들이 레위인들에게 돌아갈 십일조와 거제물들을 내지 않아 성전 곳간이 비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당연히 성전에 거주해야 할 성전 종사자들이 성전에 머물 수 없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때문에 레위인들과 성전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농사를 지어야만 했습니다(10b). 여기에 대해 느헤미야는 관리들(민장들)을 불러 그들이 해야 할 책임(성전 운영)을 다하지 못한 것을 꾸짖습니다(11a). 이후 백성들이 가져온 곡식, 포도주, 거름의 십일조가 다시 곳간에 채워지게 됩니다(12). 느헤미야서는 십일조에 대한 규정을 특별히 강조합니다(참조. 12:44-47). 그 이유는 예루살렘 성전 제의가 올바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레위인을 비롯한 제의 종사자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말라기 선지자가 선포했던 메시지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참조. 말라기 3:8-10). 느헤미야는 이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 일차적으로 백성들을 올바로 지도하지 못한 관리들의 책임을 묻습니다.

그들은 얼마 전에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던 사람들입니다(참조, 느헤미야 9:38; 10:14-29,35,37,39; 특히 39b, ‘우리가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지도자들의 임무 태만을 책망한 후 느헤미야는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구체적인 조치를 취합니다. 먼저 레위인들을 불러 모아 자신들의 위치(성전의 일)로 돌아가도록 합니다(11b). 네 사람을 지명하여 백성들이 내는 십일조를 감독하도록 합니다.

 

(2) 레위인들에 대한 지원(12-14)

 

여기에서 느헤미야는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하여 투명성을 기하고자 합니다. 본문은 느헤미야가 이들을 세운 이유를 ‘그들이 충직한 자로 인정받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13b). ‘충직한’으로 번역된 단어는 신실함, 충성스러움의 의미를 지닙니다(참조, 민수기 12:7). 이들의 직무는 백성들에게서 거두어들인 곡식과 십일조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분배하는 일입니다(13c). 끝으로 느헤미야는 기도하면서 이 문제를 하나님께 맡깁니다(14a). 느헤미야가 잊지 말아달라(‘도말하지 마옵소서’)고 한 ‘선한 일’은 ‘하나님께 대한 변치 않는 충성과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결국, 느헤미야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성전에 대한 관심으로, 성전에 대한 관심은 하나님의 종들(제의 종사자들)에 대한 배려로 표현된 것입니다.


결심이 곧 변화로 자리 잡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를 바라지 않거나 과거의 습성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장애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의 관행을 바꾸기 더욱 힘든 것은 문화의 문제이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끈기와 인내로 오래 순종할 때 변화가 자리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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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12-02)


성벽 봉헌 축제를 드린 이스라엘

느헤미야 12장 27-47절


 

느헤미야 사역의 절정입니다. 모든 성벽 재건 과정을 전부 마무리하고, 성벽 봉헌식이 거행됩니다. 고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하던 때부터 시작된 길고 험난한 과정을 마무리하는 이 축제는, 그간의 피로를 풀어내고 희망의 미래를 여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모으는 한마당이었습니다.

 

  • 본문은 느헤미야가 에스라와 함께 성벽을 봉헌하는 장면으로 내러티브상 성벽 재건의 완공을 보도하는 7:1-3과 연결됩니다. 느헤미야서 본문은 성벽 봉헌을 거의 성전 봉헌에 버금가는 외식으로 소개하는데, 이 일은 고레스 칙령이 명령한 일(하나님의 집 재건)이 드디어 완성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회복된 공동체는 한마음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성벽 봉헌의 준비(27-30)

성벽 봉헌은 성전 봉헌에 이은 도 하나의 큰 사건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성전 봉헌을 완성하는 일이었습니다. 봉헌식을 위해 각처에서 레위인들과 노래하는 자들을 예루살렘에 모았습니다. 제자장과 레위인들은 몸을 정결케 하고 백성과 성문과 성도 정결케 했습니다. 이제 이 성전을 통해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오고, 침묵하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며,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될 것을 믿고 확신하는 찬양이었습니다. 이것이 성도가 기뻐할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27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 28이에 노래하는 자들이 예루살렘 사방 들과 느도바 사람의 마을에서 모여들고 29또 벧길갈과 게바와 아스마웻(아스마웨ㅅ) 들에서 모여들었으니 이 노래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예루살렘 사방에 마을들을 이루었음이라 30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니라(27-30)

 

예루살렘 성벽이 완성되자 성벽에 올라 즐겁게 봉헌식을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귀환 공동체가 이룬 과업은 성벽 재건, 거룩한 자손들의 회복, 언약 갱신, 율법에 대한 헌신, 예루살렘 성읍 안으로 거주민들을 이주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할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1) 노래하는 자들을 불러 모음(27-29)

 

바벨론 군대에 의해 주전 587년에 폐허가 된 이래 140여 년 동안 방치된 예루살렘 성읍이 재건되었으니, 귀환 공동체에게 그 감격은 매우 컸을 것입니다.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이 함께함으로 귀환 공동체는 놀라운 일을 이룬 것입니다. 이제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봉헌식 준비 절차를 진행하는데, 이는 노래하는 자들을 불러 모으는 일과 정결 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27-30). 백성들은 곳곳으로 다니며 레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예루살렘으로 데려옵니다(27a). 이는 갖가지 악기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하려는 것입니다. 레위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사방에서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습니다(28-29). ‘그들의 예루살렘 사방들에서 … 모여들었다’(28)는 표현은 레위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의미합니다. 당시 그들이 거주했던 지역은 느도바, 벧길갈, 게바, 아스마웻 등지로 주로 예루살렘 근처 베냐민 지파의 성읍들에 거주했습니다.

 

(2) 정결 의식(30)

 

찬양대가 구성되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봉헌식을 위한 준비로 정결 의식을 치릅니다(30). 그들은 먼저 자신의 몸을 정결하게 한 다음에, 백성, 성문, 성벽을 정결하게 합니다. 정결 의식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 속죄제를 드리거나 물로 씻는 방식이었을 것입니다(참조, 출애굽기 30:18,19; 레위기 8:6; 15:13; 민수기 8:6-7; 19:13,18). 성문이나 성벽을 정결케 하는 이유는 건축 도중 발생했을지 모를 오염을 제거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귀환민들이 예루살렘을 거룩한 도성으로 간주했음을 의미합니다.

 

성벽 밟기와 봉헌 예배(31-43)

기쁨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봉헌식에서 백성이 누린 큰 기쁨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페르시아 왕의 마음을 주장하셨고, 지도자 느헤미야를 감동하셨으며, 대적들의 음모에서 공동체를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쁨도 있습니다.

 

31이에 내가 유다의 방백들을 성벽 위에 오르게 하고 또 감사 찬송하는 자의 큰 무리를 둘로 나누어 성벽 위로 대오를 지어 가게 하였는데 한 무리는 오른쪽으로 분문을 향하여 가게 하니 32그들의 뒤를 따르는 자는 호세야와 유다 지도자의 절반이요 33또 아사랴와 에스라와 므술람과 34유다와 베냐민과 스마야와 예레미야이며 35또 제사장들의 자손 몇 사람이 나팔을 잡았으니 요나단의 아들 스마야의 손자 맛다냐의 증손 미가야의 현손 삭굴의 오대 손 아삽의 육대 손 스가랴와 36그의 형제들인 스마야와 아사렐과 밀랄래와 길랄래와 마애와 느다넬과 유다와 하나니라 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잡았고 학사 에스라가 앞서서 37샘문으로 전진하여 성벽으로 올라가는 곳에 이르러 다윗 성의 층계로 올라가서 다윗의 궁 윗 길에서 동쪽으로 향하여 수문에 이르렀고 38감사 찬송하는 다른 무리는 왼쪽으로 행진하는데 내가 백성의 절반과 더불어 그 뒤를 따라 성벽 위로 가서 화덕 망대 윗 길로 성벽 넓은 곳에 이르고 39에브라임 문 위로 옛문과 어문과 하나넬 망대와 함메아 망대를 지나 양문에 이르러 감옥 문에 멈추매 40이에 감사 찬송하는 두 무리가 하나님의 전에 섰고 또 나와 민장의 절반도 함께 하였고 41제사장 엘리아김과 마아세야와 미냐민과 미가야와 엘료에내와 스가랴와 하나냐는 다 나팔을 잡았고 42또 마아세야와 스마야와 엘르아살과 웃시와 여호하난과 말기야와 엘람과 에셀이 함께 있으며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43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31-43)

 

성벽 봉헌식에서 백성이 누린 큰 기쁨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페르시야를 감동하셨으며, 대적들의 음모에서 공동체를 지켜주셨기에 백성의 헌신과 수고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있는 곳에 백성의 기쁨도 있습니다.

 

(1) 성벽 밟기(31-39)

 

31절부터는 시제가 1인칭으로 바뀌면서 7:5 이후 중단되었던 느헤미야 회고록으로 돌아옵니다. 성벽 봉헌식의 핵심 의식은 성벽 밟기와 봉헌 예배인데, 성벽 밟기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성별을 위한 행진’(consecration procession)의 의미로 행해졌습니다(참조, 시편 48:12-14; 68:24-27). 성벽 밟기는 백성들이 두 그룹으로 나뉘어 행렬을 지어 성벽 위로 행진하는 방식인데, 한 그룹은 오른쪽 방향으로 향하고, 또 한 그룹은 그 반대 방향으로 행진하여 성전에서 만나는 것입니다(40).

학자들에 의하면, 느헤미야 시대 성벽 위의 넓이는 거의 3미터가량으로 성인 두세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첫 번째 행렬은 오른쪽 분문을 향하여 나아가는데(31b), 행렬의 맨 앞에는 성가대가 위치합니다(31; 참조 38). 36b절에 의하면, 이 행렬의 전체 인도자는 학사 에스라입니다. 성가대 뒤를 따르는 무리는 호세아와 유다 지도자 절반입니다(32). 이어서 나팔을 든 제사장 일곱 명이 따르는데(32-35a; 참조 41), 그들은 아사랴, 에스라, 므술람, 유다, 베냐민(민야민), 스마야, 예레미야로 소개됩니다(33-34). 끝으로 스가랴와 악기를 든 여덟 명의 레위인들이 따라갑니다(35b-36a).

본문은 이들의 악기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라고 밝히면서, 이 의식이 다윗의 규례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역대기에 의하면 다윗은 성전 예배의 창시자다).

 

두 번째 행렬은 느헤미야가 인도합니다(38). 본문은 첫 번째 행렬의 인도자인 에스라를 단락의 맨 뒤(36b)에 언급함으로 에스라와 느헤미야 두 사람을 나란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서는 이 두 인물이 귀환 공동체를 거룩한 공동체로 세운 일에 동역했음을 강조합니다. 모세와 아론이 함께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것처럼, 여호수아와 엘르아살이 함께 동역했던 것처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에스라가 함께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 것입니다.

두 번째 행렬도 첫 번째와 같은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행렬의 선두에는 찬양대가 위치합니다(38a). 이어서 두 번째 행렬의 책임자인 느헤미야와 백성의 절반이 따릅니다(38b). 그 뒤로는 나팔을 든 일곱 제사장이 따르고(41), 맨 후미에는 예스라히야(지휘자)와 노래하는 여덟 명의 레위인이 위치합니다(42). 두 행렬에서 각기 일곱 명의 제사장이 나팔을 부는 것은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역대상 15:24).

 

(2) 봉헌 예배(40-43)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행진하던 두 그룹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만나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43). 백성들은 하나님께 많은 예물을 드리며 즐거워합니다. 본문은 43절 한 절에만 ‘즐거움’이라는 단어를 다섯 번이나 언급하며 성읍 재건으로 인한 공동체의 기쁨을 강조하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임한 거룩한 기쁨입니다(43b).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헌신과 예배를 기쁘게 받으신 것입니다.

 

추가적인 규례:제사장과 레위인의 몫(44-47)

제사장과 레위인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고 백성이 그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백성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섬김에 감사하여 즐거이 드렸고, 느헤미야는 날마다 그들의 쓸 것을 채워주었습니다. 율법이 정한 대로 백성이 드린 헌물을 잘 관리하고 분배하도록 사람을 세웁니다.

 

44그 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기 때문이라 45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결례의 일을 힘썼으며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도 그러하여 모두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의 명령을 따라 행하였으니 46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에는 노래하는 자의 지도자가 있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노래와 감사하는 노래를 하였음이며 47스룹바벨 때와 느헤미야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몫을 주되 그들이 성별한 것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또 성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44-47)

 

성벽 봉헌 의식에 이어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몫에 대한 추가 규정이 소개됩니다. 44a절의 ‘그 날’는 성벽 봉헌식이 끝난 이후 불특정한 시점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규례는 성벽 봉헌식이 끝나고 어느 정도 지난 시점에서 귀환 공동체가 행한 추가 조치로 보이며, 주로 백성들이 해야 할 사항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문맥에서 이 단락은 12장과 느헤미야 개혁을 다루는 13장을 연결하는 기능을 합니다. 귀환 공동체는 먼저 사람들을 세워 성전의 보고를 관리하는 일을 맡깁니다(44a).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고대 사회에서 성전은 지금의 중앙은행과 같은 기능을 했기 때문에 이곳을 경비하고 관리하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임명된 관리들을 백성들은 백성들의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거두어 성전 곳간에 보관했다가 후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돌려줍니다.

본문에 이 일이 율법에 정해진 것(44b)임을 밝히면서 귀환 공동체가 철저하게 율법을 좇아 살아가려고 애씀을 보여줍니다. 백성들은 물질로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섬김으로 제의 종사자들로 하여금 성전 운영에 전념하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본문은 백성들이 이것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했음을 밝힙니다(44b). 제의 종사자들은 모두 다윗과 솔로몬의 명령(규례)에 따라 성전의 임무(하나님을 섬기는 일)와 정결 의식(결례의 일)에 종사하였습니다(45b). 여기에서 다윗과 함께 솔로몬을 언급한 것은 다윗이 만든 제도와 규례를 성전 건축 이후 솔로몬이 더욱 공고히 했기 때문입니다(역대하 8:14), 역대기에 의하면, 다윗 시대부터 찬양은 성전 예배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본문은 특별히 노래하는 자(찬양 인도자)의 조상으로 아삽을 언급하고, 그 찬양대의 기원을 다윗 때로 밝힙니다(참조. 역대상 16:4-7).

‘백성들이 성별하여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이 그것을 성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다’(47b)고 하는데, 이것은 십일조를 가리킵니다(참조. 민수기 18장). 이것은 귀환 공동체가 오경에 나와 있는 율법 규정(민수기 18장)대로 제의 종사자들을 섬겼음을 보여줍니다. 본문은 결론적으로 스룹바벨 시대와 느헤미야 시대에 귀환 공동체 내에 안정된 성전 운영이 가능하게 되었음을 알리면서, 그 배경에 온 백성들의 헌신과 제의 종사자들에 대한 배려가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이 단락은 제사장 나라로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제사장 나라는 섬김의 나라입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하나님과 백성을 섬기는 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백성들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물질로 섬김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도록 배려합니다. 본문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거룩한 공동체의 모습임을 보여줍니다.


성벽 봉헌식은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자리입니다. 이 축제에서 유다 백성들은 수동적 관람객이 아니라 적극적 참여자였고, 성벽 봉헌식을 통해 다양성과 통일성, 자유와 질서의 조화를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 또한, 성벽 봉헌식과 같이 적극적으로 참여가 있는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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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12-01)

 


구원의 이야기를 계승하는 이스라엘

느헤미야 12장 1-26절


 

약속의 가나안 땅에 정착한 새로운 언약 백성의 명단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명단으로 마무리됩니다. 레위인과 제사장들은 유다 백성들에게 구원 이야기를 전달해 줌으로써, 언약 공동체의 정체성을 명확히 확립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 이 단락은 제1차 귀환 때부터 에스라-느헤미야 시대에 활동했던 제의 종사자인 제사장과 레위인의 목록으로 각각의 가문과 이름을 소개합니다. 1-9절은 대제사장 예수아 시대의 제사장과 레위인의 이름이고, 12-26절은 예수아의 아들 요야김 이후 시대의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이름입니다. 22-23절은 이들 목록의 출처를 밝힙니다. 본문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귀환 공동체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스룹바벨부터 느헤미야 시대까지 세대 간 연속성을 강조합니다.

 

예수아 시대에 귀환한 제사장 가문과 레위인 명단(1-9)

제사장과 레위인의 주된 임무는 제사를 주관하고 돕는 것입니다. 제사는 신앙 공동체의 영적 건강을 판가름해주는 온도계입니다. 백성은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멀어질 때, 예언자들을 통해 잘못된 예배를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1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이러하니라 제사장들은 스라야와 예레미야와 에스라와 2아마랴와 말룩과 핫두스와 3스가냐와 르훔과 므레못과 4잇도와 긴느도이와 아비야와 5미야민과 마아댜와 빌가와 6스마야와 요야립과 여다야와 7살루와 아목과 힐기야와 여다야니 이상은 예수아 때에 제사장들과 그들의 형제의 지도자들이었느니라 8레위 사람들은 예수아와 빈누이와 갓미엘과 세레뱌와 유다와 맛다냐니 이 맛다냐는 그의 형제와 함께 찬송하는 일을 맡았고 9또 그들의 형제 박부갸와 운노는 직무를 따라 그들의 맞은편에 있으며(1-9)

 

이제 중요한 세 가지 일인 성벽 재건, 공동체 갱신, 성읍 정비가 끝났습니다. 귀환 공동체는 회복된 이스라엘로서 위상을 갖추게 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성벽 봉헌식입니다. 느헤미야서는 성벽 봉헌에 앞서 긴 목록을 제시하는데, 1-26절은 회복된 공동체의 종교 도자들의 명단입니다.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명단으로 스룹바벨 때 시작한 1차 귀환부터 느헤미야 시대의 3차 귀환까지 귀환하여 활동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입니다.

 

(1) 예수아 시대 제사장 가문의 명단(1-7)

 

먼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제사장 가문들의 명단이 소개되는데(1-7), 이들은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귀국했던 사람들로 소개됩니다(1a). 예수아는 1차 귀환 이후의 대제사장으로 학개, 스가랴와 함께 활동했습니다(학개 1:1; 스가랴 3:1). 따라서 여기에 등장하는 이 들은 느헤미야 당시로부터 오래 전에 살았던 인물들입니다. 예수아 시대 활동했던 제사장들은 스라야(1b)를 시작으로 여다야(7a)까지 전체 22명입니다. 이 단락은 ‘이들이 대제사장 예수아 때 활동했던 제사장들과 그들의 형제의 지도자들’임을 언급함으로 끝납니다(7b). ‘제사장들과 그들의 형제의 지도자들’의 의미는 제사장 가문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1차 귀환 때 돌아온 제사장들의 명단을 보도하는 에스라 2:36-39은 가문별로 제사장들의 숫자를 제시합니다(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 973명, 임멜 자손 1,052명, 바스홀 자손 1,247명, 하림 자손 1,017명). 에스라 2장과 비교해 볼 때, 느헤미야 12장 본문은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만 소개하고 있습니다.

역대기 자료에 의하면, 다윗은 제사장들을 24반열로 조직하여 성전 일에 봉사하도록 했습니다(참조. 역대상 24:7-19). 본문의 제사장 명단은 22명으로 두 명의 차이가 나는데, 이것은 아마도 필사하는 과정에서 두 명이 명단에서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2) 예수아 시대 레위 사람들의 명단(8-9)

 

제사장들의 명단에 이어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레위인들의 이름이 소개되는데(8-9), 예수아, 빈누이, 갓미엘, 세레뱌, 유다, 맛다냐, 박부가 운노로 도합 여덟 명입니다. 첫 번째 귀환 때 함께한 레위인들과 그 숫자를 보도하는 에스라 2:40에 의하면, 예수아와 갓미엘이 레위인 74명을 이끌고 귀환했습니다. 그렇지만 본문은 예수아와 갓미엘 외에 추가로 여섯 명을 언급합니다(빈누이, 세레뱌, 유다, 맛다냐, 박부가 운노), 그리고 이들 가운데 맛다냐는 찬송하는 일을 맡았습니다(8b). 그들의 형제 박부가와 운노는 ‘직무를 따라 그들의 맞은편에 섰다’고 하는데(9), 이는 박부갸와 운노가 맛다냐를 도와 함께 성전 음악을 담당했음을 의미합니다. 맛다냐와 박부가는 아삽의 후손으로 느헤미야 시대에 예배를 인도했던 사람들로 소개됩니다(참조. 11:17; 12:25).

 

예수아부터 얏두아까지 대제사장의 명단(10-11)

우리 공동체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선배들의 기도와 헌신과 열정이 오늘 우리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여 이루신 일들을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습니다. 선배들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갖고, 이어 받아야 할 좋은 신앙의 전통을 확인해야 합니다.

 

10예수아는 요야김을 낳고 요야김은 엘리아십을 낳고 엘리아십은 요야다를 낳고 11요야다는 요나단을 낳고 요나단은 얏두아를 낳았느니라(10-11)

 

대제사장의 계보는 귀환 1세대인 예수아부터 시작하여 요야김-엘리 아십-요야다-요나단-얏두아로 이어집니다(10-11). 예수아는 귀환공동체의 첫 번째 대제사장이고 엘리아십은 느헤미야 시대 대제사장입니다(느헤미야 3:1). 따라서 요야김은 1차와 3차 귀환 사이, 예컨대 에스라가 귀환할 당시의 대제사장이었을 것입니다(참조. 1Esdras 9:39-40). 11절에서 요야다에 이어서 나오는 요나단은 주전 410년경 대제사장으로 소개됩니다. 맨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얏두아는 페르시아 제국이 알렉산더 대왕에게 멸망할 당시(주전 331년) 대제사장으로 소개됩니다(유대 고대사 11, 302). 그렇다면 본문의 계보 중 일부는 느헤미야 시대 이후 대제사장들의 이름으로 후대에 추가된 것으로 보입니다.

 

요야김 시대와 그 이후 제사장과 레위인의 족장들(12-26)

레위인의 역할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는 예배 도중에 찬양과 감사를 인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성전 창고를 지키는 일입니다. 활발한 예루살렘 예배 뒤에는 레위인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앞에서 찬양하든, 뒤에서 창고를 지키든 오늘 우리 헌신을 통해 예배는 진행되고 공동체도 유지됩니다.

 

12요야김 때에 제사장, 족장 된 자는 스라야 족속에는 므라야요 예레미야 족속에는 하나냐요 13에스라 족속에는 므술람이요 아마랴 족속에는 여호하난이요 14말루기 족속에는 요나단이요 스바냐 족속에는 요셉이요 15하림 족속에는 아드나요 므라욧 족속에는 헬개요 16잇도 족속에는 스가랴요 긴느돈 족속에는 므술람이요 17아비야 족속에는 시그리요 미냐민 곧 모아댜 족속에는 빌대요 18빌가 족속에는 삼무아요 스마야 족속에는 여호나단이요 19요야립 족속에는 맛드내요 여다야 족속에는 웃시요 20살래 족속에는 갈래요 아목 족속에는 에벨이요 21힐기야 족속에는 하사뱌요 여다야 족속에는 느다넬이었느니라 22엘리아십과 요야다와 요하난과 얏두아 때에 레위 사람의 족장이 모두 책에 기록되었고 바사 왕 다리오 때에 제사장도 책에 기록되었고 23레위 자손의 족장들은 엘리아십의 아들 요하난 때까지 역대지략에 기록되었으며 24레위 족속의 지도자들은 하사뱌와 세레뱌와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라 그들은 그들의 형제의 맞은편에 있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령대로 순서를 따라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25맛다냐와 박부갸와 오바댜와 므술람과 달몬과 악굽은 다 문지기로서 순서대로 문안의 곳간을 파수하였나니 26이상의 모든 사람들은 요사닥의 손자 예수아의 아들 요야김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 때에 있었느니라(12-26)

 

느헤미야 시대에 재건된 예루살렘 성벽 봉헌식에 참여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이 구절에는 봉헌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제사장과 레위 가문의 지도자들과 악사, 문지기들의 명단이 나와 있습니다.

 

(1) 요야김 시대 제사장의 족장들(12-21)

 

예수아 시대의 제사장 목록(1-7)에 이어 요야김 시대 제사장들의 이름이 소개됩니다(12-21). 이들은 귀환 2세대에 활동했던 ‘제사장 족속의 족장들’입니다.

‘족장’으로 번역된 로쉬(ראש)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지파나 족속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며, ‘족속’으로 번역된 아봇은 ‘아브(אב 아버지)’의 복수형으로 ‘가문’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가문들’의 이름은 언약에 인봉한 제사장들의 목록을 제시하는 10:2-8과 유사합니다. 두드러진 차이는 본문이 여섯 명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본문의 명단이 10:28의 목록을 확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2) 목록의 출처(22-23)

 

22-23절은 일종의 간기(colophone)와 같은 역할을 하며, 정보에 대한 신뢰성을 제공하고자 목록들의 출처를 밝힙니다. 그리고 그 출처는 대제사장 엘리아십, 요야다, 요하난 얏두아 때 기록된 페르시아의 공식 문서입니다(22b의 ‘책’과 23b의 ‘역대지략’). 학자들에 따라서는 22절의 요하난을 요야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된 요야다의 형제로 보기도 합니다. 요하난은 주전 410년 경(다리우스 2세 때) 대제사장의 이름으로 언급됩니다. 이동하던 레위인들의 이름(하레비 임 הליים)은 제사장의 이름과 함께 페르시아 제국의 왕실 일지에 기록되었습니다(22b). ‘레위 자손의 족장들’은 엘리아십의 아들(혹은 후손) 요하난 때까지 역대지략에 기록되었습니다(23).

 

(3) 레위 족장들과 문지기들의 이름(24-25)

 

레위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임무를 맡았습니다. 첫째는 예배 도중 찬양과 감사를 인도하는 것으로 이 일을 책임지는 자들은 하사바와 세레뱌(갓미엘의 아들)와 예수아입니다(24a). 이들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만들어 놓은 규정대로 순서를 따라 찬양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24b).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예언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는데, 특히 모세를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합니다. 본문은 의도적으로 다윗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소개하면서 모세와 같은 인물로 소개합니다.

역대기에 의하면, 다윗은 성전 찬양대를 조직하고, 규례를 만든 인물로(참조 역대상 25장), 모세처럼 이스라엘의 예배를 세운 인물입니다(모세의 성막 예배 → 다윗의 성전 예배). 본문은 포로 이후 레위인들이 다윗이 만든 규례대로 성전 예배를 드렸음을 언급함으로써 예배의 정통성과 합법성을 강조합니다. 레위인들의 둘째 임무는 성전 창고를 지키는 일로(25b), 책임자들은 맛다냐를 비롯한 여섯 명입니다. 에스라-느혜미야서는 제사장들과 함께 레위인들의 역할에 큰 관심을 가집니다. 예루살렘 성전 예배가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레위인들의 헌신이 요청되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레위인에 대한 관심은 당시 레위인들의 불안정한 위치와도 관련된 것으로 보입니다.

 

(4) 결론적인 요약(26)

 

26절은 끝으로 이상의 인물들이 모두 대제사장 요야김 시대, 그리고 느헤미야와 에스라 시대에 활동했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임을 밝힙니다(26). 예수아의 아들 요야김, 총독 느헤미야,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를 언급하는 26절은 귀환 1세대를 대표하는 대제사장 예수아와 스룹바벨을 언급하는 1a절과 수미 쌍관(인클루지오) 구조를 이루며 전체 단락을 끝맺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목록은 느헤미야 7장의 목록에 비해 월등히 많은데, 이는 뒤따라 나오는 성벽 봉헌식을 준비하기 위한 의도로 보입니다. 즉 성벽 봉헌식에 최대한으로 많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했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스룹바벨과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그들의 후손들을 함께 언급한 것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헌신한 사람들의 후손이 성벽 재건에 참여했음을 알리려는 의도입니다. 저자는 이를 통해 귀환민들의 세대 간 연속성을 강조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찬양이 지속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들이 제 기능을 하도록 도왔습니다, 이들의 수고로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이들이 들려주는 구원 이야기를 통해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오래된 구원 이야기의 일부임을 깨닫고, 언약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명확히 지닐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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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10-01)


구체적인 변화를 다짐하는 이스라엘

느헤미야 10장 1-39절


 

과거 반성도 중요하지만, 새 역사를 펼쳐가려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모호한 다짐으로는 부족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10장은 새로운 변화를 다짐한 사람들의 명단(1-27)과 변화의 내용(28-39)으로 구성됩니다.

 

  • 에스라의 율법 낭독과 레위인들의 기도에 강화를 받은 귀환자들은 언약에 인봉을 합니다. 10장은 언약에 인친 자들의 명단을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명단은 유다 총독 느헤미야의 이름으로 시작해서 제사장, 레위인 그리고 백성의 우두머리와 일반 백성들의 순으로 소개됩니다. 언약에 인친 백성들은 모세의 율법을 따라 언액 백성으로 살아갈 것을 서약합니다.

 

가나안 땅 정복과 정착(1-27)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답게 들리고 그 말씀이 선명하게 들릴 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비로소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손발을 움직여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능력, 하나님의 말씀이 주신 새로운 안목, 그 말씀이 주는 미래에 대한 상상력들 때문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지탱할 수 있습니다.

 

1그 인봉한 자는 하가랴의 아들 총독 느헤미야와 시드기야, 2스라야, 아사랴, 예레미야, 3바스훌, 아마랴, 말기야, 4핫두스, 스바냐, 말룩, 5하림, 므레못, 오바댜, 6다니엘, 긴느돈, 바룩, 7므술람, 아비야, 미야민, 8마아시야, 빌개, 스마야이니 이는 제사장들이요 9또 레위 사람 곧 아사냐의 아들 예수아, 헤나닷의 자손 중 빈누이, 갓미엘과 10그의 형제 스바냐, 호디야, 그리다, 블라야, 하난, 11미가, 르홉, 하사뱌, 12삭굴, 세레뱌, 스바냐, 13호디야, 바니, 브니누요 14또 백성의 우두머리들 곧 바로스, 바핫모압, 엘람, 삿두, 바니, 15분니, 아스갓, 베배, 16아도니야, 비그왜, 아딘, 17아델, 히스기야, 앗술, 18호디야, 하숨, 베새, 19하립, 아나돗, 노배, 20막비아스, 므술람, 헤실, 21므세사벨, 사독, 얏두아, 22블라댜, 하난, 아나야, 23호세아, 하나냐, 핫숩, 24할르헤스, 빌하, 소벡, 25르훔, 하삽나, 마아세야, 26아히야, 하난, 아난, 27말룩, 하림, 바아나이니라(1-27)

 

에스라가 주도하여 율법을 낭독하고 레위인들이 율법을 통역과 해석해주었습니다. 에스라의 율법 낭독과 레위인들의 기도에 감화를 받은 귀환자들은 언약에 인봉을 합니다. 1-27절은 언약 체결에 서명한 사람들의 명단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데, 이 명단에 소개되는 인물들은 약속의 땅에서 새로운 공동체로 출발하고자 하는 결단과 의지를 보여줍니다.

느헤미야의 문맥에서 이 명단은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7장)과 언약 갱신을 인증하는 기능을 합니다. 서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가장 먼저 총독 느헤미야가 등장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의 구성에 의하면(9:38부터 새로운 장이 시작됨), 전체 단락은 총독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동심원 구조를 이룹니다.

 

        A. 방백들(9:38)

                  B. 레위인들(9:38)

                           C. 제사장들(9:38)

                                    X. 총독 느헤미야(10:1)

                           C′. 제사장들(10:2-8)

                  B′. 레위인들(10:9-13)

         A′. 방백들(10:14-27)

 

이러한 구성은 공동체 내에 느헤미야의 위치를 특별히 강조하기 위한 문학적인 기법입니다. 등장하는 일 가운데 느헤미야와 시드기야의 경우에만 접속사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은 두 사람이 유다 행정부를 대표하는 페르시아의 관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느헤미야와 시드기야에 이어 제사장들의 명단이 소개됩니다(2-8).

여기에는 총 21명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15개는 성씨, 즉 가문의 이름입니다. 특이한 점은 에스라의 이름이 빠져 있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아마도 에스라가 스라야 가문(2)의 일원이기 때문에 생략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사장들의 명단에 이어 레위 사람들이 소개됩니다(9-13). 소개된 레위인들의 총수는 17명으로 제사장들의 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에스라와 함께 율법을 가르친 레위인들로 소개됩니다(참조. 8:7). 끝으로 레위인들에 이어 백성들의 지도자들의 이름이 소개됩니다(14-27). 이들은 총 44명으로 대부분 집안을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곳에 소개된 44명의 이름 중 앞부분의 21명은 1차 귀환자들의 목록인 에스라 2:3-30과 동일합니다(언급되는 순서도 일치). 동일한 집안(가문)의 이름이 이곳에 반복되는 것은 귀환 공동체의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21명을 제외한 나머지 23명은 전혀 새로운 인물들인데, 이들은 최근에 바벨론에서 귀환한 사람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하면, 스룹바벨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람들과 최근에 도착한 사람들이 함께 언약에 서명한 것입니다. 이것은 온 공동체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따라 신실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했음을 의미합니다.

 

공동체 맹세와 서역의 내용(28-39)

성전과 성벽이 무너져 있는 동안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의 신앙 전통도 무너져 있었습니다. 마땅히 지켜야 하고, 그래야 생명과 축복을 노릴 수 있는 참된 길을 다 버린 채 이방의 풍속을 좇아 살았습니다. 백성은 이것이 저주받을 일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자녀의 결혼 앞에서 세상적인 조건을 더 따지지 않을 때, 공동체를 위한 헌신에 주저하지 않을 때,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28그 남은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및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와 그들의 아내와 그들의 자녀들 곧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들은 29다 그들의 형제 귀족들을 따라 저주로 맹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여 30우리의 딸들을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의 아들들을 위하여 그들의 딸들을 데려오지 아니하며 31혹시 이 땅 백성이 안식일에 물품이나 온갖 곡물을 가져다가 팔려고 할지라도 우리가 안식일이나 성일에는 그들에게서 사지 않겠고 일곱째 해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하리라 하였고 32우리가 또 스스로 규례를 정하기를 해마다 각기 세겔의 삼분의 일을 수납하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쓰게 하되 33곧 진설병과 항상 드리는 소제와 항상 드리는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한 절기에 쓸 것과 성물과 이스라엘을 위하는 속죄제와 우리 하나님의 전의 모든 일을 위하여 쓰게 하였고 34또 우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들이 제비 뽑아 각기 종족대로 해마다 정한 시기에 나무를 우리 하나님의 전에 바쳐 율법에 기록한 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에 사르게 하였고 35해마다 우리 토지 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하였고 36또 우리의 맏아들들과 가축의 처음 난 것과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율법에 기록된 대로 우리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고 37또 처음 익은 밀의 가루와 거제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의 여러 방에 두고 또 우리 산물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였나니 이 레위 사람들은 우리의 모든 성읍에서 산물의 십일조를 받는 자임이며 38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을 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 한 사람이 함께 있을 것이요 레위 사람들은 그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곳간의 여러 방에 두되 39곧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자손이 거제로 드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가져다가 성소의 그릇들을 두는 골방 곧 섬기는 제사장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있는 골방에 둘 것이라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 두지 아니하리라(28-39)

 

언약 체결에 서명한 사람들의 명단에 이어 28절은 언약 체결의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본문은 지도자들 외에 온 백성이 함께했음을 강조합니다(28a). 이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은 여덟 개의 그룹으로 구성되는데(28b), 각각 (1) 제사장, (2) 레위 사람, (3) 성전 문지기, (4) 노래하는 사람, (5) 느디님 사람들, (6) 율법에 따라 살기 위해 이방 사람과 절교한 사람들, (7) 아내들' (8) 자녀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지식과 총명이 있는 사람들’로 묘사되는데(28c), ‘이들이 율법의 의미를 깨닫는 능력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함께 ‘저주로 맹세’했는데(29a), ‘저주와 맹세’는 여기서 ‘맹세로 확증하는 조약’을 의미합니다. 서약을 강조하기 위한 용법으로 신명기 29:14에 나오는 ‘언약과 맹세’와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참조, 역대하 15:12-15, 23:3, 6). 이들이 한 맹세의 내용은 모세의 율법을 따라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29). 그중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이방 백성과의 동혼 금지입니다(30, 비교 13:25). 이것은 신명기 7:14의 율법을 당시 상황에 적용한 것인데, 가나안의 일곱 족속의 자리에 ‘이 땅의 백성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말라기(2:10-16)와 에스라서(9장)처럼 느헤미야서도 이방 민족과의 통혼을 엄격히 금지합니다. 이것은 귀환 공동체가 처해 있던(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하는) 특수한 상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방 민족과의 통혼 금지에 이어 안식일과 안식년 규정이 언급됩니다. 안식일 준수는 느헤미야의 핵심적인 개혁 가운데 하나입니다(참조. 13:15-22).

바벨론 유배로 약속의 땅과 성전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과 음식법(정결법) 준수는 민족적인 정체성을 확인하는 지표(boundary marker)로 자리 잡게 됩니다. 오경의 율법 규정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과 음식법(정결법) 준수는 민족적인 정체성을 확인하는 지표(boundary marker)로 자리 잡게 됩니다. 오경의 율법 규정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곱째 해마다 땅을 쉬게 하는 안식년 법을 지켜야 합니다(참조, 출애굽기 23:11; 레위기 25:1-7).

신명기 율법(15장)은 안식년 규정을 인도주의적 관절으로 확대해서 면제년(빚의 탕감)과 노예 해방의 해로 규정합니다. 본문은 땅을 쉬게 하는 것과 빚의 탕감을 함께 언급함으로써 오경의 안식년 규정을 종합하고 있습니다(31), 안식일과 안식년 준수에 이어 성전 유지와 관련된 규정이 맹세의 내용으로 언급됩니다. 귀환민들은 해마다 3분의1세겔을 성전세로 내기로 서약하는데(32), 이것은 성소 운영기금으로 속전을 바치도록 한 오경의 규정(출애굽기 30:11-16; 38:25-26)과 관계됩니다.

본문은 이어서 성전세의 용도를 상세히 밝히고 있는데(33절), 그것은 진설병의 제조, 정규적인 소제와 번제 준비, 안식일, 초하루, 정한 절기에 드리는 제물들 준비, 기타 성전 건물 보수와 유지에 필요한 사항들입니다. ’종족대로 해마다 정한 시기에 나무를 성전에 바치도록 하는 것‘(34)은 번제단에 사용될 땔감을 조달하기 위함입니다. 제사 규정에 의하면(레위기 6:1-13), 번제단의 불은 항상 타고 있어야 합니다. 이전에는 기브온 거민들이 했던 일(참조, 여호수아 9:27)을 이제 가문별로 돌아가며 담당하기로 한 것입니다.

다음의 내용은 토지 소산의 맏물과 가축의 초태생을 성전에 바치는 것입니다(35-36). 토지 소산의 맏물을 바치는 규정은 오경의 여러 곳에 언급되어 있는데(출애굽기 23:19, 34:26; 신명기 26:1-11), 이것은 땅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백성들은 수확을 할 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처음 것을 드려야 합니다. 민수기 규정은 이것을 제사장의 몫으로 돌리도록 규정합니다(민수기 18:12-13). 가축과 사람의 초태생에 대한 규례는 출애굽 사건, 즉 애굽의 장자 재앙과 관계됩니다. 이스라엘은 장자 재앙을 면한 것에 대한 보상의 의미로 몸값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 사람의 경우는 성소의 세겔로 값을 정해서 드려야 합니다(출애굽기 13:13; 34:20; 민수기 18:15). 마지막 서약은 제사장과 레위인을 위해 정기적으로 십일조를 바치는 것입니다(37-38; 비교 13:10-13). 오경의 십일조 규례에 의하면, 백성들이 드린 십일조는 레위인들의 몫으로, 레위인들의 십일조는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야 합니다(민수기 18장), 귀환 공동체에게 성전 유지와 관리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였기에 특별한 결단이 필요했습니다(39b). 공동체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성전 예배가 필수적이었고, 이를 수행하는 제의 종사자들의 생계 유지가 보장되어야 했습니다(에스라서는 1-2차 귀환 행렬 당시 레위인들의 참여가 소극적이었음을 언급합니다). 서약의 내용에는 귀환 공동체를 거룩한 공동체로 세우기 열망하는 백성들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거룩한 공동체는 하나님 중심(예배 중심)의 삶과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이 다짐한 변화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토대로 유다 사회의 경제와 사회질서 전반을 새롭게 하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원래 율법에 규정되어 있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던 제도들을 강화했습니다. 기본을 중요하게 여길 때 견실한 공동체가 세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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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09-03)


과거의 반성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이스라엘

느헤미야 9장 23-38절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의 실수를 바로 잡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잘못을 되풀이한다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귀환 공동체는 제2의 출애굽을 경한 새로운 언약 백성으로서,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 이렇듯 부끄러운 현실에 처하게 되었는지 뼈아프게 반성합니다.

 

  • 가나안 땅 진입 이후 이스라엘 역사는 배교와 불순종의 역사로 규정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저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패역한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런데도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셔서 남은 자를 허락하셨습니다. 레위인의 기도는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결단을 촉구하며 끝을 맺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언약 백성으로 살아갈 것을 서약하고 이를 다짐하는 의미에서 인을 칩니다.

 

가나안 땅 정복과 정착(23-25)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어려워도 한다고 하신 일에 대해서는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말씀이 곧 사건을 창조해내는 능력입니다. 가나안이 이스라엘 백성의 땅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가나안 거민도 이스라엘에게 복종하게 하셨고, 땅도 하나님께 복종하여 충성한 결실로 배불러 먹고 즐기는 복을 만끽하게 하셨습니다.

 

23주께서 그들의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고 전에 그들의 열조에게 들어가서 차지하라고 말씀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이르게 하셨으므로 24그 자손이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되 주께서 그 땅 가나안 주민들이 그들 앞에 복종하게 하실 때에 가나안 사람들과 그들의 왕들과 본토 여러 족속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임의로 행하게 하시매 25그들이 견고한 성읍들과 기름진 땅을 점령하고 모든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과 판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23-25)

 

레위인들의 기도(역사 회고)는 출애굽 사건과 광야 전승에서 가나안 땅 정복에 대한 주제로 넘어갑니다.

이 단락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후손과 땅 유업)을 이루셨음을 강조합니다. 23a절의 그들의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후손에 대한 약속을 암시합니다(참조, 창세기 12:2; 15:5), 23b절의 ‘그들의 열조에게 들어가서 차지하라고 말씀하신 땅’이라는 구절도 족장 이야기에 땅 약속과 관련하여 반복되는 표현입니다(참조, 창세기 26:2; 28:4,13; 50:24).

본문은 가나안 땅 정복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로 간주합니다. 특히 24절은 가나안 땅 정복을 하나님께서 싸우신 거룩한 전쟁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정복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임을 강조합니다. 가나안의 정복 이야기에서 여호수아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역사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가나안 땅에서의 삶을 묘사하는 표현들(25, ‘기름진 땅’, ‘아름다운 물건’, ‘배불리 먹고’)은 그 땅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풍요한 땅('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과 정착을 소개하는 이 단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와 축복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를 보여줍니다.

 

가나안 땅에서의 불순종과 배교(26-31)

이스라엘 백성의 완악함도 하나님의 고집스러운 사랑,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여러 번, 여러 해 동안 용서하고 구원하며 긍휼을 베푸셨고, 그러고도 돌아서는 자들을 주의 영을 통해 경계하셨습니다. 몇 번을 멸해도 부족할 백성이었고, 그래서 대적의 손에 넘기기도 하셨지만, 기어이 언약을 파기하지 않고 기회를 주셨습니다.

 

26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지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주를 심히 모독하였나이다 27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사 그들이 곤고를 당하게 하시매 그들이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에게 구원자들을 주어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 28그들이 평강을 얻은 후에 다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주께서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 버려 두사 원수들에게 지배를 당하게 하시다가 그들이 돌이켜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여러 번 주의 긍휼로 건져내시고 29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경계하셨으나 그들이 교만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에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30그러나 주께서 그들을 여러 해 동안 참으시고 또 주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의 영으로 그들을 경계하시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열방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고도 31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26-31)

 

약속의 성취에 이어 레위인들의 기도는 가나안 땅에서 겪은 이스라엘의 실패담을 회상합니다. 전체 단락은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한 백성들에 대한 언급을 처음과 끝(26절과 30절)에 위치시킴으로 사사 시대와 왕정 시대를 동일한 불순종과 배교의 시대로 묶습니다. 사사기의 증언에 의하면, 가나안 땅에서의 역사는 불순종과 배교의 시대로 요약됩니다.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배교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이방 대적들을 통한 징계로 나타납니다(27a). 이전에는 대적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스라엘을 대적들의 손에 넘기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배교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대적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사기 문맥에서 대적들의 압제는 이스라엘 배교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렇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징계를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이 대적들의 압제로 고통당할 때(혹은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구원자(사사)를 세워 대적들의 압제에서 구워하십니다(27b).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참조 예레미야애가 3:19-23).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평안’을 얻은 후에 다시 배교의 상태로 회귀합니다(28a). 우상숭배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리는 결정적인 행위로 하나님께서는 언약적인 책임을 물으십니다. 이스라엘의 반복적인 불순종과 배교는 죄와 유혹의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류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행한 배교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것입니다(29). 말씀에 대한 반복적인 불순종은 결국 배교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 삶(생명)을 얻는 주의 계명’이라고 표현합니다(참조. 레위기 18:5; 신명기 4:1; 30:16), 율법(하나님의 말씀)은 생명과 같은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것은 민족적인 멸망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배교를 오래 참으셨습니다. 선지자들을 보내심으로 그 오길 기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선지자들의 경고를 거부하고, 선지자들을 핍박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인내는 진노로 바뀌고, 이방인의 손에 이스라엘을 넘겨주십니다(30b).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긍휼하심과 은혜를 베풀어 패역한 이스라엘을 다 멸하지 않으시고 남은 자를 허락하셨습니다(31b). 이것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백성들이 70년이 지난 후에 고토로 돌아온 사실을 가리킵니다(참조. 에스라 1-3장)

 

회복에 대한 청원과 공동체의 죄에 대한 고백(32-38)

레위인들은 하나님께 죄악된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손에 넘긴 일을 공의로운 심판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이제 한 번 더 언약을 기억하셔서 예전의 긍휼과 은혜를 베풀어주시도록 간청합니다. 오늘 여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가 아닙니까?

 

32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하심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조상들과 주의 모든 백성이 앗수르 왕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당한 모든 환난을 이제 작게 여기지 마옵소서 33그러나 우리가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께서는 진실하게 행하셨음이니이다 34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조상들이 주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주의 명령과 주께서 그들에게 경계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35그들이 그 나라와 주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36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는데 곧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사 그것의 열매를 먹고 그것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 37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왕들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그들이 우리의 몸과 가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란이 심하오며 38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하였느니라(32-38)

 

레위인들의 기도는 끝으로 그들의 현재 상태(죄)에 대한 고백과 청원으로 이어집니다(final petition), 느헤미야서 문맥에서 백성들의 참회와 회복에 대한 간구는 이후에 등장하는 언약 체결 의식(느헤미야 10장)을 준비하는 기능을 합니다.

이 단락은 주제의 전환을 나타내는 ‘베 아타’(ועתה 그리고 이제) 구문으로 시작하는데, 이러한 형식은 시편에서 현재의 고통에서 구원해주시길 간구하는 문맥에서 나옵니다(참조, 시편 39:7). 레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이 당하는 고통을 감찰하시고 이전의 상태로 회복해주시길 기도합니다(32b). 32b절의 ‘앗수르 왕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주전 722년)부터 귀환 이후의 시점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먼저 선조들과 자신들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인정합니다(33). 그리고 이어서 실패의 원인을 두 가지로 요약하는데, 첫째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버리고 하나님을 거역했다는 것입니다(34). 여기에서 율법을 가리키는 다양한 용어(‘주의 율법’, ‘주의 명령’, ‘경계하신 말씀’)를 사용하여 율법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합니다(참조. 13-14,26,29), 둘째, 실패 원인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린 것입니다(35).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것이 결국 이스라엘 타락의 시작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것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레위인들의 기도는 자신들의 현 상태를 애통하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룹니다(36-37). 본문은 그들의 현재 상태를 ‘종살이’로 규정합니다(36절). ‘하나님 섬기기’를 포기한 결과는 이방 나라의 종살이로 나타납니다(참조, 35b).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다시 구원 이전의 상태로 회귀함을 의미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피정복민의 신분입니다. 그들은 페르시아에 세금을 내고 이방 왕의 통제하에 살아가고 있습니다(37b). 그런 의미에서 현재 그들의 상태는 ‘종살이’입니다. 레위인들의 간절한 소망은 페르시아 왕의 통치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통치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분이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이 시기 때문입니다(출애굽기 15:18; 사무엘상 8:7). 이제 방백들과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언약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합니다(38). ‘언약적인 헌신’을 다루는 38절은 백성들이 언약에 인봉하고 서약하는 장면을 다루는 10장으로 연결됩니다. 이런 배경에서 히브리어 성경(MT)은 38절(‘우리가 …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을 10장의 도입으로 간주합니다. ‘견고한 언약을 세우다’로 번역한 히브리어는 언약 체결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히브리어 구문 ‘카라트 베리트’와 비교할 때 ‘베리트’ 자리에 ‘아마나’가 들어가 있습니다. ‘아마나’는 원래 ‘신실함’ 혹은 ‘충성스러움’을 의미하며, 언약의 의미로 사용된 경우는 이곳이 유일합니다. 이 단어와 동일한 어근 네에만(נאמן 충성스러운) 이 아브라함 언약을 언급하는 장면(8절)에 나옵니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여 앞으로 체결되는 언약을 아브라함 언약의 연속으로 간주하며, 언약에 참여하는 백성들이 아브라함처럼 언약에 신실하게 반응할 것을 요청합니다. 레위인들의 역사 회고의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율법에 대한 순종이 매우 강조된 형태로 나타납니다(13-14, 26,29,34). 율법에 대한 강조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귀환 공동체에게 ‘토라’가 차지하는 중요성과 위치를 보여줍니다. 신명기적인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 사랑은 말씀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포로 귀환 공동체는 아주 긴, 뼈아픈 역사 반성문을 기록하고 도장까지 찍었습니다.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펼쳐가실 구원사의 주역이 되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들은 첫 출애굽 세대와 다른 역사를 써나가겠다고 결단합니다.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는 것만이 새 역사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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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09-02)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이스라엘

느헤미야 9장 9-22절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불순종만큼이나 심각한 죄입니다. 신약과 구약 여러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기억하라’는 명령을 반복하십니다. 포로 귀환 공동체는 출애굽 시대와 광야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베푸신 은혜를 잊은 그들의 죄를 고백합니다. 망각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역사회고는 출애굽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출애굽 사건에 나타난 구원의 은혜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태동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이후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고 광야 여정에서 백성을 인도하시고, 모든 필요를 채워주셨으며,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총 역사입니다.

 

구원의 은혜와 하나님의 인도하심(9-15)

이스라엘은 애굽 고통의 노예 생활에서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소리에 응답하여 바로의 손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심으로써 온 땅에 여호와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셨습니다. 홍해의 난관도, 광야의 위험도 여호와 앞에서는 고분고분 길을 내었고, 물을 내었으며, 양식을 내었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배은망덕했습니다.

 

9그 주께서 우리 조상들이 애굽에서 고난 받는 것을 감찰하시며 홍해에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10이적과 기사를 베푸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나라 온 백성을 치셨사오니 이는 그들이 우리의 조상들에게 교만하게 행함을 아셨음이라 주께서 오늘과 같이 명예를 얻으셨나이다 11또 주께서 우리 조상들 앞에서 바다를 갈라지게 하사 그들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 같이 통과하게 하시고 쫓아오는 자들을 돌을 큰 물에 던짐 같이 깊은 물에 던지시고 12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이 행할 길을 그들에게 비추셨사오며 13또 시내 산에 강림하시고 하늘에서부터 그들과 말씀하사 정직한 규례와 진정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그들에게 주시고 14거룩한 안식일을 그들에게 알리시며 주의 종 모세를 통하여 계명과 율례와 율법을 그들에게 명령하시고 15그들의 굶주림 때문에 그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들의 목마름 때문에 그들에게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또 주께서 옛적에 손을 들어 맹세하시고 주겠다고 하신 땅을 들어가서 차지하라 말씀하셨사오나(9-15)

 

레위인들의 기도(역사회고)는 출애굽 사건과 광야 여정에 대한 주제로 이어집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애굽에서 고난 받는 것을 감찰하시고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합니다(9). 직역하면 ‘그(여호와)가 애굽에 있는 우리 조상들의 고통을 보셨다’입니다. 9절은 신인동형론적 표현(anthropomorphism)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눈은 자기 백성을 향하고, 그분의 귀는 자녀들의 간구에 기울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을 이루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난의 현장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출애굽 사건과 홍해 사건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납니다.

10절과 11절은 각각 애굽에서의 열 가지 재앙에 대한 사건과 홍해 사건을 요약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바로와 그의 백성을 치신 이유를 그들의 교만함 때문이라고 밝힙니다(10b). 하나님의 역사 개입은 그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에게는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출애굽 사건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친히 영광을 받으시는 사건이고, 온 땅의 주가 되심을 만방에 선포하는 의미를 지닙니다(10c, ‘오늘과 같이 명예를 얻으셨나이다’). 출애굽 사건의 절정은 훔해 사건으로 나타납니다(11).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비교, 9a, ‘고난을 보셨다’),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은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바로의 군대를 수장한 사건으로 나타납니다(11b). 이스라엘 백성들은 직접 바다 가운데를 육지 같이 통과하고(참조, 출애굽기 14장), 바로와 애굽의 군대가 깊은 물에 잠기게 된 것을 목격한 것입니다. 애굽에서의 열 가지 재앙과 홍해 사건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 사건(야훼 전쟁 혹은 거룩한 전쟁)으로 대대로 전해지는 공동체적 신앙 전승의 핵심입니다.

 

12-21절까지는 광야 전승에 관한 내용을 다룹니다. 광야 생활을 회고하는 12-21절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 모티브가 백성들의 반역을 감싸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A. 하나님의 공급하심(12-15절)

      B. 백성들의 반역(16-18절)

  A′. 하나님의 공급하심(19-21절)

 

이 구조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백성들의 배은망덕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은 광야에서 그의 백성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출애굽 사건은 시내산의 언약 체결과 율법 수여(13-14)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이유는 그들을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삼아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세우기 위함입니다(참조, 출애굽기 19:5-6).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는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 백성의 표증으로 율법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언약 체결과 율법 수여 사건은 성격상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은 언약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지침입니다. 율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은 그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본문은 율법을 가리키는 다양한 용어(정직한 규례, 진정한 율법, 선한 율례와 계명)를 사용함으로 율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13b). 그 율법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해 주신 것’입니다(14). 율법을 강조하는 문맥에서 ‘거룩한 안식일’(14a)을 별도로 언급하는 것은 바벨론 포로 이후 안식일 규정이 특별한 중요성을 갖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후 안식일 규정은 유대인들에게 모든 율법의 기본이 된다. 레위인들의 기도는 다시 광야 여정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15).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체적인 필요를 채워주셨음을 회고합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고, 반석을 통해서 물을 공급하신 사건입니다(참조 출애굽기 16-17장),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만나의 공급이 계속되었음을 증언합니다(여호수아 5:12). 애굽에서의 구원, 시내산의 언약체결, 광야 40년의 여정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반역(16-1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40년 동안에도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고, 율법과 계명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리지 않도록 먹을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이 공급과 보호의 은총을 기억할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런 은혜까지도 잊고 살았습니다.

 

16그들과 우리 조상들이 교만하고 목을 굳게 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17거역하며 주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행하신 기사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나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18또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이르기를 이는 곧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한 신이라 하여 하나님을 크게 모독하였사오나(16-18)

 

이 단락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결정적인 반역 사건(정탐꾼 사건과 금송아지 사건을 다룹니다(참조, 민수기13-14장, 출애굽기 32장). 여기에서 시간적으로 후대인 가데스 바네아 사건을 먼저 언급한 이유는 이것이 땅 약속과 직접 관계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참조, 8). 열 명의 정탐꾼의 불신앙적인 보고는 백성들 사이에 큰 동요를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다른 지도자를 세워애굽으로 돌아가려는 반역으로 발전합니다(17a).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무효화하는 행위이며, 하나님께 대한 직접적인 반역이다. 이런 배경에서 본문은 반역적인 의미의 ‘패역하다’(마라 מרה)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본문은 이러한 행동을 이스라엘이 교만하여 목을 굳게 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한 행동으로 표현합니다(16). 여기에서 교만하여 목을 굳게 한 행동은 출애굽기에서 바로와 애굽 백성들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참조. 10). 이제 이스라엘이 바로처럼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버리지 않으셨는데(범죄의 결과로 광야에서 죽어가야 했지만), 그분의 성품 때문이었습니다(17b).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신, 분입니다(참조, 출애굽기 34장). 이렇게 큰 은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반역은 계속됩니다(참조. 민수기 16-25장). 본문은 광야 시절 또 한 번의 반역적인 사건을 언급하는데,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입니다(참조. 출애굽기 32장),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송아지의 형상 안에 가두는 행위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범죄입니다(18b). 백성들의 반역(A)-하나님 의 긍휼하심 (B)-백성들의 반역 (A')으로 이어지는 광야 시절의 회고는 하나님의 은혜와 이스라엘의 반역을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19-22)

배은망덕한 백성이 하나님을 지웠고 귀를 막았으며, 마음을 받았습니다. 반역했고, 자기 하나님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사랑밖에 베풀 것이 없는 분처럼 용서하시고 또 기다리면서 더디 깨닫고 믿는 백성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19주께서는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이 그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길을 인도하며 밤에는 불 기둥이 그들이 갈 길을 비추게 하셨사오며 20또 주의 선한 영을 주사 그들을 가르치시며 주의 만나가 그들의 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들의 목마름을 인하여 그들에게 물을 주어 21사십 년 동안 들에서 기르시되 부족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사오며 22또 나라들과 족속들을 그들에게 각각 나누어 주시매 그들이 시혼의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였나이다(19-22)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을 언급한 후 레위인의 기도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주제로 돌아갑니다. 광야 시절이스라엘의 반복적인 배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19).

하나님께서 변함없는 은혜를 베푸시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와 물을 공급하셨습니다(20). ‘주의 선한 영을 주사’ 백성들을 가르치셨습니다(20a). ‘주의 선한 영을 주신’이 사건은 하나님의 영이 회중의 지도자들에게 임한 사건(민수기 11:16-30)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에 대한 무지가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 나가지 않도록 특별한 조치를 취하신 것입니다. 광야 시절에 대한 회고는 40년 여정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로 끝맺습니다(21).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공급하심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참조 신명기 2:8; 8:4).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신 사건으로 입증됩니다(22a). 하나님께서 요단 동편 아모리 족속의 땅을 이스라엘 백성이 차지하게 사셨는데(22b), 이는 임박한 가나안 땅 정복을 예고합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반역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을 이루십니다(참조 8).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그 은혜를 잊고 교만해졌다고 고백합니다. 출애굽을 겪었으면서도 애굽 땅으로 돌아가려 했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것은 교만의 죄와 불순종의 죄와 직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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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09-01)


이스라엘을 내적 갱신과 변화시킨 느헤미야

느헤미야 9장 1-8절


 

많은 목회자가 교회 성장을 내실보다는 외형적인 성장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역하면 할수록 내적인 성장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공동체 재건의 사업까지 완결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제 내적 갱신과 변화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됩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 초막절이 끝난 지 이틀 후에 백성들이 대대적으로 모여 성회를 갖습니다. 모인 시간의 절반은 율법을 읽고, 절반은 엎드려 자복합니다. 지금까지 율법을 깨닫도록 도움을 준 레위인들도 이 대열에 합류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소리 높여 여호와를 송축한 후,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회고합니다. 이를 통해 백성들은 한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며, 다른 한편으로 그 크신 은혜를 저버린 조상들과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합니다.

 

24일의 금식 성회(1-5a)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깊이 깨달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과 비교하여 자신들의 허물과 부족함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 깊숙이 들어와 있는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경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행동을 비교하여, 우리 자신이 얼마나 많은 부족함과 죄를 갖고 있는지를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1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2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3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4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5또 레위 사람 예수아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야와 세레뱌와 호디야와 스바냐와 브다히야는 이르기를 …(1-5a)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스스로 견딜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삶을 돌아보고 내면의 어둠을 진실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1) 회개(1-2)

 

초막절 집회가 끝난 직후 백성들은 곧바로 금식 성회를 개회합니다(1). 그들은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권면에 따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시간을 가진 후(참조. 8:9-11) 이제 자신들과 조상들의 죄를 자복합니다. 백성들(‘이스라엘 자손’)은 다 같이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씁니다.

 

(2) 율법 낭독과 레위인들의 기도(3-5a)

 

백성들은 낮 1/4 동안 서서 율법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3). 낮 1/4은 약 세 시간에 해당합니다(오전 6시부터 9시까지). 백성들이 금식하며 낮 1/4 동안 서서 율법을 듣는 것은 ‘말씀에 대한 갈급함과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열정’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이 성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부흥의 자리였음을 의미합니다. 본문에는 율법을 낭독한 주체가 언급되지 않지만, 레위인이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 8-9장에서 레위인들의 율법 낭독은 세 번에 걸쳐서 소개됩니다(8:4-8; 8:14-15; 9:3). 백성들은 율법의 말씀을 듣고 곧바로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합니다(3b). 그때 여덟 명의 레위인은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기도하는데(4), 그들은 예수아, 바니, 갓미엘, 스바냐, 분니, 세레뱌, 바니, 그나니입니다. 본문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데, 이것은 백성들의 자발성을 강조하려는 저자의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고백의 기도(5b-8)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회개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의 교훈을 따르지 않은 점을 자백했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스스로 죄인으로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허한 자세로 나아갔습니다. 의 회개와 죄 고백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더욱 깊이 의지하며,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인도와 지도를 허락했습니다.

 

5…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6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7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8그의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의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매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5b-8)

 

세 번째 율법 낭독은 레위인들의 고백의 기도(5b-37)로 이어집니다. 전체 단락은 예전의 형식을 따라 잘 구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A. 찬양(5b)

   B. 역사를 회상하는 형식의 고백(6-31)

      C. 청원(32)

   B’. 현재의 죄에 대한 고백(33-35)

A’. 애통(36-37)

 

(1) 송축(5b)

 

레위인들의 기도는 성격상 백성들을 대신해서 드리는 공적인 기도로 볼 수 있습니다. 여덟 명의 레위인들이 단에 올라서서 하나님을 송축하며 기도를 인도합니다(5a). 레위인들은 백성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명령합니다(5b).

하나님의 영원성은 신구약성경에서 강조되는 주제로(신명기 33:27; 이사야 40:28; 로마서 16:26, 디모데전서 6:16), 여호와는 이 세상의 어떤 존재와도 구별되는 분입니다. 따라서 신학적으로 ‘여호와의 영원성’은 그분의 거룩하신 성품과 연결됩니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레위인들의 기도가 시작됩니다. 70인역에서는 5b-37절을 에스라의 기도문으로 이해하지만, 레위인들의 기도로 보는 것이 정황상, 그리고 일반 백성들의 주도적인 참여를 강조하는 9-10장의 문맥상 더 적절해 보입니다. 레위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화로운 이름에 대한 송축으로 시작합니다(5c).

 

(2)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고백(6)

 

성경에서 이름은 ‘존재 자체’를 나타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으로 영광 가운데 임하십니다. 백성들이 여호와를 송축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세상 만물의 창조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6). 6a절의 고백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는 문자적으로는 ‘당신 그분은 홀로 여호와시라’입니다. 이것은 여호와만이 참 신이라는 유일신 신앙의 고백이며(신명기 6:4), 여호와의 독특성과 초월성에 대한 표현입니다(참조, 이사야 44:6,8; 45:6,21-22; 46:9). 하나님을 송축하는 대상에는 하나님의 천사들도 포함되는데, 그 이유는 그분이 하늘과 땅과 바다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분(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6b).

 

(3)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7-8)

 

레위인들의 기도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고백에 이어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에 대한 회고로 이어집니다(7).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앞으로 전개될 이스라엘의 구원을 준비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마음이 충성됨(혹은 신실함)을 보셨다.’(8a)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며(창세기 12:1-4; 히브리서 11:8),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창세기 12:78; 13:18). 본문은 아브라함이 신앙을 이스라엘이 따라야 할 본으로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주십니다. 8b절은 땅에 대한 약속이 아브라함의 후손(그의 씨)에게 한 약속임을 강조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여기서 언급한 것은 귀환 공동체가 가나안 땅을 차지할 자격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심으로 자신의 신실하심을 입증하셨습니다. ‘주는 의로우심이로다’(8c)는 이것을 의미합니다. 레위인들은 아브라함의 구원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이 동일하게 자신들에게 임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회개와 참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금식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강화하며, 그로부터 영감을 받아 변화를 이루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이 장은 우리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새로운 시작을 하는 의미 있는 순간을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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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08-01)

 


이스라엘 집회를 모인 느헤미야

느헤미야 8장 1-18절


 

신앙생활은 곧 말씀 생활입니다. 기도와 찬양, 섬김과 나눔 등 우리 신앙에 중요한 항목들이 많이 있지만, 모든 것의 근본에는 말씀이 있습니다. 쥬의 백성으로서 말씀을 대하는 우리 자세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각기 성읍에 거주하던 백성들이 일곱째 달 초하루에 율법을 듣기 원하여 예루살렘 성의 수문 앞 광장에 모여듭니다. 학사(서기관) 에스라는 그들의 요청에 따라 율법책을 가져와 수문 앞 광장에서 낭독합니다. 레위인들이 에스라가 읽은 말씀의 뜻을 해석하여 백성들에게 깨닫게 하자 백성들은 애통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립니다.

 

첫 번째 집회(1-12)

말씀은 준비되었지만, 마음 밭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버려지는 말씀이 더러 있습니다. 말씀은 들을 때는 귀도, 마음도 열어야 합니다. 마음이 준비된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서 감동되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을 열어 선포되는 말씀을 받을 때, 손을 들어 ‘아멘’,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1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2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3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4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5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6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7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8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9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10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12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1-12)

 

본문은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모여와 성전 앞 광장에서 성경을 듣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모임은 스스로 도덕적으로 살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1) 역사적 배경(1)

 

8-10장 단락은 귀환 공동체의 수문(Water Gate) 앞 광장에서의 집회와 언약 갱신 의식을 다룹니다. 단락 전체의 흐름은 율법 선포(8) → 회개와 고백(9) → 언약 갱신(10)으로 성전과 성벽 재건 이후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합니다.

이 중 8장은 첫 번째 집회인 율법 낭독과 해석(81-12) 그리고 두 번째 집회인 초막절 의식(8:13-18)으로 구성됩니다. 귀환 공동체는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성벽을 재건하므로 어느 정도 안정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이제 언약을 갱신하고 공동체 내의 회복과 부흥을 기할 단계가 되었습니다. 일곱째 달이 이르자 모든 백성이 수문 앞 광장에 모입니다(1a). 그리고 함께 모인 백성들은 학사 에스라에게 율법 낭독을 부탁합니다(1b). 특별한 점은 이 모임이 지도자들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1b,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이후에도 모든 백성이라는 용어는 8장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1,3,5,6,9,11,12), 저자는 이를 통해 공동체의 연대감을 강조합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 모세의 율법은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기능을 합니다.

 

(2) 율법 낭독(2-6)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수문 앞 광장에 모인 모든 사람 앞에서 율법책을 낭독합니다(2). 일곱째 달 초하루는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절입니다(참조, 레위기 23:24). 백성들은 한 해를 말씀으로 시작하고자 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토라(말씀) 중심의 공동체를 세우기 원하는 귀환 공동체의 열망이 나타나 있습니다. 율법을 듣는 대상에 남자 어른뿐 아니라 여자와 아이들까지 포함되고 있는 것도 이것을 보여줍니다(2b,3). 수문 앞 광장에 모인 백성들은 새벽부터 정오까지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가 읽어주는 율법에 귀를 기울입니다(3b). 이때 에스라는 여러 명의 조력자들(제사장들 혹은 레위인들)과 함께 나무 강단 위에 서서 율법을 낭독합니다(4). 율법 책을 펼 때 모든 백성이 일어서는 것은 전적인 순종을 다짐하는 행동입니다. 율법 낭독은 하나님께 대한 송축과 회중의 응답으로 진행되는데, 모든 백성은 동의의 표시로 손을 들어 아멘으로 화답하고,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6). 얼굴을 땅에 대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의 표현입니다.

 

(3) 율법 해석(7-12)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할 때, 레위 사람들이 회중에게 말씀을 깨닫게 해주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강단에 에스라와 함께 섰던 조력자들은 율법의 한 부분씩 교대로 낭독하고, 열세 명의 레위인들은 율법이 낭독될 때 회중 사이를 다니면서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7). 오랫동안 고국을 떠나 살았던 귀환민들은 페르시아의 공용어인 아람어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히브리어로 기록된 율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역이 필요했습니다. 이 역할을 레위인들이 맡았는데, 율법에서 강조한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입니다(신명기 33:10; 역대하 17:7-9; 35:3), 레위인들은 에스라가 낭독한 율법을 해석하고 백성들에게 그 의미를 깨우쳐주자(8), 백성들은 애통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립니다(9a). 지금까지 율법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탄식의 눈물입니다. 그렇지만 수문 앞 광장 집회가 열린 날은 나팔절로 이날은 ‘여호와께 거룩한 날’이요(레위기 23:24),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는 날’(신년축제)입니다(참조. 민수기 29:1-6; 신명기 12:12; 16:11). 여기에 근거해서 느헤미야 에스라, 레위인들은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성일에 슬퍼하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9). 느헤미야는 슬퍼하는 대신 ‘살진 것’과 ‘단 것’을 먹고 공동체와 함께 즐거워하도록 지침을 내립니다(10). 느헤미야는 그러면서 그들이 슬퍼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제시합니다(10b). 지금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즐거워할 때라는 것이다. 백성들은 곧바로 깨달은 말씀을 실행에 옮깁니다(12). 이처럼 수문 앞 광장의 집회는 말씀을 듣고 깨달은 말씀을 실행에 옮기는 영적 각성 운동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초막절 의식과 여덟째 날 성회(13-18)

말씀 생활의 열매는 실천입니다. 귀로 듣고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귀하지만, 실천되지 않는다면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앗과 같습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백성에게 주께서 임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를 통해 말씀이 선포될 때, 온 백성이 마음 모아 실천합니다.

 

13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 14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하였고 15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16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17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18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13-18)

 

에스라가 모든 백성에게 율법을 낭독해준 다음 날,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율법의 말씀을 더 깊이 알기 위해 에스라에게 찾아옵니다(13). 그리고 그들은 말씀을 읽는 중에 초막절 규례를 접하게 됩니다(그들이 읽은 본문은 아마도 레위기 23장이었을 것이다). 레위기 규정에 의하면, 초막절은 7월 15일부터 일주일간 지키도록 되어 있고(레 23:34), 초막절이 끝난 다음 날 ‘성회’로 모여야 합니다(레위기 23:36). 고대 이스라엘에서 초막절은 일종의 감사제의 성격을 지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첫 번째 감사의 조건은 1년 동안 풍성한 수확을 주신 것이다. 초막절은 가을 추수를 기념하는 절기이며, 초막절을 지킴으로 한 해의 모든 추수가 종결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초막절은 이스라엘에 가장 성대하게 지키는 절기입니다(참조, 민수기 29장: 초막절 때 드리는 제물의 양), 또 하나 감사의 조건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입니다. 초막절은 광야 시절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회상하는 기간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 기간 동안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가지와 시내 버들을 가져다가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지내야 합니다(레위기 23:40-42).

에스라를 찾아온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이 규정에 따라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곳곳에 초막을 짓습니다(16a). 초막을 짓는 장소는 가옥의 지붕 위나 뜰안, 성전 뜰, 수문 광장, 에브라임 문 광장입니다(16b). 추측건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지붕 위나 그 주변에 초막을 설치했을 것이고,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은 성전 뜰이나, 수문 근처,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 등에 초막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저자는 백성들이 규정에 따라 함께 초막절을 지킨 일은 여호수아 때 이후로 없었던 일이라고 강조합니다(17b). 이것으로 보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부터 줄곧 초막절 규례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본문은 여호수아 시대를 언급함으로 이 사건을 여호수아 당시 행했던 언약 갱신 의식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합니다(참조. 여호수아 5-8장). 이것은 에스라-느헤미야서가 포로에서의 귀환을 제2의 출애굽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느헤미야 문맥에서는 10장의 언약 갱신 의식을 준비하는 기능을 합니다. 18절은 에스라가 초막절 기간 동안 매일 모세의 율법책을 백성들에게 낭독했음을 언급하는데, 이것은 면제년의 초막절 언약 갱신 의식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참조, 신명기 31:10-13), 백성들은 끝으로 규례에 따라 일주일 동안 초막절을 지키고 여덟째 날 성회를 연다(참조, 레위기 23:36).

율법을 존중하는 일에 지도자와 백성들 모두가 뜻을 같이합니다. 주석가들은 이 모임이 성전에서 제사장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문 앞 광장에서 백성들이 주도하여 율법학자 에스라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모임이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이후로 종교 생활의 축은 제사에서 율법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귀환 공동체는 수문 앞 광장의 말씀 부흥을 통해 ‘토라 공동체’로서 기초를 다지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제의의 중심인 것처럼 율법(토라)은 귀환민들의 삶과 정신에 있어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경외하고,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배우며, 깨달은 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진정 말씀의 사람입니다. 우리 자신과 교회의 모습이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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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07-01)


성전 재건에 참석한 명단을 파악한 느헤미야

느헤미야 7장 5-73절


 

성경을 읽을 때 가장 힘든 부분 가운데 하나가 계보입니다. ‘누구는 누구를 낳고’가 지속하는 반복을 인내하며 읽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보도 주의 말씀이고, 그 안에도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계보를 통해 선포하는 진실은 무엇입니까?

 

  • 예루살렘 성벽이 거의 다 완성되어 가자 대적들은 다른 방법으로 성벽 재건을 중단시키려고 시도합니다. 산발랏과 게셈은 느헤미야를 오노 평지의 한 촌으로 유인하여 죽이려고 합니다. 결국 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자, 도비야와 산발랏이 스마야에게 뇌물을 주고 거짓으로 예언하게 하여 느헤미야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시도합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5-73)

 

먼저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확인합니다. 나라가 망하고 백성은 먼 이국땅으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이스라엘이 완전히 사라진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속적으로 회복을 약속하셨는데, 때가 되매 이루십니다. 오늘 계보가 그 증거입니다. 주님은 주신 약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5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을 모아 그 계보대로 등록하게 하시므로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계보를 얻었는데 거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 6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갔던 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에 돌아와 각기 자기들의 성읍에 이른 자들 곧 7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아사랴와 라아먀와 나하마니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베렛과 비그왜와 느훔과 바아나와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라 8바로스 자손이 이천 백칠십이 명이요 9스바댜 자손이 삼백칠십이 명이요 10아라 자손이 육백오십이 명이요 11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이천팔백십팔 명이요 12엘람 자손이 천이백오십사 명이요 13삿두 자손이 팔백사십오 명이요 14삭개 자손이 칠백육십 명이요 15빈누이 자손이 육백사십팔 명이요 16브배 자손이 육백이십팔 명이요 17아스갓 자손이 이천삼백이십이 명이요 18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칠 명이요 19비그왜 자손이 이천육십칠 명이요 20아딘 자손이 육백오십오 명이요 21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구십팔 명이요 22하숨 자손이 삼백이십팔 명이요 23베새 자손이 삼백이십사 명이요 24하립 자손이 백십이 명이요 25기브온 사람이 구십오 명이요 26베들레헴과 느도바 사람이 백팔십팔 명이요 27아나돗 사람이 백이십팔 명이요 28벧아스마웻(벧아스마웨ㅅ) 사람이 사십이 명이요 29기럇여아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사람이 칠백사십삼 명이요 30라마와 게바 사람이 육백이십일 명이요 31믹마스 사람이 백이십이 명이요 32벧엘과 아이 사람이 백이십삼 명이요 33기타 느보 사람이 오십이 명이요 34기타 엘람 자손이 천이백오십사 명이요 35하림 자손이 삼백이십 명이요 36여리고 자손이 삼백사십오 명이요 37로드와 하딧과 오노 자손이 칠백이십일 명이요 38스나아 자손이 삼천 구백삼십 명이었느니라 39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구백칠십삼 명이요 40임멜 자손이 천오십이 명이요 41바스훌 자손이 천이백사십칠 명이요 42하림 자손이 천십칠 명이었느니라 43레위 사람들은 호드야 자손 곧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이 칠십사 명이요 44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백사십팔 명이요 45문지기들은 살룸 자손과 아델 자손과 달문 자손과 악굽 자손과 하디다 자손과 소배 자손이 모두 백삼십팔 명이었느니라 46느디님 사람들은 시하 자손과 하수바 자손과 답바옷 자손과 47게로스 자손과 시아 자손과 바돈 자손과 48르바나 자손과 하가바 자손과 살매 자손과 49하난 자손과 깃델 자손과 가할 자손과 50르아야 자손과 르신 자손과 느고다 자손과 51갓삼 자손과 웃사 자손과 바세아 자손과 52베새 자손과 므우님 자손과 느비스심 자손과 53박북 자손과 하그바 자손과 할훌 자손과 54바슬릿 자손과 므히다 자손과 하르사 자손과 55바르고스 자손과 시스라 자손과 데마 자손과 56느시야 자손과 하디바 자손이었느니라 57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은 소대 자손과 소베렛 자손과 브리다 자손과 58야알라 자손과 다르곤 자손과 깃델 자손과 59스바댜 자손과 핫딜 자손과 보게렛하스바임 자손과 아몬 자손이니 60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이 삼백구십이 명이었느니라 61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돈과 임멜로부터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들의 종족이나 계보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으니 62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모두가 육백사십이 명이요 63제사장 중에는 호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의 하나로 아내를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으로 불린 자라 64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찾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65총독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66온 회중의 합계는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67그 외에 노비가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그들에게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사십오 명이 있었고 68말이 칠백삼십육 마리요 노새가 이백사십오 마리요 69낙타가 사백삼십오 마리요 나귀가 육천칠백이십 마리였느니라 70어떤 족장들은 역사를 위하여 보조하였고 총독은 금 천 드라크마와 대접 오십과 제사장의 의복 오백삼십 벌을 보물 곳간에 드렸고 71또 어떤 족장들은 금 이만 드라크마와 은 이천이백 마네를 역사 곳간에 드렸고 72그 나머지 백성은 금 이만 드라크마와 은 이천 마네와 제사장의 의복 육십칠 벌을 드렸느니라 73이와 같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백성 몇 명과 느디님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다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느니라(5-73)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십니다. 계보를 읽기가 어려운 것은 대체로 남의 이름이고, 낯선 이름이고,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사자들에게는 그 어떤 본문보다 가슴 벅찬 본문일 것입니다.

 

(1) 첫 번째 귀환자들의 명단에 대한 소개(5-6)

 

성벽이 완공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집에 거할 사람들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감동으로’(5a) 유다에 거주하는 귀환민들의 숫자와 동향을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계보’를 발견하게 됩니다(5b). 여기서 ‘처음으로 돌아온 자’는 세스바살과 함께 바벨론에서 돌아온 1차 귀환민들을 가리킵니다. 느헤미야서의 저자는 이들의 목록을 이곳에 위치시킴으로써 1차 귀환민들과의 연속성을 강조합니다.

6절은 이 계보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실체를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갔던 자들’ 중에 예루살렘과 유다에 돌아온 자들로 밝힌다. 에스라-느혜미야서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정통성은 바로 이들을 통해 이어지게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문은 의도적으로 이들을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언급합니다(7b). ‘이스라엘 백성’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가리킵니다. 귀환민은 대부분 바벨론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사람들로 그곳 문화와 관습에 익숙해 있었지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위해 삶의 터전을 떠난 사람들입니다(비교, 창세기 12:1).

 

(2) 포로에서 귀환한 지도자들의 명단과 일반 백성(7-32)

 

귀환자들의 명단은 귀환을 주도한 열두 명의 지도자들의 이름으로 시작합니다(7). 여기에 소개된 열두 명의 지도자들은 회복된 이스라엘을 대표합니다. 스룹바벨은 사로잡혀 간 여호야긴의 손자입니다(역대상 3:19).

그는 세스바살과 함께 귀환했거나, 적어도 고레스 제위 기간에 유다에 도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학개 선지자는 그를 ‘여호와의 종’과 ‘인장’(印章)으로 소개하고(학개 2:23), 스가랴는 다윗의 후손인 ‘순’(싹)으로 언급하여(스가랴 3:8; 6:12) 메시아를 예표하는 인물로 소개합니다. 한편, 제사장 예수아는 바벨론 포로 이전 마지막 대제사장 요사닥의 아들입니다(에스라 3:2, 역대상 6:14). 따라서 맨 먼저 언급되는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각각 정치와 종교 면에서 귀환 공동체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들의 명단에 이어 일반 백성들의 목록이 소개됩니다. 이들의 이름은 귀환자들의 명단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합니다(전체 31절).

전체 내용은 소개하는 방식에 따라 가문별 목록(8-24절)과 성읍별 목록(25-38절)으로 구분합니다. 먼저 가문에 따른 소개는 바로스 자손으로 시작합니다(8). 바로스가 먼저 소개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잘 알려진 가문인 것 같습니다. 이후로 가문들의 소개는 24절의 하립 자손까지 이어집니다(전체 인원 15,604명). 가문에 따른 소개 다음에 성읍 별 목록이 제시됩니다. 이 목록은 베들레헴 사람(26절)을 시작으로 스나아 자손(38절)까지 총 8,650명입니다. 이들을 지명에 따라 기록한 이유는 그들의 가계를 정확하게 밝힐 수 없거나 족보가 부정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도자들의 이름과 더불어 일반 백성들의 이름을 나란히 소개하는 것은 성전 재건과 공동체 회복에 이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3) 제사장, 레위인, 성전 일꾼들의 숫자(39-60)

 

일반 백성들의 목록에 이어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목록이 제시됩니다. 제사장 중에는 가장 먼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의 숫자가 소개됩니다(39). ‘예수아의 집’으로 소개되는 것으로 보아 여다야 자손은 대제사장 예수아가 속했던 가문인 것 같습니다. 제사장들의 목록은 다윗 시대 24개의 가문과 달리 네 가문만 언급되는데, 아마도 제사장들 중 일부만 귀환길에 올랐으며, 다른 제사장 가문들은 훗날 귀환한 것으로 보입니다(참조. 에스라 8:23). 귀환한 제사장들의 총수는 4,289명으로 전체 인원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합니다.

제사장에 이어 레위 사람들의 목록이 세 부류로 나뉘어 소개됩니다. 맨 먼저 등장하는 그룹은 호드야 자손 73명입니다(43). 다음으로 노래하는 자들인 아삽 자손으로 148명입니다(44). 이 들은 포로 이전에 주로 성전에서 예전 음악을 담당했던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으로 138명의 문지기 자손들입니다(45).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을 레위 사람들과 구별해서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정식 레위인으로 분류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비교 느헤미야 11:19; 12:25; 역대상 9:17-32; 26:1-19).

레위인들의 전체 숫자는 제사장들의 숫자에 비해 훨씬 적습니다. 이것은 레위 자손들이 예루살렘 귀환에 소극적이었음을 반증합니다(참조. 에스라 8:15). 레위인들에 이어 46절부터는 성전의 일을 도왔던 사람들을 열거합니다. 이들은 느디님 사람들로 불리는데, 전체 35명의 이름들이 열거됩니다. 등장하는 이름들 가운데는 생소한 이름들이 있는데(시하[46], 하수바[46], 르신[50], 바르고스 [55], 시스라[55] 등), 이는 그들의 이방 배경을 암시합니다. 구약 성경에 의하면, 느디님 사람들은 기브온 사람들과 연계되어 이스라엘의 노예들로 간주되거나(참조. 여호수아 9장), 일부는 전쟁 포로의 후예들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참조, 민수기 31:25-47). 그렇지만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느디님 사람들은 성전 봉사자들을 가리킵니다(에스라 7:24). 느헤미야 당시 이들 중 일부는 예루살렘 성벽 공사에 참여했으며(느헤미야 3:26) 율법 준수를 서약했던 사람들로 소개됩니다(느헤미야 10:28). 끝으로 57절의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은 솔로몬 당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던 이방 사람들의 후손들로(참조, 열왕기상 9:20-21), 느디님 자손과 함께 소개되는 것으로 보아(60) 후에 느디님 사람으로 동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4) 족보가 불분명한 사람들(61-65)

 

귀환민들 가운데는 델멜라, 델하르사, 그룹, 앗단, 임멜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61절). 이 지명들은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의 정착지로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들은 안타깝게도 조상의 가문과 계보를 밝힐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64), 이 가운데는 제사장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63). 성전 제의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들의 제사장 직무는 정지되었고(64),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까지 지성물 먹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65).

귀환 공동체가 족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포로 이후 공동체 안에 남아 있던 이방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순수한 신앙 공동체를 이루려 했기 때문입니다.

 

(5) 귀환민들의 총수, 족장들의 예물, 예루살렘 정착(66-73)

 

귀환민들의 숫자는 남종과 여종 7,337명, 그리고 노래하는 남녀 245명을 포함하여 총 49,942명입니다(66-67). 귀환민들이 돌아올 때 가축들을 데리고 왔다는 사실(68-69)은 그들이 경제적으로 상당히 윤택했음을 암시합니다. 에스라-느헤미야 문맥에서 이들의 귀환은 제2의 출애굽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성경에서 소개하고 있는 계보는 지루하지도 메마르지도 않습니다. 그 안에 약속을 이루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인도하심이 배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신다는 행복한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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