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13-02)
선한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개혁하는 느헤미야
느헤미야 13장 15-31절
신앙 공동체는 정체성과 관계성의 균형 속에서 살아갑니다. 정체성만 강조하여 세상과의 관계를 단절해서도 안 되고, 관계성에 치중하다가 정체성이 약화 되어서도 안 됩니다. 역사적 상황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집니다. 느헤미야 시대는 공동체의 신앙 정체성을 명확히 세워야 했습니다.
- 세 번째 개혁은 안식일 준수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예루살렘 외곽에 사는 유대인들이 성내로 들어와 물건을 매매하는 것을 발견하고 안식일에는 모든 상거래를 금지합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혼합결혼과 관계됩니다. 느헤미야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통혼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 일에 참여한 엘리아십의 손자 ‘하나’를 추방합니다.
느헤미야의 안식일 개혁(15-22)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안식을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을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강력한 불신의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조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안식일에 대한 준수사항을 무시하여 멸망을 자초했던 것을 기억하고 순종해 나가야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15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16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예루살렘에서도 유다 자손에게 팔기로 17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18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 하고 19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갈 때에 내가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나를 따르는 종자 몇을 성문마다 세워 안식일에는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20장사꾼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 번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자므로 21내가 그들에게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후부터는 안식일에 그들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22내가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15-22)
느헤미야는 성전을 전화하고 레위인의 사역을 회복시켰습니다. 그 이후에는 안식일 준수를 위한 개혁도 진행했습니다. 이 단락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추진했던 세 번째 개혁인 유다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안식일 준수에 대한 내용을 다룹니다.
(1) 백성들이 안식일 계명을 어김(15-16)
안식일은 계명 중에 핵심적인 계명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온 느헤미야는 유대 백성들이 안식일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을 발견합니다(15). 안식일에 노동하거나 물건을 사고파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진정으로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안식일이 지켜야 했습니다. 안식일에 일하고 매매하는 일은 분명히 사라져야 할 악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이전에 했던 맹세를 어기는 행동입니다(참조 10:31). 백성들은 안식일에 노동하고 상거래를 함으로 안식일을 한 주간의 다른 날과 동일하게 여긴 것입니다(15-16).
예컨대 그들은 술틀을 밟고, 곡식단과 포도주와 여러 가지 과일들을 지고 예루살렘에 들어와 그것들을 판매했습니다. 심지어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이 상주하며 유다 백성들과 상거래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2) 느헤미야가 지도자들을 책망함(17-18)
느헤미야는 백성과 지도자들에게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알립니다(15-17).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안식일 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18; 참조, 예레미야 17:19-27). ‘우리와 이 성에 내린 이 모든 재앙’(18b)은 예루살렘의 파괴, 나라의 멸망과 포로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느헤미야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을 매우 심각하게 여겼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 느헤미야의 조치(19-22)
느헤미야는 이어서 안식일 준수를 위한 실제적인 조치를 취합니다(19-22).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안식일에 성문을 닫고 경비를 세워, 안식일에 물건들을 성안으로 들여오지 못하게 합니다(19). 느헤미야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상인들은 성 밖에서 밤을 새웠는데, 성안의 백성들이 밤중에 몰래 물건을 사러 나올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20). 느헤미야는 이 사실을 듣고 강한 어조로 꾸짖고 경고합니다(21a). 느헤미야의 경고는 즉각적으로 효력을 발휘합니다. 본문은 이후 장사꾼들이 다시 안식일에 성안에 들어오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음을 보고합니다(21b).
느헤미야는 추가적인 조치로 레위인들에게 명하여 성문을 지키도록 합니다(22a). 그리고 이전에 성전 곳간을 정화하던 때처럼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드립니다(22b).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신실한 사랑과 자비(헤세드)를 베푸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개혁을 노력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면 개혁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헤미야는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안식일 준수’는 십일조와 더불어 느헤미야가 강조한 대표적인 율법 규정입니다. 안식일 준수에 대한 관심은 이미 유다 멸망 전후에 활동한 예언자들의 메시지에 특별히 강조되어 나타납니다(이사야 56:2; 58:13; 예레미야 17:19-27; 에스겔 20:12,20). 이어 유대인의 증표로 인식됩니다. 느헤미야가 귀환 공동체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안식일 준수를 강조한 것은 이런 배경입니다.
이방 여인과의 통혼을 금지함(23-31)
이방인과 결혼은 이스라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일이었습니다. 2세들이 점점 유대인의 언어를 잊어가며 결국에는 민족 정체성을 상실하며 하나님과의 소통 단절을 의미하는 비극적인 일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혼합결혼이 혼합종교가 되고,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은 솔로몬 시대를 떠올리며 그것이 유대 사회의 존립과 직결된 얼마나 중한 죄인지 강조합니다.
23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24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25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26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는 많은 나라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그를 범죄하게 하였나니 27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28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29내 하나님이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30내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맡게 하고 31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23-31)
느헤미야가 단행한 네 번째, 다섯 번째 개혁은 이방 여인과의 통혼을 금지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엄히 책망하고, 두어 사람은 때리고 머리털을 뽑기까지 합니다.
(1) 유다 사람들의 통혼과 느헤미야의 책망(23-25)
당시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했던 이전의 맹세(10:30)를 어기고,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삼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의 자녀들이 유다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24). 동족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공동체의 연합과 일체성을 깨뜨리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문제에 단호하게 대처합니다. 그는 이 일에 관련된 백성들을 책망하고 저주할 뿐 아니라 심지어 머리털을 뽑기까지 합니다(25a). 여기에서 ‘머리털을 뽑다.’로 번역된 단어는 ‘수염을 뽑는 행동’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수염을 뽑히는 것은 대단히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졌습니다(참조, 사무엘하 10:4; 이사야 50:6).
(2) 솔로몬 왕의 잘못된 결혼 예시(26-27)
느헤미야는 그들로 하여금 다시는 이런 죄를 범치 않겠노라고 하나님 앞에 맹세하게 합니다(25b). 이어서 그는 이 일의 심각성을 보여주기 위해 솔로몬 왕의 타락을 실례로 제시합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역사에서 교훈을 찾도록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왕이었지만, 정략결혼을 통해 맞아들인 이방 여인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했습니다(26b). 솔로몬의 타락은 나라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결국 이스라엘이 분열되는 불행한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느헤미야는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행동을 ‘큰 악’이요 ‘하나님께 범죄하는 행동’으로 규정합니다(27).
‘범죄하다’로 번역한 단어는 언약적인 용어로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행동’을 가리킵니다. 느헤미야가 이방 여인과의 통혼을 ‘언약적인 범죄’로 간주했다는 것은 귀환 공동체가 처한 위기를 방증합니다. 이방 여인과의 통혼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본 것은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라는 공동체의 정체성과 관계됩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그 땅의 백성’과 ‘이방 지역의 주민들’은 제의적으로 부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정한 이방 여인과의 결혼은 거룩함을 침해하는 행동이고, 성전을 오염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임재가 공동체로부터 떠나게 되어 민족의 멸망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3) 제사장 하나를 추방함(28)
느헤미야를 더욱 분노하게 한 것은 본이 되어야 할 제사장들이 이런 일에 앞장섰다는 것입니다(28).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한 명이 호론 사람 산발랏의 딸을 아내로 취한 것입니다. 산발랏은 암몬 사람 도비야와 함께 성벽 재건을 방해한 유다의 대적입니다(참조 2:10, 19; 4;1,7; 6:1-2,5,12,14). 산발랏과 도비야는 지속적으로 유다 공동체를 와해하려는 시도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공격이 얼마나 집요하고, 그들의 음모가 얼마나 교활한 방식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느헤미야는 곧바로 엘리아십의 손자에게서 제사장 자격을 박탈하고 공동체에서 추방합니다(28b).
(4) 기도(29-31)
그들을 하나님의 심판에 맡깁니다(29). 여기서 ‘그들’은 28절에 언급된 인물들 전체를 가리키는데, 그렇다면 할아버지 엘리아십과 아버지 요야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느헤미야가 이들을 정죄한 법적인 근거는 제사장 직분에 대한 규정입니다(레위기 21:7-14). 이 규정에 의하면, 대제사장은 자기 백성 중에서 처녀를 아내로 취해야 합니다(레위기 21:13-15).
대제사장의 혈통인 엘리아십의 손자는 이 쥬정을 지켜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것입니다. 엘리아십의 손자의 행동은 제사장 직분을 더럽힌 행동이었기에, 별도의 정결의식이 필요했습니다(30a). 그 후에야 비로소 느헤미야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직무에 복귀시킵니다(30b). 느헤미야는 끝으로 백성들에게 지시하여 번제단에 쓸 나무와 곡식의 첫 열매를 성전에 가져오도록 합니다(31a; 참조 10-13). 이것은 성전 제의와 운영에 대한 느헤미야의 관심을 보여줍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짤막한 기도로 회고록을 마칩니다(31b). 느헤미야 회고록에 자주 등장하는 기억 문구(remamber formula)는 사건의 종결을 표시하는 기능을 합니다(5:19; 6:14; 13:29). 느헤미야의 기도는 순간순간 하나님을 의지했던 느헤미야의 경건한 신앙을 보여즙니다. 율법(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기도)이 느헤미야 개혁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느헤미야서의 종결은 에스라처럼 열려 있는 형식(open-ended conclusion)을 취합니다. 다시 말하면, 개혁의 진행만 있고 끝은 없습니다. 이것은 귀환 공동체가 앞으로도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해나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종교개혁자의 표어처럼 개혁된 공동체(교회)는 계속해서 개혁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 각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춰보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개혁자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에베소서 4:13).
철저하고 과감한 결단 없이는 결코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경계와 울타리가 명확해야 공동체의 정체성이 분명해집니다. 느헤미야의 개혁 조치는 공동체의 경계와 울타리를 명확히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진리의 경계선이 모호해진 시대에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신앙의 진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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