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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8-02)


로마에서 마지막까지 복음을 전하는 바울

사도행전 28장 16-31절


 

“우리 교회에서 사도행전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사도행전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기적들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성도들은 아마 사도행전의 결론부를 보고 실망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이 성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그 마지막 부분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 바울은 로마에 도착한 후, 가택연금 형태로 갇히게 되었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먼저 로마에 있는 유대 지도자들을 만나 자신의 무죄를 호소하였습니다. 바울은 두 번째 만난 회동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강론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사도행전은 서두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던 것처럼, 마지막도 바울이 사람들에게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거침없이’ 전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을 만남(16-28)

전도는 사역자 혼자 짊어지는 짐이 아니라 하나님과 펼치는 협동 작전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로 하여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할 기회를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끊임없는 영적 전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디고 어리석은 마음을 다스리셔서 은혜를 주셔서 복음을 듣도록 하십니다.

 

16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17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18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19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20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21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23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24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16-28)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23:11)라는 사명을 따라 우여곡절 끝에 그는 로마에 도착하였습니다.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재판을 받기 위해 2년 동안 가택연금 상태로 지냈습니다. 비록 갇혀 있기는 했지만,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찾아오는 사람들 향해 비교적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1) 로마에서 감금된 상태로 복음 전파(16-22)

 

드디어 바울은 긴 여정 끝에 목적지인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한 군인과 함께 개인 주택에 머무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16). 이것은 감금의 한 형태지만, 군부대 안이 아니었으므로 훨씬 가벼워진 감금이었습니다. 21-27장까지 바울의 재판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했던 저자는 바울이 로마에 와서 받은 재판 과정이나 결과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로마의 숙소에 정착하자마자, 하루를 쉬고 삼일 째 되는 날 바울은 가장 먼저 로마에 있는 유대 지도자들과 면담하는 것이었습니다(17). 표면적으로 그들에게 지금 상황과 과정을 설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바울이 항상 잊지 않았던 것은 어디서나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롬 1:16).

바울은 그들을 만나 자기는 유대인의 관습을 어긴 적이 없는데, 유대인들에 의해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넘겨졌다고 설명합니다(17). 누가는 여기서 복음서에서 예수님에게 사용한 표현(눅 18:32)과 비슷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어쩌면 누가는 사도행전을 읽는 독자가 예수님의 운명과 바울의 운명이 서로 중첩되는 것을 느끼기를 의도했을 수도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여기서 누가가 앞에서 기록한 것과 상충하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즉, 앞에서는 바울이 로마인을 통해 유대인의 손에서 구원받았다고 기록했는데, 여기서는 유대인에 의해 로마인의 손에 넘겨졌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는 여기서 이 사건을 세부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그 내용의 골자만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유대인들이 총독 벨릭스와 베스도 앞에서 바울을 고발한 것을 보면 이 말이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로마인들은 자기를 석방하려 했지만 그것을 유대인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라며, 바울은 자기가 황제 가이사에게 상소한 이유를 밝힙니다(17-18). 바울의 이 말에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믿을 수 있도록 하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20절의 ‘이스라엘의 소망’은 메시아의 오심과 부활에 관한 소망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자신이 신실한 유대인 신자이기 때문에 지금 로마인의 죄수가 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유대 지도자들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교는 로마가 합법적으로 인정한 종교였기 때문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바울의 설명에 대해 대답합니다. 그들은 먼저 유대로부터 바울에 대해 편지를 받은 일도 없고, 로마에 도착한 형제들 중에 누구도 바울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나 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21). 아마 바울이 로마 당국자들의 손에 넘어간 이후에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이 기소 건을 이길 승산이 거의 없기 때문에 포기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들은 이어서 도처에서 반대를 받고 있는 ‘이 파’(복음)에 대해 바울의 견해를 듣고 싶어 했습니다(22). 그들은 바울이 대변하는 이 파, 곧 나사렛 사람 예수의 복음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 전에 그의 견해를 경청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로써 유대인 지도자들과 바울 사이의 첫 번째 만남은 긍정적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다시 만날 약속을 잡고 헤어졌습니다.

 

(2) 유대인들과 2차 회동(23-28)

 

로마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의 말을 직접 듣기 위해 바울과 만날 약속된 날에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바울이 구금된 숙소로 찾아왔습니다(23).

따라서 바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중적으로 강론했습니다. 바울은 먼저 하나님 나라에 관해 전파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임하게 하신 참 메시아라고 전파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강론한 것은 그 동안 디아스포라로 흩어진 유대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쳤던 메시지와 동일했습니다.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로 예수님에 관해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율법과 선지자)이 말하는 오실 메시아는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통치(하나님 나라)가 메시아를 통해 온전히 성취되었다고 말합니다. 즉, 메시아에 대한 구약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온전히 성취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은 모두 믿는 것만은 아닙니다.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24). 세계를 상징하던 도시, 즉 로마에서 복음을 배척하였는데, 그것도 바울에 의하여 세계에 선포되는 복음을 배척하였다는 사실은 사건의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세계에서 유대인들에게 배척당하고 이방인들에게로 옮겨지는 모습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로 그 사실을 선언하였습니다. 그 사실은 유대인에게는 비극적인 소식이요, 이방인들에게는 영광스러운 소식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사야가 복음이 유대인에 의하여 배척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고 선언합니다, 26-27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사 6:9-10)라고 바울이 인용한 말씀은 사실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도적으로 계속 거부하면,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능력조차 상실하게 된다는 강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바울의 말은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복음을 거부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바울은 서신에서 때가 되면 유대인들의 마음이 바뀔 것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참조, 롬 11:25-32). 뿐만 아니라 누가는 바울과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초대교회의 사명은 이방인에게로 향합니다. 바울은 더 이상 ‘유대인에게 먼저’라는 책임감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었습니다. 누가는 아마도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사도행전의 독자와 초대교회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로마에 거침없이 전파(30-31)

사도행전은 소수의 믿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영광스러운 복음증거의 위임령을 받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이 소수의 믿는 사람들이 그 이후로 복음을 들고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서 전하였습니다. 이제 사도행전이 마감되는 시점에서, 복음이 세계의 중심부요 수도인 로마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전 세계에서 무수한 사람들에 의해 전파되고 있습니다.

 

30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30-31)

 

바울은 2년 동안 동일한 셋집에 머뭅니다.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지만, 사람들이 바울의 숙소로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자기에게 오는 사람이라면 계속해서 복음 전파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30, 물론 바울이 자유롭게 외부 출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디모데후서 2:9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선파하고 설교하고 가르치면서 새롭게 믿는 자들을 믿음의 뿌리 내리게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과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양육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은 이 2년간의 세월이 흐른 후의 이야기를 밝히지 않습니다. 2년이 지난 후 바울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도행전의 독자들은 이 점을 매우 궁금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30절은 어떤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에 관해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누가가 바로 이 시점에 사도행전을 기록했기 때문에 누가는 그 이후의 일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추정은 사도행전의 기록 연대를 상당히 이른 시기로 잡아야 한다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은 전체적으로 더 후대의 관점에서 기록되었다는 인상을 줍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통해 초대교회의 역사를 기록할 때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회고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바울을 고발하려는 유대인들이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입니다(참조. 행 28:21). 이런 상황에서 사도 바울이 자동적으로 석방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사도행전 23:11과27:24을 읽어보면, 누가의 글을 통해 바울이 결국 가이사 앞에 서게 되었을 것이라는 암시를 강하게 받게 될 뿐입니다.

셋째, 바울이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았고, 그 결과 무죄 판결을 받았거나 아니면 로마 당국이 바울의 기소 건을 취하했을 가능성입니다. 후자의 가능성, 곧 로마 당국이 바울과 관련한 사건을 증거불충분으로 취하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둡니다. 둘째와 셋째 추정은 바울이 한 동안 자유의 몸이 되었다가 다시 체포된 후 사형을 당했을 가능성과도 연결됩니다. 이것이 바울의 목회서신을 통해 추측할 만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바울이 이 시점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했지만 누가는 바울의 순교를 사도행전에 기록하고 싶지 않았다는 추정입니다. 누가는 이미 앞에서 바울의 순교를 암시하는 힌트를 충분히 제공했습니다(참조. 20:23-25,38; 21:13; 23:11; 27:24). 다시 말해, 바울이 로마에서 이방인들에게 자유롭게 복음을 선포하는 모습으로 마무리하기를 누가가 원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가 만약 바울의 순교나 로마에서 일어난 네로의 그리스도인 대학살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몇몇 관점들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습니다. 즉, 누가가 어떻게 로마 정부의 이미지를 이렇게 긍정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으며, 바울에 대한 로마의 태도(참조. 행 23:29)를 긍정적으로 그릴 수 있었겠습니까! 따라서 결론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결론은 쉽지 않습니다.

 

바울의 마지막이 어떻게 마무리 되었든지 간에, 어쨌든 바울의 최후 운명은 개인적으로는 중요하겠지만, 그가 전한 복음과 비교하면 부차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이 남긴 바울의 마지막 모습은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지금까지 사도행전에서 지속적으로 선포해 왔던 그 동일한 메시지를 ‘담대하고 거침없이’ 선포하는 모습입니다(31). 이 마지막 표현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바울에 대한 고발이 모두 거짓이고 불의한 것이었으며, 마침내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이제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는 것을 막을 수 없으며, 이 복음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강한 메시지로 끝을 맺습니다.


복음과 하나님의 행전은 세상 끝 날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구라고 인정하는 사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제자의 사명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을 통해, 어떠한 악조건 가운데서도 복음은 세상을 뒤덮으며 전진합니다. 바울은 갇혀 있었지만, 복음은 땅끝까지 넓게 퍼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도 바울과 같은 전도자를 찾으시고 계십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지금도 계속 굳건하게 행진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겠고 굳건하게 행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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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8-01)


마침내 로마에 도착한 바울

사도행전 28장 1-15절


 

구원은 죽어 있는 자를 살리는 역사입니다. 외부의 힘에 의해서 구원을 받아 살아나는 일입니다. 그 기적 같은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사랑을 배우고 자유를 배웁니다. 나와 타인을 나누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생명을 살게 하는 능력임을 알게 됩니다. 바울에게 살림의 역사는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 파선 배에서 구조된 바울 일행은 시칠리아 반도의 멜리데 섬에 도착하게 되고 거기서 겨울을 보내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원주민들의 극진한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바울이 독사에게 물리는 거건이 발생자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보호해주십니다. 또한 바울은 추장 아버지의 병을 고쳐주고 그들부터 환대를 받습니다. 것 달 후 멜리데를 떠난 바울은 무사히 로마에 도착합니다.

 

시칠리아 멜리데에서 월동(1-10)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되고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어떤 상태에도 포기하지 않고 열정과 헌신을 통해 새롭고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멜리데에 도착한 바울은 새로운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1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3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7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8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9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1-10)

 

본 단락에는 로마로 가는 여정에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도착한 시칠리아 반도의 한 멜리데 섬에서 일어난 일들과 로마로 향하는 바울의 마지막 여정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바울과 함께하셨던 주님은 오늘날 사도행전을 읽는 성도들의 삶에도 함께하십니다.

 

(1) 멜리데 섬에 도착한 바울(1-2)

 

바울 일행이 탄 배는 유라굴로라는 큰 풍랑을 만나서 십사일 동안 표류하다가 한 섬에 도착했습니다. 누가는 모든 사람이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나서 보니 이 섬의 이름이 ‘멜리데’ 섬이었다고 기록합니다(1). 멜리데 섬은 다행이도 시칠리아 반도 남부에 위치한 섬인데, 오늘날 몰타에 해당합니다. 폭풍이 로마 가까운 곳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배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아무도 이곳으로 인도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로마로 가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들이 죽을 줄로만 알았습니다. 바울의 지도 하에 모든 사람들이 구조된 것입니다. ‘멜리데’는 셈족어로 ‘안식처’ 혹은 ‘피난처’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누가가 당시에 알고 있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멜리데 사람들은 본래 페니키아인들로서 셈족어 계통의 포에니 사투리를 사용했습니다. 특히 변방에 사는 사람들은 헬라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토착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그들을 ‘원주민’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원주민들은 대체적으로 낯선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표명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원주민들은 특별한 동정을 베풀어서 파선으로 인해 난민 신세가 된 276명(27:37)을 오히려 정성껏 환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배를 노려서 강탈하려는 원주민이었다면, 겨우 구조된 후에 비참하게 죽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환대함으로 그 날 비가 내리고 날씨가 매우 추웠기 때문에 불을 피워서 바울과 선원 일행을 친절하게 맞이합니다(2).

 

(2) 독사에 물린 바울(3-6)

 

하지만 바울에게는 또 다른 위기가 닥쳐옵니다. 배 안에서도 매우 헌신적이며 현실적인 도움을 주었던 바울은 육지에 오른 후에도 계속해서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3). 바울은 추은 날씨에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마른 나뭇가지를 한 아름 안아다가 불 속에 넣었더니 뜨거운 열기 때문에 독사가 한 마리 튀어나와서 바울의 손을 물고 있었습니다(3). 여기서 사용한 헬라어 ‘에키드나’(ἔχιδνα)는 독사를 가리킵니다.

그 순간 섬에 사는 원주민들은 다음과 같이 수군거렸습니다. ‘이 사람은 분명히 살인자다. 바다에서는 살아 나왔지만 정의의 여신이 그를 그대로 살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4) 독사가 물어 죽게 되는 것을 보니, 바다의 신이 살려주었을지 모르지만, 정의의 신이 바울을 심판하여 살인자가 분명하다고 확신합니다.

바울은 태연하게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그 독사를 불속에 떨어뜨렸습니다(5). 바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머리털 하나 상치 않고 로마에’ 도착할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27:22-26).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원주민들은 바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주시하며, 그의 살이 부어오르거나 당장 쓰러져 죽으려니 생각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기다려도 아무런 이상이 생기지 않자 그들은 바울을 신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가는 문학적인 위트를 소유한 누가는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원주민들의 미신적인 생각을 살짝 유머러스하게 믿음의 비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 인간의 생사화복을 진정한 신이라고 보여 주었습니다.

 

(3) 열병을 치유하는 바울(7-10)

 

누가는 7절부터 ‘멜리데’ 섬에서 일어났던 두 번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 이야기는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과 다른 사람들의 질병을 고친 이야기와 흡사합니다. 멜리데 섬의 추장은 농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초대를 받아 사흘 동안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초대를 받은 자 중에는 바울과 내레이터(누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마침 추장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었는데, 바울이 그를 보고 들어가서 그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병을 낫게 해주었습니다. 바울의 치유 기적을 듣고 그 섬에 사는 다른 병자들이 바울을 찾아왔고, 바울은 그들의 병도 모두 고쳐주었습니다. 원주민들은 바울이 자신들의 병을 고쳐준 일에 대한 감사의 멜리데, 표현으로 극진히 접대하였고, 그 섬을 떠날 때 필요한 물건들을 배에 실어주었습니다.

누가는 이 단락에서 ‘우리’라는 1인칭 복수를 사용하는데 이는 누가도 바울과 함께 의료 기술을 발휘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는 단순히 바울이 행한 일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11-15)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반드시 이루신 분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세상 가운데 주님께서 맡기신 일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감당하야 할 일들을 예수님의 제자답게, 거룩한 방법으로 감당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19:21)고 약속하셨던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11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12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15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11-15)

 

바울과 그 일행이 멜리데에서 석 달을 보낸 기간은 긴 겨울철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다른 배들도 겨울철이었기 때문에 항해를 멈추고 봄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멜리데 섬에 다른 알렉산드리아 배가 정박해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닙니다. 이 배 역시 곡식을 로마로 실어 나르는 배였을 것입니다. 누가는 그 배의 세부적인 정보까지 독자들의 흥미를 위해 제공해줍니다. 그는 이 배의 선수상(船首像)은 두 신(디오스구로)으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들이 탄 배는 먼저 시칠리아 섬의 수도인 수라구사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 사흘 동안 머물렀습니다. 이런 정보는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이야기 속에서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에 누가의 단순한 창작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역사적 기록을 반영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들은 수라구사를 떠나 레기온(오늘날로 하면 레기움)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레기온에서부터 북쪽으로 남풍을 타고 속도를 내어 이튿날 보디올(오늘날로 하면 포추올리)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보디올은 당시에 밀무역의 주요 항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누가는 바울과 그 일행이 그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만났고 그들의 초대를 받아 이레를 그들과 함께 지냈다고 기록합니다. 보디올은 당시 유대인 공동체를 비롯해 국제적인 도시였으므로 그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만났다는 사실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주석가들은 바울이 그곳에서 자유롭게 신자들과 한 주간동안이나 교제하며 지낼 수 있었던 점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습니다. 이 기간을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로마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맞이하기 위해 올 수 있는 누가의 문학적 장치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한편 백부장이 이 기간 동안 로마에 가서 추가 지시를 받아왔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라는 누가의 설명도 난해합니다. 아마도 이 구절은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침내 로마에 도착하게 되었다’의 의미일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보디올에서 로마로 들어가기까지 육로를 통해 여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기 전에 소식을 들은 성도들이 그를 맞이하러 나왔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은 아마도 보디올에 있던 성도들에 의해 로마에 전달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두 지역의 성도들이 각각 바울을 맞이하러 로마로부터 약 69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압비오 광장과 로마로부터 약 53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한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마중나오게 됩니다. 누가는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용기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로마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며 예배하는 신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바울에게는 적지 않은 격려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서 살아났습니다. 죽을 위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낯선 사람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자기 안에 역사하시는 부활의 주님과 능력의 성령과 동행했습니다. 그 주님을 의지하여 설려내는 역사에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살아난 자를 통해 살려내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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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7-03)

 


광풍 속에서도 인도하시는 하나님

사도행전 27장 27-44절


 

모든 게 정상일 때는 굳이 하나님을 믿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차지한 위치와 갖고 있는 것들이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나의 한계 앞에 설 때 비로소 생깁니다. 하나님을 알 때 생깁니다. 바울이 탄 배 안에서 믿음의 진가는 어떻게 드러납니까?

 

  • 광풍으로 인해 아드리아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던 배는 미항을 떠난 지 14일 만에 기적적으로 육지에 근접하게 됩니다. 이에 선원들이 배를 버리고 거룻배로 도망가려고 시도하지만, 바울의 조언에 따라 군인들이 거룻배의 줄을 끊어버림으로써 수포로 돌아갑니다. 바울은 또다시 동료 승객들에게 음식을 권하며 위로합니다. 마침내 배에 탔던 276명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육지로 구조됩니다.

 

육지에 접근한 배(27-29)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에 현실과 동떨어진 천국만 말한다면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신자들도 어려움에 처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려움과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위로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도록 도와줌으로 복음 전도의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27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28물을 재어 보니 스무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29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니라(27-29)

 

바울은 앞 단락에서 배만 손상될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말로 사람들을 위로했습니다. 이제 그 위로의 말이 현실에서 이루어집니다. 27절부터 ‘우리’ 단락이 다시 시작됩니다. ‘열나흘째 되는 날’은 아마도 그들이 미항을 떠난 지 14일째 되었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가 위에서 묘사한 대로 이 기간은 바울이 탄 배가 광풍에 의해 약 885km를 표류해 밀려왔다면 실제로 걸릴 만한 시간으로 추정됩니다. 당연히 이 측정에는 도중에 바람의 방향이 여러 차례 바뀐 것도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 ‘아드리아 바다’는 오늘날로 하면 이탈리아와 발칸 반도 사이에 있는 바다(걸프 만)를 가리키지만, 당시의 용례로는 시칠리아 반도와 그레데 섬 사이의 해역까지도 아드리아 바다에 포함되었습니다.

 

멜리데 섬은 시칠리아 반도 남단에 위치한 아주 작은 섬입니다. 이렇게 오랜 기간을 표류하며 오다가 선원들은 배가 육지에 가까이 왔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그들은 육지에 가까이 왔음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이 일이 낮에 일어났다면 육안으로 알아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이 일이 자정쯤에 일어났다고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그들은 해안을 향해 부딪치는 큰 파도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이 소리를 통해 배가 육지에 근접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육지에 가까이 온 것을 느낀 선원들은 이제 배 밑의 수심이 얼마나 되는지 수심을 측정하기 시작합니다. 아마 그들은 끈에다 추를 달아 내려 봤을 것입니다. 누가는 처음에 재니 스무 길이었고 조금 더 가서 재니 열다섯 길이라고 기록합니다. 점점 더 육지에 가까워졌다는 의미입니다. 일부 학자는 누가가 수심을 재는 선원 옆에 서서 그 내용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면 누가가 기록한 수심은 누가의 문학적 창작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수심이 점점 낮아지고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백파의 소리에 대비해 선원들은 안전 대책을 실행에 옮깁니다. 그들은 혹시 배가 암초에 걸리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고물에서 닻 네 개를 내리고 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립니다.

 

선원들이 도망을 시도(30-32)

 

우리는 공동체에서 각자 맡은 역할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감당하는 데 끝까지 충성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공들이 도망하려는 계획을 알아차린 바울은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알려서 그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군인들은 바울의 말대로 거룻줄을 끊어 버립니다.

 

30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31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30-32)

 

누가는 30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놓거늘. 누가의 이 기록에 따르면 선원들은(어쩌면 그들 중 일부) 배에서 도망하기 위해 뱃머리에서 닻을 내리려는 척하면서 거룻배(16)를 바다에 내려놓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경주석가들은 이러한 악천후에 배에서 도주하려는 시도는 거의 자살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학자들은 선원들이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동이트기 전까지 배에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었음을 지적하며 누가의 이 기사에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은 언제나 합리적인 판단만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냉철하게 생각하기보다는 논리적으로 볼 때 매우 어리석인 방법을 선택할 때가 많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원들의 의도가 어떤 것이었든지 간에 바울은 선원들이 배에서 도주한다면 승객들에게 닥칠 위험성에 대해 백부장에게 전달합니다.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누가는 왜 선원들이 배에 남아 있어야 모든 승객들이 안전한지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배를 안전하게 운행할 전문가들의 손이 없다면 엄청난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이제 백부장이 바울의 조언을 무시하지 못할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군인들은 바울의 조언에 따라 거룻배를 묶고 있던 줄을 모두 끊어버렸습니다. 백부장은 이 방법이 선원들을 배 안에 남게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랜만에 음식을 먹음(33-38)

우리는 누군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함으로 삶의 어떤 위기 속에서도 바울처럼 평안을 잃지 않고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세상에 참소망을 제시하는 참된 통치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33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34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35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38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33-38)

 

이제 바울이 다시 한 번 이 이야기에 개입합니다. 배가 닻으로 고정되고 날이 밝아오자 바울은 무려 14일 동안이나 금식을 강요당한 동료 승객들에게 음식 먹을 것을 권합니다. 이제 상황이 많이 안정되어 음식을 조리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육지에 무사히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체력이 필요했기에 음식을 먹고 에너지를 재충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 한 번 모든 사람이 생명에 지장 없이 안전하게 구출될 것이라며 그들을 안심시킵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참조. 삼상 14:45; 마 10:36; 눅 12:7;21:18).

 

바울은 안심하라는 위로의 말을 전한 후 손수 떡을 떼어 먹으며 동료들을 격려했습니다. ‘하나님께 축사하고’는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식사 전에 일상적으로 행했던 감사 기도를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능동적으로 음식을 먹는 바울을 본 동료 승객들도 용기를 얻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어 먹는 모습을 그리는 누가의 묘사는 예수가 오천 명을 기적적으로 먹이던 모습(눅 9:16),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던 모습(눅 22:19),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와 식탁교제를 나누던 모습과 흡사합니다. 따라서 많은 성경주석가들은 이 장면에서 초대교회에서 행했던 성찬식을 연상하기도 합니다. 초대교회는 성찬식을 따로 행한 것이 아니라 일반 식사 도중에 행했습니다(고전 11:17-34). 바울이 이 자리에서 누가를 포함한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찬식’을 거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누가는 그 배에 탔던 사람의 수가 모두 276명이었다고 덧붙입니다. 꽤 많은 숫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일부 사본에는 76명이라고 되어 있지만, 필사자의 실수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요세푸스도 아드리아 바다에서 600명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누가가 이 숫자를 여기서 언급한 이유는 나중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모두 구원받게 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리라.

 

무사히 육지에 상륙(39-44)

사람들의 현실적 필요를 채워 주는 섬김과 봉사는 그들이 복음에 마음을 열게 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의 삶의 문제에 민감하게 대처해 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와 교회는 지역 사회 속에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선교지에서 섬김과 봉사가 이어지도록 끊임없는 기도와 함께 물질적 후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39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40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41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42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43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39-44)

 

모두 배불리 먹고 난 뒤에 사람들은 배를 가볍게 하려고 곡식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들은 또한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고 키를 묶었던 밧줄을 늦추었습니다. 그리고 전면의 돛을 올려 바람을 타고 해안 쪽으로 배를 몰았습니다. 그런데 두 물살이 합쳐지는 곳에 와서 배가 모래톱에 걸려버렸습니다. 이 물은 박혀서 움직이지 않게 되었고 고물은 심한 물결에 깨지고 말았습니다. 이때 군인들은 죄수들이 혹시 헤엄쳐 도망갈까 하여 그들을 모두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군인들의 계획을 미리 알아채고 헤엄칠 수 있는 사람들은 먼저 뛰어내려서 육지로 올라가라고 명령했습니다. 누가는 이렇게 해서 모두 무사히 육지로 올라오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순풍일 때는 몰랐습니다. 배를 의지했고 선장을 의지했습니다. 하지만 광풍 앞에서 가진 것은 쓸모없었습니다. 배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절망만 주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 광풍보다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희망은 거기서 나왔고, 구원은 거기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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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7-02)

 


미항에서 출발한 후 만난 유라글로

사도행전 27장 12-26절


 

세상의 문제는 눈에 보이지만,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큰 위기를 만나면 아무리 믿음이 강한 자라도 순간적으로 절망의 깊은 수렁에 빠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하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문제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찾아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배가 미항에서 출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광풍이 일어 위기에 처합니다. 선원들이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살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바울이 배는 파선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살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사람들을 안심시킵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만남(12-20)

 

세상에는 힘 있는 자들만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하나님 나라도 그렇다고 생각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도 힘과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잘못된 태도입니다. 그런 사람들만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다 그렇게 창조하셨을 것입니다. 세상에 힘 있는 자들만 자기 백성으로 삼아서 일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해가십니다.

 

12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13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14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15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20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12-20)

 

백부장과 모든 사람들은 항해가 위험하니 내년 봄까지 기다리자는 바울의 제안을 거부하고 전문가인 선주와 선장의 말을 믿고 따랐습니다. 바울의 제안은 바울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 바울은 단지 죄인 중에 한 명에 불과 했습니다.

 

바울이 탄 배는 미항이라는 작은 항에 정착해 있습니다. 이곳은 겨울나기에 불편하며, 또한 겨울철이면 북동풍으로부터 배를 보호하지 못한 곳이었습니다(12). 그래서 넓고 편리한 뵈닉스 항으로 가야 할 것인지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선장과 선주를 비롯해 배에 탄 대다수의 사람들은 항해하기 좋지 않은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풍이 불면 출발하자고 결론을 냅니다.

 

배에 승선한 사람들은 바람의 방향이 항해하기에 유리한 상황이 오면, 곧장 겨울을 보내기에 훨씬 더 좋은 뵈닉스로 출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뵈닉스는 미항에서 해안을 타고 약 80km 떨어진 곳으로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다수가 뵈닉스로 가는 것에 동의한 것입니다. 미항에서 뵈닉스까지는 잔잔한 남풍에 힘입어 해안을 타고 항해하면 하루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선장과 선주는 순한 남풍이 불자 곧 출항했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줄 알았습니다(13). 그런데 그들의 결정은 실수였습니다. 항해는 오래가지 못했고 목적지에도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바람의 방향이 갑자기 바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항해 전문가라도 모든 날씨를 예측하고 주장할 순 없습니다. 그들은 섬에 있는 산으로부터 광풍이 강하게 불어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그들이 타고 가던 배는 광풍에 휩싸이게 됩니다. 고대에는 항해술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강풍을 적절하게 다룰 만한 기술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배가 해안으로부터 멀어지더라도 부는 바람을 따라 배가 움직이게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선장도 선원도 필요 없었습니다. 오직 바람이 인도할 뿐입니다. 바람을 따라 가다 보니 배는 그레데 섬에서 약 37km 거리에 있는 ‘가우다’라는 작은 섬에 도달합니다(16).

 

선원들은 거룻배(구명정)를 갑판 위로 끌어올리고 배가 부서지지 않게 밧줄을 이용하여 선체를 동여맸습니다. 거룻배는 일반적으로 배의 뒷부분에 달고 다니는데, 광풍이 심할 경우에는 이 거룻배가 다른 큰 배와 충돌할 위험이 있어서 갑판 위로 끌어올렸을 것입니다.

 

선원들은 또한 배가 리비아 해안의 모래톱(스르디스)으로 처박힐까 두려워서 바다에 닻을 내리고, 그냥 계속 표류할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원들의 이 모든 수고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가 계속해서 풍랑에 밀렸습니다. 큰 풍랑에 의해 배 안에 물이 들어와서인지 배에는 많은 곡물이 실려 있었기 때문에 점점 더 무거워졌습니다. 그들은 하는 수 없이 배에 실은 화물을 바다에 내버려 배를 가볍게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려고 무리한 항해를 했지만, 있던 것 마저 버려야할 저지가 되었습니다.

누가는 어떤 화물을 바다에 내던졌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지만, 지금 타고 있는 배가 곡식을 나르는 배였기에 곡식의 일부도 어쩔 수 없이 내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구약에서 요나가 탔던 배의 상황과 비슷한 형편에 놓인 것입니다(참조, 욘 1:5).

 

사흘째 되는 날에도 배를 가볍게 하는 작업은 계속되었습니다. 이제는 배의 장비까지도 바다에 내던지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스미스(Smith) 학자는 여기서 말하는 장비는 돛대의 하활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하활은 배의 길이만큼 긴 것으로서, 아마도 선원들과 승객들이 온 힘을 합해야 가능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과 그 일행이 만난 광풍 이야기의 절정은 선원들이 지금 배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를 전혀 짐작하지 못한 상황까지 이르렀다는 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큰 풍랑과 나쁜 기후 때문에 그들은 여러 날 동안 해와 별도 보지 못하고 살아 돌아갈 희망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시에는 태양이나 별을 봐야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럴 능력도 없었고 완전히 희망의 줄을 놓을 수밖에 없는 처참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누가는 그들이 처한 상황을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고 묘사합니다(20). 소망을 잃어버린 그들의 처지를 문학적으로 잘 묘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으로 읽는 독자들에게는 이 문장이 단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을 먼 길을 배타고 가는 항해의 길에 비유한다면, 우리들은 모두 바울과 그 일행이 타고 가던 배처럼 눈앞이 캄캄해지는 암흑과 같은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누가가 말한 것처럼 ‘구원의 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독자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바울이 나중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원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힘을 얻기도 합니다. 이것이 성경은 바울을 통해 독자들에게 주는 힘입니다.

 

바울이 위로의 말을 전함(21-26)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대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광풍과 같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인생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없음을 알게 해줍니다. 우리가 붙잡고 쌓아둔 것이 위기 때는 자신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자신을 해롭게 하기에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21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21-26)

 

이 단락에서는 바울이 이 이야기 속에 두 번째로 개입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은 어느 누구도 무엇을 먹을 기운도 없었고 먹을 기분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이 일어나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21). 지금까지 침묵했던 바울은 이제 모든 상황을 주고하고 이끌어갑니다. 배에 탄 사람들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는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바울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달려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내 조언을 듣고 그레데에서 출항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이런 재난과 손실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자신의 조언대로 미항에 남지 않았던 것을 매우 아쉬워합니다. 바울도 그런 면에서 우리와 똑같은 인생입니다. 그는 ‘내가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희망의 줄을 놓고 있는 자들에게 필요한 위로와 소망의 말을 전합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희망 사항을 그들에게 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확신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직 미항에 있을 때 바울은 미항을 떠나 출항하면, 그 배는 “화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27:10)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배를 타본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서 합리적인 판단력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그가 바다에서 만나는 광풍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경험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과거에 탔던 배의 기억을 되살렸을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25에서 파선을 당한 적이 세 번 있었고 꼬박 하루를 바다에서 표류한 적도 있었다고 회상합니다. 아마 당시 에도 적지 않은 생명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고 바울은 그 경험을 거울삼으려 했을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배의 손상은 막을 수 없겠지만,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22). 이것은 과거의 경험에서나 어떠한 계산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러한 확신의 출처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초자연적 계시라고 밝힙니다. 그는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해주었다”고 말합니다(23). 2년 전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처했을 때도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로마에서 주님을 증언할 것이라는 확신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행 23:11).

여기서 이 하나님의 사자가 전해준 메시지는 바울이 그때 받은 확신을 다시 확인해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24). 바울은 하나님의 보호 약속을 들었습니다. 배안에 있는 모든 이들은 안전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바울을 통해서 하신 하나님의 일 때문입니다. 그는 가이사 앞에 서서 증언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뜻이라는 것입니다(24). 바울과 한 배를 탄 다른 사람들의 목숨까지도 모두 지켜주실 것을 확인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는 말에는 바울이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는 의미이며, 누가는 그 응답의 확실성을 현재완료 시제(케카리스타이)를 사용함으로써 분명하게 나타냅니다.

 

바울은 배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5)라고 하나님께서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위태로운 고백입니다. 그렇게 되지 안했을 때, 오히려 하나님의 명예가 크게 손상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확신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신다는 믿음을 동료들과 함께 나눕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타고 가던 배가한 섬에 걸리게 되는데, 그 섬은 나중에 멜리데로 밝혀집니다.


우리의 일상은 평안한 바다나 험한 풍랑 속을 향해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풍랑으로 인해 심한 절망에 빠져 있습니까? 큰 풍랑이 두려워 소망을 잃어버렸습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게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그분의 뜻 가운데 우리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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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7-01)


가이사야에서 로마로 출발하는 바울

사도행전 27장 1-12절


 

‘역설(逆說)’은 수면 위에서는 모순이지만 수면 아래서는 손을 맞잡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삶에 고난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 없음이 하나님의 인도의 표지도 아닙니다. 고난 가득한 삶이 있을지라도 그 배후에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그리고 그 너머의 목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 이제 바울은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의 손에 넘겨져 로마로 향하는 배에 오르게 됩니다. 가이사랴를 출항한 배는 이튿날 시돈에 도착합니다. 바울은 백부장의 특별한 호의를 받아 그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고 식탁교제를 나눕니다. 사돈을 떠난 배는 맞바람을 맞는 어려운 기후 조건에서 항해하다가 무라에 도착하였고 여러 날 만에 미항에 도착하였습니다. 바울은 좋지 않은 기후에도 항해를 강행하려는 선장과 선주에게 출항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가이사랴에서 출항(1-5)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상황이나 삶에 의해 좌우될 때,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우리는 자신의 인생의 배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항구에 이르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모든 과정 하나하나마다 통제하려고 하거나 자신이 바라는 여건을 조성하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만 일하시고 설명하실 수 있는 더 많은 여백과 신비를 남겨둘 때, 결과로 인하여 교만하지 않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찬송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상황이나 사람에 의해 좌우될 때라도 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을 의지해야 합니다.

 

1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4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5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1-5)

 

바울은 유대인의 고소로 인해 재판을 받으면서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가서 재판을 받겠다고 상소했습니다(25:11-12). 이제 드디어 바울이 로마로 향해 출발합니다. 그 길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에 따라서 복음의 사역이 땅끝을 향해 진행되어져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예수님께서 주신대로 ‘로마에서 증거하리라’(23:11)는 사명을 따라 로마에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로마 행은 많은 사람들이 환영 받은 성공한 사역자의 모습이 아니라 사슬로 묶인 죄수의 신분으로 가고 있습니다.

 

여러 장에 걸친 바울에 대한 고발과 재판 그리고 바울의 변호에 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이제 27장부터는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가는 긴 여정이 상당히 자세하게 소개됩니다.

1절부터 다시 ‘우리’ 단락이 시작됩니다(참조. 행 16:10-17; 20:5-8, 13-15; 21:1-18). ‘우리’ 단락은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여기서 묘사되는 사건에 동참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마지막으로 ‘우리’ 단락이 끝난 구절은 21:18(예루살렘교회 방문)이었는데, 그렇다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누가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누가가 이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어쩌면 이 기간 동안 누가는 유대 팔레스타인에서 자신이 기록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초반부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은 추측은 입증할 방법이 없지만, 상당히 개연성이 있는 추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를 통치하고 있던 로마 관리들은 바울과 죄수 몇 명을 백부장 율리오에게 로마까지 호송할 수 있도록 맡겼습니다. 이것을 누가는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라고 기록합니다(1). 그러나 누가의 이 표현은 바울만 죄수의 몸으로 가게 된 것이고, 누가를 포함한 바울의 일행인 ‘우리’는 단지 같은 배를 타고 가게 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여기에 기록된 바울의 로마행 항해 이야기는 당시 일반인들이 지중해를 어떻게 항해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역사적 자료에 해당합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배들은 지중해의 해변을 따라 항해했으며, 가능한 한 겨울철에 항해하는 것을 피했습니다. 바울과 그 일행이 타고 간 이 배는 원래 소아시아 서쪽 해변에 위치한 항구 도시 아드라뭇데노(드로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출발해 여러 항구 도시를 거쳐 항해하고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배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이사랴에서 로마로 직접 가는 배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에 일반적인 방법을 취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백부장 율리오는 향해하는 도중 어느 중간 지점에서 이탈리아 행 배를 만나 환승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는 이 여정에 마게도냐 지방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동행했다고 밝힙니다(2). 아리스다고는 사도행전 19장에서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 때 등장했고, 20장에서 바울과 함께 이방인 교회의 대표자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일행 중 한 사람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데살로니가에서 얻은 재종자로 신약성경의 다른 본문, 즉 빌레몬서 1:24과 골로새서 4:10에서 바울의 동역자이자 함께 옥에 갇힌 자로서 끝까지 함께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만약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빌레몬서와 골로새서가 기록된 것이 사실이라면, 아리스다고가 이때 바울과 함께 로마로 갔을 가능성이 분명해 보입니다.

 

바울 일행이 탄 배는 가이샤라에서 출발한 다음 날 북쪽 해안으로 약 110km 정도 떨어진 시돈 항에 도착했습니다(3). 이곳은 조류가 북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하루 만에 도착한 것입니다. 이곳에서 가이샤라에서 보낸 화물을 내리고, 다시 소아시아 지역으로 갈 화물들을 선적하기 위해 잠시 정박했습니다.

그 사이에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풀어줍니다. 어떤 특별한 대접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동료 그리스도인들(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식사를 대접받거나, 앞으로 여행하는 동안 필요한 물건들을 공급받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바울이 자유의 몸이 된 것이 아니고 아마도 바울을 지키는 군인이 그와 동행했을 것입니다.

 

배는 다시 출발하여 다음 기착지 루기아의 무라 성 항구로 향했습니다(4). 시돈에서 무라까지의 일반적인 항로는 구브로 섬 서쪽 해안을 따라 힘겹게 목적지를 향해 갔습니다. 바울도 3차 선교여행 도중 바다라에서 두로로 여행할 때 이 항로를 이용했을 것입니다(행 21:1-3). 그러나 이 항로는 서풍 혹은 북서풍이었기 맞바람으로 아주 어려운 항해를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람이 없는 구브로 섬의 동쪽 해안을 끼고 항해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을 것입니다.

배는 구브로 섬을 돌아서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항해해 무사히 루기아의 항구 도시인 무라에 도착했습니다. 대체적으로 이 항해는 15일 걸린 것으로 파악됩니다.

 

무라에서 로마행 배에 승선(6-8)

편한 것, 안전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성도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상황과 상관없이 주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평안과 안전은 상황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분명한 의로운 사역에도 역풍은 있습니다. 순풍이 늘 하나님의 인도의 표지는 아닙니다. 로마로 가는 길은 순풍은 아니지만 아무도 그 길을 가로막지는 못했습니다.

 

6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7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8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6-8)

 

바울이 탄 배가 무라에 도착함으로써 첫 번째 항해가 마무리 됩니다(5). 당시 로마의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곡식을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오가며 실어 나르는 배가 많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로마에게는 이집트가 곡식 창고와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맞바람을 맞으면서도 항해할 수 있는 항해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북쪽으로 먼저 항해를 해서 무라에 도착하고, 거기서 소아시아의 해변을 따라 항해하는 항로를 이용하곤 했습니다.

바울을 태운 배가 무라에 도착했을 때 알렉산드리아 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알렉산드리아 배는 분명히 로마로 곡식을 수송하는 배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 사실은 나중에 배를 가볍게 하려고 싣고 가던 밀을 바다에 내던져야 했던 일에서 확증됩니다(38).

 

바울 일행이 환승해 로마가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는 올라탔습니다(7). 그 배는 강한 북서풍 맞바람으로 인해 항해에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들은 수일 만에 이집트로부터 오가는 배가 많이 들어오는 니도라는 항구에 도착합니다. 이곳에서 니도까지는 동쪽에서 부른 바람은 배를 밀어주는 순풍이기 때문에 그 바람을 만나면 하루에 항해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짧은 거리를 상당한 날 동안 항해한 것은 역풍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보여 줍니다.

여기 무라에서 그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순풍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역풍을 맞으며 항해를 강행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항해를 강행했습니다. 배는 심한 바름 때문에 정상적인 경로로 항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배는 북서풍을 피해 그레데 섬의 남쪽 해안을 따라 거슬러 가는 방법을 취했던 것입니다. 그레데 섬의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는 것도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라새아 성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미항이라 불리는 항구에 도착합니다(8).

선장은 이곳에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이 항구는 작아서 큰 배가 겨우내 머물러 있을 여건이 갖추지 못했습니다(12).

이 짧은 단락에서 바울이 탄 배의 항해가 순탄치 않음을 계속 지적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두 배의 경우 바람과 풍랑으로 인해 항해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사실은 바울을 비롯한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점차 풍랑이 심하게 일어나 항해가 어려운 상황에 항해를 계속하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바울은 더 이상 항해를 계속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 이유도 이러한 사실에 있었습니다.

 

바울의 조언이 거부됨(9-12)

생명의 길은 다수가 선택하는 길이 아닙니다. 오직 소수만이 그 좁고 불편한 길을 걸어갑니다. 다수가 그 길을 걷는다고 그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찾는 이가 적어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밝혀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이제 이 배의 운명은 선장이 아니라 바울의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9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10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11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12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9-12)

 

1-8절에서 저자는 바울 일행이 승선한 배가 항해하는 데 계속해서 이려움이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바울은 험난한 항해를 예고하는 풍랑을 수동적으로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락부터 바울은 항해를 적극적으로 반대합니다(9). 이 단락의 초점은 바울이 항해를 만류하면서 경고했던 대로(9-10) 점차 실현되는 것(14-20)을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바울의 경고는 항해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이해하는 열쇠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관점을 갖고 구체적인 내용을 검도해 보아야 합니다.

 

그 동안 계속해서 날씨가 좋지 못해서 항해가 많이 지연되었고, 그들은 미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항해할 수 있는 기한이 지나버렸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을 누가는 금식하는 절기로 표현합니다(9). 이 표현은 유대인들의 대속죄일을 가리킵니다. 유대교 달력은 음력 기준이므로 달의 위치에 따라 매년 날짜가 바뀝니다. 주로 9월에서 10월에 해당하는데, 브루스(Bruce)는 주후 59년에는 대속죄일이 평년보다 조금 늦어져 10월 5일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견해는 로마 군인 작가인 베게티우스의 진술과도 일치합니다. 그는 9월 15일 이후부터는 항해가 위험하다고 기록하고 있고 11월 11일부터 이듬해 3월 10일까지는 항해가 완전히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간 중에 항해가 위험한 이유는 극심한 겨울 폭풍 때문만이 아니라, 짙은 구름과 안개로 인해 안전한 가시거리의 확보가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가는 이 시점에서 바울이 개입하는 모습을 기록합니다. 바울은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10)고 말합니다. 그는 여기서 단순히 시기적으로나 기후적으로 항해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상식선에서 이야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선견지명을 가지고 예언자적인 발언을 하는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바울이 혹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계시를 받고 이 발언을 했는지 누가는 어쨌든 그 사실을 여기서 확실히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단순히 어떤 막연한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재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또한 이어지는 바울의 21-26절의 발언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11절은 백부장이 항해에 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보다는 선주와 선장이 그의 의견을 물었을 때, 백부장이 바울의 말보다 항해 전문가인 선주와 선장의 의견을 따랐음을 뜻합니다. 좋지 않은 항해 조건에도 왜 항해를 감행하게 되었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구절입니다.

 

바울은 세 가지 손해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백부장은 반대로 세 가지 요소에 근거해 항해를 강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곧 해를 지휘하는 선장의 주장, 배의 소유자 선주의 주장, 그리고 겨울을 보내기에 미항이 불편하다는 점이었습니다(11-12).

사람들은 대부분 뵈닉스 항구로 가서 겨울을 지내자는 의견에 찬성했습니다. 뵈닉스 항구는 크레타 섬의 항구로, 겨울에 부는 북동풍으로부터 배를 보호하는 데 효과적인 지형 조건을 가진 곳이었습니다. 배는 미항에서 멀지 않은 뵈닉스 항구까지만 갈 것이므로 항해 전문가들의 입장에서 볼 때 크게 무리가 될 것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객선은 아니었지만 바울이 탄 배는 로마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향해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믿는 자만 보일 수 있는 통찰, 하나님의 돌보심의 증거들을 갖고 있는 다들입니다. 그 증거들로 고난의 항해를 마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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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6-03)


미쳤다고 호통친 아그립바 왕을 대한 바울

사도행전 26장 24-32절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이해되는 것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성을 절대화하고 거기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참된 자유인은 이성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참된 자유인은 성경에 근거한 믿음으로 사고하고 행동합니다.

 

  • 바울의 간증을 듣고 있던 총독 베스도이 자신더러 ‘미쳤다’하는 말을 듭니다. 그리고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한다고 밝힙니다. 아그립바 왕이 바울이 적은 말로 자신을 그리스도 인되게 권한다고 하자, 바울은 결박된 것 외에는 모두가 자신처럼 되길 바란다 말합니다. 왕은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않았다면 석방될 뻔했다고 말합니다.

 

베스도의 반응(24-25)

 

우리는 하나님께서 누구의 마음속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한다 할지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굳은 마음을 녹이셔서 복음에 마음을 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 모두가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전도자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24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24-25)

 

바울이 자신의 회심과 소명에 대해 변론하자 총독 베스도는 갑자기 크게 외치며 변론을 중단시켰습니다. 그리고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글들이 너를 뒤집어서 광기로 이끈다”(24)라고 외쳤습니다. 베스도의 외침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긍정적인 면은 베스도가 바울의 학문을 대단한 것으로 평가한다는 점입니다. 그가 말하는 학문은 아마도 구약성경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면보다 훨씬 강하게 드러나는 부정적인 면은 바울이 미쳤다고 평가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구 차례에 걸쳐 바울에게 ‘미쳤다’는 표현을 썼습니다(24).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로마인과 헬라인은 합리적인 사고에 근거해 분명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렸을 것입니다.

 

따라서 베스도의 외침은 경이와 이해의 결핍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총독 베스도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할 때 끼어들었습니다. 이는 바울이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 연설할 때, 철학자들이 보인 반응과 유사합니다(참조, 17:32), 그리스 철학자와 로마 총독은 많은 글들과 지식이 죽은 자의 부활과 다메섹 도상에서 빛 가운데서 나타나 말했다는 것은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비합리적인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의 말을 점찮게 받아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어구에는 두 가지 표현법이 동원되었습니다. 하나는 중언법(헨디아뒤이온)입니다. 진리와 맑은 정신은 동의어가 아닌데, 여기서는 모두 ‘광기’의 반대말로 쓰였습니다. 바울은 단어들의 개념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맑은 정신으로 말하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다른 하나는 히브리적 소유격입니다. 소유격 명사들이 뒤의 명사 ‘말들’을 형용사처럼 꾸며 줍니다. 따라서 ‘맑은 정신으로 말하는 사실의 말들’은 사물의 본질에 대한 오해, 오류,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진술하는 말을 가리킵니다.

그는 자신이 ‘참되고 온전한 말’, 즉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바울은 비스도가 자신의 연설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변론이 한치의 오차도 없는 진리의 말씀임을 강조하고 신중한 생각으로 받아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아그립바의 반응(26-29)

첨가된 정보 하나로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마저 ‘사람은 안 변한다’는 말을 예사로 합니다. 목회자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때는 절망감마저 듭니다. 정말 그런 것입니까? 복음 앞에서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단호하게 축구해야 합니다.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선언해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논리로만 전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에게 복음은 그의 삶을 변화시킨 진리였습니다.

 

26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26-29)

 

바울은 다시 심문을 관장하고 있는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의 말이 사실에 입각한 진실이라는 증거를 제시합니다(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바울 시대의] 현대사입니다. “어떤 것도 [세상의] 한쪽 귀퉁이[끝 지점]에서 일어난 것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뿐 아니라 탄생부터 지상 생애까지 모든 사실이 유대인들이나 로마 정부에 잘 알려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에 사는 타키투스가 이를 알았다면, 아그립바도 알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아그립바(AD 27/28~100년)는 로마에서 클라우디우스와 친구로 지내며 교육을 받았으며, 젊은 시절 대제사장 의복 문제를 중재하기도 했습니다(Josephus, Ant, XX 10). 그는 성전 통치권, 헌금관리권, 대제사장 임명권 등을 가지고 있었고, 유대 전쟁이 발발하기 전유대인들에게 긴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Josephus, Bell.II 344~407), 그는 로마와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아그립바가 이 일들 중 어떤 것도 모르는 것이 없다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었습니다(26).

 

다른 하나는 과거의 소리입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들을 믿으시나이까?”(27). 이 질문에 아그립바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믿는다’고 대답하면 바울의 변증에 동의하는 셈이 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자신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말한 것 외에는 전한 것이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선지자들을 믿는다고 하다면, 모세와 선지자들이 전한 메시지의 요체, 곧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참조, 눅 24:46~47)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그립바가 만일 ‘믿지 않는다’고 대답하면 위증하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가 ‘이 일에 관하여 잘 알기’ 때문입니다(26; 참조, 3; 25:22,26). 그러므로 “선지자들을 믿으시나이까?”라는 질문은 아그립바에게 굉장한 압력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러자 아그립바와 바울 사이에 신경전이 이어집니다. 아그립바 왕은 “네가 작은 것으로 나를 설득하여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려고 하느냐?”라고 대답했습니다. 바울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나는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말을 듣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작은 것으로’가 말에 대한 것인지, 시간에 대한 것인지 논란이 있습니다. 전자가 더 타당해 보입니다. 만일 시간을 뜻한다면 바울의 대답 가운데 ‘큰 것으로’를 ‘많은 시간을 들여’라고 이해해야 하는데, 그렇게 읽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ποιησαι’포이에사이(만들려 하다)도 이를 지지합니다. 이 부정과거 부정사는 ‘몇 마디 말’로 인한 설득과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을 일련의 사건으로 표현합니다.

 

아그립바 왕은 “네가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려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되게 하는 것, 법정에서 바울을 지지하고 보호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있고, 아그립바가 진지함과 비꼼의 중간 정도의 뜻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바울의 대답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바울은 천부장들, 가이사랴의 고위 관료들, 버니게뿐 아니라 총독과 왕까지 모두 복음아래 있기를 바란 것입니다.

 

배심원의 판단(30-32)

우리는 세상에 미치든지, 세상에 미치든지 선택해야 합니다. 바울처럼 오직 복음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의 역사는 삶의 변화시킵니다. 이런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복음의 반대자들 앞에서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은 환영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목적지는 로마였습니다, 그곳에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30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32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30-32)

 

본문은 바울의 변론이 공식적으로 끝난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과 버니게가 고위 관료들과 함께 사석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아그립바 왕은 재판에 대해 아무런 말 없이 일어납니다. 왕이 일어나자 모든 배심원들이 함께 일어났습니다(30). 재판이 끝난 것입니다. 공개적 선고는 없었으나 배심원들의 의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강당을 떠난 다음 자기들끼리 바울에 관한 사적인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31). 그리고 그들은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32).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아그립바가 ‘바울을 석방할 수 있을 뻔했다’라고 말하지 않고, “이 사람이 석방될 수 있을 뻔했다”라고 말한 점입니다. 만일 바울이 황제 법정에 상소하지 않았다면, 베스도는 바울에게 무죄를 선언하고 풀어 줄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바울의 무혐의에 대한 4중주가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는 바울을 로마로 보내 그곳에서 주님을 증거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섭리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바울을 심문하는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직 한 사람, 바울만 결박당한 채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만 홀로 돋보입니다. 그 이유는 그에게 참 자유를 주는 복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은 어떤 처지나 형편에서도 참된 자유를 누리며 당당하게 외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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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6-02)


아그립바 왕에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바울

사도행전 26장 13-23절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만난 간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전할 메시지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앞에 당신이 만나 예수님을, 당신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라고 사랑과 격려와 간증을 나누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나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지금까지 신실하게 지켜왔다고 말합니다. 그가 전한 복음은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에 합당한 삶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말을 다 들은 베스도는 바울이 미쳤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참말을 한다고 말하며 아그립바 왕에게 호소합니다. 모인 자들이 바울의 무죄를 인정하지만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했으므로 그는 로마로 보내지게 됩니다.

 

다메섹에서 만난 주님(13-18)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십니다.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어두움에 권세에서 빛의 자녀로 삶이 변합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변화의 삶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변화되길 원해 그리스도 앞으로 나가시길 바랍니다.

 

13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13-15)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통해서 그는 다시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간증을 합니다. 누구보다 더 기독교의 반대자였고, 핍박자였던 자신이 어떻게 가장 적극적인 복음의 옹호자가 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된 사실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변론 진행은 간략한 확증(confirmatio)과 반박(refutatio)에 이어 결론(perortio)을 제시합니다. 그가 전한 메시지의 핵심 내용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또 다시 간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반복적인 변론에 신경질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기쁘게 변론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가 기쁘게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게 주신 사명에 대한 충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나니아를 통해 주셨던 바울의 사명은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9:15)이였습니다.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임금들 앞에 복음을 전할 기회라는 것을 깨닫고 전한 것입니다. 이런 기회가 없으면, 총독이나 왕들에게 복음 전할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다메섹 사건을 언급한 내용은 이미 9장과 22장에서 언급되었습니다. 9장은 3인칭 시점에서 기록된 내용이고, 22장은 바울이 직접 증언한 내용입니다. 이제 26장 역시 바울이 증언한 내용인데, 앞의 두 기록과 몇 가지 차이를 드러냅니다. 먼저 바울이 경험한 빛을 여기서 가장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13). 9장에서는 ‘빛’(2), 22장에서는 ‘큰 빛’(6)인데, 여기서는 ‘해보다 더 밝은 빛’(13)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임을 말해줍니다. 여기서 바울이 빛의 밝기를 강조한 것은,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빛을 전하는 사명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습니다(18).

 

다시 그 사건으로 들어가면,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서 정오의 햇볕보다 더 밝은 빛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난 간증을 합니다. 그 빛 앞에서 바울과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이 땅에 엎드러지게 되었습니다. 바울에게 분명하게 그 빛 속에서 히브리 음성으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 음성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14)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주님’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그 소리’가 말했다고 밝힙니다. 이는 그 빛이 ‘가까이 가지 못할 빛’이었음을 증명합니다(딤전 6:16). 그 음성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었습니다.

 

그 음성에서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시채를 뒤발질한다’는 것은 수레를 끌거나 짐을 지고 가는 짐승이 반항하는 모습입니다. 주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짐승이 가려고 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바울이 주인의 뜻에 따르는 것을 싫어하고 반항하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바울은 그때까지 하나님을 섬긴다고 확신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앞에 나타난 이 빛과 음성은 무엇입니까? 바울의 행보를 막아선 존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 존재는 바울에게 다른 길로 가도록 촉구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쉽게 발걸음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이제껏 걸어온 인생길에 마음과 목숨과 힘을 모두 쏟아 부었는데, 어떻게 몸만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돌이키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버티고 뒷발질하면 짐승의 주인은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매질을 합니다. ‘가시’나 ‘쇠로 된 침’으로 고통스럽게 해서 바른 길을 가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뒷발질을 하면 할수록 그렇게 행동한 짐승은 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찾아오신 음성에 대해 “주여 뉘시니이까?”(15)라고 묻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15)라고 응답하십니다. 바울은 매우 놀랐습니다. 분명히 예수는 갈보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죽었던 예수를 살아나셨다고 주장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그런 엉뚱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잡아서 옥에 넣었던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진짜 살아나셨고, 그 분이 자신의 행동을 보고 계셨습니다. 이때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전한 예수님에 대한 소식이 사실이란 것에 자신의 모든 존재가 파산을 맞고 온몸에 힘이 빠지고 죽은 시체처럼 땅에 엎드려져 죽음을 경험합니다(14). 이 순간에 부활하시고 살아계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통해 기독교를 자신의 종교로 새롭게 받아 들렸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회심자는 바울입니다. 핍박자였고 박해자였던 바울이 가장 적극적인 복음 전도자로 변화된 것은, 그는 부인할 수 없는 부인할 수 없는 체험과 간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다메섹에서 만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보여주신 진리를 통해 변화된 것입니다.

 

사명을 주신 하나님(16-18)

빅토로 위고는 ‘하나님이 모든 인간의 이마에 써 놓으신 말은 ‘희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잘못된 방법으로 가는 자녀를 본 부모님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길로 가는 자녀를 보면서 가슴을 치는 부모의 심정으로 바울에게 다가오셨습니다. 바울의 영적은 무지에 대해 동정과 긍휼의 마음으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느라 더 이상 힘겹게 살지 말고 구원의 길로 오라고 부르셨습니다.

 

16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16-18)

 

바울은 이어서 자신이 이 사명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 왔음을 증거 합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온몸에 힘이 빠지고 죽은 시체처럼 땅에 엎드려졌습니다(14). 쓸러져 있는 바울에게 주님께서는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고 명령하셨습니다(15). 그리고 그에게 할 일을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이 표현은 에스겔에게 하신 말씀과 유사합니다. 에스겔이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보좌 환상을 보았을 때, 에스겔을 찾아오신 여호와께서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겔 2:1)고 하시고, 그를 패역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같이 ‘종과 증인’을 임명하십니다. 바울은 예레미야처럼 ‘그들에게서 구원을 받을 것이고’(렘 1:8,19), 여호와의 종의 일, 곧 ‘눈을 뜨게 하며 광명한 대로 이끄는 일’(사 42:7,16)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독특한 표현이 추가되었습니다. ‘죄 사함’과 ‘기업’을 얻게 하는 일을 증거 하는 임무입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열두 사도에게 주신 임무였습니다(눅 24:44-48).

그러므로 바울을 찾아오신 주님께서 바로 그 자리에서 그에게 사도 임명 선언이요, 그 이후의 말씀은 바울의 사도적 임무를 부여하십니다. 이후에 바울은 주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심’과 자신의 사도직 임무를 연결하십니다. 그의 사명은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 가서 들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며,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고, 주님을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은 지상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하고 중요한 사명이었습니다. 주님을 핍박하던 바울에게 영광스러운 사명을 부여해 주신 것입니다. 그릇에 담긴 물건에 따라 그릇의 용도와 가치가 결정되듯 질그릇 같은 바울에게 고귀한 복음이 담겨져 귀한 일에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애틋하고 강렬한 주님의 사랑을 맛보았기에 핍박이 아무리 거세도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 사명은 주님의 ‘사환과 증인’이 되어 사람들을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게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큰 사랑을 깊이 체험한 사람은 주님이 주신 사명의 길에서 결코 떠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19-23)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전에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일했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감당하는 일꾼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간절히 드려야 합니다.

 

19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0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21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19-23)

 

바울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를 사용해 논제를 확증하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앞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그는 하늘 비전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하늘에서 보이신 것’이라고 표현하면서, 자신의 삶이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에게 임한 하늘의 거룩한 뜻을 따르는 삶이었다고 지적합니다(19). 사실상 이 말에는 예수님께서 신적인 존재하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소명과 지금까지 삶의 일치성을 강조합니다. 그가 전한 메시지의 핵심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고 선포했음을 고백합니다(20). 그들에게 선포한 메시지의 핵심은 ‘회개하라는 것’과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18절의 ‘나를 믿어’, 곧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구체화됩니다.

 

사도행전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반드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것을 포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떠난 채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일’이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표현된 회개가 참된 것임을 보여 주는 열매를 말합니다. 이 표현은 이미 세례 요한의 메시지에도 등장한 바 있습니다(마 3:8; 눅 3:8).

 

바울은 자신이 받은 소명을 자신의 고소 상황과 연결합니다. 이러한 복음을 전파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자신을 성전에서 잡아 죽이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21). 표준새번역에서는 원문의 의미를 잘 살려 ‘이런 일들 때문에’라는 문구로 21절을 시작합니다. 바울이 성전에서 체포된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자행된 유대인들의 폭력에 대한 비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이제 결론으로 다다르고 있습니다. 22-23절에서 ‘그러므로 도움을 받아’라는 표현으로 시작해서 자신의 변론에 대해 결론을 맺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회개를 선포할 때 주장한 내용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바울이 선포하는 복음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예언한 내용과 완전히 일치합니다(22). 다시 말해 그가 선포하는 복음은 선지자들과 모세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자신의 사역 속에 성경의 모든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분명하게 가르치셨습니다(눅 4:21; 7:21-22;10:23-24; 16:16; 24:25-27, 44-48). 그의 사도들 역시 동일한 사실을 증거 했습니다(행 2:22-28,38-39; 3:17-25; 8:34-35). 바울 역시 이 사실을 분명히 선포해 왔습니다(행 13:26-41; 17:3). 둘째, 성경에서 반드시 되리라고 예언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입니다(23). 셋째, 구약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23).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신실한 증인들을 통해 이와 같은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사도들과 바울은 예수님의 신실한 증인으로서 구원의 복음을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해 왔습니다.

 

결국 바울은 구약성경의 핵심이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이며, 구약의 예언은 예수님의 구원 사건으로 성취되었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이러한 성취에 근거한 구원의 소식이 바로 복음입니다. 바울의 사역은 성경의 모든 예언과 약속이 결정적으로 성취되었음을 알리는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메시지는 유대교의 신앙에서 이탈하거나 빗나가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바울의 이러한 연설을 들은 사람은 누구든지 그가 유대인을 대적해 살아 왔다고 단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바울은 유대교의 핵심적인 신앙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인정할 것입니다.


‘영적 열심’은 진리를 아는 데서 시작합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과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은 생명력이 있기에 진정한 복음을 소유한 사람은 생에 대한 정열을 갖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 선교를 위해 쓰임을 받았듯이 당신도 가정과 직장, 그리고 학교에서 복음을 위해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힘과 지혜로 담대히 복음을 전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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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6-01)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론한 바울

사도행전 26장 1-12절


 

성경 주석가인 보너 박사(Dr. Boner)가 꿈에 천사가 나타나 ‘당신의 열심을 저울에 달아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열심을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천사가 그에게 ‘당신의 열심을 달아보니 100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곧이어 열심의 내용을 분석해 주었습니다. ‘당신의 열심은 100근인데 그 중에 50근은 이기적인 열심이고, 25근은 당파를 짓는데 사용한 열심이고, 22근은 자기의 명예를 위해 노력한 열심이었고, 3근만이 진정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열심에도 나쁜 열심이 있습니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열심은 좋은 열매를 맺지만, 잘못된 방향인데도 열정적인 것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킵니다.

 

 

  • 사도행전 26장은 21-25장 전체를 요약합니다. 이제 바울은 많은 고관들 앞에서 담대하게 특히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을 변호합니다. 자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어릴 적부터 엄격한 유대 교육을 받은 성장한 유대인임을 강조합니다. 그 때문에 과거에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 그리스도인을 박해하고, 그 열심 때문에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려고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소개합니다.

 

아그립바 왕 앞에 선 바울(1-3)

 

신앙 생활하다가 새로운 진리를 깨달으면, 지나온 시간을 허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불필요한 시간은 단 일 초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 수 있는 기회며 성장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모든 시간들이 유익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1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3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1-3)

 

사도행전 25장 마지막에서 총독 베스도는 자기 부인 베니게와 아그립바 왕 그리고 고위 관료들과 함께 바울을 재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고소했지만, 총독 베스도는 그 동안 바울을 심문해본 결과 죄목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미 바울이 로마 가이사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상소했기 때문에 죄목을 찾아 같이 송달해야 했습니다.

 

이에 총독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을 심문할 기회를 줍니다. 사실 바울의 변론은 법정에서 변론이 아니라 일종의 청문회 자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을 고소했던 유대인 지도자들이 배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얻었고, 자신이 살아온 지난 삶을 회고하면서 고난의 길을 가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 자리를 자기 변호하는 자리가 아니라 복음을 증거 하는 자리로 만들었습니다.

 

(1) 변호할 기회를 준 아그립바 왕(1)

 

바울의 연설은 25장의 마지막 부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행 25:23-27). 총독 베스도에 이어 아그립바 왕은 바울에게 변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총독 역시 바울을 로마로 보내기 전에 그에 관한 고소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해야 했기에 이런 자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그립바 왕은 유대인의 문제에 대한 최고 권위자였으므로 총독이 그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먼저 총독은 왕과 최고 관리들에게 바울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가 한 보고의 핵심은 바울이 유대인들에게서 아주 심각한 고소를 당했으나 자신이 조사한 결과 그에게 중형을 내릴 만한 범죄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아그립바 왕은 바울에게 변론한 기회를 주었습니다(1).

 

(2) 변호 기회에 감사한 바울 (2-3)

 

바울은 감사함으로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론을 시작합니다. 그는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2)라고 시작합니다. 바울은 계속적으로 재판을 받으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론한 것을 ‘다행히’라고 표현하겠습니까? 아그립바 왕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유대의 종교, 문화 그리고 풍습을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왕 앞에 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뜻은 예수님께서 처음 만나는 순간에 사도행전 9:15에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계속적으로 재판 받고 있는 것이 귀찮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명 가운데 있음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난 2년 동안 이런 기회를 얻기를 많이 기대해 왔습니다.

 

기소에 대한 바울의 변론(4-12)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성장합니다. 육신만이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자랍니다. 그것을 변화라고 해도 좋습니다. 더 다양한 세계관과 더 많은 기회들, 더 새로운 것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계속 변합니다. 문제는 영적인 변화의 방향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인가 그렇지 않는 방향인가입니다.

 

4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5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6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7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8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4-12)

 

바울 자신의 회심에 대한 거론은 세 번째입니다. 이번에는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하고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부름 받았다는 소명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소명을 받들기 위해 복음을 전했고, 이 복음을 전한 것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1) 유대교에서 성장한 자신을 변호(4-7)

 

바울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는 아그립바 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손을 들어 올리면서 연설을 시작했습니다(1). 이는 재판관(베스도)와 배심원들(아그립바, 베니게, 천부장들 그리고 고위관들) 앞에서 변증 주제를 실제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전재들을 진술합니다. 이 진술은 전체 연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크게 세 부분으로 첫째는 청년 시절(4-8), 둘째는 박해자로 활동(9-11), 마지막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 회심, 소명(12-18) 등으로 나뉩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도 기독교를 열심히 핍박하는 자였다는 것을 밝힙니다. 자신은 기독교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이렇게 급작스러운 태도의 변화가 생긴 것은 그만큼 기독교에 대해 확실한 신념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유대인으로서 얼마나 철저한 삶을 살아 왔는지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4). 자신이 바리새인으로 살았던 것을 인정할 것이라고 말합니다(5). 이 사실은 앞에서도 여러 차례 이 사실을 밝힌 바 있습니다(행 22:3; 23:1,6; 24:14-15). 변론 때마다 자신이 경건하고 신실한 유대임을 강조해 왔습니다. 이 변론에서도 그는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5b)고 증거합니다. 바울은 유대교 안에 여러 분파가 있는데, 자신이 속해 있던 바리새파가 가장 엄한 분파임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유대교를 가리켜 “우리 종교”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그가 여전히 유대교의 종파 안에 소속되어 있음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속감은 “내 민족”(4), “우리 조상”(6), “우리 열두 지파”(7)란 표현에도 잘 나타납니다.

 

바울은 이어서 자신이 심문을 받는 것은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7)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하나님께서 조상에게 주신 약속에 대한 소망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여기서 ‘약속’이란 죽은 자들의 부활에 관한 약속입니다(8). 바울은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은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소망, 곧 죽은 자들의 부활과 관련해 재판을 받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행 23:6; 24:15), 유대인 열두 지파는 하나님을 밤낮으로 섬기는 가운데 이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렸습니다(7). 비록 사두개인은 죽은 자들의 부활을 전혀 믿지 않았지만(눅 20:27; 행 23:8) 이스라엘 백성 대다수는 죽은 자의 부활을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행 23:8). 그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의 소망이 성취되기를 아직도 기다렸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부활에 대한 소망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성취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선교지에서 계속 가르친 내용이었습니다(행 13:32-33).

 

(2) 믿음을 촉구하는 바울(8)

 

바울은 앞서 베스도가 아그립바에게 말한 것을 입증하듯이 죽은 자의 부활을 중심으로 설교합니다. 바울은 더 담대하게 아그립바를 향해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8)라고 대답 대신 반문합니다. 이 질문은 지연된 소망의 내용을 밝힙니다. 곧 죽은 자들의 부활입니다. 여기서 부활은 일반적인 부활을 말하고 있지만, 바울의 의도는 예수님의 부활을 염두해 두고 있습니다.

바울은 진술을 다음 단계로 이끕니다. 즉, 바울의 논리는 하나님께서 죽인 자들을 살리실 수 있다면, 첫 사람으로 살리신 예수님을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메시아이심을 입증하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3) 복음의 핍박자였던 바울(9-12)

 

계속해서 과거에 바울은 자신이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을 대적하며 박해했던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이 성도들에게 가한 모든 박해가 곧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을 대적하는 행동이라고 여겼습니다(9). “나사렛 사람 예수”란 호칭은 십자가에 처형되었으나 부활하신 예수님과 관련해 사용되어 왔습니다(행 2:38; 3:6,16; 4:10,12,17-18,30; 5:28, 40-41; 8:12,16), 청중의 불신앙이 당연하다고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그랬기 때문입니다(9). 유대인들의 눈에 이 분파는 지상에서 지워 버려야 할 ‘이단’으로 보였습니다(참조, 22:22).

그러므로 개종 전 바울은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는 행위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신성한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9). 예수의 이름을 대적해 많은 일을 행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명을 감당하는 데 일종의 의분을 갖고 행했습니다. 바울도 누구보다 더 분명하게 그렇게 믿었던 사람입니다. 나사렛 예수님의 ‘대적’이요 ‘박해자’로서 그는 기독교인들의 사형 선고에 찬성하고 그들을 감금하고 고문하고 모독했습니다.

 

바울은 거룩하고 의로운 분노를 품은 채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었습니다(10). 그리고 이들이 사형에 처해질 때 찬성표를 던졌습니다(10). 바울은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가담했을 뿐 아니라(행 8:1) 그 외 많은 신자들을 죽이는 일에도 가담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유대인의 모든 회당에서 성도들을 징벌할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하기도 했습니다(11). 이러한 그의 박해 활동은 예루살렘에만 국한되지 않고 외국 도시에까지 확대되었습니다(11).

 

바울은 자신이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했다’고 말합니다(11). 이 단어는 ‘누군가에게 몹시 큰 증오심을 품다’라는 뜻으로, 광기로 가득찬 증오를 가리킵니다. 헤롯이 죽기 직전 이러한 광기와 증오를 보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철저한 광기와 증오를 품었던 바울은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갔던 과거 일을 이야기합니다(12).


 

만남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만남’이 있을 때 인격적인 진동과 경련이 일어나고 시각이 변하고 사고의 지평이 넓어집니다. 바울에게는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이 그의 전 인격과 삶과 생각을 변화시킨 격변적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당신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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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5-02)

 


거듭된 바울의 재판에 하나님의 섭리

사도행전 25장 13-27절


 

눈에 보이는 법만 지키려는 세상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거룩한 법을 지키는 자들의 삶은 존경받을 만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은 세상에서도 바른 사람을 살아갑니다.

 

  • 바울은 신임 총독 베스도에게 재판을 받으면서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항소할 것임을 천명했습니다. 베스도가 이를 수용했지만, 당장 로마로 보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자신을 예의 차원에 방문했을 때, 바울에 관한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이 기회로 아그립바 왕 앞에 서게 되고, 예수님께서 바울을 부를 때 하셨던 말씀처럼 세상 임금 앞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바울의 무죄를 인정한 베스도(13-22)

 

하나님의 복음에 강렬한 체험을 한 사람, 말씀의 깊은 은혜를 받은 사람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담대하게 나갈 수 있습니다. 상황 속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13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14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15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16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주는 것은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17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18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19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 20내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심리할는지 몰라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21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22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이르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13-22)

 

본문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재판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 의해서 고발당해서 가이사랴에서 2년 이상이나 미결수 상태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그립바 왕과 총독 베스도의 만남을 통해 바울이 다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1) 총독 베스도를 축하하려온 아그립바(13-15)

 

분봉왕 헤롯 아그립바 왕은 총독 베스도의 부임을 축하하기 위해 가이사랴를 방문합니다. 이때 베스도는 바울 사건을 아그립바 왕에게 이야기 합니다. 이 ‘이야기’는 예상과 다르게 자세합니다. 그래서 마치 예루살렘 방문, 가이사랴 재판이 본 이야기의 서막처럼 보입니다.

이곳에 등장한 ‘아그립바’ 왕은 헤롯 아그립바 2세(주후 50-93년)로, 헤롯 아그립바 1세(주후 41-44년)의 아들입니다. 그의 아내 ‘버니게’는 아그립바의 여동생인(13), 철저하게 친로마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때 베스도는 바울의 소송 문제로 고만하고 있었습니다(14). 바울이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상소했기 때문입니다. 베스도는 황제에게 보낼 고소장에 죄목을 적어야 하는데, 마땅한 죄목을 찾지 못했습니다. 바울에 대한 소송은 로마의 실정법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유대인의 종교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스도는 유대인의 종교를 잘 알고 있는 아그립바왕에게 조언을 구하려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다수의 힘으로 총독 베스도를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소당할 만한 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유대교 지도자들은 배신자 바울을 정죄하고 고소했습니다(15). 베스도 입장에서 그들의 요구를 쉽게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법과 양심이 아닌 힘의 논리에 재판이 좌우되고 있습니다.

 

(2) 예수님 때문에 고소당한 바울(16-19)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실정법을 어기면서까지 바울의 제거를 요구했습니다(16).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 로마법에 의해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으로 바울을 넘겨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바울을 심문한 베스도는 바울이 로마 실정법을 위반한 일이 없음을 알았습니다(18).

유대인의 고발이 결국 유대교 문제에 관한 다툼임을 파악한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께서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시며 부활하시고 살아 계심을 전했습니다. 유대인은 이러한 바울의 주장에 분개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을 고소한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고소당한 것입니다.

 

(3) 핍박 중에도 하나님의 뜻(20-22)

 

하나님께서 이미 바울을 부르실 때부터 예수님께서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9:15)고 소명을 주셨습니다. 바울을 특별히 택하셔서 이방인들과 여러 왕들과 유대인들에게 주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서 택한 그릇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는 총독과 왕들 앞에서 복음을 변호하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변호해야할 자리에서 자신보다 복음을 위해 변호합니다. 이러한 위대한 바울 사도의 모습을 보면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의 대화를 통해 바울과 복음에 대한 영향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벨릭스를 대신해서 베스도가 새로운 총독으로 부임했을 때, 당시 유대지역을 다스리고 있던 아그립바 왕이 새로운 총독에서 인사하려 가이사랴로 찾아왔습니다. 수일동안 인사와 교제를 하고 있을 때, 베스도가 아그립바에게 바울의 소송 문제를 끄집어냅니다.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다면 총독 베스도는 아마도 바울을 유대인에게 넘겼을 것입니다(21). 빌라도처럼 다수의 요구에 따라 바울을 그들에게 넘겨주고 적당하게 타협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 섬(23-27)

우리가 전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사람들에게 흠 잡히지 않으려면 우리의 삶에 흠 잡힐 만한 일들이 없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해서 복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며 종종 전도의 현장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일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깨끗한 양심과 정결한 삶 가운데 간직되어 있다가 우리의 깨끗한 양심과 정결한 삶 가운데 간직되어 우리의 거룩한 인격의 통로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23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24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25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26그에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27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23-27)

 

베스도는 진리나 인권에 자신의 목숨을 거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베스도에게 바울의 사형을 요구했습니다(24).이들이 영적으로 얼마나 깊은 어둠에 빠진 상태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가운데서 다시 부활했다는 바울의 주장이었다. 바울이 성전을 더럽혔다는 혐의는 문제의 핵심에서 사라지고 부활이라는 주제가 문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되었다. 베스도는 부활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는 바가 없었고 어떻게 부활이라는 주제가 고발의 대상이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표명한다. 그러나 사실 이 사건의 핵심은 바울이 예수의 부활을 전했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사두개인들은 근본적으로 부활을 부인하고 바리새인들은 모든 자들의 최종 부활을 받아들이지만 예수의 부활은 수용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베스도는 이 사건의 핵심이 유대인들의 신앙과 관련이 있고, 구체적으로는 예수라는사람이 죽었는데 다시 살아났다는 바울의 주장에 있다고 판단하였다.

 

베스도는 예루살렘에서 바울 건에 대한 재판을 열것을 제안한다. 사도행전 25:9에 나타난 그의 제안의표면상의 이유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였다.그러나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과의 사적인 대화에서자신이 이 제안을 하게 된 동기는 피의자를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망설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죄 판결을 내려 피의자를 석방하기를 꺼렸기 때문에 그가 망설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바울은베스도 총독의 제안을 거부하고 로마 황제에게 항소하기로 결정한다. 누가는 바울이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주기를 호소했다'고 기록한다. 바울은유대인들로부터 로마 정부가 자신을 보호해주기를 원했으며, 로마의 최고 사법 기구가 자신에게 무죄 판결을 내려 자신의 신앙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전파할 수있도록 해주기를 원했다.

 

아그립바 왕은 자기도 바울의 진술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원한다는 뜻을 전합니다. 이 사건에 대한 아그립바 왕의 관심은 아마도 지금까지 진행된 이야기를 베스도로부터 전해 들으면서 생겼을 수도 있지만, 이미 소문을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수도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그립바 왕은 예수를 면담한 헤롯 안티파스처럼(눅 23:8) 이 사건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튿날 바로 바울을 면담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 자리에는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뿐만 아니라 천부장들과 도시의 고위 인사들도 동석합니다.

 

곧이어 바울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비록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지만, 누가에게 그는 주인공과 같은 인물입니다.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바울은 이 자리에서조차도 가장 중요한 인물인 것입니다. 바울은 누가복음 21:12의 예언을 성취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21:12에서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가려니와”라고 하신 말씀과 사도행전 9:15의 예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인물로 바울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총독 베스도는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는 자”로 바울을 소개합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가 ‘유대의 모든 무리’를 대표하는 것처럼 과장되게 묘사합니다.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를 제외하면 모두 유대인이 아닌 청중에게 베스도는 자신의 소견으로 바울은 사형에 처할 만한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밝힙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항소하였으므로 그를 로마로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입니다.

베스도는 26절에서 바울을 아그립바 왕을 비롯해 여러 고위 인사 앞에 세운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는 이 심문을 통해 바울을 로마 황제에게 보낼 때 피고인에 대한 죄목을 좀 더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는 증거와 자료를 얻으려 한다고 말합니다. 죄수를 보내면서 혐의가 없다는 보고서를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입니까? 그 역시 자신의안위만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사명자의 삶에도 무수한 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함께 하는 동료가 있고,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여 결단하는 마음이 있다면 마침내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사명을 완수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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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5-01)

 


후임 총독 베스도에게 재판 받은 바울

사도행전 24장 24절 - 25장 12절


 

미국 장기 베스트셀러로 [아직도 가야할 길](M.스캇 펫)에 유명한 문장인 ‘삶이란 문제의 연속이다.’라는 있습니다. 사람은 평생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문제를 해결해서 한 고비 넘기면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들에게는 허락하신 문제를 통해 항상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은 알 수 있도록 하십니다. 바울은 끝임없이 많은 문제들을 만났지만, 그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 문제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할 것입니다. 바울에게 많은 문제들이 자신을 성숙시켜 주는 도구로 쓰임 받았던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는 그 사람을 성숙하게 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 베스도는 총독으로 부임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이 총독 베스도에게 문안하려 오자, 베스도는 바울의 소송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이튿날 베스도는 아그립바와 친부장들과 성의 높은 사람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한 사실과 황제에게 보고할 바울의 죄목이 없음을 말합니다.

 

바울을 면담한 총독 벨릭스(24-26)

복음을 듣는 사람은 대부분 변화가 일어납니다. 포악했던 강도가 순한 사람으로, 두려움에 쌓였던 사람이 담대한 사람으로 그리고 무기력한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듣는다고 모두 변하는 것 아닙니다. 총독 벨릭스를 통해 변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24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들 25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6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24-26)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은 바울을 살해하려고 했지만, 예루살렘을 관할한 천부장 루시아를 통해 구출하여 총독 벨릭스가 있는 가이사랴로 압송되었습니다. 바울을 넘겨받은 총독 벨릭스는 재판하였지만, 그에게서 별다른 죄목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을 의식해서 계속 바울을 구금시켜 두었습니다. 바울은 그 상태에서도 쉬지 않고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특별히 이번에는 총독 부부에게 더욱 신나게 전했습니다.

 

(1) 바울을 불러드린 총독 벨릭스(24)

 

총독 벨릭스는 이미 바울이 전한 ‘도’를 알고 있었습니다. 천부장 루시아로부터 추가 증언을 듣겠다는 말을 실행합니다. 수일 후에 그는 자기 유대인 아내와 함께 바울을 초청했습니다. 이것은 공적인 일이 아니라 사적인 면담입니다.

 

총독 벨릭스의 세 번째 부인은 사도행전 12장에 언급된 헤롯 아그립바 1세 막내딸인 미모가 뛰어난 드리실라였습니다. 드리실라의 오빠, 아그립바 2세는 그녀를 수리아 작은 나라 에메사의 왕 아지주스와 결혼시켰습니다. 총독 벨릭스는 드루실라의 미모에 홀딱 반해 짝사랑에 빠졌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마술사 아트모스를 통해 그녀를 설득했습니다. 당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던 드루실라에게 남편을 버리고 자신과 결혼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녀의 나이가 16세였습니다. 총독은 아내로 드리실라 맞이하고, 그녀로부터 기독교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듣습니다.

 

총독 벨릭스 부부는 바울이 이방인 교회로부터 구제 헌금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고서 뇌물을 받을까 하여 바울을 자주 불렀습니다. 바울은 총독 부부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지속적으로 증거 하면서 또한 의와 절제에 대해 말했습니다. 멀쩡한 남편을 버린 드루실라, 그리고 벌써 세 번이나 결혼한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을 것이란 메시지도 전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석방을 좌우하는 최고, 권력 앞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주의 복음을 전합니다.

 

(2) 복음을 들은 총독 벨리스 부부(25)

 

바울은 벨릭스와 그의 아내 드루실라가 반드시 들어야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즉 ‘의’와 ‘절제’ 그리고 ‘장차 올 심판’에 대해 전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내용을 들은 벨릭스는 두려워했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벨릭스는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두려운 마음이었습니다. 두려워서 복음을 받아 들릴 가능성이 생기지만, 회개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3) 복음보다는 현실을 선택한 벨릭스(26)

 

로마 대 제국 안에는 많은 총독들이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 입장에서 수많은 총독 중에 어느 총독이 유능한 총독처럼 보였겠습니까? 통치한 곳의 사람들을 억압하고 핍박하여 다스리는 지역에서 자주 반란이 일어나는 지역의 총독은 무능해 보였을 것입니다. 오히려 통치하는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평온하게 다스리는 총독이 유능해 보였을 것입니다.

 

벨릭스는 세상적인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울이 무죄하다는 것을 알았고 복음으로 말미암은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세상을 향한 욕망이 더 컸습니다. 어떻게든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컸던 것입니다. 벨릭스는 자기에게 뇌물을 바치고 석방시켜달라고 요구하기를 은근히 바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영혼에 위태로움을 느끼면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그 권력을 이용해서 한몫을 챙기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당시 총독은 죄수를 무작정 감금해둘 수도 있었고, 사법절차를 빠르게 진행해 석방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뇌물 수수는 당시도 엄연한 불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밝혀내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흔한 관례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자기 자리를 지키는 생각 밖에 없습니다.

그는 자기 책임을 유기한 채, 재판을 열지 않아서 죄 없는 바울을 2년 동안이나 감금시켜 두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바울은 자신의 진로를 알 수 없습니다. 로마에 가려고 약속했던 하나님의 약속이 잊힌 듯 보였습니다.

 

후임으로 부임한 총독 베스도(27)

무능한 지도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망칠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간신배들에게 끌려 다니고 상황을 바르게 보지 못합니다. 사실을 왜곡하여 불의가 판칩니다. 지도자는 판단력이 흐려서 상황과는 전혀 다른 결정을 합니다. 그 밑에 따르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중시켜줍니다. 이런 사람은 빠른 시간에 교체되어야 합니다.

 

27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27)

 

그렇게 2년이 흐른 후, 유대 지방을 총괄하는 총독이 교체되었습니다.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 후임으로 재임하게 됩니다. 로마 제국은 벨릭스의 시절에 유대인들과의 악화된 관계를 수습하기 위해서 베스도를 그의 후임으로 보냈습니다.

 

신임 총독 베스도에 대해서는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기록 외에 다른 역사적 기록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베스도는 벨릭스보다 좀 더 공정한 정치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은 2년 정도로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27절에서 누가는 2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여전히 구금 상태에 있다고 밝힙니다. 벨릭스는 재임 기간 안에 미결 사건들을 종결지을 수도 있었지만, 정치적으로 유대인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바울을 석방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는 그 이유를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라고 밝힙니다. 유대인들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자신이 로마로 돌아간 이후 자기에게도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방문한 베스도(25:1-5)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지만, 구원을 받기 위해 예수의 이름을 부를 만큼 자신에 대해, 세상에 대해 절망한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 즐거움을 다 버린 사람들,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갈채를 거절한 사람들은 의로우신 하나님으로부터 의의 면류관을 선물로 받습니다(딤후 4:8).

 

1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3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러라 4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5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1-5)

 

벨릭스는 떠나면서 바울을 풀어 주지 않았습니다. 무죄한 바울이 자유를 얻는 것보다 유대인에게 인기를 얻는 것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1) 예루살렘의 방문한 총독 베스도(1)

 

베스도 총독은 부임한지 삼일 만에 예루살렘을 방문합니다. 그는 유대 지방이 문제의 소지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항상 예루살렘은 용광로와 같이 위험한 도시였습니다. 그곳에 치안 유지를 실패하면, 총독 베스도 역시 그 자리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엄하게 다스리면서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게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좋은 관계 맺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2) 바울에 대한 요청한 유대 지도자(2-5)

 

유대인들은 2년 동안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에 관한 사건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신임 총독 베스도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총독에게 유대인의 민원을 넣습니다. 가장 크게 생각하는 문제는 바울 문제였습니다. 바울을 고소했는데 자신들이 요구한데로 재판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들은 가이사랴에 있는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들에게는 다른 속셈이 있었습니다. 지난번 계획처럼 대복해 있다가 길에서 죽이려는 음모를 구미고 있었습니다.

 

총독 베스도는 전임 총독에서 바울을 인수인계를 받았을 것입니다. 전반적인 바울에 대한 상황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쉽게 내주지 않습니다. 원칙대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대신 유대 지도자들이 가이사랴로 내려오면, 바울 문제에 대해서 재판하겠다고 합니다.

 

가이사에게 상소한 바울(25:6-12)

정치인들의 의사결정은 다수결의 원칙을 사용합니다. 한 두 사람의 의견보다 다수의 의견을 이루어줄 때 통치가 수월해 집니다. 그래서 소수의 의견은 무시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소수에게도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신임 총독 가이사도 다수의 의견을 따라서 정치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6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7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8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9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 대 12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6-12)

 

바울은 일찍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을 방문한 후, 로마까지 방문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가 있습니다(19:21). 이 계획은 바울의 개인적인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었습니다(23:11). 신입 총독인 베스도는 바울에 대한 사안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해 당혹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소송할 장소를 유대인들이 요구한 것처럼 예루살렘으로 바꿀 의사가 있는지 물었지만, 바울은 이를 거절하고 로마에 있는 황제 가이사에게 가겠다고 말합니다.

 

(1) 재심된 바울의 재판(6-8)

 

새로 부임한 총독 베스도는 인사 차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8-10일을 보내고 다시 가이사랴로 돌아옵니다(6). 다음날 곧 바로 공식적으로 바울에 대한 재판을 재계합니다. 전임 총독 벨릭스가 차일피일 미룬 재판을 신임 총독 베스도가 곧장 재개한 이유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 때문입니다.

 

총독 베스도는 바울을 재판정으로 불러드립니다. 예루살렘 유대인들은 공식적인 재판을 통해 다시 한 번 바울을 기소할 기회를 얻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재판이 이루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내려옵니다(7). 유대인의 종교법과 로마의 실정법 모두를 고소 사유로 언급했습니다. 기존의 고소 사유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로마의 실정법까지 추가해 로마인인 재판장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 바울을 고소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 바울을 제거해야 한다는 전략적 목적에 맞추어 고소 사유를 덧붙였습니다. 그러니 증거가 있을 리 없었습니다(7). 주장만 있고 증거는 없습니다. 적개심만 있고 사랑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세월이 2년이나 흘렀지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나사렛 이단인 바울을 죽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모습은 전혀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의 부죄는 명백한 것이었지만, 원고 측은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거하려 했습니다. 바울이 눈엣가시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버울을 죽이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부활이 계속 전파되어 본인들의 이권이 침해하리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바울을 고소한 것은 결국 복음을 방해하고 차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항해 스스로 변호하는 바울의 태도를 보시길 바랍니다(8). 그는 유대인들을 욕하거나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무죄함을 역설했을 뿐입니다. 복음의 가치와 힘을 알았기 때문에 복음을 훼방하는 자기 민족이 언젠가는 복음을 받아들이길 간절히 바랐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기소에 대해 다시 한 번 자신의 무죄를 변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는 유대인들의 율법을 어긴 적도 없고 성전을 더럽힌 적도 없다며 무죄를 호소합니다. 그리고 로마의 범도 어긴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2) 다음 장소로 예루살렘을 제안(9-10)

 

베스도의 경우는 바울보다 유대인들에게 호감을 가져야 통치가 쉬어 집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라’(9)고 기록합니다. 여기서도 벨리스의 재판 때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무죄 판결로 석방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베스도 역시 벨리스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재임 초기에 유대인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종적인 판결을 유예합니다.

 

베스도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 받을 것을 제안합니다. 일의로 결정할 수 있지만, 바울이 로마 시민이기 때문에 배려 차원에서 묻는 것입니다. 당연히 바울은 유대인들의 궤계를 짐작하고 단호하게 베스도의 제안을 거절합니다(10). 베스도의 제안은 예루살렘에서 재판하면 몇몇 산헤드린 공회원을 재판의 자문 위원으로 두겠다는 의미였습니다. 당시 로마 법정에서도 재판장은 판결을 돕기 위한 자문 위원들을 두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배심원과 같은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되면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거부합니다. 바울의 이러한 요구는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3) 가이사에게 상소하는 바울 (11-12)

 

바울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11)고 표명합니다. 로마 시민의 마땅한 권리입니다. 이 말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말이 아니라 지난 2년 동안 구금 기간 동안에 준비한 제안일 것입니다. ‘로마에 가서도 증인이 될 것이라’(23:11)는 예수님의 약속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가이사랴나 예루살렘에서는 승소할 가망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가이사께 상소한 것입니다. 상소는 공식적으로 로마 시민에게 어떤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황제에게 상소할 수 있습니다(12). 이것을 법정 전문용어로는 프로 보카티오(provocatio)라고 부릅니다. 프로보카티오는 판결이 이미 내려진 후에 항소하는 아펠라티오(appelatio)와는 다른 절차입니다. 과거에 전자는 공직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판결을 내렸던 반면, 주후 1세기에 이르러서는 황제가 이 판결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로마에서 황제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겠다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생각이었습니다. 사역을 해 나가면서 무조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주변 상황을 고려하여 스스로 선한 결정하길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명을 따라 움직이는 자입니다. 그 부르심에 순종할 때, 감옥이든지 광장이든지, 환영을 받든지 거절을 당하든지, 그 자리가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요 자유의 자리임을 믿는 자들입니다. 복음에 사로잡히고 사명에 사로잡히는 증인으로 살 때 가장 행복한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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