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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5-01)

 


후임 총독 베스도에게 재판 받은 바울

사도행전 24장 24절 - 25장 12절


 

미국 장기 베스트셀러로 [아직도 가야할 길](M.스캇 펫)에 유명한 문장인 ‘삶이란 문제의 연속이다.’라는 있습니다. 사람은 평생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문제를 해결해서 한 고비 넘기면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들에게는 허락하신 문제를 통해 항상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은 알 수 있도록 하십니다. 바울은 끝임없이 많은 문제들을 만났지만, 그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 문제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할 것입니다. 바울에게 많은 문제들이 자신을 성숙시켜 주는 도구로 쓰임 받았던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는 그 사람을 성숙하게 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 베스도는 총독으로 부임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이 총독 베스도에게 문안하려 오자, 베스도는 바울의 소송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이튿날 베스도는 아그립바와 친부장들과 성의 높은 사람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한 사실과 황제에게 보고할 바울의 죄목이 없음을 말합니다.

 

바울을 면담한 총독 벨릭스(24-26)

복음을 듣는 사람은 대부분 변화가 일어납니다. 포악했던 강도가 순한 사람으로, 두려움에 쌓였던 사람이 담대한 사람으로 그리고 무기력한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듣는다고 모두 변하는 것 아닙니다. 총독 벨릭스를 통해 변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24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들 25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6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24-26)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은 바울을 살해하려고 했지만, 예루살렘을 관할한 천부장 루시아를 통해 구출하여 총독 벨릭스가 있는 가이사랴로 압송되었습니다. 바울을 넘겨받은 총독 벨릭스는 재판하였지만, 그에게서 별다른 죄목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을 의식해서 계속 바울을 구금시켜 두었습니다. 바울은 그 상태에서도 쉬지 않고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특별히 이번에는 총독 부부에게 더욱 신나게 전했습니다.

 

(1) 바울을 불러드린 총독 벨릭스(24)

 

총독 벨릭스는 이미 바울이 전한 ‘도’를 알고 있었습니다. 천부장 루시아로부터 추가 증언을 듣겠다는 말을 실행합니다. 수일 후에 그는 자기 유대인 아내와 함께 바울을 초청했습니다. 이것은 공적인 일이 아니라 사적인 면담입니다.

 

총독 벨릭스의 세 번째 부인은 사도행전 12장에 언급된 헤롯 아그립바 1세 막내딸인 미모가 뛰어난 드리실라였습니다. 드리실라의 오빠, 아그립바 2세는 그녀를 수리아 작은 나라 에메사의 왕 아지주스와 결혼시켰습니다. 총독 벨릭스는 드루실라의 미모에 홀딱 반해 짝사랑에 빠졌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마술사 아트모스를 통해 그녀를 설득했습니다. 당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던 드루실라에게 남편을 버리고 자신과 결혼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녀의 나이가 16세였습니다. 총독은 아내로 드리실라 맞이하고, 그녀로부터 기독교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듣습니다.

 

총독 벨릭스 부부는 바울이 이방인 교회로부터 구제 헌금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고서 뇌물을 받을까 하여 바울을 자주 불렀습니다. 바울은 총독 부부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지속적으로 증거 하면서 또한 의와 절제에 대해 말했습니다. 멀쩡한 남편을 버린 드루실라, 그리고 벌써 세 번이나 결혼한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을 것이란 메시지도 전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석방을 좌우하는 최고, 권력 앞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주의 복음을 전합니다.

 

(2) 복음을 들은 총독 벨리스 부부(25)

 

바울은 벨릭스와 그의 아내 드루실라가 반드시 들어야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즉 ‘의’와 ‘절제’ 그리고 ‘장차 올 심판’에 대해 전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내용을 들은 벨릭스는 두려워했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벨릭스는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두려운 마음이었습니다. 두려워서 복음을 받아 들릴 가능성이 생기지만, 회개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3) 복음보다는 현실을 선택한 벨릭스(26)

 

로마 대 제국 안에는 많은 총독들이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 입장에서 수많은 총독 중에 어느 총독이 유능한 총독처럼 보였겠습니까? 통치한 곳의 사람들을 억압하고 핍박하여 다스리는 지역에서 자주 반란이 일어나는 지역의 총독은 무능해 보였을 것입니다. 오히려 통치하는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평온하게 다스리는 총독이 유능해 보였을 것입니다.

 

벨릭스는 세상적인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울이 무죄하다는 것을 알았고 복음으로 말미암은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세상을 향한 욕망이 더 컸습니다. 어떻게든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컸던 것입니다. 벨릭스는 자기에게 뇌물을 바치고 석방시켜달라고 요구하기를 은근히 바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영혼에 위태로움을 느끼면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그 권력을 이용해서 한몫을 챙기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당시 총독은 죄수를 무작정 감금해둘 수도 있었고, 사법절차를 빠르게 진행해 석방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뇌물 수수는 당시도 엄연한 불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밝혀내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흔한 관례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자기 자리를 지키는 생각 밖에 없습니다.

그는 자기 책임을 유기한 채, 재판을 열지 않아서 죄 없는 바울을 2년 동안이나 감금시켜 두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바울은 자신의 진로를 알 수 없습니다. 로마에 가려고 약속했던 하나님의 약속이 잊힌 듯 보였습니다.

 

후임으로 부임한 총독 베스도(27)

무능한 지도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망칠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간신배들에게 끌려 다니고 상황을 바르게 보지 못합니다. 사실을 왜곡하여 불의가 판칩니다. 지도자는 판단력이 흐려서 상황과는 전혀 다른 결정을 합니다. 그 밑에 따르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중시켜줍니다. 이런 사람은 빠른 시간에 교체되어야 합니다.

 

27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27)

 

그렇게 2년이 흐른 후, 유대 지방을 총괄하는 총독이 교체되었습니다.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 후임으로 재임하게 됩니다. 로마 제국은 벨릭스의 시절에 유대인들과의 악화된 관계를 수습하기 위해서 베스도를 그의 후임으로 보냈습니다.

 

신임 총독 베스도에 대해서는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기록 외에 다른 역사적 기록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베스도는 벨릭스보다 좀 더 공정한 정치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은 2년 정도로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27절에서 누가는 2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여전히 구금 상태에 있다고 밝힙니다. 벨릭스는 재임 기간 안에 미결 사건들을 종결지을 수도 있었지만, 정치적으로 유대인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바울을 석방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는 그 이유를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라고 밝힙니다. 유대인들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자신이 로마로 돌아간 이후 자기에게도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방문한 베스도(25:1-5)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지만, 구원을 받기 위해 예수의 이름을 부를 만큼 자신에 대해, 세상에 대해 절망한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 즐거움을 다 버린 사람들,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갈채를 거절한 사람들은 의로우신 하나님으로부터 의의 면류관을 선물로 받습니다(딤후 4:8).

 

1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3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러라 4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5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1-5)

 

벨릭스는 떠나면서 바울을 풀어 주지 않았습니다. 무죄한 바울이 자유를 얻는 것보다 유대인에게 인기를 얻는 것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1) 예루살렘의 방문한 총독 베스도(1)

 

베스도 총독은 부임한지 삼일 만에 예루살렘을 방문합니다. 그는 유대 지방이 문제의 소지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항상 예루살렘은 용광로와 같이 위험한 도시였습니다. 그곳에 치안 유지를 실패하면, 총독 베스도 역시 그 자리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엄하게 다스리면서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게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좋은 관계 맺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2) 바울에 대한 요청한 유대 지도자(2-5)

 

유대인들은 2년 동안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에 관한 사건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신임 총독 베스도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총독에게 유대인의 민원을 넣습니다. 가장 크게 생각하는 문제는 바울 문제였습니다. 바울을 고소했는데 자신들이 요구한데로 재판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들은 가이사랴에 있는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들에게는 다른 속셈이 있었습니다. 지난번 계획처럼 대복해 있다가 길에서 죽이려는 음모를 구미고 있었습니다.

 

총독 베스도는 전임 총독에서 바울을 인수인계를 받았을 것입니다. 전반적인 바울에 대한 상황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쉽게 내주지 않습니다. 원칙대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대신 유대 지도자들이 가이사랴로 내려오면, 바울 문제에 대해서 재판하겠다고 합니다.

 

가이사에게 상소한 바울(25:6-12)

정치인들의 의사결정은 다수결의 원칙을 사용합니다. 한 두 사람의 의견보다 다수의 의견을 이루어줄 때 통치가 수월해 집니다. 그래서 소수의 의견은 무시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소수에게도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신임 총독 가이사도 다수의 의견을 따라서 정치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6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7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8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9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 대 12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6-12)

 

바울은 일찍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을 방문한 후, 로마까지 방문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가 있습니다(19:21). 이 계획은 바울의 개인적인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었습니다(23:11). 신입 총독인 베스도는 바울에 대한 사안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해 당혹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소송할 장소를 유대인들이 요구한 것처럼 예루살렘으로 바꿀 의사가 있는지 물었지만, 바울은 이를 거절하고 로마에 있는 황제 가이사에게 가겠다고 말합니다.

 

(1) 재심된 바울의 재판(6-8)

 

새로 부임한 총독 베스도는 인사 차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8-10일을 보내고 다시 가이사랴로 돌아옵니다(6). 다음날 곧 바로 공식적으로 바울에 대한 재판을 재계합니다. 전임 총독 벨릭스가 차일피일 미룬 재판을 신임 총독 베스도가 곧장 재개한 이유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 때문입니다.

 

총독 베스도는 바울을 재판정으로 불러드립니다. 예루살렘 유대인들은 공식적인 재판을 통해 다시 한 번 바울을 기소할 기회를 얻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재판이 이루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내려옵니다(7). 유대인의 종교법과 로마의 실정법 모두를 고소 사유로 언급했습니다. 기존의 고소 사유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로마의 실정법까지 추가해 로마인인 재판장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 바울을 고소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 바울을 제거해야 한다는 전략적 목적에 맞추어 고소 사유를 덧붙였습니다. 그러니 증거가 있을 리 없었습니다(7). 주장만 있고 증거는 없습니다. 적개심만 있고 사랑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세월이 2년이나 흘렀지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나사렛 이단인 바울을 죽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모습은 전혀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의 부죄는 명백한 것이었지만, 원고 측은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거하려 했습니다. 바울이 눈엣가시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버울을 죽이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부활이 계속 전파되어 본인들의 이권이 침해하리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바울을 고소한 것은 결국 복음을 방해하고 차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항해 스스로 변호하는 바울의 태도를 보시길 바랍니다(8). 그는 유대인들을 욕하거나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무죄함을 역설했을 뿐입니다. 복음의 가치와 힘을 알았기 때문에 복음을 훼방하는 자기 민족이 언젠가는 복음을 받아들이길 간절히 바랐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기소에 대해 다시 한 번 자신의 무죄를 변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는 유대인들의 율법을 어긴 적도 없고 성전을 더럽힌 적도 없다며 무죄를 호소합니다. 그리고 로마의 범도 어긴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2) 다음 장소로 예루살렘을 제안(9-10)

 

베스도의 경우는 바울보다 유대인들에게 호감을 가져야 통치가 쉬어 집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라’(9)고 기록합니다. 여기서도 벨리스의 재판 때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무죄 판결로 석방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베스도 역시 벨리스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재임 초기에 유대인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종적인 판결을 유예합니다.

 

베스도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 받을 것을 제안합니다. 일의로 결정할 수 있지만, 바울이 로마 시민이기 때문에 배려 차원에서 묻는 것입니다. 당연히 바울은 유대인들의 궤계를 짐작하고 단호하게 베스도의 제안을 거절합니다(10). 베스도의 제안은 예루살렘에서 재판하면 몇몇 산헤드린 공회원을 재판의 자문 위원으로 두겠다는 의미였습니다. 당시 로마 법정에서도 재판장은 판결을 돕기 위한 자문 위원들을 두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배심원과 같은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되면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거부합니다. 바울의 이러한 요구는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3) 가이사에게 상소하는 바울 (11-12)

 

바울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11)고 표명합니다. 로마 시민의 마땅한 권리입니다. 이 말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말이 아니라 지난 2년 동안 구금 기간 동안에 준비한 제안일 것입니다. ‘로마에 가서도 증인이 될 것이라’(23:11)는 예수님의 약속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가이사랴나 예루살렘에서는 승소할 가망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가이사께 상소한 것입니다. 상소는 공식적으로 로마 시민에게 어떤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황제에게 상소할 수 있습니다(12). 이것을 법정 전문용어로는 프로 보카티오(provocatio)라고 부릅니다. 프로보카티오는 판결이 이미 내려진 후에 항소하는 아펠라티오(appelatio)와는 다른 절차입니다. 과거에 전자는 공직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판결을 내렸던 반면, 주후 1세기에 이르러서는 황제가 이 판결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로마에서 황제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겠다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생각이었습니다. 사역을 해 나가면서 무조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주변 상황을 고려하여 스스로 선한 결정하길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명을 따라 움직이는 자입니다. 그 부르심에 순종할 때, 감옥이든지 광장이든지, 환영을 받든지 거절을 당하든지, 그 자리가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요 자유의 자리임을 믿는 자들입니다. 복음에 사로잡히고 사명에 사로잡히는 증인으로 살 때 가장 행복한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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