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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24-02)


여호수아의 마지막 권고(2)

여호수아 24장 19-33절


신앙의 길은 항상 순탄하지 않습니다. 매번 새로운 결단을 하지만, 불순종과 부족한 충성심이 드러납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 멀어지고, 참 하나님을 섬기려는 의지와 능력은 쉽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신앙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신앙생활은 도전과 인내가 요구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결단이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

 

  • 앞서 언약 조약문의 형식 중에 여기서 축복과 저주, 증인/증거의 요소가 나타납니다. 현제의 언약 재확립을 위한 예식은 전형적인 언약 조약문의 형식을 따르지는 않으므로 선포된 언약 조항들의 보관이나 의전과 제사들이 누락됩니다. 세겜 언약을 재확립하는 예식을 마친 후 여호수아가 죽고 곧이어 엘르아살도 죽습니다.

 

언약의 재확증: 저주의 경고(19-24)

하나님의 거룩성은 그 어떤 것과 비교 불가능한 독보적인 분리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른 신들(돈과 권력)과 구별되는 분임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차별화된 하나님 섬김을 정치경제적인 영역에서도 반영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이 떠나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철저히 권고합니다.

 

19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20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 21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하는지라 22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하더라 23여호수아가 이르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하니 24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하는지라(19-24)

 

여호수아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꺼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다.’ 순종을 요구하면서 그들이 순종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 돌출적인 발언에 대한 해석은 분분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풍자적 반어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동번역은 이러한 반어법의 뉘앙스를 반영하여 의문문으로 번역합니다: ‘야훼께서 얼마나 준엄하신 하느님이시데, 여러분이 감히 그를 섬기겠소?’ 더욱 강하게 순종을 촉구하는 역설적 표현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신 분이면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주지시킵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인간이 느끼는 시기심에서 비롯된 저급한 질투와 다릅니다. 그분의 질투는 거짓된 죽은 신들을 용납하지 않는,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의 정당한 권리 주장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경쟁자로 시기하고 질투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거짓 신들을 경쟁자로 여기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질투는 거짓 신들을 숭배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들을 섬기는 언약 백성의 잘못과 배교를 결코 용서하지 않으십니다(19-20).

비록 복을 받았을지라도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선다면 복은 화로 바뀔 것입니다. 재앙이 내리고 생명 대신 죽음이 임할 것입니다. 이것은 언약 형식의 요소 중 축복과 저주의 선언입니다.

여호수아의 축복과 저주의 선언을 듣고 백성(실제로 백성의 대표들)은 힘주어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섬길 것입니다.’ 언약 체결식에서 합의와 동의를 뜻하는 상대편의 공개적인 아멘 응답은 필수적이었습니다. 그 자체로 언약 체결의 확증 표시며, 동의를 위해 대답을 했던 사람 자신이 언약의 증인입니다. 백성의 대답을 들은 여호수아는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대답한 그들이 오늘 스스로 증인이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회중 대표단도 화답하여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22). 이것은 언약 조약문에서 증거의 요소 중 하나입니다.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땅에서 ‘아멘’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언약 백성은 이방신들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따라야 합니다. 그들은 이제 그 땅을 얻었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그 땅에서 사느냐입니다. 여호수아의 권고에는 경고가 깃들어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타락과 부패의 길을 걸으며, 각종 신상들을 만들어 그것들을 섬긴다면 즉각 망할 것입니다. 백성은 재차 여호수아에게 ‘우리가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합니다.

 

언약의 재확증: 언약 규정의 기록과 증표들(25-28)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분열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향해 신실한 사랑을 빼앗는 모든 것들을 실어하십니다. 가나안 족속들과 아모리 족속들이 위험한 것은 단지 제안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사회경제체제를 따르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5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26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우고 27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28백성을 보내어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라(25-28)

 

이날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이것은 또 하나의 언약 체결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8장의 세겜 언약의 재확립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시내산 언약, 모압 언약, 세겜 언약의 관계를 정돈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내산 언약은 출애굽 제 1년에 여호와께서 광야의 제1세대와 시내산 아래에서 체결하신 언약입니다(출 24장). 시내산 언약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백성들을 위해 갱신될 필요가 있었기에 광야 생활의 마지막 해인 제 40년, 모세는 사망 직전에 모압 광야에서 새로운 언약을 반포합니다. 이것이 모압 언약이다. 모세는 모압 언약의 모든 내용과 절차를 상세히 준비하여 제2세대에게 전달했습니다(신 27장). 시내산 언약은 모세가 주도해서 ‘체결’했고, 모압 언약은 모세가 준비하여 ‘반포’했습니다. 그래서 시내산 언약과 모압 언약을 흔히 모세 언약이라 칭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모압 언약은 준비되어 반포만 되었고 언약식 자체는 거행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이 언약식은 제2세대가 그 땅에 들어가서 거행되어야 한다고 일러두었습니다. 따라서 모압 언약의 예식을 실행할 책임은 여호수아와 제2세대에게 넘어 왔습니다. 여호수아와 제2세대는 그 땅에 들어가 길갈에서 최초의 유월절을 지켰고, 이어서 여리고와 아이를 가나안 땅의 첫 열매로 얻었습니다. 그들은 길갈로부터 세겜까지 근 50km를 북상하여 모세에게 전달받은 언약 예식의 모든 절차를 진행합니다(여호수아 8:30-35). 그 장소가 세겜이므로, 그 언약을 흔히 ‘세겜 언약’이라 칭합니다. 앞서 모세에 의해 준비된 ‘모압 언약’과 여호수아가 실행한 ‘세겜 언약’을 묶어서 '모압-세겜 언약'으로도 칭합니다. 시내산 언약은 광야에서의 언약, 모압-세겜 언약은 약속의 땅을 위한 언약이었습니다. 여호수아 8장에서 비로소 모압-세겜 언약, 혹은 단순히 세겜 언약이 체결되었습니다. 24장에서 이 세겜 언약이 재확립되고 백성들은 이 언약을 앞으로도 잘 지킬 것을 새롭게 다짐합니다. 한편, 시내산 언약은 모든 언약의 모판이므로 언약의 본질과 핵심적 요소는 이후의 언약들에 승계됩니다. 모압-세겜 언약은 시내산 언약의 업데이트 판인데, 두 언약 사이에 크게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시내산 언약과 모압-세겜 언약은 함께 묶어서 ‘모세 언약’으로 통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 언약에서 전혀 다른 언약의 요소들이 추가되고, 새 언약에서 근본적인 언약의 변화가 발생합니다.

여호수아는 이 언약을 재수립하면서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고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합니다. 여기서 ‘제정하다’로 번역된 ‘심’은 ‘놓다’, ‘두다’라는 뜻의 동사인데 여호수아가 새로운 율법 조항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이미 반포된 율법들의 재확립으로 보아야 합니다. 어쩌면 모세가 신명기의 율법 부분을 포함한 신명기의 원판을 작성했는데, 여호수아가 신명기의 최종본을 완성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기록한 것이 여호수아서나 이 책의 일부였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율법책에’ 그 모든 말씀을 기록했다고 진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경의 율법들은 한결같이 모세를 통해 전달되었으며, 여호수아는 율법 전달의 임무를 갖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여호수아가 반포하고 또한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한 말씀들은 모세가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신명기의 여러 율법들인지도 모릅니다.

여호수아는 언약 조약식의 요소 중 하나인 돌기둥을 세운다. 돌은 하나뿐입니다. 아마 8:30-35에서 신명기 27장의 언약식 지침을 따라 에발산 제단 주변에 율법 조항들을 새겨놓은 많은 돌들이(아마 열두 개의 돌) 세워졌을 것입니다. 현재의 이 돌은 단지 추가적인 증거석으로 세워집니다(27). 돌기둥 세우는 의례와 더불어 모든 행사가 끝납니다.

원래 언약 체결식에서는 마지막에 성대한 예전과 더불어 많은 제물이 제단에 바쳐지면서 화목제의 잔치와 더불어 행사가 마무리 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이 행사에서 아무런 제사도 바쳐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시 한 번이 예식이 언약 체결식이 아닌 세겜 언약의 재확립과 그 언약의 준수를 다짐하기 위한 행사였음을 시사 합니다. 행사가 끝나자 여호수아의 해산 명령을 따라 각 지파의 대표들인 백성은 각자의 기업으로 돌아갔습니다.

 

여호수아와 엘르아살의 죽음(29-33)

24장 전체의 중대한 쟁점은 이스라엘이 이방신들을 섬기는 것에 이미 익숙해졌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과 이방 신들 사이의 근본적인 식별해야 할 자리에서 불충분하고 모호한 영적 인식을 합니다.

 

29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30그들이 그를 그의 기업의 경내 딤낫 세라에 장사하였으니 딤낫 세라는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이었더라 31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32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33아론의 아들 엘르아살도 죽으매 그들이 그를 그의 아들 비느하스가 에브라임 산지에서 받은 산에 장사하였더라(29-33)

 

여호수아서는 제2세대의 지도자 여호수아와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죽음과 더불어 마무리됩니다. 여호와의 종 여호수아가 고별사를 전하고 세겜 언약의 재확립 행사를 마친 뒤, 며칠이 지나 110세의 나이로 눈을 감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땅 안에 있는 딤낫 세라에 묻힙니다. 한편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가져온 요셉의 뼈를 세겜 땅에 묻었습니다. 그곳 묘지는 조상 야곱이 100크시타를 주고 매입했었습니다. 오래전 요셉의 유언이 마침내 실현되었습니다(창 50:24-26).

애굽 땅으로 팔려간 지 무려 500년 만에 요셉의 뼈가 고향 땅에 묻힌 것입니다(애굽 430년 + 광야 40년 + 가나안 땅 약 30년). 또한 제2대 대제사장 엘르아살도 죽었습니다. 그는 여호수아의 사망 직후에 죽은 것으로 추론됩니다. 엘르아살에 이어 그의 아들 비느하스가 제3대 대제사장으로 위임되었으며, 그는 아버지 엘르아살을 에브라임 산지에 장사했습니다.


 

거룩과 질투의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실패자 같이 느껴집니다. 맘몬과 소비주의에 물들어 분산된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섬김을 좌절시킵니다. 성찰과 분별만이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치열한 말씀묵상은 불순종과 파열된 충성심 극복의 근력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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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24-01)


여호수아의 마지막 권고

여호수아 24장 1-18절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무엇인가 힘써 노력하면서 살아갑니다. 공부하는 학생은 힘써 공부합니다. 운동선수는 힘써 운동을 합니다. 사업가는 힘써 사업을 확장시키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누가 당신에게 요즘 힘써 노력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번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일들이 무엇일까?’라고 영적인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 여호수아는 고별사를 남기는 23장의 무대와 세겜 언약을 재다짐하는 24장의 무대는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1절에서 여호수아가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았다는 진술은 이것이 23장에서 약간의 시간이 흐른 별도의 회합임을 시사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8장에서 세겜 언약을 체결했기에, 현재의 세겜에서의 예식은 세겜 언약의 준수를 제다짐하는 행사로 보아야 합니다.

 

언약의 재다짐(1-13)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많은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올바로 신앙생활을 바르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죄인이구나 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죄를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1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2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3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4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고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5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었고 또 애굽에 재앙을 내렸나니 곧 내가 그들 가운데 행한 것과 같고 그 후에 너희를 인도하여 내었노라 6내가 너희의 조상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바다에 이르게 한즉 애굽 사람들이 병거와 마병을 거느리고 너희의 조상들을 홍해까지 쫓아오므로 7너희의 조상들이 나 여호와께 부르짖기로 내가 너희와 애굽 사람들 사이에 흑암을 두고 바다를 이끌어 그들을 덮었나니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을 너희의 눈이 보았으며 또 너희가 많은 날을 광야에서 거주하였느니라 8내가 또 너희를 인도하여 요단 저쪽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매 그들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 주매 너희가 그 땅을 점령하였고 나는 그들을 너희 앞에서 멸절시켰으며 9또한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일어나 이스라엘과 싸우더니 사람을 보내어 브올의 아들 발람을 불러다가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10내가 발람을 위해 듣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오히려 너희를 축복하였고 나는 너희를 그의 손에서 건져내었으며 11너희가 요단을 건너 여리고에 이른즉 여리고 주민들 곧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었으며 12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13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1-13)

 

전쟁에 능하지 않는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고, 추위와 더위의 위협이 있고, 광야를 차지한 나라들의 군사적인 공격에 노출되었습니다. 하지만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편이 되어주셨기에 그 죽음의 땅을 안전하게 지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세겜에 모아놓고 설교를 시작합니다.

 

(1) 애굽에서 번성한 민족(1-4)

 

24장은 여호수아의 마지막 임무로 언약 준수를 재다짐하는 행사입니다. 무대는 세겜으로 바뀐다. 세겜은 가나안 입성 초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식을 거행했던 장소입니다(8:30-35).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이 쌍둥이처럼 마주보고 있으며, 그 사이에 세겜 성읍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실로에서 북쪽의 세겜까지는 약 20km의 거리이므로 멀지는 않다. 이스라엘의 정치적-신앙적 중심지는 성막이 세워진 실로이며, 열두 지파는 전국에 흩어져 각자의 영토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온 이스라엘 지파는 여호수아의 죽음 전에 언약 준수를 새롭게 다짐하기 위해 세겜으로 이동하여 집결합니다. 아마 백성을 대표해서 각 지파의 지도자들과 문중의 대표, 가문의 가장들이 세겜에 모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한 행사 장소는 세겜의 에발 산 제단 결이었을 것이다. 여호수아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세겜 언약의 성격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합니다.

언약 체결식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이미 8:30-35의 세겜 언약, 즉 가나안 정복 초기에 여리고와 아이 성을 격파한 후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언하며 거행한 세겜 언약식에 이어, 또 다른 세겜 언약식을 거행하는 셈입니다. 8:30-35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듯이 언약식으로 이해되는데, 그 단락은 세겜 언약식의 모든 장면을 탐고 있지 않습니다. 그 행사의 상세한 내용, 곧 진행 절차와 방법, 그리고 선포될 말씀은 신명기 27장에서 모세가 미리 알려준 바 있다. 언약식의 절차와 내용은 시내산 언약식과 매우 비슷하다(출 24장). 간략한 묘사로 그치는 여호수아 8장의 세겜 언약식은 실제적으로는 신명기 27장의 매뉴얼을 따른 매우 거창한 행사였음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정복 전쟁 초기인 8장의 세겜 언약식과 별도로 전쟁 완료 후 24장에서 별도의 세겜 언약식을 거행했다는 견해는 매우 받아들이기 힘들다. 따라서 여호수아 24장은 세겜 언약의 재다짐 의례인 것으로 이해됩니다. 말하자면, 24장의 여호수아의 연설과 행사 진행 과정은 언약의 형식을 따르기에 분명 언약 체결식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8장에서 체결된 세겜 언약을 재확증하고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에도 언약을 계속 준수하기로 새롭게 다짐하는 행사였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대표자들로 이루어진 회중에게 언약의 형식을 따라 과거를 회상시킵니다. 구약의 언약 형식은 당시 종주국과 속국 사이에 맺은 조약문의 형식을 빌려온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1. 전문(나는 이다); 2. 역사적 회상; 3. 규정들; 4. 규정들의 보관 5. 증인과 증표들; 6. 축복과 저주의 선언; 7. 여러 의례들과 제사들.

여호수아의 역사적 회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 뒤 어떻게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하게 만듭니다. 역사적 회상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선택과 그의 후손들의 이집트 이주; 출애굽과 광야 생활: 요단 동편과 서편의 점령 과정. 먼저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가나안 땅으로 이끄신 일을 이야기한 뒤, 약속의 씨의 계보가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면서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으로 내려간 일을 요약해서 설명합니다.

 

(2) 출애굽 사건과 광야 생활(5-7)

 

여호수아의 역사 회상은 애굽에서 학대받던 시절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고 애굽에 재앙을 내려 그들을 구출했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5). 뒤쫓아 온 이집트 군대를 ‘흑암’, 곧 두터운 구름이 가로막은 기적이 언급됩니다. 이 구름 기둥은 그 안에 불기둥이 언제나 타고 있는 합체된 불-구름 기둥입니다. 애굽 군인들은 낮에는 두터운 먹구름(흑암)이 둘 사이를 막고 해가 떨어지면 커다랗고 환한 불기둥이 둘 사이를 가로막는 이상한 헌상으로 인해 이스라엘에게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출애굽기 14:20). 하나님의 기적으로 홍해가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를 건넜고 뒤따르던 애굽 군대는 물이 덮쳐 모두 수장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광야로 들어갔습니다(7).

 

(3) 요단 동편과 서편의 점령(8-13)

 

여호수아의 역사 회상은 하나님을 일인칭 주어로(‘내가’) 등장시키는 직접화법 형식을 갖춥니다. 이 회상은 민수기의 40년 광야 여정에 대해서는 그 기간을 간단하게 ‘내가 또 너희를 인도하여.· 아모리 족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매’로 한 출로 요약한 뒤, 광야 40년째의 시점인 모압 광야의 무대로 곧바로 넘어갑니다.

‘요단 저쪽’은 현재의 세겜을 기준으로 ‘저쪽’이므로 요단 동편을 의미한나. 당시 고산 지대의 모압 광야와 그 북쪽의 길로앗과 바산 지역은 아모리 속속이 장악하고 있었습니(8).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스라옐 수중에 넘기셨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생각지도 않은 요단 동편의 넓은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막강한 두 아모리 족속의 왕들이 연거푸 패전했나는 소식을 들은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군사적 대응이 아닌 비상한 대응책을 마련합니다. 그를 이용한 신통력을 지닌 것으로 국제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부당 발람을 멀리 메소포타미아에시 초청해 저주의 주문으로 이스라엘을 궤멸하려 합니다. 그러나 발락의 저주 작전은 발람의 말에 귀를 막고 오히려 그를 이용하신 하나님의 개입으로 실패로 돌아갑니다. 발람은 발락의 기대와 달리 저주를 퍼붓기는커녕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연거푸 이스라엘에 축복을 쏟은 것입니다(9-10). 그 후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너 여리고로 행진해 여리고를 필두로 가나안 땅의 모든 종족들과 싸울 때, 하나님께서 그 전쟁을 이끄시어 그들을 모두 이스라엘의 수증에 넘기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왕벌’을 그들 앞에 보내셨음을 상기시키십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칼과 활로 적들을 쓰러트린 것이 아니라, 이 왕벌이 그들을 쏘아대 혼비백산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왕벌이 실제로 군사작전에 사용된 독성이 강한 무서운 말벌들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23장에서 ‘왕벌’의 역할은 이스라엘 군대에 앞서 행진하여 적들에 타격을 가하고 우왕좌왕하게 만드는 여호와의 ‘사자’의 역할과 동일합니다.

‘왕벌’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심판의 ‘사자’에 대한 비유로 보입니다. 출애굽기 23:28에서 하나님께서는 ‘왕벌’이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낼 것이라고 하시면서(출애굽기 23:28), 동시에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출애굽기 23:30). 이것은 왕벌이 하나님의 전쟁의 대행자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자’가 쫓아내는 가나안 족속들과(출애굽기 23:23) ‘왕벌’이 쫓아내는 가나안 족속의 대조를 통해서도 확인됩니다(출애굽기 23:28). 이로 미루어 볼 때 ‘왕벌’은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해 보내실 ‘여호와의 사자’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로 인하여 그들은 가나안의 땅과 성읍들, 그리고 과수원들을 거저 얻을 것입니다. 실제로 여호수아서의 전쟁 양상을 살피면, 초기의 정복 과정에서 파괴가 발생했으나 대체로 몇몇 성읍들에 국한되었으며, 남부 전쟁과 북부 전쟁 모두 연합군을 분쇄한 뒤에 각 성들을 칠 때는 사실상 빈집털이 하듯 성을 쉽게 차지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언약의 재다짐: 순종에의 결의(14-18)

가나안 땅이 떠돌이 히브리 민족의 땅이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며 은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정의를 이스라엘은 기억해야 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은혜를 받았으니 은혜를 베푸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선물로 여기며 자기 민족을 향해서도, 주변 나라들을 향해서도 이 선물의 원리를 따라 존재해야 했습니다.

 

14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16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17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18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14-18)

 

장대한 역사적 회상을 마친 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향해 여호와께의 절대적 충성과 복종을 명령합니다(14). 여호와냐 다른 신이냐, 선택하라! 여호수아는 자신은 오직 여호와만 섬길 것이라고 천명합니다(15). 여호수아의 결단의 요구는 다른 측면으로 이미 여러 차례 선포된 언약 조항, 곧 말씀 준수의 요구라 할 수 있습니다. 백성은 이에 대답하여 하나님께만 절대 충성하겠다고 약속합니다(16). 그들은 역사적 회상에서 여호수아가 말한 대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인도하고 보호해주셨으며 승리를 가져다주셨다고 고백합니다(17-18).


우리들은 이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거룩한 백성이요 구별된 제사장 그리고 순결한 신부입니다. 더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군사들입니다. 영적 군사들은 우리들이 싸우는 군사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고 순종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 사람들을 찾고 계시며, 이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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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23-01)


여호수아의 마지막 유언

여호수아 23장 1-16절


‘유언(遺言)’이란 그가 죽은 뒤의 법률관계를 정하려는 생전의 최종적 의사표시로서 유언자의 사망으로 그 효력이 생깁니다. 유언은 반드시 유언자 본인의 독립한 의사에 따라 행해져야 하는 행위로, 상대방의 수락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독행위입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수아의 유언적 권고가 흐르고 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떠난 자리에 누가 역할을 이을 것입니까? 엄습해 오는 두려움과 새로운 희망의 전진 사이에서 정리와 정돈이 필요하다. 얽매이기 쉬운 것들은 버리고 가야 합니다.

 

  • 23-24장은 노년의 여호수아의 마지막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개역개정과 달리 ‘많은 날들이 흘렀다’는 표현으로 23장의 첫 구절을 시작합니다. 23장은 8장에서 체결된 세겜 언약을 다시 다짐하는 예식이며, 여호수아서의 끝을 맺습니다. 이 장면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지 약 30년이 지난 시점으로 추정됩니다.

 

여호와를 기억하라(1-5)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살려고 힘을 다해야 합니다. 주변 누군가는 자신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하겠습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듣고 보고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는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이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사역을 본이 되도록 살았습니다.

 

1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2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들의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나이가 많아 늙었도다 3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4보라 내가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쪽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아 너희의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 5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1-5)

 

23-24장은 신명기에서 늙은 모세가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죽는 장면과 흡사합니다.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죽음이 임박한 늙은 여호수아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죽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장로, 수령, 재판장 그리고 관리를, 즉 모든 지도자들을 불러 고별사를 전합니다. 그는 모세의 고별사가 그러했듯이 그들에게 최근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회상합니다. 자신들이 수년 간 가나안 족속과 전쟁을 벌였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전쟁을 이끄셨습니다(3). 여리고의 첫 번째 전투가 교훈하듯이 가나안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비결은 인간의 군사력과 전술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성을 돌다가 소리를 지르라는 불가해한 전술을 그들이 절대 순종했을 때, 여리고 성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후 그들은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며 전투를 수행하지만, 언제나 이 믿음의 원리를 따라 싸워야 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막강한 군사력만 믿고 전쟁에 임한다면, 승리는 보장될 수 없었습니다. 가나안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 땅을 승전국의 왕에게서 하사받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땅을 얻은 그들은 제비를 뽑아 지파별로 나누어 영원한 유산(나할라, 기업)으로 삼았습니다(4). 제비뽑기에는 아직 정복되지 않은 남아 있는 종족들(고임, 나라들)의 땅도 미리 포함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요단 강부터 지중해에 이르는 동서의 범위로만 간략히 묘사합니다(4). 여기서 요단 동편이 약속의 땅의 유산에서 제외되는데 아마 이것은 애초에 요단 서편의 땅만이 약속의 땅이라는 원칙을 재확증하는 진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요단 동편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제비뽑기의 수단으로 할당하신 이상 여기서 그 땅이 제외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또한 여호수아의 발언은 제단 사건 이후 재화합의 다짐으로 결속된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신에 반합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분명 요단 동편 지파들의 반발을 살 수 있는 발언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히브리어 문장은 특이합니다. 이것은 ‘남아 있는 종족들을 요단강으로부터, 그리고 모든 정복한 종족들을 지중해까지’로 번역되는 문장입니다. 개역개정을 포함한 대다수 영역본들은 단순하게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쪽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종족들과 모든 정복한 종족들을’로 옮기는데, 이것은 적절한 번역이 아닙니다. 아마도 여호수아가 남아 있는 족속에 대해서만 그것을 요단 서편과 결부시키는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요단 동편은 사실상 정복이 완전히 끝난 반면(극히 일부, 즉 13:13의 그술과 마아가를 제외하고), 요단 서편은 곳곳에 정복되지 않은 종족들이 남아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수아의 이 발언에는 이미 할당이 완료된 요단 동편을 약속의 땅에서 배제하려는 의도는 들어 있지 않을 것입니다.

5절에서 재차 여호수아는 가나안 종족을 쫓아낸 분이 여호와이심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쫓아내다’의 동사 ‘하다프’는 ‘떠밀다’라는 뜻으로 구약에서 매우 드문데 여호수아에서는 여기서만 나타납니다. 이러한 의미로는 대부분 동사 ‘야라쉬’가 사용되는데 이 동사는 ‘점유’의 의미로 사용되는 반면, ‘하다프’는 물리적으로 떠밀어내는 동작을 가리킵니다. 다시 한 번 이러한 동사의 사용은 가나안 종족들에 대한 헤렘 전쟁이 실제적으로는 대량 학살보다 오히려 추방의 방식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을 시사 합니다.

 

여호와께 순종하라(6-10)

인생을 돌아보면서 말씀 붙들지 않고 다른 얄팍한 꼼수를 찾고 있지 않는지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맨 마지막에 찾거나 사람이나 사람이 만든 다른 것을 믿고 신뢰하는 나쁜 습관이 내 안에 아직 자리 잡고 있는지도 점검하기 원합니다. 살 길은 말씀에 있습니다.

 

6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7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 중에 들어 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8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9이는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까지 너희에게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10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6-10)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땅을 선물로 받았으니 이제 그들이 모세의 율법대로 살 것을 명령합니다. 여기서 ‘모세의 율법책’이 모세오경인지 아니면, 모세가 마지막으로 재반포한 신명기인지, 혹은 신명기의 율법 부분인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여호수아서가 마지막 유언을 남기기 전에 이미 모세가 기록한 ‘모세의 율법서’라는 책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쳤으며’ 그 책은 언약궤 곁에 보관되었다고 진술하는데(신명기 31:24-26) 아마 여기서 말하는 모세의 율법책은 바로 그 책을 가리킬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가 기록한 신명기 율법의 범위와 내용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벗어나 우로나 좌로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6). 이것은 이미 1장에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당부하신 말씀의 반복입니다(1:7). 이제 마지막 장면에서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동일한 당부의 말을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가나안 종족들에게 편입되고 동화되어선 안 되며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 신들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기도하거나 그 신들을 숭배하고 절하는 일을 해선 안 됩니다(7).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께 강하게 밀착하여(다

바크) 있어야 합니다(8).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큰 은혜를 베푸시어 그들의 적들을 물리쳐주셨고 그리하여 그들을 맞설 대적들이 더 이상 없기 때문입니다(9). 그들은 여호와의 능력으로 인해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되어 한 사람이 천 명을 물리칠 능력을 지닐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이스라엘이 물리적 군사력 너머 하늘의 군사적 도움을 받는 최강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문학적 표현입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라(11-13)

자신이 할 일은 말씀을 지켜 순종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싶거든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면 됩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삶이 현재와 미래를 헤쳐 나가는 지혜를 얻게 합니다.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과거에 무슨 일이 있어 났는지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어떤 결과가 발생했는지는 조금만 살펴보아도 쉽게 드러납니다.

 

11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12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13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11-13)

 

현재 여호수아는 마치 신명기의 모세처럼 말을 하고 그의 어투를 사용하면서 마지막 연설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요청은 신명기에서 두드러지며, 동화와 통혼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경고하고, 순종에 따른 복과 불순종에 따른 벌을 강조합니다. 만일 그들이 여호와로부터 돌아서서 오히려 이방 민족들과 긴밀히 유착하고 그들과 통혼을 한다면 그들은 덫과 올무에 걸린 신세가 될 것입니다. 동사 다바크가 여기서는 하나님이 아닌 이방 민족에 대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밀착은 혼인 관계와 깊은 친분(왕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은 그 땅의 거주민들과 평화 협약을 맺고 공동 거주를 하며 통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올무가 되고 덫이 되며 옆구리에 채찍이 되고 눈에 가시가 될 것입니다. 올가미나 덫은 누군가 한 번 걸리면 빠져나올 수 없으며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결국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옆구리의 채찍(아마 큰 가시)과 눈에 가시는 지속적인 큰 고통을 발생시킵니다. 그들은 이러한 극한 고통을 당하고 던에 걸린 채 죽을 것입니다.

실제로 사사기 1:21-33과 열왕기상 9:20-21은 가나안 족속이 완전히 제기대지 않은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또한 사사기 2:2-3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쫓아내지 않으시고 그들의 신들이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되게 하셨다고 보고합니다. 따라서 올무는 불순종한 그들이 초래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을 지키라(14-16)

여호수아가 그 입에서 말씀이 떠나지 않게 하고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켜 행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할 때면 아름다운 땅이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지면 멸망의 땅이 되기도 합니다. 사는 이 땅을 내가 어떻게 여기는지 살펴 보는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현재 상태를 가늠하게 합니다. 척박한 땅이 아닌 축복의 땅이 되게 하는 방법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깊이 빠져드는 것입니다.

 

14보라 나는 오늘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은 마음과 뜻으로 아는 바라 15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너희에게 임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모든 불길한 말씀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라 16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니라(14-16)

 

여호수아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고합니다. ‘온 세상이 가는 길’은 인생의 순리인 죽음을 가리킵니다(열왕기하 2:2).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모든 선한 말씀은 한 말씀도 실패함이 없이 모두 성취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말씀대로 될 것입니다. 따라서 순종에 따른 복을 약속한 선한 말씀이 성취되는 것처럼, 불순종에 따른 벌을 약속한 악한 말씀 또한 성취될 것입니다. 또한 만일 끝까지 그들이 배교의 길을 고집한다면, 그 벌은 그들이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고서 다른 신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을 섬기고 절한다면,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하여 순식간에 그 땅에서 망할 것입니다. 땅은 이렇게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순종과 불순종의 여부에 따라 젖과 꿀이 흐른다는 약속의 땅은 언제든 유황불이 쏟아지는 저주의 땅이 될 수 있었습니다.


흑암 권세의 통치를 받다가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가나안의 거짓 풍요와 거짓 신들을 따라가면 자유를 잃고 인간성을 상실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순종과 충성으로 살면 하나님의 영구적인 다스림 속에서 진리에 붙잡힌 참 자유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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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22-03)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의 해명

여호수아 22장 21-34절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하나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믿음으로 하나 되면 나머지는 지엽적인 것으로 얼마든지 조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름 받은 하나의 공동체라는 믿음은 신앙을 더욱 확고하게 해줍니다. 더욱이 대화를 통해 공동체를 더욱 견고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하나라는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합니다. 상대의 허물이나 과실이나 죄 때문에 일이 발생했다며 책임을 추궁하기 보다는 먼저 신앙의 중심을 확인하는 일에 집중합니다.

 

 

  • 앞서 동편 지파들의 거대한 제단 설립을 접한 서편 지파들은 즉시 파견단을 보내 항의를 하면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동편 지파들은 그들의 비난에 차분히 대응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오해에서 빚어진 일이었습니다. 동편 지파들은 제단의 용도와 목적이 실제 사용을 위한 것이 아닌 증거를 위한 것임을 적극 해명합니다. 그 제단 설립의 목적은 오히려 서편과의 강한 결속을 다짐하기 위한 것임이 밝혀진다. 이로써 양측의 갈들은 해소되었습니다.

 

동편 지파들의 해명(21-29)

서로 다름을 강조해 ‘틀린’것으로 인정해 분리하고 분열되는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라는 생각입니다. 두 부류의 사람들 하나됨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분리를 위해 손가락질 하고 정죄의 독설을 쏟아 내는 사람들 하나됨을 지켜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열이라는 파괴력에 무너지는 흩어짐은 쉬운 것입니다.

 

21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이스라엘 천천의 수령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22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를 거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께서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지 마시옵소서 23우리가 제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또는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또는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거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24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25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느니라 하여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26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제단 쌓기를 준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27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우리의 번제와 우리의 다른 제사와 우리의 화목제로 섬기는 것을 우리와 너희 사이와 우리의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할 뿐으로서 너희 자손들이 후일에 우리 자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다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28우리가 말하였거니와 만일 그들이 후일에 우리에게나 우리 후대에게 이같이 말하면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 조상이 지은 여호와의 제단 모형을 보라 이는 번제를 위한 것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 뿐이라 29우리가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제단 외에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고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려는 것은 결단코 아니라 하리라(21-29)

 

요단강 동편 지파들이 강가에 큰 제단을 쌓았다는 소식을 듣고, 서편에 있는 지파들은 이러한 행동이 분리를 위한 신호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러한 의도라면, 동편 지파들이 종교적인 독립을 추진하여 자체 통합을 이루는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을 향한 배교이며 민족분열을 획책하는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에는 큰 위기 앞에 서 있었습니다.

 

(1) 그것은 우상의 제단이 아니다(21-23)

 

서편 지파들의 비난과 추궁을 들은 동편 지파들은 서편 대표자들에게 차분히 요단강의 제단과 관련된 의중을 전달합니다. 대표자들을 의미하는 ‘이스라엘 천천의 수령들’은 14절의 ‘이스라엘의 천부장’과 동일한 히브리어인데, 14절의 ‘천부장’이 더 나아 보입니다.

여기서 대화 장면에 대한 묘사가 흥미롭습니다. 비느하스는 서편 파견단의 대표로 대화의 주체였음이 분명하나 이 대화 내용은 양측 대표 간의 개인적 대화가 아닌 집단적 대화 형식을 갖춥니다. 이것은 이 문제가 이스라엘 전 공동체의 심각한 문제였음을 반영합니다. 동편 지파들은 서편 지파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여 이 사건을 해명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온 지파의 하나님을 ‘신들의 신이신 하나님’으로 표현하며 자신들이 함께 믿는 하나님을 먼저 크게 찬양합니다. 이것은 서편 지파들이 동편의 배교를 의심하고 있기에 의도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들은 단호히 이중적으로 반복해서 말합니다. 만일 그 제단의 건립이 여호와를 배반하고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라면,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을 내치셔야 한다(22)고 말합니다. 그 제단이 여호와로부터 돌아서서 실제로(아마도 이방 신들에게) 각종 제사들을 드리기 위한 것이라면 직접 하나님이 자신들을 벌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23).

 

(2) 그것은 증거 제단이다(24-29)

 

동편 지파들은 그들이 어떤 목적으로, 왜, 그리고 얼마나 신중히 판단하여 그 제단을 세웠는지 설명합니다. 자신들과 서편 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의 분열과 괴리감을 염려했다고 해명합니다. 그들의 답변에는 훗날 서편 지파의 후손들이 자신들에게 ‘너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고 무시하며 자신들을 배척할까 하는 염려가 깃들어 있습니다(24). 그들은 요단강이 약속의 땅의 경계선인 이유로 서편 지파들이 요단 동편 땅은 여호와의 분깃(몫)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하며, 여호와 신앙에서 배제할까 우려했습니다(25). 즉, 요단 서편 지파들의 후손들이 요단 동편의 후손들에게 장차 둘 사이의 관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동편의 두 지파 반은 제단 건립의 배경과 이유, 목적을 서편 지파에게 설명합니다. 그들의 해명은 서편 지파와의 정치적, 신앙적 분리를 염려한 조치였다는 것입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도 서편과 동등한 여호와의 언약 백성의 자격을 가졌다는 증거로 제단을 지었습니다. 그들의 해명은 더욱 구체화됩니다. 동편 지파들은 자신들이 그 제단을 실제 사용하려는 용도로 지은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그 제단은 ‘번제와 희생’(번제와 다른 제사)을 드리기 위함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신명기와 여호수아에서 이 표현은 레위기 1-7장이 명시한 다섯 가지 제사 품목들 전체를 가리킬 것입니다. 신명기와 신명기를 잇는 여호수아서는 자세한 제사들과 제의 체계에 전혀 관심이 없으므로, 제사 전반을 단순히 포괄적으로 표현할 뿐입니다. 어쨌든 동편 지파는 그 제단이 서편과 동편의 단합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앙적 일치를 위해 건립되었다고 해명합니다. 그들은 번제를 비롯한 모든 제사는 마땅히 오직 ‘여호와 앞에서’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을 밝힙니다(27). 여기서 ‘여호와 앞’이란 성막에 계신 하나님의 앞을 말하므로 일차적으로 현재 실로에 설치되어 있는 성막의 제단을 가리킬 것입니다. 그러나 이 표현이 성막의 제단만이 유일한 합법적 제단이라는 뜻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신명기 12장에서 제단과 성소가 ‘내가 택할 곳’으로 한정된 중앙 성소법이 반포되는데, 이것이 과연 비평주의와 보수적 학자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학자들의 견해대로 단일 중앙 성소를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이 듭니다. 성막 제단 외의 다양한 합법적인 여호와의 제단들이 여호수아서와 역사서들에 나타납니다. 그들은 이 제단이 실제 사용하기 위한 제단이 아니라 증거를 위한 제단에 불과하다고 적극 해명합니다(27-28). 그들도 번제와 여러 제사들과 화목제는 하나님과 공동체에서 인준한 제단에서만, 곧 ‘여호와 앞에서만’ 드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합법적 제단에서 그들의 제사를 받으셔야 하기에 인준을 받지 못한 그 제단은 단지 증거 제단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늘은 제단의 증거를 못해 자신들도 확고한 여호와의 언약 백성임을 밝히 드러내고 서편 지파들이 훗날에 결코 동편 땅은 자신들 및 여호와와 상관없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실제 제단이 아니라 모형 제단입니다. 이것은 그 대형 제단이 성막의 제단을 본떠서 똑같이 설계되고 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 제단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단일성과 정치적 통일성, 신앙의 일치성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증거’는 주로 계약 관계에서 사용되는 단어인데, 예컨대 언약식에서 세우는 돌기둥과 같이 계약과 조약의 확실성을 보장하고 증거하는 다양한 물표입니다.

29절에서 동편 지파들은 서편의 열 지파가 앞서 16절에서 품었던 의심을 반박합니다. 서편 형제들은 그 제단의 독자적인 건립은 결국 여호와의 신앙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거역’ (마라드)과 ‘(여호와로부터) 돌아섬’(슈브 그기)이라는 아주 강한 표현을 써가면서 그들을 비난했습니다. 동사 ‘슈브’는 배역과 회개의 동작 둘 다에 사용되며 특히 선지자들이 이 단어를 반복적으로 입에 올립니다.

여호와로부터 돌아서서(배교) 우상을 따라가는 백성은 시급히 우상으로부터 돌아와야 합니다(회개). 요단 동편 지파들은 다시 한 번 제단 건립이 여호와로부터 돌아서서 그분을 버리고 다른 신을 숭배하기 위함이 결단코 아님을 밝힙니다.

 

온 이스라엘의 재화합(30-34)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강령을 통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같이 믿는 형제들은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끝까지 용서하고 사랑하고 위해 기도해야 하십니다.

 

30제사장 비느하스와 그와 함께 한 회중의 지도자들 곧 이스라엘 천천의 수령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의 말을 듣고 좋게 여긴지라 31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오늘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줄을 아노니 이는 너희가 이 죄를 여호와께 범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너희가 이제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고 32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지도자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을 떠나 길르앗 땅에서 가나안 땅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와 그들에게 보고하매 33그 일이 이스라엘 자손을 즐겁게 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거주하는 땅에 가서 싸워 그것을 멸하자 하는 말을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34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그 제단을 엣이라 불렀으니 우리 사이에 이 제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 함이었더라(30-34)

 

모든 오해가 풀리자 비장했던 긴장감이 사라지며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되었습니다. 서편의 대표들, 곧 이스라엘의 천부장들은 동편 형제들의 해명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비느하스가 여기서 처음으로 파견단의 대표자격으로 발언합니다. 이제 비느하스의 마음은 서편 공동체 전체의 마음입니다. 비느하스는 이 순간 한 분 여호와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하나님으로 임재해 계신다고 말합니다. 우려와 달리 요단 동편 지파들은 여호와께 범죄하지 않았기에 동족 간의 비극적인 전쟁의 위험은 사라졌습니다. 비느하스는 이로써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심판의 손에서 구출되었다고 표현합니다.

비느하스와 서편 대표들은 동편 지파들을 떠나 서편으로 복귀하여 사건의 진상을 상세히 서편 지파들에게 보고했습니다. 여기서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을 떠나다’는 표현에 므낫세 자손은 빠져 있는데, 이것은 팡서 25전에서도 그러했고 마지막의 34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반 지파에 불과했던 므낫세에 비해 동편에서 르우벤과 갓 지파가 주도적 역할을 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므낫세 지파는 서편에도 반 지파가 땅을 얻어 거주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전적으로 동편에서만 거주해야 하는 르우벤과 갓 자손에 비해 반 지파가 서쪽에 거주하는 므낫세 지파는 서편과의 지파적 연대감이 와해될 위험이 크지 않았을 것이기에 현재의 청문화회에서 므낫세의 이름이 종종 사라지는 듯합니다. 서편의 온 이스라엘은 파견단이 가져온 낭보를 전해 듣고 환호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전쟁을 위한 무장을 즉시 해체했습니다. 제단으로 인한 오해가 사라지면서 하나의 신앙으로 결속된 형제애를 확인한 이상 앞으로도 두편이 갈라져 싸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동편 지파들은 그 증거를 위한 모형 제단에 ‘엣’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히브리어의 뜻 자체가 ‘증거’이기 때문에 그 제단은 말하자면 ‘증거 제단’입니다.


개인적 관계나 공동체 속에서 파열이 생길 때 근본 원인을 찾기 위해 상류로 올라가야 합니다. 모두가 잘될 수 있도록 평화와 화해의 열망을 제안해야 합니다. 분열된 관계에서 지불하는 엄청난 대가는 화해를 위한 비용과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평화는 힘쓰고 애써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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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22-02)


요단강 동편의 제단 사건

여호수아 22장 10-20절


 

호사다마(好事多魔)처럼 요단강을 경계로 동서 분열의 위기가 발생했습니다. 문제는 깊어졌고 결정에 이르렀지만, 결국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오늘날 대립과 혐오의 양극화가 심화된 사회에서도 상생과 화해의 길은 있습니다. 이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양보와 배려의 자세를 통해 가능해집니다.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진정한 대화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함께 평화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 두 지파 반은 요단 동편으로 복귀하자마자 이스라엘 공동체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자신들의 거주지로 복귀한 직후 그들은 요단강 언저리에 대형 제단을 축조했습니다. 그것은 요단 서편 지파들의 분노를 자아내 순식간에 이스라엘을 분열의 위기로 몰아갔습니다. 서편에서 보기에 동편 형제들이 쌓은 제단은 성막의 제단과 별개의 제단으로 불법적 제단인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서편 지파들은 이에 즉각 항의하며 심지어 전쟁도 불사할 태새였습니다.

 

동편 지파들이 요단강에 세운 제단(10-14)

이스라엘의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열정도 아니 많은 제물도 아니고 큰 제단도 아닙니다.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그분이 요구하신 방석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즉, 순종이 예배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만든 하나님을 향한 우상숭배가 됩니다.

 

10내가 발람을 위해 듣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오히려 너희를 축복하였고 나는 너희를 그의 손에서 건져내었으며 11너희가 요단을 건너 여리고에 이른즉 여리고 주민들 곧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었으며 12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13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 14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10-14)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동편으로 복귀하되 요단강 언저리에 제단을 축조했습니다. ‘요단 언덕 가’를 히브리어 ‘겔릴로트’ 그대로 고유명사로 읽으면서 지명을 가리킨다고 말하거나, ‘원탁’, ‘원형’을 의미할 수 있는 히브리어이기에 기념을 위해 돌들을 둥글게 세워놓은 장소(stone circle)로 보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단강 ‘언저리’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무난해 보입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이 쌓은 제단은 ‘보기에 큰 제단’이었습니다. 여러 역본들이 ‘압도적인(imposing) 제단’으로 번역합니다. 성막의 번제단보다 훨씬 큰 제단이 세워졌음을 의미합니다. 번제단의 본체 크기는 가로세로 각 5규빗(약 2.5m), 높이 3규빗(약 1.5m)이었습니다. 다만 경사로를 통해 오르내린 것으로 볼 때(레 9:22) 본체 아래에 밑판이 놓여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요단강에 세워진 제단은 이것보다 훨씬 큰 제단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제단의 위치에 대해 학자들 및 역본들의 견해는 요단 서편과 요단 동편의 두 입장으로 나뉩니다. 많은 학자들과 역본들은 그 제단이 요단 서편에 건립되었다고 보면서 11절 하반절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on the side that belongs to the people of Israel)으로 번역했습니다(개역개정; NIV; ESV,RSV; NJB; NASB). 그러나 제단 위치는 요단 동편이 분명합니다.

우선 11절 전반절의 ‘가나안 땅의 맨 앞쪽’이란 표현은 ‘가나안 땅의 맞은편/정면/반대쪽(물)’을 의미하므로, 가나안 땅을 기준으로 건너편인 요단 동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으로 해석된 히브리어 어구도 달리 해석되어야 합니다. 70인경(LXX)을 비롯한 다른 역본들은 그것을 ‘이스라엘 자손의 맞은편’으로 옮깁니다(TNK; KJV).

우리가 1:15에서 살펴본 대로, ‘에베르’는 ‘건너편’을 뜻합니다(신명기 1:1; 3:20). 여기서 ‘이스라엘’은 서편 땅에서 제단 건축의 소문을 들은 지파들이므로 ‘이스라엘의 맞은편’은 요단 동편 땅입니다(참조. 24:2의 ‘유브라데 강 건너편[에베르]’). 요단 동편에서 독자적인 대형 제단이 축조되었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서편 이스라엘의 온 지파들이 실로에 모여 즉각 전쟁을 준비했습니다(11). 그들이 전쟁을 불사한 이유는 동편의 독자적인 제단 설립을 이스라엘로부터 정치적, 종교적 분립의 시도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며, 또한 한 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 이탈한 행위로 간주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명기 율법은 우상을 섬기고 배교한 성읍과 지역은 칼로 응징하여 진멸할 것을(헤렘) 명령합니다(신명기 13:12-18).

이렇게 싸울 태세를 갖춘 뒤, 일단 진상 조사를 위해 대표단을 선발해 동편으로 보냅니다. 이 조사단의 책임자는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였습니다. 비느하스 역시 제사장이며, 후에 제3대 대제사장으로 위임되는 인물입니다(24:33; 사사기 20:28). 비느하스는 민수기 25장의 바알브올 사건에서 음행 사건의 주동자를 처단하는 결정적 활약으로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건져낸 바 있습니다. 비느하스를 중심으로 요단 서편의 열 지파에서 아마 지파의 두령들이 대표자로 선발되어 동편으로 건너갑니다. 제사장이 책임자가 되어 이 사건을 조사하는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이 일이 이스라엘의 신앙, 곧 여호와 예배에 도전하는 시급한 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항의하는 서편 지파들(15-18)

사안의 본질을 정밀하게 살피는 조사위원회가 꾸러지고 위원장으로 제사장 비느하스가 선임되었습니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교회를 정쟁(政爭)의 판으로 만드는 사태나 평화를 위협하는 헛소문은 정밀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15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16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17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18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15-18)

 

진상조사와 항의를 위한 서편의 대표단은 동편의 두 지파 반에게 강력히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들은 제단을 별도로 축조한 일은 하나님께 대한 ‘범죄 행위’라고 규탄합니다. 여기서 ‘범죄’는 특별히 흔치 않은 ‘마알’이란 단어가 사용됩니다. 마알의 범죄는 ‘신실치 못하여 저지르는 죄’, 곧 신의의 약속을 깨트리고 믿음을 위반하는 범죄를 가리킵니다. 아간의 범죄에도 또한 ‘마알’이란 딱지가 붙었습니다. 아간의 범죄는 하나님과 약속한 헤렘 법을 위반한 이유로 마알로 분류되었을 것입니다.

서편의 지파들이 보기에 동편의 독자적인 제단 축조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배교 행위였습니다(16). 비느하스와 대표단은 ‘브을의 죄악’, 다시 말해 수년 전 모압 광야에서 발생한 바알브올 사건을 끄집어내면서, 그 음행 사건과 견줄 만한 배교 행위라고 주장합니다(17). 가나안 땅 정복과 직후의 땅 분배는 갈렙의 나이와 진술에 비추어 볼 때 가나안에 입성한 후 7-8년 정도 소요되었기에, 요단강 도하 직전의 사건이었던 바알브올 사건이 발생한 시기 또한 7-8년 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서편 대표단의 말, 곧 ‘오늘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했다’(17)는 표현은 그 일이 아직 기억 속에 생생하고 후유증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민수기 25장에서 상세히 보고되는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뼈아픈 경험이었습니다. 민수기 22-24장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발람의 저주의 시도가 무산되고, 오히려 발람을 통한 축복의 선언으로 반전되어 큰 위기를 넘긴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직후 바알브을 사건이 터집니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싯딤에서 모압과 미디안 여인들과 집단적으로 성적 음행을 범했는데(민 25:1), 브올의 신, 즉 모압 신과 연루된 제의적 성관계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발람이 꾀를 내서 주동한 사건이었습니다(민 31:8,16). 이때 그 범행으로 불과 하루 동안 24,000명이 죽었습니다. 사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상황이었는데, 현재 조사단의 대표인 제사장 비느하스가 핵심 주동자를 현장에서 처형함으로써 그날 염병이 그쳤습니다(민 25:7-8). 불과 수년 전에 하나님을 떠나 반역 행위를 했던 대가로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셔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현재 요단 동편 지파들이 정체불명의 제단을 쌓아 또다시 심각한 반역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아마 요단 서편 지파들은 그 큼지막한 제단을 여호와의 제단이 아닌 우상의 제단으로 간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서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려 한다’고 꾸짖었습니다(16). 그들의 제단은 여호와를 거역하는 행위이며 그 배역의 대가는 재앙입니다. 그들의 사악한 제단은 다시 한 번 여호와의 두려운 재앙을 초래할 것이 분명합니다(16,18). 요단 서편의 온 이스라엘은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의 형제들이 독립적인 제단을 쌓았던 이유가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고 단정 짓습니다. 다시 말해, 그 압도적으로 커다란 제단은 우상의 제단입니다!

 

다른 제단을 쌓지 말라(19-20)

역사에 대한 기억과 성찰을 통해 합리적 대안으로 설득하고 감화의 언어로 소통합니다. 혐오사회를 치유하는 기도문을 만들어 봅시다. 평화체제로 가는 노래를 지어 공유합시다. 경청은 대화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상상력으로 위기사회에 샬롬의 입맞춤을 선사할 것입니다.

 

19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20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19-20)

 

서편 지파들은 왜 동편 형제들이 배교 행위로 간주될 별도의 제단을 건립했는지 나름대로 그 이유를 추정했던 것 같습니다. 서편 대표단의 발언에 비추어 볼 때, 동편 지파들은 요단 동편 땅은 약속의 땅인 서편 땅에 비해 부정하다는 관념을 품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그들은 동편 땅을 위한 자신들의 독자적인 제단이 필요함을 느끼고 제단 건립을 추진했을 수 있습니다. 서편 사람들은 말하길, 만일 동편 땅이 부정하다고 생각되면 차라리 여호와의 소유지인 서편으로 건너와서 땅을 쪼개서 함께 살자고 제안합니다.

서편 지파들은 자신들의 땅이 축소되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손해를 볼 것이지만, 차라리 그럴지언정 동편 지파들이 여호와를 거억하고, 또한 자신들에게도 맞서는 일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이 제안에는 동편 지파들의 범죄가 필연적으로 자신들에게도 재앙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염려가 담겨 있다. 아간 한 사람의 범죄도 이스라엘 전체에 무서운 재앙을 초래했는데, 하물며 두 지파 반의 집단적 배교로 인한 재앙은 얼마나 더 그러하겠습니까?


교회의 정체성과 연합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양극화된 사회로 경색시키는 핵심 요인을 찾아 알리고 작은 골방에서의 기도가 절실한 시간입니다. 평화의 아침을 여신 예수님을 따라 개인과 교회는 화평케 하는 자로 세상에 보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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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22-01)


요단 강 동편 지파들의 귀환

여호수아 22장 1-9절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의 공동체에 속한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배를 공동체로 드리지만, 간혹 혼자 신앙생활을 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혼자서 신앙 생활하다보니깐 점점 어렵게 됩니다. 공동체에 소속 되었을 때, 공동체가 기도해주고 잘못 되었을 때는 바른 길로 인도해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정말 복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떠날 때, 배고파 우는 사자들처럼 사단은 이런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 현재의 시점은 땅 정복과 분배가 완료된 직후이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지 7-8년이 지난 시기로 추정됩니다. ‘그때에’ 즉 전쟁이 마무리되고 땅 분배가 완료되었지만, 이스라엘 공동체에는 중대한 일 한 가지가 남아 있었습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의 원대 복귀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동복 지파들을 불러 복귀를 지시합니다. 두 지파 반은 풍성한 전리품을 배분 받고 자신들의 땅으로 귀환했습니다.

 

동편 지파들을 향한 칭찬(1-3)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을 지켜낸 것만큼 충성스러움은 없습니다.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충성스러운 종’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지금 온전히 순종하고 맡은 일을 충성할 때 능력이 공급되어질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전쟁에 앞장섰던 요단강 동편을 차지할 두 지파 반을 돌려보내려고 준비합니다.

 

1그 때에 여호수아가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를 불러서 2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너희가 다 지키며 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일에 너희가 내 말을 순종하여 3오늘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1-3)

 

레위 족속의 땅 분배까지 끝나자, 지난 7년 동안 전쟁에 앞장섰던 요단 동쪽 두 지파 반을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국지전이 남아 있지만, 남북 연합군을 분쇄하여 가장 중요한 요새와 성읍을 점령함으로써 승리의 깃발을 꽂았습니다. 아직 전투를 전행 중인, 그래서 사사 시대에 이르기까지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의 종족들과 지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실패한 지도자 여호수아 사사기 성읍/지역 종족
이스라엘 13:13   그술, 아아가
(요단 동편 땅)
지역 주민
유다   1:19 유다 땅의 골짜기 주민 블레셋?
유다/베냐민 15:63 1:21 예루살렘 여부스 족속
에브라임 16:10 1:29 게셀 가나안 족속
서편 므낫세 17:11-12 1:27-28 벧스안, 다이낙, 돌,
이블르암, 므깃도, 엔돌
여부스 족속
스블론   1:30 기드론, 나할롤 가나안 족속
아셀   1:31-32 악고, 시돈, 알랍, 악삽,
헬바, 아빅, 르흡
가나안 족속
납달리   1:33 벧세메스. 벧아낫 가나안 족속
19:47 1:34-35 단의 영토 전체
(북의 레셈으로 이동)
아모리 족속

 

일부 족속들과의 여전한 전투는 사사 시대를 넘어 왕정 초기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사사기는 실패의 원인을 영적 타락과 불순종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그 땅에서 전쟁의 굉음은 그치고 국지적 전투의 소음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최종 승전을 선언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습니다. 이때 여호수아는 요단 동편에서 전쟁에 참여한 두 지파 반을 그들의 저처로 돌려보내기 위해 소집합니다.

여호수아는 노고를 치하하고 찬사를 베풉니다. 요컨대, 그들이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것을 다 지켰으며, 여호수아가 요구한 것을 전적으로 순종했다고 칭찬합니다. 이 칭찬은 현재 전 이스라엘이 아닌 두 지파 반에 국한되고 있는데, 이것은 모세 및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과 두 지파 반 사이에 진행된 요단 동편 땅을 둘러싼 협상을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두 지파 반의 요단 동편 땅 요구에 모세와 다른 지파들은 그들이 가나안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요단 동편에 안주하여 무임승차하겠다는 뜻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두 지파 반은 자신들의 책무를 다하여 요단 서편의 전쟁에 적극 참여하고, 또 선봉에 서서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모세와 다른 지파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모세는 요단 서편 전쟁에의 적극적인 참여와 주도적인 역할을 주문했습니다. 또한 이 명령은 1:12 이하에서 여호수아가 반복적으로 그 두 지파 반에게 상기시킨 명령이기도 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이어 그들에게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도우라’고 명령합니다(1:14). 이것이 일차적으로 모세와 여호수아가 내린 명령이었으며, 그들에 대한 여호수아의 칭찬은 그들이 이 명령을 전적으로 수행했다는 찬사입니다.

1장에서 여호수아는 모세와 자신의 명령을 따라 모든 군사 행동을 완수하여 그 땅을 차지한 뒤 안식을 얻게 되면, 요단 동편으로 복귀하여 그곳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1:15). 이미 1장에서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과 더불어 모세의 후계자로서의 여호수아의 권위와 위상이 확립되고, 그가 모세와 동급의 지도자로 인준됨으로써 가나안 입성과 정복이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이 지금까지 한 가족의 형제로서 자신의 통솔을 따르면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한 책임을 완수했음을 공인합니다.

 

동편 지파들의 귀환 지시(4-6)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원리는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행하며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비옥한 땅이 아니라 순종이 풍요와 안식을 줍니다. 여호수아는 동편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4이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 5오직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 6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축복하여 보내매 그들이 자기 장막으로 갔더라(4-6)

 

전쟁이 끝난 땅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이제 약속의 땅이 주는 풍요로움과 더불어 안식을 누릴 때입니다. 여호수아는 치열했던 전쟁이 끝나고 땅 분배가 완료되어 평화로운 안식이 찾아온 지금, 요단 동편 지파들이 자기 땅으로 돌아갈 것을 지시합니다.

요단 동편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할당해 주신 소유지입니다. 원래 요단 동편은 약속의 땅의 범위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단 동편을 포함한 북쪽 유브라데 강 상류에 이른 ‘확장된 약속의 땅’의 범위 또한 이미 출애굽기 23:30-31과 신명기 11:24 등에서 몇 차례 예고되었습니다. 일차적 약속의 땅 범위에 들지 않았던 요단 동편 땅에 정착한 두 지파 반은 역사 속에서 동쪽에서 온 세력들에게 침략을 거듭 당하는 고통과 시달림 속에서 일찍 쇠퇴의 길로 접어듭니다. 사실 동편 땅의 광활한 목초지를 탐낸 그들은 자신들이 많은 가축을 거느리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모세와 온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자신들에게 떼어 줄 것을 부탁했었습니다. 비록 동편 지파들이 서편의 전쟁에 앞장서며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여 서편 지파들의 마음을 얻었지만, 일차적 약속의 땅 너머의 동편 땅을 욕심냈던 그들을 하나님께서 과연 기뻐하셨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어쨌든 앞서 말한 대로 흥정과 협상을 통해 동편 땅은 두 지파 반에게 할당되었고, 아마 마찬가지로 제비를 뽑아 최종적으로 각자의 땅이 배분되었을 것입니다. 서편 땅과 마찬가지로 맡겨진 땅의 적을 격퇴하고 내쫓을 책임은 각 지파의 못이었으며, 므낫세 반 지파의 경우 마길과 야일, 노바의 가문들이 혁혁한 공을 세워 땅 분배의 큰 혜택을 보았습니다(민수기 32:40-42).

 

여호수아는 요단 동편의 삶도 서편과 마찬가지로 땅에서의 절대적 순종만이 복 받는 유일한 길임을 두 지파 반에게 강조합니다. 그의 당부가 담긴 5절 전체는 전형적인 신명기적 표현입니다(신 4:4, 29; 5:33; 6:5; 10:12; 11:13 등): 명령과 율법을 행하다,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다, 그의 계명을 지키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그를 섬기다. 이 표현들은 신명기 곳곳에서 반복됩니다. 이것은 요단 동편의 삶도 요단 서편과 다를 바 없이 동일한 삶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또한 이것은 동편과 서편 모두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순종해야 하는 단일한 신앙 공동체임을 강조합니다. 여호수아의 축복을 받은 후 두 지파 반은 요단 동편 자신들의 거처로 돌아갔습니다(6).

 

동편 지파들의 귀환(7-9)

새로운 땅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각오가 남다를 것입니다. 그들은 기도하는 것 뿐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을 실천해야 합니다. 새로운 땅에 들어가는 두 지파 반의 백성들에게는 새로운 삶에 대한 각오가 필요한대 자기들과 함께 가는 레위 사람들에게 도피성과 분배 받은 성읍을 주고 그 땅에 정착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7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모세가 바산에서 기업을 주었고 그 남은 반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요단 이쪽 서쪽에서 그들의 형제들과 함께 기업을 준지라 여호수아가 그들을 그들의 장막으로 돌려보낼 때에 그들에게 축복하고 8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많은 재산과 심히 많은 가축과 은과 금과 구리와 쇠와 심히 많은 의복을 가지고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서 너희의 원수들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의 형제와 나눌지니라 하매 9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실로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떠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받은 땅 곧 그들의 소유지 길르앗으로 가니라(7-9)

 

여호수아의 지시를 따라 동편의 두 지파 반이 자신들이 땅으로 돌아갑니다. 동편의 므낫세 반 지파는 이미 바산 땅을 할당받은 상태다. 바산은 길르앗의 북쪽 땅이었으며, 그곳을 통치하던 아모리 족속 바산 왕 옥이 격파된 뒤 그 땅이 동편 므낫세 반 지파에게 돌아갔습니다. 남은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서편 땅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므낫세 반 지파를 축복하면서(7), 그들의 몫으로 나눈 각종 전리품들을 함께 챙겨 가라고 권면합니다. 므낫세 반 지파에 초점을 맞춘 축복 기도와 전리품 할당은 당연히 다른 두 지파인 르우벤과 갓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을 것입니다(9). 이스라엘은 수많은 성들에서 각종 전리품을 획득했습니다. 다양한 물품과 수많은 가축 그리고 은금을 비롯하여 당시에도 귀중한 금속이었던 구리와 철, 각종 의복이 그들 수중에 입수되었습니다. 가축 전리품과 포로로 잡은 처녀의 분배 규칙이 민수기 31:25-47에 나와 있는데, 이것은 다른 전리품들의 분배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되었을 것입니다. 전리품 분배 원칙을 따라 서편 모든 지파들뿐만 아니라, 동편의 두 지파 반에게도 풍성한 전리품이 돌아갔을 것입니다. 동편 지파의 군사들은 각자의 땅으로 돌아가 그 전리품들을 전쟁에 참여하지 못한 동편 지파의 형제들과 함께 나누어야 했습니다. 마침내 르우벤과 갓, 므낫세 지파는 요단 서편의 실로를 떠나 자신들의 땅인 요단 동편의 길로앗 땅으로 복귀했습니다.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공동체와 조직을 세워온 동지적 전우들을 소중하게 여여야 합니다. 축언으로 격려하고 다양한 보상으로 사기를 북돋아줘야 합니다. 리더는 밥 사는 사람입니다. 관계는 섭섭할 때 어려워집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세워왔다면 여호수아가 보여준 세 가지 키워드(칭찬, 당부, 축원)를 상호점검을 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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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21-02)


레위인들에게 허락하신 성읍들

여호수아 21장 20-45절


사람과 하나님이 다른 것 중에 하나님은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신실하신 분입니다. 사람들을 믿었다가 상처를 받은 경우는 있지만,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상처를 받은 일은 없습니다. 더구나 손해 보는 일은 더욱더욱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실 때 “신실하신 하나님”(사 39:7)라고 소개한 적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해주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갈 것입니다.

 

  • 레위에게는 세 아들, 고핫(그핫), 게르손, 므라리가 있었으며, 그들은 각자의 레위 지파의 가문을 형성했습니다. 이 중에 그핫 가문에 속한 아론 집안이 제사장 가문으로 택정되었으며,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레위 도성이 배정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세 가문의 몫의 도성들이 제비뽑기로 결정되어 할당됩니다. 이웃하는 지파들이 한 단위로 묶여 레위의 특정 가문을 위해 성읍들을 내놓았습니다.

 

그핫 가문이 받은 레위 성읍들(20-26)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살기에도 넉넉하지 않았지만, 기업으로 받은 땅 중에서 레위 족속과 살인자의 도피성을 제비 뽑아서 주어야했던 것은 땅을 빼앗겼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차지한 기업은 처음부터 자기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 중에 일부를 떼어 원 주인인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또한 레위 사람들을 위해 성읍을 내어 준 것은 그들 생활 영역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배려와 은혜였습니다.

 

20레위 사람인 그핫 자손 중에 남은 자들의 가족들 곧 그핫 자손에게는 제비 뽑아 에브라임 지파 중에서 그 성읍들을 주었으니 21곧 살인자의 도피성 에브라임 산지 세겜과 그 목초지이요 또 게셀과 그 목초지와 22깁사임과 그 목초지와 벧호론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 23또 단 지파 중에서 준 것은 엘드게와 그 목초지와 깁브돈과 그 목초지와 24아얄론과 그 목초지와 가드 림몬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 25또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준 것은 다아낙과 그 목초지와 가드 림몬과 그 목초지이니 두 성읍이라 26그핫 자손의 남은 가족들을 위한 성읍들은 모두 열 성읍과 그 목초지들이었더라(20-26)

 

이스라엘 백성들은 받은 기업 중에 가장 좋고 중심이 되는 성읍을 하나님의 사람들인 레위 지파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전국 어느 곳에서라도 48km 이내 높은 곳에 도피성을 마련하여 반나절이면 도착하게 한 것은 그들로 땅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1) 에브라임 지파에서 뽑힌 성읍들(20-22)

 

레위의 세 가문 중에 둘째 아들이었던 그핫(고핫) 가문은 제사장 가문을 배출함으로써 가장 중요한 가문의 지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그핫 자손 중에서 아론의 가족에게 우선 열세 개의 레위 도성이 배당되었습니다. 이제 그핫 자손 중에 아론 가문을 제외한 남은 그핫 가문들에게 레위 도성이 할당되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 레위 도성을 내놓은 지파는 에브라임과 단, 서편 므낫세 반 지파입니다. 먼저 에브라임 지파에서 네 성읍이 선택됩니다(2122). 세겜, 게셀, 깁사임, 벧호론입니다. 게설은 10:33을 참고해 보시길 바랍니다. 거기서 게셀 왕 호람은 남부 연합군의 수장 중 한 명이었습니다. 깁사임은 여기서 처음 등장합니다. 에브라임에 속한 벧호론 또한 앞서 10:10에 매우 상세히 추적한 바 있습니다.

 

(2) 단 지파에서 뽑힌 성읍들(23-24)

 

단 지파에서는 엘드게, 깁브돈, 아얄론, 가드 림몬이 선별되었습니다(23-24). 깁브돈은 어쩌면 텔 킹스(Tel kings=Tel Malat=Tell Malat) 일 수 있습니다. 이곳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현대의 아쉬돗(Ashdod) 시에서 북동쪽으로 35km 지점입니다. 태양과 달이 멈춘 사건과 관련된 아얄론은 10:12을 다시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가드 림몬은 단 지파에 속한 가드 림몬입니다(19:45).

 

(3) 므낫세 반 지파에서 뽑힌 성읍들(25-26)

 

므낫세 지파는 총 네 개의 성읍을 내놓았습니다. 다아낙, 가드 림몬, 골란 그리고 브에스드라입니다. 그중 다아낙과 가드 림몬은 요단 서편, 골란과 브에스드라는 요단 동편의 성읍입니다. 다아낙에 대해서는 12:21을 다시 살펴보시길 바립니다. 이곳은 므깃도 남쪽 약 7km 지점의 텔 타나크(Tel Tanach)일 것입니다. 다아낙은 정복되지 못한 성읍의 하나였습니다(17:12; 사사기 1:27), 가드 림몬이 직전의 24절에 이어 다시 등장하는데, 어떤 주석가들의 견해대로 언뜻 이것이 필사상의 오류인 듯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본학적 증거도 없으므로 이것을 오류로 판정하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이 가드 림몬은 바로 위의 단 지파의 가드 림몬과 다른 성읍으로 간주하는 것이 무난합니다. 그핫 자손에게 제비 뽑힌 도성과 도성에 부속된 목초지는 도합 열두 개였습니다(26).

 

게르손 가문이 받은 레위 성읍들(27-33)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제사장이지만, 하나님의 일을 전담하는 전문 사역자의 역할을 존중해야 합니다. 모두가 제사장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만큼이나 독특한 사역의 영역을 존중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특별한 제사장으로서 레위 지파의 지위와 위상을 존중했습니다.

 

27레위 가족의 게르손 자손에게는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살인자의 도피성 바산 골란과 그 목초지를 주었고 또 브에스드라와 그 목초지를 주었으니 두 성읍이요 28잇사갈 지파 중에서는 기시온과 그 목초지와 다브랏과 그 목초지와 29야르뭇과 그 목초지와 엔 간님과 그 목초지를 주었으니 네 성읍이요 30아셀 지파 중에서는 미살과 그 목초지와 압돈과 그 목초지와 31헬갓과 그 목초지와 르홉과 그 목초지를 주었으니 네 성읍이요 32납달리 지파 중에서는 살인자의 도피성 갈릴리 게데스와 그 목초지를 주었고 또 함못 돌과 그 목초지와 가르단과 그 목초지를 주었으니 세 성읍이라 33게르손 사람이 그 가족대로 받은 성읍은 모두 열세 성읍과 그 목초지들이었더라(27-33)

 

게르손은 레위의 첫째 아들이었습니다. 게르손 자손에게 제비 뽑힌 레위 도성들은 총 열세 개인데, 동편 므낫세반 지파, 잇사갈, 그리고 납달리 지파에서 내놓은 성읍들이었습니다.

먼저 동편 므낫세 반 지파에서는 바산의 골란과 브에스드라가 지정되었습니다(27). 바산 골란에 대해서는 20:8을 보시길 바랍니다. 이곳은 현대의 사헴 엘-골란(Sahem el-Golan)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브에스드라는 여기서 처음 등장합니다. 다른 이름으로 아스다롯인 것이 분명한 이 성읍은(대상 6:71) 사헴 엘란의 북동쪽 약 11km 지점의 텔 아쉬타라(Tel Ashtarah Al Shaykh Saad)로 추정됩니다.

이어서 잇사갈 지파에서 게르손 가문을 위한 네 개의 성읍이 선별되었습니다. 기시온, 다브랏, 야르뭇, 그리고엔 간님입니다(28-29). 기시온은 역대상 6:72의 게데스와 같은 성읍일 수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파악되지 않습니다. 다브랏에 대해서는 19:12를 살펴 보시길 바랍니다. 29절의 야르뭇은 15:35절의 유다 지파의 야르뭇과 다릅니다. 엔 간님은 현대의 도시 제닌(Jenin)일 수 있습니다. 이 도시는 현대의 바이트 쉐안(Beit Shean)에서 서쪽으로 약 20km에 위치해 있습니다. 아셀 지파 중에서도 네 개의 성읍이 선별되었습니다. 미살, 압돈, 헬갓 그리고 르홉입니다(30-31). 미살은 아마 갈멜 산 근처의 성읍이었을 것입니다. 압돈은 에브론과 같은 성을 일 수 있습니다. 르홉은 19:30의 악고 근처의 르흡과 같은 마을이 아닐 것입니다. 이 르홉은 악고보다 한참 북쪽으로 오늘날의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국경 근처에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납달리 지파에서 게르손 가문을 위해 3개의 성읍이 준비되었습니다. 게데스, 함못 돌, 그리고 가르단입니다. 이 게데스는 갈릴리 게데스로 보이는데 20:7을 참고해 보시길 바랍니다. 함못 돌은 함맛(19:35), 혹은 함몬(역대상 6:76)으로도 불립니다. 가르단은 아마 현대의 소도시 야룬(Yaroon)의 북서쪽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게르손 가문은 모두 열세 개의 성읍을 할당 받았습니다.

 

므라리 가문이 받은 레위 성읍들(34-42)

하나님께서는 과거 범죄한 인류를 저주로 흩어지게 했지만,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흩으신 것은 축복의 흩어짐으로 바꾸십니다. 심판의 장소는 때로 회복의 장소로 바뀌고, 절망의 시간도 축복이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실수와 잘못으로 어려운 상황을 만나더라도 돌이켜 하나님의 뜻을 신실하게 따른다면,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34그 남은 레위 사람 므라리 자손의 가족들에게 준 것은 스불론 지파 중에서 욕느암과 그 목초지와 가르다와 그 목초지와 35딤나와 그 목초지와 나할랄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 36르우벤 지파 중에서 준 것은 베셀과 그 목초지와 야하스와 그 목초지와 37그데못과 그 목초지와 므바앗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 38갓 지파 중에서 준 것은 살인자의 도피성 길르앗 라못과 그 목초지이요 또 마하나임과 그 목초지와 39헤스본과 그 목초지와 야셀과 그 목초지이니 모두 네 성읍이라 40이는 레위 가족의 남은 자 곧 므라리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성읍이니 그들이 제비 뽑아 얻은 성읍이 열두 성읍이었더라 41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 중에서 받은 성읍은 모두 마흔여덟 성읍이요 또 그 목초지들이라 42이 각 성읍의 주위에 목초지가 있었고 모든 성읍이 다 그러하였더라(34-42)

 

레위의 셋째 아들 므라리 가문에게 제비 뽑힌 레위 도성들은 갓, 르우벤 그리고 스불론 지파에서 마련해준 도합 열두 개의 도성이었습니다. 먼저 스불론 지파에서 네 개의 도성인 욕느암, 가르다. 딤나 그리고 나할랄이 선별되었습니다(34-35). 욕느암에 대해서는 12:22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이곳은 아마 갈멜산 남동쪽에 위치했을 것입니다. 가르다는 여기서 처음 등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32절 납달리의 가르단의 중복으로 봅니다. 그러나 현재의 가르다는 스불론 지파의 도성이며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딤나는 삼손과 관련된 15:57; 19:43의 딤나와 구별해야 합니다. 이 성읍의 위치는 불분명합니다. 나할랄에 대해 19:10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나할랄은 갈멜산 남쪽 자락에 위치했을 것입니다. 르우벤 지파에서도 네 개의 성읍이 구별되었습니다. 베셸, 야하스, 그데못 그리고 므바앗입니다(36-37).

베셀에 대해 20:8을 보시길 바랍니다. 이곳은 현대의 메데바(Medeba = Madaba) 북동쪽 약 13km에 위치했을 것입니다. 야하스에 대해 13:18을 보라.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느보 산의 남쪽에 위치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데못은 그보다 남쪽일 수 있습니다(13:18). 므바앗이 13:18에서는 ‘메바앗’으로 번역되어 번역의 일관성이 없습니다. 메바앗(므바앗)도 위치가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요단 동편 땅을 차지한 갓 지파에서 네 개의 도성이 지정되어 므라리 가문에게 할당되었습니다(38-39). 도피성이기도 한 길르앗 라뭇에 대해 20:8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또한 마하나임에 대해 13:26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이곳은 압복 강 근처지만 위치는 알 수 없다. 헤스본은 9:10을 다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곳은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남서주 약 20km 지점의 소도시 히스반(Hisban)일 것입니다.

야셀은 요단 동편의 성읍 이름인데, 위치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13:25; 민수기 21:32). 므라리 가문에게는 도합 열두 개의 레위 도성이 할당되었으며, 이로써 레위 가문 전체에게 총 48개의 성읍과 성 주변의 목초지가 주어졌습니다(41).

 

땅 분배의 마무리에 대한 보고(43-45)

가나안에 살고 있던 일곱 족속을 완전히 몰아내지 않은 상태로 땅 분배가 모두 끝나고 마무리 지으면서 마치 서류에 사인하듯 여호수아가 몇 가지 선포합니다. 주시겠다고 맹세한 모든 땅을 주셨고, 사방에 안식을 주셨으며 모든 대적 중에서 그들을 당할 자가 없게 하셨습니다.

 

43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니 44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들의 모든 원수들 중에 그들과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음이니라 45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43-45)

 

모세의 명령을 따라 레위 지파를 위한 거주지로 48개의 성읍이 지정되어 할당됨으로써 이제 약속의 땅 분배가 드디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약속의 성취었습니다(43). 전쟁이 마무리되고 이제 지파별로 땅 분배가 종료된 지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안식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전쟁의 수고를 끝내고 할당된 땅에서 평화롭고 복된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저앙하는 잔당들과의 국지전은 아직 남아 있으나 실질식인 승리가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말씀 중에 성취되지 않은 말씀은 전여 없었습니다. 이것은 땅 정복과 그 땅에서의 안식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이 남아있다는 보고는 반복됩니다. ‘이미’와 ‘아직’이라는 정복 전쟁의 이러한 이 중적 상태는 심을 누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전한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구약의 도피성은 하나님 나라를 지향합니다. 도피성에는 하나님의 주되심이 있습니다. 우리의 고단한 현실 너머에 있는 실제의 나라, 천국을 바라보고 합니다. 천국은 큰 아름다운 그림과 같습니다. 인생과 온 우주의 완성된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조명을 받을 때 지금 여기서 순종해야 할 내용이 밝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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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21-01)


하나님의 섭리와 레위인의 유산

여호수아 21장 1-19절


 

이스라엘 열 두 지파는 자신들이 받은 땅에서 목초지가 딸린 성읍을 레위인들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레위인들은 희생 제물로 쓸 가축을 키워 제물 시장에 독점 공급하여 생계를 유지했을 것입니다. 성전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공동체 전체가 도와야 했습니다.

 

  • 땅 분배가 마무리되자 레위 사람들의 대표인 지도자들이 제비뽑기를 실행한 집행부에 찾아왔습니다. 레위 지파의 거주지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로에서의 땅 분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약속했던 레위 지파의 지분을 상기시키며, 그것을 실행해줄 것을 요구합니다(민수기 35:1-8).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즉시 그들을 위한 성읍들과 목초지를 지정해 주었습니다.

 

레위 지파가 받은 성읍(1-8)

자신에게 주신 것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마음으로 헌금을 준비하고, 주의 몸된 교회 공동체 안에서 헌신하고 있는지 점검하게 됩니다. 즐겁게 드리되 가장 좋은 것으로 구별하여 드려야겠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유업으로 받은 레위 사람들을 위해 내놓은 땅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었고 가장 좋은 것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땅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그들의 행동 속에 예물 드림의 모범이 들어 있습니다.

 

1그 때에 레위 사람의 족장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족장들에게 나아와 2가나안 땅 실로에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우리가 거주할 성읍들과 우리 가축을 위해 그 목초지들을 우리에게 주라 하셨나이다 하매 3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자기의 기업에서 이 성읍들과 그 목초지들을 레위 사람에게 주니라 4그핫 가족을 위하여 제비를 뽑았는데 레위 사람 중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와 베냐민 지파 중에서 제비 뽑은 대로 열세 성읍을 받았고 5그핫 자손들 중에 남은 자는 에브라임 지파의 가족과 단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제비 뽑은 대로 열 성읍을 받았으며 6게르손 자손들은 잇사갈 지파의 가족들과 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와 바산에 있는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제비 뽑은 대로 열세 성읍을 받았더라 7므라리 자손들은 그 가족대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스불론 지파 중에서 열두 성읍을 받았더라 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제비 뽑아 레위 사람에게 준 성읍들과 그 목초지들이 이러하니라(1-8)

 

실로에서 남은 일곱 지파의 땅 분배를 마치고 도피성 지정까지 확인하자 이번에는 레위 지파 족장들이 엘르에셀과 여호수아를 찾아 나아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약속하신 말씀을 근거로(민 35:8) 자신들이 거주할 성읍과 목초지를 요구하였습니다.

레위 지파의 도성에 대해서는 레위기 25:32-34에 처음 언급되며 민수기 35:1-8에서 이 제도에 대한 구체적 지침이 주어집니다. 현재의 여호수아 21장에서 지침이 실행되어 성읍들의 이름과 더불어 레위 도성들이 구체적으로 지정됩니다. 레위인들은 성막 관리와 운반을 책임지고 제사장의 직무를 돕는 특별직에 임명된 지파입니다. 성막의 직무와 제사를 위해 위임된 제사장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주로 하나님께 바쳐진 다양한 봉헌물과 예물에 의존해 살아야 합니다. 덧붙여 레위인들은 땅 분배에서 제외되며 대신 거처할 성읍들을 각 지파에서 마치 봉헌물처럼 수령해서 거기에 흩어져 삽니다. 그러나 심지어 레위 도성도 사실은 그들의 재산이 아니며, 소유권은 봉현한 지파에게 남겨져 있습니다. 열두 지파는 그들이 받은 ‘기업’, 즉 ‘땅의 상속물’에서 48개의 성읍을 따로 떼어 레위인들에게 건네고, 성읍 주변 상당한 넓이의 목초지도 함께 줍니다. 앞서 말한 대로, 레위 성읍은 총 48개가 선정되고 그중에 다시 여섯 개의 성이 ‘도피성’으로 지정됩니다. 민수기 35:8은 지파별로 받은 기업의 크기에 따라 레위 도성을 더 많이 주거나 더 적게 줄 것을 명령합니다. ‘크기에 따라’는 언뜻 지파가 제비 뽑아 할당받은 땅의 면적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땅이 넓은 지파는 레위 성읍을 더 많이, 그렇지 않은 지파는 더 적은 수의 성읍을 내놓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혹자는 이것이 각 지파의 인구 규모의 ‘크기’를 말한다고 해석합니다. 즉, 인구가 많은 지파는 레위 성급을 많이, 적은 지파는 적게 내놓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밀그룸은 납달리는 갓과 에브라임보다 인구가 많지만 성읍의 숫자는 하나가 더 적으므로 들어맞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땅의 크기를 기준으로 삼아도 므낫세의 면적이 가장 컸기에 들어맞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곳에 나열된 지파별 도피성의 할당은 각 지파별로 <도표>와 같습니다. 대체로 평균 네 개씩의 도성이 할당됩니다. 그러나 유다가 8개의 도성을 할당받으며 시므온은 고작 한 개에 불과합니다. 밀그롬은 일부 들어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대체로 이런 레위 도성의 할당은 인구 규모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2차 인구조사에서 유다는 압도적으로 많은 76,500명으로 다른 지파의 거의 두 배였던 반면, 시므온은 22,200명에 불과했습니다.

여호수아 21장은 땅의 정복이 거의 끝난 시기로 상당 기간의 전쟁을 겪었기에 2차 인구조사에 비해 지파별 인구의 현황이 조금 달라져 납달리 인구가 많이 줄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레위인은 레위의 세 아들들을 시조로 세 가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각각 그핫, 게르손, 므라리입니다. 그중 그핫 가문의 아론 집안이 제사장 집안으로 선택되었습니다. 도피성의 할당도 제비뽑기로 결정됩니다. 일단 지역별로 그룹들을 묶은 다음 제비를 뽑아 성읍들을 안배했을 것입니다. 그핫 가문 중에 제사장 집안인 아론 자손들에게 먼저 레위 도성이 배정되는데, 유다와 시므온, 그리고 베냐민 지파의 성읍들 중에서 열세 개의 성읍이 그들에게 돌아갑니다(4). 유다 여덟 개, 시므온 한 개, 베냐민의 네 개의 레위 도성이 모두 아론의 몫이었습니다. 이어서 남은 그핫 가문에게는 에브라임과 단,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제비 뽑힌 열 개의 성읍이 돌아갔습니다. 므낫세는 총 네 개의 레위 도성을 내놓았는데, 이중 서편에 두 개가 할당되었으므로 에브라임 네 개와 단 네 개를 더하여 도합 열 개가 됩니다. 열 개의 성읍은 모세 후손과 남은 세 명의 후손에게 돌아갔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사장의 특권을 지닌 아론 집안에 상대적으로 많은 성읍이 주어진 셈입니다. 이어서 게르손 가문에게 레위 도성이 할당됩니다. 게르손은 레위의 첫째 아들이었습니다. 게르손 가문에게는 잇사갈, 아셀, 납달리, 그리고 요단 동편의 므낫세 반 지파에서 제비 뽑힌 열세 개의 성읍이 배당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므라리 자손들에게는 열두 개의 성읍이 돌아갑니다. 그 성읍들은 르우벤, 갓, 그리고 스불론 지파로부터 제비 뽑힌 것들이었습니다.

할당된 가문 지파 48 레위 성읍 이름
아론 가문
13개
유다 8 헤브론, 립나, 얏딜, 에스드모아,
홀론, 드빌, 윳다, 벧 세메스
스므온 1 아인
베냐민 4 기브온, 게바, 아나돗, 알몬
그핫 가문
10개
에브라임 4 세겜, 게셀, 깁사임, 벧호론
4 엘드게, 깁브돈, 아얄론, 가드 림몬
므낫세 4 다아낙, 가드 림몬, 골란, 브에스드라
게르손 가문
13개
잇사갈 4 가시온, 다브랏, 야르뭇, 엔간님
아셀 4 미살, 압돈, 헬갓, 르홉
납달리 3 게데스, 함못 돌, 가르단
므라리 가문 4 마하나임, 야셀, 길르앗 라못, 헤스본
르우벤 4 베셀, 야하스, 그데못, 므바앗
스불론 4 욕느암, 가르다, 딤나, 나할랄

 

그핫 가문의 제사장 성읍들(9-19)

자신이 말하는 공평이 하나님의 기준에 근거하는지 돌아보며 자신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공평하시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자신과 하나님께서 가지신 공평이 동일하다면 자신의 입은 온종일 감사와 찬양을 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겼던 제사장들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보상하시는 하나님께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이 땅에서 거룩을 좇아가는 우리에게 상급으로 채우실 것을 바라봅니다.

 

9유다 자손의 지파와 시므온 자손의 지파 중에서는 이 아래에 기명한 성읍들을 주었는데 10레위 자손 중 그핫 가족들에 속한 아론 자손이 첫째로 제비 뽑혔으므로 11아낙의 아버지 아르바의 성읍 유다 산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그 주위의 목초지를 그들에게 주었고 12그 성읍의 밭과 그 촌락들은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어 소유가 되게 하였더라 13제사장 아론의 자손에게 준 것은 살인자의 도피성 헤브론과 그 목초지이요 또 립나와 그 목초지와 14얏딜과 그 목초지와 에스드모아와 그 목초지와 15홀론과 그 목초지와 드빌과 그 목초지와 16아인과 그 목초지와 윳다와 그 목초지와 벧 세메스와 그 목초지이니 이 두 지파에서 아홉 성읍을 냈고 17또 베냐민 지파 중에서는 기브온과 그 목초지와 게바와 그 목초지와 18아나돗과 그 목초지와 알몬과 그 목초지 곧 네 성읍을 냈으니 19제사장 아론 자손의 성읍은 모두 열세 성읍과 그 목초지들이었더라(9-19)

 

본문에서는 레위 자손 중에서 고핫 가족들에게 주어진 성읍들에 대해 다룹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레위인들에게 성읍과 목초지를 분배하도록 명령하셨고, 이에 따라 고핫 가족들은 헤브론을 포함한 여러 성읍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분배는 레위인들이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1) 유다, 시므온 지파에서 뽑힌 성읍들(9-16)

 

이제 각 레위 가문들에게 할당된 구체적인 성읍들의 목록이 이름과 더불어 제시됩니다. 먼저 그핫 가문의 제사장 집안을 위해 열세 개의 성읍이 주어지는데, 그것은 유다와 시므온, 그리고 베냐민 지파로부터 뽑은 성읍들입니다. 먼저 기량 아르바, 즉 헤브론과 그것의 목초지가 배당되었습니다. 기랏 아르바는 거구였던 아낙 자손의 조상인 아르바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입니다(수 14:15). 헤브론 성과 성에 딸린 목초지는 아론 가문에게 할당되었으나, 나머지 헤브론 지역의 땅과 촌락들은 모두 갈렙의 소유로 확정되었습니다. 립나는 헤브론에서 북서쪽 약 24km 지점에 위치하는 텔 부르나(Tel Burna)일 수 있습니다(10:29). 14절의 유다 땅 얏딜(15:48)은 헤브론 남서쪽 20km 지점의 키르베트 아티르(Khirbet Attir)로 추정됩니다. 에스드모아(에스드모)는 헤브론 남쪽 약 14km 지점의 현대에 비슷한 이름을 가진 에스 세무(es-Semu = as-Samu)일 수 있습니다.

15절의 홀론은 헤브론 북서쪽 16km 지점의 키르베트 알린(Khirbet Alin)이 후보지입니다. 드빌(10:38)은 현대의 키르베트 라부드(Khirbet Rabud)일 수 있습니다. 에스 세무에서 북동쪽 약 6km지점입니다. 16절의 아인은 시므온에서 유일하게 내놓은 레위 도성입니다. 유다가 원래 아인을 할당받았으나 그것을 시므온에게 넘겨준 것으로 보입니다. 윳다(15:55)는 헤브론 남서쪽 9km 거리에 있는 현대의 소도시 야타(Yatta)일 것입니다. 벧 세메스는 예루살렘 서쪽 25km 지점입니다.

 

(2) 베냐민 지파에서 뽑힌 성읍들(17-19)

 

베냐민 지파에서 내놓은 레위 도성은 네 개인데, 역시 제사장 아론 가문에게 돌아갔습니다. 17절의 기브온은 앞서 그곳 기브온 족속의 지혜로운 항복과 더불어(9장) 그곳에서 전개된 최초의 남부 지역 전면전으로 유명합니다(10장). 게바(18:24)는 아마도 예루살렘 북동쪽 9km에 위치한 현대의 게바 빈야민(Gava Binyamin)이라는 작은 마을이거나 역시 비슷한 이름의 이웃 마을인 자바(Jaba)일 것입니다.

18절의 아나롯과 알몬은 여기서 처음 언급됩니다. 아나돗은 현대의 도시 아나타(Anata)인 것으로 보이는데, 예루살렘 북동쪽 5km 지점입니다. 알몬 또한 아나타에서 다시 북동쪽 3km 지점의 현대의 소도시 알몬(Almon)이었을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제비뽑기는 무작위도 신행된 것은 아니며, 일단 열두 지파를 권역별도 네 개로 묶되 지정학적으로 인접한 지파들이 같은 권역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이렇게 첫 번째 그룹의 지역으로 묶인 유다와 시므온, 베냐민에서 열세 개의 성읍이 뽑혔고, 그것들은 아론의 제사장 가문에게 할당되었습니다. 이 성읍들은 지정학적으로 헤브론과 예루살렘 주변의 성읍들이며, 특히 장차 성전이 세워질 예루살렘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성읍들입니다. 또한 이 성읍들은 현재 성소의 위치인 예루살렘 북쪽 30km에 위치한 실로에서도 아주 먼 거리는 아닙니다.


공동선은 모두가 함께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집단주의 문화가 공동체 전체의 샬롬(총체적 안녕)을 담보해 주지 않습니다. 경제적 나눔과 자족, 사회적 어울림은 성경적 세계관의 변화 없이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의존의 깊이를 더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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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20-01)


살인자들을 위한 피난처 도피성

여호수아 20장 1-9절


이스라엘에게 ‘도피성’은 일시적인 감옥 내지는 보호 감호소였습니다. 과실치사였지만 피해자의 친족이나 형제가 고의로 했다고 판단하면 보복관행에 의해 가해자에게 찾아가 상당한 보복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인 분쟁이나 갈등 상황을 해소학 위한 맞춤형 법입니다.

 

  • 모든 지파들을 위한 땅 분배의 규칙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레위인들은 땅을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은 다른 지파처럼 땅을 분배받는 지파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위인에게는 땅 대신 48개의 도성이 주어집니다. 이 중에 여섯 개가 도피성으로 지정됩니다.

 

도피성을 지정하라는 명령(1-3)

하나님의 배려와, 성막에 있던 제단의 뿔을 잡은 자가 살았던 것처럼 도피성에 피하는 사람의 목숨과 그를 쫓는 자의 목숨을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이 보시길 바랍니다. 여호수아가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은 모든 이스라엘 자손 뿐 아니라 그들 중에 거주하고 있는 거류민들도 이 도피성에 피할 수 있다는 사실 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이방인에게 열려있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졌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살리는 도피성에 관한 명령은 크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3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1-3)

 

레위인들에게는 땅이 주어지지 않으며 그들은 지파들이 내놓은 48개의 레위 도성에서 흩어져 삽니다. 이 도성 중에서 여섯 개는 특별한 성으로 지정되는데, 이를 도피성이라 부릅니다. ‘도피성’(아레이 미클라)은 ‘피난/망명의 성읍’이라는 그 원어의 뜻을 볼 때, 무고한 피의자의 망명을 위한 치외법권 영역으로 지정된 성읍입니다.

원칙적으로 고살이든 과실치사든 누군가 살해를 당하면, 가족이나 친족이 그 살인자를 즉각 보복살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를 '피의 보복자'라 부릅니다. ‘보복자’를 뜻하는 ‘고엘’은 ‘가알’(갚아주다, 무르다)에서 온 명사로 ‘갚아주는 자’, ‘무르는 자’, ‘속량자’, ‘구속자’라는 뜻입니다. 빚을 대신 탕감해주거나 저당 잡힌 땅을 물러주는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고엘은 빚을 대신 갚아주는 사람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자’ 개념이 여기에서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만일 누군가가 자신의 가족을 죽인다면, 가족이나 친족 중에서 ‘피의 보복자(고엘)’ 역할을 하여 범인을 죽여 그의 생명의 빚을 갚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실치사범의 경우 도피성으로 피함으로써 이 보복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3). 예컨대, 도끼질을 하다 날이 빠져 다른 사람이 죽는다면, 이것은 과실치사로 피의자는 도피성에 피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민수기 35:16-23은 여섯 가지 고살이나 모살의 사례와 세 가지 과실치사의 사례들을 나열합니다. 여섯 개의 고살의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민 35:16-21): ➀ 철로 된 물건으로 쳐서 죽임 ➁ 돌로 쳐서 죽임 ➂ 나무 연장으로 쳐서 죽임 ➃ 미움으로 밀쳐 죽임 ➄ 급습해서 죽임 ➅ 악심을 품고 때려죽임. 반면에 과실치사의 세 가지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민 35:22-23): ➀ 무심코 사람을 밀쳐서 죽임 ➁ 무심코 물건을 던져서 죽임 ➂ 무심코 돌을 던져서 죽임. 이러한 살상은 예기치 않게 갑자기 발생한 것들입니다.

 

도피성의 운영 방법(4-6)

높은 곳에 위치한 도피성을 바라보며 언제든지 뜻하지 않는 살인이 발생하면 피할 피난처임을 새기며 살았습니다. 구약 백성들처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내가 피할 바위시며 유일한 피난처임을 고백하며 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유일한 피난처를 매일 바라보며 살기 바랍니다. 죄 문제로 괴로워하지 말고 가까이 계시는 도피성 되시는 하나님을 찾아 자백하고 생명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4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5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6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4-6)

 

과실치사범이 도피성으로 피하려면 소정의 절차가 필요합니다. 이 절차는 민수기 35장과 신명기 19장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여기서 처음으로 주어집니다. 범인은 도피성의 성문 입구에서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여 입성을 허락받아야 합니다. 만일 명백한 고살범으로 수배 중이었던 범인이라면, 그는 즉시 거기서 체포되어 보복자에게 넘겨졌을 것입니다(신 19:11-12). 그러나 과실치사범으로 간주되면 그 성의 장로들은 그를 일단 받아들여 거처를 마련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그가 도피성으로 피했다 하더라도, 그 사망 사건에 대해 그 피의자와 보복자(고엘) 사이에 재판이 ‘회중 앞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민 35:24). 여기서 ‘회중’은 재판하는 사법 기관일 수 있습니다. 재판 없이 사적인 보복으로 피의자를 죽이거나 무단으로 그의 사형을 집행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면밀한 조사 없이 무작정 그 살인자를 도피성에서 보호하는 것도 허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일단 피의자는 사건 직후 도피성으로 몸을 숨긴 상태입니다. 그 후 재판정은 그를 재판하는데, 6절은 그 장소가 언뜻 도피성인 것처럼 읽히지만, 민수기 35:34은 그가 자신의 성읍으로 되돌아가 거기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지시합니다. 만일 거기서 재판을 받고 과실치사로 최종 판결이 난 경우 그는 도피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따라서 피의자는 일단 도피성으로 피해 목숨을 부지한 후,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일단 돌아가서 최종 재판을 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살인 사건으로 열린 재판은 신중해야 합니다. 자칫 무고한 사람이 혐의를 뒤집어쓰고 억울한 희생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 재판의 정확성과 신중성을 위해 민수기 35장에서 충분한 법적 장치가 보완됩니다. 피의자의 고의적 살인혐의를 입증하려면 한 사람의 증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민 35:30). 한 사람은 언제든지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 증언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증인을 세울 때 반드시 최소 두세 증인의 말이 법적인 효력이 있다고 명시합니다(민 35:30: 시 17:6). 아마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할 때는 판결이 확정되나 두 사람의 증언이 모호하거나 갈릴 경우에는 추가적인 증인 한 사람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재판 결과 고의로 살인한 자로 드러나 고의적 살인이 확정되면 그는 사형 외에는 면책될 방법이 없습니다. 즉, 이 경우 생명의 속전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고살자로 판명되면, 그는 피의 보복자에게 넘겨집니다. 율법은 이러한 보복을 불법으로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해한 책임은 과실치사로 도피성에 연금되어 있는 살인자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는 비고의적인 살인을 범했기에 사형은 면했지만, 생명을 해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가 도피성에 갇혀 사는 동안 ‘생명의 속전’을 내고 미리 죄사함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민 35:32). 그는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는 죄가 유효하며 연금과 속박 속에서 젖값을 치릅니다. 반대로 과실치사로 드러나면, 법정은 그의 생명을 지켜줄 의무가 있기에 그를 다시 도피성으로 돌려 보냅니다(민 35:34). 결국 도피성에 연금된 피의자는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야 완전히 사면되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6). 왜 대제사장의 죽음이 그의 사면의 조건과 기준이 되는지에 대해 학자들의 견해가 나뉩니다. 어떤 사람은 대제사장의 죽음이 그의 속죄의 수단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죄에 대한 책임을 지는 대가로 의도적 죽음이 아니라 자연사가 속죄의 수단이 된다고 보는 것은 부자연스럽습니다. 그보다는 그 피의자는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연습과 속박을 당함으로써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음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만일 그가 살인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졌는데 어떤 피의 보복자가 그를 죽인다면 새로운 살인사건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무단 외출을 했다가 보복자에게 살해당한다면, 그것은 자신 외에 누구의 탓도 아니며, 그 보복자 또한 복수의 피에 대해 책임질 일이 없습니다(민 35:26-27). 따라서 그 살인자는 현재의 대제사장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도피성 안에만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지정된 여섯 개의 도피성(7-9)

도피성에 피한 사람은 재판을 받거나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 성읍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도피성은 산 위 높은 곳에 있어 오르는 사이에 노출되지만, 도착하면 목숨을 건지는 피난처가 되었고, 살인자는 성 안에 들어가기 전에 장로들 앞에서 모든 죄를 낱낱이 자백해야 하지만 들어가면 생명을 보존 하였습니다. 감출 수 없고 드러내야 하지만 순종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도피성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공통점 입니다.

 

7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8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9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7-9)

 

도피성으로 여섯 개의 성이 지정됩니다. 먼저 요단 서편의 세 개의 도피성이 나열됩니다. 첫 번째는 납달리에 속한 갈릴리 게데스입니다. 이 게데스는 12:22의 남쪽 잇사갈 땅의 이스르엘 골짜기 근처에 있던 게데스와 다릅니다. 도피성 게데스는 갈릴리 북쪽의 하솔 근처에 위치해 있습니다(19:37; 20:7; 21:32). 두 번째 도피성은 에브라임 땅에 속한 세겜입니다. 세 번째는 유다 땅의 기랏 아르바, 곧 헤브론입니다. 이들 도성들이 이스라엘 전체에 끼치는 정치적-종교적인 영향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어서 8절은 요단 동편 세 개의 도피성이 남쪽부터 열거됩니다. 첫 번째는 르우벤 지파에 속한 베셀입니다. 이 성은 여기서 처음 언급되는데, 모압 왕 메사 석비에도 등장합니다. 베셀의 후보지로 움 엘 아마드(Umm el-Amad)가 제시되는데, 현대의 메데바(Medeba = Madaba) 북동쪽나 13km 지점입니다. 사해 북단에서는 동쪽으로 약 30km 거리입니다. 두 번째 도피성은 갓 지파의 길르앗 라못입니다. 이곳은 요단강 북쪽 현대의 소도시 이르비드(Irbid)에서 남동쪽 약 17km 지점 현대의 텔-라미스(Tell-Ramith)와 동일시됩니다. 세 번째는 므낫세 지파에 속한 바산 골란입니다. 도피성의 혜택은 다른 율법과 마찬가지로 자국민과 타국인, 체류민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이 다국인이나 체류민은 오늘날의 영주권자들과 비슷합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나 여행객은 제외됩니다.


이스라엘 광야에서 보낸 40년은 불신앙과 불순종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선하신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 열조에게 주신 약속을 따라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모든 약속을 성취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는 보고를 접합니다(21:3). 심지어는 이스라엘을 위한 도피성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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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19-02)


요단 서편의 2차 땅 분배(4) : 아셀, 납달리, 단

여호수아 19장 24-51절


종종 티비 드라마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자녀들이 아버지의 유언을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만약에 아버지의 유언장에 ‘내가 가진 모든 재산들 목록으로 만들어서 바구니 안에 넣고서, 자녀들이 스스로 뽑은 것을 가져라.’고 기록되어 있다면, 당신이 자녀라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이러한 모습은 우리들과 비슷하게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요단 서편 땅의 분배는 갈렙에게 유다의 헤브론 땅을 주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여호수아에게 에브라임의 딤낫 세라를 주는 이야기로 끝났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레위 성읍들과 도피성의 지정입니다(20-21장). 마지막 세 지파의 땅이 제비뽑기로 분배되는데, 아셀과 납달리, 단입니다. 단 지파가 제일 마지막 순서로 나타나는 이유는 시므온과 더불어 존재감이 없던 지파였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요단 서편의 2차 땅 분배:아셀, 납달리, 단(24-51)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는 능력은 바로 그 하나님을 잡고 있기 때문에 여유가 있고, 아무 것도 없어도 조급하지 않습니다. 그것 뒤에 삶을 인도하고 함께 하신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24다섯째로 아셀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25그들의 지역은 헬갓과 할리와 베덴과 악삽과 26알람멜렉과 아맛과 미살이며 그 경계의 서쪽은 갈멜을 만나 시홀 림낫에 이르고 27해 뜨는 쪽으로 돌아 벧 다곤에 이르며 스불론을 만나고 북쪽으로 입다 엘 골짜기를 만나 벧에멕과 느이엘에 이르고 가불 왼쪽으로 나아가서 28에브론과 르홉과 함몬과 가나를 지나 큰 시돈까지 이르고 29돌아서 라마와 견고한 성읍 두로에 이르고 돌아서 호사에 이르고 악십 지방 곁 바다가 끝이 되며 30또 움마와 아벡과 르홉이니 모두 스물두 성읍과 그 마을들이라 31아셀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마을들이었더라 32여섯째로 납달리 자손을 위하여 납달리 자손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33그들의 지역은 헬렙과 사아난님의 상수리나무에서부터 아다미 네겝과 얍느엘을 지나 락굼까지요 그 끝은 요단이며 34서쪽으로 돌아 아스놋 다볼에 이르고 그 곳에서부터 훅곡으로 나아가 남쪽은 스불론에 이르고 서쪽은 아셀에 이르며 해 뜨는 쪽은 요단에서 유다에 이르고 35그 견고한 성읍들은 싯딤과 세르와 함맛과 락갓과 긴네렛과 36아다마와 라마와 하솔과 37게데스와 에드레이와 엔 하솔과 38이론과 믹다렐과 호렘과 벧 아낫과 벧 세메스니 모두 열아홉 성읍과 그 마을들이라 39납달리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마을들이었더라 40일곱째로 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41그들의 기업의 지역은 소라와 에스다올과 이르세메스와 42사알랍빈과 아얄론과 이들라와 43엘론과 딤나와 에그론과 44엘드게와 깁브돈과 바알랏과 45여훗과 브네브락과 가드 림몬과 46메얄곤과 락곤과 욥바 맞은편 경계까지라 47그런데 단 자손의 경계는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셈과 싸워 그것을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하였음이라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셈을 단이라 하였더라 48단 자손의 지파가 그에 딸린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들의 마을들이었더라 49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경계를 따라서 기업의 땅 나누기를 마치고 자기들 중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기업을 주었으니 50곧 여호와의 명령대로 여호수아가 요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주매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건설하고 거기 거주하였더라 51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의 족장들이 실로에 있는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아 나눈 기업이 이러하니라 이에 땅 나누는 일을 마쳤더라(24-51)

 

본문은 어려운 숙제인 백성들에게 땅 분배하는 마지막 날입니다. 아직 땅 분배를 받지 못한 아셀, 납달리, 단 지파들에게 분배하는 부분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계획과 공평성을 강조하며, 그분께서 모든 것을 질서 있게 분배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그분의 계획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시며,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세밀하게 돌보십니다.

 

(1) 아셀 지파의 땅(24-31)

 

다섯 번째 제비는 아셀 자손에게 떨어졌습니다. 그들은 야곱과 모세의 예언처럼 풍요한 땅을 받습니다(창세기 49:20; 신명기 33:24-25). 그들이 받은 땅은 최북단의 해변 지역인데 넓은 평야 지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서편 므낫세 반 지파와 접한 남쪽 경계선은 지중해 연안의 갈멜 산 북쪽 기슭을 따라 흐르는 기손 강입니다. 그 너머로 악고(사사기 1:31)를 중심으로 넓은 해안 평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해안의 평야는 더 북쪽 연안의 두로와 시돈 지역까지 이어집니다. 동쪽으로는 스불론과 납달리가 접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셀 땅의 남쪽부터 설명이 시작됩니다. 25-26절의 성읍들은 모두 아셀의 남쪽 경계인 갈멜 산의 동쪽과 동남쪽 지역 성읍으로 추론됩니다. 26절의 ‘갈멜’은 갈멜 산인지 아니면 그 산 근처의 동명의 성읍인지는 불확실하나 이 구절의 성읍들의 위치가 갈멜 산 근처임을 말해줍니다. 27절에서 방향이 ‘해 뜨는 쪽’, 곧 동쪽으로 바뀝니다. 동쪽은 벧 다곤에서 스불론과 경계를 이룹니다. 벨 다곤의 위치도 분명하지 않으나 스불론의 땅과 만나는 남쪽 경계의 끝일 것입니다. 거기서 경계선은 북쪽으로 꺾여 입다 엘 골짜기로 이어입니다. 남북으로 뻗은 입다 엘 골짜기가 스불론과 서쪽의 아셀 지파와의 경계선 역할을 합니다(27).

앞서 14절에서 말한 대로, 이 골싸기는 현대의 치포리 강(Tsipori = Wadi el-Melik)일 것입니다. 이 강은 나사렛 북서쪽에서 발원하여 지중해도 흐르면서 마지막 하류에서 남쪽에서 흘러온 기손 강과 만납니다. 벧에멕과 느이엘의 위치는 불문명하나 가불은 현대의 카불(Kabul) 마을로 악고(Acco = Acre) 남동쪽 약 13km 지점의 소도시입니다. 이 마을들은 동쪽 경계선에 놓여 있습니다. 거기서 방향은 계속 북쪽(왼쪽)으로 진행되어 에브론에 이릅니다(28). 에브론, 르홉(30절의 르흡과 다름), 함몬, 그리고 가나, 곧 현대의 카나(Qana; 요 2장의 갈릴리 가나가 아님)를 지나 갑자기 멀리 최북단의 페니키아(베니게)의 큰 시돈으로(11:8) 건너뛰어 거기서 북쪽 경계선이 끝납니다. 시돈에서 다시 방향은 되돌아 남쪽의 라마와 두로로 향합니다. 이 아셀의 라마는 시돈 남쪽의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곳입니다(18:25의 베냐민의 라마 및 36절의 납달리의 라마와 다름). 견고한 요새였던 두로는 시돈과 더불어 고대로부터 페니키아(베니게)의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호사와 악십(15:44의 악십과 다름) 또한 두로 남쪽으로 내려온 해안에 위치해 있었을 것입니다. 첫 번째 목록의 성읍들은 총 스물두 개였습니다(30).

 

(2) 납달리 지파의 땅(32-39)

 

여섯 번째 제비는 납달리 지파에게 돌아갔습니다. 야곱과 모세의 예언을 따라 납달리 땅 또한 풍요롭습니다(창세기 49:21; 신명기 33:23). 그들의 영토는 헤르몬 산에서 내려온 큰물로 인해 위 요단강 유역에 조성된 비옥한 넓은 평야 지대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초목이 우거지고 과실수도 잘 자라는 땅이었습니다. 갈릴리(디베랴) 호수에서 어업도 가능했습니다. 납달리 지파의 땅은 동으로는 아셀의 땅, 서로는 헤르몬 산에서 갈릴리로 흘러드는 위 요단강(Upper Jordan)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북쪽 경계선은 아셀의 영토와 더불어 가나안 땅의 북쪽 경계를 이룹니다. 남쪽으로는 스불론과 잇사갈이 위치해 있습니다. 33절의 헬렙은 다볼산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할 것입니다. 다볼산은 납달리의 최남단인데(34) 스불론(12) 및 잇사갈(22)과 접하면서 세 방향으로 경계선이 나뉘는 접경 지역입니다. 큰 상수리나무가 인상적인 사아난님은 위치를 알 수 없습니다. 33절의 성읍들은 갈릴리 호수 남단에 위치한 성읍들로 보이는데, 얍느엘은 갈릴리 남단 서쪽 7km지점의 현대의 작은 마을 야브닐(Yavneel)일 것입니다(15:11의 유다 지파 얍느엘과 다름), 거기서 더 아래의 최남단은 요단강의 끝입니다(33). 거기서 다시 서쪽, 즉 지중해 쪽으로 방향이 바뀝니다. 34절은 상당히 난해한 구절입니다. 일단 남쪽 경계선은 잇사갈 지파와 접경을 이루면서 서쪽으로 이동해 다볼 산 근처에 이릅니다. 아스놋 다볼은 다볼 산 인근의 성읍일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경계선은 스불론 지파와 경계를 이루면서 북쪽의 혹곡으로 꺾입니다. 이어지는 묘사는 동서남북의 방향으로 납달리의 경계선에 대한 포괄적인 정리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요단강과 유다에 대한 느닷없는 언급으로 모든 해석가들을 혼란에 빠트립니다. 우선 동쪽의 요단강은 헤르몬 산에서 갈릴리 호수 북쪽으로 흘러 들어오는 ‘위 요단강’(Upper Jordan)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납달리에서 먼 남쪽의 지파로 납달리와 전혀 무관한 위치입니다. 결국 이 묘사는 해석이 어려워 아하로니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난제로 남겨두었으며 어떤 주석가들의 뜬금없는 유다에 대한 언급은 사본상의 오류로 봅니다. 가능한 해법의 하나로 이것은 요단강이 위 요단강에서 시작되어 갈릴리 호수를 거쳐 유다의 북단인 사해 입구까지 흐른다는 묘사일 수 있습니다. 이때 번역은 ‘해 뜨는 동쪽의 요단 강은 유다에 접하였다’가 가능합니다. 35절의 성읍들은 모두 갈릴리 서쪽 해변에 위치합니다. 36-38절의 성읍들은 하솔을 중심으로 갈릴리의 북단에 흩어져 있는 것들입니다. 하솔은 11:1, 게데스는 12:2을 보라. 에느레이는 12:4의 에드레이와 다른 곳으로 추정됩니다.

 

(3) 단 지파의 땅(40-48)

 

마지막 일곱 번째 제비는 단 지파에게 돌아갑니다. 모세가 예언한 단 지파의 사자와 같은 활약은 사사 삼손을 통해 성취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이전의 야곱의 예언에서 그들이 기습에 능한 숨어 있는 뱀에 비유된 것은 그들이 처할 취약한 처지를 또한 암시합니다. 실제로 단은 강력한 아모리 족속의 압박 하에 땅을 차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적들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책임감이 결여되어 할당받은 땅을 점령하지 못했습니다(47; 삿 8장). 단 지파 또한 아무런 경계선에 대한 묘사 없이 성읍들의 목록만 제시됩니다. 단의 경계는 베냐민의 서쪽입니다. 유다와 에브라임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지중해 해변을 끼고 있으며, 북쪽 해안에 큰 항구인 욥바가 위치합니다. 해변의 남쪽은 소렉 시내(Brook Sorek), 북쪽은 야르콘(Yarkon) 강이 경계선입니다. 41-42절의 성읍들은 아얄론 골짜기의(42) 남쪽으로 단의 남쪽 경계선입니다. 41절의 소라(15:33)와 에스다올(15:33)은 유다로부터 받은 성읍들입니다. 43절의 딤나(15:10)와 에그론(13:3)은 벧 세메스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남쪽 경계선 성읍들입니다. 44-45절의 성읍들은 모두 지중해 연안에 위치합니다. 44절의 바알랏은 15:11를 보시길 바랍니다. 46절의 성읍들은 현대의 텔아비브 시 근처에 소재해 있습니다. 특히 웁바는 텔아비브 남쪽 현대의 야파(affa = Joppa)인데 텔아비브와 하나로 통합된 도시입니다. 47절의 ‘단 자손의 경계는 더욱 확장되었으니’는 문자적으로 ‘그리고 단의 자손들의 경계는 그들로부터 나갔다’입니다. 이것은 단의 경계가 확대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땅이 그들 수중에서 빠져나간 것으로 해석됩니다. 말하자면, 단 자손은 자신들의 영토를 잃고 약속의 땅 최북단의 레셈/라이스 지역을 개척하러 떠납니다(삿 18장). 이곳은 위 요단강(Upper Jordan)의 수원지인 헤르몬 산 바로 아래에 위치합니다.

 

(4) 여호수아의 땅과 마무리된 땅 분배(49-51)

 

땅 분배가 시작될 때 갈렙이 헤브론 땅 일대를 선물로 받았고, 이제 여호수아의 땅이 여기서 결정됨으로써 땅 분배가 최종적으로 마무리됩니다. 가장 뛰어난 영웅이 마지막에 등장하는 매우 인상 깊고 장엄한 마무리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에브라임 땅에 속한 딤낫 세라가 주어지고 나중에 거기에 그의 죽음 후 묘소가 만들어집니다(24:30). 딤낫 세라는 사사기 2:9에서 딤낫 헤데스로 불리는데, 이곳은 세겜(나블로세) 남서쪽 17km 지점 현대의 작은 마을 하레스(Hares)입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가차 없고 적을 무장해제하는 군사적 활동이었기 때문에 오해와 논란이 많았습니다. 가나안 전쟁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땅을 오염시킨 죄인 사이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따른 심판 행위이지 특정 인종에 대한 말살 행위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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