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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48-01)


회복될 새 땅에 대한 분배

에스겔 47장 13절–48장 35절


 

서로 갈등 없이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미래입니다. 그 나라는 더 많이 가진 것도 의미 없고, 더 적게 가진 것도 의미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필요하면 서로 먼저 챙겨주고 소유권 다툼 없이 다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여기며 사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새 성전 공동체 새로운 하나님 나라는 이렇듯 소유보다 소유를 주신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은혜로 산다고 믿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 여호와께서 다시 새 성전으로 돌아오시고, 새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땅이 비옥해집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보호 아래 다시 가나안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왕정 시대를 거치면서 이름만 남은 열두 지파의 전통도 회복됩니다. 열두 지파에 균등하게 땅이 분배되고, 각 지파는 자신들의 상속 재산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새 국경선(13-23)

하나님께서는 한 번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손해날지라도 약속하신 대로 행하십니다. 그리고 공평과 정의로, 모든 사람에게 합당한 방식으로 그분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이 있다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복된 땅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십니다.

 

13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는 이 경계선대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이 땅을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되 요셉에게는 두 몫이니라 14내가 옛적에 내 손을 들어 맹세하여 이 땅을 너희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하였나니 너희는 공평하게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 15이 땅 경계선은 이러하니라 북쪽은 대해에서 헤들론 길을 거쳐 스닷 어귀까지니 16곧 하맛과 브로다며 다메섹 경계선과 하맛 경계선 사이에 있는 시브라임과 하우란 경계선 곁에 있는 하셀핫디곤이라 17그 경계선이 바닷가에서부터 다메섹 경계선에 있는 하살에논까지요 그 경계선이 또 북쪽 끝에 있는 하맛 경계선에 이르렀나니 이는 그 북쪽이요 18동쪽은 하우란과 다메섹과 및 길르앗과 이스라엘 땅 사이에 있는 요단 강이니 북쪽 경계선에서부터 동쪽 바다까지 측량하라 이는 그 동쪽이요 19남쪽은 다말에서부터 므리봇 가데스 물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이는 그 남쪽이요 20서쪽은 대해라 남쪽 경계선에서부터 맞은쪽 하맛 어귀까지 이르나니 이는 그 서쪽이니라 21그런즉 너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대로 이 땅을 나누어 차지하라 22너희는 이 땅을 나누되 제비 뽑아 너희와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타국인 곧 너희 가운데에서 자녀를 낳은 자의 기업이 되게 할지니 너희는 그 타국인을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족속 같이 여기고 그들도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너희와 함께 기업을 얻게 하되 23타국인이 머물러 사는 그 지파에서 그 기업을 줄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3-23)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모두가 공평하고 동등한 은혜를 누립니다. 과거 이스라엘 족장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회복된 땅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1) 각 지파에서 새로운 분배(13-14)

 

이 땅에 대한 분배에 관한 원론적 가르침(13-14과 21)이 이스라엘의 새로운 국경선에 관한 가르침(20)을 감싸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지파에 따른 이 분배는 48장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먼저 전 영토의 범위를 확정하고(47:15-20), 각 지파에 동일한 크기로 땅이 나뉩니다(48:1-7, 23-29). 국경선이 확정보다 지파에 따른 공정한 분배에 관심이 집중됩니다.

예전에 두 지파 반이 정착했던 요단 동편 지역이 탈락하기에 이스라엘의 국경선에 관한 언급이 지파들의 땅 분배에 앞서 나옵니다. 열두 지파에 나누어 줄 땅의 경계선이 확정됩니다. 여호와께서 직접 정하신 지파의 경계이기에 어떤 경우에도 변경될 수 없습니다(13). 지파에 분배된 땅은 지파의 상속 재산으로 제후나 다른 지파가 빼앗을 수도 넘길 수도 없습니다. 족장들에게 약속으로 주어졌던 가나안 땅(참조. 창 26:3;50;24; 출 6:8;13:5,11;33:1; 민 14:30;32:11; 신 1:8;6:10)을 여호수아의 주도 아래 지파들이 제비뽑기로 나누어 가졌던 것처럼, 새로운 구원 시대를 시작하면서 땅이 다시 분배됩니다. 지파별로 똑같이 나누어 땅을 기업(상속재산)으로 갖습니다(14).

‘공평하게’는 문자적으로 ‘제 형제처럼 각 사람’입니다. 레위기 7:10에서는 제사장 몫의 균등한 분배와 관련해 사용됐습니다. 각 지파는 서로에게 형제로서 동일한 땅 분배는 모세의 땅 분배를 수정합니다. 민수기 26:53-56과 33:54에 따르면 지파의 크기에 따라 땅의 넓이가 다르게 나뉘는데, 새 성전의 시대에는 큰 지파든 작은 지파든 아무 차이 없이 동일한 크기의 땅을 나누어 받습니다.

 

(2) 이스라엘의 새로운 국경선(15-20)

 

본문에서 나온 국경선은 민수기 34:1-12에 나오는 국경선과 대략적으로 일치합니다(참조 민 13:21; 삼하 24:5-7). 분명한 땅의 경계는 이스라엘이 분명히 획득할 것을 약속합니다. 민수기는 아마도 출애굽 상황에 일치하여 남쪽과 서쪽과 동쪽과 북쪽의 순서로 언급하고, 에스겔은 북쪽과 동쪽과 남쪽과 서쪽의 방향을 따릅니다.

북쪽 경계선은 대해(지중해)에서 헤들론 방향으로 르보하맛을 지나 스닷과 브로다, 다메섹 경계선과 하맛 경계선 사이에 있는 시브라임, 그리고 하우란 경계선 가에 있는 하셀핫디곤까지 입니다(15-17; 48:1; 참조. 민 34:7-9). 다른 경계선에 비하여 자세히 언급하는데, 우연은 아닙니다. 다른 국경선과 달리 북쪽 국경선은 다윗 시대의 짧은 기간만 이스라엘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에스겔은 오래전에 잊어버렸던 이스라엘의 북쪽 국경을 회상합니다.

동쪽 경계선은 하우란과 다메섹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긴네렛 호수 동편을 지나 ‘길르앗과 이스라엘 사이에 있는 요단 강’을 따라 동쪽 바다(사해)와 다말까지입니다(18: 참조, 민 34:10-12). 요단강이 동쪽의 경계선이 되면서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정착했던 요단 동편 지역(참조. 민 34:13-15; 수 18:7)이 탈락합니다. 남쪽 경계선은 동쪽 경계선 남단인 다말에서 시작해서 므리봇 가데스(가데스바르네아: 참조. 민 27:14; 신 32:51) 샘까지 남서쪽으로 내려가고, 거기서 다시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애굽 시내를 따라 지중해에 이릅니다(19; 참조. 민 34:35). 서쪽 경계선은 지중해를 경계로 르보하맛 건너편까지입니다(20, 참조 민 34:6).

 

(3) 타국인에 대한 기업(21-23)

 

에스겔은 가나안 땅의 분배에 오래전부터 함께 살아온 타국인도 포함시킵니다(21-23). 이스라엘 사람들이 땅을 분배할 때 배제되지 않고 타국인도 동일하게 참여합니다. 이들도 본토인처럼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제비를 던져 상속 재산을 받습니다. 이 때 각 지파 안에 살고 있던 타인들에게도 ‘타국인이 머물러 사는 그 지파에서’ 상속 재산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나안에서 당신 백성과 함께 사는 타국인을 이스라엘의 열세 번째 지파로 인정해주십니다.

 

땅의 분배(48:1-29)

하나님의 구원과 임재는 민족과 인종의 담을 넘어 모든 이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예배라는 단어는 교회에서 많이 사용되지만, 정작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주어야 할 때는 막연하기만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것,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 맞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배를 누가 드릴 수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드리는지 물어온다면 무어라 답하시겠습니까?

 

1모든 지파의 이름은 이와 같으니라 북쪽 끝에서부터 헤들론 길을 거쳐 하맛 어귀를 지나서 다메섹 경계선에 있는 하살에논까지 곧 북쪽으로 하맛 경계선에 미치는 땅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단의 몫이요 2단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아셀의 몫이요 3아셀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납달리의 몫이요 4납달리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므낫세의 몫이요 5므낫세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에브라임의 몫이요 6에브라임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르우벤의 몫이요 7르우벤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유다의 몫이요 8유다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너비는 이만 오천 척이요 길이는 다른 몫의 동쪽에서 서쪽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지니 9곧 너희가 여호와께 드려 예물로 삼을 땅의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는 만 척이라 10이 드리는 거룩한 땅은 제사장에게 돌릴지니 북쪽으로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요 서쪽으로 너비는 만 척이요 동쪽으로 너비가 만 척이요 남쪽으로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라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11이 땅을 사독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지어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될 때에 레위 사람이 그릇된 것처럼 그릇되지 아니하였느니라 12땅의 예물 중에서 그들이 예물을 받을지니 레위인의 접경지에 관한 가장 거룩한 예물이니라 13제사장의 경계선을 따라 레위 사람의 몫을 주되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는 만 척으로 할지니 이 구역의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가 각기 만 척이라 14그들이 그 땅을 팔지도 못하며 바꾸지도 못하며 그 땅의 처음 익은 열매를 남에게 주지도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 거룩히 구별한 것임이라 15이 이만 오천 척 다음으로 너비 오천 척은 속된 땅으로 구분하여 성읍을 세우며 거주하는 곳과 전원을 삼되 성읍이 그 중앙에 있게 할지니 16그 크기는 북쪽도 사천오백 척이요 남쪽도 사천오백 척이요 동쪽도 사천오백 척이요 서쪽도 사천오백 척이며 17그 성읍의 들은 북쪽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남쪽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동쪽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서쪽으로 이백오십 척이며 18예물을 삼아 거룩히 구별할 땅과 연접하여 남아 있는 땅의 길이는 동쪽으로 만 척이요 서쪽으로 만 척이라 곧 예물을 삼아 거룩하게 구별할 땅과 연접하였으며 그 땅의 소산을 성읍에서 일하는 자의 양식을 삼을지라 19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그 성읍에서 일하는 자는 그 땅을 경작할지니라 20그런즉 예물로 드리는 땅의 합계는 길이도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도 이만 오천 척이라 너희가 거룩히 구별하여 드릴 땅은 성읍의 기지와 합하여 네모 반듯할 것이니라 21거룩하게 구별할 땅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에 남은 땅은 군주에게 돌릴지니 곧 거룩하게 구별할 땅의 동쪽을 향한 그 경계선 앞 이만 오천 척과 서쪽을 향한 그 경계선 앞 이만 오천 척이라 다른 몫들과 연접한 땅이니 이것을 군주에게 돌릴 것이며 거룩하게 구별할 땅과 성전의 성소가 그 중앙에 있으리라 22그런즉 군주에게 돌려 그에게 속할 땅은 레위 사람의 기업 좌우편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이며 유다 지경과 베냐민 지경 사이에 있을지니라 23그 나머지 모든 지파는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베냐민의 몫이요 24베냐민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시므온의 몫이요 25시므온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잇사갈의 몫이요 26잇사갈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스불론의 몫이요 27스불론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갓의 몫이며 28갓 경계선 다음으로 남쪽 경계선은 다말에서부터 므리바가데스 샘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29이것은 너희가 제비 뽑아 이스라엘 지파에게 나누어 주어 기업이 되게 할 땅이요 또 이것들은 그들의 몫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29)

 

에스겔은 포로로 끌려왔음에도, 하나님을 위한 여러 퍼포먼스로 육체를 손상시킬 정도로 무리를 했고, 유일한 이해자이자 동역자였던 아내의 죽음 앞에서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예배는 단순한 종교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이었습니다. 황량한 현실과 고독이 심장 속까지 스며들어와 숨 쉴 수 없게 된 죽음 앞에서의 인간이 홀로 눈을 들어 하늘에 외치는 울림이었습니다. 이제 본문을 통해서 에스겔의 마지막 부분 클라이맥스에 도달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보다 더 놀라운 장엄한 마무리가 가능하겠습니까?

(1) 북쪽 일곱 지파(1-7)

 

각 지파가 얻게 될 경계에 대한 서술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집니다. 성소가 있는 거룩한 땅(8)을 중심을 북쪽에 일곱 지파(1-7), 남쪽에 다섯 지파(23-29)가 배정됩니다.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북쪽 지역에는 단(빌하), 아셀(실비), 납달리(빌하), 므낫세(라), 에브라임(라헬), 르우벤(레아), 유다(레아)의 일곱 지파가, 남쪽 지역에는 베냐민(라헬), 시므온(레아), 잇사갈(레아), 스불론(레아), 갓(실바)의 다섯 지파가 자리합니다.

전통적인 모세의 땅 분배와 적지 않은 차이를 보입니다. 47:18의 동쪽 국경선에 따라 요단 동편 지역이 탈락하고, 그 지역의 지파들도 모두 가나안 땅으로 옮겨갑니다. 르우벤은 북쪽의 여섯 번째 지파로 에브라임과 유다 사이에, 갓은 남쪽의 끝자락에 자리 잡습니다. 므낫세 반 지파에 관해서는 달리 언급이 없는데, 아마도 서쪽의 같은 지파에 합류하는 것 같습니다. 단과 아셀과 납달리와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원래처럼 북쪽에 자리하고, 스불론과 잇사갈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갓 지파 앞에 자리합니다. 유다 산지 남쪽에 있었던 시므온은 베냐민 다음의 자리로 옮겨갑니다. 가장 큰 변화는 유다의 위치입니다. 예루살렘 북쪽과 남쪽에 있던 베냐민과 유다가 중앙 지역을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으로 서로 자리를 바꿉니다. 중앙 지역 북쪽으로 유다와 르우벤이 자리하기에 북왕국의 주도 세력이었던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더 북쪽으로 밀려납니다. 유다의 거주지가 북쪽으로 옮겨진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유다를 성읍에서 떼어놓으려 했다면, 예루살렘과 유다의 독점적 관계에 대한 비판을 읽을 수 있습니다.

 

(2) 중앙 부분에 속한 땅(8-24)

 

본문에 많은 부분이 중앙 부분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 중심에는 배교의 시대에도 신앙의 절개를 지킨 사독 자손 제사장들이 거합니다(11). 그 중앙에 성전이 있었습니다.

유다 남쪽을 경계로 너비가 이만 오천 암마 되고, 동서의 길이는 북쪽으로는 유다의 남쪽과 같고 남쪽으로는 베냐민의 북쪽과 같은 한 구역이 구별됩니다(8). 성전이 한가운데 자리한 이 구역은(성전 + 제사장 구역 + 레위인 구역 + 성읍의 소유지 + 제후의 소유지) 여호와께 예물로 드려지는 땅입니다. 제사장 구역과 레위인 구역에 관한 규정(9-14)은 대체로 45:1, 3-5의 반복으로, 제사장을 레위인에 비교해서 언급합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할 때 제사장은 레위인과 달리 그릇 행하지 않았기에(11; 44:10,12,15), 이들에게 땅의 예물 가운데서도 특별한 구역, ‘가장 거룩한 예물’이 주어집니다(12). 제사장 구역과 레위인 구역은 ‘여호와께 거룩히 구별한 것’이기에, 곧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에 어떤 경우에도 팔거나 바꾸거나 남에게 넘기지 못합니다(14).

 

(3) 성읍의 소유지에 관한 규정(15-29)

 

본문은 성읍의 소유지에 관한 규정으로 45:6의 규정을 세부적으로 보충해줍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의 구역과 달리 일반 사람이 거주하기에 ‘속된 땅’으로(15), 성에 사는 자들이 농사를 지어 양식을 마련하는 경작지입니다(18-19). 20절은 9-19절의 요약이고, 21-22절은 제후의 소유지에 관한 규정으로 내용상 45:7-8의 반복입니다.

 

성읍의 문들과 성읍 이름(48:30-35)

하나님께서는 단지 에스겔이 보았던 환상 속의 성전에 돌아오신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왕으로 언제나 거기 계시면서 그들을 원하신 통치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임마누엘이신 그리스도의 강림과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주심으로써 성취되었고 마지막 날에 완성될 것입니다.

 

30그 성읍의 출입구는 이러하니라 북쪽의 너비가 사천오백 척이라 31그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쪽으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하나는 레위 문이며 32동쪽의 너비는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요셉 문이요 하나는 베냐민 문이요 하나는 단 문이며 33남쪽의 너비는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시므온 문이요 하나는 잇사갈 문이요 하나는 스불론 문이며 34서쪽도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갓 문이요 하나는 아셀 문이요 하나는 납달리 문이며 35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30-35)

 

성읍에는 열두 문이 있는데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라 부릅니다(참조. 계 21:12-13). 북쪽에 문이 셋 있는데 르우벤 문과 유다 문과 레위 문이고(31), 동쪽에도 문이 셋 있는데 요셉 문과 베냐민 문과 단문이고(32), 남쪽에도 문이 셋 있는데 시므온 문과 잇사갈 문과 스불론 문이고(33), 서쪽에도 문이 셋 있는데 갓 문과 아셀 문과 납달리 문입니다(34). 북쪽 문과 남쪽 문의 이름은 모두 레아의 아들들이고, 동쪽 문의 이름은 라헬과 그녀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이고, 서쪽 문의 이름은 레아의 여종 실바(갓, 아셀)와 라헬의 여종 빌하(납달리)의 아들들입니다. 또 북쪽문의 이름은 레위를 제외하면 북쪽 지역에 속한 지파들이고, 남쪽 문의 이름은 남쪽 지역에 속한 지파들의 이름이고, 동쪽 문의 이름은 북쪽 지역(요셉, 단)과 남쪽 지역(베냐민)에 속한 지파들의 이름이고, 서쪽 문의 이름도 북쪽 지역 (아셀, 납달리)과 남쪽 지역(갓)에 속한 지파들의 이름입니다. 북쪽과 동쪽의 문에는 비교적 세력이 큰 지파들의 이름이, 서쪽과 남쪽이 무에는 세력이 약한 지파들의 이름이 붙여집니다. 열두 문의 성읍에는 ‘여호와께서 거기에(계시다)’를 의미하는 ‘여호와 삼마’라는 이름이 주어집니다(35; 사 62:2).


이스라엘 땅의 분배와 새로운 예루살렘의 회복을 통해 하나님이 백성에게 주시는 약속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각 지파에게 정해진 땅을 분배하시며, 그들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회복시킵니다. 새로운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거룩한 장소로, 그곳에서 백성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누리게 됩니다. 또한, 이 본문은 하나님의 임재가 그들의 삶을 인도하고,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기초가 됨을 보여줍니다. 궁극적으로, 이 구절은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시작과 영원한 소망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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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47-01)


성전에서 나오는 생명의 강물

에스겔 47장 1-12절


 

생명을 유지하는 가운데 가장 필수 조건 중에 하나는 물입니다. 몸에 70%이상이 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물이 그만큼 생명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줍니다. 우리의 몸에 생명을 유지하는데 물이 필요하듯이, 우리의 영혼 또한 그 생명을 유지하는데 물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생명수를 성령님으로 표현하시기도 했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은혜의 강물에서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 여호와께서 새 성전으로 다시 돌아오시고, 성전 문지방에서는 생수가 흘러나와 강물을 이루고 아라바로 내려가서 사해에 이릅니다. 강 좌우편에 수많은 나무가 자라고 바닷물이 살아나 고기가 많아집니다. 메마른 땅이 옥토로 바뀌고, 온갖 과일 나무가 다달이 새 열매를 맺습니다. 심판 시대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고 풍요롭고 생명이 넘치는 구원 시대가 시작됩니다.

 

성전에서 솟아 흐르는 물의 묘사(1-7)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소생시키는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어 있는 모든 것에게 생명의 부활과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을 구원하시고 회복하시는 유일한 방법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그 은혜 안에 머물러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고 있습니까?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1-7)

 

40-46장까지 핵심 단어가 성전의 ‘담’이었다면, 47-48장의 핵심 단어는 성전의 ‘물’입니다. 가로막는 ‘담’과 가로질러 흐르는 ‘물’, 서로 대조되는 이미지인데 성전은 이 둘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12지파들이 얻게 될 땅에 대해 말하기 앞서,환상 가운데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새 성전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생명력이 없고 황폐한 땅이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인해 생명 땅으로 바뀌는 환상을 서술합니다.

 

(1) 성전 구역을 흐르는 물(1-2)

 

에스겔을 다시 데리고 성전 문으로 간 안내자는 그에게 성전 문지방 밑에서 솟아 물을 보게 합니다. 동쪽 있는 제단으로 흐르다가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려갑니다. 에스겔은 안뜰에 남쪽 벽에서 물이 스며 나와 계속해서 흐르는 것을 바깥뜰에 동문 앞에 지켜봅니다.

샘의 근원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성전 신학에 근거하여 추측하자면, 여호와의 영광이 거하는 성전의 내소에서 시작해 성전 건물의 지하를 흐르다가 입구에서 땅 위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에스겔의 관찰은 샘물이 땅 위로 솟아나는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문지방에서 솟아난 물이 어떤 방향으로 성전 안뜰을 지나가는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는 성전의 방향과 성전 입구를 바라보며 서 있는 제단의 위치를 고려하면, 현관의 문지방에서 솟아난 물이 아래쪽(남쪽)으로 흐르다가 문지방 남쪽 모퉁이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제단 남쪽 측면을 지나 흐르는 것 같습니다. 바깥뜰의 동문은 폐쇄된 문이고(44:1-2) 안뜰의 동문은 안식일과 초하루에만 열기에(46:1) 안내자와 에스겔은 안뜰의 북문과 바깥뜰의 북문을 통해 성전 구역 밖으로 나가서 담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동문으로 갑니다(2).

 

(2) 흘러 강이 되는 물(3-5)

 

거기서 에스겔은 바깥 동문 오른쪽(남쪽)에서 물이 솟구쳐 흐르는 것을 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은 동쪽의 태양을 바라보며 방위를 정했기에 왼쪽이 북쪽, 오른쪽이 남쪽이 됩니다. 문지방 밑에서 솟아나서 안뜰과 바깥뜰의 남쪽 측면을 지나 성전 구역 밖으로 나온 물은 계속 동쪽으로 흐르면서 점점 불어 강이 됩니다. 손에 줄을 잡은 안내자는 물길을 따라 동쪽으로 움직이면서 일정한 거리를 가면, 에스겔에게 물을 건너게 합니다. 천 암마를 재고서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발목까지 찼고, 다시 천 암마를 재고서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이번에는 무릎까지 찼고, 다시 천 암마를 재고서 건너게 하였는데 이번에는 허리까지 찼고, 네 번째 천 암마를 쟀을 때는 물이 불어서 헤엄을 치지 않고는 건널 수 없었습니다(3-51). 성전 문설주에서 솟는 물이 성전을 벗어나 사천 암마(대략 2.8km)의 거리를 지나자 사람이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이 됩니다. 물길이 더 깊어져 가는 것을 보여주는 ‘네 번’의 측량은 우상숭배의 정도가 더 심해져 가는 것을 보여주는 첫 번째 성전 환상(8장)의 ‘네 장소’와 대비를 이룹니다. 후자에서 여호와의 영은 에스겔을 예루살렘 북문에서 왕궁 지역의 담과 성전 북문 입구를 지나 성전의 안뜰로 데려가면서 성과 성전이 얼마나 철저하게 우상숭배로 물들었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3) 강가의 수많은 나무(6-7)

 

전에는 성전에 가까이 갈수록 우상숭배의 정도가 더 심해졌는데, 새 성전의 구원 시대에는 멀리 갈수록 여호와의 축복이 더 많아집니다. 강가로 돌아간(6) 에스겔은 놀라운 광경을 목도합니다. 강가 이편과 저편이 나무들로 무성했습니다(7).

 

성전에서 솟아 흐르는 물의 해석(8-12)

생명수는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예수님으로부터 은혜의 강물을 촉촉하게 적셔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흘려보내신 은혜의 강물은 깊고 넓은 은혜임으로 천사도 측량하지 못할 정도로 풍성하게 넘칩니다. 이 은혜의 강물에 당신의 영혼도 촉촉하게 적시는 눌라운 축복이 있길 원합니다.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8-12)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은 성령의 무한한 능력을 상징합니다. 에스겔은 발목으로, 무릎으로, 허리로 그리고 헤엄쳐 온몸으로 그 물을 경했습니다. 성령은 이론이 아닌 잠기고 헤엄쳐 경험해야 할 대상입니다.

 

(1) 되살아나는 바닷물(8-10)

 

에스겔의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안내가는 에스겔에게 성전에서 흘러나온 강물이 가져올 이로운 변화를 알려줍니다. 강물은 계속 동쪽으로 을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사해)로 들어가고, 생이 살 수 없었던 죽은 바다가 다시 살아납니다(8).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가 이르는 곳마다 온갖 생이 살아나고, 바닷물도 되살아나서 고기가 아주 많아집니다(9).

이스라엘에는 갈릴리 호수 주변을 제의하고 직업적으로 고기를 잡는 어부가 없었는데, 이제 강물이 흐르고 사해가 살아나기에 어부들이 그 주변에 정착합니다. 물고기가 넘치는 강가에서는 어부들이 고기를 잡고,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됩니다(10).

 

(2) 소금 땅으로 남는 질펄과 개펄(11)

 

사해가 되살아나 각종 물고기가 ‘큰 바다’(지중해)의 물고기처럼 많아지고 어부들도 많아집니다. 어부들이 사해 주변 이곳저곳에서 그물을 펴서 말립니다. 사해의 모든 물이 되살아나지는 않습니다. 경제적 가치가 높았던 소금을 생산하는 ‘진펄과 개펄’의 물은 치유되지 않고 그대로 남습니다(11). 대략 31%의 염분을 함유한 사해는 소금 생산지로 유명했습니다(참조, 삼하 8:13; 왕하 14:7), 소금은 음식에 간을 하거나(참조. 욥기 6:6) 고기와 생선을 절일 때뿐만 아니라 제사 음식의 첨가물로도(참조. 출 30:35; 레 2:13; 겔 43:24; 스 6:9, 7:22) 사용됐습니다.

 

(3) 강가의 온갖 과일나무(12)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고 열매도 끊이지 않습니다(12). 과일나무가 다달이 맺는 새 과일이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됩니다. 굶주림과 질병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을 살게 됩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로 땅이 치유함을 받고, 그 땅이 맺은 열매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살게 됩니다. 회복된 성전의 축복이 놀라운 방식으로 메마른 땅과 죽은 바다를 비옥한 땅과 생명의 바다로 치유해 샬롬을 가져다줍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강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 풍성한 생명을 주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 물은 모든 곳에 생명을 공급하며, 그 흐름이 있는 곳마다 치유와 번영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이 생명수를 통해 자신의 임재와 은혜를 백성에게 부어주시며, 그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또한, 이 장면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풍요와 회복의 약속을 상징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본문은 우리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생명수가 흐르며, 그로 인해 치유와 회복이 이루어져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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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46-01)

 


마땅히 지켜야 할 것과 드려야 할 것

에스겔 45장 18절-46장 24절


 

챨리 스텐리 목사님께서 ‘실망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낙심은 선택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많은 일들 때문에 실망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실망을 항상 낙담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란 것입니다. 우리에게 많은 일이 있지만,그러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낙담이나 주저앉아 포기하는 없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것을 구별하여 드리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 제후의 의무와 책임에 속하는 명절과 하루와 안식일에 드릴 소재와 번제와 감사 제물에 관한 구체적 가르침이 주어집니다. 제후에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명절에 정해진 규정에 따라 백성이 바친 예물을 드려 제사가 온전하게 드려지게 해야 합니다. 제사장과 백성과 제후가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을 다할 때 성전의 거룩함이 지켜지고 복이 넘치도록 주어집니다.

 

제후의 제의적 책임(45:18-46:15)

성도들은 아침저녁으로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고 끝내는 삶의 습관을 통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처럼 잦은 영적 생활은 수고롭게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을 환기시키는 은혜의 방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많은 종교 제의를 통해 하나님을 잊지 않으며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18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첫째 달 초하룻날에 흠 없는 수송아지 한 마리를 가져다가 성소를 정결하게 하되 19제사장이 그 속죄제 희생제물의 피를 가져다가 성전 문설주와 제단 아래층 네 모퉁이와 안뜰 문설주에 바를 것이요 20그 달 칠일에도 모든 과실범과 모르고 범죄한 자를 위하여 역시 그렇게 하여 성전을 속죄할지니라 21첫째 달 열나흗날에는 유월절을 칠 일 동안 명절로 지키며 누룩 없는 떡을 먹을 것이라 22그 날에 왕은 자기와 이 땅 모든 백성을 위하여 송아지 한 마리를 갖추어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23또 명절 칠 일 동안에는 그가 나 여호와를 위하여 번제를 준비하되 곧 이레 동안에 매일 흠 없는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이며 또 매일 숫염소 한 마리를 갖추어 속죄제를 드릴 것이며 24또 소제를 갖추되 수송아지 한 마리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 한 마리에도 한 에바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 씩이며 25일곱째 달 열다섯째 날에 칠 일 동안 명절을 지켜 속죄제와 번제며 그 밀가루와 기름을 드릴지니라 46:1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안뜰 동쪽을 향한 문은 일하는 엿새 동안에는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초하루에도 열고 2군주는 바깥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와서 문 벽 곁에 서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요 군주는 문 통로에서 예배한 후에 밖으로 나가고 그 문은 저녁까지 닫지 말 것이며 3이 땅 백성도 안식일과 초하루에 이 문 입구에서 나 여호와 앞에 예배할 것이며 4안식일에 군주가 여호와께 드릴 번제는 흠 없는 어린 양 여섯 마리와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라 5그 소제는 숫양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 씩이니라 6초하루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어린 양 여섯 마리와 숫양 한 마리를 드리되 모두 흠 없는 것으로 할 것이며 7또 소제를 준비하되 수송아지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에도 밀가루 한 에바며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요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8군주가 올 때에는 이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오고 나갈 때에도 그리할지니라 9그러나 모든 정한 절기에 이 땅 백성이 나 여호와 앞에 나아올 때에는 북문으로 들어와서 경배하는 자는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오는 자는 북문으로 나갈지라 들어온 문으로 도로 나가지 말고 그 몸이 앞으로 향한 대로 나갈지며 10군주가 무리 가운데에 있어서 그들이 들어올 때에 들어오고 그들이 나갈 때에 나갈지니라 11명절과 성회 때에 그 소제는 수송아지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 한 마리에도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12만일 군주가 자원하여 번제를 준비하거나 혹은 자원하여 감사제를 준비하여 나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그를 위하여 동쪽을 향한 문을 열고 그가 번제와 감사제를 안식일에 드림 같이 드리고 밖으로 나갈지며 나간 후에 문을 닫을지니라 13아침마다 일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한 마리를 번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리고 14또 아침마다 그것과 함께 드릴 소제를 갖추되 곧 밀가루 육분의 일 에바와 기름 삼분의 일 힌을 섞을 것이니 이는 영원한 규례로 삼아 항상 나 여호와께 드릴 소제라 15이같이 아침마다 그 어린 양과 밀가루와 기름을 준비하여 항상 드리는 번제물로 삼을지니라(45:16-46:15)

 

유월절은 유지 되지만 그 핵심은 출애굽과 해방이 아닌 속죄입니다. ‘장막절’ 역시 광야 시절의 은혜를 기념했던 예전과 달리, 정결의 예배로 전화됩니다.

 

(1) 속죄일(45:18-20)

 

매년 첫째 달 초하룻날에는 성전을 정결하게 하고 속죄하는 예식을 거행해야 합니다. 에스겔 시대는 3~4월의 니산월이 새해의 시작이었습니다.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속죄제 희생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가 드려집니다.

제사장은 속죄제물의 피를 가져다가 ‘성전 문설주와제단 아래층 네 모퉁이와 안뜰 문설주’에 바르고, 육일 후, 일곱째 날에도 같은 예식을 한 번 더 행해 실수로 잘못을 범하거나 모르고 죄를 범한 사람을 위해성소를 속죄합니다. 속죄 예식이 한 주간 계속되지 않고, 첫째 날과 일곱째 날에 두 번 행해집니다. 번제단을 봉헌할 때는 첫째 날은 수송아지로 속죄제를 드리고 둘째 날부터 이레 동안은 매일 숫염소로 속죄제를 드리고 수송아지와 숫양으로 번제를 드립니다(44:18-26).

 

(2) 유월절(45:21-24)

 

성전으로 순례하는 축제와 관련해서는 칠칠절이 빠지고 유월절과 초막절만 언급됩니다. 한 해가 니산월(3-4월)의 유월절과 티슈리월(9-10월)의 초막절로 이분됩니다. 유월절 규정은 자세히 언급하고(21-24), 일곱째 달 열다섯째 날부터 이레 동안 지내는 초막절 규정은 유월절 규정으로 대체합니다(25;참조. 민 29:12-38). 첫째 달 열나흗날에는 유월절을 지내는데, 이레 동안의 축제로 누룩 없는 떡을 먹어야 합니다. 제후는 첫째 날에 자신과 이 땅 모든 백성을 위해 송아지 한 마리를 속죄제물로 바치고, 축제를 지내는 이레 동안 매일 번제물로 흠 없는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속죄제물로는 숫염소 한 마리를 드려야 합니다. 또 소제로 수송아지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바(40리터), 숫양 한 마리에도 밀가루 한 에바를 함께 드리는데, 한 에바마다 기름 한 힌(6.5리터)을 곁들입니다. 이레 동안 전체적으로 수송아지 49마리, 숫양 49마리, 숫염소 7마리, 밀가루 3920리터, 기름 637리터가 축제의 예물로 드려집니다.

 

(3) 초막절(45:25)

 

유월절과 무교절이 하나의 절기로 통합되고 전체 축제 기간이 하루가 줄어들어 초막절처럼 칠 일의 축제가 됩니다. 민수기 28:17-24에 나오는 무교절이레 동안 드린 제물과 비교할 때, 에스겔의 유월절에서는 번제가 강화되고 소제가 약화됩니다.

 

(4) 안식일과 초하루(46:1-7)

 

다음은 안식일과 초하룻날의 예배에 관한 규정으로, 먼저 장소가 언급됩니다(46:1-3). 안뜰 동문은 일하는 엿새 동안은 잠가두었다가 안식일과 매달 초하룻날에는 열어야 합니다. 제후와 백성은 바깥뜰에서 안뜰의 동문 쪽으로 오는데, 접근 가능한 범위가 다릅니다. 제후는 바깥에서 대문 현관으로 들어와 ‘문 벽’(대문 문설주)곁에 서고, 제사장들이 그의 번제와 감사제를 드리는 동안 대문 문지방에서 엎드려 경배합니다. 제후가 다시 밖으로 나간 후에도 대문은 저녁때까지 닫지 말아야 합니다. 백성은 동문 입구에서 여호와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제후는 안뜰 바로 앞 동문의 문설주에서 안뜰의 제사를 보고, 백성은 동문 입구에서 오십 암마 길이의 통로를 통해 안뜰의 제사를 봅니다.

4-7절은 안식일과 초하룻날에 여호와께 드릴 번제물에 관한 규정입니다(참조, 민 28:9-15). 제후는 안식일을 위한 번제물로 어린 양 여섯 마리와 숫양 한 마리를, 소제로는 숫양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바를, 어린 양에는 원하는 만큼 드리는데 밀가루 한 에바에 기름 한 힌을 곁들입니다. 초하룻날에는 번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와 어린 양 여섯 마리와 숫양 한 마리를, 소제로는 수송아지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바, 숫양 한 마리에도 밀가루 한 에바, 어린 양에는 힘이 닿는 대로 드리는데, 한 에바에 기름 한 힌을 곁들입니다.

 

(5) 성전 출입 방법(46:8-10)

 

8-10절은 절기 때 제후와 백성의 바깥 출입에 관한 규정입니다. 제후는 안뜰 동문 현관으로 들어와서 대문 문지방에서 예배드리고 다시 들어왔던 길로 돌아나가야 합니다. 백성을 대표하는 제후이기에 안뜰로 열린 문설주까지는 허락되지만, 그 역시 평신도이기에 안뜰을 지나갈 수는 없습니다. 백성의 경우는 현실적인 이유에서 출입이 통제됩니다. 바깥뜰 북문으로 들어와서 경배한 사람은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와서 경배한 사람은 북문으로 나갑니다. 절기를 지내려 많은 사람이 성전을 찾기에 백성은 행렬을 지어 성전에 들어가고 정해진 길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이 점에서는 제후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도 백성이 들어올 때 함께 들어오고 그들이 나갈 때 함께 나갑니다. 새 성전의 제의는 제후에게 최소한의 역할만 맡깁니다(45:13-17; 46:4-7). 그는 예배에 참여하는 자이지, 예배를 주관하는 자가 아닙니다.

 

(6) 소제(46:11)

 

이미 45:24과 46:5,7에 언급된 소제에 관한 규정의 반복입니다.

 

(7) 제후의 자원제(46:12)

 

12절은 제후가 사적으로 드리는 번제와 감사제와 관련한 규정입니다. 제후가 자원 예물을 드릴 때는 동문을 열어주고, 그가 안식일에 하듯이 번제와 감사제를 드리고 나간 후에 대문을 닫습니다.

 

(8) 매일 드리는 제사(46:13-15)

 

13-15절은 매일 드리는 번제에 관한 규정입니다(참조, 출 29:38-40; 민 28:36-38). 아침마다 번제물로 일 년 된 어린 양 한 마리를, 소제로는 밀가루 육분의 일 에바와 그 위에 뿌릴 기름 삼분의 일 힌을 드려야 합니다.

 

제후의 상속 재산(46:16-18)

성전은 아무리 권력 있는 자라도 들어올 수 없었는데, 이는 성전의 거룩성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성전인 우리 공동체도 세속적인 관심사나 이해관계에 따라 휘둘리지 않고, 오직 말씀이 중심에 자리 잡는 거룩하고 경건한 주의 몸이 되게 해야 합니다.

 

16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군주가 만일 한 아들에게 선물을 준즉 그의 기업이 되어 그 자손에게 속하나니 이는 그 기업을 이어 받음이어니와 17군주가 만일 그 기업을 한 종에게 선물로 준즉 그 종에게 속하여 희년까지 이르고 그 후에는 군주에게로 돌아갈 것이니 군주의 기업은 그 아들이 이어 받을 것임이라 18군주는 백성의 기업을 빼앗아 그 산업에서 쫓아내지 못할지니 군주가 자기 아들에게 기업으로 줄 것은 자기 산업으로만 할 것임이라 백성이 각각 그 산업을 떠나 흩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16-18)

 

제후에게는 거룩한 구역과 성읍 소유지의 좌우편에 있는 땅이 주어지는데(45:7), 이 땅은 그의 상속 재산으로 다른 집안에는 넘길 수 없고, 자기 집안 안에서만 상속이 가능합니다. 제후가 자기 아들 가운데 하나에게 선물로 주었을 경우, 그 땅은 그의 상속 재산이 되어 그의 후손들의 소유가 됩니다. 제후가 자기 상속 재산의 일부를 그의 신하에게 선물로 주었을 경우에는 희년까지만 그 신하의 소유가 되고 그 후에는 다시 제후에게로 돌아갑니다. 제후의 상속 재산이 보호를 받듯이 백성의 상속 재산도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제후는 백성을 그들의 소유지에서 쫓아내고 그들의 상속 재산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제후는 자기 소유지만 아들들에게 상속할 수 있고, 그의 상속 재산은 그의 아들들만 차지할 수 있습니다.

 

성전 부엌(46:19-24)

세속적인 가치와 문화에 동화하지 않고 세상의 우상에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입니다. 철저한 거룩과 철저한 예배만이 자신의 삶의 자리를 거룩한 땅이 되게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와 쉼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9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 곁 통행구를 통하여 북쪽을 향한 제사장의 거룩한 방에 들어가시니 그 방 뒤 서쪽에 한 처소가 있더라 20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는 제사장이 속건제와 속죄제 희생제물을 삶으며 소제 제물을 구울 처소니 그들이 이 성물을 가지고 바깥뜰에 나가면 백성을 거룩하게 할까 함이니라 하시고 21나를 데리고 바깥뜰로 나가서 나를 뜰 네 구석을 지나가게 하시는데 본즉 그 뜰 매 구석에 또 뜰이 있는데 22뜰의 네 구석 안에는 집이 있으니 길이는 마흔 척이요 너비는 서른 척이라 구석의 네 뜰이 같은 크기며 23그 작은 네 뜰 사방으로 돌아가며 부엌이 있고 그 사방 부엌에 삶는 기구가 설비되었는데 24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는 삶는 부엌이니 성전에서 수종드는 자가 백성의 제물을 여기서 삶을 것이니라 하시더라(19-24)

 

성전 구역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맡겨진 역할이 서로 구별되듯이(44:9-16) 희생제물을 삶는 그들의 부엌도 구별됩니다. 안내자의 인도로 대문 곁에 있는 입구를 통해 북쪽에 있는 제사장들의 거룩한 방들로 간 에스겔은 서쪽 끝에 있는 한 장소를 봅니다. 그곳은 제사장들이 속건제물과 속죄제물을 삶고 소제물을 굽는 장소로, 성물을 가지고 바깥뜰로 나가는 일이 없게 하려고 마련됐습니다(19-20).

여호와께 드린 제물은 거룩한 제물로, 자격이 없는 백성이 접촉할 경우 치명적 힘으로 작용합니다. 제한된 구역 안에서 음식을 준비해 성물의 거룩함이 훼손당하거나 백성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레위기 6:26에 의하면 제사장은 속죄제 제물의 고기를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었습니다. 곧 회막의 뜰 안이면 어느 곳이나 상관이 없었기에 일반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에스겔의 새 성전에서는 제사장을 위해 특별히 지정된 방에서 준비하고 먹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 거룩함이 전이될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됩니다. 또 바깥뜰 네 구석에는 ‘성전에서 수종드는 자’(레위인)가 백성의 제물을 삶는 부엌이 있었습니다. 길이가 마흔 암마, 너비가 서른 암마 되는 뜰로, 돌담으로 둘려 있고 담 아래로는 돌아가면서 화덕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에스겔의 청사진에 따르면, 백성이 희생제물을 바깥뜰로 면한 안뜰 북문 입구로 가져오면, 레위인이 이를 받아 북문의 입구에 있는 방에서 제물로 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참조, 40:38-43), 백성의 몫을 바깥뜰 네 모퉁이에 있는 부엌으로 가져가 삶아서 백성에게 주고, 백성은 레위인이 삶아준 고기를 바깥뜰 담에 있는 방에서 먹습니다.


성전에서의 제사장과 백성의 예배 방식과 절기를 규정함으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성전에서의 의무를 명확히 하여 그들의 거룩함과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이 규례는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절기와 희생제물의 규정은 공동체의 연합과 경건한 삶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본문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지를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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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45-01)


거룩한 것을 구별하라

에스겔 45장 1-17절


군대가 좋은 이유는 선택의 고민이 줄어듭니다. 몇 시에 일어날까, 어떤 옷과 신을 착용할까, 그리고 어떤 음식을 먹을까 심지어 누굴 만날 것까지도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군대에서 다 정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단이나 신천지에 왜 빠집니까? 자기가 선택하거나 결정 안 해도 됩니다. 모든 것을 교주가 결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갈등하고 불안한 이들에게 단비와 같습니다. 그래서 이단자들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에 교주의 종이 되어 가진 것 다 빼앗기고 빠져 나올 수 없는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 40:5-42:20에서 새 성전의 모형을 상세하게 전해준 에스겔이 45:1-8에서는 새 성전의 위치와 그 주변에 관한 여호와의 가르침을 줍니다. 새 성전의 구조가 여호와의 거룩함을 지키는 데 집중된 것처럼 성전 주변의 땅 분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 구역을 제사장의 거룩한 지역 가운데 위치시키고, 성전의 거룩함을 훼손시킬 수 있는 성읍과 제후의 땅은 성전 구역에서 멀리 떼어놓습니다.

 

중앙에 있는 땅의 분할(1-8)

이스라엘 삶의 중심에는 항상 하나님께서 계셔야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삶의 터전도 거룩한 성소가 가운데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넓은 땅을 차지하는 것보다, 또 외부 대적들과의 싸움보다 ‘거룩한 나라, 거룩한 백성’의 정체를 지키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이 더 중요했습니다. 규모와 힘을 숭배하는 세상에서 경건과 성결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힘쓰고 있는지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1너희는 제비 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으로 삼을 때에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지니 그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는 만 척이라 그 구역 안 전부가 거룩하리라 2그 중에서 성소에 속할 땅은 길이가 오백 척이요 너비가 오백 척이니 네모가 반듯하며 그 외에 사방 쉰 척으로 전원이 되게 하되 3이 측량한 가운데에서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을 너비는 만 척을 측량하고 그 안에 성소를 둘지니 지극히 거룩한 곳이요 4그 곳은 성소에서 수종드는 제사장들 곧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수종드는 자들에게 주는 거룩한 땅이니 그들이 집을 지을 땅이며 성소를 위한 거룩한 곳이라 5또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을 너비는 만 척을 측량하여 성전에서 수종드는 레위 사람에게 돌려 그들의 거주지를 삼아 마을 스물을 세우게 하고 6구별한 거룩한 구역 옆에 너비는 오천 척을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을 측량하여 성읍의 기지로 삼아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돌리고 7드린 거룩한 구역과 성읍의 기지 된 땅의 좌우편 곧 드린 거룩한 구역의 옆과 성읍의 기지 옆의 땅을 왕에게 돌리되 서쪽으로 향하여 서쪽 국경까지와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국경까지니 그 길이가 구역 하나와 서로 같을지니라 8이 땅을 왕에게 돌려 이스라엘 가운데에 기업으로 삼게 하면 나의 왕들이 다시는 내 백성을 압제하지 아니하리라 그 나머지 땅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그 지파대로 줄지니라(1-8)

 

에스겔은 40:5부터는 새 성전의 모형을 전해 주었습니다. 본 45:1부터는 새 성전의 위치와 그 주변에 관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새 성전의 구조가 여호와의 거룩함을 지키는데 집중된 것처럼, 성전 주변에 땅 분배도 같은 목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전을 제사장의 지역 한 가운데 위치시키고 성전에 거룩함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성읍이나 제후의 땅은 성전 구역과 멀리 뛰어 놓고 있습니다. 새 성전에 대한 에스겔의 환상은 성소의 거룩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이 자리한 예루살렘은 원래 여부스 족의 성이었는데(16:3), 다윗이 자기 부하들을 데리고 가서 점령해 ‘다윗 성’으로 만들었고(삼하 5:6-7), 그의 아들 솔로몬은 다윗 집안의 소유가 된 예루살렘에 왕궁과 성전을 지었습니다(왕상 6:1-7:12). 솔로몬 성전은 다윗 집안의 소유지인 예루살렘에, 다윗 집안에 의해 왕궁의 부속 건물로 지어졌기에(43:8) 처음부터 예루살렘 왕궁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왕정 시대의 쓰라린 경험이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조치가 취해집니다. 성전 구역을 중심으로 하는 거룩한 땅과 성읍의 소유지와 제후의 땅이 완전히 구분됩니다.

 

(1) 거룩한 구역의 분할(1-5)

 

1절의 ‘너희는 제비 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으로 삼을 때에’는 땅이 이스라엘의 옛 전통에 따라 분배될 것을 시사합니다(참조. 47:22; 48:29). 출애굽의 이스라엘은 제비를 뽑아 지파별로 가나안 땅을 나누어 가졌습니다(참조. 민 26:55-56; 33:54; 수 18:6,8,10). 고대적 사고에 따르면 제비뽑기는 신의 의지가 담긴 결정이었기에, 제비뽑기에 의한 땅 분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신의 뜻대로 분배함을 함축합니다. 물론 에스겔은 제비뽑기를 문자적으로 따르지 않고 비유적으로 활용합니다. 48:1-7, 23-28에 의하면 지파들의 기업은 제비뽑기로 결정되지 않고, 여호와께서 각 지파의 기업을 정해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직접 지파들의 기업을 결정하셨기에, 왕정 시대의 경우처럼 강한 지파에 의해 약한 지파의 기업이 위협을 받는 일이 없어집니다. 제비뽑기로 땅을 기업으로 나누어 받을 때, 이스라엘은 길이가 이만 오천 암마, 너비가 이만 암마 되는 구역을 따로 떼어 여호와께 ‘예물’로 드려야 합니다.

여호와께 드려진 ‘거제’가 그분께 속하는 것처럼 이 구역은 ‘거룩한 땅’으로 여호와께 속합니다. 거룩한 구역으로 먼저 성소가 언급됩니다. 그 가운데서 길이와 너비가 각각 오백 암마 되는 사방으로 네모반듯한 땅이 성소를 위한 것이고, 그 둘레에는 사방으로 오십 암마의 ‘전원’을 두어야 합니다(2;42:16-20a). ‘전원’으로 옮긴 ‘미그라슈’는 원래 성에 속한 성벽 밖의 방목지를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성전 구역을 주변으로부터 분리하는 울타리의 역할이 맡겨진 것 같습니다. 거룩한 성전 구역이 속된 것으로 더러워지지 않게 담과 전원에 의해 이중으로 보호를 받습니다(42:20b; 43:12).

다음으로는 길이가 이만오천 암마, 너비가 만 암마 되는 땅이 ‘성소에서 수종 드는 제사장들 곧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수종드는 자들에게 주는 거룩한 땅’으로 측량됩니다(3-4). 이 구역에는 성소, 곧 ‘지극히 거룩한 곳’이 자리를 잡고, 안뜰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거기에 집을 짓고 생활합니다. 거룩한 곳인 제사장의 땅이 바깥에서 가장 거룩한 곳인 성소를 둘러싸고 그 거룩함이 훼손당하지 않게 보호합니다. 거룩한 구역의 나머지 땅은 성전에서 수종 드는 레위 사람에게 주어집니다(5). 제사장 구역과 동일한 면적으로, 길이가 이만 암마, 너비가 만 암마의 땅이 레위인의 거주지가 됩니다. 레위인은 그 안에 성읍을 짓고 삽니다. 에스겔은 흩어져 있던 48개의 레위인의 성읍(민 35:1-8)을 모두 한 지역에 모읍니다.

 

(2) 성읍의 소유자(6)

 

거룩한 구역과 나란히 그 아래로 길이가 이만 오천 암마, 너비가 오천 암마 되는 땅이 ‘성읍의 기지’로 정해집니다(6). 제사장 구역과 레위인 구역에 비해 면적이 반으로 줄어들고, ‘속된 땅’(48:15)으로 ‘거룩한 땅’ 밖에 위치합니다. 거룩함과 중요도에서 성읍의 소유지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소유지와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돌리고’의 의미는 모호합니다. 절기에 올라온 사람들의 숙박을 위해서 또는 지파들의 대표가 상주할 수 있도록 성읍이 마련된 것 같습니다. 성읍의 이름은 달리 언급하지 않습니다. 환상을 마감하는 48:35은 ‘그 날 후에는’ 성읍의 이름이 ‘여호와 삼마’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

 

(3) 제후의 땅(7-8)

 

거룩한 구역과 성읍 소유지 좌우편의 땅은 제후에게 주어집니다(7). 다시는 여호와의 백성을 압제하거나 그들의 땅을 빼앗지 않게 제후에게 넓은 땅이 기업으로 주어지기에, 이스라엘은 땅을 빼앗기는 일이 없이 지파에 따라 나눠준 땅에서 평안히 살게 됩니다(8).

 

제후에게 주는 경고(9-12)

통치자들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땅에 만족해야 합니다. 포악과 겁탈로 지체의 땅을 빼앗아서는 안 되고, 정의와 공의를 버리고 백성을 속여 이득을 편취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공정한 저울과 에바와 밧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지도자들이 솔선하여 법을 지키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서부터 정의와 공의가 실천되게 하야 합니다.

 

9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아 너희에게 만족하니라 너희는 포악과 겁탈을 제거하여 버리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내 백성에게 속여 빼앗는 것을 그칠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너희는 공정한 저울과 공정한 에바와 공정한 밧을 쓸지니 11에바와 밧은 그 용량을 동일하게 하되 호멜의 용량을 따라 밧은 십분의 일 호멜을 담게 하고 에바도 십분의 일 호멜을 담게 할 것이며 12세겔은 이십 게라니 이십 세겔과 이십오 세겔과 십오 세겔로 너희 마네가 되게 하라(9-12)

 

마땅히 드릴 예물의 종류와 양이 정해졌습니다. 군주는 이스라엘이 절기마다 하나님께 제대로 제사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백성에게서 받은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백성에게서 받은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1) 정의와 공의의 실천(9)

 

제후들은 이미 충분히 많은 악을 저질렀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포악’(‘폭력과 강압’)으로 여호와의 양 떼를 억압하다가 ‘모든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었습니다(34:4-5). 이제는 여호와의 백성을 수탈하는 일을 그쳐야 합니다. 왕정 시대를 파국으로 내몰았던 ‘포악과 겁탈’을 제거해버리고 ‘정의와 공의’를 실천해야 합니다(9). 정의와 공의에 따른 통치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왕들에게 요구하신 최고의 덕목이었지만, 이들은 ‘불의’(‘정의가 아닌 것’)와 ‘부정’(‘공의가 아닌 것’)으로 통치했습니다(렘 22:13). 에스겔에 앞서 이사야(9:7; 11:4-5; 16:5; 32:1)와 예레미야(23:5)도 구원 시대에는 메시아적 통치자가 정의와 공의로 다스릴 것을 약속했습니다. 바른 도량 용기의 사용이 정의와 공의의 구체적 실천으로 언급됩니다.

 

(2) 공정한 도량 용기(10-12)

 

공의로운 통치자들은 ‘공정한 저울과 공정한 에바와 공정한 밧’의 사용을 보장해야 합니다(10; 레 19:36; 잠 11:1; 16:11). 왕정 시대의 예언자들은 거듭 도량 용기의 부정행위를 고발했습니다. 아모스(8:5)는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인다고, 호세아(12:7)는 에브라임이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 상인이 됐다고, 미가(6:10-11)는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와 ‘부정한 저울’과 ‘거짓 저울추’를 사용한다고 고발했습니다. 부당한 이윤을 얻기 위해 저울과 에바와 밧을 임의로 변경하는 행위는 이웃을 속이고 여호와의 공의를 거역하는 악이었습니다.

제후는 공정한 도량 용기 사용을 통해 공정한 상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공의를 실천이야 합니다. 에바와 밧은 용량이 같아야 합니다. 호멜을 기준으로 해서 한 에바도 십분의 일 호멜이고, 한 밧 십분의 일 호멜이 됩니다(11). 에바는 곡식과 가와 같은 마른 것을 재는 단위이고, 밧은 물과 포도주와 기름 같은 액체를 재는 단위로, 각각 40리터가량 됩니다. 한 세겔은 이십 게라이고, ‘이십 세겔과 이십오 세겔과 십오 세겔’(=육십 세겔)은 한 마네가 됩니다(12). ‘세겔’은 무게를 재는 단위로, 한 세겔이 대략 11.5그램이기에 한 마네는 대략 685그램이 됩니다.

 

제물에 관한 규정(13-17)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종류의 권력을 갖고 있든지 간에, 또 세상은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든지 간에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을 합당히 예배하는 일에 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그 권력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모든 물질 또한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13너희가 마땅히 드릴 예물은 이러하니 밀 한 호멜에서는 육분의 일 에바를 드리고 보리 한 호멜에서도 육분의 일 에바를 드리며 14기름은 정한 규례대로 한 고르에서 십분의 일 밧을 드릴지니 기름의 밧으로 말하면 한 고르는 십 밧 곧 한 호멜이며 (십 밧은 한 호멜이라) 15또 이스라엘의 윤택한 초장의 가축 떼 이백 마리에서는 어린 양 한 마리를 드릴 것이라 백성을 속죄하기 위하여 이것들을 소제와 번제와 감사 제물로 삼을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6이 땅 모든 백성은 이 예물을 이스라엘의 군주에게 드리고 17군주의 본분은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명절과 초하루와 안식일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정한 명절에 갖추는 것이니 이스라엘 족속을 속죄하기 위하여 이 속죄제와 소제와 번제와 감사 제물을 갖출지니라(13-17)

 

백성에게 성전 제의를 위한 일종의 종교세를 요구할 권리가 제후에게 주어집니다. 제후는 제의에 사용할 제물을 백성에게서 받아 전해줍니다. 새 성전의 제의는 제후의 손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왕정 시대에는 다윗 왕조가 예루살렘 성전의 후원자 역할을 맡았는데, 새 성전에서 제후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백성이 제사를 위해 제후에게 바쳐야 할 예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밀은 한 호멜마다 육분의 일 에바(전체의 1.7%)를, 보리도 한 호멜마다 육분의 일 에바(전체의 1.7%)를 드려야 합니다(13). 기름은 한 고르마다 십분의 일밧(전체의 1%)을 바쳐야 하는데, 한 고르는 십 밧으로 한 호멜과 같습니다(14). 가축 떼에서는 이백 마리양 떼마다 한 마리씩(전체의 0,5%) 바쳐야 합니다(15a). 이것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속죄하기 위해 드리는 ‘소제와 번제와 감사 제물’이 됩니다(15b). ‘이 땅 모든 백성’이 예물을 이스라엘의 제후에게 드리고, 제후는 ‘명절과 초하루와 안식일’, 곧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정한 명절’의 ‘번제와 소제와 전제’에 책임을 집니다(16-17). 백성이 공적 예배에 필요한 예물을 마련하고, 제후는 이 예물을 정해진 때에 맞춰 희생제물로 사용할 수 있게 전달합니다.


새 성전에서의 제사와 예배의 규례를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장에서는 땅의 분배와 제사장, 레위인, 백성을 위한 헌물의 규정이 제시되어, 공동체의 책임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몫을 통해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배하도록 하십니다. 또한, 이러한 규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하고, 공동체의 화합을 이루는 기초가 됩니다. 결국, 이 본문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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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44-01)


제사장 직무를 맡은 자의 태도

에스겔 44장 1-31절


성전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부정에 물들었기 때문에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따라서 성전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예배의 회복이 필수적입니다. 에스겔에게 주신 말씀들은 성전 앞에서의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예배의 기초를 점검해야 합니다. 예배가 하나님께 온전하고 거룩하게 드려져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진정한 회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시작됩니다.

 

  • 성전 밖 바깥들의 동문으로 간 에스겔은 그 문이 잠겨있는 것을 봅니다. 동문은 여호와께서 돌아오실 때 이용하신 문으로 항상 잠가두어야 합니다. 누구도 바깥뜰의 동물을 통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동문의 폐쇄는 다른 한편으로는 여호와께서 다시는 성전을 떠나지 않으실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구원 시대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영원히 함께 계십니다.

 

폐쇄된 동문(1-3)

성전인 성도 안에, 교회 안에 주께서 영원히 거하시겠다는 이 약속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지만 하나님을 영접했는데도 불구하고 인격과 삶의 변화는 없고 형식적인 종교 의식만 남은 성전은 여전히 인정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는 거룩한 예배하는 곳만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이 될 것입니다.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의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혔더라 2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아무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지니라 3왕은 왕인 까닭에 안 길로 이 문 현관으로 들어와서 거기에 앉아서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그 길로 나갈 것이니라(1-3)

 

에스겔에게 성전 바깥 뜰 동문을 항상 닫아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하나님께서 임하신 곳이기 때문에 그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성전 동문을 닫아두어야 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성전으로 돌아오실 때 여호와께서 동문을 이용하셨기에(43:4) 누구도 동문을 통해 들어올 수 없습니다. 동문의 폐쇄는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신 여호와께서 주신 약속 ‘내가 그들 가운데 영원히 살리라’(43:9)의 상징적 행위이기도 합니다. 주전 587년 예루살렘 성전을 심판하고 떠나셨던 여호와께서 다시는 떠나지 않으시고 새 성전에서 언제나 백성과 함께하십니다. 백성을 대표하는 제후에게는 일부 특권이 허락됩니다. 제후는 바깥뜰의 동문 현관에 앉아 제사를 드리고 난 후에 함께 나누는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물론 동문 출입은 그에게도 금지되기에 그는 다른 문을 통해 들어와서 바깥뜰을 가로질러 동문 현관으로 가야 합니다.

둘째 회복된 공동체를 통치하는 왕은 바깥뜰에서 닫친 동문의 현관으로 들어와 제의의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이 왕은 에스겔 44:24,37:24에서 다윗의 후손을 지칭하는 왕과 동일한 인물로 볼 경우 다윗의 후손이 굳게 닫친 동문에 앉아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가 여호와의 임재를 보장하고 확증한다는 의미를 전달하게 됩니다. 따라서 동문과 관련된 규레는 여호와의 영원한 임재를 확증하는 역할을 합니다.

 

백성과 레위인과 제사장(4-16)

사명을 맡은 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신실함과 충성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사독 계열의 자손들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상 앞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맡겨진 사명에 성실히 임하고 있습니까?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점은 무엇입니까?

 

4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을 통하여 성전 앞에 이르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한지라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 5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전심으로 주목하여 내가 네게 말하는 바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귀로 듣고 또 성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주목하고 6너는 반역하는 자 곧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이 족하니라 7너희가 마음과 몸에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을 데려오고 내 떡과 기름과 피를 드릴 때에 그들로 내 성소 안에 있게 하여 내 성전을 더럽히므로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 외에 그들이 내 언약을 위반하게 하는 것이 되었으며 8너희가 내 성물의 직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내 성소에 사람을 두어 너희 직분을 대신 지키게 하였느니라 9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10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나를 떠날 때에 레위 사람도 그릇 행하여 그 우상을 따라 나를 멀리 떠났으니 그 죄악을 담당하리라 11그러나 그들이 내 성소에서 수종 들어 성전 문을 맡을 것이며 성전에서 수종들어 백성의 번제의 희생물과 다른 희생물을 잡아 백성 앞에 서서 수종들게 되리라 12그들이 전에 백성을 위하여 그 우상 앞에서 수종들어 이스라엘 족속이 죄악에 걸려 넘어지게 하였으므로 내가 내 손을 들어 쳐서 그들이 그 죄악을 담당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그들이 내게 가까이 나아와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며 또 내 성물 곧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들이 자기의 수치와 그 행한 바 가증한 일을 담당하리라 14그러나 내가 그들을 세워 성전을 지키게 하고 성전에 모든 수종드는 일과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맡기리라 15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6그들이 내 성소에 들어오며 또 내 상에 가까이 나아와 내게 수종들어 내가 맡긴 직분을 지키되(4-16)

 

하나님께서 성전에 가득한 여호와의 영광을 다시 보이신 것은 성전과 관련하여 여호와의 임재의 중요성을 다시 상기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여호와의 임재에 합당한 성전 모형을 세밀히 살피고 성전의 모든 규례와 율법을 분명히 이해할 것을 설명하십니다.

 

(1) 도입부(4-5)

 

바깥들 동문 밖에 있다가 바깥뜰과 안뜰의 북문을 지나 성전 앞, 곧 성전과 제단 사이의 한 곳으로 간 에스겔은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한’ 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쓰러집니다(4; 43:3),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말씀을 주셨던 것처럼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와 성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에 관한 가르침을 주어 이스라엘 족속에게 확실하게 전하게 하십니다(5). 잊지 않고 지켜야 할 많은 규례와 율례 가운데 ‘성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에 관한 것은 성소의 거룩함 유지와 관련해 특히 중요했습니다. 자격이 있는 사람만 성전에 들어올 수 있게 문들에서 사람들의 출입을 살펴야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창문을 갖춘 문지기 방이 통로 좌우에 세 개씩 만들어집니다(40:10,16).

 

(2) 이스라엘 족속에 대한 책망(6-9)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별하여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기에 충분할 만큼 온갖 가증한 일을 행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왕정 시대의 성전을 되돌아보면서 이스라엘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해야 할 성소의 일을 ‘마음과 몸에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들과 함께 여호와의 성전을 더럽히고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성전 제의를 거부하지 않았지만, 이방인들로부터 구별된 자신들의 정체성은 포기한 것입니다. 이방인들로 성소가 더러워졌기에 여호와께 드리는 ‘떡과 기름과 피’도 더러워졌습니다. 이방인에 의해 성전이 더럽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근원적인 조치가 취해집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사는 이방인에게 전면적으로 성전 출입이 금지됩니다(9).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여호와에게 온전한 예배를 들려야 할 제사장으로서 직분을 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로 성전 직분을 감당하게 함으로 사실상 자신들에게 주어진 특권과 정체성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않는 이방인을 자처한 것입니다. 몸과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은 누구도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그 누구도 성전에 들어오지 못할 것임을 선언합니다. 소위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도 스스로 이방인이 된 자들은 결코 성전에 들어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서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이방인이랄 지라도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성전에 들어감을 넉넉히 얻게 될 것입니다.

 

(3) 레위인의 직무(10-14)

 

레위인의 직무와 관련한 말씀하기 전에, 그들이 과거 왕정 시대에 했던 잘못을 지적하십니다. 그들의 잘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더럽히고 여호와를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10) 배교할 때,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그릇된 행위에 동참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행한 잘못의 결과를 감당하게 될 것임을 선언하십니다. ‘백성을 위하여 그 우상 앞에서 수종들어 이스라엘 족속이 죄악에 걸려 넘어지게’(12)한 책임을 물어 레위인에게는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의 직분’과 ‘지성물’(‘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 42:13; 44:29)을 먹을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되고(13) 비교적 낮은 역할이 맡겨집니다(11,14).

11절은 레위인의 직무로 네 가지를 언급합니다. 첫째는 성전의 문을 지키는 일입니다. 자격이 있는 사람만 성전에 들어올 수 있게 감시하는 일로 성전의 거룩함을 지키는 데 매우 중요했습니다. 둘째는 성전에서 시중드는 일로, 성전의 바깥뜰을 지키는 일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셋째는 희생제물을 가져온 백성을 위하여 번제물과 희생제물의 짐승을 잡아주는 일입니다. 원래는 제물을 가져온 자가 담당했던 일입니다(레 1:5,11). 넷째로 ‘백성 앞에 서서 수종들게 되리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합니다. 희생제물과 관련해 레위인이 백성을 대신해 일할 것을 말하는데, 46:21-24에 의하면 바깥뜰의 네 모퉁이에 있는 부엌에서 백성의 제물을 삶는 일도 레위 인들이 담당합니다.

 

(4) 사독 제사장의 직무(15-16)

 

레위 자손들 중에서 사독 계열 레위인들만 여호와께 나아가 수종을 들며, 헌제물의 기름과 피를 여호와께 드리는 일을 감당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배교와 우상숭배를 범할 때, 그들은 여호와의 성소에서 그들의 직분을 충성스럽게 지켰기 때문입니다.

사독 자손들의 직무와 관련한 말씀입니다. 레위인은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할 때 같이 여호와를 떠나 그릇 행하였고,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여호와를 떠날 때 여호와의 성소의 직분을 지켰습니다. 여호와로부터 멀리 떠난 레위인은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와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고, 제사장들은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옵니다. 우상 앞에서 수종을 들었던 레위인은 백성 앞에 서서 수종을 들고, 제사장들은 여호와 앞에 서서 여호와께 수종을 듭니다. 레위인은 백성의 희생제물을 잡아 제사를 준비하고, 제사장들은 여호와께 ‘기름과 피’를 드립니다. 레위인은 성전 문을 맡고 성전에서 수종들고, 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가 제단(‘내 상’)에 가까이 와서 여호와께 수종을 듭니다.

 

제사장과 관련한 규정(17-31)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제 세상 앞에 제사장이 되어 스스로 거룩하게 지키고 세상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평생 복을 비는 자로 살아도 주님께서 먹여 살려주실 것을 믿으며 살아야 합니다. 제사장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입어서는 안 되는 것도 있고, 먹어서는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분하는 것은 자신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17그들이 안뜰 문에 들어올 때에나 안뜰 문과 성전 안에서 수종들 때에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 옷을 입을 것이니  18가는 베 관을 머리에 쓰며 가는 베 바지를 입고 땀이 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 것이며 19그들이 바깥뜰 백성에게로 나갈 때에는 수종드는 옷을 벗어 거룩한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을지니 이는 그 옷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할까 함이라 20그들은 또 머리털을 밀지도 말며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도 말고 그 머리털을 깎기만 할 것이며 21아무 제사장이든지 안뜰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이며 22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 들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족속의 처녀나 혹시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 들 것이며 23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24송사하는 일을 재판하되 내 규례대로 재판할 것이며 내 모든 정한 절기에는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이며 또 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며 25시체를 가까이 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못할 것이로되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시집 가지 아니한 자매를 위하여는 더럽힐 수 있으며 26이런 자는 스스로 정결하게 한 후에 칠 일을 더 지낼 것이요 27성소에서 수종들기 위해 안뜰과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속죄제를 드릴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8그들에게는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들에게 산업을 주지 말라 내가 그 산업이 됨이라 29그들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을지니 이스라엘 중에서 구별하여 드리는 물건을 다 그들에게 돌리며 30또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에게 네 집에 복이 내리도록 하게 하라 31새나 가축이 저절로 죽은 것이나 찢겨서 죽은 것은 다 제사장이 먹지 말 것이니라(17-31)

 

거룩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거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거룩하지 못한 자들은 절대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섬기는 자들, 즉 제사장에 대한 여러 가지 준비해야 할 자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제사장의 의복(17-19)

 

제사장의 의복에 관한 규정이 먼저 언급됩니다(17-19). 제사장이 감당한 사역에 거룩함을 강조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전 안뜰로 들어가려면 베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참조, 출 28:42-43; 레 6:3;16:4,23). 제사장이 머리에 쓰는 관이나 허리에 걸치는 속바지도 모두 베로 만들어야 합니다. 땀이 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안뜰에서 예식을 거행할 때는 양털로 된 옷을 입거나 띠를 둘러서는 안 됩니다. 안뜰에서 바깥뜰로 나갈 때는 예식 중에 입었던 옷을 벗어 거룩한 방에 두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예식 때 입는 제사장의 옷은 일반 사람들이 접촉할 수 없게 안뜰에서만 입어야 합니다.

 

(2) 제사장의 모습(20-22)

 

제사장은 신체 또한 거룩함에 합당한 요건을 갖추어야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세의 율법과 같이 성전법에는 제사장이 머리를 밀어서도(참조. 레 21:5) 길게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서도 안 되고, 잘 손질해야 합니다(20). 긴 머리는 상징적으로 애도를 나타내며, 이교도의 우상숭배자들이 머리를 빌었던 것과 관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안뜰로 들어가는 제사장은 포도주를 마셔서는 안 됩니다(21; 참조. 레 10:9). 제사장이 직무를 수행하는 중에는 술에 취해 자신을 통제할 수 없거나 실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음주가 금지됩니다.

제사장에 대한 결혼 기준인데, 제사장은 그의 삶에서도 거룩한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그들은 과부나 이혼한 여자와 그리고 이방 여인과도 결혼할 수 없고, 오직 이스라엘 집안에 속한 처녀만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22: 참조, 레 21:7,13-15). 단, 제사장의 과부는 예외로, 제사장의 부인이었다가 과부가 된 여자는 아내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3) 제사장의 직무(23-27)

 

성전법은 제의를 집행하고 성전을 돌보는 것 외에 제사장들이 행할 직무를 규정합니다. 즉, 교육과 재판합니다. 제사장의 직무가 세 가지로 제시됩니다(23-34). 제사장의 가장 중요한 직무이자 특권에 해당하는 안뜰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일은 15-16절에서 언급됐기에 여기서는 생략된 것 같습니다. 첫째는 백성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백성이 성전의 거룩함을 훼손하지 않도록 거룩한 전과 속된 것(참조, 레 17-22장), 부정한 것과 정한 것(참조, 레 11-16장)을 분별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둘째는 재판관의 역할입니다. 소송이 일어나면 여호와의 규례에 따라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셋째는 여호와의 법도와 율례에 따라 모든 정한 절기를 준수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일입니다. 백성이 절기와 안식일을 지킬 수 있도록 이들을 가르치라고 말하지 않고, 제사장이 지킬 것을 말합니다. 안뜰에서 수종을 드는 제사장은 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은 죽은 자에게 가까이 가서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25-27). 직계 가족은 예외입니다. 제사장은 아버지나 어머니, 아들이나 딸, 형제나 시집가지 않은 누나를 위해서는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어도 됩니다(참조, 레 21:1-3). 시체를 접촉해 부정해진 제사장은 자신을 정결하게 한 후에도 칠 일을 더 지내야 하고(참조, 민 19:11-12), 수종 들기 위해 안뜰로 들어가는 날에 속죄제물을 드려야 합니다(참조 레 15:13-15).

 

(4) 제사장의 몫(28-31)

 

다음은 제사장의 몫, 기업에 관한 규정입니다. 제사장의 기업과 소유에 대한 규정은 제사장의 삶이 여호와께 속해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호와가 기업이 되신다는 것은 제사장들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함과 동시에 충성과 전적 헌신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성전법은 제사장들에게 여호와 외 어떤 기업이나 소유를 주지 말라고 엄격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제사장의 상속 재산이 되시기에, 그들에게는 어떤 소유지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대신 소제와 속죄제물과 속건제물, 여호와께 드린 모든 봉헌물, 각종 처음 익은 열매 가운데 가장 좋은 것(참조, 출 23:19)과 이스라엘이 바치는 모든 예물, 첫 밀가루가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집니다. 이것을 통해 제사장들의 생계가 유지되고 성전을 돌보는 데 필요한 재원이 확충됩니다. 백성들이 온전한 제사와 예물을 드림으로서 제사장의 생계와 성전이 유지될 때, 이것은 백성들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새나 가축가운데서 저절로 죽은 것이나 맹수에게 찢겨서 죽은 것은 어떤 것도 제물로 드리거나 먹어서는 안 됩니다(31; 4:14; 참조. 출 22:31; 레 22:8-9). 불결한 것으로 간주 되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문을 통해 들어오는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제사장들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합니다. 이 장에서는 제사장들이 거룩함을 유지하고, 성전에서의 예배를 올바르게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전의 규례를 주시며, 성결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또한, 제사장들은 백성을 위해 중재하는 역할을 맡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사명을 지닙니다. 궁극적으로, 이 본문은 진정한 예배와 거룩한 삶이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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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43-01)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된 성전

에스겔 43장 1-27절


 

우리는 예배당에 나오면서 자신이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배는 우리를 거룩한 제물로 온전히 드려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해야 합니다. 성전과 예배에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면 그곳을 화려하게 종교적인 장식된 곳이라 할지라도 성전일 수 없고, 아름답고 은혜로운 장소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안 계신 곳에 예배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중심은 하나님일 때, 거룩함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 성전 지대를 다 불러보고 바깥뜰 동문으로 나와 담을 측량한 후에 다시 동문으로 인도를 받은 에스겔은 놀라운 광경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성전을 파괴하고 떠나셨던 여호와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와서 동문을 통해 성전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환상 안에서 새 성전이 완공됐음을 전재합니다. 당신 성소를 영원토록 이스라엘 가운데 세우시겠다는 약속(37:26)이 성취됩니다.

 

세 성전으로 돌아오신 여호와(1-12)

성전은 하나님 보좌의 처소요, 하나님의 발을 두는 처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초월적인 존재시기에 성전에 매여 있지 않으시나,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성전에 거하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떠난 예배당은 하나님의 전이 아닙니다. 성도가 사모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입니다.

 

1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쪽을 향한 문이라 2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3그 모양이 내가 본 환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환상 같고 그발 강 가에서 보던 환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4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5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 6성전에서 내게 하는 말을 내가 듣고 있을 때에 어떤 사람이 내 곁에 서 있더라 7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에 영원히 있을 곳이라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들의 왕들이 음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8그들이 그 문지방을 내 문지방 곁에 두며 그 문설주를 내 문설주 곁에 두어서 그들과 나 사이에 겨우 한 담이 막히게 하였고 또 그 행하는 가증한 일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노하여 멸망시켰거니와 9이제는 그들이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거하여 버려야 할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 가운데에 영원히 살리라 10인자야 너는 이 성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이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11만일 그들이 자기들이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성전의 제도와 구조와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12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산 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1-12)

 

본문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으로 돌아오는 것을 봅니다. 전에 하나님께서 왜 성전을 떠나셨던 것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에스겔 10:18-19,11:23-25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전의 파괴보다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떠나신 것을 가슴 아파해야 합니다. 이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성전을 돌아오신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1) 환상의 장소 동문(1)

 

여호와께서 자신의 집인 성전을 심판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전 동쪽 산으로 떠나셨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셨던 경로로 다시 돌아오십니다. 동문을 통해 성전 지대 밖으로 나간 에스겔은 동쪽으로부터 와서 바깥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시는 여호와의 영광을 보고 엎드립니다(1). 예루살렘 성전과 성을 심판하시고 성전 동문을 통해(10:19) 성읍 동쪽 산으로(11:23) 떠나셨던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날 때 밟으셨던 길을 그대로 되밟으며 돌아오십니다.

 

(2) 돌아오는 여호와의 영광(2-5)

 

여호와의 영광이 ‘많은 물 소리’처럼(참조. 1:24) 성전으로 들어오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났습니다(2). 그발 강가에서 압도적인 여호와의 영광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쓰러졌던(1:28) 에스겔은 그 영광 앞에 압도되어 얼굴을 땅에 대고 쓰러집니다(3). 세 개의 대환상이 유기적으로 연결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동쪽으로 난 문을 지나 성전으로 들어가신 후에(4) 한 ‘영’(루아흐)이 에스겔을 들어 올려 안뜰로 데려가고(2:2; 3:12; 8:3; 11:1,24), 에스겔은 ‘성전’이 여호와의 영광으로 가득 찬 것을 봅니다(5; 참조. 출애굽기 40:34-38; 열왕기상 8:10-11). 이스라엘과 관계를 끊고 떠나신 여호와께서 다시 당신의 백성의 하나님으로 돌아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부패와 불의가 초래하였던 심판과 저주의 시대가 끝나고 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구원과 축복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3) 경고와 약속의 말씀(6-9)

 

새 성전의 지성소로 들어가신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성소의 정결과 관련한 가르침을 주십니다(6-9). 제의적 정결이 요청되는 이유는 성전이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에 영원히 있을 곳’(7a)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에서는 지성소에 있는 두 그룹의 편 날개가 보좌를, 그 아래 놓인 언약궤가 발판을 상징했습니다. 성전이 여호와의 보좌와 발판이 되면서 지성소의 거룩함이 성전 전체로 확대됩니다. 성전에 여호와께서 거하시기에 부정하게 하는 모든 것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분의 거룩한 이름이 정결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다윗 왕조가 건축한 왕궁의 부속 건물이었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문지방을 ‘내’ 문지방 옆에 두고 ‘자기들의’ 문설주를 ‘내 문설주 옆에 두어 나'와 '자기들 사이에 담 하나만 두었다”(8a). 태생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왕의 정치적-세속적 결정과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또 왕들의 묘지가 왕궁의 부속지 다윗 성에 마련됐기에(7b; 열왕기상 2:10;11:43) 성전의 거룩함이 부정을 타기 쉬웠습니다. 왕궁의 ‘음행’과 ‘가증한 일’이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기에 성전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진노하여 그들을 멸망시켜버리셨습니다(8b). ‘내가 그들 가운데 영원히 살리라’(9; 37:26, 28)는 여호와의 약속이 지켜지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새 성전에서 멀리 치워버려야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힐 수 있는 것은, 왕궁뿐만 아니라 제의적 윤리적으로 가증한 것까지 모두 멀리해야 합니다.

 

(4) 성전 환상의 결부(10-12)

 

두 가지 목적에서 에스겔은 ‘성전의 구조와 배치와 나가는 곳과 들어오는 곳’ 그리고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구조와 그 모든 율법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르쳐주어야 합니다(10-13). 먼저는 회고적으로, 이스라엘이 성전을 더럽힌 자신들의 죄악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왕정시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자신들의 죄를 수치스럽게 보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다음은 미래적으로, 성전의 거룩함을 훼손하지 않고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새 성전에 영원히 거하실 수 있도록 에스겔이 전해주는 ‘성전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현재의 문맥에서 ‘성전의 법’은 43:13-46:24까지도 포함합니다.

 

번제단의 형태(13-17)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성전이 파괴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과 성전을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회복된 성전에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시기 위해서는 그들이 영적 음란과 부정함에서 떠나야 합니다. 제사를 드릴 때 가장 중요한 장소는 번제단입니다. 번제단은 죄 사함을 받는 곳으로, 나의 죄를 대신할 희생 제물을 올려놓는 곳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제사에 하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합니다.

 

13제단의 크기는 이러하니라 한 자는 팔꿈치에서부터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것이라 제단 밑받침의 높이는 한 척이요 그 사방 가장자리의 너비는 한 척이며 그 가로 둘린 턱의 너비는 한 뼘이니 이는 제단 밑받침이요 14이 땅에 닿은 밑받침 면에서 아래층의 높이는 두 척이요 그 가장자리의 너비는 한 척이며 이 아래층 면에서 이 층의 높이는 네 척이요 그 가장자리의 너비는 한 척이며 15그 번제단 위층의 높이는 네 척이며 그 번제하는 바닥에서 솟은 뿔이 넷이며 16그 번제하는 바닥의 길이는 열두 척이요 너비도 열두 척이니 네모 반듯하고 17그 아래층의 길이는 열네 척이요 너비는 열네 척이니 네모 반듯하고 그 밑받침에 둘린 턱의 너비는 반 척이며 그 가장자리의 너비는 한 척이니라 그 층계는 동쪽을 향하게 할지니라(13-17)

 

본문에서는 제단의 크기와 구조에 대해 설명합니다. 제단은 길이와 너비가 정해져 있으며, 각 부분의 치수와 재료가 상세히 나열됩니다. 또한 제단의 꼭대기와 그 주위에 대한 규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은 제단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중요한 장소임을 강조합니다.

 

(1) 제단 주변의 도랑(13)

 

제단의 형태가 구체적으로 기술됩니다. 새 성전의 제단은 솔로몬 성전의 제단과 달리 삼 층으로 된 제단이었습니다. 제단의 아랫부분에서 윗부분으로 옮겨가면서 기술합니다. 제단 둘레에는 사방으로 도랑이 있었는데, 깊이와 너비가 각각 한 암마였고, 도랑의 가장자리에는 돌아가면서 턱이 있었는데 너비가 한 뼘(반 암마)이었습니다.

 

(2) 제단 각 층의 높이(14-15)

 

도랑과 그 턱은 제물의 피가 안뜰로 흐르지 않게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땅바닥에 있는 도랑을 기준으로 제단 아래층의 높이는 두 암마였고, 길이와 너비는 각각 열여섯 암마였습니다. 중간층은 높이가 네 암마, 길이와 너비가 각각 열네 암마였습니다.

 

(3) 제단 각 층의 길이와 너비(16-17a)

 

위층은 번제단의 화덕으로, 높이가 네 암마, 길이와 너비가 각각 열두 암마였고, 그 모서리에 뿔이 네 개 솟아있었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두 암마씩 크기가 짧아지면서, 아래층과 중간층에 사방으로 폭이 한 암마의 빈자리가 있었습니다. 번제단의 전체 높이는 도랑을 기준으로 열 암마(대략 5m), 지표면을 기준으로 아홉 암마(대략 4.5m)로, 올라가는 계단이 제단 동편에 있었습니다. 계단이 동편에 나 있었기에 제사장은 성소(의 여호와)를 바라보며 번제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4) 제단의 층계(17b)

 

8:16에서 에스겔은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스물다섯 명의 제사장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태양에게 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번제단의 구조를 통해 여호와께 등을 보이고 제사를 드리는 일이 처음부터 불가능해집니다.

 

번제단의 봉헌(18-27)

하나님께 예배드리려 나올 때, 무엇을 받으려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받으려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려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예배는 얼마나 받았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자신을 온전히 드렸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서 온전히 드리셨던 것처럼, 당신도 얼마나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1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 제단을 만드는 날에 그 위에 번제를 드리며 피를 뿌리는 규례는 이러하니라 19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를 가까이 하여 내게 수종드는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에게 너는 어린 수송아지 한 마리를 주어 속죄제물을 삼되 20네가 그 피를 가져다가 제단의 네 뿔과 아래층 네 모퉁이와 사방 가장자리에 발라 속죄하여 제단을 정결하게 하고 21그 속죄제물의 수송아지를 가져다가 성전의 정한 처소 곧 성소 밖에서 불사를지며 22다음 날에는 흠 없는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물로 삼아 드려서 그 제단을 정결하게 하기를 수송아지로 정결하게 함과 같이 하고 23정결하게 하기를 마친 후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떼 가운데에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드리되 24나 여호와 앞에 받들어다가 제사장은 그 위에 소금을 쳐서 나 여호와께 번제로 드릴 것이며 25칠 일 동안은 매일 염소 한 마리를 갖추어 속죄제물을 삼고 또 어린 수송아지 한 마리와 떼 가운데에서 숫양 한 마리를 흠 없는 것으로 갖출 것이며 26이같이 칠 일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려 정결하게 하며 드릴 것이요 27이 모든 날이 찬 후 제팔일과 그 다음에는 제사장이 제단 위에서 너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8-27)

 

성전으로 돌아오신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드릴 제사에 대해 순서를 설명합니다. 성전 제의는 제단을 중심으로 수행됩니다.

 

(1) 도입부(18)

 

‘놋 같이 빛난 사람’이 여호와를 대신하여 제단의 규례에 관한 여호와의 가르침을 에스겔에게 전달해주는 것 같습니다(18). 제단 봉헌은 첫째 날의 제사와 그 다음 날부터 이레 동안 계속되는 제사로 나뉩니다.

 

(2) 첫째 날(21)

 

19-21절은 첫째 날에 관한 가르침으로, 그 과정을 세 단계로 기술합니다. 먼저 에스겔은 속죄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를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에게 내어주어야 합니다(19). 레위 제사장들은 아마도 안뜰로 들어가는 북쪽 대문 현관에 있는 상(40:39)에서 제물을 잡았을 것입니다. 둘째 단계는 에스겔이 직접 수행합니다. 에스겔은 (아마도 제사장들이 잡은 속죄제물의) 피를 모아 ‘제단의 네 뿔과 아래층 네 모퉁이와 사방 가장자리’에 발라 제단을 깨끗하게 하고 속죄해야 합니다(20). 아직 사용하지도 않은, 따라서 부정해지지도 않은 제단을 왜 정화하고 속죄하는지는 달리 언급하지 않습니다. 셋째로, 에스겔은 수송아지의 잔해를 ‘성전의 정한 처소 곧 성소 밖’으로 가져가 불살라야 합니다(21). 여호와께서 성전으로 돌아오셨기에 성전은 거룩한 곳이 됐습니다.

 

(3) 둘째 날(22-24)

 

22-24절은 둘째 날에 관한 말씀입니다. 첫째 날처럼 제단을 정결하게 해야 하는데, 속죄제물로 수송아지 대신 ‘흠 없는 숫염소’가 드려집니다. 수송아지의 피를 발라 제단을 정결하게 했던 것처럼 숫염소의 피로 제단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20). 첫째 날과 달리 둘째 날의 예식은 속죄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정결예식을 마친 후에 ‘흠 없는 수송아지’와 ‘흠 없는 숫양’으로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23). 둘째 날부터는 속죄제와 번제가 함께 드려집니다. 에스겔이 수송이지와 숫양을 여호와 앞에 바치면 제사장들은 그 위에 소금을 뿌리고 여호와께 번제물로 드려야 합니다(24).

 

(4) 칠 일의 예식(25-26)

 

레위기 2:13에 의하면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쳐야 합니다. 둘째 날의 예식은 이레 동안 계속됩니다. 이레 동안 매일 속죄제물로 염소를 드려 제단을 정결하게 하고, 수송아지와 숫양을 번제로 드려야 합니다(25-26).

 

(5) 제사를 기쁘게 받으실 여호와(27)

 

첫째 날과 그 다음 날부터 이레 동안 진행된 제단의 봉헌예식이 여호와의 가르침과 약속으로 끝을 맺습니다(27). ‘제 팔일’은 둘째 날부터 시작하는 이레 동안의 예식이 끝난 다음 날입니다. 속죄제와 번제를 이레 동안 드린 후에 제단이 여호와에 의해 받아들여집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봉헌된 제단에서 번제와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께서는 이들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새 성전에 임하는 장면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다시 거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 성전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상징으로, 백성에게 경외심과 회개를 촉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규례를 통해 그들의 예배가 거룩하고 진실하게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시는 은혜를 강조합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적 부흥의 기초가 되며, 믿는 자들에게 소망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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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40-42)


회복될 예루살렘 성읍과 성전

에스겔 40장 1절-42장 20절


(* 이번 강에서는 본문은 뺏습니다.)

 

에스겔의 성전 환상은 실제로 이스라엘에 다시 성전을 지어야 한다는 의미가 이니라, 오늘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성전으로 지어져간다는 상징입니다(에베소서 2:22). 에스겔의 성전 조감도를 보면 우리가 어떤 계획대로 지어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 유배살이 여섯 해 환상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옮겨져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성전과 성을 파괴하시고 동쪽으로 떠나시는 것을 보았던(8-11장) 에스겔이 유배살이 스물다섯째 해 환상 가운데 ‘놋 같이 빛난 사람’의 인도를 받아 바깥에서 안쪽으로 이동해가며 새 성전의 구조를 봅니다. 여호와께서 당신 성소를 이스라엘 가운데 영원히 세우리라는 37:26-28의 약속이 환상 가운데 성취됩니다.

 

환상의 도입부(40:1-4)

유배 여섯째 해(592년)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에스겔을 예루살렘으로 데려가셨던(8:1-3) ‘여호와의 권능’이 19년이 지난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에 다시 그를 ‘하나님의 이상 중에’ 예루살렘으로 데려가십니다. 스물다섯째 해, 그 해 초 그 달 열째 날이 희년과 관련한 언급이라면, ‘스물다섯째 해’는 해방의 해인 희년의 반환점에 해당합니다. 유배살이의 기간이 절반을 넘었기에 이제는 다가오는 해방의 미래를 바라보며 준비해야 할 시점이 됩니다.

‘매우 높은 산’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던 시온 산을, ‘성읍 형상 같은 것’은 성읍처럼 담과 대문이 있는 새 성전을 가리킵니다. ‘놋같이 빛난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전상적 존재로, 여기서는 에스겔을 안내하면서 성전의 모양을 보여주고 건물의 치수를 재는 일을 담당합니다. 긴 것을 재는 데 이용하는 ‘삼줄’은 3절에만 나오고, 실제로는 여섯 암마의 척량하는 장대만 사용됩니다.

‘놋같이 빛난 사람’은 성전을 보여주기 전에 먼저 그 목적을 알려줍니다. 에스겔은 보여줄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에 새겨 전해야 합니다(4).

 

성전의 문들(40:5-47)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는 이 경계를 허물고 기준을 낮추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진인 성도들은 거룩을 지키기 위해 어떤 담을 세워두고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이루는 데 가장 큰 방해 요소는 무엇입니까!

 

(1) 성전 바깐뜰의 문들(40:5-27)

 

하나님의 집 바깥 사방으로 담이 있는데, 담의 두께와 높이는 각각 한 장대였습니다(5). 바깥뜰로 들어가 이는 동문에서(6-16) 시작해서 바깥뜰을(17-19) 지나 북문으로(20-23) 갔다가 남문으로(24-27) 갑니다. 지성소가 면한 서쪽은 폐쇄 구역으로 문이 없었습니다. 세 개의 문은 크기와 구조가 같았습니다. 대문의 전 개가 있었는 오십 암마로, 바깥 문지방이 여섯 암마, 통 다듬은 3로 양쪽에 세 개의 문지기 방이 있는데 길이와 폭이 한 암마 각각 여섯 암마, 방들 사이의 간격은 다섯 암마, 안쪽 문지방은 여섯 암마, 현관과 벽은 각각 여덟 암마와 두 암마였습니다. 대문 안쪽의 폭은 이십오 암마로, 문지기 방의 너비 열두 암마를 빼면 대략 십삼 암마의 통로가 나옵니다. 동문에서 북문으로 가기 전에 ‘놋 같이 빛난 사람’이 에스겔을 바깥뜰로 이끌었는데, 사방으로 돌을 깐 바닥이 있고, 돌을 깐 바닥을 따라 서른 개의 방이 삼면에 있었습니다. 돌을 깐 바닥의 너비는 대문의 길이와 같은 오십 암마였고, 바깥뜰 대문 안쪽에서 안뜰의 바깥쪽 정면까지의 거리는 백 암마였습니다.

 

(2) 성전 안뜰의 문들(40:28-37)

 

이번에는 바깥뜰의 남문에서 안뜰의 남문으로(28-31) 들어가서 동문을(32-34) 거쳐 북문으로(35-37) 갑니다. 이동 경로에 어떤 신학적 의미가 담겼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안뜰 대문의 구조와 장식은 한 가지를 제외하고 바깥뜰 대문과 동일했습니다. 바깥 대문의 현관은 안뜰을 향했는데, 안뜰 대문에서는 현관의 위치가 입구로 옮겨져 바깥뜰로 향했습니다(31). 바깥뜰의 대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곱 계단을(40:22,26), 안뜰의 대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덟 계단을(40:31,34,37), 성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열 계단을(40:49) 올라가야 했습니다. 안뜰의 계단은 바깥뜰의 계단보다 한 계단이, 성전의 계단은 안뜰의 계단보다 두 계단이 더 많았습니다. 성전 지대 계단의 높이에 비례하여 거룩함의 단계도 한층 더 상승했습니다.

 

(3) 안뜰 북문에 딸린 것(40:38-47)

 

안뜰의 북문이 희생제물을 준비하는 장소로 지정 됩니다. 대문의 현관에는 번제물을 씻는 방이 있었고(38),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희생제물을 잡는 상이 현관 이쪽과 저쪽에 두 개씩(39), 현관 바깥대문 어귀 이쪽과 저쪽에 두 개씩(40) 모두 여덟 개가 있었습니다(41). 번제물을 잡을 때 사용하는 상은 다듬은 돌로 만든 것으로 길이가 한 암마 반, 너비가 한 암마 반, 높이가 한 암마였습니다. 갈고리가 현관 사방에 걸려 있었고(43a), 상들 위에 번제물을 잡을 때 쓰는 연장과 희생제물의 고기가 놓여 있었습니다(42b,43b).

북문과 남문 곁에 제사장들이 사용하는 방 두 개가 안뜰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습니다(44). 남쪽 대문 곁의 방은 제단에서 제사를 집전하는 사독제사장들의 방이고(45), 북쪽 대문 곁의 방은 대문을 지키거나 성전의 관리와 운영을 맡은 제사장들을 위한 방이었습니다(46). 성전의 안뜰은 길이와 너비가 백 암마의 정사각형 마당으로 성전을 마주보고 있었고, 번제단은 성전 앞에 있었습니다(47).

 

성전과 주변 건물들(40:48-42:14)

삶의 참된 회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인 자신의 거룩함을 지키는 데 방해되는 요소를 과감히 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1) 주변 건물들(40:48-41:26)

 

열 암마였던 현관의 길이를 제외하면 성전의 구조와 크기는 솔로몬의 성전(참조. 열왕기상 6:2-3)과 같았습니다. 현관(48-49)의 길이와 너비가 열한(열두?) 암마와 스무 암마, 성전(41:1-2)의 길이와 너비가 마흔 암마와 스무 암마, 내전(41:3-4)의 길이와 너비가 각각 스무 암마였습니다.

입구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좁아졌는데, 현관의 문은 열네 암마, 성전의 문은 열 암마, 지성소의 문는 여섯 암마였습니다. 거룩함의 정도에 일치하여 들어가는 입구가 좁아졌습니다. 내전의 치수를 잴 때는 에스겔은 밖에 있었고 안내자만 들어갔습니다(41:3-4), 현관을 제외한 성소와 내전의 삼면을 곁채(‘골방’)가 둘러싸는데, 성전의 거룩함을 훼손하지 않도록 성전의 벽을 뚫지는 않았습니다(41:6). 곁채는 삼 층으로 됐고, 한 층에 방이 서른 개씩 있어 모두 아흔 개의 작은 방이 있었습니다(5-11; 참조, 열왕기상 6:5-6), 전체 성전 건물은 안뜰처럼 길이와 폭이 각 백 암마였습니다(13-15). 성전 서쪽 마당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 너비가 일흔 암마, 길이는 아흔 암마였습니다(12). 너비가 스무 암마 되는 지성소 뒤편의 제한구역(10)과 다섯 암마인 벽의 두께를 포함해 전체 길이와 폭이 각각 백 암마였습니다. 내부 장식도 솔로몬 성전의 내부 장식과 유사했습니다. 내부는 바닥에서 창문에 이르기까지 모두 널빤지로 입혔습니다(16-17). 사방 벽에 입힌 널빤지와 문에 그룹과 종려나무가 새겨졌는데, 두 얼굴을 가진 그룹과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가 하나씩 있었습니다(18-20,25). 사람의 얼굴은 이쪽 종려나무를, 사자의 얼굴은 저쪽 종려나무를 향하고 있었습니다(19). 지성소 앞에는 ‘여호와의 앞의 상’이 있었는데, 높이가 세암마, 길이가 두 암마인 나무로 만든 제단이었습니다(21-22). 제단의 ‘모퉁이’는 아마도 제단의 뿔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성소와 지성소에는 각각 두 개의 문짝으로 된 겹문이 달려 있었습니다(23-24).

 

(2) 제사장들의 방(42:1-14)

 

에스겔은 성소에서 다시 안뜰 북문으로 해서 바깥들로 나가 서쪽으로 갑니다(1). 지성소 뒤편에 있는 건물 좌우에 삼층으로 된 방들이 있었는데 길이가 백 암마 너비가 쉰 암마였습니다(2). 이 방들은 거룩한 방들로 여호와께 가까이 가는 제사장들이 거룩한 제물을 먹거나 제한구역을 떠나기 전에 의복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13-14). 구조적으로 안뜰과 바깥뜰을 나눌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과 일반 백성 사이도 구별합니다.

 

성전 구역의 넓이(42:15-20)

전체 성전 구역은 두께와 높이가 각각 여섯 암마 되는 담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었습니다(40:5). 담은 거룩한(정결한) 것과 속된(부정한) 것의 경계로(42:20b), 성전 지대가 속된 것에 의해 더럽혀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참조, 출애굽기 19:12). 담의 사면은 각각 오백 암마로 정사각형 모양을 이루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정사각형이나 대칭 구조는 완전함과 조화로움을 상정했습니다.


새 성전의 비전과 그 구조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통해 하나님이 임재하실 장소를 강조합니다. 이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예배의 중심이 될 것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성전의 규례와 기준을 통해 그분의 거룩함과 질서를 나타내시며, 백성에게 경건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또한,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이스라엘에 임하는 상징으로, 회복과 재건의 희망을 제공합니다. 결국, 이 본문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그분의 임재를 통해 주어지는 영적 축복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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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39-01)


침략자 곡의 완전한 멸망

에스겔 39장 1-29절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며 회복시키는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성도들에게도 죄 앞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이중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 가운데 합당한 성도의 삶을 살라고 요청하고 계십니다.

 

  • 곡의 전쟁은 여호와께서 당신의 영광과 거룩함을 민족들에게 드러내신 목적으로 계획하신 전쟁으로, 하나님께서 홀로 곡에 맞서 이스라엘을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곡과 그의 군대와 연합군의 침략을 당하는 이스라엘은 직접 전쟁에 나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전쟁이 끝난 후 패한 곡의 군대가 남긴 무기를 모아 불태우고 그들의 시신을 매장하는 일만 맡겨집니다.

 

곡과 그의 군대의 멸망(1-16)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택하신 백성을 사탄의 위협에서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주시고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거루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살아가야 합니다.

 

1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곡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2너를 돌이켜서 이끌고 북쪽 끝에서부터 나와서 이스라엘 산 위에 이르러 3네 활을 쳐서 네 왼손에서 떨어뜨리고 네 화살을 네 오른손에서 떨어뜨리리니 4너와 네 모든 무리와 너와 함께 있는 백성이 다 이스라엘 산 위에 엎드러지리라 내가 너를 각종 사나운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 먹게 하리니 5네가 빈 들에 엎드러지리라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내가 또 불을 마곡과 및 섬에 평안히 거주하는 자에게 내리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7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줄을 민족들이 알리라 하라 8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볼지어다 그 날이 와서 이루어지리니 내가 말한 그 날이 이 날이라 9이스라엘 성읍들에 거주하는 자가 나가서 그들의 무기를 불태워 사르되 큰 방패와 작은 방패와 활과 화살과 몽둥이와 창을 가지고 일곱 해 동안 불태우리라 10이같이 그 무기로 불을 피울 것이므로 그들이 들에서 나무를 주워 오지 아니하며 숲에서 벌목하지 아니하겠고 전에 자기에게서 약탈하던 자의 것을 약탈하며 전에 자기에게서 늑탈하던 자의 것을 늑탈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1그 날에 내가 곡을 위하여 이스라엘 땅 곧 바다 동쪽 사람이 통행하는 골짜기를 매장지로 주리니 통행하던 길이 막힐 것이라 사람이 거기에서 곡과 그 모든 무리를 매장하고 그 이름을 하몬곡의 골짜기라 일컬으리라 12이스라엘 족속이 일곱 달 동안에 그들을 매장하여 그 땅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13그 땅 모든 백성이 그들을 매장하고 그로 말미암아 이름을 얻으리니 이는 나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4그들이 사람을 택하여 그 땅에 늘 순행하며 매장할 사람과 더불어 지면에 남아 있는 시체를 매장하여 그 땅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일곱 달 후에 그들이 살펴 보되 15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땅으로 지나가다가 사람의 뼈를 보면 그 곁에 푯말을 세워 매장하는 사람에게 가서 하몬곡 골짜기에 매장하게 할 것이요 16성읍의 이름도 하모나라 하리라 그들이 이같이 그 땅을 정결하게 하리라(1-16)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 이스라엘이 회복할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38-39장에서는 당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왕 곡에 대해 멸망을 선언하고 계십니다. 곡에 대한 심판을 설명하신 이유는 회복 이후에도 도전과 도발은 계속될 것을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의 적이 현실적으로 보면 대적이 바벨론뿐이지만, 회복 이후에도 도전과 도발이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1) 곡의 멸망을 선포(1-6)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말씀하십니다. 2절 ‘너를 돌이켜서 이끌고 북쪽 끝에서부터 나와서 이스라엘 산 위에 이르러’에서는 네 개의 동사를 사용해 여호와께서 곡의 전쟁의 실질적이고 유일한 결정권자임을 거듭 강조합니다. 여호와께서 역사를 지배하는 자들이기에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은 어둠과 혼란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 계획에 따라 곡을 움직여 이스라엘 산으로 원정을 떠나게 하십니다. 장수들이 맞대결하듯 여호와께서 직접 곡을 치십니다. 곡이 손에서 활과 화살을 떨어뜨리고, 그의 군대와 동맹군들은 이스라엘 산에 쓰러집니다(3-4a). 곡이 의존하던 전쟁 무기가 무용지물이 되고, 용맹을 자랑하던 병사들이 들판에 쓰러져 맹금과 들짐승의 먹이가 됩니다(4b). 땅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민족들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여호와께서, ‘네가 빈 들에 엎드러지리라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재판관이 판결을 선고하듯이, 곡의 멸망을 말씀하셨기에 곡에게는 죽음 외의 다른 길이 없습니다(5). 침략자들만 멸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권력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만 통치할 뿐입니다. 여호와께서 ‘마곡과 및 섬에 평안히 거주하는 자’에게 불을 보내 징벌하십니다(6). 곡의 본토와 그의 약탈 전쟁에 참여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 한 나라들도 함께 심판에 떨어집니다. ‘평안히 거주하는 백성’(38:8,11,14)을 쳐서 약탈하려던 곡의 ‘악한 꾀’(38:10)가 본거지는 물론 그의 편에 붙은 ‘평안히 거주하는 자’에게 재앙을 불러옵니다.

 

(2)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7-8)

 

곡의 전쟁과 패배는 여호와께서 삼중의 목적을 갖고 계획하신 일입니다(7). 첫째는, 이스라엘 가운데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이 일을 통해 이스라엘은 ‘내 백성 이스라엘’(38:14,16)을 보호해주시는 여호와의 능력을 알게 됩니다. 둘째는, 그분의 거룩한 이름이 다시는 더럽혀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전 587년의 파국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무능력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오해될 수 있었습니다. 고대적 사고에 따르면 한 민족의 패배는 그 민족이 섬기는 신의 패배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참조. 사 50:1). 셋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는 거룩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민족들이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루살렘의 함락과 유다의 멸망을 보고 여호와를 조롱하였던 민족들이 세상 권력을 대표하는 곡을 멸망시키시는 여호와를 보고 그분의 능력을 목도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이 이스라엘을 넘어 민족들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곡의 멸망은 아직 먼 미래에 속하지만, 때가 되면 이루어질 것입니다(8). 곡과 그의 군대는 들판에 쓰러져 맹금과 들짐승의 먹이가 될 것입니다. 38:17은 곡의 공격에서 ‘북방에서 내려오는 적’을 선포한 예전 예언의 성취를 보는데, 8절은 곡의 패배에서 예언의 성취를 봅니다.

 

(3) 승리한 후에 사역(9-16)

 

곡의 전쟁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여호와께서 홀로 싸우시고, 이스라엘은 전쟁이 끝난 후에 적들이 남겨놓은 무기를 소각하고(9-10) 전쟁에서 죽은 시신들을 매장하는(11-16) 일에만 참여합니다. 그때 이스라엘 성읍에 사는 사람들은 땔감을 구하려고 들이나 숲으로 나갈 필요가 없어집니다. 곡의 군대가 남긴 무기만으로도 칠 년 동안 땔감 걱정이 없어집니다. 죽은 곡과 무리를 치우고 매장하는 데는 일곱 달이 걸립니다. 여호와께서 지정해주신 매장지에 묻고 그곳을 ‘하몬곡의 골짜기’라 부를 것입니다. 일곱 달이 지난 후에는 특별 임무를 부여받은 두 부류의 집단이 시체를 완전히 치울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합니다. 지역을 돌아다니며 조사하는 자들이 땅바닥에 남아 있는 사람의 뼈를 보고 그 옆에 돌을 세워 표시해놓으면 매장하는 자들이 이를 다시 하몬곡 골짜기에 묻습니다(14-15).

여호와께서 곡의 군대를 진멸하고 당신의 영광을 들어내시는 날에 이스라엘은 매장 작업을 통해 이름을 얻습니다. 적의 시신을 깨끗이 치우는 것은 적에 대한 예우 차원이 아니라 이스라엘 땅이 제의적으로 부정해지지 않게 합니다(참조. 민수기 19:11-13).

 

승리의 잔치 : 짐승을 위한 희생제사(17-20)

역사의 진행을 볼 때, 더디게 진행됨으로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악인들을 처벌할 법이 없고 힘없는 자들을 구해줄 법이 없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공룡 같은 세상의 포효에 우리는 자신의 왜소함만 확인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정의가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라도 심판하실 것입니다.

 

17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 인자야 너는 각종 새와 들의 각종 짐승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모여 오라 내가 너희를 위한 잔치 곧 이스라엘 산 위에 예비한 큰 잔치로 너희는 사방에서 모여 살을 먹으며 피를 마실지어다 18너희가 용사의 살을 먹으며 세상 왕들의 피를 마시기를 바산의 살진 짐승 곧 숫양이나 어린 양이나 염소나 수송아지를 먹듯 할지라 19내가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잔치의 기름을 너희가 배불리 먹으며 그 피를 취하도록 마시되 20내 상에서 말과 기병과 용사와 모든 군사를 배부르게 먹일지니라 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7-20)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연회를 열어 자축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산에서 풍성한 잔치가 열립니다(참조, 이사야 26:6). 그런데 초대받는 손님과 잔치 음식이 아주 예외적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산 위에 예비한 큰 잔치’에 ‘각종 새와 들의 각종 짐승’을 불러 ‘용사들의 살’과 ‘세상 왕들의 피’를 마음껏 먹고 마시게 하십니다(17-20; 참조. 계 19:17-18). 한 때 주변 나라들을 두렵게 떨게 했던 세상의 왕들과 용사들이 짐승들의 연회에 고기로 사용됩니다.

‘잔치’는 ‘희생제사’를 의미하는 ‘희생제물잔치’(sacrificial feast)로 옮길 수 있습니다. 곡과의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으로 전리품은 여호와께 바쳐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을 위한 희생제물 잔치를 배설하시고 짐승들을 초대하십니다. 피를 먹는 행위는 원칙상 금지됐지만(참조. 창세기 9:4-5; 레위기 17:10-14), 곡과 군대의 완전한 멸망을 보여주기 위해 짐승들로 피도 마시게 합니다. 20절의 ‘먹일지니라’는 ‘먹으리라’로 옮겨야 합니다. 초대받은 짐승들이 희생 제물로 상에 오른 ‘말과 기병과 용사와 모든 군사’를 배부르게 먹습니다.

11-16절에서는 전멸당한 곡의 군대가 하몬곡의 골짜기에 매장되고, 여기서는 날짐승과 들짐승의 먹이로 주어집니다. 전자는 땅의 제의적 정결에 관심을 기울이고, 후자는 멸망의 철저함에 초점을 맞춥니다.

 

맺는 말(21-29)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면 자신이 이해할 수 없고, 또 너무나 힘들고 좌절되어서 쓰러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뒤돌아보면 그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셨고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되어집니다. 삶의 모든 부분들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한 계획과 뜻 그리고 목적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실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으로부터 힘과 용기를 얻어야만 합니다.

 

21내가 내 영광을 여러 민족 가운데에 나타내어 모든 민족이 내가 행한 심판과 내가 그 위에 나타낸 권능을 보게 하리니 22그 날 이후에 이스라엘 족속은 내가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을 알겠고 23여러 민족은 이스라엘 족속이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혀 갔던 줄을 알지라 그들이 내게 범죄하였으므로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고 그들을 그 원수의 손에 넘겨 다 칼에 엎드러지게 하였으되 24내가 그들의 더러움과 그들의 범죄한 대로 행하여 그들에게 내 얼굴을 가리었었느니라 25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사랑을 베풀지라 26그들이 그 땅에 평안히 거주하고 두렵게 할 자가 없게 될 때에 부끄러움을 품고 내게 범한 죄를 뉘우치리니 27내가 그들을 만민 중에서 돌아오게 하고 적국 중에서 모아 내어 많은 민족이 보는 데에서 그들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때라 28전에는 내가 그들이 사로잡혀 여러 나라에 이르게 하였거니와 후에는 내가 그들을 모아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 한 사람도 이방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내가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을 알리라 29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영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1-29)

 

본문은 이스라엘의 미래적인 구원이 철저하게 여호와의 주도로 성취됩니다. 이스라엘은 단지 복된 말씀을 듣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위한 열심히 유배지로부터 귀환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33장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결론적인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이방 민족들은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분의 약속은 회복, 그 이상입니다.

 

(1) 여호와의 권능을 보는 민족(21-22)

 

민족들이 여호와께서 곡의 군대에 행한 심판과 권능을 보고 그분을 인정하게 되고, 이스라엘도 ‘그 날 이후에’ 여호와께서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을 알게 됩니다(21-22).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온전하게 섬기지는 않았습니다. 곡과 그의 무리를 홀로 진멸하시는 여호와의 권능을 보고 그분만이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심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2) 유배의 신학적 잔치(23-24)

 

23절부터 화자의 시점이 다시 현재로 돌아오고, 주제도 바뀌어 34-37장의 주제에 이어집니다. 약속과 권면의 말씀에 앞서 먼저 이스라엘이 유배를 당한 원인을 민족들에게 분명하게 알려주십니다. 이스라엘의 패배와 유배는 민족들의 눈에 여호와의 한계와 무능력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처럼 보였습니다. 신이 자신을 주신(主神)으로 섬기는 민족을 멸망시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세상 권력을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권능을 보고 민족들은 유다의 멸망과 유배가 이스라엘의 죄, 곧 ‘그들의 더러움과 그들의 범죄’를 징계하시는 그분의 심판이었음을 알게 됩니다(23-24).

 

(3) 구원의 약속(25-29)

 

25-29절은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 에스겔이 선포한 메시지의 요약으로, 에스겔 1-39장의 결론에 해당합니다. 이스라엘의 미래 구원은 철저하게 여호와의 주도로 성취됩니다.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위한 ‘열심’과 이스라엘 온 족속을 가히 여기시는 그분의 ‘사랑’이 야곱의 운명을 되돌립니다(25).

우상숭배로 이스라엘이 질투를 유발했지만(8:3,5; 23:25), 여호와께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열심을 내십니다. ‘이스라엘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멸망과 유배로 더럽혀진 당신 이름의 거룩함을 지키시려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운명을 되돌리십니다(36:22-23).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사랑은 반역한 이스라엘에 값없이 구원의 문을 열어주는, 허물조차 감싸 안는 긍휼입니다. 야곱의 운명을 되돌려주시는 여호와의 열심과 사랑이 가나안에서 평안히 살 수 있게 지켜주십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와 불순종과 배반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를 되돌아보며 깨우침을 받아야 합니다. (26절의 ‘부끄러움을 품고 내게 범한 죄를 뉘우치리니’는 문자적으로 ‘자신들의 수치와 내게 저지른 모든 배반을 짊어지리라’로, 최근의 번역은 ‘짊어지리라’의 모음점을 수정해 ‘그들은 자기들의 수치와 내게 저지른 모든 배반을 잊게 되리라’로 옮기는 것을 선호한다.)

27-28절은 내용상 21-22절의 반복입니다. 유배민의 구속을 통해 여호와께서 민족들에게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시고,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의 하나님 임을 알게 됩니다. 여호와의 약속은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를 내다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주어 언약관계가 다시 파기되는 일이 없게 해주십니다(29; 36:26-27; 37:14). 심판 이후의 새로운 구원 시대가 여호와의 영에 의해 항구적으로 보장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적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 구원은 단순한 육체적 안전을 넘어, 영적 회복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시 모으시고,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으십니다. 또한, 이 사건을 통해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분의 능력을 찬양하게 됩니다. 결국, 이 본문은 하나님의 신실함과 구원의 계획을 강조하며, 믿는 자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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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38-01)


장치 북쪽에서 침공해 올 곡과 연합군

에스겔 38장 1-23절


 

모든 전투나 경기 앞에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베라의 명언입니다. 야구 경기에서 9회 말 투아웃 상황에서도 마지막 공이 던져질 때까지 승패를 알 수 없습니다. 에스겔의 시선은 이스라엘의 회복보다 더 먼 미래를 향합니다. 회복된 이스라엘(33-37장)을 향한 악의 무시무시한 공격을 예고합니다.

 

  • 에스겔 38-39장은 주제와 시점이 독자적인 단락입니다. 33-37장에서 이스라엘의 가까운 회복을 선포하던 에스겔의 시선이 여기서는 회복 이후 먼 미래에 있을 곡의 침략 전쟁을 내다봅니다. ‘여러 날 후 곧 말년에’(38:8) 마곡 땅의 통치자 곡이 많은 동맹군을 거느리고 ‘염려 없이 다 평안히 거주하는 백성’ 이스라엘을 침략하지만, 여호와의 간섭으로 완전히 궤멸당할 것입니다.

 

도입부 : 말씀의 계시(1)

세상에 모든 시작과 끝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대단한 것처럼 하지만, 조그마한 어려움 앞에 서보면 결국에는 두려워 손을 들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연약한 사람들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만 사랑할 것을 원하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다른 말씀을 전하십니다.

 

1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1)

 

회복된 이스라엘을 침략하려고 북쪽에서 대군을 이끌고 내려왔지만, 그들은 멸망 당합니다. 그 우두머리 제후 곡은 어느 한 시대의 특정 인물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위협하는 엄청난 세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곡에 의한 이스라엘의 침략 전쟁과 곡의 패배를 선포하는 38-39장 이해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이 단락의 위치 때문입니다. 앞에 나오는 34-37장은 유배당한 이스라엘의 구원을 선포하고, 뒤따르는 40-48장은 새 성전과 새 땅의 청사진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미래를 위해 여호와께서 세우신 계획은 그분의 종 다윗의 영원한 통치와 가나안 땅에서의 영원한 거주와 영원한 언약과 영원한 성소를 약속하는 37장의 마지막 단락(24-28)에서 정점에 도달합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의 성소를 세워 영원히 있게 하시겠다는 약속(37:26-28)은 곡의 전쟁(38-39장)을 건너뛰고 새로운 성전에 관한 에스겔의 환상(40:1-44:2)에 직접 이어집니다. 그사이에 놓인 곡의 침략과 멸망을 선포하는 38-39장의 시각은 회복 이후의 먼 미래를 내다봅니다. 이스라엘의 유배민이 가나안으로 돌아와 정착했음을, 곧 귀향 약속이 성취됐음을 전제합니다. ‘칼을 벗어나서 여러 나라에서 모여 들어오며 이방에서 나와 다 평안히 거주하는 중’(38:8)에 곡이 소집 명령을 받고 동맹군과 함께 ‘황폐하였다가 지금 사람이 거주하는 땅과 여러 나라에서 모여서 짐승과 재물을 얻고 세상 중앙에 거주하는 백성’(38:9)을 치려고 원정에 나섭니다. 현재의 순서에 따라 읽으면, 여호와의 구원 약속(34-37장)이 성취된 후 곡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가나안을 침략합니다(38-39장).

다른 한편으로, 곡의 전쟁 다음에 나오는 39장 25-29절은 유배민의 귀향을 여전히 미래 사건으로 약속합니다. 양자를 이어서 읽으면 곡의 침략과 패배가 이스라엘의 회복에 선행하는 사건이 됩니다. 이 경우 곡의 전쟁은 차라리 민족들의 신탁(25-32장) 마지막 또는 34장 앞에 놓이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38-39장의 현재 위치에서 나오는 모호성과 긴장은 어떻게 해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는 역사와 종말을 결합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현재의 문맥에 따르면, 37:28의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에 있으리니’의 실질적 예로 읽을 수 있습니다. 회복 이후에도 이스라엘이 민족들에 의해 침략을 당할 수 있겠지만, 그들 가운데 있는 여호와의 성소가 침략에서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새로운 위협: 곡과 그의 동맹국(2-9)

종종 악한 세력들이 일어나서 기세등등해서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때는 정의와 공의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먼저 악들을 처단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교만을 그대로 나누시고 그들이 스스로 멸망하게 하시는 경우를 봅니다. 우리들은 주권자이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2인자야 너는 마곡 땅에 있는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곧 곡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여 3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4너를 돌이켜 갈고리로 네 아가리를 꿰고 너와 말과 기마병 곧 네 온 군대를 끌어내되 완전한 갑옷을 입고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가지며 칼을 잡은 큰 무리와 5그들과 함께 한 방패와 투구를 갖춘 바사와 구스와 붓과 6고멜과 그 모든 떼와 북쪽 끝의 도갈마 족속과 그 모든 떼 곧 많은 백성의 무리를 너와 함께 끌어내리라 7너는 스스로 예비하되 너와 네게 모인 무리들이 다 스스로 예비하고 너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될지어다 8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폐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여러 나라에서 모여 들어오며 이방에서 나와 다 평안히 거주하는 중이라 9네가 올라오되 너와 네 모든 떼와 너와 함께 한 많은 백성이 광풍 같이 이르고 구름 같이 땅을 덮으리라(2-9)

 

에스겔 시점에서 보면, 이스라엘 유배민들은 70년 동안에 바벨론 유배 후에 선지자들의 예언을 따라 가나안 땅으로 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는 나라를 회복할 것입니다. 장차 가나안에 이스라엘이 정착하겠지만, 북쪽으로부터 침략이 있을 것을 예언합니다.

 

(1) 곡을 대적하시는 여호와(2-3)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 후에도 여호와의 대적으로 전혀 새로운 인물이 등장합니다. 여호와께서 ‘메섹과 두발의 우두머리 제후 곡’에게 심판을 선포하게 하십니다(2-3). ‘곡’은 여기에 처음 등장하지만, 잘 알려진 이름처럼 달리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북쪽 끝에 있습니다. ‘북쪽’은 예언자들에게 자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쪽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끝은 미지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야만적 두려움과 잔혹함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이해에 따르면, 곡은 요한계시록에까지 계속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특정 시대의 인물보다는 시대마다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세력으로 나타나는 대적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세우신 질서를 파괴하려는 땅의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2) 곡과 그의 동맹군(4-6)

 

하나님께서는 악한 세력이 일어날 때, 가만히 두시기도 합니다. 곡이 일어날 때 스스로 일어난 것 같지만, 그것은 곁 모습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너를 돌이켜 갈고리로 네 아가리를 꿰고 너와 말과 기마병 곧 네 온 군대를 끌어내되’(4)라는 표현은 비참하게 끌려가는 전쟁 포로들의 모습입니다(19:9; 29:4). 여기서 이중적인 의미를 포함합니다. 곡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호와의 결정에 따라 전쟁에 나가게 될 것을, 또 다른 한 편에서는 곡이 전쟁에서 이미 패배할 것을 보여줍니다.

곡의 전쟁은 곡을 멸망시키려고 여호와께서 계획하신 전쟁입니다. 여호와께서 곡에게 명령하십니다. 곡과 그의 모든 군대, 곧 군마와 기마병과 방패와 칼로 무장한 대군(4)과 동맹군 바사와 구스와 붓과 고멜과 도갈마의 온 부대를 끌어내실 것입니다(5-6). 여호와께서는 곡에게 전쟁 준비 명령도 내리십니다.

 

(3)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곡(7-9)

 

곡은 자기에게 모여든 모든 군대와 함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그들의 ‘우두머리’, 보호자가 되어야 합니다(7). ‘돌이켜’와 ‘끌어내되’와 ‘예비하되’는 곡의 침략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여호와의 계획에 따른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겉으로는 곡이 자기 계획에 따라(10) 이스라엘로 원정을 떠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여호와께서 세우신 계획에 따라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뿐입니다. 과거에 애굽과 앗수르 그리고 바벨론도 그랬습니다. 가나안을 기준으로 곡의 동맹군은 지중해로 면한 서쪽을 제외하고 남쪽(구스, 붓)과 동쪽(바사)과 북쪽(메섹, 두발, 고멜, 도갈마)에서 옵니다. 땅의 모든 세력이 연합해서 침략 전쟁에 나섭니다. 한마디로, 땅을 뒤덮는 전면전이지만, 여호와의 통제 아래 있는 계획된 전쟁입니다.

곡이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때는 막연히 여러 날 후 곧 말년에(8) 또는 끝 날에(16)로 제시됩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곡은 소집 명령을 받고 ‘이스라엘 산’으로 원정을 떠납니다. 곡이 누구에게서 명령받는지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문맥에 따르면 여호와에게서 명령받습니다. 곡의 침략을 받게 될 이스라엘 땅은 한때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이제는 흩어졌던 자들이 모여들어 회복된 땅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복구된 땅에서 평안하게 살고 있을 때 갑자기 침략당합니다. 곡과 그의 군대와 동맹군이 ‘광풍같이’ 쳐들어와 이스라엘 땅을 ‘구름 같이’ 덮을 것입니다(9). 이스라엘이 침략당하는 이유가 불순종을 징벌하는 전쟁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8절의 ‘평안히 거하는 중’은 부정적인 표현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보호 아래 있음을, 곧 곡의 전쟁이 일방적인 침략 전쟁임을 시사해줍니다.

 

곡의 악한 꾀(10-16)

세상에 막강한 어떤 권력도 여호와의 능력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 세력이 대두되는 것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프로그램일 뿐입니다. 곡의 전쟁이 의미하는 것은 악한 세력을 세상에서 완전히 멸절하는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기술합니다.

 

10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 날에 네 마음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나서 악한 꾀를 내어 11말하기를 내가 평원의 고을들로 올라 가리라 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이 없어도 염려 없이 다 평안히 거주하는 백성에게 나아가서 12물건을 겁탈하며 노략하리라 하고 네 손을 들어서 황폐하였다가 지금 사람이 거주하는 땅과 여러 나라에서 모여서 짐승과 재물을 얻고 세상 중앙에 거주하는 백성을 치고자 할 때에 13스바와 드단과 다시스의 상인과 그 부자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탈취하러 왔느냐 네가 네 무리를 모아 노략하고자 하느냐 은과 금을 빼앗으며 짐승과 재물을 빼앗으며 물건을 크게 약탈하여 가고자 하느냐 하리라 14인자야 너는 또 예언하여 곡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 이스라엘이 평안히 거주하는 날에 네가 어찌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15네가 네 고국 땅 북쪽 끝에서 많은 백성 곧 다 말을 탄 큰 무리와 능한 군대와 함께 오되 16구름이 땅을 덮음 같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치러 오리라 곡아 끝 날에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내 땅을 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눈 앞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이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라(10-16)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는 고골과 마곡에 대한 예언을 통해 마지막 때에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여러 민족의 연합으로 이루어지며, 그들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개입하시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스라엘을 보호하실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1) 곡의 전쟁 계획(10-12)

 

북쪽 살고 있던 곡은 악한 꾀를 내어 성벽도 없고 문도 빗장도 없이 평안하게 살고 있는 이스라엘을 약탈과 노략질의 대상으로 선택합니다(10-11).

성벽이 없음은 외적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어떤 물리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음을, 곧 여호와께서 이들의 성벽이 되셨음을 시사해줍니다. 한때는 폐허였지만, 이제는 여호와의 은총으로 걱정과 두려움 없이 가축과 재산을 늘려가며 사는 이스라엘이 탐욕스러운 자들의 먹이가 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됩니다(12). 세상 중앙에 사는 백성을 약탈하러 온다는 말은 곡의 전쟁이 모든 피조 세계를 포함하는 우주적-종말론적 전쟁임을 시사해줍니다.

 

(2) 주변 나라들의 반응(13)

 

곡의 약탈물에 관심이 많았던 ‘스바와 드단과 다시스의 상인들과 그 부자들’이 곡의 죄악을 역설적으로 추궁합니다(13). 그들은 노략질과 약탈이 이스라엘을 침략하려는 곡의 유일한 관심사였습니다.

 

(3) 이스라엘을 침략한 곡(14-16)

 

곡의 전쟁은 미래에 있을 가능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결정하신 일로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질 전쟁입니다. 본문 14-16절은 형식상 에스겔에게 주는 예언으로, 내용상 10-12절의 반복입니다.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이 평안히 거주하는 날’에 곡은 이들을 약탈하기로 결정하고 수많은 동맹군과 함께 이스라엘을 침략할 것입니다. 곡은 여호와의 계획을 알지 못하지만, 어느 때에 이스라엘을 침략해야 할지는 압니다. 이를 통해 곡은 당신의 거룩함을 이방 민족들 가운데 드러내시려는 여호와의 계획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여호와에 의한 곡의 심판(17-23)

때로는 우리에게 닥친 환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신지를 들어내신 역사를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보여주시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여주신 계기를 만들어 가십니다. 성도들은 이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세상에 없는 평안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17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옛적에 내 종 이스라엘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한 사람이 네가 아니냐 그들이 그 때에 여러 해 동안 예언하기를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그들을 치게 하리라 18그 날에 곡이 이스라엘 땅을 치러 오면 내 노여움이 내 얼굴에 나타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9내가 질투와 맹렬한 노여움으로 말하였거니와 그 날에 큰 지진이 이스라엘 땅에 일어나서 20바다의 고기들과 공중의 새들과 들의 짐승들과 땅에 기는 모든 벌레와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내 앞에서 떨 것이며 모든 산이 무너지며 절벽이 떨어지며 모든 성벽이 땅에 무너지리라 21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내 모든 산 중에서 그를 칠 칼을 부르리니 각 사람이 칼로 그 형제를 칠 것이며 22내가 또 전염병과 피로 그를 심판하며 쏟아지는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그와 그 모든 무리와 그와 함께 있는 많은 백성에게 비를 내리듯 하리라 23이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위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17-23)

 

곡과 연합군이 벌리는 취후 일전에는 악의 권세와 역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한 무대일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곡의 약탈 전쟁을 불러드리지만, 그에 대해서 여호와께서 진투와 맹렬한 노여움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악의 궤멸만이 새로운 창조의 비전은 이루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예언의 성취(17)

 

여호와께서 옛적에 예언자들을 통하여 북쪽에서 적을 불러 이스라엘을 치게 하겠다고 거듭 말씀하셨는데, 곡이 주인공입니다(17). 곡의 침략은 오래전부터 예언자들이 선포했던 예언을 성취하는 사건입니다. 17절은 이 성취된 예언을 종말론적 시각에서 다시 읽습니다. 이 말은 앞으로도 이 시간과 같은 일들이 재현될 것입니다.

 

(2) 곡을 치시는 여호와(18-23)

 

곡의 약탈 전쟁에 여호와께서 ‘질투와 맹렬한 노여움’으로 응답하십니다. 땅에 큰 지진이 일어나고 모든 생물이 두려움에 떨고 자연계는 격변합니다. 여호와께서 곡을 칠 칼을 불러 싸움에 나서게 하시고, 전염병과 피로 심판하시고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을 그들 위로 퍼부으십니다. 여호와께서 초자연적인 개입으로 곡과 그 동맹국들이 멸망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 곡이 이스라엘 땅을 치러 오면 내 노여움이 내 얼굴에 나타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8)라고 하십니다. 옛적에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대로 곡에게 당신 진노를 남김없이 쏟아부으시고 민족들 가운데 당신의 위대함과 거룩함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께서 고골과 마곡을 통해 마지막 때의 전쟁을 예언하신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여러 민족의 연합으로 이루어지며,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고, 이스라엘을 보호하실 것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이러한 말씀은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의 주권과 보호를 믿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결국,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모든 민족이 그분의 능력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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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37-02)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하나 됨

에스겔 37장 15-28절


 

성도들의 성공은 혼자 이룰 수 없습니다. 혼자서 성공을 이루었다면, 대부분 성공을 자신의 능력으로 되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한 성공은 하나님과 하나 되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 되어졌을 때, 세상에서 승리하며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이 허락하신 성공, 그 아름다운 길로 가는 삶들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 바싹 마른 뼈처럼 완전히 죽은 이스라엘의 회복(37:1-14)은 여호와께서 계획하신 구원 사역의 일부였습니다. 솔로몬 사후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분열돼 서로 반목하다가 주전 722년과 587년에 각각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의 민족으로 결합합니다. 북쪽 지파와 남쪽 지파가 다윗의 통치 아래 하나가 됐던 것처럼 ‘내 종 다윗’이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통치자가 됩니다.

 

두 막대기의 표적행위(15-19)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교회와 사회의 무한 분열에 대한 무한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분열은 하나님께서만 회복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헌신을 통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서 오랜 분열의 역사를 마감해야 합니다. 연합은 물리적인 통합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통합을 이루어가여 합니다.

 

15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6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17그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18네 민족이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에게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거든 19너는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가져다가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15-19)

 

유배민의 회복은 살아나고 돌아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시 하나 되는 데까지, 오랜 분열의 역사를 끝내는 데까지 합니다. 그런데 분열은 하나님 안에서만 극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헌신을 통해 가능합니다.

 

(1) 표적행위의 명령(15-17)

 

하나님의 회복은 유배민을 바벨론의 무덤에서 끌어내서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다 놓는 것으로 여호와의 계획이 다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 이후 반목과 다툼을 거듭하다가 멸망에 떨어진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시 한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유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 속했던 지파들도 구원의 대열에 참여시켜 분열의 상처를 치유해주기로 결정하시고, 이를 표적행위(상징행위)로 선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막대기 두 개를 취하여 그 하나에는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다른 하나에는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을 위하여)’이라 쓰고, 그 두 막대기를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16-17).

 

(2) 표적행위의 해석(18-19)

 

여호와께서 에스겔의 표적행위에 대한 유배민의 반응을 예견하시고(18) 그 의미를 묻는 자들에게 전할 답변도 알려주십니다. 유다와 요셉의 통합은 어느 한쪽이 주도하는 정치적 통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보이도록 한 이 표적행위는 북 왕국과 남 왕국의 통합을 상징합니다.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는 정치적으로 분열됐던 하나님 백성이 하나로 연합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온전한 통합은 그 주체가 여호와이심을 인정하고 그분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분열은 하나님 안에서만 극복될 수 있습니다. 유다와 한편이 된 이스라엘 자손은 시므온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일부와 여러 이유에서 유다에 정착한 다른 지파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한 나라’와 ‘한 왕’(20-23)

하나님께서 부르신 모든 사람들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이 하나된 공동체를 교회라 부릅니다. 새 생명을 얻었고, 한 모가가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할 때마다 ‘거룩한 한 교회’, ‘공교회’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나누어지기보다 성령으로 하나되길 원하십니다. 그 동안 나누어졌던 이스라엘도 하나님께서 하나로 만드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20너는 그 글 쓴 막대기들을 무리의 눈 앞에서 손에 잡고 21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잡혀 간 여러 나라에서 인도하며 그 사방에서 모아서 그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하고 22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23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20-23)

 

솔로몬 왕 이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된 지 수백 년이 흘렀고, 이제 두 나라 모두 멸망하였습니다. 멸망한 북이스라엘을 유민을 끌어안기 위해 북이스라엘을 회복하려던 요시야 왕이 므깃도 전투에서 사망한 뒤로 이스라엘 통일의 꿈은 시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남과 북이스라엘이 모두 회복될 뿐만 아니라 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단언하십니다.

 

(1) 유배민의 위환(20-21)

 

본문에서 ‘그 글 쓴 막대기들’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에 잡으라는 20절의 명령은 전후의 단락을 이어주는 연결구에 해당합니다. 유다와 요셉의 통합이 시대적 배경 아래 재조명됩니다.

34:11-24의 경우처럼 이스라엘의 회복이 두 단계로 기술됩니다. 먼저 여호와께서 민족들 가운데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아 가나안 땅으로 데려오십니다(21). 현재의 문맥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민족들 가운데 흩어져 사는 남왕국과 북왕국 출신의 모든 이스라엘 사람을 가리킵니다. ‘잡혀 간’은 부정확한 번역으로, ‘떠나가 사는’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사로잡혀 강제로 끌려갔지만, 기근이나 전쟁의 재앙을 피해 다른 나라로 도피한 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자의건 타의건 고향을 등지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여호와께서 고국으로 데려오십니다.

 

(2) 한 왕의 통치(22-23)

 

다음은, 데려온 이스라엘 자손을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한 민족으로 만들어 ‘한’왕이 그들 모두의 왕이 되게 하십니다(22). 예전처럼 두 나라로 나뉘어 싸우다가 멸망하는(참조,35:10)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하십니다. 유다와 요셉의 통합이 한 왕의 통치 아래 굳건해집니다. 구원 시대가 안정적으로 지속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종교적 분열의 극복만으로는 부족합니다.

36:15-28의 경우처럼 영적 갱신을 통해 과거의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흩어진 자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오셔서 한 왕의 통치를 받게 하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우상과 가증스러운 것들과 죄악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게 해주십니다(23). 왕정 시대를 파국으로 내몰았던 우상숭배와 피 흘림에서 구원하여 깨끗하게 해주시고, 파괴됐던 언약관계를 온전히 회복해주십니다. ‘가증한 물건’은 이방 종교의 우상과 그러한 우상이 유발하는 혐오감을, ‘죄악’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와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파괴하는 악행을 가리킵니다.

 

영원한 구원(24-28)

하나님의 회복은 거룩함의 회복입니다. 내적인 성결의 회복이 없이 연합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분열의 근원은 죄였기 때문에 가장 근원적인 문제부터 해결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회복은 한 개인의 삶이 회복이 되고 삶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 하나가 되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마음을 품고 공동체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24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수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25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의 조상들이 거주하던 땅에 그들이 거주하되 그들과 그들의 자자 손손이 영원히 거기에 거주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되리라 26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27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28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에 있으리니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을 열국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24-2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정점은 다윗의 통치이고, 언약의 갱신이고,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다시 세워진 성소는 그 회복된 관계의 확증이고 보증입니다. 동시에 아무도 자기 백성, 자기 나라를 새롭게 지어가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헤아릴 수 없고 결심을 꺾을 수 없습니다.

 

(1) 영원한 통치자 다윗(24-25)

 

여호와께서는 22절에서 약속하신 통일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릴 ‘한 임금을 내 종 다윗’으로 소개하십니다(24a; 34:23-24). 물론 죽은 다윗이 돌아온다는 말이 아니며, 구원 시대 통일왕국의 왕이 다윗의 혈통에서 나올 것이란 뜻도 아닙니다. ‘내 종 다윗’은 사울 왕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던 다윗과 같은 인물입니다. 열왕기에서 다윗을 가장 이상적인 왕으로 소개합니다. 그래서 다른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예언자들은 다윗의 통치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왕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고 새 다윗을 구원 시대의 메시아적 왕으로 선포했습니다.(참조. 사 11:1-5; 렘 23:5; 미 5:2-4). 에스겔도 같은 전통에 서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의 이상적 모습을 다윗에게서 찾았습니다. 폭력과 강압으로 통치한 악한 목자들로 인해 배교의 길을 가다가 온 땅에 흩어졌던 양 떼가 앞으로는 참된 목자의 인도로 하나님의 규례와 율례를 잘 지키고 그분께서 주신 땅에 영원히 살게 됩니다(24b-25).

 

(2) 화평의 언약(26-28)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분의 종 다윗의 의로운 통치 아래 백성도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며 살기에 다시는 땅에서 쫓겨나는 일이 없게 됩니다(참조. 레 26:1-5). 36:27에서는 여호와께서 귀향민들 가운데 두실 그 부의 영이 율례와 규례를 지킬 수 있게 해주는데, 여기서는 새로운 왕 다윗이 이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규례와 율례의 준수와 땅의 영원한 거주에 내포된 신학적 전망이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22-23절에서 처럼 신학적 회복(26-28)이 정치적 회복(24-25)에 이어 언급됩니다.

여호와께서 귀향민들과 영원히 지속할 ‘화평의 언약’을 맺으시고, 이들이 조상들이 거주하던 땅에서 번성하게 하십니다(26a; 34:25-26). 화평의 언약은 하나님의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한다는(24b) 점에서는 파기됐던 옛 언약의 갱신이지만, ‘영원한 언약’이라는 점에서는 새로운 언약입니다. 귀향민들은 언약 관계 안에서 여호와께서 주시는 화평을 맛보며 살게 됩니다. 화평의 언약이 영원한 언약이 되는 근거는 여호와께서 당신 ‘성소’를 그들 가운데 영원히 세우시기 때문입니다(26b). 축복과 구원의 보루인 여호와의 성소가 영원히 세워지기에 화평이 영원히 보장됩니다. 회복된 관계를 특징짓는 여호와의 임재가 반복적으로 언급됩니다.

27절에서는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위에?)’ 있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진영 한가운데서 광야 세대를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셨던 성막의 하나님처럼 성소의 하나님께서 주변의 모든 위험에서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평안의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28절의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에 있으리라’는 26b절의 반복인데, 동사 ‘세우다’ 대신 동사 ‘있다’를 사용해 성소의 실존을 한층 강조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 성소를 영원히 귀향민들 가운데 ‘세우셔서’ 당신 성소가 영원히 그들 가운데 있게 하십니다.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이 ‘영원히’ 그분의 백성 가운데 있기에 야곱의 자손들은 ‘영원히’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그분의 종 다윗은 ‘영원히’ 그들의 왕(통치자)이 되며, 화평의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 됩니다. 여호와의 성소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음을 보고 민족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임을 알게 됩니다.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36:20)라고 이스라엘을 조롱하던 민족들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하셨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에스겔의 문맥에서, 회복된 이스라엘 가운데 여호와의 성소가 영원히 있으리라는 약속은, 한편으로는 8-11장에서 선포된 성전의 파괴가 극복되었음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40:1-44:2에 나오는 새 성전의 환상을 예비해줍니다.


하나님께서 마른 뼈를 살리시는 능력을 통해 회복과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절망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일으키실 것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생명을 주시고,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십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도 회복과 변화를 이루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결국, 이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과 믿음을 주며,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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