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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40-02)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의 삶

출애굽기 40장 17-38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우리의 신앙을 깊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며,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중요한 실천입니다. 순종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내적 평안과 변화를 얻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순종하는 삶은 단순히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 모세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실행한 것을 보고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순서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모세의 철저한 성막 건설의 이행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형식문을 통해 확증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32). 성막이 모두 지어지자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케 되었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성막 위에 내려왔습니다.

 

성막 조립의 실행(17-19)

신앙 생활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방향을 정확히 지키며 나아가는 것이 신앙의 기본입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지침을 따라 살며,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7둘째 해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니라 18모세가 성막을 세우되 그 받침들을 놓고 그 널판들을 세우고 그 띠를 띠우고 그 기둥들을 세우고 19또 성막 위에 막을 펴고 그 위에 덮개를 덮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17-19)

 

하나님께서 성막 조립을 명령하신 대로 모세는 순종합니다. 출애굽 한 해를 원년으로 삼아 둘째 해 1월 1일의 일입니다. 먼저 벽을 세우기 위해 널판들을 견고히 세울 받침대들을 널판들 아래에 끼웁니다. 널판들을 마치 레고처럼 조립하여 세운 뒤, 입구인 동쪽을 제외한 삼면의 널빤지 벽에 각각 다섯 개의 봉을 지지대로 끼워 견고한 벽이 되게 했습니다(18). 그리고 내성소 입구와 지성소 입구에는 기둥들이 세워졌습니다(18).

고급 실들로 짠 첫 번째 앙장막 위에 두 번째 염소 털 앙장막이 덮였고, 세 번째 막으로 붉게 물들인 숫양의 가죽이 그 위를 덮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마 장식 덮개였을 것으로 추론되는 해달 가죽이 얹혀졌습니다. 성막은 우리에게 많은 상징적 교훈을 전해줍니다.

현재의 본문과 관련해서 한 가지 예로, 세 겹 내지 네겹으로 회막 전체를 가리는데, 그중에서 바깥을 제일 싼 가죽 덮개로 덮었다는 것은 분명 신학적 시사점이 있는 듯합니다. 여러 겹의 막들은 하나님의 현현을 겹겹이 둘러싼 구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현의 구름 가장 바깥 부분에서는 가장 희미하게 그분의 영광이 드러날 뿐입니다.

지성소와 맞닿은 가장 안쪽의 최고급 양창막에 비해 가장 바깥쪽의 가죽 덮개들은 가치가 크게 떨어졌는데 거룩의 등급이 현저히 낮았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연결할 점이 있는 듯합니다. 고운 풍채도 아름다운 것도 없는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실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사 53:2; 요 1:10,26,31). 또한 그분은 자신의 영광을 스스로 비우고 내려오신 그리스도십니다(빌 2:7).

외적으로 볼품없으셨던 그분은 하나님의 성전 자체로 오셨으며 내면의 영광의 광채를 발하며 세상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예배당 건물의 화려함을 추구하기보다 그 내부를 가장 고결하고 영광스러운 신자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장식들로 채우고 꾸며야 할 것입니다.

 

각 구역별 다양한 비품들의 배치(20-33)

우리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임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예배와 기도의 자리를 성실히 지키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임재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의 삶을 정결하고 성결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신앙 생활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고, 그분의 영광을 우선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0그는 또 증거판을 궤 속에 넣고 채를 궤에 꿰고 속죄소를 궤 위에 두고 21또 그 궤를 성막에 들여놓고 가리개 휘장을 늘어뜨려 그 증거궤를 가리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22그는 또 회막 안 곧 성막 북쪽으로 휘장 밖에 상을 놓고 23또 여호와 앞 그 상 위에 떡을 진설하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24그는 또 회막 안 곧 성막 남쪽에 등잔대를 놓아 상과 마주하게 하고 25또 여호와 앞에 등잔대에 불을 켜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26그가 또 금 향단을 회막 안 휘장 앞에 두고 27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28그는 또 성막 문에 휘장을 달고 29또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그 위에 드리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30그는 또 물두멍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거기 씻을 물을 담으니라 31모세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기서 수족을 씻되 32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제단에 가까이 갈 때에 씻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33그는 또 성막과 제단 주위 뜰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휘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20-33)

 

여러 차례 지시되고 모세에게 재차 명령된 그대로 성막의 여러 시설물들과 비품들이 제자리에 정확히 배치되었습니다. 비품들은 ‘명령대로’ 정확하게 사용되었습니다(20-30). 또한 모세와 제사장들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성막에서 직무를 수행할 때 ‘명령대로’ 반드시 손발을 씻었습니다(31-32).

반복적인 형식문인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32)가 다시 강조됩니다. 이러한 명령-순종 형식문(formula)은 사실 성막 건설 기사에서 여러 차례 반복됩니다(출 32:28; 39:1,7; 39:32; 39:42).

이런 반복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모세가 하나도 빠트림 없이 정확히 하나님의 명령을 준수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불순종은 금송아지를 낳았으나 철저한 순종은 성막의 완벽한 건축으로 이어집니다.

 

성막에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과 불-구름(33b-38)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그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택이나 결정을 내릴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그분의 뜻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신앙 생활에서 하나님의 방향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길을 밝히고 안정감을 줍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순종하는 삶이 열매를 맺게 됩니다.

 

34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36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37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38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34-38)

 

기둥 성막 건설이 완료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구름이 회막을 덮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을 가득 채웠습니다(34b). 이 현상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하나님께로의 접근이 최대한 허용된 모세마저 일시적으로 회막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35).

이 영광의 발현은 장엄한 구름기둥의 출현과 불가분리의 동시적 현상입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에 동반하는 가장 대표적인 현상으로 구름 자체가 마치 하나님의 선두 마차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곧 구름의 이동은 하나님의 이동이었고, 구름의 멈춤은 하나님의 멈추심이었습니다. 백성들은 구름을 따라 움직였습니다(36-37).

한편,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두 가지 다른 종류의 기둥들이 아니라 합체된 하나의 기둥이라는 것을 38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참조, 출 14:24; 민 9:16). 즉, 강력한 광채가 나는 화염을 두터운 구름이 바깥에서 감싼 형태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것이 낮에는 밝은 태양으로 인해 짙은 구름으로 보이고, 밤에는 구름은 보이지 않고 구름을 뚫고 나온 화염이 불기둥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상적인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과 불-구름 기둥에 대한 언급은 출애굽기를 마무리하는 매우 적절한 진술입니다. 구름이 떠오를 때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분해해서 포장한 뒤 이동했다는 진술은 시내산을 떠나기 직전인 민수기 9:15-22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출애굽기와 민수기가 독자적인 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연속된 책으로 읽어야 한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우리는 이 구름의 이동과 그것을 따르는 백성들의 행진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백성들의 삶입니다. 불-구름 기둥은 광야를 행진하는 백성에게 마치 하나님의 내비게이션과 같았습니다. 백성들은 구름이 인도하는 대로 가야 했습니다. 구름의 방향이 오른쪽으로 꺾이면 발걸음도 그쪽으로 옮기고, 구름이 멈추면 거기서 멈춰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백성의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출애굽기의 가장 중요한 단어들이라 할 수 있는 ‘거룩’과 ‘영광’의 개념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해야 합니다. ‘거룩(holiness)’은 히브리어 ‘카도쉬’ 혹은 ‘코데쉬’인데 이것은 두 가지 개념을 내포합니다. 첫째는 분리성, 둘째는 완전성입니다. 둘을 합해서 한 가지 개념으로 묶자면, 저 너머로 분리되어 떨어져 지극히 고결한 상태, 즉 절대적 정결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거룩은 신적인 영역에 속한 것으로서 인간과 근원적 유격을 두고 저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 속성의 본질입니다. 불완전하고 흠과 결함이 있는 세속의 영역 너머에 존재하는 완전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거룩은 ‘분리성’(separation), ‘완전함’(completeness), ‘온전함’(wholeness), ‘무흠’(without blemish)의 개념을 포함합니다.

이 거룩의 속성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만 속합니다. 하나님만이 홀로 거룩하십니다(삼상 2:2; 계 15:4). 다른 어떤 피조물도 스스로 또는 내재적으로 거룩의 속성을 지니지 못합니다. 피조물은 자신의 능력으로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는 그것을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수행과 명상의 실천을 독려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만이 홀로 거룩하시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께로부터 거룩을 부여받을 뿐이다. 인간은 그분이 거룩하게 해주셨을 때 거룩한 존재가 됩니다. 성막은 그분이 거룩케 해야 거룩한 집이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분이 성민으로 삼아주셔야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며, 제사장들 또한 거룩한 기름을 부어주셨을 때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곧 ‘구원’의 다른 개념입니다. 구원도 거룩처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이란 무엇입니까? 영광은 히브리어로 ‘카보드’인데 기본 의미는 ‘무거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거룩의 외적인 현시입니다. 즉, 거룩은 내재적 본질에 속하고 영광은 그 본질의 외적 발현인 것입니다. 이것은 다양한 방법으로 현시됩니다. 영광은 구름, 불과 광채, 바람, 우레와 번개, 진동, 나팔 소리와 같은 초자연적인 물리적 현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출 16:10; 19:16;24:16-17;40:34; 신 5:4; 왕상 8:11), 또는 법궤 자체가 그분의 영광에 대한 표현이었습니다(삼상 4:21-22). 더불어 압도적 사건, 곧 그분의 위대한 업적과 기적도 그 영광의 현시였습니다. 출애굽기 16:7에서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라’라고 말하는데, 매일 아침 만나를 주시는 기적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광을 드러냄의 절정에 이른 것이 바로 성막입니다. 성막은 삼중으로 구분된 영역으로 나타나는 거룩의 등급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을 충만히 드러냈고, 또한 광채 나는 금은보석과 최고급 재료를 사용한 비품들과 시설물들을 통해 그분의 영광이 충만히 발현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장엄한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임재로 성막은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찬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들이 성령으로 충만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참된 성전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성막의 건축과 하나님의 임재, 인도하심을 통해 신앙의 중요한 원칙을 가르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삶에 충만하게 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금 되새기며, 우리의 신앙 생활을 점검하고, 하나님의 뜻을 더욱 깊이 이해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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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40-01)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성막의 완성

출애굽기 40장 1-16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서 중보하십니다. 우리는 또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리며, 하나님께 나아가고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는 다리가 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며,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 성막의 모든 시설물들과 비품들, 제사장의 옷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이것들을 조립하고 배치하고 옷들을 입히는 절차가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 건립일을 1월 1일로 정하십니다. 성막 건설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며, 이스라엘은 성막과 더불어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성막의 조립과 물품들의 배치(1-8)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만남을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렇게나, 아무 장소에서나 만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예배, 기도, 그리고 삶 자체가 하나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정결하게 하고, 그분의 임재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너는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3또 증거궤를 들여놓고 또 휘장으로 그 궤를 가리고 4또 상을 들여놓고 그 위에 물품을 진설하고 등잔대를 들여놓아 불을 켜고 5또 금 향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 성막 문에 휘장을 달고 6또 번제단을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놓고 7또 물두멍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놓고 그 속에 물을 담고 8또 뜰 주위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휘장을 달고(1-8)

 

모든 비품과 시설물들, 제사장의 옷들도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하나님께서는 정월 초하루, 즉 출애굽 후 제2년 1월 1일에 성막을 조립하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2). 특히 비품들의 위치가 정확히 지시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관유 바르기입니다. 아무리 비품이 제 위치에 바르게 놓여 있다 해도, 관유로 그것을 거룩하게 하지 않으면 성물로 바뀌지 않았으며, 제 기능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성막이 준공된 날은 애굽에서 나온 둘째 해 1월 1일입니다(40:17). 성막의 조립이 하루 만에 마칠 수 있을 만큼 어렵지 않았거나, 1월 1일에 시작되어 며칠 동안 조립이 진행되었을 수도 있습니다(참조. 출 29장과 레 8장에서 제사장 위임식이 8일간 진행됨). 아마 쉬운 조립과 이동을 위해 만들어진 성막 비품들의 성격을 볼 때 짧은 시간에 조립이 충분했을 것으로 보이며, 이후 성막 봉헌식과 제사장 위임식이 일주일간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1월 1일은 새해이면서,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고 이스라엘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날은 하나님의 영의 역사로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진 새로운 창조의 날입니다. 하늘 왕의 지상 궁전에서 그분의 지상 통치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조립된 건물에 가장 중요한 비품인 증거궤가 먼저 배치됩니다(3). 지성소에 들여놓고 그룹들이 수놓아진 수려한 휘장으로 그 궤를 가려야 합니다. 이어서 떡상을 내성소에 놓습니다. 떡상 위에 진열한 물품은 문자적으로 ‘진열품’을 의미하는 ‘에레크’입니다. 명사 에레크는 동사 아라크(진열하다, 배치하다)의 파생어입니다. 이 ‘진열품’은 떡상 위에 놓은 떡들을 비롯하여 여러 부속물들을 의미합니다. 25장에서 우리는 이 부속물들의 정체와 기능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습니다. 이어서 등잔대를 배치한 뒤 일곱 개의 등잔에 불을 켰습니다(4). 마지막으로 금 향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 나서 가림막(휘장)을 걸어 외부에서 내성소를 볼 수 없도록 차단합니다.

지성소에는 법궤가 내성소에는 떡상, 금 등잔대, 향단이 각각의 위치에 배치되었습니다. 흔히 떡상이 법궤에 이어 두 번째로 언급되는 이유로(35:10-22;23-30; 37:1-9; 민 4:5-6), 떡상의 중요성이 등잔대와 향단보다 더 컸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성소의 대표 기물이자 가장 중요한 비품은 향단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짐승의 피가 주로 마당의 번제단에(레 4-5, 12-15장), 내성소에 뿌려질 때는 향단뿔에(레 4장), 1년에 한 차례 대제사장에 의해 지성소의 속죄소(속죄판, 레 16장)에 뿌려진다는 점에서 가능한 추론입니다. 이것은 짐승의 피가 뿌려졌던 번제단과 향단과 법궤, 이 세 가지가 각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대표 기물이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마당에는 번제단을 먼저 중앙에 놓고 물두멍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배치합니다(6-7). 물두멍에도 즉시 물을 채워 넣어야 하며, 이어서 뜰 사방에 기둥을 세우고 걸개를 걸어 울타리를 만듭니다. 성막의 비품들이 함부로 배치되어선 안 되므로, 본문은 비교적 상세히 각 품목들이 놓여야 할 위치를 적시해주고 있습니다. 만일 성물이 다른 곳에 놓인다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예컨대, 금 향단이 북편 벽 쪽으로 놓이고, 진설병이 지성소 휘장 앞에 놓인다면, 떡상의 떡과금 향단의 향연은 아무런 효력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예배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배의 요소들인 찬송과 기도, 헌금과 설교들이 적절한 시간에 고유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짜임새 있게 예배를 구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과 태도의 바른 배치일 것입니다. 예배의 형식은 다양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배치가 어긋난다면, 그 예배는 금 향단과 진설병의 위치를 제멋대로 바꾼 것처럼 자기중심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예배로 전락할 것입니다.

 

성막과 기물들에 관유를 바름(9-11)

거룩함이란 단순히 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로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심지어 우리의 생각까지도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9또 관유를 가져다가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 10너는 또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 하라 그 제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11너는 또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9-11)

 

우리의 예배는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헛된 예배가 될 것입니다. 성막의 기물들을 제대로 배치했다 하더라도, 거룩한 기름이 발라지지 않으면 하나님께 사용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바르게 배치되었더라도,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예배는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1) 성막과 비품의 거룩화(9)

 

각 시설물들의 조립을 마친 뒤, 관유를 성막의 구석구석 모든 시설물과 비품들에 바릅니다. 이 관유로 인해 성막 전체와 각 공간에 비치된 모든 비품들이 거룩해집니다. 물론 인간과 사물의 궁극적인 거룩은 29:43-44에서 살핀 대로, 거룩의 근원이신 하나님 자신에게서 비롯됩니다. 최종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성막 비품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관유는 단지 거룩성을 유발하는 매개물일 뿐 신적 개입 없이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거룩의 궁극적 근원(10-11)

 

이것은 법궤를 비롯한 다른 기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그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 물건들이 자동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보장하고 스스로 역사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또 다른 우리 예배에의 적용점이 있습니다. 설사 아무리 성막의 기물들을 제대로 정확히 배치했다 하더라도, 거룩한 기름, 관유가 발라지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비품을 직접 거룩하게 만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물건들은 하나님의 예배에 사용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름부음이 없는 향단에 아무리 값비싼 향료를 피워도 하나님께 올라가지 않습니다. 관유로 거룩하게 만들지 않은 등잔대의 등불은 아무리 환하게 빛을 발한다 해도, 하나님께는 의미가 없는 빛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고, 우리 마음의 배치를 바르게 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예배 중에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그것은 헛된 예배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아론과 제사장들에게 관유로 기름부음(12-16)

우리는 하나님께 구별된 자들로서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거룩함은 단지 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그분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씻음을 받았고,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로서, 우리의 삶이 거룩함으로 가득 차기를 원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행동이 하나님께 드려진 것임을 항상 기억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12너는 또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13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가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14너는 또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15그 아버지에게 기름을 부음 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 그들이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하시매 16모세가 그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12-16)

 

관유를 머리에 부어 바르는 제사장 위임식은 제사장 직분의 핵심 절차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거룩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준비시킵니다. 제사장 위임식 후, 제단에서 최초의 희생 제사들이 드려지고, 하나님께서는 신적 불로 제사들을 받아주셨습니다.

 

(1) 제사장 위임식과 관유의 사용(12-13)

 

관유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머리 위에) 발라져 그들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것은 제사장 위임식 절차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막 문 앞에서 목욕을 시킵니다(12). 아마 물두멍 주위는 번제단에 의해 외부 시선이 차단되는 제사장의 활동 공간으로 그곳에 칸막이용 간이 시설물이 있어 목욕도 그곳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론됩니다. 여기서 기름을 머리에 바르는 행위는 출애굽기 29:7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일단 기름을 머리 위에 부은(야차크) 뒤에 바른(마샤흐) 것이 명백합니다: “관유를 가져다 그의 머리에 부어 바르고” 이것은 또한 뒤에 이어지는 30:32-33절의 “사람의 몸에 붓지(수크 10) 말며”를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따라서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바르다’가 타당한 번역일 것입니다. 대제사장 아론만 기름을 부은 것이 아니고, 그의 아들들도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2) 기름부음의 의미와 제사장 직분(14-16)

 

그리하여 모든 제사장은 ‘기름부음 받은 자’(마쉬아흐 메시아)가 되어 성전에서 거룩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아론 가문의 후손들은 이렇게 대대로 영원히 제사장 가문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성전의 직무를 감당했습니다. 사실 앞서 출애굽기 29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또한 레위기 8장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성막이 조립된 직후 성막 봉헌식과 제사장 위임식이 함께 거행되었다 하더라도 하루에 그 행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 위임식은 일주일간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레 8:33). 이 제사장 위임식은 그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거기서 다양한 제물들이 바쳐지며 독특한 의례들이 거행됩니다. 이렇듯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제사장 위임식의 모든 내용들을 생략하고 현재의 본문은 간단히 그들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기름을 부어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도록 했다고 보고합니다. 이것은 제사장 위임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관유를 그들에게 바르는 일, 즉 ‘기름부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 위임식을 마친 후, 레위기 9장에서 8일째에 비로소 이미 관유를 부어 봉헌된 제단 위에서 희생제들이 최초로 드려집니다. 그 최초로 드려진 희생 제사들과 더불어 성막의 제단이 최초로 가동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적 불을 내려 즉각 그 제물들을 태우심으로써 그 제사들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거룩함, 그리고 순종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시기 위해 성막을 세우도록 하셨고, 그 성막을 통해 그들의 삶 가운데 임재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으며,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준비하고, 거룩함을 유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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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39-02)


순종과 헌신으로 완성되는 하나님의 축복

출애굽기 39장 22-43절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을 경험하는 비결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데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완성하여 모세에게 가져갔을 때, 모세는 그들의 완전한 순종을 확인하고 그들을 축복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상징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성실히 수행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을 깊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완성하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대제사장의 복장 중에 안쪽에 받쳐 입는 것들이 제작됩니다. 에봇 안쪽에 입는 긴 겉옷과 반포(체크무늬) 예복(속옷), 속바지, 머리에 쓰는 두건과 관, 거기에 다는 거룩한 패(성패)와 속바지입니다. 직조법이 간단했던 일반 제사장 옷들이 만들어집니다. 대제사장의 긴 옷은 겉옷으로도 번역됩니다. 가장 바깥쪽에는 대제사장의 특수한 복장이었던 에봇을 둘러 입었습니다.

 

에봇을 받치는 겉옷의 제작(22-26)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말씀에 따라 우리의 삶을 설계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이끄는 지침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그 말씀은 우리의 발에 등불이 되고 길을 밝히는 빛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우리가 순종할 때,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22그가 에봇 받침 긴 옷을 전부 청색으로 짜서 만들되 23그 옷의 두 어깨 사이에 구멍을 내고 갑옷 깃 같이 그 구멍 주위에 깃을 짜서 찢어지지 않게 하고 24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그 옷 가장자리에 석류를 수 놓고 25순금으로 방울을 만들어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석류 사이사이에 달되 26방울과 석류를 서로 간격을 두고 번갈아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달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22-26)

 

에봇을 받쳤던 겉옷은 긴 옷이었으며 전체가 청색이었습니다. 머리를 집어넣어 입는 단추가 없는 통옷이었으며, 긴 옷 아래쪽에 석류를 수놓고 많은 석류 사이마다 금방울을 달았습니다. 수놓아진 석류와 금방울이 몇 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금방울은 대제사장이 걸을 때마다 소리를 냈습니다.

28장에는 이 부분 뒤에 다음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올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28:35). 대제사장은 1년에 속죄일 하루만 지성소에 들어가는데 그날은 오히려 하얀 세마포 옷으로 바꿔 입고 들어갑니다(레 16:3-4). 그 옷은 금방울은 물론 아무런 장식이 없는 순백색의 소박한 옷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성소에서 방울 소리가 나는지 여부로 대제사장의 사망 여부를 판단했다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대제사장은 평일의 성전 직무 중에 자신의 복장을 입었기에 매일 그의 옷에서 방울 소리가 여기저기서 났습니다. 금방울 소리는 대제사장이 특히 내성소에서 입장할 때 그가 죽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기능을 했습니다(28:35). 추정컨대 방울 소리가 하나님 앞에 들려 극도로 위험한 내성소의 공간에서 그분의 자비를 구하는 기능을 했을지 모릅니다.

성막 내에서 대제사장이든 일반 제사장이든 사망하면 제사장들은 그 시체를 만져선 안 됩니다. 제사장은 어떤 시체도 심지어 부모의 시체도 만지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레 21:1,11). 그러나 내성소에는 일반인은 물론 심지어 레위인도 들어갈 수 없고 제사장만 들어가며, 지성소에는 오직 대제사장만 들어갑니다. 만일 내성소에서 제사장 중 하나가 죽거나,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이 돌발사를 했다면, 도대체 어떻게 누가 그 시체를 운반할 수 있었습니까? 이런 문제로 인해 과거 어떤 유대 랍비들은 아무도 회막 안에 들어갈 수 없었기에 그 경우 제사장의 시체들이 저절로 밖으로 굴러 나오는 기적이 발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레위기 10장에서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사망했을 때도 송장이 저절로 굴러 나왔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언제나 예외적 상황에서는 응통성 있게 적용되고 유연성 있는 예외적 사례를 허용했습니다. 제사장이 내성소에서, 심지어 지성소에서 사망하면, 아마 다른 제사장은 송장과의 접촉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레위인들이 합법적으로 회막 안으로, 심지어 지성소 안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한편, 이것은 민수기 4:5-20에 근거하여 다른 방식의 설명이 또한 가능합니다. 그것은 성막의 기물과 시설물들을 분해해서 옮기는 규정입니다. 회막 비품들의 운반 책임은 레위 지파 중 고핫 자손들에게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성물들을 운반하며, 심지어 법궤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고핫 자손이 운반하기 전에 제사장들이 법궤와 향단, 등잔대, 떡상 같은 성물들을 삼중 사중으로 철저하게 보자기로 덮었습니다. 특히 법궤는 지성소 휘장으로 일단 그것을 덮은 뒤, 해달의 가죽으로 다시 덮고 청색 보자기로 마지막으로 덮었습니다(4:5-6). 이렇게 몇 겹으로 덮인 비품들을 고핫 자손들이 채로 어깨에 메어 운반했습니다. 고핫 자손은 결코 성막 내부에 들어와 성물을 만지면 안 되며 심지어 내성소 내부를 쳐다보아서도 안 되었습니다. 내성소의 거룩한 비품들을 보면 사망했기 때문입니다(민 4:20). 따라서 제사장들이 먼저 성물을 몇 겹으로 덮어야 고핫 자손의 내성소 입장이 가능하게 되어 성물을 운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원칙이 제사장의 돌발사에 적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제사장들이 먼저 모든 거룩한 비품들을 가리고 난 뒤 송장을 치우도록 레위인들의 입장을 허락했을 것입니다. 만일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이 돌연사했을 경우 법궤를 몇 겹으로 덮으면 지성소 입장도 무리가 없었습니다. 물론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사망했을 때에는 민수기 4장의 성막 운반법이 아직 제정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 사고에서는 앞서 말한 대로 그것이 특별한 비상 상황이었기에 시체 처리반이었던 고핫 자손 미사엘과 엘사반의 회막 입장이 가능했는지 모릅니다(레 10:4). 그것이 아니라면, 민수기 4장의 법이 이 사고에 미리 적용되었을 수 있다. 참고로 어떤 학자는 나답과 아비후가 마당에서 다른 불로 분향을 하다 심판의 불을 맞아 즉사했다고 추론하나(Milgrom), 이어지는 레위기 10:9의 “회막에 들어갈 때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경고는 그들이 내성소에서 사망했음을 말해줍니다.

 

일반 제사장 옷과 성패의 제작(27-31)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할 때, 우리는 성취와 기쁨을 얻습니다. 일상과 사역에서 맡은 일을 완수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 그 속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우선으로 두고 나아갑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완성에 이르게 됩니다.

 

27그들이 또 직조한 가는 베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짓고 28세마포로 두건을 짓고 세마포로 빛난 관을 만들고 가는 베 실로 짜서 세마포 속바지들을 만들고 29가는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수 놓아 띠를 만들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30그들이 또 순금으로 거룩한 패를 만들고 도장을 새김 같이 그 위에 ‘여호와께 성결’이라 새기고 31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전면에 달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27-31)

 

본문은 일반 제사장 옷에 대한 설명입니다. 성전 안에서 제사에 적합하게 설계되었고, 가슴의 성패는 순금으로 만들어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대제사장의 관에 매달렸습니다.

 

(1) 일반 제사장의 복장(27)

 

매우 단순했던 일반 제사장의 복장이 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대제사장이 입었던 청색 겉옷과 에봇은 입지 않았습니다. 대신, 단순히 하얀색의 반포 예복(속옷)만을 걸쳤습니다(27).

 

(2) 제사장 두건과 속바지(28-29)

 

일반 제사장들은 세마포로 만든 두건과 관을 만들어 써야 했습니다. 또한 가는 베실로 짠 세마포 속바지를 입었습니다(28). 유일하게 청색, 자색. 홍색 실이 사용된 복장 요소는 허리띠입니다(29). 모든 제사장들은 자신의 복장에 속바지를 추가로 착용했습니다. 모든 제사장들은 제단에 올라갈 때, 그리고 내성소에 입장할 때 하체가 노출되지 않도록 속바지를 반드시 착용해야 했습니다. 수시로 마당의 제사를 드려야 했고 정기적으로 본당의 직무를 수행해야 했으므로 항시 착용했을 것으로 추론됩니다.

 

(3) 순금 성패와 그 기능(30)

 

30절의 순금 성패는 작은 크기였습니다. 그 성패 위에 정교한 인장 기술로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문구가 새겼습니다. 이 성패는 청색 끈으로 대제사장의 머리에 쓴 관의 정면에 매달았습니다. 이 성패의 기능은 출애굽기 28:39에서 설명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제사장 옷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사장 옷은 거룩한 옷, 영광의 옷이었습니다. 특히 대제사장 옷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신약은 여러 곳에서 우리 성도들에게 ‘옷을 입으라’는 교훈과 명령을 합니다. 성도들은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롬 13:12). 이는 성도들의 영적 싸움을 독려하는 군사적 언어로 읽힙니다. 이어서 바울은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말하며,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에서 우리의 대제사장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장이 입혀졌다는 의미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 옷은 가장 비싼 실과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기술로 짠 옷이었으며, 많은 보석과 치장들로 장식된 장엄하고 아름답고 화려한 옷이었습니다. 이것이 신자의 영광스러움입니다.

 

모든 작업들의 완료(32-43)

하나님 앞에서 충성과 헌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의 헌신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수한 마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부분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그 부분에 충성을 다할 결단이 필요합니다.

 

32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마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고 33그들이 성막을 모세에게로 가져왔으니 곧 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갈고리들과 그 널판들과 그 띠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34붉은 물을 들인 숫양의 가죽 덮개와 해달의 가죽 덮개와 가리는 휘장과 35증거궤와 그 채들과 속죄소와 36상과 그 모든 기구와 진설병과 37순금 등잔대와 그 잔 곧 벌여놓는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와 등유와 38금 제단과 관유와 향기로운 향과 장막 휘장 문과 39놋 제단과 그 놋 그물과 그 채들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40뜰의 포장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뜰 문의 휘장과 그 줄들과 그 말뚝들과 성막 곧 회막에서 사용할 모든 기구와 41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한 옷 곧 제사 직분을 행할 때에 입는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의 아들들의 옷이라 4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마치매 43모세가 그 마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모세가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32-43)

 

제사장 옷의 제조가 완료된 후, 모든 작업이 목록별로 철저히 점검되었으며, 이는 하나님의 성막 건설의 철저함을 강조합니다. 마지막 구절은 천지창조와 유사한 패턴을 보이며, 성막 건설이 새로운 창조사역과 에덴의 재축조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1) 제사장 옷 제조의 마무리와 점검(32-41)

 

제사장 옷들의 제조를 마무리함으로써 모든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모든 진행된 일들이 목록별로 하나씩 다시 한 번 점검됩니다. 이 과정은 지루할 정도의 문자적 반복이 이루어지지만, 이러한 반복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고대 근동의 흔히 사용된 문학적 기법이지만, 하나님의 성막 건설의 철저함을 잘 보여줍니다. 반복적으로 한 품목씩 거론하고 점검함으로써 빠짐이 없이 모든 일이 정확히 완료되었음을 말해주려는 것입니다.

 

(2) 남은 작업과 주목할 마지막 구절(42-43)

 

이제 이것들을 다음 40장에서 세우고 조립하고 각자의 위치에 배치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여기서 마지막 구절은 매우 주목할 만합니다. 마무리 진술의 어투와 패턴이 마치 천지창조의 하나님께서 반복해서 선포하신 말씀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명령하시어 만물이 조성되었고 생명체들이 창조되었습니다. 창조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보시고 좋다고 선언하십니다. 생명체들에게 복 주시어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모든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42). 그리고 이제 모세가 그것을 ‘본 즉’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차질 없이 완벽히 이루어졌음을 확인합니다. 모세는 그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합니다.

이것이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축복임은 물론입니다. 여기서 성막 건설이 일종의 새로운 창조사역이며, 에덴의 재축조라는 것이 재차 암시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막 건축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하며 충성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갈 때, 그분의 인도하심과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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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39-01)


대제사장의 옷에 담긴 신앙의 교훈

출애굽기 39장 1-21절


 

우리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책임을 다하며, 중요한 결정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헌신, 공동체의 중요성,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결국,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배울 수 있습니다.

 

  • 성막을 위한 제사장의 옷들이 제작되는 과정을 다룹니다. 동일한 본문이 28:1-43에 설명됩니다. 제사장의 옷은 일반 제사장 복장과 대제사장 복장으로 나뉩니다. 대제사장 복장은 대단히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식들이 부착되었던 반면에 일반 제사장의 옷은 매우 단순합니다. 대제사장 복장의 제작은 매우 상세하게 설명됩니다. 그럼에도 제작 방법과 장식품의 부착 방법, 입는 방법이 아주 선명히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제사장 옷들과 에봇의 제작(1-3)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얼마나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까? 직장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는 작은 일 하나하나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는 인식을 가지고, 그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며, 우리가 얼마나 진심으로 그분을 섬기고 있는지를 평가하십니다.

 

1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성소에서 섬길 때 입을 정교한 옷을 만들고 또 아론을 위해 거룩한 옷을 만들었더라 2그는 또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에봇을 만들었으되 3금을 얇게 쳐서 오려서 실을 만들어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에 섞어 정교하게 짜고(1-3)

 

앞서 28:1-3에서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의 거룩한 옷들은 지혜의 영을 받은 기술자들이 제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성막과 마찬가지로 신적 디자인이 된 이 거룩한 옷을 아무나 만들 수 없습니다. 직조공으로서 휘장이나 막을 만들었던 오홀리압이 그 책임을 맡았을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옷이 먼저 제작됩니다. 이것은 일반 제사장의 복장과 큰 차이가 납니다. 일반 제사장의 옷은 매우 단순하고 간소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 복장은 매우 정교하고 복잡했으며 아름다운 장식과 화려한 보석들로 치장되었습니다. 성막의 여러 휘장들을 제작할 때 사용된 최고급 실들이 이 옷을 만드는 주재료입니다.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정교하게 옷감을 직조해서 옷을 만듭니다. 특히 에봇을 만들 때는 여기에 금실이 추가됩니다.

3절은 28장에서 누락된 구체적인 금실 제조법에 대한 언급입니다. “금을 얇게 쳐서 오려서 실을 만들어”라는 표현은 일단 표면적으로 금을 녹인 뒤 망치로 두들겨 매우 얇게 편 다음 잘라서 실을 만든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금은 전성과 연성이 가장 뛰어난 금속입니다. 금 1그램을 무려 1㎡의 넓이로 펼 수 있고(전성), 심지어 첨단기술을 사용하여 3킬로미터까지 가늘게 늘일 수 있다고 합니다(연성). 참고로 2015년도에 덴마크에서 고고학자들이 주전 10-8세기로 추정되는 금실 더미를 발견한 적이 있는데, 매우 얇고 넓적하게 제조된 긴 금실이 실타래처럼 한 덩어리로 뭉쳐 있었습니다. 이것은 출애굽기에서 언급된 제조법에 따른 금실의 모양과 매우 흡사합니다. 조선 시대의 금실 제조법을 참고하면, 질긴 전통 한지의 양면에 매우 얇은 금박을 특수한 아교를 사용하여 단단히 붙인 뒤 날카로운 칼로 실처럼 가늘게 썰어내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고대에도 금을 이렇게 가늘게 만들어 다양한 장신구들을 만들었으며 실을 제작하는 데도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출애굽기에 묘사된 구체적인 금실의 제조 방법을 더 이상 알기는 어렵습니다. 만일 금실을 순금으로 만들어 사용하면 쉽게 늘어나거나 끊어질지도 모릅니다. 질긴 한지를 대서 금실을 제작한 조선 시대의 기술이 이러한 이유 때문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에봇용 금실은 어쩌면 특수한 기술로 얇은 금피를 만든 뒤 가는 실들과 그것을 꼬아서 튼튼한 금실을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제조되었든, 금실은 청색, 자색, 홍색 실과 함께 섞어서 대제사장의 아름다운 에봇 제작에 사용되었습니다.

 

에봇의 장식품들(4-7)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그 몸의 각 부분으로서 서로에게 속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개인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세워주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한 마음으로 모여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역사하시며, 큰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4에봇에는 어깨받이를 만들어 그 두 끝에 달아 서로 연결되게 하고 5에봇 위에 에봇을 매는 띠를 에봇과 같은 모양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에봇에 붙여 짰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6그들은 또 호마노를 깎아 금 테에 물려 도장을 새김 같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을 그것에 새겨 7에봇 어깨받이에 달아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기념하는 보석을 삼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4-7)

 

두 개의 어깨받이가 대제사장의 양쪽 어깨에 얹힙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등 쪽으로 멜빵바지처럼 에봇의 끈 두 개가 올라가 어깨받이 양쪽 끝 모서리에 부착됩니다. 이 끈은 에봇과 동일하게 금실에 삼색 실을 섞어서 만듭니다(5). 가슴 쪽에서는 금사슬이 달려 그것이 흉패와 연결되어, 흉패가 가슴 쪽에 고정됩니다.

또한 띠가 만들어져 에봇을 허리에 묶습니다. 에봇은 아마 치마와 같은 옷이므로 허리를 감는 띠로 묶어야 했습니다. 이 띠는 도복 띠처럼 긴 띠인데 에봇을 둘러 바느질해서 앞부분에서(아마 배꼽 부근) 묶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5절은 그 띠를 짜는 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마찬가지로 28:8). 역시 최고급 실들로 짜서 에봇에 단단히 부착합니다.

6절의 호마노는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는 보석입니다. 두 개의 호마노가 각 어깨받이 위에 부착되었습니다. 금테로 이 보석을 두른 뒤 그 위에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의 이름을 그들이 태어난 순서대로 각각 여섯 개씩 두 보석 위에 새겼습니다. 도장에 새김같이 새기라는 말에서 보석에 이름을 새기는 것도 정교한 기술이 요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호마노 보석 둘은 모든 이스라엘에게 ‘기억의 돌’(기념하는 보석)이 되었습니다(7). 이 기념 보석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들의 뿌리와 역사, 그리고 자신들의 보석과 같은 신분과 더불어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과 복 주심을 기억나게 했을 것입니다.

 

흉패의 제작(8-14)

대제사장이 흉패를 착용함으로써 모든 지파와 공동체를 하나님 앞에 대표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신앙 공동체의 중요성과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섬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의 필요를 돌보고, 함께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8그가 또 흉패를 정교하게 짜되 에봇과 같은 모양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하였으니 9그것의 길이가 한 뼘, 너비가 한 뼘으로 네 모가 반듯하고 두 겹이며 10그것에 네 줄 보석을 물렸으니 곧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 첫 줄이요 11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12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13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이라 다 금 테에 물렸으니 14이 보석들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 곧 그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도장을 새김 같이 그 열두 지파의 각 이름을 새겼으며(8-14)

 

흉패는 대제사장의 가슴 쪽에 부착하는 특별한 비품입니다. 이것은 에봇과 동일하게 금실을 포함한 최고급 색실들로 짰습니다. 가로세로 한 뼘 크기의 정사각형 모양이었습니다. 그 위 네 줄에 각 세 개씩, 총 열두 개의 보석을 달았습니다. 보석의 종류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각 보석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하나씩 기록되었습니다. 이 보석들은 두 가지 기능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각 지파의 이름이 새겨졌기 때문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모두 보석과 같은 존재임을 상기시켜주었을 것입니다. 화려한 보석들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드러내는 기능을 했을 것입니다.

 

흉패 부착법(15-21)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그분의 마음에 새기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작은 존재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시며, 우리의 모든 필요와 상황을 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위해 친히 일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어떠한 어려움이나 고난을 겪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15그들이 또 순금으로 노끈처럼 사슬을 땋아 흉패에 붙이고 16또 금 테 둘과 금 고리 둘을 만들어 그 두 고리를 흉패 두 끝에 달고 17그 땋은 두 금 사슬을 흉패 끝 두 고리에 꿰매었으며 18그 땋은 두 사슬의 다른 두 끝을 에봇 앞 두 어깨받이의 금 테에 매고 19또 금 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두 끝에 달았으니 곧 그 에봇을 마주한 안쪽 가장자리에 달았으며 20또 금 고리 둘을 만들어 에봇 앞 두 어깨받이 아래 매는 자리 가까운 쪽 곧 정교하게 짠 에봇 띠 위쪽에 달고 21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정교하게 짠 에봇 띠 위에 붙여서 에봇에서 벗어지지 않게 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15-21)

 

흉패를 부착하는 소품들이 제작됩니다. 금으로 된 사슬 두 개를 제작하여 에봇 어깨받이의 금 고리에 걸어 대제사장의 가슴 쪽으로 내려오게 합니다. 금 사슬들의 한쪽 두 끝은 에봇 어깨받이에 연결되고, 다른 두 끝은 흉패의 두 모서리에 달린 금 고리에 연결됩니다. 흉패의 아래쪽 두 모서리에도 각각 금 고리들이 있어 거기에 각각 청색 띠를 달아 아래의 허리띠로 연결합니다. 이 허리띠에도 금 고리 두 개가 달려 있었는데, 거기에 두 개의 청색 띠를 각각 묶었습니다(20;참조. 28:27). 이렇게 해서 흉패가 대제사장의 가슴에 부착됩니다. 결론적으로 흉패 네 모서리에 각각 금고리들이 달려 있었으며, 허리띠에 두 개의 금고리가 달려 있었습니다.

반면에 어깨받이에는 고리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28:30에 나오는 흉패에 보관하는 우림과 둠밈이 여기서는 생략됩니다. 우림과 둠밈은 무엇이었습니까? 이것은 레위기 8:8의 제사장 위임식에서 다시 언급됩니다. 먼저 우림과 둠밈의 뜻을 살피면, ‘우림’은 ‘빛나다’를 의미하는 ‘우르’의 복수명사형으로 ‘빛들’이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을 ‘저주하다’를 의미하는 ‘아라르’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빛’이 더 타당한 의미로 간주됩니다. ‘둠밈’은 ‘탐’의 복수로 문자적으로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70인경이 ‘탐밈’을 ‘진리’(truth)로 번역한 것으로 보아 ‘완전함’은 ‘옳은 것’이나 ‘진리’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흉패는 겹으로 되었는데, 주머니처럼 이것들을 담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또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림은 흰색의 돌, 둠밈은 검은 돌이었을 것으로 추론하나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흉패가 “판결의 흉패”라 불리기에 하나님의 뜻과 판결을 구할 때 우림과 둠밈이 사용되었음이 분명합니다(민 27:21). 민수기 27:21과 사무엘상 28:6에서 어떤 중대한 판결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사용됩니다(그 구절들에서는 “우림”만 언급된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판결을 물었습니까? 사무엘상 23:10-12에서 우림과 둠밈이 명시되지는 않으나 다윗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에봇을 가져오라 명령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이 과연 내려올 것인지 하나님께 묻습니다. 사무엘상 30:7-8에서는 에봇이 전쟁의 신탁에 사용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역시 우림과 둠밈을 통해 판결이 내려졌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림과 둠밈이 신탁의 주사위와 같은 것으로 제사장이 흉패에서 둘 중 하나를 꺼낼 때 ‘빛’을 의미하는 우림이 뽑히면 ‘예’이고 둠밈이 뽑히면 ‘아니오’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문제는 둠밈이 ‘빛’의 반대인 ‘어둠’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와 ‘아니오’ 방식의 판결만을 물었을지도 의문입니다. 현재로선 우림과 둠밈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줬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과 순종을 드리는 삶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헌신하며,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세워주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평안과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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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38-02)


하나님께 드려진 금, 은, 동의 가치와 의미

출애굽기 38장 21-31절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헌신이 동등하게 귀중합니다. 우리의 재능, 자원, 시간이 각각 다를지라도, 하나님께 드려진 모든 것은 그분의 계획과 목적에 따라 사용되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쓰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신이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 그분의 임재를 보호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막의 기초와 울타리를 이루는 놋은 우리의 헌신이 교회를 지탱하고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상징합니다.

 

  • 제시한 옷을 제외하고 성막의 모든 시설물들이 완성되었습니다. 여기서 현재의 본문은 성막 건설에서 활약한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직무와 활약을 약술하고, 성막 건설에 들어간 다양한 물품들 중에 금은동의 총량을 요약합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역할(21-23)

성막 건설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의 중심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막 건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소개합니다. 그들의 역할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과 은사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배우게 됩니다.

 

21성막 곧 증거막을 위하여 레위 사람이 쓴 재료의 물목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모세의 명령대로 계산하였으며 22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었고 23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이 그와 함께 하였으니 오홀리압은 재능이 있어서 조각하며 또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수 놓은 자더라(21-23)

 

아론의 네 아들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 가운데(출 6:23; 28:1) 이다말의 활약이 처음으로 언급됩니다. 이다말의 업무는 성막 건축을 위해 인구를 조사하고 백성들에게서 받은 품목별 헌물들을 관리하고 그 양의 총계를 내는 일이었습니다. 21절을 다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은 성막, 곧 증거막 물품의 총량이다.’ 여기서 성막이 증거막(미쉬칸 하에두트)이라 불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민 1:50,53; 10:11에서는 동일한 히브리어가 ‘증거의 성막’이라 번역됨). 이것은 다름 아닌 두 장의 십계명 돌판 때문입니다. 이 돌판은 그 자체로 “증거”라고 불립니다(25:16,21). 하나님께서는 이 증거(판)를 법궤 안에 두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법궤는 “증거궤”라 불립니다(출 25:22; 26:33-34; 레 16:13 등 21회). 이 증거궤가 안치된 성막이 ‘증거막’이라고도 불립니다(출 38:21; 민 1:50; 행 7:44; 계 15:5; 참조. ‘증거의 장막’ 민 9:15; 17:7). 증거판, 증거궤, 증거막은 십계명 때문에 붙은 명칭들입니다. ‘증거’(에두트)는 십계명을 의미합니다.

십계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확인됩니다. 십계명은 무엇에 대한 증거입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의 증거요 징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라는 증거요, 그분은 창조주요 구원자라는 확증입니다. 브살렐은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입니다. 홀은 31:2에서 언급한 대로 출애굽기 17장에서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활약한 인물일 것입니다. 그는 아론과 함께 모세의 팔을 붙들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출 17:10). 하나님께서는 브살렐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케 하시고 지혜와 총명, 지식과 여러 가지 기술을 겸비하게 하셨습니다(31:2-5). 온갖 귀금속을 능숙히 다루고 뛰어난 기술로 보석을 깎고 나무를 조각합니다.

오홀리압이 브살렐의 조력자로 임명됩니다. 뛰어난 조각가요 아이디어맨이었으며, 탁월한 최초 기술, 수놓기 기술, 목공술을 가졌습니다. 그 외에도 두 사람을 돕는 다른 여러 기술자들이 참여했음이 분명합니다(31:6). 그 두 사람은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직절 작업을 하며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다양한 일을 지시하며 작업을 완수했을 것입니다. 수를 놓는 일은 오홀리압의 책임이었지만, 실을 꼬고 베를 짠 여인들의 도움 없이는 그 막대한 양의 작업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35:25-26).

여기서 중요한 것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성령으로 충만했으며, 하나님의 초자연적 은사가 주어져 성막 건설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31:3,6). 그 두 사람만 성령으로 채워졌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모든 기술자들에게 지혜의 영이 부어졌다고 언급되기 때문입니다(31:6). 결국 성막 건설은 하나님이 주도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된 기술자들을 불러 그들을 신적 지혜와 기술로 충만케 하여 성막이 하나님의 설계대로 지어지게 하십니다. 성막과 제사장의 옷은 인간이 디자인한 것이 아니기에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지을 수 없습니다. 디자인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셔야 합니다.

금과 은의 총계와 사용처(24-28)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맡은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주의 깊게 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청지기로서, 주어진 자원을 신실하게 관리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드려진 자원이 낭비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헌물의 중요성과 그 사용처를 강조하며,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드려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직접 감독하시는 방식으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줍니다.

 

24성소 건축 비용으로 들인 금은 성소의 세겔로 스물아홉 달란트와 칠백삼십 세겔이며 25계수된 회중이 드린 은은 성소의 세겔로 백 달란트와 천칠백칠십오 세겔이니 26계수된 자가 이십 세 이상으로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인즉 성소의 세겔로 각 사람에게 은 한 베가 곧 반 세겔씩이라 27은 백 달란트로 성소의 받침과 휘장 문의 기둥 받침을 모두 백 개를 부어 만들었으니 각 받침마다 한 달란트씩 모두 백 달란트요 28천칠백칠십오 세겔로 기둥 갈고리를 만들고 기둥 머리를 싸고 기둥 가름대를 만들었으며

 

금과 은의 총계를 먼저 살핍니다. 성경의 도량형과 더불어 현대의 도량형으로 환산한 것을 나란히 병기하겠습니다. 무게는 “성소의 세겔”로, 이것은 시중의 세겔보다 무게가 더 무거웠을 것인데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1달란트의 무게를 통상적인 34킬로그램으로 간주하고 계산해보기로 합니다. 그 외 현대 도량형에 따른 무게는 다음과 같습니다: 1달란트= 34kg, 1세겔= 11.5g, 1베가 = 은 0.5세겔.

 

a. 금약 1톤: 29달란트 730세겔= 994.4kg,

b. 은 약 3.5톤: 100달란트 1,775세겔= 3,420kg

c. 동약 2.4톤: 70달란트 2,400세겔= 2,394kg

 

금은 모두 자발적으로 바친 것을 모은 총량이며, 은은 20세 이상 모든 성인들에게서 받은 총량이었습니다. 그 숫자가 603,550명이었고 모든 성인 남자는 0.5세겔을 의무적으로 헌납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총량이 대략 금 1톤, 은 3.5톤입니다. 이것은 분명 굉장히 많은 양입니다. 금 값만 쳐도 현재의 시세로 거의 750억 원을 호가하기 때문입니다. 성막의 규모와 금은의 사용 내역에 비추어 볼 때, 전혀 과장된 수치가 아닙니다. 1톤의 금이라 해도 부피는 0.37 입방미터 정도이므로 많은 양은 아닙니다. 금의 사용처를 몇 가지 살펴보면, 회막의 기둥인 수십 개의 널빤지들은 모두 금을 입혔으며, 벽을 만들기 위해 널빤지를 세워 연결했던 두툼한 연결고리들은 모두 순금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또한 등잔대 하나에만 1달란트(34kg)의 금이 사용되었고, 법궤위의 속죄소 자체도 금덩어리였습니다. 현재의 본문은 금의 사용처에 대해서는 침묵하나 은의 사용처는 몇 가지를 보고합니다. 은은 금속 중 가장 많은 100달란트 1,775 세겔의 양이 모아졌습니다. 가장 많은 양의 은이 사용된 비품은 회막 벽을 짠 널판들의 받침들과 지성소 휘장을 걸었던 기둥들의 받침들이었습니다(27). 이것은 총 100개로 100달란트의 은이 사용되었습니다. 남은 1,775 세겔의 은이 마당을 둘러친 기둥들의 갈고리와 머리 싸개, 기둥 가름대에 사용되었습니다(28).

 

동의 총계와 사용처(29-31)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진 헌물의 중요성과 그 사용에 담긴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중심으로 한 설교는 헌신, 헌물의 목적,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진 것의 소중함에 대해 다룰 수 있습니다. 본문은 성막 건설을 위해 사용된 동, 즉 놋의 총계와 그 사용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9드린 놋은 칠십 달란트와 이천사백 세겔이라 30이것으로 회막 문 기둥 받침과 놋 제단과 놋 그물과 제단의 모든 기구를 만들었으며 31뜰 주위의 기둥 받침과 그 휘장 문의 기둥 받침이며 성막의 모든 말뚝과 뜰 주위의 모든 말뚝을 만들었더라(29-31)

 

동은 70달란트 2,400세겔인데 현대의 도량형으로 약 2.4톤입니다. 놋의 사용처는 기둥들의 받침대와 말뚝, 놋 제단과 비품들, 그리고 물두멍입니다. 모두 마당에 있는 비품들과 골조들입니다.

 

● 성막에 소요된 귀금속을 통해 본 성막의 위용

앞서 35:20-29에서 성막 건축을 위해 예물과 귀금속을 자발적으로 헌납한 이야기에서 살펴본 대로, 성막의 규모는 사실 다른 국가들의 위대한 신전에 비해 매우 작고 초라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입성하여 건축한 성전 또한 별로 큰 규모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비록 공간은 작았으나, 자신의 성막/성전이 자신의 영광과 임재를 나타내도록 최대한 화려한 상징적 장식들과 금은보화로 꾸미도록 하셨습니다. 소요된 금은의 총량은 금이 약 1톤(약 30달란트), 은이 약 3.4톤(약 100달란트)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국의 신전들을 꾸몄을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금은 보석과 비교할 때 내세울 만한 수준은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참고. 30:20-29에서 언급한 이방 신전들의 규모들).

이것은 이방 신전에 대해서만이 아닙니다. 인간왕들의 왕궁과 무덤의 규모도 놀라웠습니다. 이집트 룩소(Ruxor) 서편의 사막에 위치한 왕들의 무덤들은 모두 도굴을 당했으나, 투탕카멘의 무덤만은 도굴을 면했습니다. 그의 무덤에서 발굴된 금은보화로 장식된 소장품은 무려 약 삼천사백 점이나 되었습니다. 그의 몸을 덮은 관이 네 개였는데, 마지막으로 몸을 덮은 관은 나무로 짜서 금을 입힌 금관으로 무게가 110kg이었고, 얼굴을 덮은 순금 마스크는 11kg이었습니다. 그 외 물건들 대부분이 도금되거나 금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투탕카멘 무덤 속 금의 총량은 엄청났습니다. 투탕카멘은 불과 18세에 요절한 왕이었기에 다른 바로들의 무덤에 비해 아주 작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치세 기간이 긴 위대한 왕일수록 무덤이 크고 더 화려했기에 위세를 떨쳤던 이집트 왕들의 무덤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금이 묻혔을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이방 종교들과 달리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자그마한 성막의 절제된 장식으로 충분히 만족하셨습니다. 성막을 성막되게 하고 위대하게 만드는 요소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임재’와 ‘백성들의 열정적인 참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막은 작은 공간이지만 세상의 모든 신전과 성소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웅장한 불과 구름 기둥으로 임재하신 유일한 곳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관심은 성전의 규모에 있지 않고, 백성들의 참여와 열정에 있었습니다(출 25:2).


본문에서는 성막 건설을 위해 드려진 금, 은, 동의 헌신과 그 사용처를 보여줍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께 드려진 모든 헌신이 각자의 역할을 통해 그분의 집을 세우고, 목적을 이루는 데 귀하게 쓰인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헌신이 크고 작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귀히 여기시고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기꺼이 우리의 자원과 재능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헌신은 그분의 영광을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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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38-01)


성막의 뜰과 그 구조의 의미

출애굽기 38장 1-20절


 

예배와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회복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모든 예배와 헌신은 정성스럽고 체계적으로 준비되어야 하며, 공동체의 협력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물두멍의 사용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 자기 성찰과 정결함의 중요성을 상기시킵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께 기쁘게 드리는 예배와 헌신을 통해 공동체와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 성막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번제단과 물두멍이 만들어지고 성막 뜰의 구역을 정하는 울타리가 축조됩니다. 물두멍은 번제단과 울타리에 대한 지침에서는 빠지고 후에 제사장의 실무를 다루는 부분인 향단과 관유 및 향료 제작에 대한 지시 부분에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성막의 세 부분으로 나뉜 공간(지성소, 내성소, 마당)은 안에서 밖으로 나올수록 재료의 가치가 낮아지니다. 마당의 시설물에는 놋이 주재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단 축조와 물두멍 제작(1-8)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죄를 속죄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과 기도가 동일하게 그분의 뜻을 이루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정결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는 번제단과 물두멍의 제작을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깊이 이해해 보겠습니다.

 

1그가 또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었으니 길이는 다섯 규빗이요 너비도 다섯 규빗이라 네모가 반듯하고 높이는 세 규빗이며 2그 네 모퉁이 위에 그 뿔을 만들되 그 뿔을 제단과 연결하게 하고 제단을 놋으로 쌌으며 3제단의 모든 기구 곧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고 4제단을 위하여 놋 그물을 만들어 제단 주위 가장자리 아래에 두되 제단 절반에 오르게 하고 5그 놋 그물 네 모퉁이에 채를 꿸 고리 넷을 부어 만들었으며 6채를 조각목으로 만들어 놋으로 싸고 7제단 양쪽 고리에 그 채를 꿰어 메게 하였으며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었더라 8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1-8)

 

본문에서는 번제단과 그 기구들, 물품을 제작하는 과정이 설명됩니다. 번제단은 조각목으로 제작되어 놋으로 덮였으며, 그 위에는 놋 그물과 기구들이 설치되었습니다. 또한, 물두멍과 그 받침대는 놋으로 만들어졌고, 성막의 여인들이 만든 구리 거울로 만들어졌습니다.

 

(1) 제단의 기본 틀 제작(1-2)

 

마당의 주 제단인 번제단은 조각목으로 틀을 짠 뒤 놋으로 입혔기에 ‘놋 제단’으로도 불립니다. 가로 세로 각 5규빗에 높이는 3규빗입니다. 미터법으로 2.5미터/2.5미터/1.5미터로 크지 않은 규모입니다. 제단의 높이가 낮은 것으로 보아 아래 제단을 받치는 기단이나 홈 둔덕이 있었을 것입니다. 제단 남쪽에 경사로가 만들어져 제사장이 올라가 제사를 수행할 만큼 꽤 높았을 것입니다.

 

(2) 제단 부속물들의 제작(3-4)

 

제단에는 제사를 드리기 위한 여러 비품들이 필요했습니다. 모든 비품의 재료는 놋입니다. 부삽으로 제단에 쌓인 재를 모으고 통은 그 재를 담는 용기였습니다. 재 버리는 곳은 뜰문 쪽(즉, 동쪽)의 제단 바로 앞에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재와 짐승의 버리는 부위들을 그곳에 쌓아둔 뒤(레 1:16),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정기적으로 밖으로 내다 버렸습니다(레 6:11).

대야는 피를 받는 사발입니다. 대야의 원어 ‘미즈라크’가 ‘들고) 끼얹다’(자라크)의 파생어인 것에서 확인됩니다. 제사자가 희생 짐승의 목을 따면 제사장은 피를 사발에 담은 뒤 제단에 끼얹어 뿌렸습니다.

갈고리는 삼지창 형태로 추정되는데 제단용과 요리용이 별도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단용 갈고리는 제단 위에 놓인 고기를 가지런히 놓고 잘 타도록 정돈하는 데 씁니다.

불 옮기는 그릇은 제단에서 불똥을 담아 내성소의 향단에 분향하기 위한 비품입니다. 이것을 ‘향로’로 칭하기도 합니다. 향단의 재를 매일 아침 청소할 때, 이 그릇에 담아 나왔을 것입니다. 민수기 16장에서 고라 일당은 이 향로를 사용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불법적 향로를 가지고 향을 피우다 순식간에 몰살당했습니다. 합당하지 못한 인간적 예배에 대한 무서운 경고입니다.

놋으로 만든 철망, 즉 모퉁이에 놋 고리 넷이 달린 석쇠는 설치 방법에 대해 이견들이 있으나 4-5절의 묘사에 비추어볼 때 (4절의 “놋 그물을 만들어 제단 주위 가장자리 아래에 두되”) 제단의 중간쯤에 부착된 장식용 철망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2) 채의 제작과 제단 축조법(5-7)

 

제단도 성막을 옮길 때 함께 옮겨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동을 위한 채를 역시 부착해야 했습니다. 제단의 틀은 조각목 널판으로 짠 뒤 놋으로 입혔는데 널판 안쪽은 비워 놓습니다. 고열을 견딜 수 있도록 그 빈 공간은 흙으로 채웠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흙을 제거하면 제단은 무겁지 않아 분해해서 쉽게 이동시킬 수 있었습니다.

다른 성전의 비품들과 더불어 제단도 주요 소모품 중 하나였다고 봅니다. 모든 물건은 수명이 있습니다. 제사장의 옷들은 계속 지어야 했을 것이다. 일부를 제외한 비품들은 얼마간 사용한 뒤 교체했을 것입니다.

특히 번제단은 수많은 제사를 드리므로 조각목이 강한 화력에 많이 손상될 것이기에 정기적으로 식양에 따라 다시 짰을 것입니다.

 

(3) 물두멍 제작(8)

 

놋을 재료로 물두멍과 물두멍의 받침이 만들어집니다. 마당의 비품들이 놋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그것들이 성막 공간에서 거룩의 등급이 제일 낮았음을 말해줍니다. 물두멍을 제작한 놋의 출처는 여인들의 거울입니다. 그들은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인데 아직 회막이 완공되지 않았기에 모순인 듯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33:8 이하의 진영 밖에 임시로 설치된 간이 시설물인 회막을 섬긴 여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완성될 회막 봉사를 위해 미리 내정된 여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이 물두멍의 물로 목욕하라는 지침은 나타나지 않고, 30:19-20에서 보듯이 단지 그들의 손발을 씻고 내성소로 들어가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만일 수족을 씻지 않고 내성소에 들어간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39:20). 수족을 씻는 이유는 제사장 복장을 입은 제사장의 몸 중에서 유일한 노출 부위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사장 복장은 거룩성을 유지하여 오염을 방어하고 견딜 수 있었으나, 제사장의 수족은 노출 상태라 씻은 뒤에 내성소에 입장해야 했습니다. 평일에는 제사장들이 수족을 씻을 뿐이나, 제사장 위임식에서는 임명받는 제사장이 자신의 몸을 씻어야 하고(레 8:6), 또한 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그 물두멍의 물로 목욕을 해야 합니다(레 16:24). 따라서 물두멍의 물의 양은 여러 제사장들이 자주 손발을 씻고 특별한 경우 제사장이 목욕을 하기에 충분할 만큼 되어야 했으며 또한 이 물로 제사 찌꺼기나 오물을 씻는 등 성막을 청소했을 것이기에 결코 적은 양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성막 뜰의 울타리 축조(9-20)

성막의 뜰과 구조는 개인의 헌신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협력과 참여가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교회 공동체는 함께 협력하여 예배를 준비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예배와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행위입니다. 우리는 예배와 헌신을 정성스럽고 체계적으로 드리며,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께 기쁘게 나아가야 합니다.

 

9그가 또 뜰을 만들었으니 남으로 뜰의 남쪽에는 세마포 포장이 백 규빗이라 10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이 스물이니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11그 북쪽에도 백 규빗이라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이 스물이니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12서쪽에 포장은 쉰 규빗이라 그 기둥이 열이요 받침이 열이며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13동으로 동쪽에도 쉰 규빗이라 14문 이쪽의 포장이 열다섯 규빗이요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며 15문 저쪽도 그와 같으니 뜰 문 이쪽, 저쪽의 포장이 열다섯 규빗씩이요 그 기둥이 셋씩, 받침이 셋씩이라 16뜰 주위의 포장은 세마포요 17기둥 받침은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요 기둥 머리 싸개는 은이며 뜰의 모든 기둥에 은 가름대를 꿰었으며 18뜰의 휘장 문을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짰으니 길이는 스무 규빗이요 너비와 높이는 뜰의 포장과 같이 다섯 규빗이며 19그 기둥은 넷인데 그 받침 넷은 놋이요 그 갈고리는 은이요 그 머리 싸개와 가름대도 은이며 20성막 말뚝과 뜰 주위의 말뚝은 모두 놋이더라(9-20)

 

본문에서는 성막의 뜰과 그 구조에 대해 설명합니다. 뜰의 길이는 100규빗, 너비는 50규빗이며, 벽은 세겔로 된 놋 기둥과 세겔로 된 놋 말뚝으로 지탱됩니다. 뜰의 면적은 벽과 기둥의 구조에 따라 구분되며, 제사와 예배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 남쪽과 북쪽 울타리 축조 방법(9-11)

 

성막 뜰의 동서 방향 길이는 100규빗(약 50미터)이다. 뜰 사면은 세마포로 짠 걸개로 울타리를 쳐야 합니다. 세워진 기둥이 20개인데 36:36은 그것이 조각목임을 말해줍니다. 높이는 5규빗(2.5미터)으로 명시되나 가로세로의 두께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기둥의 크기는 가로세로 1규빗입니다. 든든한 받침대가 기둥을 받쳤고, 19절에 보면 위쪽은 은으로 만든 머리 싸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기둥이 20개이고, 길이는 100규빗이므로, 기둥의 간격은 5규빗(2.5미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서쪽 울타리와 동쪽의 뜰문 축조 방법(12-15절)

 

뜰의 서쪽과 동쪽 면은 길이가 50규빗(25미터)이었습니다. 서쪽 울타리는 남과 북의 울타리에 비해 길이가 절반이라 기둥은 열 개가 필요했습니다. 동쪽은 성막의 입구라 약간 형식이 달랐습니다. 가운데 통로가 비어 있는 개방형 입구였을 것으로 추론되며 중앙 통로를 기준으로 양쪽에 기둥을 세 개씩 세워 포장막을 둘러쳤습니다. 중앙 통로로부터 아마 상당한 간격으로 분리되어 설치된 뜰문은 별도의 기둥 네 개를 세워 걸개를 둘러쳤습니다. 아마 제사장만 들어가는 내성소의 가림막이나 1년에 하루 대제사장만 들어가는 지성소의 휘장과는 달리 성막 입구의 통로는 사람들의 빈번한 왕래가 있어서 개방형 입구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3) 울타리 기둥의 부품들과 재료들(16-20)

 

기둥의 받침대는 놋이지만, 상단의 장식과 부품들은 모두 은이었습니다. 머리 싸개와 더불어 위에 붙는 갈고리와 가름대도 모두 은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부품들의 정체는 불분명한데, 가름대는 울타리 포장의 상단을 끈으로 묶는 부품이었고, 기둥에 붙은 갈고리에 그가름대를 걸어 울타리 포장을 펼쳐 세웠을 것입니다. 기둥 받침대의 상단부를 제외하고는 기둥 받침대와 말뚝들도 모두 놋이며, 성막 마당에 설치된 비품들과 시설물들도 놋으로 제작됩니다. 이것은 성막 마당의 거룩의 등급이 낮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증해줍니다. 여기서 추가적인 성막의 논리가 발견됩니다. 지성소의 법궤로 들어갈수록 비싼 재료가 사용되고,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하늘에 계신 여호와를 향해) 비싼 금속이 사용됩니다. 이것은 마당의 기둥들에서도 확인됩니다. 놋으로 칠했던 기둥의 위쪽은 은으로 장식된 머리싸개 장식이 놓여 있습니다(38:17).


성막의 번제단과 물두멍을 포함한 다양한 비품들의 제작을 상세히 설명하며, 하나님의 예배 공간이 얼마나 정교하게 준비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번제단과 물두멍은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중요성과 정결함을 상징하며, 성막의 뜰은 공동체의 협력과 참여가 필수적임을 나타냅니다. 이 본문은 우리의 예배와 헌신이 체계적이고 정성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회복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협력과 참여가 필요함을 상기시킵니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예배와 헌신을 진지하게 준비하며,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께 기쁘게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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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37-01)


하나님의 성막을 위한 정성과 헌신

출애굽기 37장 1-29절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은 정성과 헌신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노력과 정성을 보시며, 이를 통해 신앙이 더욱 깊어집니다. 예배와 봉사는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최고의 정성을 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일상에서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며, 기도와 말씀 묵상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고, 그분의 사랑과 진리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 출애굽기 25:10-40에서 주어진 지침과 명령이 여기서 실행됩니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법궤와 진설상, 뒤에 거론되는 향단과 등잔대가 모두 순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회막 건물 안에 안치된 이 비품들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게 합니다.

 

조각목 궤와 속죄소의 제작(1-9)

우리의 예배와 봉사는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정성과 헌신을 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 재능, 자원 모두가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과 정성을 보시며,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을 더욱 깊이 인도하십니다.

 

1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으니 길이가 두 규빗 반, 너비가 한 규빗 반, 높이가 한 규빗 반이며 2순금으로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만들었으며 3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네 발에 달았으니 곧 이쪽에 두 고리요 저쪽에 두 고리이며 4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5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 궤를 메게 하였으며 6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었으니 길이가 두 규빗 반, 너비가 한 규빗 반이며 7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양쪽에 쳐서 만들었으되 8한 그룹은 이쪽 끝에, 한 그룹은 저쪽 끝에 곧 속죄소와 한 덩이로 그 양쪽에 만들었으니 9그룹들이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었으며 그 얼굴은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였더라(1-9)

 

25-26장의 성막 도면에 대한 설명에서는 법궤와 떡상, 등잔대가 먼저 설명되고 이어 그것을 안치할 막사 제작 방법이 뒤따랐습니다. 건축의 실행 기사에서는 막사가 먼저 지어진 뒤 법궤를 비롯한 내부의 비품 제작이 그 뒤를 잇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지침 기사에서는 이론적 순서, 즉 아마도 신학적 의도에 따라 순서가 정해진 반면, 실행 기사는 실제적 건축 과정에 따른 순서라 볼 수 있습니다. 즉, 먼저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들어 배치하는 것이 합리적인 순서인 것입니다.

법궤와 그 위에 놓은 속죄소(속죄판)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25:10-22의 본문주해를 보라. 그러나 가장 중요한 비품인 속죄소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합니다. 속죄소(카포레트)는 법궤 위에 놓인 특별한 비품이었습니다. 영어로는 흔히 ‘mercy seat’(시은좌)로 번되고 NIV는 ‘atonement cover’(속죄판)를 채택합니다. 그것이 ‘속죄’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므로 ‘속죄’나 ‘속죄판’이 더 나은 번역으로 보입니다.

속죄소 그룹들의 모양과 크기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법궤에 사용된 금의 총량에 대해서도 본문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다만 금 등잔대가 자그마한 부속 비품들을 포함 1달란트(34킬로그램)였는데, 그것보다는 훨씬 무거웠을 것입니다. 카포레트(속죄소)의 기원에 대해 몇 가지 설명이 있지만 가장 그럴듯한 것은 ‘속죄하다’, ‘배상하다’를 뜻하는 동사 ‘카파르’ 강조형은 ‘키페르’에서 기원한 명사로서 ‘속죄’가 이루어지는 기물을 뜻한다는 견해입니다. 따라서 속죄판의 의미가 가장 적절하게 설명됩니다.

실제로 기능적 측면에서 속죄소는 매년 속죄일에 속죄가 이루어지도록 피가 뿌려지는 기물입니다. 속죄판은 법궤의 뚜껑 역할을 하지만 엄밀히 말해 뚜껑은 아니었으며, 언제나 별개로 법궤 상자와는 별개의 물건으로 취급됩니다(출 25:17; 30:6; 31:7). 날개를 단 두 그룹 (캐롤)이 양쪽을 호위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바로 그 사이에 임재하여 좌정하셨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이 좌정하시는 보좌(삼하 6:2), 혹은 하나님의 ‘발판’ 또는 ‘발등상’(대상 28:2; 시 132:7)입니다. 한편, 신의 보좌를 상징한 궤의 그룹들은 이스라엘만의 고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방 민족들도 각자 자신들의 궤가 있었고 양쪽에 그룹들과 비슷하게 날개를 지닌 수호천사들이 놓였으며 각종 귀중한 물품들을 궤 안에 보관했습니다. 그들은 그 그룹들 양 쪽에 자신들의 국가 신의 형상을 올려놓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법궤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상화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구름과 불길 속에서 음성으로 말씀하셨을지언정,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신 4:15). 하나님께서는 ‘형상’이 아니라 ‘현상’으로 자신의 임재를 알려주십니다. 그분은 법궤의 속죄판에 보이지 않게 임재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궁전인 성막 위에 구름기둥과 불기둥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나타내서 자신의 임재를 드러내셨습니다. 이 자체로 이미 여호와 신앙은 근본적으로 이방 종교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떡상의 제작(10-16)

하나님과의 교제는 우리의 일상에서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며, 이를 위해 우리가 준비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기 위한 노력과 준비가 우리의 영적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10그가 또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었으니 길이가 두 규빗, 너비가 한 규빗, 높이가 한 규빗 반이며 11순금으로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둘렀으며 12그 주위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었고 13상을 위하여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았으니 14그 고리가 턱 곁에 있어서 상을 메는 채를 꿰게 하였으며 15또 조각목으로 상 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16상 위의 기구 곧 대접과 숟가락과 잔과 따르는 병을 순금으로 만들었더라(10-16)

 

떡상, 즉 진설상은 가장 설명이 부족한 비품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재현된 진설상의 형태들은 천차만별입니다. 우리는 25장에서 랍비들의 견해를 따라 떡상 본체 외에 열두 개의 떡을 넣는 떡칸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 외 여러 부속된 비품들이 제작되었는데 정체가 불분명한 이것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는 떡상에 진설병을 어떻게 얼마만큼 만들어 언제 올려놓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이것은 레위기 24:5-9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진설병 하나는 대단히 컸습니다.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께 진설했으며, 이것이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라는 말이 첨부됩니다(레 24:8).

매 안식일에 새로운 떡들을 올리고, 물린 떡은 제사장들이 먹었습니다. 그 떡은 일주일이나 지난 것이지만 부패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신비주의적 해석에 따르면, 하나님의 초자연적 기적으로 그 떡이 일주일이나 되었어도 썩지 않았으며 심지어 따뜻한 온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탈무드의 기록이 유대 신비주의 해석가들에 의해 와전되어 유통된 결과로 보입니다. 탈무드 요마의 기록에 의하면, 가르무(Garmu) 집안 사람들이 떡 제조를 맡았는데 그들에겐 빵이 오래도록 형태를 유지하고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하는 특수한 빵 제조술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탈무드는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교대로 안식일에 떡을 교체했으며, 열두개의 커다란 떡덩이들이 그들 몫으로 돌아갔다고 기록합니다.

이 떡이 “영원한 언약”으로 명시된 것은 이떡의 매우 중요한 기능을 시사합니다. 안식일마다 떡을 하나님께 바친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의 식탁이 계속 진행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등잔대의 제작(17-24)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것은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하며, 그분의 뜻을 삶에 반영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드러내는 것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지속적인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을 더욱 강하게 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길입니다.

 

17그가 또 순금으로 등잔대를 만들되 그것을 쳐서 만들었으니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이 그것과 한 덩이로 되었고 18가지 여섯이 그 곁에서 나왔으니 곧 등잔대의 세 가지는 저쪽으로 나왔고 등잔대의 세 가지는 이쪽으로 나왔으며 19이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고 저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어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이 그러하며 20등잔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고 21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위하여는 꽃받침이 있게 하였으되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였고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였고 또 다시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되게 하였으니 22이 꽃받침과 가지들을 줄기와 연결하여 전부를 순금으로 쳐서 만들었으며 23등잔 일곱과 그 불 집게와 불 똥 그릇을 순금으로 만들었으니 24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는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었더라(17-24)

 

등잔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25:31-40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앞서 성막의 휘장과 천막들, 그리고 골조들의 제작 책임은 아마도 오홀리압에게 있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법궤를 비롯한 주요 비품 제작의 책임자는 브살렐입니다.

이 물건들은 아무나 만들 수 없는 놀라운 기술을 필요로 했기에 브살렐이 얼마나 뛰어난 목공과 금속 세공 기술자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분명 애굽에서부터 그 분야의 명장, 즉 최고의 기술자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는 성령의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술력 위에 더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부여하셔서 신적 디자인이 된 법궤와 기물들을 만들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25장에서 논의한 대로, 회막 내부는 겹겹이 덮인 휘장과 덮개들로 인해 낮에도 컴컴했기에 등잔대는 24시간 켜놓았을 것입니다. 어떤 해석은 낮에는 서너 개의 등잔만 켜놓았을 것으로 봅니다.

이 경우 27:21의 “저녁부터 아침까지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와 30:8의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는” 해가 질 때 일곱식의 등잔을 모두 켰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상당히 설득력 있는 견해입니다.

 

향단의 제작(25-29)

향단은 우리의 기도와 예배가 하나님께 향기롭게 드려져야 함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정성과 헌신으로 준비되어야 하며, 그분의 임재 앞에서 진정성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는 단순한 일상의 습관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위한 중요한 수단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그분의 뜻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향단이 가르치는 대로, 우리의 기도와 예배가 항상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져야 합니다.

 

25그가 또 조각목으로 분향할 제단을 만들었으니 길이는 한 규빗이요 너비도 한 규빗이라 네모가 반듯하고 높이는 두 규빗이며 그 뿔들이 제단과 연결되었으며 26제단 상면과 전후 좌우면과 그 뿔을 순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 테를 둘렀고 27그 테 아래 양쪽에 금 고리 둘을 만들었으되 곧 그 양쪽에 만들어 제단을 메는 채를 꿰게 하였으며 28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29거룩한 관유와 향품으로 정결한 향을 만들었으되 향을 만드는 법대로 하였더라(25-29)

 

향단에 대해서는 30:1-10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29절에서 관유와 향료가 지침대로 제조되었다는 간단한 진술만 주어집니다. 관유와 향료의 상세한 제작법은 30:22-38의 살펴 보시길 바랍니다. 30:1-10에서는 금향단을 놓을 위치와 사용법 및 관법과 주의 사항이 설명됩니다. 그 외에도 거기에는 향단 사용법과 관리법, 그리고 아무 향이나 피우지말라는 중대한 경고가 주어집니다. 향단에는 아침과 저년에 두 번 향을 피웠습니다(30:7-8). 특히 향단은 신학적 측면에서 내성소의 가장 중요한 비품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회중 전체의 죄와 제사장의 죄를 위해서 바로 거기에 속죄제의 피가 뿌려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법궤를 비롯한 회막의 비품들은 이동할 때 사람들이, 심지어 운송 책임을 맡은 고핫 자손들마저 그것들을 만지지도 못하고 볼 수도 없도록 청색 홍색 보자기들과 해달 가죽으로 겹겹이 덮었습니다(민 4:5-16). 특히 법궤는 이동 시에 지성소 휘장으로 그것을 완전히 덮은 뒤, 그 위에 해달 가죽과 선청색 보자기로 겹겹이 덮어야 했습니다. 다른 비품들도 여러 보자기와 해달가죽으로 덮은 뒤 고핫 자손들이 옮겼습니다. 따라서 레위인이나 제사장들이 법궤를 노출한 채 메고 가는 장면은 모두 잘못된 그림들입니다. 이렇듯 마치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대면할 수 없듯이 성막의 성물들도 제사장 외에 사람이 만지는 것은 물론 함부로 보는 일마저 금지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정성과 헌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준비, 그리고 하나님의 빛과 향기를 세상에 전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이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이 정성과 헌신으로 가득하도록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축복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기도와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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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36-02)


휘장과 가림막: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길

출애굽기 36장 8-38절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은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함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헌물을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의 시간, 재능, 재물, 그리고 열정도 하나님께 기꺼이 드려져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헌신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헌신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 본문은 출애굽기 26:1-37에 나타난 성막과 건축과 관련된 자세한 지침을 담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성막 건축의 지침과 설계도를 바탕으로 성막을 실제로 건축하는 과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성막의 덮개가 정교하게 등급화되어 있으며, 안쪽에서 바깥으로 갈수록 재료가 저렴해진다고 설명합니다. 이어서 성막의 널판을 제작하여 세우고, 지성소와 내성소의 가림막을 만드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색실 앙장막(8-13)

성막 건축의 모든 세부 사항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침에 맞춰졌다는 점에서, 그들의 신실한 헌신과 협력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을 위해 우리의 시간, 재능, 자원을 어떻게 기꺼이 바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 본문은 우리가 공동체와 교회에서 어떻게 헌신하고 협력할지를 보여주는 모범입니다.

 

8일하는 사람 중에 마음이 지혜로운 모든 사람이 열 폭 휘장으로 성막을 지었으니 곧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들을 무늬 놓아 짜서 지은 것이라 9매 폭의 길이는 스물여덟 규빗, 너비는 네 규빗으로 각 폭의 장단을 같게 하여 10그 다섯 폭을 서로 연결하며 또 그 다섯 폭을 서로 연결하고 11연결할 끝폭 가에 청색 고를 만들며 다른 연결할 끝폭 가에도 고를 만들되 12그 연결할 한 폭에 고리 쉰 개를 달고 다른 연결할 한 폭의 가에도 고리 쉰 개를 달아 그 고들이 서로 대하게 하고 13금 갈고리 쉰 개를 만들어 그 갈고리로 두 휘장을 연결하여 한 막을 이루었더라(8-13)

 

성막의 재료는 가치의 등급에 따라 그 순서가 배열되는데, 가치가 높을수록 성소 내부로 더 깊이 사용됩니다. 앙장막과 덮개는 총 네 겹으로 되어 있으며, 이 경우 먼저 덮이는 것이 등급이 더 높았습니다. 두 종류의 앙장막과 두 종류의 가죽 덮개가 제작되어 회막을 덮었는데, 먼저 덮은 삼색 실의 앙장막은 가장 화려하고 최고가의 물건이었으며, 가장 마지막에 덮는 해달가죽 덮개가 가장 저렴한 재료였습니다.

이것들의 제작법과 특징은 26:1-14에서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염색실 중에서 청색이 가장 고가였고, 자색과 홍색의 순으로 비쌌습니다. 먼저 소폭의 앙장막 열 개를 만듭니다. 9절에서 보듯이 앙장 한 폭은 가로세로 28×4규빗이었습니다. 4규빗 길이가 열 장 연결되므로 폭은 28규빗(14m), 총길이 40규빗(20m)이 됩니다(1규빗이 50cm일 때). 회막의 크기가 각 10규빗(높이)×10규빗(세로)×30규빗(길이)이므로 이 앙장막으로 제사장들이 출입하는 회막입구는 덮지 않고 지붕부터 서쪽 벽까지 전체를 덮으면 바닥에서 2규빗 정도 뜨게 됩니다. 두께 1규빗으로 추정되는 입구의 기둥과 서쪽 벽의 1규빗의 널빤지두께가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12절의 ‘고리’는 11절의 ‘고’와 같은 것이므로 오역입니다. ‘고’에 끼우는 금 갈고리 50개를 만들어 다섯 폭 짜리 앙장막의 중앙을 연결합니다. 금 갈고리들은 외부의 빛이 차단된 회막 내부에서 등불의 빛을 받아 하늘의 별처럼 반짝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러한 모습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상을 상징한다고 이해합니다.

 

두 번째 염소털 앙장막과 가죽 덮개들(14-19)

하나님께서 주신 지침을 따르는 것이 단순히 형식적인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필수적임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세심하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도 하나님께서 중요시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침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14그 성막을 덮는 막 곧 휘장을 염소 털로 만들되 열한 폭을 만들었으니 15각 폭의 길이는 서른 규빗, 너비는 네 규빗으로 열한 폭의 장단을 같게 하여 16그 휘장 다섯 폭을 서로 연결하며 또 여섯 폭을 서로 연결하고 17휘장을 연결할 끝폭 가에 고리 쉰 개를 달며 다른 연결할 끝폭 가에도 고리 쉰 개를 달고 18놋 갈고리 쉰 개를 만들어 그 휘장을 연결하여 한 막이 되게 하고 19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었더라(14-19)

 

두 번째 앙장막은 염소 털로 짠 모직(wool)으로 제작됩니다. 염소 털로 짠 천은 가늘게 꼰 베실로 짠 것보다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베실로 짠 첫 번째 앙장막이 열장이었던 반면, 염소 털 앙장막은 열한 장이었습니다. 앙장한 폭의 크기는 가로세로 30x4규빗으로 베실 앙장막보다 길이가 2규빗(1m) 더 길었습니다. 열한 장을 잇는데 각각 다섯 장과 여섯 장 단위로 바느질해서 연결한 뒤, 역시 다섯 장 크기의 앙장막과 여섯 장 크기의 앙장막을 고리와 갈고리를 만들어 최종적으로 조립합니다. 이 갈고리는 놋(동)으로 제작됩니다. 전체 열한 장이므로 총 길이는 44규빗, 폭은 30규빗입니다. 결국 두 번째 염소 털 앙장막은 40×28규빗 크기인 베실 앙장막보다 약간 더 큽니다. 26:9, 12-13에는 현재의 본문에서는 생략된 설명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그 여섯째 폭 절반은 성막 전면에 접어 드리우고”(26:9); “휘장의 나머지 반 폭은 성막 뒤에 늘어뜨리고”(26:12).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회막 입구 쪽 위 맨 끝의 앙장막 절반(2규빗)이 마치 처마와 같이 회막 입구의 지붕에서 내려와 있었으며, 따라서 자연히 반대편 끝에서(성막 뒤에서) 남은 반폭이 꺾여 접히면서 지상을 향해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염소털의 재료와 연결 장치인 놋 갈고리는 두 번째 앙장막이 첫 번째 앙장막보다 가치가 떨어짐을 말해줍니다. 현재의 본문에서는 생략된 26:12-13에 나온 설명은 두 번째 염소 털 앙장막이 첫 번째 덮개를 완전히 덮었음을 말해줍니다. 회막 전체를 땅 아래에 이르도록 덮기에 충분한 크기였으며 마지막 지성소 바깥벽(서쪽)에서도 땅에 닿아 본당 입구를 제외하고 전체를 완전히 덮었을 것입니다. 한편, 이 두 번째 앙장은 당연히 첫 번째 것과 달리 안쪽에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두 겹의 덮개는 모두 짐승의 가죽으로 제작된다. 실로 짜서 만든 앙장막이 가죽 덮개보다 비쌌습니다. 결국 회막을 덮었던 네 장의 덮개는 안쪽의 것일수록 더 고귀하고 바깥으로 나올수록 값이 덜 나갔습니다. 이것은 성막의 신학에 부합합니다. 즉 이것은 거룩의 근원지인 지성소에 가까울수록 더 고귀하고 가치 있음을 시사합니다. 숫양 가죽이 조달이 훨씬 용이했음에도 그것이 해달 가죽보다 비쌌던 이유는 고가의 붉은 염료로 염색을 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이 가죽의 붉은 색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발견하려는 시도는 성막의 원래 의도라 보기 어렵습니다. 홍색 염료는 흔하게 아름다운 옷과 가죽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널판 제작과 조립(20-30)

성막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만남의 장소였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을 위한 공간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의 각 부분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우리의 삶과 행동에서 하나님을 위한 공간을 준비해야 합니다.

 

20그가 또 조각목으로 성막에 세울 널판들을 만들었으니 21각 판의 길이는 열 규빗, 너비는 한 규빗 반이며 22각 판에 두 촉이 있어 서로 연결하게 하였으니 성막의 모든 판이 그러하며 23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었으되 남으로는 남쪽에 널판이 스무 개라 24그 스무 개 널판 밑에 은 받침 마흔 개를 만들었으되 곧 이 널판 밑에도 두 받침이 그 두 촉을 받게 하였고 저 널판 밑에도 두 받침이 그 두 촉을 받게 하였으며 25성막 다른 쪽 곧 북쪽을 위하여도 널판 스무 개를 만들고 26또 은 받침 마흔 개를 만들었으니 곧 이 판 밑에도 받침이 둘이요 저 판 밑에도 받침이 둘이며 27장막 뒤 곧 서쪽을 위하여는 널판 여섯 개를 만들었고 28장막 뒤 두 모퉁이 편을 위하여는 널판 두 개를 만들되 29아래에서부터 위까지 각기 두 겹 두께로 하여 윗고리에 이르게 하고 두 모퉁이 쪽을 다 그리하며 30그 널판은 여덟 개요 그 받침은 은 받침 열여섯 개라 각 널판 밑에 두 개씩이었더라(20-30)

 

회막 벽을 구성하는 널판들의 제작 방법과 그 널판들을 세워 벽을 설치하는 과정이 비교적 길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앞서 26:15-25에서 상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은 성막의 다른 기물들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아마 그 이유는 지성소와 내성소로 구성된 회막이 대단히 중요한 공간이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널판들을 연결하는 띠 제작과 조립 방법(31-34)

성막 건축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자의 재능과 자원을 활용하여 공동의 목표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교회와 공동체에서 각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고유한 재능과 자원을 주셨습니다. 이들을 서로 존중하고 활용함으로써, 공동체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전체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31그가 또 조각목으로 띠를 만들었으니 곧 성막 이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요 32성막 저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요 성막 뒤 곧 서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며 33그 중간 띠를 만들되 널판 중간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였으며 34그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 널판에 띠를 꿸 금 고리를 만들고 그 띠도 금으로 쌌더라(31-34)

 

이것 역시 26:26-30에서 설명되었습니다. “띠”는 조막목으로 만든 긴 막대기, 즉 봉을 의미합니다. 남쪽과 북쪽, 그리고 서쪽에 널판벽을 일단 세운 뒤 그 벽들이 든든히 서도록 각 벽면에 다섯 개의 긴 봉(“띠”)을 끼워 벽들을 받칩니다. 34절이 말하듯이 그 긴 봉을 끼우는 금고리가 각 널판에 부착됩니다. 특히 33절은 널판들의 중앙에 큰 구멍이 뚫려 그 구멍들을 꿰뚫고 기다란 봉이 끼워진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26:29도 마찬가지). 이 중간띠에 대해서는 ‘고리’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추론이 타당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벽 중앙을 관통하는 지지대라 할 수 있습니다. 중간띠를 제외하고 31-32절에 의하면, 남쪽과 북쪽벽에 총 다섯 개의 봉들이 끼워집니다. 이것들은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한다는 표현이 없는 이유로 이 네 개는 중간띠의 절반 크기로 추정됩니다. 그중 두 개를 왼쪽 널판들의 금고리들에 끼우고, 나머지 두 개를 오른쪽 널판들의 금고리들에 끼웁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가장 기다란 중간 띠를 널판들 중앙의 구멍들을 관통해서 끼웁니다. 33b절은 서쪽 벽에 끼워진 봉들을 설명합니다. 그것들은 남과 북의 벽에 끼운 봉들에 비해 길이가 훨씬 짧지만, 봉들의 개수는 마찬가지로 다섯 개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널판들을 모두 금으로 쌌고(아마 금물로 칠했을 것이다) 봉(띠)들도 금으로 쌌으며, 고리들은 모두 순금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꽤 뭉툭했을 이고리 제작에 들어간 금이 엄청났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성소 휘장과 내성소 가림막 제작 방법과 설치(35-38)

우리의 삶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 자신의 죄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장애물이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휘장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인간의 죄 사이의 경계를 나타냅니다. 휘장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인간의 죄악된 상태 사이의 간격을 상징합니다.

 

35그가 또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휘장을 짜고 그 위에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 놓고 36조각목으로 네 기둥을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그 갈고리는 금으로 기둥의 네 받침은 은으로 부어 만들었으며 37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장막 문을 위하여 휘장을 만들고 38휘장 문의 기둥 다섯과 그 갈고리를 만들고 기둥 머리와 그 가름대를 금으로 쌌으며 그 다섯 받침은 놋이었더라(35-38)

 

본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26:31-37을 보시길 바랍니다. 지성소와 내성소를 가로막는 휘장은 가장 중요한 커튼으로 지성소 입장을 금하고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차단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휘장은 가장 비싼 색실을 섞어 짜서 화려한 그룹들로 수를 놓았습니다. ‘정교한 수놓기’는 ‘마아세 호쉐브’로 가장 뛰어난 수놓기 기술을 일컫습니다. 하란(Haran)은 수놓는 기술이 세 등급으로 나뉜다고 말합니다. (1) 정교한 수놓기는 마아세 호쉐브; (2) 평이한 수놓기는 마아세 로켐; (3) 일반 직물 짜기는 마아세 오렉, 휘장은 가로세로 10규빗입니다. 8절의 “가름대"(하슈크)는 26장에서 언급된 바 없이 여기에 처음 등장합니다. 이것은 아마 가림막을 고정해서 걸기 위한 부품이었을 것입니다. 내성소 가림막은 그룹으로 수를 놓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 가림막이 지성소 휘장보다 등급이 떨어졌음을 시사합니다.


신앙의 헌신과 협력, 정밀한 순종, 하나님을 위한 준비, 그리고 각자의 역할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줍니다. 이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헌신을 재조명하고, 공동체와 교회에서 어떻게 서로 협력하며 역할을 다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그의 뜻을 이루는 데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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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36-01)


하나님이 택하신 일꾼들, 브살렐과 오홀리압

출애굽기 35장 30절-36장 7절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 있어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헌신해야 하며, 우리의 은사와 재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헌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분의 계획 속에서 우리가 맡은 역할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 모세가 백성 앞에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성막 건설의 책임자로 임명하고, 성막 건축을 위한 기술자들을 모집합니다. 이에 백성들이 연달아 헌물을 모세에게 가져오고,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자원해서 그들을 찾아왔습니다. 일이 방해될 만큼 백성들이 엄청난 양의 예물을 가져오는 장면은 대단히 인상 깊습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임무(30-35)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각 사람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우리는 우리의 능력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에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그분의 계획 속에서 사용하시기 위해 특별히 택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31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32금과 은과 놋으로 제작하는 기술을 고안하게 하시며 33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여러 가지 정교한 일을 하게 하셨고 34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35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세공하는 일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수 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30-35)

 

모세는 하나님께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성막 건축의 기술자로 택하셨음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 지혜와 재능을 주셔서 여러 가지 공예와 작업을 능숙하게 수행하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며 성막의 모든 작업을 이끌도록 하였습니다.

 

(1) 브살렐의 임무(30-33)

 

모세가 성막 공사의 총감독이라면 브살렐은 현장 감독이고, 오홀리압은 브살렐을 돕는 조감독이었을 것입니다. 브살렐은 뛰어난 금속 기술, 보석을 깎는 세공 기술, 목공 기술을 겸비해 성막의 주요 제의 비품들과 제사장 옷의 장신구들을 제작했습니다(32-33; 31:1-5; 37:1 이하). 강조할 대목은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충만하여 능력과 경험, 기술 이상의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가득 채워진 것은 창세기 1:2의 천지창조에서 수면 위에 운행한 ‘성령’과 창세기 41:38에서 요셉 안에 계셔서 신적 지혜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의 영을 연상케 합니다. 잠언 8:22 이하에는 만물을 창조한 인격화된 지혜가 등장합니다. 이것이 암시하는 것은 성막 건설이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지혜의 영, 성령의 작업이라는 것입니다. 성막 건물 자체는 건축학적으로는 매우 단순하고 평범합니다. 규모는 작고 쉽게 설치할 수 있는 조립식인데다 천막이며 비품들도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막은 아무나 지을 수 있는 건물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특별한 성령의 재능이 부여되어야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성령이 없는 교회는 인간 집단에 불과하며, 성령이 임재하신 교회만이 신비한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

 

(2) 오홀리압의 임무(34-35)

 

오홀리압의 지명과 임무에 대해서는 31:6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오홀리압은 브살렐을 돕는 자이며, 그와 더불어 백성들의 성막 건설을 지도합니다(34). 오홀리압은 옷과 휘장을 제작하는 직조 기술과 목공 기술을 겸비했습니다(38:23). 브살렐이 제의 비품들을 제작했다면, 오홀리압은 골조 공사(앙장막, 휘장, 널판, 기둥 등)를 담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지명, 그들의 성령 충만과 다른 기술자들에게 부여된 신적 능력은 성막이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건물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성막 건설을 위한 넘치는 헌물(36:1-7)

우리의 헌신은 이와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의무나 부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그분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는 자발적으로 그분의 일에 헌신하게 됩니다. 헌신은 강요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기쁨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드리는 헌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기쁨으로 드리는 헌신을 기뻐하십니다.

 

1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 2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부터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3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온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왔으므로 4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중지하고 와서 5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6모세가 명령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이르되 남녀를 막론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그치니 7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1-7)

 

본문에서 백성들은 성막 건축을 위해 자발적으로 예물을 드렸고, 그 양이 넘쳐 건축에 필요한 자재가 충분히 채워졌습니다. 공사에 참여한 기술자들은 더 이상의 예물이 필요 없음을 모세에게 알렸고, 모세는 백성들에게 헌물을 중지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결과, 자원한 헌물로 성막 건축이 충분히 이루어졌습니다.

 

(1) 백성들의 연달은 헌물(1-3)

 

브살렐과 오홀리압 외에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즉 특출한 재능과 기술력을 겸비한 기술자들이 모집됩니다(1-2).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어 주신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즉, 아무리 탁월한 재능과 기술을 가졌더라도 성막 건설에는 부적격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 위에 신적인 능력을 부여하셔야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성막 건설에 필요한 자재와 비품을 백성들에게서 헌납 받아 전달합니다(3). 그런데 봉헌하려는 백성들의 줄이 끝이 없습니다. 아침이 되기 무섭게 매일 자원의 예물들을 모세에게 들고 온 것입니다.

 

(2) 헌물의 중단 명령(4-7)

 

성막 건설을 위한 예물들이 홍수처럼 넘쳐 급기야 공사에 방해가 될 지경이었습니다(5). 건축 기술자들은 공사를 잠시 중단하고 모세에게 예물을 받기를 중단하라고 요청합니다. 자재와 물건들이 쓰고도 남을 정도였습니다. 모세가 헌물 중지 명령을 내리고 기술자들은 진중의 백성들에게 공지하여 더는 예물을 가져오지 말도록 했습니다. 봉헌 릴레이는 중단되었고 재료는 넘쳤습니다(5). 여기서 하나님의 성막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백성들의 자발적이고 열정적인 참여에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사실 성막의 형태와 도면, 크기를 고려할 때, 고대근동 지역에서 아주 독특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성막이 애굽 군대의 진내에 위치한 군용 막사와 크기와 설계가 거의 비슷하다고 주장합니다. 일반 사병 막사가 아닌 사령관의 막사였을 것인데, 마당/접견실/내실로 구분되었습니다. 특히 가장 안쪽의 내실은 신으로 추앙되어 총사령관 역할을 한 바로가 모셔진 방이었습니다. 참고로 애굽의 왕 바로는 신의 거룩한 형상이요 신의 살아 있는 형상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옳다면,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익숙했던 이 군용 막사 모델을 성막에 차용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여호와께서 애굽의 사령관 막사를 자신의 성막으로 대체하신 것입니다. 전쟁을 지휘하고 백성을 광야 여정에서 이끄는 총사령관은 바로가 아닌 하나님 자신임을 알리려는 데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성막의 규모입니다. 사실 50×25미터 규모의 성막은 신전으로는 너무 초라하고 작았습니다. 고대 국가들은 자신들의 신의 위대함을 나타내기 위해 신전을 최대한 크고 웅장하게 지었습니다. 바벨론의 신전인 지구랏은 거대한 피라미드의 일종이었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에게는 신들이 산에 거한다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변을 중심으로 하는 사막에는 산이 없어서 거대한 인공산을 신전으로 건축한 것입니다. 로마의 신전들도 거대하며 애굽 룩소에 밀집된 고대 애굽 신전들의 규모는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그에 비해 성막은 너무나 초라하고 작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입성하여 건축한 솔로몬 성전은 규모가 상당히 커졌지만, 고대 제국의 거대한 신전들에 비할 바는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막 안에 거하시고 그 위에 임재하신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가장 크신 분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비록 공간은 작았으나 거기에 자신의 영광과 임재를 나타내도록 최대한 화려한 상징적 장식들과 금은보화로 꾸미도록 하셨습니다. 그 금은의 총량은 금이 약 1톤(약 30달란트), 은이 약 3.4톤(약 100달란트)으로 보고됩니다(38:24-26). 하지만 제국의 신전들을 꾸민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금은보석과 비교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고대 제국의 신전 규모를 따져보면, 이집트 카르낙 신전은 규모가 동서 600미터, 남북 2킬로미터의 크기라고 합니다. 그 중심부에는 좌우 양쪽에 높이 23미터, 둘레가 무려 15미터에 달하는 신전 기둥들이 각각 67개씩, 총 134개가 늘어서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제국의 신전과 달리 하나님의 성막은 매우 작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어 자그마한 성막의 절제된 장식으로 충분히 만족하셨습니다. 성막을 성막 되게 하는 것은 규모나 화려함이 아니라 백성들의 열정적 참여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성막 건설에 필요한 귀금속과 재료를 모아 하나님의 예배당을 건설했습니다(출 25:2). 아무리 가난해도 모든 장정들은 반 세겔의 은을 바쳤습니다(출 38:26). 일종의 피난민 신세인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의 넉넉지 않은 생활 속에서 성막을 짓기 위해 이 정도의 금은보화를 모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마음을 다한 그들의 헌신으로 세워진 성막을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신약에서 신자들 모두가 함께 참된 성전으로 세워져가는 교회였는데, 구약에서 신자들 모두는 함께 성막을 세우는 공동체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지어진 성막은 정작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영광과 위대함을 표현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그분의 성막(성전)에는 그 어떤 신전도 흉내 낼 수 없는 압도적으로 영광스런 장식물이 있었다. 그것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입니다.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에서도 그 신현의 구름은 다시 출현하였습니다. 이렇게 성전 위와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을 유대전승에서는 ‘쉐키나’라고 불렀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성막 건축을 위해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성령의 지혜와 재능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자발적이고 열정적으로 헌물을 드리며 하나님의 성막을 세우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헌신과, 주어진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재능을 기뻐받으시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때 넘치는 은혜로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 기쁨으로 헌신하며, 그분의 계획 안에서 서로 협력해 나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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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35-02)


성막 재료를 드리는 이스라엘

출애굽기 35장 20-29절


 

‘헌근지성(獻芹之誠)’이란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정성스레 바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선물과 뇌물의 차이는 주는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감사를 표현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는 것은 선물이지만, 대가를 바라고 주는 것은 뇌물입니다. 고마운 마음이 담기면 선물이 되고, 청탁이 담기면 뇌물이 됩니다. 최상의 선물은 진실한 마음이며, 그 마음을 담아 전달하는 것이 진정한 선물입니다.

 

  • 본문에서는 성막 건설이 드디어 착수됩니다. 그것은 재료 준비와 더불어 시작될 것입니다. 백성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로 막대한 양의 건축 자재와 재료, 특히 매우 비싼 금은보석과 다양한 최고급 실과 가죽과 향품이 마련됩니다. 성막 건설에서는 금송아지 배교 사건 직후 모세의 중재로 하나님의 심판 위기를 넘긴 백성들이 전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막을 위한 자원의 예물(20-21)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 먼저 그분의 은혜를 깊이 새기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사랑에 대한 응답이어야 하며, 대가를 기대하며 드려서는 안 됩니다. 순수한 감사와 경외심으로 드릴 때 그 예물이 하나님 앞에 진정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드릴 때는 기대나 계산 없이 온전히 감사의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20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 앞에서 물러갔더니 21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니(20-21)

 

성막을 건축하기 위해 백성들은 자발적인 봉헌물이 바쳐집니다. 본문에는 자발성을 표현하는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몇 가지 관용구들이 나타납니다: ‘마음이 감동된 사람’, 곧 ‘그의 마음이 이끈 사람’, 혹은 ‘그의 영이 충동한 사람’ 등.

이스라엘 백성의 열정적인 헌신은, 얼마 전에 금송아지 숭배에 열광했던 사람들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들은 금송아지 형상을 제작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자신들의 금귀고리를 빼서 금을 모았습니다. 그 금송아지 앞에서 괴성을 지르며 광란의 춤을 동반한 이교도의 예배를 드렸었습니다. 그들의 마음과 영이 악령에 사로잡혔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은 자신들의 열정을 더 이상 우상에게 바치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그 무엇인가에 자신의 존재를 모두 쏟아냅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잘못되었을 때 자신의 영과 마음의 감동을 바친 헌신은 헛된 우상을 위한 것이 됩니다.

그들의 자발적인 열정의 봉헌물이 본문에서 “예물”(테루마)로 표현됩니다. ‘테루마’는 하나님을 위해 성전에 바쳐지는 봉헌물을 의미합니다. 흔히 ‘거제’라는 제물을 바치는 동작으로 잘못 번역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성전에 드려지는 예물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십일조나 첫 태생의 헌물도 ‘테루마’에 포함됩니다.

 

귀금속과 색실의 예물들(22-26)

우리의 헌신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는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크며, 헌신된 사람들의 중심에는 항상 이 은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을수록 우리는 자연스럽게 헌신하게 됩니다. 봉사는 내일의 일이 아니라, 오늘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에 힘쓰길 바랍니다.

 

22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다가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23무릇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이 있는 자도 가져왔으며 24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모든 자가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며 섬기는 일에 소용되는 조각목이 있는 모든 자는 가져왔으며 25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빼고 그 뺀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을 가져왔으며 26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뽑았으며(22-26)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제작할 때는 금귀고리만을 빼서 모았습니다. 앞서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분명 금송아지는 아론이 말한 그대로 주조물에 부어 제작되었을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일대의 고대 신전 터들에서 발굴된 청동 황소 상들이 불과 20센티미터 안팎인 것을 감안할 때, 금송아지 형상은 이보다는 컸겠지만 상당히 작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우상을 위한 이들의 헌신이 금귀고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의 참여 열기도 뜨겁지 않았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온 백성이 뜨거운 열정으로 참여하여 모든 금 장신구들을 떼어 바쳤는데, 이때 모은 금의 총량은 29달란트 730세겔, 즉 약 30달란트였습니다(38:24). 현대의 도량형으로 1달란트는 34킬로그램으로 간주되므로 30달란트 금의 총량은 약 1톤가량입니다. 그러나 다른 금속에 비해 비중이 월등히 높은 금 1톤의 부피는 가로 세로 높이 약 37센티미터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금귀고리만을 모아 제작된 금송아지의 실물 크기를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백성이 금송아지 제작을 위해 많은 양의 금을 모을 필요는 없었기에 금귀고리만으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다릅니다. 성막 제작에는 막대한 양의 금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귀고리뿐 아니라 팔찌와 가락지, 목걸이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금품, 아마도 집 안에 있는 금으로 된 물건들을 모두 가져다 바쳤습니다(22). 거기다가 많은 귀한 색실들과 염소 털로 짠 천막과 비싼 염료로 염색한 가죽들도 가져왔습니다(23). 성막에는 막대한 양의 은과 동도 필요했는데, 그들은 은과 동 역시 넘치도록 바쳤습니다. 은의 총량은 100달란트 1775세겔로 환산하면 약 3.5톤 정도의 막대한 양이며, 놋(동)의 총량은 70달란트 2,400세겔로 약 2.5톤가량입니다. 은이 훨씬 많았던 이유는 회막 건물 벽을 세우는 데 사용된 널판들 아래에 은 덩어리 받침대를 끼워 넣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바친 또 다른 한물은 조각목(싯딤 나무, acacia)을 바쳤는데, 이는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사막과 광야에 흔한 싸구려 나무가 아니라 개인이 소장하는 비싼 물건의 하나였습니다(24). 실제로 이 나무는 잘 썩지 않고 부러지거나 변형되지 않는 특징이 있어 애굽 바로의 사후에 그의 관을 짠 귀한 나무였습니다. 흥미롭게도 금송아지에 대한 충성도와 여호와에 대한 충성도가 봉헌물의 액수를 통해 간접적으로 비교됩니다. 여기서 암시되는 것은 그들이 금송아지를 위해 자발적으로 헌물하고 그 예배에 광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실상은 더 큰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 금 우상을 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막 제작을 위해 여호와께 충성할 때 그들은 귀중품을 아끼지 않고 넘치도록 바쳤습니다. 그들의 마음과 영이 감동되었다는 표현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에게 충만했다는 점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22절에 나오는 “예물”의 히브리어는 ‘테누파’입니다. 이것은 21절과 24절에 나오는 “예물” ‘테루마’와 다릅니다. ‘테루마’는 넓은 의미로 하나님을 위해 성전에 바친 봉헌물을 가리키고, ‘테누파’는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 제단에서 위아래로 들어 올리며 아마 흔든다면 앞뒤로 흔드는 제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헌물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행위로 간주됩니다. 이것은 레위인을 봉헌하는 민수기 8:13에서도 잘 확인됩니다. 레위인을 ‘테누파’로 바친다는 의미가 그들을 제단에 들어 올려 바친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성전에 ‘봉헌물’로 봉헌되었다는 상징적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성막 건설을 위한 이러한 자발적 봉사와 봉헌에는 남녀 구별이 없었습니다(22). 즉 여인들도 이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참조. 29). 특히 마음에 감동을 받은, 성령으로 충만한 여인들은 실을 빼서 청색, 자색, 홍색의 색깔로 염색하여 성막으로 가져왔습니다(25). 이 작업은 상당히 고급 기술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지혜의 영이 충만했던 여인들은 브살렐과 오홀리압, 특히 앙장막과 휘장 제작을 지도한 오홀리압의 지휘 아래(38:23) 다채로운 색깔의 실로 베를 짜고 옷감을 만들어 아름다운 수를 놓는 일을 감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보석류와 향품의 예물들(27-29)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확신이 있기에, 우리는 기쁨으로 예물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값진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분께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드리며, 우리의 마음과 헌신을 표현하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이 예배 속에 드린 예물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경외의 상징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한 마음으로 기꺼이 예물을 드릴 수 있습니다.

 

27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왔으며 28등불과 관유와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왔으니 29마음에 자원하는 남녀는 누구나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빌어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드렸으니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린 예물이니라(27-29)

 

족장들 혹은 지도자들(네시임)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다양한 보석류를 바쳤습니다(27). 그들은 아무래도 경제적 수준이 더 높았기에 다양한 보석과 귀중품을 소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바친 보석들은 대제사장의 복장 중 에봇과 흉패의 장식에 사용되었습니다. 족장들은 또한 등잔대용 고급 기름과 여러 비싼 재료와 특수한 방식으로 제작된 관유, 그리고 향단에 사용되는 향료를 만들 고가의 원료들을 바쳤습니다. 이런 고급 향료와 기름 또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족장들이 주로 소유하고 있었겠지만, 더러는 평민들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성막 건설과 최초의 사용에는 족장들이 이런 고급 재료들을 감당했지만, 레위기 24:2에서 추후 계속적으로 사용하는 데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이 참여하도록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9절은 다시 한 번 이 모든 예물들이 백성들이 자원해서 가져온 헌물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그것이 ‘자원의 예물’(자원하여 드린 예물)로 표현되는데, 성막은 결코 억지로 바친 예물로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남녀 백성들 모두가 자신들의 장신구들, 즉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금품을 바쳐서 성막을 건설하고 꾸미는 데 사용한 것은 신약의 새로운 성전인 교회에 의미 있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고전 3:1617; 고후 6:16; 엡 2:21). 신약의 성도들은 예배당 건물이 아닌 성도들의 공동체인 영적 성전, 즉 교회를 영광스럽고 아름답게 꾸며야 합니다(엡 5:27).

성도 개인은 자신의 몸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데 열중하기보다는, 혹은 다양한 금송아지 제작에 자신의 귀중품을 사용하기보다는, 참된 성전인 교회를 세우고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 가장 소중한 보물과 소유물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 했을 때, 복수인 ‘너희’(휘메이스)이므로 성도들의 공동체가 곧 성전이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전의 구성원인 성도 개개인은 독자적인 작은 성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성도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각 성도들은 각종 치장으로 외면을 꾸미기보다 내면의 성령의 전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 더 열중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쁨으로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덕분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고아와 같던 상태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할 때, 감사와 찬양이 넘쳐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되새길수록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신하게 됩니다. 우리 심령에 하나님의 사랑이 새겨질 때, 그분을 향한 기쁨과 열정이 더욱 불타오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기쁨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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