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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29-02)


제사장 위임식을 위한 제물

출애굽기 29장 19-34절


 

구약 시대의 속죄와 헌신 과정은 복잡하고 까다로웠지만, 그 하나하나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제사장의 위임식 과정을 통해, 우리는 경건한 삶을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헌신해야 함을 배웁니다. 현대의 신앙 생활에서도 우리의 내면과 외면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께 최선의 것을 드리는 헌신이 중요합니다. 또한, 예배와 기도를 다양하고 풍성하게 드려야 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 본문에서는 속죄제에 이어 위임식 숫양의 제사와 소제물 제사가 이어집니다. 숫양의 제사는 위임식의 핵심입니다. 이 제사는 상당히 복잡한 절차를 밟습니다. 핵심은 독특한 피 의례입니다. 숫양의 피가 제사장들의 신체 말단 부위에 발라지는 것입니다. 이 위임식 숫양은 그 성격상 명백히 화목제로 바쳐집니다. 왜냐하면 숫양의 기름 부위를 바친 뒤, 레위기 7:34의 화목제 고기를 처분하는 규정대로 사람들이 고기를 나눠 먹기 때문입니다.

 

위임식 숫양의 제사(19-22)

우리는 종종 우리의 뜻대로 살고자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의 삶은 거룩하게 되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결정과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을 두고 순종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9너는 다른 숫양을 택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 위에 안수할지며 20너는 그 숫양을 잡고 그것의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와 그의 아들들의 오른쪽 귓부리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고 그 피를 제단 주위에 뿌리고 21제단 위의 피와 관유를 가져다가 아론과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에 뿌리라 그와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이 거룩하리라 22또 너는 그 숫양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그것의 내장에 덮인 기름과 간 위의 꺼풀과 두 콩팥과 그것들 위의 기름과 오른쪽 넓적다리를 가지라 이는 위임식의 숫양이라(19-22)

 

출애굽기 29장에서는 제사장 위임식을 위한 수소의 속죄제와 숫양의 번제에 이어 가장 중요한 위임식 숫양의 제사가 이어집니다. 준비된 숫양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이미 번제로 드렸으니 남은 한 마리를 위임식을 위해 가져옵니다. 이미 바친 제물들과 마찬가지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함께 이 숫양의 머리에 안수해야 합니다. 안수의 당장의 효과는 짐승과 제자의 대체/동일시 기능입니다. 속죄제와 같이 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에서는 죄가 짐승에게 전가될 수 있습니다. 대체와 동일시는 사실상 같은 것인데, 우리는 편의상 ‘대체’를 취하기로 합니다. 짐승에게 안수할 때, 그 순간 그 짐승은 제사자를 대신합니다. 제사자를 대신해서 도살되어 죽고 피를 흘린 뒤, 제단에 태워 바쳐집니다. 위임식에서도 모든 회생 짐승들은 위임되는 제사장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집니다. 앞서 바친 속죄제는 아마 제사장 위임자들의 죄와 부정결의 문제를 짐승이 대신 회생해서 해결하도록 했고, 번제는 그들의 헌신과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바쳤을 것입니다. 분문의 위임식 숫양의 제사는 친교의 제사인 화목제 성격을 지니지만, 화목제와는 여러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필자의 견해는 위임식 숫양의 제사는 하나님과 제사장들의 단단한 친교의 관계를 의미하는 예식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신체 말단에 숫양의 피를 바른 것을 볼 때 죄/부정결을 씻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숫양의 위임식 제사는 여러 점에서 매우 독특합니다. 이 위임식 제사는 오직 제사장을 위임할 때에만 시행됩니다. 앞으로도 아론의 후손들이 성인이 되어 제사장으로서 직무를 시작할 때, 반드시 이 위임식을 진행해야 합니다. 먼저 숫양을 도살한 뒤, 그 피를 아론과 아들들의 신체 오른쪽 말단 부위에 바릅니다. 이것이 가장 독특한 의례입니다. 신체의 말단 부위란 각각 오른쪽 귓불, 오른손 엄지, 오른발 엄지입니다. 머리부터 발끝에 이르는 신체 말단 부위에 피를 바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동일한 의식이 레위기 14장에서 진 밖으로 추방된 나병 환자(사실은 나병이라기보다 악성 피부병이다)가 치유된 뒤, 진영 안으로 들어오는 복귀 절차를 밟는데, 이때도 똑같은 방식으로 속건제 숫양을 잡아 그 피를 나병환자의 동일한 신체 말단 부위에 바릅니다. 이것에 비추어 볼 때, 분명한 것은 이 행위가 그들의 몸을 상징적으로 씻어내는 것을 의미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뾰족한 신체 말단 부위였습니까? 사물의 뿔이나 끝이 갖은 접촉에 의해 쉽게 더럽혀진다는 관념이 배후에 있었을 것입니다. 대표성을 지닌 그 신체 부위에 피를 발라 씻어내면, 상징적으로 몸 전체가 씻기는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모세는 피를 신체 말단 부위에 바른 뒤 남은 피를 사방(사면 벽)에 끼얹어 뿌립니다(20). 이어서 모세는 “제단 위의 피”, 즉 아마 제단 벽에 묻은 피를 소량 취하고 또한 관유를 가져와 함께 제사장들의 옷에 뿌립니다(히자) 본문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이때 손가락을 사용했음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제단에 묻은 피와 관유가 함께 뿌려진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옷들이 비로소 거룩해집니다. 다음 절차는 모세가 위임식 숫양의 주요 기름 부위를 분리해서 가져옵니다. 기름 부위에는 간엽과 두 콩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레위기 3장에서 제정되는 화목제 규정 그대로입니다. 위임식의 숫양은 화목제의 유형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위임식에서는 그 화목제 숫양의 기름 부위와 더불어 오른쪽 넓적다리(뒷다리)가 함께 태워집니다. 원래 화목제 짐승의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는 제사장의 몫입니다(레 7:30-33). 따라서 뒷다리도 제사장 역할을 하고 있는 모세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26절에서 보듯이 가슴만 그에게 주어집니다. 아마도 이것은 그날의 특수성과 더불어 모세의 임시적인 제사장 신분 때문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는 온전한 제사장이 아닙니다. 따라서 자신의 몫이라 주장하며 다 가져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태우지 않은 숫양의 가슴과 남은 몸통의 고기는 아래 설명하듯이 소제의 음식 제물들과 더불어 제사장들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것 역시 화목제 규례에 준한 절차입니다(레 3장; 7:11-21).

 

소제물의 제사와 제사장 몫의 제물들(23-28)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드린 제물의 일부를 받아 누리며, 백성들은 그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이 나눔의 관계는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나누고, 서로를 섬기며, 공동체 내에서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나눔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중요한 도구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23또 여호와 앞에 있는 무교병 광주리에서 떡 한 개와 기름 바른 과자 한 개와 전병 한 개를 가져다가 24그 전부를 아론의 손과 그의 아들들의 손에 주고 그것을 흔들어 여호와 앞에 요제를 삼을지며 25너는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번제물을 더하여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니 곧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26너는 아론의 위임식 숫양의 가슴을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으라 이것이 네 분깃이니라 27너는 그 흔든 요제물 곧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위임식 숫양의 가슴과 넓적다리를 거룩하게 하라 28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 영원한 분깃이요 거제물이니 곧 이스라엘 자손이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취한 거제물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거제물이니라(23-28)

 

이어지는 순서는 소제물 바치기입니다(참고. 레 2장). 이것들은 누룩이 섞이지 않은 무교병들로서 떡과 과자와 전병인데, 최상품 밀가루로 빚어서 만들어야 했습니다. 소제물에서 중요한 것은 누룩과 꿀이 절대 섞여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발효된 음식으로 ‘부패’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장의 규정대로라면, 소제물은 일부만을 기념물로 취해서 태운 뒤, 나머지는 제사장 몫으로 돌아갑니다(레 2:3,10; 6:1-18). 따라서 원칙상 태우고 남은 소제물들도 모두 유일한 제사장직을 수행중인 모세의 몫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32절에서 보듯이 이날 남은 소제물을 아론과 아들들이 먹었습니다. 아마 이것 역시 위임식 화목제 고기와 마찬가지로 모세의 임시적 제사장 직분 때문에, 또한 그날의 특수성으로 인한 절차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위임식 숫양의 제사가 화목제 형식임에도 제사장인 모세가 가슴만을 취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고기 부위를 거룩하게 한 다음 아론과 자손들의 몫으로 돌립니다(레 10:12-15을 보라).

 

대를 잇는 임직식의 제정(29-30)

하나님의 사명은 대를 이어 지속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우리는 거룩함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사명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음 세대가 하나님께 헌신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과 믿음을 이어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공동체를 세워가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29아론의 성의는 후에 아론의 아들들에게 돌릴지니 그들이 그것을 입고 기름 부음으로 위임을 받을 것이며 30그를 이어 제사장이 되는 아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성소에서 섬길 때에는 이레 동안 그것을 입을지니라(29-30)

 

여기서 제정된 위임식은 앞으로 신임 제사장이 임명될 때마다(“후에 아론의 아들들에게”) 치러야 합니다. 아론의 직무를 잇는 후손들은 아론의 대제사장 관복을 이어받아 입고서 기름부음을 받은 뒤 직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23-24절을 보면, 제사장들의 손이 여러 제물로 가득 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임의 날은 그들의 손을 제물로 가득 채우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손을 가득 채우다’가 ‘위임을 받다’라는 전문용어가 되었습니다. 필자의 견해는 그들의 가득 찬 손은 장차 제사장들이 감당할 백성을 위한 막중한 임무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30절은 혼동을 주는 번역입니다. 그 의미를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론을 이어 회막에 들어가서 섬길 후손 대제사장은 7일 동안 대제사장 복장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은 7일 동안 진행되는 제사장 위임식 기간 동안 대제사장 관복을 입고 모든 의식을 마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위임식 고기의 섭취(31-34)

헌신의 열매를 누리며 거룩함을 유지하고 공동체를 위한 헌신의 중요성을 가르칩니다. 하나님께 드린 헌신은 우리의 삶과 공동체에 풍성한 축복을 가져오며, 우리는 거룩한 삶을 통해 그분의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의 헌신이 하나님과 공동체를 세우는 도구가 되도록,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1너는 위임식 숫양을 가져다가 거룩한 곳에서 그 고기를 삶고 32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회막 문에서 그 숫양의 고기와 광주리에 있는 떡을 먹을지라 33그들은 속죄물 곧 그들을 위임하며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데 쓰는 것을 먹되 타인은 먹지 못할지니 그것이 거룩하기 때문이라 34위임식 고기나 떡이 아침까지 남아 있으면 그것을 불에 사를지니 이는 거룩한즉 먹지 못할지니라(31-34)

 

31절의 ‘거룩한 곳’과 32절의 ‘회막문(앞)’을 별개의 장소로 볼 필요가 없습니다. 회막 입구는 번제단과 회막 문 역할을 한 가림막 사이의 물두멍 주변 뜰 공간을 말합니다. 그곳이 제사장들이 먹고 씻고 옷을 갈아입는 활동 공간이었습니다. 아마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는 몸을 가릴 간이 시설물이 설치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위임식 숫양은 일종의 화목제물이었기 때문에(28) 화목제 규정대로(레 7:11-35) 나누어 먹는데 앞서 말한 대로 화목제 규정과는 고기의 나눔에서 차이가 납니다. 소제물 또한 특별한 방식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소제물은 일부만 제단에 태우고 남은 것은 제사장인 모세의 몫으로 돌아가야 했지만(레 2:8-10), 이날 모세는 남은 것을 광주리에 담아놓은 뒤 아론과 아들들의 몫으로 돌렸습니다(32). 33절은 제사장들이 먹은 제사 음식들을 “속죄물”이라고 부릅니다. 속죄의 주 기능은 속죄제가 담당하지만, 이날의 의식 절차 전체가 그들의 속죄를 성취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들이었습니다. 그 속죄의 최종 목표는 그들을 '위임하여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4절은 그 제물들을 당일에 먹어야 하며, 저녁을 넘겨 아침이 되었다면 먹지 말고 불살라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필로나 요세푸스는 제사장들이 먹는 거룩한 제물의 고기들은 반드시 당일에 먹어야 했다고 말합니다.


본문에서는 헌신의 의미와 그 열매를 깊이 이해하고, 거룩함을 유지하며,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 드린 헌신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공동체에 풍성한 열매를 맺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헌신이 하나님께 기쁘시게 하며,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축복하는 도구가 되도록 기도하며 노력하는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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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29-01)


제사장 위임식에서 배우는 교훈

출애굽기 29장 1-18절


 

우리는 신앙 생활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내면과 외면을 정결하게 해야 함을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준비는 우리의 경건한 삶과 신앙적 헌신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최선의 것을 드리며 헌신해야 하며, 이는 시간, 재정, 재능을 포함하여 모든 것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예배와 헌신이 풍성하고 다양해야 함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다양한 헌신과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며,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하나님께 경배해야 합니다.

 

  • 본문은 제사장 위임식의 절차를 소개합니다. 의식의 순서와 절차가 매우 복잡합니다. 그러나 이 위임식의 과정은 매우 정교한 흐름 속에 논리적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제사장 위임식은 그 자체로 제사장의 성별이 얼마나 특별하고 중요한지 잘 보여줍니다. 이 의식에서 세 종류의 제사가 드려집니다. 수소의 속죄제, 숫양의 번제, 그리고 위임식 숫양의 제사 등이 있습니다.

 

위임식 제물의 준비(1-3)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은 철저한 준비와 거룩함을 요구하며 신앙적 헌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제물로 수컷을 선택하는 것은 최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의미합니다. 다양한 음식 제물은 신앙 생활에서 다양한 헌신과 기도를 상징하며, 우리의 예배도 풍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정밀한 준비와 헌신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신앙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1네가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할 일은 이러하니 곧 어린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을 택하고 2무교병과 기름 섞인 무교 과자와 기름 바른 무교 전병을 모두 고운 밀가루로 만들고 3그것들을 한 광주리에 담고 그것을 광주리에 담은 채 그 송아지와 두 양과 함께 가져오라(1-3)

 

제사장의 관복 제작과 착용 방법에 대한 지침이 내려진 후 제사장 위임식 절차가 설명됩니다. 이 위임식의 실행은 레위기 8장에서 이루어집니다. 제사장의 옷, 그리고 준비된 제물들과 거룩한 절차는 위임식이 매우 세부적이고 장엄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다’의 문자적 의미는 ‘나를 섬길 제사장이 되도록 거룩하게 만들다(키데쉬)’입니다. 위임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제물은 흠 없는 수소 한 마리와 두 마리의 숫양입니다. 소는 속죄제로 드리고, 숫양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번제로 다른 숫양은 위임식 숫양 제사로 바칩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짐승이 모두 수컷이라는 점입니다. 고대에는 어느 사회에서든 시장 가치 면에서는 암컷이 훨씬 비쌌습니다. 암컷이 새끼를 낳고 우유를 공급하며 고기도 맛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제의법에서 수컷을 선호한 것은 제의적 가치 면에서 힘이 세고대장 노릇을 하는 수컷을 우월하게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고대 사회의 강력한 가부장적 가치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율법은 역사적 한계, 문화적 한계, 관습의 한계 속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수컷이 가리키는 본질은 ‘더 나은 것’을 바쳤다는 것입니다. 한편, 여기서 “어린 수소”는 마치 송아지를 연상케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최소한 1년생이어야 했고, 통상적으로 3년생이 최상품으로 여겨졌습니다.

제사 제물
속죄제 수송아지
번제 숫양
위임식 화목제 숫양
소제 무교병 한 광주리(떡, 과자, 전병)
그 외 준비물 제사장 관복, 관유

희생 짐승들에 더하여 여러 음식 제물들이 준비됩니다(2-3). 고운 밀가루로 누룩을 넣지 않은 다양한 떡과 과자를 제조해서 광주리에 담았습니다! 무교병, 기름섞인 무교 과자, 기름 바른 무교 전병. 레위기 8:2에서는 이것을 단순히 “무교병 한 광주리”로 표현합니다. 각 떡과 과자의 개수는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광주리에서 종류별로 하나씩 취해 제단에 바친 것으로 볼 때(레 8:26-28) 여러 개를 제조해서 담은 것이 분명합니다.

 

아론과 아들들의 위임 준비(4-9)

신앙 생활의 시작은 내면과 외면의 정결함을 통해 이루어져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의복과 준비는 경건한 삶의 상징이며, 우리의 신앙도 하나님께서 주신 지침에 따라 준비되어야 합니다. 기름부음은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한 자에게 부여된 권위와 사명임을 이해하고,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준비와 정결함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하고, 우리의 신앙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4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5의복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정교하게 짠 띠를 띠게 하고 6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거룩한 패를 더하고 7관유를 가져다가 그의 머리에 부어 바르고 8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9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 그들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4-9)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위임하기 위해 정결 예식을 행하고, 위임 제사를 드립니다. 아론과 아들들은 성막 입구에서 몸을 씻고 제사장 의복을 입습니다. 이어서 속죄제와 번제 등의 제사를 통해 그들의 직무를 성별합니다.

 

(1) 아론을 위한 준비(4-7)

 

모세는 아론과 아들들을 회막 입구로 데려가 목욕시킵니다. 회막 입구는 제단을 기준으로 서쪽 뜰을 가리킵니다. 구체적으로 본당인 회막 건물 바로 앞의 뜰로놋 물두멍이 놓여 있는 위치입니다. 여러 학자들은 거기에 임시 칸막이 건물이 설치되어 목욕과 옷 갈아입기가 가능했을 것으로 봅니다. 아론과 아들들은 아직 제사장이 아니므로 회막 내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선 아론의 준비를 위한 여러 가지 지침이 주어집니다. 그가 입어야 할 특수하고 정교한 대제사장 관복에 대한 규정은 이미 28장에서 지시되었습니다. 그의 복장을 완벽히 구비한 뒤, 역시 특수하게 제작된 관유를 머리에 붓습니다. 이 관유 제작에 대해서는 곧이어 30장에서 지시되는데 감람유에 매우 다양한 고가의 향료와 약재들을 섞어서 특수한 방식으로 제조합니다. 사람에게 기름을 붓는 일은 구약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제사장과 선지자(왕상 19:16), 왕(왕상 1:39)에게 기름이 부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마쉬아흐(메시아), 즉 기름부음 받은 자로 호칭하는 것은 그분이 이 삼중직의 성취자로 이 땅에 오셨음을 말해줍니다.

 

(2) 아들들을 위한 준비(8-9)

 

아론에게 했던 것과 동일한 절차가 이제 아들들에게 적용됩니다. 그들에게는 대제사장 복장과 달리 매우 단순한 일반 제사장의 의복을 입힙니다. 제사장 의복은 기본 예복과 허리띠, 머리의 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름부음에 대한 언급이 없으나, 생략된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40:15에서 일반 제사장들의 기름부음에 대해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이든 일반 제사장이든 제사장 위임의 1차적 준비 절차는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목욕, 관복 입히기, 관유 붓기.

 

위임식 제사들(10-18)

제사 의식에서 전적인 헌신과 순종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수소의 속죄제와 숫양의 번제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전부를 드리는 자세를 상징합니다. 제물의 일부를 불사르는 과정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또한, 제사장들이 준비와 정결을 철저히 하는 모습은 경건한 삶의 중요성을 상기시킵니다. 이러한 교훈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일상에서 실천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10너는 수송아지를 회막 앞으로 끌어오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 송아지 머리에 안수할지며 11너는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그 송아지를 잡고 12그 피를 네 손가락으로 제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제단 밑에 쏟을지며 13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위에 있는 꺼풀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 불사르고 14그 수소의 고기와 가죽과 똥을 진 밖에서 불사르라 이는 속죄제니라 15너는 또 숫양 한 마리를 끌어오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 위에 안수할지며 16너는 그 숫양을 잡고 그 피를 가져다가 제단 위의 주위에 뿌리고 17그 숫양의 각을 뜨고 그 장부와 다리는 씻어 각을 뜬 고기와 그 머리와 함께 두고 18그 숫양 전부를 제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10-18)

 

본문에서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임명되는 의식을 설명합니다. 제사장은 수송아지와 수양을 제물로 바치고, 그 제물의 일부를 불사르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 의식은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성별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 과정을 나타냅니다.

 

(1) 수소의 속죄제(10-14)

 

제사장들의 신체적 준비를 완료한 뒤, 세 가지의 질승 제사를 연달아 바칩니다. 수소의 속죄제, 숫양의 번제, 위임식 숫양의 제사 등입니다. 속죄제 규정은 레위기 45장에 자세히 설명됩니다. 레위기 4:1-12에 규정된 제사장을 위한 속죄제 절차에서 중요한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안수와 도살, 피 처리, 기름과 주요 부위 태우기, 그리고 남은 고기와 잔존물들의 진 밖 소각. 본문의 위임식 명령도 정확히 이 순서대로 속죄제 절차를 지시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론과 아들들이 먼저 송아지에 안수한 뒤, 그것을 도살해서 피를 양푼에 받습니다. 모세는 양푼에 담긴 피를 들고 제단의 경사로로 올라가 그것을 손가락으로 찍어서 제단 사면 뿔에 바릅니다. 제단에서 내려온 뒤 남은 피를 모두 제단 밑에 쏟습니다. 이어서 모세는 기름과 주요 부위를 제단 위로 가지고 올라가 태웁니다. 구체적으로는 내장 주변의 모든 기름과 간엽(간에 덮인 꺼풀이라기보다는 간의 특정한 부위로 추정됨), 두 콩팥입니다. 콩팥은 기름 덩어리 속에 엉겨 있어 전체가 하나의 기름덩어리로 취급된 것 같고, 추가적 이유로는 콩팥이 짐승의 가장 깊숙한 중심부에 위치한 장기로서 짐승의 자아를 상징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간엽을 바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 역시 전체적으로는 기름과 엉겨 있는 기름 덩어리의 일부로 간주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핵심은 짐승의 기름을 모두 태운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몇 가지 의견들이 나뉘는데, 어떤 학자는 콜레스테롤이 인체에 해롭기 때문에 먹지 않도록 했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학자는 기름이 고대에 가장 맛있는 부위였기 때문에 바치도록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적정 수위의 콜레스테롤은 인체에 필수적이며, 복부의 엉긴 기름(suet)은 고대에도 식용으로는 불가했습니다. 기름이 힘과 풍요의 상징이었기에 기름 바치기는 힘의 근원이시고 풍요를 주시는 하나님께 그것을 돌려드리는 행위였을 것으로 추론됩니다. 그리고 기름 부위를 제외한 속죄제의 남은 모든 부위는 레위기 법의 원칙대로 진 밖에서 태웁니다.

 

(2) 숫양의 번제(15-18)

 

이어서 숫양의 번제가 드려집니다. 역시 동일한 절차를 밟는데, 번제의 경우 가죽을 제외한 모든 것을 다 제단 위에 태웁니다. 번제의 자세한 절차는 레위기 1장에서 설명됩니다. 속죄제와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번제의 짐승은 가죽을 제외하고 모든 고기를 제단에 바치므로 잘 타도록 각을 떠야 했습니다. 이어서 내장까지 깨끗이 씻어서 제단에 올립니다. 피를 처리하는 방식도 차이가 있습니다. 속죄제에서는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서 제단에 발랐지만, 번제에서는 양푼에 담긴 모든 피를 제단 사면 벽에 끼얹습니다. 이렇게 전체가 바쳐진 번제는 연기가 되어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로 올라갔고,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화제(공물, 음식제물)로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의 준비와 거룩함, 최선의 헌신, 다양한 예배와 기도의 중요성, 그리고 경건한 삶의 중요성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교훈을 우리의 신앙 생활에 적용하여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신앙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헌신을 기쁘게 받으시고,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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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28-01)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제사장의 예복

출애굽기 28장 1-14절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말해 줍니다. 졸업식장에 박사 가운을 입고 있고 들어서면 박사이고, 군대에서 군복을 입고 있으면 군인이고, 길거리에서 경찰제복을 입고 있으면 경찰입니다. 이처럼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이나 특징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의 옷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겠습니까?

 

  • 성막에서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 입는 예복을 준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 중에서 제사장의 예복 중에 가장 중요한 에봇에 대한 내용을 다룹니다. 에봇의 재료와 제작 기술, 에봇 위에 다는 두 개의 보석 그리고 에봇의 테와 사슬에 대해 말합니다.

 

제사장의 예복을 만드는 방법(1-5)

성막 구별된 공간이듯 제사장도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반영하는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세상 가운데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할 사람들입니다(엡 4:24). 특별한 일이나 사람들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성도들은 제사장들입니다.

 

1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2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3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모든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4그들이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5그들이 쓸 것은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이니라(1-5)

 

하나님께서는 먼저 제사장으로 구별된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거기는 놀랍게도 황금송아지 사건을 주도한 아론과 자녀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까지 사명을 맡기고 있습니다. 후에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음을 당합니다. 그의 아버지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된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통해 이어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1) 대제사장의 관복(1-3)

 

일반 제사장의 복장은 간단한 데 비해 대제사장 복장은 여러 부속물로 구성되어 있고, 옷을 장식하는 장식물들도 여러 가지입니다. 제사장 복장 규례에 대한 지침은 이어지는 29장의 제사장 위임식을 준비하기 위함입니다(1). 아론과 더불어 네 아들이 모두 거명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사장의 임무’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임이 분명하게 정의됩니다. 그들 직분의 구별은 가장 먼저 거룩한 옷을 통해 드러나야 합니다. 제사장 복장은 하나님 거룩의 현시(顯示)입니다. 특히 대제사장의 옷은 하나님의 거룩을 찬란하고 영광스럽게 드러냅니다. 그분의 거룩은 성막의 다양한 시설물들을 통해 이미 현시된 바 있습니다. 제사장 복장, 특히 대제사장의 복장도 그러합니다. 이 옷은 제사장 자신의 영화롭고 특별한 신분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생각나게 합니다.

이 옷은 인간의 지혜가 아닌 신적 디자인으로 지어지며, 따라서 그것을 구현해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지혜의 영에 사로잡힌 기술자여야 합니다(3). 이 지혜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 35:10-35에서 브살렐과 오홀리압 및 여러 성전 기술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35:35). 하나님의 지혜의 영을 받은 이 사람들이 성막 건설을 주도했습니다. 결국 성막을 지으신 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우리 또한 세상을 향한 거룩한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 지혜의 영, 곧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한편, 해밀턴(Hamilton)이 말한 대로 사람을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케 한다는 최초의 기록이 여기서 등장합니다. 이전에는 사람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했다는 명시적인 기록이 없습니다. 족장들은 물론이고 모세에게도 그린 표현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막 건설에서 하나님의 영의 임재는 특별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영에 충만한 사람들을 통해 성막이 건설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 창세기 1:2에서 최초로 나타난 사실과 병행합니다. 천지 창조의 현장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여 우주 만물을 일종의 하나님의 성전으로 짓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제 그 성령이 다시 하나님의 성막을 짓는 시점에 사람을 통해 충만케 됩니다. 이것은 성막 건설이 일종의 새로운 창조 사역임을 암시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하나님 영의 충만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과 병행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다락방의 신자들 위에 부어졌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강림과 더불어 교회가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며, 하나님의 영을 받은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성전, 즉 교회 건설의 사명자로 부름 받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2) 옷의 종류와 장식품들, 그리고 실들(4-5)

 

대제사장의 복장과 일반 제사장의 복장은 구분됩니다. 단순했던 일반 제사장의 복장에 비해 대제사장의 복장은 훨씬 복잡했고, 많은 장식으로 치장되었습니다.

먼저 대제사장 복장, 즉 아론이 입는 복장이 나열됩니다. 이 순서는 입는 순서의 반대입니다. 입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띠는 에봇의 양쪽에 부착되므로 제외합니다. (속 바지), 반포 속옷, 겉옷, 에봇, 흉패, 관, 제단에 오를 때 입어야 하는 속바지는 28:42-43에서 추가됩니다. 따라서 가장 먼저 속바지를 입고, 이어서 반포 속옷을 입습니다. 속옷은 적절한 번역이 아니므로 ‘예복’으로 바꾸어 설명하기로 합니다. 가는 베실로 짠 이 옷은 가장 긴 것으로 끝이 거의 바닥에 닿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반포 예복은 띠로 묶는데, 이 띠는 여러 고급실로 짠 일종의 허리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겉옷을 입는데, 랍비들은 아마 반포 예복보다 한 뼘 정도 더 짧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래 더 자세히 묘사되는 겉옷은 기본 예복 위에 입는 어깨가 없는 통옷이었는데, 청색 염료로 염색했고 아래 금방울들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 위에 치마 형태의 에봇을 입는데, 랍비들의 추정에 의하면 이것은 다시 겉옷보다 한 뼘 정도 짧았을 것입니다.

 

에봇을 만드는 방법(6-8)

모든 성도는 만민제사장으로서 중보자 없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갑니다. 하나님께 나갈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가야 합니다. 외모도 아름다움으로 꾸며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며 나가야 합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나가갈 때, 내면의 아름다움을 장식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6그들이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에봇을 짓되 7그것에 어깨받이 둘을 달아 그 두 끝을 이어지게 하고 8에봇 위에 매는 띠는 에봇 짜는 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에봇에 정교하게 붙여 짤지며(6-8)

 

다음으로 대제사장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보좌인 언약궤 앞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의 옷은 제사장의 옷보다도 더 화려했습니다.

5절에서 최초로 금실이 언급되는데, 금실 제조법은 39:3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실에 금물을 입혔을 수도 있지만, 이 제조법에 따르면 금을 녹여 망치로 얇게 펴서 자르고, 이것을 색실과 섞어서 옷감을 짰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막에서 유일하게 금실이 사용된 사례입니다. 금실은 성막의 앙장막이나 휘장막에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고가의 실들과 더불어 가장 비싼 이 실이 오직 대제사장의 에봇을 제작하는 데 사용됩니다. 또한 에봇에 수를 놓는 방법도 가장 정교한 기술이 사용되었습니다. 에봇이 얼마나 고귀한 물건인지, 거룩의 등급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 학자들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에봇이 대제사장 의복의 지성소라 일컫습니다. 이것이 타당한 이유는 직무를 위한 임시 복장으로 보이는 속바지를 제외한 제사장 옷의 기본 복장이 마치 성막처럼 삼중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속옷, 겉옷, 에봇. 다만 성막과 달리 제사장의 복장은 안에서 밖으로 나올수록 더욱 고급스럽고 화려합니다. 마지막 에봇 위에는 보석이 열두 개나 달린 흉패가 걸려 있으며, 두 겹으로 짠 흉패 안쪽에 두 개의 돌로 추정되는 비품,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분별하기 위한 우림과 둠밈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지성소의 법궤와 순금 그룹들, 그리고 그 안에 놓인 두 개의 십계명 돌판을 연상케 합니다. 에봇 위쪽에는 두 개의 어깨받이가 만들어져 대제사장의 양쪽 어깨에 올려졌습니다. 추정컨대 에봇의 형태는 허리에 둘러 입는 치마처럼 생겼을 것입니다. 멜빵바지처럼 대제사장의 등쪽으로 에봇의 끈 두 개가 어깨 위로 올라가 어깨받이 양쪽 끝 모서리에 부착됩니다. 가슴 쪽에서는 금사슬이 흉패와 연결되어, 흉패가 가슴에 고정됩니다. 에봇은 허리에 두른 치마와 같은 옷이므로, 일종의 허리띠로 묶어야 했습니다. 한편, 8절은 좌우의 어깨받이에 등쪽으로 연결하는 두 개의 띠 짜는 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역시 최고급 실들로 짜서 에봇에 단단히 부착합니다.

 

견대 위에 12가지 보석(9-14)

하나님께서는 세밀한 세부 사항까지 신경 쓰시며, 우리의 삶에도 특별한 의미와 기억을 부여하십니다. 이러한 상징물은 신앙의 뿌리와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잊지 말고 기념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감사와 존중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즉, 신앙의 기념비를 통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우리의 소중한 정체성을 인식하고 유지하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9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10그들의 나이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기라 11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12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13너는 금으로 테를 만들고 14순금으로 노끈처럼 두 사슬을 땋고 그 땋은 사슬을 그 테에 달지니라(9-14)

 

두 어깨받이 위에는 큼지막한 호마노 보석을 장식합니다(9). 호마노 보석은 정체가 분명하지는 않으나 대단히 귀한 보석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 이름을 두 개의 보석에 각각 여섯 개씩 기록해야 합니다. 무작위로 이름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이대로”, 즉 그들이 태어난 순서대로 새겨야 했습니다. 도장에 새김같이 새기라는 말에서 여기서도 정교한 기술이 요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열두지파 조상들의 이름을 새긴 두 보석은 더욱 고급스럽게 각각 금테로 둘러쌌습니다(13). 이것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영광스럽게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상징할 것입니다. 에봇의 어깨받이에 부착된 두 개의 호마노 보석은 모든 이스라엘에게 ‘기억의 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기억을 위한 특별한 보석 장식품입니다. 이 기념 보석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들의 뿌리와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과 복주심을 기억나게 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매번 대제사장의 어깨 위 호마노 보석을 볼 때마다 자신들이 특별한 보배와 같은 민족임을 상기했을 것입니다. 다음 부품으로 금으로 된 사슬 두 개를 제작하라는 지시가 내려집니다(14). 이것을 에봇 어깨받이의 고리에 걸어 대제사장의 가슴 쪽으로 내려오게 합니다. 사슬들의 위쪽 두 끝은 각각 에봇 어깨받이에 연결되고, 아래쪽 두 끝은 흉패 위쪽의 두 모서리에 연결됩니다. 흉패 아래쪽 두 모서리는 다시 청색 끈을 달아 에봇으로 연결합니다. 이렇게 해서 흉패가 대제사장의 가슴에 부착됩니다. 에봇과 흉패는 하나의 세트로 구성된 에봇 세트로 볼 수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거룩한 예복을 입고 나가야 합니다.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거룩한 예복”을 입은 것처럼 오늘날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의 삶도 거룩함으로 덧입혀져야 합니다. 그래야 왕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갈 수 있습니다. 날마다 거룩함으로 당신을 통해 세상 앞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드러내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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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27-01)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뜰과 불

출애굽기 27장 1-21절


‘거룩하다’는 사전적인 의미는 종교적이라는 의미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거룩’은 단순히 종교적이기 떠나서 다른 이들과 구별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의 뜰을 만들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방인과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성막 내부에 대한 언급을 마치시고, 이제 초점을 성막 밖에 있는 뜰에서 사용될 기구들로 옮깁니다. 제물을 태우는 번제단과, 성막의 울타리와, 성막 안에 등불을 관리하는 것을 다룹니다. 이 시설물들의 실제 건축에 대한 기사인 출애굽기 38:1-20에서 거의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성막의 놋 제단(1-8)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섬세하게 배려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 배려가 우리의 방종을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우리의 삶을 더욱 깨끗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배려는 우리가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지키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하여 청결하고 진정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너는 조각목으로 길이가 다섯 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의 제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높이는 삼 규빗으로 하고 2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이어지게 하고 그 제단을 놋으로 싸고 3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제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4제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 고리 넷을 만들고 5그물은 제단 주위 가장자리 아래 곧 제단 절반에 오르게 할지며 6또 그 제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쌀지며 7제단 양쪽 고리에 그 채를 꿰어 제단을 메게 할지며 8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게 하라(1-8)

 

성막의 놋 제단은 하나님께 제물과 헌물을 바치기 위한 중요한 장소입니다. 이 제단은 놋으로 만들어졌으며, 제물의 불을 지피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제단은 크고 튼튼하게 설계되어, 제사와 예배의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1) 제단의 기본 형태(1-2)

 

성전 마당에 축조하는 제단은 흔히 ‘번제단’, 혹은 놋을 표현에 입힌 이유로 ‘놋제단’으로 불립니다. 제사를 드리는 제단을 놋으로 제작하는 내용입니다. ‘번제단’이라고 부른 제단은 성막 앞 뜰에 있어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데 쓰였습니다. 크기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2.25m 그리고 높이가 1.35m 크기의 제단과 여기에서 쓰일 기구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특이한 것은 제단의 네 모서리에 놋으로 만든 뿔을 만들라고 하신 것입니다. 뿔은 힘과 권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제단에서 드려지는 제사가 죄를 용서하기에 충분함을 나타냅니다. 또 하나님은 제단의 속을 비우고 채를 끼워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2) 제단의 부속물들(3-5)

 

제단 업무에 필요한 여러 가지 비품들이 등장합니다. 제를 담는 통, 부삽, 대야, 갈고리 불 옮기는 그릇, 이 모든 것들도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재를 담는 통에 부삽으로 제단 위의 제를 쓸어 담아 청소를 했을 것입니다. 제단은 성막 앞뜰에 위치한다는 것으로 제사하는 사람이 먼저 죄를 속죄하는 희생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죄와 하나님은 결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놋 제단을 지나야 하나님의 보좌인 범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속죄 제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번제단에 희생제물을 드린 후 죄 용서 받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했습니다.

 

(3) 제단을 옮기는 채와 축조 방법(6-8)

 

제단의 틀은 조각목 널판으로 짠 뒤 놋으로 입혔는데, 틀의 안쪽은 비워 놓습니다(8). 어쩌면 그 빈 공간은 일정량의 흙을 채운 뒤 그 위에 장작을 쌓아 짐승을 태웠는지도 모릅니다. 이 경우 흙이 강한 불길과 화력으로부터 목재인 제단 틀의 손상을 막아줬을 수 있습니다. 또한 많은 놋을 녹여 두껍게 목재 제단의 안팎에 입혀서 매일의 엄청난 제물들이 탈 때 발생하는 불길이 목재에 닿지 않도록 차단했을 것입니다. 참고로 고라 일당이 각자의 놋 향로를 들고 반역했을 때 모두 심판당해 몰살되었는데, 남은 향로들을 녹여 번제단을 싸는 데 사용했습니다(민 16:38-39). 번제단에도 다른 사각형 비품들과 마찬가지로 채를 조각목으로 제조하여 옷을 입힌 뒤 끼워놓았습니다(6-7). 구름기둥이 뜨면 언제든 신속히 이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성막 뜰 울타리(9-19)

하나님께서 성막의 울타리를 만드신 것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기 위합니다. 성막 뜰은 외부 세계와 분리시켜 죄인이나 외인들이 성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뜰에서 속죄 제물을 잡으면서 자신의 죄에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죄 문제에 심각하게 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성전인 성도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9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지니 남쪽을 향하여 뜰 남쪽에 너비가 백 규빗의 세마포 휘장을 쳐서 그 한 쪽을 당하게 할지니 10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11그 북쪽에도 너비가 백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기둥의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12뜰의 옆 곧 서쪽에 너비 쉰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열이요 받침이 열이며 13동쪽을 향하여 뜰 동쪽의 너비도 쉰 규빗이 될지며 14문 이쪽을 위하여 포장이 열다섯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요 15문 저쪽을 위하여도 포장이 열다섯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며 16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짠 스무 규빗의 휘장이 있게 할지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이며 17뜰 주위 모든 기둥의 가름대와 갈고리는 은이요 그 받침은 놋이며 18뜰의 길이는 백 규빗이요 너비는 쉰 규빗이요 세마포 휘장의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그 받침은 놋이며 19성막에서 쓰는 모든 기구와 그 말뚝과 뜰의 포장 말뚝을 다 놋으로 할지니라(9-19)

 

성막의 기둥과 그 받침대는 회막의 벽을 세우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기둥은 금으로 덮여 있고, 받침대는 은으로 만들어져 구조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기둥과 받침대는 성막의 정교함과 견고함을 보장했습니다.

 

(1) 남쪽과 북쪽 울타리 축조 방법(9-11)

 

다음으로 성막을 둘러쌓고 있는 성막 뜰과 그것을 둘러싸는 울타리에 대한 제작을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성전 뜰은 남쪽과 북쪽으로 45m, 동쪽과 서쪽으로 22.8m이며, 동쪽으로만 나 있는 약 9m 크기의 문이 있는 회막의 뜰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성막과 외부 세계를 분리시키는 역할 했습니다. 뜰의 경계선에는 북쪽과 남쪽에 20개, 동쪽과 서쪽에 10개의 놋으로 만든 기둥과 밑받침을 세우고, 은으로 만든 갈고리와 고리에 고운 모시로 만든 천을 걸어 울타리를 치라고 하셨습니다. 고운 모시로 만든 천은 흰색이었는데, 이는 거룩함을 의미합니다.

성막의 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제사(예배)를 드리는 곳이었으며, 이방인들은 갈 수 없는 구별된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하신 것입니다. 타락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류를 동산 동편에 천사들을 그룹들을 두어 타락한 인간이 들어갈 수 없도록 했습니다. 성막 동편에 문을 열어두셨다는 것은 다시 하나님께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타락하기 전에는 죄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지만, 타락한 인류는 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바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께 속죄 제물을 드리고 죄를 없앤 후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므로 이 안에서 백성들은 직접 동물을 잡고 피를 바르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는 일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즉 성막 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 관계를 회복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적극적인 신앙 공간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오직 거룩한 자에게만 가능한데, 만약 성막 뜰이라는 완충지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2) 서쪽 울타리와 동쪽 뜰문, 울타리 기둥의 부품들(12-19)

 

뜰의 서쪽, 즉 지성소 뒤쪽의 울타리는 50규빗(25미터)이었습니다. 서쪽 울타리는 남과 북의 울타리에 비해 길이가 절반이라 기둥은 10개가 필요했습니다. 동쪽은 성막 입구라 약간 형식이 달랐습니다. 가운데는 통로 역할을 한 뜰 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양쪽에 기둥이 세 개씩 세워졌습니다. 뜰문의 통로는 네 개의 별도 기둥들을 세워 휘장막을 둘러쳐서 가렸습니다. 어떤 랍비는 네 기둥의 뜰막은 입구 통로로부터 앞으로 조금 떨어져 위치한 독자적 시설물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즉 성막입구는 뜰의 휘장막이 별도 시설물로 앞쪽에 놓인 개방형 입구였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사람들의 빈번한 출입을 고려할 때 타당해 보입니다. 성막 뜰의 시설물들의 재료가 대부분 놋이라는 사실이 재차 확인됩니다. 성막의 전체 규모가 요약됩니다. 가로세로 100×50규빗(50x25m)입니다. 울타리의 높이가 5규빗(2.5m)으로 명시된다. 이것은 곧 기둥의 높입니다.

 

(3) 성막 등불 관리(20-21)

 

마지막으로 성막 안의 등대에 켜놓은 등불 관리에 대한 내용입니다. 앞에서 25:31-40에서 등잔대가 설명된 바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간략하게 명시합니다.

성막 안을 밝히는 등불은 주야로 꺼지지 않게 하며, 그 기름은 “깨끗한 기름”이어야 합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은 성막 안을 밝히는 등불을 잘 보살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항상 켜져 있도록 해야 했습니다. 성막 바깥에 있는 것들의 제작에는 성막 안의 것들을 제작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던 재료들과 달리, 놋과 은이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성막과 성전을 만드시고 그곳에서 만나시길 원합니다. 구약에서는 건물을 통해 만나셨지만, 이제는 심령을 통해 만나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과 순결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만나로 나아가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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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26-01)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성막

출애굽기 26장 1-37절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하신다는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상징이었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과 만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 항상 함께하시며, 어디에 있든지 동행하신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막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 본문은 성막의 지붕을 덮은 앙장과 덮개들의 제작, 널빤지들로 세우는 회막 벽의 조립에 대한 지침입니다. 실제 제작을 묘사한 출애굽기 36:8-38에서 반복됩니다. 벽의 전체적인 크기와 형태, 또한 각 부품들의 모양과 조립 과정을 잘 생각하며 내용을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성막의 앙장막과 덮개들(1-14)

기독교인들에게 성막의 덮개와 앙장은 신앙 생활에서 헌신과 세심한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자원의 상대적 가치와 현실적인 제약을 이해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신앙 여정에서 점진적인 개선과 발전을 통해 영적 목표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제공합니다. 또한, 다양한 자원과 능력의 조화와 역할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것이 신앙 공동체의 성장을 돕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앙 생활에서 기초를 다지고 세심한 배려를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열 폭의 휘장을 만들지니 2매 폭의 길이는 스물여덟 규빗, 너비는 네 규빗으로 각 폭의 장단을 같게 하고 3그 휘장 다섯 폭을 서로 연결하며 다른 다섯 폭도 서로 연결하고 4그 휘장을 이을 끝폭 가에 청색 고를 만들며 이어질 다른 끝폭 가에도 그와 같이 하고 5휘장 끝폭 가에 고 쉰 개를 달며 다른 휘장 끝폭 가에도 고 쉰 개를 달고 그 고들을 서로 마주 보게 하고 6금 갈고리 쉰 개를 만들고 그 갈고리로 휘장을 연결하여 한 성막을 이룰지며 7그 성막을 덮는 막 곧 휘장을 염소털로 만들되 열한 폭을 만들지며 8각 폭의 길이는 서른 규빗, 너비는 네 규빗으로 열한 폭의 길이를 같게 하고 9그 휘장 다섯 폭을 서로 연결하며 또 여섯 폭을 서로 연결하고 그 여섯째 폭 절반은 성막 전면에 접어 드리우고 10휘장을 이을 끝폭 가에 고 쉰 개를 달며 다른 이을 끝폭 가에도 고 쉰 개를 달고 11놋 갈고리 쉰 개를 만들고 그 갈고리로 그 고를 꿰어 연결하여 한 막이 되게 하고 12그 막 곧 휘장의 그 나머지 반 폭은 성막 뒤에 늘어뜨리고 13막 곧 휘장의 길이의 남은 것은 이쪽에 한 규빗, 저쪽에 한 규빗씩 성막 좌우 양쪽에 덮어 늘어뜨리고 14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지니라(1-14)

 

성막의 첫 번째 앙장은 양털로 짠 것이며, 두 번째 앙장은 염소 털로 만든 것으로, 첫 번째 앙장보다 더 길고 넓어서 완전히 덮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앙장은 열한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금이 아닌 구리로 만든 고리와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덮개는 숫양 가죽과 해달 가죽으로, 해달 가죽은 지붕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1) 첫 번째 색실 앙장막(1-6)

 

첫 번째 덮개인 앙장(개역개정 “휘장”)은 일단 작은 크기로 열 폭이 만들어졌습니다. 세마포 베실에 염색한 양모실인 청색, 자색, 홍색 실들을 섞으면서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놓았습니다. 어떤 랍비들은 그룹들이 앙장막 양쪽 모두에 수놓아졌을 것으로 봅니다. 역시 그룹이 수놓아진 지성소의 휘장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입니다(26:31). 성경에서 그룹들의 형상은 사자, 독수리, 황소, 인간의 모습 등으로 나타나지만(겔 1:10;계 4:7), 이 중 어느 형상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또한 그룹들의 개수와 크기에 대해서도 성경은 침묵합니다. 열 폭의 작은 앙장막들은 한 장의 크기가 가로 28규빗(약 14m) 세로 4규빗(2m)이었습니다(2). 열장을 연결하면, 가로 28규빗(14m)에 세로의 총 길이는 40규빗(20m)인 거대한 앙장막이 만들어집니다(14x20m). 이것을 회막 지붕에 덮었을 때 땅바닥에서 2규빗이 떴습니다. 작은 앙장들은 먼저 각각 다섯 장씩 바느질로 이어 큰 두 장의 앙장막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어서 이 두 개의 큰 앙장막을 다시 연결해서 거대한 완성품 앙장막이 만들어졌는데, 연결 방법은 양쪽 5장짜리 앙장막 끝에 청색 실로 고(갈고리를 끼우는 구멍)를 50개 만들고(총 100개) 금으로 된 갈고리 50개를 달아 끼우는 방식이었습니다.

 

(2) 두 번째 염소 털 앙장막과 가죽 덮개들(7-14)

 

두 번째 앙장의 재료는 양털이 아닌 염소 털로 짠 실(wool)입니다. 이 앙장은 첫 번째 것보다 한 장이 더 많은 열한 장이었으며, 크기는 가로 30규빗(15m), 세로 4규빗(2m)입니다. 앞서 가로 28규빗이었던 첫 번째 앙장보다 2규빗이 더 깁니다. 작은 폭의 휘장 열한 폭을 잇대었으므로 총 길이는 44규빗입니다. 즉, 가로 30규빗, 세로 총 길이 44규빗으로 첫 번째 것보다 한 장이 더 많아 4규빗이 더 깁니다.

두 번째 앙장이 한 장만큼, 즉 4규빗이 더 길고 세로도 30규빗으로 2규빗이 더 긴 것은 이것이 첫 번째 덮개를 완전히 덮었음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 앙장(휘장)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열한 장의 작은 앙장들이 정교한 방식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각각 여섯 장, 다섯 장으로 연결했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 차이가 있다면, 50개의 고(구멍)를 염소 털로 만들었고, 갈고리는 금이 아닌 구리(copper, brass)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번째 염소 털 앙장이 첫 번째 것보다 가치가 훨씬 낮았음을 말해줍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의 가죽 덮개에 대해서는 불과 한 구절의 간략한 설명밖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숫양의 가죽이 먼저 등장하는데 이것은 홍색 염료로 물을 들였기에 해달 가죽보다 비쌌습니다. 두 종류의 가죽 덮개의 크기와 모양, 구체적 용도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두 가죽 덮개가 회막 전체를 덮었다고 봅니다. 그 경우 회막은 총 네 겹의 휘장과 덮개로 덮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붉은 숫양의 가죽은 전체를 덮었으며 해달의 가죽을 그 위에 얹어 지붕을 장식했다고 봅니다. 이 경우 성막 건물 전체는 세 개의 막에 의해 3중으로 덮이고 마지막 해달 가죽은 지붕에만 덮이는데, 우리는 이것을 따릅니다.

 

널판 제작과 조립 방법(15-25)

우리가 삶에서 튼튼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심한 준비와 헌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의 노력을 신중하게 준비하고 헌신하는 자세가 성취를 가져올 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정교하게 연결된 널판은 조화와 균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협력과 팀워크의 필요성을 일깨워줍니다. 또한, 일관된 기준과 규칙에 맞춰 작업을 진행해야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15너는 조각목으로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어 세우되 16각 판의 길이는 열 규빗, 너비는 한 규빗 반으로 하고 17각 판에 두 촉씩 내어 서로 연결하게 하되 너는 성막 널판을 다 그와 같이 하라 18너는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되 남쪽을 위하여 널판 스무 개를 만들고 19스무 널판 아래에 은 받침 마흔 개를 만들지니 이쪽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고 저쪽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지며 20성막 다른 쪽 곧 그 북쪽을 위하여도 널판 스무 개로 하고 21은 받침 마흔 개를 이쪽 널판 아래에도 두 받침, 저쪽 널판 아래에도 두 받침으로 하며 22성막 뒤 곧 그 서쪽을 위하여는 널판 여섯 개를 만들고 23성막 뒤 두 모퉁이 쪽을 위하여는 널판 두 개를 만들되 24아래에서부터 위까지 각기 두 겹 두께로 하여 윗고리에 이르게 하고 두 모퉁이 쪽을 다 그리하며 25그 여덟 널판에는 은 받침이 열여섯이니 이쪽 판 아래에도 두 받침이요 저쪽 판 아래에도 두 받침이니라(15-25)

 

조각목으로 만든 널판들로 회막의 벽을 세웁니다. 각 널판 한 장의 길이(높이)가 10규빗(5m), 너비가 1.5규빗(75cm)이었습니다. 두께는 명시되지 않았는데 랍비들은 1규빗(50cm)의 두께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각 널판 면에 두 개의 촉을 만들어 널판들을 마치 레고처럼 끼워서 연결했습니다. 널판 아래에도 두 개의 촉을 만들어 받침대에 끼워 연결합니다(19). 널판과 다른 부속 부품들은 모두 금으로 입히거나 순금으로 제작되었는데, 받침대는 은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거대한 받침대 하나가 은 덩어리였음을 의미합니다. 이 받침대의 정확한 크기와 규격은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두 개의 받침대가 하나의 널빤지 두께에 맞도록 정확히 끼워졌을 것입니다. 아래쪽에 두 개의 은 덩어리 받침대로 인해 널빤지들이 견고히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성막이 설치될 때는 항상 입구가 동쪽입니다. 그것을 기점으로 남쪽과 북쪽 벽을 위해 각각 널판 20개씩을 제작합니다. 성막 안쪽 본당 건물인 회막은 크기가 남북 30규 빗(15m), 동서 10규빗(5m)입니다. 남북의 널판 20개가 개당 1.5규빗씩이므로 정확히 30규빗입니다. 지성소 뒤쪽의 서벽은 10규빗의 길이이므로 1.5규빗 너비의 널판이 8개가 필요했습니다.

24절은 매우 난해한 표현으로 주석가들과 역본들도 해석이 각기 다릅니다. 모퉁이 쪽의 “두 겹 두께”라는 표현을 모퉁이에서 널판을 두 겹으로 붙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는 잘못된 재구성입니다. 지성소는 내측을 기준으로 10×10규빗이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양쪽 끝 모퉁이에 놓인 두 개는 남편과 북편의 널빤지들과 맞대어지는데 이것이 “두겹 두께”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 두 널판을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나란히 붙여 세운 뒤 맨 위쪽의 윗고리, 즉 길게 패인 홈에 꺾쇠(갈고리)를 꽂아 둘을 단단히 고정합니다. 모든 널판의 위쪽에는 그런 홈들이 있어서 두 널판당 하나씩 커다란 꺾쇠를 꽂아 널판과 널판을 연결했을 것입니다.

 

널판 벽을 연결하는 장치들(26-30)

다양한 성전의 기물은 우리의 삶에서 튼튼한 기반의 중요성과 균형과 조화의 필요성을 상징합니다. 금으로 장식된 기물은 세심한 준비와 헌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가장 긴 봉은 핵심 요소에 집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또한, 금으로 장식된 기물은 신성함과 경건함을 상징하며, 우리의 삶에서도 이러한 존중과 경외를 가지고 행동해야 함을 알려줍니다.

 

26너는 조각목으로 띠를 만들지니 성막 이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요 27성막 저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요 성막 뒤 곧 서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이며 28널판 가운데에 있는 중간 띠는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고 29그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 널판들의 띠를 꿸 금 고리를 만들고 그 띠를 금으로 싸라 30너는 산에서 보인 양식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26-30)

 

널판들을 서로 붙인 뒤에 움직이지 않고 든든히 서도록 다섯 개의 긴 봉을 지지대 역할을 하도록 끼워 넣습니다. 이때 각 널판 벽마다 긴 봉을 끼우는 금고리가 부착됩니다(29). 28절은 아마도 널판들의 중앙에 구멍을 뚫고, 그 널판 구멍들을 꿰뚫고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장 긴 봉을 끼우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것은 남은 네 개는 그보다 짧은 크기의 봉임을 암시합니다. 이렇게 해서 남쪽과 북쪽 벽에 다섯 개의 봉들이 끼워집니다. 서쪽 벽은 길이가 짧기에 봉들도 모두 훨씬 짧습니다. 이 모든 널판들을 모두 금으로 쌌고, 봉(띠)들도 금물로 칠했으며 고리들은 모두 순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지성소 휘장과 내성소 가림막(31-37)

지성소의 휘장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거룩함과 중요성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거룩함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경계를 넘어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이는 우리의 신앙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상기시킵니다.

 

31너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짜서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 놓아서 32금 갈고리를 네 기둥 위에 늘어뜨리되 그 네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네 은 받침 위에 둘지며 33그 휘장을 갈고리 아래에 늘어뜨린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들여놓으라 그 휘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리라 34너는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 35그 휘장 바깥 북쪽에 상을 놓고 남쪽에 등잔대를 놓아 상과 마주하게 할지며 36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짜서 성막 문을 위하여 휘장을 만들고 37그 휘장 문을 위하여 기둥 다섯을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갈고리도 금으로 만들지며 또 그 기둥을 위하여 받침 다섯 개를 놋으로 부어 만들지니라(31-37)

 

앙장막과 동일하게 매우 비싼 색실들을 사용해서 지성소 휘장을 만듭니다. 이 휘장은 지성소와 내성소를 나누는 가장 중요한 커튼입니다(33). 앙장막에 그랬던 것처럼 아주 화려한 그룹들로 수를 놓았습니다. 휘장은 가로세로 10규빗인데 회막 입구의 가림막도 같은 사이즈였습니다. 금을 입힌 네 개의 조각목 기둥이 지성소와 내성소 사이에 세워지고, 이 기둥들에 지성소를 가리는 휘장이 드리워졌습니다.

랍비들은 가로세로 1규빗, 높이 10규빗의 정사각형 널판 기둥이라 추측합니다. 휘장을 거는 금으로 만든 갈고리가 네 기둥들 위에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역시 이 기둥들도 받침대가 있었는데 은으로 제작하여 하나씩 끼웠습니다. 여기서 내성소의 중요한 기물들의 배치가 설명되었습니다(34-35).

지성소 휘장과 별개로 이제 회막 입구를 막는 가림막, 즉 내성소 휘장이 만들어집니다. 지성소 휘장과 동일하게 삼색 실을 사용하지만, 그룹 문양이 수놓아져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내성소 휘장의 가치가 더 낮았음을 시사합니다. 이 내성소 휘장을 거는 조각목 기둥은 다섯 개다. 모두 금을 입힌 기둥들이었다. 그런데 기둥의 받침대는 은이 아닌 놋이었습니다.


성막의 설계와 장식은 현대인에게 신앙의 정성과 헌신이 우리의 삶에 질서와 아름다움을 가져온다는 교훈을 줍니다. 자원과 은사를 올바르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하는 것이 신앙 생활의 핵심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세심한 준비와 조화로운 협력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마지막으로, 각자의 신앙 여정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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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25-02)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등대와 떡상

출애굽기 25장 23-40절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철저히 따르며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와 봉사는 하나님께 합당한 정성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하나님의 빛을 유지하며 세상에 그분의 빛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매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영적 빛을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우리의 최선과 순수한 마음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 본문에서는 성막에서 언약궤와 더불어 중요한 두 개의 물품의 제작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두 물품은 진설병상(떡상)과 등잔대로 성소에 배치되어 이스라엘의 헌신을 표현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장차 생명의 떡과 세상의 참 빛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온전히 헌신하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떡상의 모양(23-30)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마음과 삶의 순결함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단순히 외적인 형식에만 치중하지 않고, 내적인 성결함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항상 경건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헌신과 순종을 표현하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예배의 모든 행위는 성결함과 경건함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23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너비는 한 규빗,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24순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 테를 두르고 25그 주위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26그것을 위하여 금 고리 넷을 만들어 그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되 27턱 곁에 붙이라 이는 상을 멜 채를 꿸 곳이며 28또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라 상을 이것으로 멜 것이니라 29너는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순금으로 만들며 30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23-30)

 

하나님께서는 가식으로 부풀려진 마음을 원하지 않습니다. 예배드릴 때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까? 겉으로 경건하고 거룩한 체하지만, 속으로는 온갖 더러운 누룩으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진설병은 왕이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사는 삶을 나타냅니다.

 

(1) 떡상 본체의 식양(23-27)

 

떡상 또한 조각목을 재료로 기본 틀을 제작합니다. 크기는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2규빗/1규빗/1.5규빗이었습니다. 미터법으로 각각 약 100/50/75센티미터입니다. 상의 표면을 순금으로 쌌는데(24), 이것은 법궤처럼 얇은 판을 입혔다기보다는 금을 두껍게 칠했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사면이 평평한 법궤와 달리 떡상은 여러 부품으로 구성된 매우 오밀조밀한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금칠이 된 떡상 사방에 금테를 둘렀습니다(24-25). 법궤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떡상에도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을 입힌 채를 끼워 넣습니다. 채를 끼우는 네 개의 금고리를 제작한 뒤 거기에 두 개의 채를 끼워 넣습니다.

 

(2) 떡상의 부속물들(28-30)

 

떡상의 채들도 또한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을 칠했습니다. 몇 가지 용기들을 제작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는데, 정확히 어떤 물건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추론컨대 ‘대접’은 밑이 우묵하게 파인 큰사발(케아라)을 말하고, ‘숟가락’은 사실 손바닥처럼 생긴 작은 종지(카프)였을 것입니다. 어떤 랍비들은 레위기 24:7에 근거하여 이 종지에 유향을 담아 두 줄의 떡칸 위에 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 유향을 매 안식일에 떡을 교체할 때 번제단에서 태웠을 것으로 추론합니다.

이어지는 ‘병’(아마 항아리)과 ‘잔’의 정체와 용도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병들’(케사보트)은 다른 곳에서 ‘붓는 병들’(케쇼트 하네세크 “잔”)로 나오므로 술을 담는 용기를 뜻할 것입니다(민 4:7). ‘붓는 잔’이라는 표현을 볼 때 어쩌면 두 비품이 한 세트를 이루어 포도주를 병에 담아 잔에 따른 뒤 전제로 붓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해도 상징적으로만 그 물건들을 떡상 위에 놓았을 뿐 실제로 부은 것은 아닙니다. 내성소에서는 전제를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출 30:9). 이 병과 잔은 두 줄의 떡칸 사이에 놓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붓는 잔”의 정체에 대해서는 떡상 청소를 위한 비품이었다고 말하는 등 여러 다른 의견이 있으므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이 용기들을 떡상 위에 올려놓았는데, 모두 복수형인 것을 보면 각각 여러 개를 놓았을 것입니다.

떡상은 다양한 명칭으로 나타납니다. 순결한 상(레 24:4; 대하 13:11); 떡을 진설하는 상(대하 29:18); 진설병의 금상(왕상 7:48). 상위에 올린 진설병 또한 여러 명칭으로 나타납니다. 진설하는 떡(대상 9:32); 항상 진열하는 떡(민 4:7); 거룩한 떡(삼상 21:5). 한편, 진설병의 문자적 의미는 ‘얼굴의 떡’입니다. 얼굴의 떡 덩어리들에 새겨진 무늬나 도안이 여호와의 얼굴을 상징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de Boer), 아무 형상이나 모양으로도 하나님의 형상을 새겨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얼굴’은 떡상 앞에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심을 의미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떡상의 예물을 기쁘게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떡상에 진설병을 어떻게 만들고 얼마만큼 만들고 언제 올려놓아야 하는지, 등잔대의 불에 어떤 기름을 사용하고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레위기 24:19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무교병으로 추론되는 떡은 상 위 양쪽에 6개씩 쌓아 총 12개를 올립니다. 떡은 흔히 생각하는 호떡 같은 모양의 작은 크기가 아닙니다. 떡 하나는 10분의 2에바, 즉 무려 4.4리터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였습니다(레 24:4-5). 갓 제작한 따끈하고 물렁한 엄청난 크기의 떡을 포개서 쌓아 올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많은 유대 랍비들은 떡상에는 본체 위 양쪽에 여섯 칸의 독립적인 공간들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진설상의 본체만을 묘사하고 있을 뿐인데, 12개의 떡칸이 아마 소모품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떡을 하나씩 구운 용기를 그대로 들고 와 거기에 끼웠을 것입니다.

 

등잔대의 식양(31-40)

우리의 예배와 섬김도 하나님 앞에서 세심하게 준비되고 헌신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대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맞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영적 빛을 유지하고, 어두운 세상 속에서 그분의 빛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최선과 순결한 마음을 드림으로써, 그분과의 깊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31너는 순금으로 등잔대를 쳐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결하고 32가지 여섯을 등잔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다른 세 가지는 이쪽으로 나오고 다른 세 가지는 저쪽으로 나오게 하며 33이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쪽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같게 할지며 34등잔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35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게 하고 36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결하여 전부를 순금으로 쳐 만들고 37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38그 불 집게와 불 똥 그릇도 순금으로 만들지니 39등잔대와 이 모든 기구를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40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31-40)

 

성막 안에 둘 금 등잔대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를 담고 있습니다. 등잔대는 순금으로 만들고, 가지와 꽃 모양을 세밀하게 조각하여 제작해야 하며, 모든 부속품도 순금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등잔대와 부속품의 총 무게는 1달란트로 정해져 있습니다.

 

(1) 등잔대 본체의 식양(31-32)

 

등잔대는 법궤 위의 속죄소와 마찬가지로 모든 부품들이 한 덩어리를 형성한 일체형 기물이었습니다. 등잔대는 뛰어난 세공술로 만들어진 정교한 작품이었습니다. 밑판에서 올라온 등잔대의 가운데 줄기에서 양쪽으로 세 개씩 가지가 나와 결국 성소를 밝히는 등불 일곱 개가 켜졌습니다. 일곱 개의 등잔대 외에 분지마다 살구꽃 모양의 잔이 꽃받침과 꽃으로 이루어져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7’은 완전수를 가리키고 등잔의 불과 빛은 ‘불’과 ‘빛’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2) 등잔대의 잔들과 꽃장식들(33-37)

 

양쪽에 세 개씩 도합 여섯 개의 가지 각각에는 살구꽃(almond) 모양의 잔 셋이 있었고, 각각의 잔은 꽃받침과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개역개정은 “이쪽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로 번역되어(33) 마치 살구꽃 모양의 잔이 있고 별도로 꽃받침과 꽃이 장식되어 있는 것처럼 읽힙니다. 그러나 여러 역본에서 확인되듯이 그것은 ‘살구꽃 형상의 잔 셋, 즉 꽃받침과 꽃으로 구성된 잔 셋’으로 풀어서 번역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단순히 장식용 꽃 잔일 뿐이며, 각 가지의 맨 위에 일곱 개의 등잔대가 놓여 불을 밝힙니다. 가운데 기둥인 본줄기에는 역시 꽃받침과 꽃으로 구성된 꽃잔이 장식되었는데, 각각 세 개가 달린 다른 여섯 줄기와 달리 넷이었습니다. 본줄기의 맨 아래부터 세 개의 잔에서 양쪽으로 세 개의 가지가 뻗어 나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35-36절의 줄기에 대한 설명에서 “(양쪽의 뻗은)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본줄기의 꽃받침)”이 바로 그걸 묘사하고 있습니다. 맨 위의 네 번째 꽃잔, 즉 꽃받침과 꽃은 분지가 없는 형태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잔은 분지마다 세 개씩 여섯 분지이므로 열여덟 개이고, 줄기에 네 개이므로 총 스물두 개의 장식용 꽃잔이 있었습니다.

 

(3) 등잔대의 부속물들과 결언(38-40)

 

금 등잔대에 딸린 비품들은 “불 집게와 불똥 그릇”입니다. 모두 순금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은 매일 등잔대를 철저히 관리해야 했는데, 매일 기름이 탄 찌꺼기와 그을음이 생겨 청소해야 했습니다. 이때 집게는 심지와 재를 집어내 제거하고, 그것을 그릇에 담는데 사용했습니다. 추가로 본문에는 빠져 있지만, 분명히 순결한 올리브기름을 매일 채우기 위한 기름병이 부속물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한편, 일곱 분지의 등잔대에 24시간 동안 계속 불을 켰는지 아니면, 저녁부터 아침까지만 켜놨는지 의견이 양분됩니다. 이것은 레위기 24:2에서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라는 지침 때문에 생긴 논란입니다. ‘계속해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미드’는 ‘연속적으로’, ‘항상’이란 뜻입니다. 다수의 학자들은 레위기 24:3에 근거하여, 낮에는 등불을 켜지 않고 저녁부터 동틀 무렵의 아침까지불을 밝혔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24시간 불을 켰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회막 내부가 최소 삼중의 덮개와 막으로 겹겹이 둘러쳐져 있어서 외부의 빛이 완전히 차단되기에 낮에도 불을 켜야 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요세푸스는 실제로 적어도 금 등대의 등불 세 개를 온종일 켜놓았다고 기록합니다. 등잔대에 들어간 금의 총량은 1달란트(약 35킬로그램)였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배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분의 기준에 맞추어 정성을 다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려질 때,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분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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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25-01)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성막

출애굽기 25장 1-22절


 

유명하고 높은 사람이 개인적으로 편지를 보내 무언가를 부탁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 영광으로 여기며 기꺼이 들어줄 뿐 아니라 기뻐서 여기저기 소문을 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기회를 주십니다.

 

  •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계명과 율례를 가르쳐 주시고 언약을 체결하신 후(20-24장), 이제 신랑 신부가 만나는 신방을 만들 듯이, 하나님의 성막을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성막의 자세한 재료와 크기를 알려고, 성막에 사용할 재료를 준비하시는 부분입니다.

 

성막 건설의 재료들(1-9)

우리의 헌신과 예배는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사랑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께 드려질 때 거룩하게 변화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물과 헌신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성전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 성전은 곧 성령이 거하시는 우리의 마음과 삶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3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4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5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6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료와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7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8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9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1-9)

 

성막 건설에는 총 일곱 가지 종류의 건축 자재와 물품들이 필요했습니다. 그 종류는 귀금속, 실, 가죽, 조각목, 기름(감람유), 향품들, 보석들로. 이들은 각각 가치의 순서에 따라 나열되었습니다. 금, 은, 동은 귀금속의 가치에 따라 배열되었으며, 이러한 금속 재료들은 성막의 삼중 구분에 따른 거룩의 등급에 맞게 사용되었습니다. 성막에서 가장 거룩한 지성소에는 순금이 사용되었고, 내성소에는 금과 은이, 마당과 번제단에는 놋이 사용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막의 각 부분은 그 거룩의 등급에 따라 각기 다른 재료로 세심하게 제작되었습니다.

색실은 아마 양모로 만든 털실(wool)을 염색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고가 염료의 가격 순서대로 청색, 자색, 홍색 실의 순서로 나열됩니다. 가늘게 꼰 베실은 비교적 싼 실이며 ‘아마’(亞)에서 뽑은 삼베 실이었을 것입니다. 그 외 염소 털실이 앙장 제작에 사용됩니다. 염료는 매우 비쌌는데 특히 청색 염료는 엄청난 고가였습니다. 그것은 힐라존(hilazon)이라 부르는 엄지손가락보다 작은 크기의 바다 소라에서 채취한 짙은 파란색에 가까운 짙은 자주색의 분비물로 만들었습니다. 학자들의 계산에 의하면, 1.4그램의 청색 염료를 만들기 위해서 12,000마리의 소라가 필요했습니다. 그 색깔들은 다양한 무늬와 최고의 아름다운 색상의 조화를 연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자주색 옷은 물론이고, 홍색 옷도 최고급 옷으로서 부잣집과 권세 있는 집안에서 즐겨 입었습니다(잠 31:21-22). 따라서 가장 비싸고 아름다운 청색, 자색, 홍색 실의 어우러짐, 가장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상의 표현을 위한 색상의 조합이 일차적 목적입니다. 이것은 금은동의 귀금속이 그러하듯이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물리적 방법으로 발현시키는 수단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 가지 색상의 조합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해야 하며, 이것은 장차 그분의 영광의 광채를 드러내며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내다보고 있습니다(요 1:14). 세 가지 색깔과 예수님은 이런 방식으로 연결됩니다.

가죽은 숫양 가죽과 해달 가죽, 두 종류가 사용됩니다. 숫양 가죽은 가죽 자체는 흔한 것이었을지 모르나, 비싼 붉은 염료로 색을 입혔기에 해달 가죽보다 비쌌습니다. 참고로, 히브리어 타하쉬를 해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마 홍해 연안에 대량으로 서식한 듀공(dugong: 물개와 비슷한 바다짐승)일 가능성이 크며, 그 가죽은 샌들을 만드는 데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편의상 우리는 그것을 해달로 간주합니다.

성막에 사용된 모든 나무는 조각목(싯딤나무)이었습니다. 싯딤나무는 결코 광야의 잡목이 아닌 단단하고 잘 썩지 않는 고급 목재였습니다. 이 나무는 이집트에서 영생과 불멸을 상징하는 거룩한 나무가 되어 파라오 가죽을 때 이 나무로 관을 짰습니다. 이어서 필요한 재료는 기름(감람유)과 향품들, 그리고 보석류입니다. 향품 제조법은 출애굽기 30:34-36에 설명되어 있는데 거기서 살피기로 합니다. 호마노 보석은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데, 다른 보석들과 함께 에봇과 흉패를 장식하였습니다(출 28:9-12; 39:6-7).

 

조각목 법궤 제작법(10-1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튼튼한 기초를 세우고, 실제적이며 견고한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기준과 질서에 맞게 우리의 신앙이 정밀하게 다듬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의 중요성을 상징하며, 이를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것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을 경험하는 방법입니다. 결국,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며 그분의 임재를 삶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10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1너는 순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두르고(10-11)

 

법궤는 조각목으로 짠 사각형 상자가 기본 틀이었습니다. 성막 비품 중에 사각형의 물건들은 법궤를 포함하여 모두 조각목을 기본 틀로 짜서 제작합니다. 거기에 금속판을 붙이거나 금물을 칠하는 방식으로 비품의 가치를 크게 높입니다. 법궤의 크기는 크지 않았습니다.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2.5규빗/1.5 규빗/1.5규빗, 미터로 환산하면, 약 1.2미터/75센티미터/75센티미터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조각목 상자 안쪽과 바깥쪽에 금을 입힙니다. 랍비 모세 레빈(Moshe Levine)을 비롯한 어떤 유대 랍비들은 조각목 상자에 금물을 칠하거나 단순히 금박지로 입힌 것이 아니라 순금의 얇은 판으로 안쪽과 바깥쪽 면을 둘러쌌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세 개의 상자가 차례로 포개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유대 전통은 법궤 상자 안팎을 두껍게 금물로 칠했을 것으로 보는데(참고. Sarna) 법궤의 중요성과 특수성을 고려해볼 때 전자의 제작 방식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고리들과 고리에 끼우는 채(12-15)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항상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이 안정적이고 신뢰성 있게 유지되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맡은 사역을 함께 협력하여 수행해야 하며,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12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쪽에 두 고리 저쪽에 두 고리를 달며 13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14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15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지며(12-15)

 

금으로 덮힌 법궤의 바깥 면에 금 고리 네 개를 걸 수 있는 ‘발’을 만들었습니다. 이 ‘발’은 떡상의 네 ‘다리’와 다릅니다. 이것의 정확한 정체와 법궤 바깥 면의 어느 위치인지가 정확하지 않아 랍비들과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랍비 이반 에즈라는 그 발은 법궤가 바닥 부분이 닿지 않도록 만든 네 개의 받침대 혹은 지지대(supports)였다고 생각하며 일부 영역본들이 이것을 따릅니다(NJB; NASB). 그러나 파암(파암)은 ‘발걸음’, ‘발자국’ 등의 기본 뜻을 지니면서 일정한 간격의 패턴을 가리킵니다. 이로 인해 아람어 번역인 탈굼(Targums)은 이것을 단순히 일정한 간격의 네 모퉁이(corners)로 간주했으며 일부 학자들과 번역본들이 이것을 따릅니다(KJV;RSV). 필자 역시 이 견해를 따른 법궤의 재구성에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채를 끼울 고리를 달아야 하기에(12) 바닥의 낮은 지지대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법궤에 조각목으로 만든 두 개의 긴 채를 끼웠습니다. 모두 금으로 입혔는데 아마 금물을 칠했을 것입니다. 이 두 개의 채를 법궤 양쪽 고리들에 끼워 넣고 그대로 두고 빼지 말아야 합니다(15). 다른 비품들도 채를 끼워 넣고 사용하는데, 성막과 그 비품들은 계속 이동하며 움직이는 물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들채는 흔히 알려진 대로 직사각형의 긴 부분이 아닌 짧은 부분의 양쪽에 달았을 것으로 추론됩니다. 왕이신 하나님이 그룹들 사이에 앉아 있고 좌우에 그들이 호위하고 서 있는 가운데 왕이 행차하실 때 옆이 아닌 정면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속죄소의 양식과 배치(16-20)

속죄소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속죄와 화해의 중요성을 상기시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속죄소가 되어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켰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그분의 거룩함과 영광을 인정하고 경외해야 합니다. 속죄소는 우리의 신앙이 항상 하나님께 집중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속죄와 화해의 은혜를 경험하며, 우리의 신앙 생활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기를 소망합니다.

 

16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17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8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20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16-20)

 

조각목 상자 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준 십계명 돌판을 넣어두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증거의 돌판’이라 불립니다. 특별히 그 돌판을 법궤 안에 둔 이유는 십계명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의 증표, 즉 ‘증거’ 역할을 했으며, 더불어 그것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분명한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뒤이어 속죄소(카포레트)를 제작하는데 법궤 위에 놓인 일종의 뚜껑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출애굽기 37장에서 논의될 것입니다. 이것은 법궤 위에 놓였는데, 그 규격이 정확히 법궤의 규격과 일치했습니다. 즉, 길이와 너비가 각각 2.5 규빗(약 1.2m), 1.5규빗(약 70cm)이며 다만 두께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양쪽에 배치된 두 그룸(케루빔)이 세워지는데 모든 재료는 순금 덩어리였으며 밑판과 더불어 처음부터 세밀한 제금술과 세공술이 사용된 일체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마무리 작업과 약속(21-22)

하나님과의 교제와 화해가 언약의 중심에 있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만나 주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며, 우리와의 관계를 깊게 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에서도 하나님의 임재와 용서를 중심에 두어야 하며, 그분의 임재 안에서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를 깊이 경험할 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21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21-22)

 

증거판을 법궤 속에 넣은 뒤, 속죄소가 뚜껑처럼 그 위에 놓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완성된 법궤의 중요성을 말씀해주십니다. 그 법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그분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명령을 내리시며, 또한 왕으로서 백성들을 통치하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출애굽기 25장 1-22절은 성막과 법궤 건설을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자발적인 헌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법궤와 속죄소는 하나님의 임재와 속죄를 상징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유지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하나님의 기준과 질서에 맞게 정돈되어야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된 임재와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그분의 은혜를 삶 속에서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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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24-01)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식

출애굽기 24장 1-18절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언약을 맺은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과 충성, 사랑을 다짐했던 그 날의 감격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과의 교제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만약 당신의 하나님에 대한 첫사랑이 식었다면(계 2:5),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기도와 말씀 묵상, 공동체와의 교제, 그리고 예배의 자리를 적극적으로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첫사랑의 열정을 다시 불태우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 본문에서는 출애굽기 19장에서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몸과 마음의 성결의 준비를 지시하셨고 백성의 응답과 순종으로 언약식이 준비되었습니다. 도중에 십계명과 더불어 언약 법전이 주어졌습니다. 이제 그 준비된 언약식이 24장에서 체결됨으로써, 19-24장의 언약식에 대한 긴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언약서를 받아 내려온 모세(1-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 언약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상기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의 삶을 더욱 깊이 있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1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2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1-2)

 

모세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입산을 명령하십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 70장로들과 함께 올라온 뒤, 모세 혼자 여호와가 계신 정상으로 올라오라고 하십니다(1-2). 언약서가 주어졌는데 왜 또 모세가 입산을 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올라오라’는 명령이 출애굽기 19장의 ‘올라오라’는 지시로 연결되며, 1-2절은 그 장면을 요약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여러 차례 나오는 모세의 입산과 하산은 해석자들에게 난제입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점은 시내산 영역에서 백성들의 삼중 배치입니다. 아론과 아들들 장로 70명이 함께 올라오고, 하나님께서는 그중 “너 모세만 가까이 오라”고 명하십니다. 남은 백성들은 멀리 떨어져 서 있습니다: 모세/제사장 가족과 장로들/백성들.

이러한 배치는 성막의 삼중적 구분과 일치합니다: 지성소(대제사장)/내성소(제사장)/마당(백성들), 여기서는 모세가 대제사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치는 시내산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시사합니다. 아론의 네 아들 나답과 아비후, 엘르아살과 이다말 중에서 여기서는 첫째와 둘째 아들의 이름만 등장하지만, 남은 두 아들도 함께 산에 올랐을 것입니다.

나중에 나답과 아비후는 제단 불이 아닌 ‘다른 불’로 멋대로 제의를 진행하다가 하나님의 불을 맞고 죽었습니다(레 10:2). 제사장이자 시내산 성전에 가장 가까이 갔던 특권을 누렸지만, 그것이 구원을 보장해준 것은 아닙니다.

 

시내산 언약식(3-11)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하며,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매일의 기도와 말씀 묵상,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속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교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임재를 느끼며 우리의 삶을 올바르게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70인의 장로’들은 하나님의 식탁에 참여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3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4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5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6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7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9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10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11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3-11)

 

모세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말씀과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고, 백성이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응답합니다. 모세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제단에 소의 피를 뿌리고 언약의 피를 백성에게 뿌립니다. 마지막으로, 모세와 아론, 나답, 아비후, 70명의 장로들이 하나님을 보고, 그들의 손과 발이 하나님 앞에서 안식을 누리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1) 언약서의 낭독과 순종의 응답(3)

 

모세는 앞서 하나님께서 전해주신 모든 말씀과 율례를 백성에게 낭송했습니다(3). ‘모든 말씀’은 십계명이고 율례는 언약법전(언약서)일 것입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응답합니다. 동일한 대답이 7절에서도 반복됩니다. 말씀에 대한 백성들의 순종 약속은 이미 19장에서 시작된 일입니다(19:8). 더 강한 결심으로 말씀에 대한 순종을 확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19장에서 예고한 대로 백성의 성결과 정결을 준비시킨 다음 드디어 언약식이 실행됩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위임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19장에서 이미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선포하셨습니다. 이에 걸맞게 19장과 24장의 장면은 앞으로 있게 될 제사장 위임식(출 29장;레 8장)과 매우 흡사합니다.

19장에서 백성 전체가 옷을 빨고 목욕을 하여 마치 제사장들처럼 자신을 성결케 합니다. 또한 24장의 언약식에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장로들에게 대표로 뿌려졌겠지만) 피가 뿌려지는 것은(8) 마치 제사장 위임식에서 짐승의 피를 제사장들의 신체 말단에 바른 것을 연상케 합니다.

 

(2) 언약식의 진행(4-8)

 

쌍방간에 어떤 약조를 할 때 일종의 증거석 역할을 하는 기둥을 세우는 관행이 있었습니다(창 28:18-22; 참조. 창 31:52에서 야곱과 라반이 약조의 표시로 기둥을 세움). 열두 지파는 자신들의 수대로 열두 기둥을 세운 뒤 소들로 제사를 드립니다. 이 제사에 대한 정확한 번역은 ‘소들로 번제들과 화목제들을 드렸다’입니다. 추론컨대,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운 것처럼, 번제와 화목제를 위해 지파별로 두 마리씩 가져왔을 것입니다.

이것은 민수기 7장에서 묘사된 추가적인 성막 봉헌식 장면에서 지파별로 바친 엄청난 헌물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열두 지파가 지파별로 바친 헌물은 값비싼 금은 그릇들과 20마리가 넘는 소와 양/염소로 구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언약식에서 각 지파가 번제용 소와 화목제용 소를 한 마리씩 바쳐 총 24마리의 소를 바쳤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추론입니다.

제사를 수행하도록 선발된 청년들(네아림)은 단순히 힘이 좋은 젊은 사람들이 아니라 신실한 청년들이었을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아직 임명되지 않았기에 (출 29장에서 임명 절차가 제정되고 레 8장에서 그 절차대로 임명된다) 그들이 임시 제사장 역할을 합니다. 공적인 행사에서 ‘번제와 화목제’는 자주 함께 드려졌습니다. 번제는 전부를 바치는 전적 헌신의 의미가 있고(레 1장), ‘화목제’는 주요 기름 부위들을 바친 뒤(레 3:3-4) 남은 고기를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기쁨으로 나누는 ‘평화’의 잔치 제사였습니다(레 7:11-21).

언약식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치러졌습니다. 소의 피 절반, 즉 24마리 중 12마리 분량의 소의 피를 먼저 제단에 뿌린 뒤(6) 모세가 언약서를 백성들 앞에서 낭독합니다(7). 백성들이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한목소리로 응답하자, 모세는 이제 남은 피 전부를 백성에게 뿌립니다(8). 이때 회중 전체에게 뿌리지 않고, 백성을 대표해서 앞에 모여 있던 아론의 가족과 70장로들, 즉 75명의 대표자들에게 뿌렸을 것입니다.

모세는 이 피를 뿌린 후 그 피를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에 대하여 그들과 세운 “언약의 피”라고 선언합니다(8). 여기서 언약식을 위해 희생된 짐승들의 피가 ‘언약의 피’로 불리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 저녁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마시라 하시며 새 언약을 맺으셨습니다(눅 22:20; 고전 11:25). 이로써 새 언약이 옛 언약을 완전하게 대체하고 완성했습니다.

 

(3) 언약식의 잔치(9-11)

 

하나님께 선별된 사람들은 아무 문제없이 그분께 더 가까이 갈 특권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셨는데, 흔히 이것을 ‘언약의 식사’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시내산에서 먹은 음식의 정체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의식의 마지막에 잔치를 위해 바치는 화목제 고기였음이 분명합니다. 성경에서는 쌍방간에 어떤 계약을 마친 뒤에는 축제 분위기의 식탁 교제가 뒤따랐습니다(창26:30;31:44; 왕상 18장).

 

돌판을 받으러 올라간 모세(12-18)

하나님과의 언약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신실하게 지켜야 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의 말씀을 따르겠다고 응답하였고, 이는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준행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는 것이며, 우리의 신앙 생활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그분의 사랑과 진리를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1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13모세가 그의 부하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14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 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 하고 15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6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7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18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12-18)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산으로 올라와 거기서 돌판에 율법과 계명을 기록하라고 명하십니다. 모세는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일을 맡기고, 여호와의 산으로 올라갑니다. 그는 40일 40야를 시내산에 머물며 하나님의 지시를 받습니다.

 

(1) 산 위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심(12-14)

 

모세는 다시 산에 오르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이번에는 모세가 여호수아만을 데리고 입산합니다. 그는 모세의 유일한 행정적 동반자로서 모세의 일을 도왔습니다. 14절은 금송아지 사건을 예고하는 당부로서 매우 인상 깊습니다. 모세는 불만을 품고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은 산 아래 남아 있는 아론과 훌을 찾아가라고 지시합니다. 그러나 아론은 결과적으로 모세를 대신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백성의 압박을 못 이기고 금송아지 제작을 주도합니다.

 

(2) 산에 오른 모세(15-18)

 

‘여호와의 영광’은 중요한 단어입니다. 모세가 산에 올랐을 때, 여호와의 ‘영광’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성막이 지어진 뒤 그 영광이 성막으로 옮겨옵니다(출 40:34-35). 여호와의 영광은 그분의 거룩함의 외적 현시인데, 그분의 임재와 강림, 현현의 장면에서 나타납니다. 주로 맹렬한 불과 구름으로 드러납니다. 현재의 출애굽기 24장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찬 시내산에 들어갈 수 있었으나, 출애굽기 40장에서 성막 건설이 완료된 후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 찬 성막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회막의 영광이 시내산의 영광보다 더 컸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모세의 시내산 입장은 언약식과 성막 건설을 위한 특별한 사례로 허용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혼식에서 부부가 된 것을 증명하듯,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70인 장로는 하나님의 식탁에 참여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이제 담대하게 하나님의 밥상에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신실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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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23-02)


율례에 대한 순종

출애굽기 23장 20-33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점진적인 성장을 허락하시며,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보호와 풍성한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 하기보다, 하나님의 때에 맞춰 순종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본문은 언약 법전(언약서)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보통 법전의 마지막에는 순종 여부에 따른 축복과 저주가 나열됩니다(레 26장: 신 27-28장). 그러나 언약서의 마무리는 앞서 주어진 많은 법들에 대한 순종을 요청하면서 복과 저주의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인간 대리자 외에 백성들을 이끌 신적 대리자인 사자가 등장합니다. 이 사자는 여호와가 보내는 '왕벌'로도 묘사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의 사자를 보내심(20-26)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따르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분의 지도에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신뢰와 순종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전한 길로 이끄실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20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21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22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23내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 24너는 그들의 신을 경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깨뜨리며 그들의 주상을 부수고 25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26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20-26)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고 보호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사자의 말을 순종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면,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우상 숭배를 버리고 오직 그분만을 경배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1) 사자의 역할(20-23)

 

십계명에 이어 반포된 언약법전(언약서, 20:22-23장)은 제단법이 포함된 십계명의 첫째와 둘째 계명으로 시작했습니다(20:22-26). 이제 유일신 하나님 숭배에 대한 강한 명령으로 언약법전이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사자(말라크)는 여호와를 대신하는 존재입니다(출 3:2;14:19; 32:34). 여호와의 임재는 그를 통해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자를 통해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20). 그는 하나님의 대리인이요 백성의 인도자인 모세의 수호자와 돕는 자가 되어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 것입니다.

‘사자’는 전적으로 신뢰해야 할 하나님의 임재의 대행자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사자’는 여호와 자신과 동등한 자격을 가진 존재요, 여호와의 임재에 대한 다른 표현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사자가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가나안 족속들을 멸절할 것이라고도 말씀하십니다(23).

이 여호와의 ‘사자’는 28절의 여호와의 ‘왕벌’과 쌍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자의 권위는 ‘나의 이름이 그에게 있다’는 말씀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21). 그는 여호와의 이름표를 붙이고 나타난 인도자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의 군사적 대행자이기도 하지만, 여호와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말씀의 대행자이기도 합니다.

어떤 랍비들은 이에 근거해서 ‘말씀’을 뜻하는 메므라(Memra) 사상을 설파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사자가 전하는 말씀이 곧 하나님과 동등한 위격을 지닌다는, 유대교 일각에서 주장되는 일종의 이위일체 사상(binitarianism)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지혜’이기도 한데(잠 8장), 말씀 지혜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일하며 이미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했던 선재적 존재로서 창조사역을 주도합니다.

또한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곳에서 ‘사자’는 여호와 자신과 구분되지 않는 기묘한 광경이 발견됩니다. 이로 인해 말씀=여호와=사자라는 개념이 성립되어 이위일체 사상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1-3에서 말씀=하나님= 예수님이라고 선언된 것은 이것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요한복음과 신약은 이위일체가 아닌 삼위일체 사상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 근거하여 일각의 기독교학자들은 여호와의 사자가 구약의 성육신된 하나님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자의 임재와 활동을 통해 구약 시대 속에서 선재적 성육신(pre-incarnation)을 한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자’의 말을 청종하라고 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 대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 17: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마 8:22; 9:9; 눅 5:27; 요 12:26), 자신이 먼저 하늘에 올라가 ‘그 길’을 예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 14:6).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이끈 것처럼, 예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새 하늘과 새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의 승천과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는 사자의 역할을 성령께서 수행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사자께서 사도들과 제자들을 이끌어 복음을 전하게 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충만히 역사하시며 교회를 인도하십니다.

 

(2) 백성의 책임(24-26)

 

사자의 목소리에 순종할 때 그 대가는 보호와 승리입니다. 고대 근동의 봉신 조약에서 속국은 충성을 맹세하고 종주국은 그에 대한 대가로 다양한 보호와 혜택을 약속합니다. 마찬가지로 왕이신 하나님께 신하인 이스라엘은 순종해야 합니다.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가나안의 우상들을 모두 깨트리고 여호와만 섬긴다면, 그들은 절대적 힘을 지니신 그 왕의 보호와 축복을 마음껏 누릴 것입니다(24-26). 우상과 더불어 등장하는 ‘주상’은 원래 의미가 ‘기둥들’(마쩨보트)입니다. 이것은 가나안의 우상숭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물이었습니다(레 26:1; 신 7:5; 왕하 14:23).

우상을 깨트리고 대신 여호와만 섬겨야 합니다. 그 대가는 풍성한 복입니다. 이 구절들에서 나열되는 복은 신명기 28:1-14에 있는 것들의 요약입니다. 언약 순종의 대가로 주어지는 복은 대부분 공통적입니다: 풍년과 때에 맞는 많은 비, 건강과 무병장수, 많은 자녀, 재난과 기근이 없는 평화의 날 등.

 

주의 왕벌을 보내심(27-33)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들, 세상의 가치관이나 잘못된 습관들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신앙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에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중심이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하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27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네가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물리치고 네 모든 원수들이 네게 등을 돌려 도망하게 할 것이며 28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29그러나 그 땅이 황폐하게 됨으로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30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31내가 네 경계를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강까지 정하고 그 땅의 주민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 32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들과 언약하지 말라 33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를 내게 범죄하게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27-3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그들의 적들을 공포로 몰아내시고, 점진적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들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신들을 섬기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께만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는 것이 이스라엘의 번영과 안전의 열쇠가 됩니다.

 

(1) 왕벌의 역할(27-31)

 

하나님께서는 왕벌이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낼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28), 동시에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30). 앞서 말한대로, 역시 왕벌이 하나님의 대행자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사자가 쫓아내는 가나안 족속과 왕벌이 쫓아내는 가나안 족속의 대조를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23절에서 사자의 활약에 대해 “아모리 사람과 헷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라고 말하고, 28절에서는 왕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와 여호와께서 보내신 ‘왕벌’은 사실 동일한 존재임이 암시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왕벌이 27절에서 ‘위엄’(공포심, 위협)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왕벌’입니다!

한편, 왕벌의 활약과 백성의 순종으로 얻게 될 땅의 국경선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성취된 경계선들과 거의 비슷합니다. 그것은 홍해부터 블레셋 바다, 남방 광야부터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릅니다. 그들이 1년 만에 이 땅을 순식간에 정복하지는 않을 것이며 정복은 조금씩 진행될 것입니다(29-30). 속도전을 통한 정복은 땅을 황폐케 하여 들짐승이 난무하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거주를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백성의 책임(32-33)

 

봉신 조약에서 종주국의 은혜를 배신하고 다른 국가와 조약을 맺는 반역 행위의 대가는 가혹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다른 신을 섬기면 그 대가는 가혹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땅을 차지한 후, 그들은 결코 그 땅의 신들과 언약을 맺어선 안 됩니다(32), ‘언약을 맺는다’는 직역하면 ‘언약을 자르다’(카라트 베리트)입니다. 왜 언약을 자른다고 표현합니까? 언약식에서 흔히 동물을 각 떠서 언약의 징표로 삼았기 때문일 것입니다(예, 창 15:9-10). 유대 랍비 라쉬(Rashi)의 주장대로, 짐승을 자르는 의식에는 언약의 수종자가 언약의 조건들을 지키지 않을 경우 그 짐승의 운명이 될 것임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목숨을 담보로 하는 충성의 언약을 다른 신과 맺는다면, 어미 독수리처럼 자신들을 이 땅으로 인도해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돌이킬 수 없는 배신입니다. 그 땅을 차지하고 난 후 그 땅의 거주민들과 평화 협약을 맺고 함께 거주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고 말 것입니다.

실제로 사사기 1:21-33과 열왕기상 9:20-21은 가나안 족속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고통 받는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사사기 2:2-3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쫓아내지 않으시고 그들의 신들이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되게 하셨다고 보고합니다. 따라서 올무는 불순종한 그들이 초래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우리가 순종할 때 풍성한 복을 주신다는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신앙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온전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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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23-01)


재판에 대한 율례

출애굽기 23장 1-19절


 

잘못된 재판은 사람의 인격을 철저하게 파괴시킵니다. 자신을 괴멸시켜서 자살의 충동을 일으킵니다.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국가 권력이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권력이 국민을 억압하면 반발을 사게 되어지면 지도자들의 지도력이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판에 대한 율례를 가르쳐 주십니다.

 

  • 본문은 공정한 재판에 대한 경고와 안식년/안식일 준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절기에 대한 것들입니다. 재판법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애를 막고 권력에 의해 재판이 왜곡되지 않도록 냉정함을 유지합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원수에 대한 자비 및 약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함께 가야 합니다. 한편, 시간과 관련된 규례들은 백성들이 생활 속에서 여호와를 기억하게 하는 핵심 프로그램들입니다.

 

공정한 재판과 자비의 실천(1-9)

우리의 삶에서 정직과 공의를 실천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직장, 가정, 사회에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진리와 공의에 기초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정의로운 성품을 반영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며, 특히 사회적 약자와 억눌린 자들을 보호하고 도와야 합니다.

 

1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2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3가난한 자의 송사 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4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5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 6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7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8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9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1-9)

 

본문에서는 정직과 공의를 강조하며, 거짓 증언을 하지 말고, 악을 도모하는 다수의 편에 서지 말며, 가난한 자와 무고한 자를 공정하게 대하라고 명령합니다. 또한, 원수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고, 재판에서 뇌물을 받지 말며, 이방인과 약자에게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실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1) 여론재판 금지(1-3)

 

율법을 시행할 때 공의와 자비라는 두 추에 치우침이 없어야 합니다. 본문은 공평과 중립을 벗어난 사법 정신의 파괴 행위를 금지합니다. 특히 소문과 뇌물을 사용하여 패거리를 형성해 진실을 왜곡하려는 힘 있는 자들의 시도는 차단되어야 합니다. 1-3절은 악의적인 증인이 누리는 혜택과 관련되어 있고, 6-8절은 그 혜택을 뇌물과 같은 방식으로 받는 재판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뇌물은 증인과 재판장 모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근거 없는 소문이나, 유언비어, 악담은 진실을 왜곡하여 사람을 너무나 쉽게 사회적으로 매장하곤 합니다(1-2). 계획적으로 선동한 다수의 힘으로 진실을 뒤집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 여론전과 선동 정치는 고대로부터 권력자과 기득권층의 교활한 통치술이었다. 성경은 이 일을 엄히 금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편들어 재판의 공정성이 왜곡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됩니다(3). 가난한 자와 약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지만, 사법적 정의는 어떤 경우에라도 유지되어야 합니다(6).

 

(2) 원수에 대한 자비(4-5)

 

공정한 재판에 대한 법들 사이에 자비의 법이 끼어들어 있습니다. 언약 공동체에서 법적 공정함과 실천적 자비가 함께 실행되어는 듯합니다. 이 법은 잃어버린 가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가축은 자신의 집을 잘 알지만, 간혹 관리가 소홀해질 때 쉽게 자리를 이탈합니다. 집 잃은 가축을 발견하면 즉각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4). 주인이 자신의 원수요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가축은 고대에 생존을 위한 중요한 재산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원수의 짐승이 과다한 짐을 싣고 가다가 쓰러진 것을 보면 도와야 합니다(5). 증오심에 불타오르면,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악화될수록 그 통쾌함은 커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그런 마음을 품으면 안 됩니다. 구약에는 악인의 심판을 탄원하고 저주하는 발언들이 등장합니다(시 3:7;13:2; 54:5; 109; 그 외 여러 탄원시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악인에 대한 저주와 악담, 복수를 금지하는 구절도 여럿 있습니다(잠 20:22; 24:17 등). 왜 성경은 모순된 두 교훈을 동시에 말씀하셨습니까? 우리 인간은 이 두 현실을 모두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악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짖어야 합니다(시 23:5). 또한 우리 스스로가 주변의 악을 제거하기 위해 싸우며 노력해야 합니다. 동시에 악인에게까지 자비를 베푸시도록 기도해야 하고 우리가 그 자비심을 품어야 합니다. 고대 근동의 법전들에도 그런 용서의 가르침이 등장합니다. 바벨론의 지혜 문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와 다투는 자에게 악으로 갚지 말라. 너의 원수에게 친절로 보답하라.” 이집트 지혜 문헌에도 다음과 같은 교훈이 나옵니다: “너에게 해를 입힌 사람을 저주하기보다는 축복하는 게 낫다.” 이렇듯 일반 은총의 영역에서도 용서의 교훈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언제나 성경의 자비와 용서의 교훈은 출애굽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에 뿌리내리고 있으므로 그 동기와 근원이 다릅니다. 이 법은 이미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의 씨앗인 셈입니다. 이 자비의 율법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생각나게 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결국 그 두 사람은 쓰러진 사람을 과도한 짐을 싣고 가다 쓰러진 짐승만도 못하게 취급한 셈입니다.

 

(3) 뇌물 재판 금지와 나그네 배려(6-9)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는 명령에서 ‘하라그’는 문자 그대로 ‘죽이다’를 의미한다기보다는 비유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억울하게 사회적으로 매장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대로 항변하지 못하고 억울한 판결을 받는 상황이 암시됩니다. 권력가와 지배층이 진실을 왜곡해서 엉뚱한 판결이 나오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러한 일은 흔히 뇌물과 연루되어 있습니다(7). 뇌물은 사법적 정의를 왜곡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을 덮는 그런 자들을 악인이라 하십니다. 이 경우 다른 사람들이 사법적 판결의 진실성을 분별할 방법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재판이 왜곡 되었는지 여부를 하나님과 당사자들만 압니다. 세상 재판은 친분과 뇌물, 때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됩니다. 세상에서는 그들이 사법적 절차에 따라 불의한 방식으로 승리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죄하시고 반드시 직접 심판의 형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과 주변 민족들은 보이지 않는 도덕적 범죄에 대한 신의 심판을 두려워했습니다(예. 창 20:4에서 아브라함의 누이가 아닌 아내를 취한 사실이 드러나자, 신적 심판을 두려워한 아비멜렉 왕). 이 공평한 재판에 대한 경고가 사회적 약자 보호에 더 기울어 있음을 9절의 나그네 보호법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방 나그네(게르)는 여러 이유로 본국을 떠나 이국땅에 들어와 땅 없이 빌붙어 사는 외국인입니다. 그들은 본토인이 보호해주지 않으면 생계를 위협받습니다. 애굽에서 마찬가지로 나그네 신세였던 이스라엘 백성은 나그네의 형편과 처지를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을 압제하지 말고 적극 도우며 감싸주어야 합니다.

 

안식년과 안식일(10-13)

현대 사회에서는 바쁘고 지친 삶 속에서 쉼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안식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께 집중하고, 영적인 회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10너는 여섯 해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11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12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13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지니라(10-13)

 

본문에서는 안식년과 안식일을 명령합니다. 6년간 경작한 후 7년째 되는 해에는 땅을 쉬게 하여 가난한 자와 짐승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일주일 중 하루는 안식일로 지정하여 일하지 않고, 하나님께 집중하며 쉼을 얻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따르고, 자비와 회복을 실천하기 위한 것입니다.

 

(1) 안식년 준수(10-11)

 

농사와 관련된 절기법이 선포됩니다. 이것은 ‘감사’와 ‘예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노동을 중단하고 쉼 가운데 창조주를 예배하며, 그분께 감사 예물을 바쳐야 합니다. 년마다 땅을 묵히고 그대로 두라는 명령은 적어도 그 해에 그 땅의 원주인인 하나님께 땅의 소유권을 위탁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농사를 지으실 것입니다. 그 수확물을 비천한 자기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실 것입니다. 이 안식년 규례는 레위기 25:1에 자세히 나옵니다. 여기서 이 안식년이 국가에서 일괄적으로 7년째의 연도를 정한 것인지, 아니면 개별적으로 자기 밭의 7년 주기를 재량껏 지킨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않습니다. 그러나 레위기 25장의 법은 국가적인 안식년과 희년을 제도화하고 있습니다. 이 해에는 밭을 갈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땅이 원기를 회복하도록 쉬어야 하기 때문에 파종도 물론 하지 않습니다. 포도원과 올리브 과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지를 치지 않고, 스스로 난 열매도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이때 땅에서 스스로 싹이 트고 곡식이 자랍니다. 이것은 가난한 자들과 동물들의 몫입니다.

 

(2) 안식일 준수(12-13)

 

안식일 준수의 계명은 앞서 주어진 모든 계명을 일단 매듭짓는 중간 단계의 요약적 진술입니다. 이 안식일 규정에서도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쉬도록 하라는 약자에 대한 인권적 배려가 엿보입니다(12). 홍미롭게도 이 요약은 다시 십계명의 제1계명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13). 결국 모든 언약서 율법들의 토대는 십계명이고, 더 좁히면 제1, 2계명임을 시사합니다.

 

주요 세 절기와 중대한 제의 규정들(14-19)

우리의 예배와 삶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순결한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 재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며,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로 채워야 합니다. 또한, 이웃과 함께 하나님이 주신 복을 나누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14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15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16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17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18너는 네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내 절기 제물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지니라 19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14-19)

 

절기법과 더불어 18-19절의 제의 규정들이 출애굽기 34:18-26에 다시 등장합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주요 세 절기와 중요한 제의 규정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각 절기의 의미와 그에 따른 규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무교절(14-15)

 

이스라엘 백성은 무교절을 지켜야 합니다. 이 절기는 유월절과 연관이 있으며, 이집트 탈출을 기념합니다. 이 절기 동안에는 누룩이 없는 빵(무교병)을 일주일 동안 먹어야 합니다. 이 절기를 지키는 동안에는 누룩이 들어간 빵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남자가 절기에 맞춰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2) 맥추절(16)

 

맥추절은 첫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는 오순절로도 알려져 있으며,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추수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3) 수장절(16)

 

수장절은 추수의 마지막 단계에서 수확물을 저장한 후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는 장막절 또는 초막절로도 불립니다. 이 절기에도 모든 남자가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4) 제의 규정들(18-19)

 

① 제물에 관한 규정

희생 제물의 피를 누룩 있는 빵과 함께 드려서는 안 되며, 절기에서 드린 희생 제물의 기름을 다음 날 아침까지 남겨두어서는 안 됩니다.

 

② 초태생 규정

처음 익은 열매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며,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 규정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유지하고 그들의 믿음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제시됩니다.


 

우리에게 공의로운 삶, 안식과 회복, 그리고 거룩한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정직과 공의를 실천하고, 안식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하며, 모든 삶의 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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