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14-01)
여호와의 구원 약속과 회복
호세아 14장 1-9절
삶에서 우리가 잘못된 길을 걸을 때,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받아주시고, 영혼을 치유해 주십니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의 회복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고,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께 돌아와 그분의 은혜를 경험하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회개와 회복은 개인과 교회 모두에게 필요한 은혜의 과정입니다.
- 이스라엘이 죄악으로 넘어졌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끝장난 것은 아닙니다.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각자의 결단에 따라 여호와와 새로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집니다. 여호와의 긍휼이 고아 신세로 전락한 자들에게 그분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여호와께로 돌아오라(1-3)
회개는 죄로 인해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첫걸음입니다. 이는 단순한 외적인 행동이 아닌, 마음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회개를 통해 우리를 그분께로 돌아오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중요한 영적 행위입니다.
1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2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3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1-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죄로 인해 엎드러졌으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권면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인간이나 우상에게 의지하지 않고, 입술의 열매로 하나님께 참회와 헌신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구원임을 강조합니다.
(1) 회개의 요청(1)
예언자는 거듭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외쳤지만, 이스라엘은 그분께로 돌아오지도, 그분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완강한 거절이 결국은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초래합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버리고 헛것인 우상을 좇은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앗수르에 멸망을 당합니다. 호세아는 이미 엎드러진 이스라엘에게 다시금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호소합니다. 불순종의 죄로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은 구원이 여호와께 있음을 인정하고 그분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네 하나님’은 심판에도 불구하고 언약관계가 유효함을 시사해줍니다.
(2) 회개의 내용(2-3)
이스라엘은 전에도 여러 번 여호와께로 돌아왔지만(참조. 6:17:16), 이들의 돌아옴은 제의적 울타리를 넘지 못했습니다.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성소를 찾아가서 그분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참조. 5:6). 제의적 경건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예언자는 짐승 대신에 ‘말’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충고합니다. 병행하는 ‘입술의 열매’가 보여주듯이 ‘말’은 고백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구체적으로는 그분께 불의(죄)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돌아오면(회개하면) 자동적으로 용서받는 것은 아닙니다. 죄의 용서는 여호와의 은총에 속하는 것으로, 선행하는 용서의 선포가 회개의 문을 열어줍니다. “선한 바”는 뒤따르는 ‘입술의 열매’를 가리킵니다.
여호와께 드려야 할 ‘입술의 열매’로 이스라엘은 자신을 멸망으로 이끈 거짓 믿음과의 단절을 선언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먼저 여호와 대신 앗수르를 정치적 구원자로 섬겼던 ‘불의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내용상 첫 번째의 연속입니다. 이스라엘은 말에 의지했던 정치를 청산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성전에 유폐하고 자신의 군사적 경제적 능력에 의존했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은 우상의 본질을 보여주는 풍자적 표현입니다. 우상이란 존재는 이스라엘이 제 손으로 만든 값비싼 작품에 불과할 뿐입니다. 돌아옴과 고백은 관계 회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기에”(1) 이스라엘에게는 용서를 청할 자격이나 권리가 없습니다. 곧,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스라엘이 끊어버렸기에 그분의 동의 없이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예언자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고아를 긍휼히 여기시는 그분의 성품에서 찾습니다. 멸망한 이스라엘은 부모가 없는 고아와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그분의 공의로운 심판에 넘겨져 고아가 된 이스라엘에게 다시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긍휼”은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일방적 사랑으로, 이스라엘은 그분의 긍휼에 매달려 용서와 도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구원 약속(4-8)
회개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이루는 필수적인 과정으로, 우리가 죄악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갈 때 회복과 축복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받아주시며,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며 돌아가는 삶이 필요합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결단이 중요하며, 회개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구원과 회복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그분의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4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5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6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7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8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그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4-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회개할 때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사랑과 축복으로 그들을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번성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유일한 도움과 보호자가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1) 반역의 치료(4)
멸망이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이스라엘의 마지막 운명은 아닙다. 고아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고아처럼 절망적 처지에 떨어진 이스라엘에게 마찬가지로 긍휼을 베푸십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돌아오길 가만히 기다리지 않으시고, 적극적으로 움직이십니다. 의사가 되셔서 이스라엘의 반역을 고쳐주십니다. 이스라엘이 당신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죄에 사로잡힌 마음을 고쳐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새 마음으로 만들어주십니다(참조, 렘 31:33; 겔 11:19; 36:26-27). 이스라엘의 돌아옴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그분의 사랑이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합니다. 긍휼에 근거한 그분의 일방적 사랑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그분의 사랑이 반역한 이스라엘에게 임하였던 그분의 진노를 떠나게 합니다(참조. 11:8-9). ‘반역’과 ‘떠나다’와 ‘돌아오다’(1,2,7)는 동일한 어근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반역하고 떠났던 이스라엘에게 임하였던 여호와의 진노가 떠남으로써 이스라엘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2) 구원의 비유적 모습: 생명의 회복(5-7)
여호와께서 반역의 마음을 고쳐주실 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삶도 약속해주십니다. 전에 진노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생명을 끊으셨던 여호와께서 다시 생명을 허락하십니다. 다양한 비유를 통해 생명의 회복이 인상적으로 표현됩니다. ‘쉬 없어지는 이슬’ 같은 인애로 여호와를 섬기다가(6:4) 그분의 심판으로 ‘쉬 사라지는 이슬’같이 역사의 무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이스라엘에게(13:3) 여호와께서 이슬과 같이 되셔서 다시 생명의 싹을 틔우게 하십니다. 여호와의 이슬(긍휼과 사랑)에 힘입어 생명력을 회복한 이스라엘은 꽃을 피웁니다. 독초가 돋아(파라흐) 못 쓰게 된 밭이랑처럼 불법과 무법으로 황폐해진 이스라엘(10:4)에 다시 백합화가 핍니다(파라흐). 이른 봄에 빠르게 성장해 꽃을 피우는 백합화처럼 이스라엘은 빠르게 생명력을 회복하면서 무성하게 자랍니다. 또 그 뿌리가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땅 속 깊이 박힙니다. ‘박히다’로 옮긴 히브리어 동사 ‘나카’는 원래 ‘때리다’, ‘치다’를 의미합니다. ‘매를 맞아 그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 에브라임(9:16)이 여호와의 축복으로 다시 그 뿌리를 땅 속 깊이 박고 크게 번성합니다. 지금은 그 기둥이 잘려 그루터기만 남아 죽은 나무처럼 보이지만, 여호와께서 주시는 이슬을 먹고 생명이 깨어나 다시 그 뿌리가 뻗고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감람나무처럼 아름답게 자랍니다. 구원 시대의 시작과 더불어 여호와께로 돌아온 자들에게 다시 복이 주어집니다. 그 그늘이 좋아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분향하며 음행을 즐겼던(4:13)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그늘로 돌아와서 그분의 보호를 받으며 쉼을 즐깁니다. 전쟁과 질병과 폭력과 기근으로부터 벗어나 샬롬의 삶을 누립니다. 구원의 묘사는 즐거움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포도주에서 그 정점에 도달합니다. 이스라엘은 유명한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최고급 포도주를 생산하는 포도나무가 됩니다.
(3) 푸른 잣나무 여호와(8)
개역개정의 번역에 따르면 상반절은 에브라임의 고백에 해당합니다. 너무 늦어서 심판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에브라임은 마침내 깨달음에 도달합니다. 우상숭배가 파국적 결말을 초래했음을 인정하고 우상과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합니다. 물론 에브라임의 깨달음과 고백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반역’을 고쳐주신 결과이지, 그 출발점은 아닙니다. 여호와의 구원 약속이 에브라임으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바르게 반응할 수 있게 합니다. 여호와와 에브라임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됩니다. 이전에는 에브라임의 기도를 거절하셨던 여호와께서 앞으로는 응답하시고 돌아보십니다.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에게 ‘푸른 잣나무’가 되시고, 에브라임은 ‘푸른 잣나무’ 여호와에게서 열매를 얻습니다. 가나안의 신 바알이 아니라, 사철 푸름과 싱싱함을 간직한 잣나무인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풍요를 주관하십니다.
호세아서의 결어(9)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길이 옳음을 깨닫고 그 길을 따르며,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삶에 적용하여 축복과 인도하심을 경험합니다. 반면,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의 길을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멸망의 길로 갑니다. 지혜로운 자는 단순히 이해에 그치지 않고,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합니다.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행동하는 데 있습니다.
9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9)
호세아의 청자처럼 그의 선포를 기록한 호세아서를 읽는 독자도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놓입니다. 지혜롭고 총명한 의인이 되어 역사와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여호와께 순종하며 그분의 말씀을 준행하거나, 또는 미련한 죄인이 되어 자신의 생각과 의지에 따라 살아가거나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오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회복과 축복의 약속을 강력히 전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치유하시고, 다시 사랑과 축복으로 가득한 삶을 제공하십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회복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며,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께 돌아와 그분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회개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참된 회복과 번영을 가져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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