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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12-01)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회복

호세아 11장 12절-12장 14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불순종과 교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의 성공이나 부유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회복시킵니다.

 

  •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적으로 간주하고 거짓과 속임수로 공격합니다. 정치에서는 여호와를 떠나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서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합니다. 경제에서도 재물을 얻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고, 거짓 저울로 부를 축적하면서도 무죄를 주장합니다. 종교적으로는 제사에만 열중하고 여호와의 예언자의 경고를 무시합니다. 결과적으로 거짓과 속임수가 정치, 경제, 종교 모든 영역을 지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11:12-12: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불순종과 배반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돌아보고,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하나님께 진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의 기회를 붙잡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2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족속은 속임수로 나를 에워쌌고 유다는 하나님 곧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자에게 대하여 정함이 없도다 1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종일토록 거짓과 포학을 더하여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11:12-12:1)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을 잃어버리고, 그들의 불신앙과 배반으로 인해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호세아 11:12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지적하시며, 유다는 하나님께 대해 속이는 자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잃고 자신들의 길을 선택했지만,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호세아 12:1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주시며, 그들의 행동을 돌아보라고 촉구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보호를 잊고, 세상의 것들에 의존하며 자신만의 길을 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회복의 기회를 제공하며,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다툰 조상 야곱(2-6)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들에 의존하거나,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면,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돌아가고, 그분의 길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회복과 축복의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2여호와께서 유다와 논쟁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시리라 3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4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5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께서시라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6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2-6)

 

호세아의 야곱은 큰 틀에서 창세기의 야곱에 대부분 일치하지만, 후자를 그대로 따르지는 않습니다. 호세아의 야곱 이야기가 그 전체 구조에 있어 창세기의 야곱 이야기와 일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조적 불일치는 호세아의 의도와 해석에서 기인합니다.

 

(1) 기억할 이름 여호와(2-4)

 

호세아 12장 틀 안에서 보자면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 아람으로 도망합니다. 창세기에서 야곱의 아람 체류는 벧엘에서 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가는 하나의 과정이지만, 호세아서에서는 약속과 권면(6)을 무시한 도망이 됩니다. 호세아는 야곱의 아람 체류 이야기와 출애굽 사건을 함께 연결시킵니다. 12절과 13절을 함께 보면 다시금 야곱(이 한 일)과 여호와(께서 하신 일)의 대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호세아는 창세기의 야곱 이야기를 비교적 자유롭게 활용하면서, 야곱 이스라엘을 여호와를 거역한 자기시대 이스라엘의 원형으로 보여줍니다.

호세아는 족장 야곱 이스라엘을 모델로 활용해 에브라임을 고발합니다. 먼저 이름 ‘야곱’과 ‘이스라엘’에서 출발합니다. 고대적 사고에 따르면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표했습니다. 원래 독립적이었던 야곱의 출생 이야기와 얍복나루의 씨름 이야기를 결합시켜 야곱 이스라엘의 성품과 본성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소개합니다. ‘모태에서부터 한창힘을 쓸 때까지’ 이웃과 불화하고 하나님과도 다툰 자가 바로 야곱이었습니다. 호세아는 에브라임의 조상 야곱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면서 자기 시대 사람들을 고발합니다. 지금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 싸우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은 그 조상 때부터 기원하는 뿌리 깊은 죄입니다.

천사와 겨루어 이긴 야곱은 울면서 그에게 (축복을) 간구했고, 하나님께서는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야곱의 긴 여정의 처음에 속하는 벧엘에서의 만남이 야곱 인생의 후반으로 옮겨집니다. 호세아에게 벧엘의 계시 사건은 울며 간구하는 야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자애로운 응답입니다. 출생 이야기와 씨름 이야기가 쌈꾼 야곱의 본질을 보여준다면, 벧엘에서의 만남은 야곱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4절 하반절에 동사의 시제가 미완료로 사용되고, 하나님의 대화상대로 ‘우리’가 등장함은 우연이 아닙니다. “벧엘에서 그분께서 그를 만나시고 거기서 우리와 말씀하시리라.” 벧엘에서의 만남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사건임을 시사해줍니다. 지금 벧엘은 송아지를 숭배하는 벧아웬이 됐지만, 원래 벧엘은 쌈꾼이었던 야곱이 울며 간청하자 여호와께서 만나주셨던 곳입니다. 에브라임이 배교 했을지라도 울며 간청한다면 조상 야곱이 만났던 벤엘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2) 권면의 말씀(5-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는 벧엘에서 조상 야곱에게 나타나셨던 분으로, 에브라임이 알고 섬겨야 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님과도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면 야곱이 울며 간구하자 그(죄인)에게 은총을 베푸셨던 여호와는 야곱의 하나님께서실 뿐만 아니라 현 세대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조상에게 베푸신 은총에 후손도 참여해야 합니다.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은 문자적으로는 ‘그분의 기억’입니다. 에브라임이 기억해야 할 이름은 송아지 형상 속에 숨은 가나안의 신 바알이 아니라, 야곱에게 은총을 베푸셨던 ‘여호와’이십니다. 호세아는 아람으로 도망하는 야곱에게 준 무사 귀환의 약속을 자기 시대의 이스라엘에게 주는 약속과 권면의 말씀으로 옮깁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처럼, 그의 후손 이스라엘은 그분의 도움을 받아 그분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옴’은 구체적으로는 ‘인애와 정의’의 준수를 의미합니다. ‘거짓과 속임수’를 버리고 ‘인애와 정의’를 실천하며 사는 삶이 돌아옴의 참모습입니다. 제의적으로 여호와를 찾는 관습화된 신앙을 버리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실천하면서 파괴된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옴’은 또 삶의 방향을 그분께 고정하고 항상 그분만 바라보며 사는 삶이기도 합니다.

 

상인이 된 에브라임(7-9)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부유함을 경험하는 길입니다. 세상의 재물과 성공이 우리의 가치와 자아를 정의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분의 은혜에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길을 따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부유함을 얻는 길입니다.

 

7그는 상인이라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도다 8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 낼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9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주하게 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7-9)

 

하나님께로 돌아와 살길을 찾으라는 예언자의 호소는 무시됐습니다. 에브라임은 손에 거짓 저울을 든 상인의 길을 택했습니다. “상인”의 히브리어는 ‘가나안’으로 ‘가나안 사람’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거짓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상인이 됐다는 점에서 에브라임은 가나안 사람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장사꾼 에브라임에게 인애와 정의는 사치였고, 이웃은 없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재물이었습니다. 죄가 될 만한 어떤 잘못도 범하지 않았다고 무죄를 주장하는 에브라임에게 출애굽의 하나님께서 징벌을 선언하십니다. 에브라임은 초막절에 그러하듯이 장막에 거주해야 합니다. 척박한 유복 생활로 돌아가야 합니다. 온갖 방법으로 애써 모은 재산은 다 빼앗기고, 거주지는 폐허가 됩니다.

 

참 예배와 거짓 예배(10-1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이 단지 외적인 의식이나 형식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진정한 회개와 신앙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형식적이지 않고, 진정한 회개와 변화로 이어져야 합니다. 신앙의 진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외적인 의식과 형식에 집중하기보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삶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는 것입니다.

 

10내가 여러 선지자에게 말하였고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비유를 베풀었노라 11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과연 그러하다 그들은 거짓되도다 길갈에서는 무리가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도다(10-11)

 

여호와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당신의 의지를 제시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그분 말씀을 청종하기보다는 형식적 제의에 매달렸습니다. 여호와께서 원하는 인애와 정의는 이스라엘의 모든 영역에서 철저히 무시됐습니다. 그분께서 길르앗을 멸망시켜 바알화된 제의 종교를 심판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길갈의 제단들은 여전히 많은 희생제물로 넘칩니다. 사람들은 양 대신 값비싼 황소를 드리는 것으로 답합니다. 여호와는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시지만, 이스라엘은 제사와 번제로 그분을 찾을 뿐입니다(6:6). 제도화된 죽은 제의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합니다.

 

야곱과 여호와(12-13)

야곱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계획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하나님께 의존하고 신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자손을 애굽에서 구속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안에 있으며, 그분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보호하실 때, 우리는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12야곱이 아람의 들로 도망하였으며 이스라엘이 아내를 얻기 위하여 사람을 섬기며 아내를 얻기 위하여 양을 쳤고 13여호와께서는 한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이스라엘이 한 선지자로 보호 받았거늘(12-13)

 

아내를 얻기 위해 아랍에서 종이 된 이스라엘과 종이 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신 여호와가 대조됩니다. 야곱은 특정 목적을 위해 (라반의) 종이 되어 양 떼를 돌보았습니다. 야곱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누구의 종도 될 수 있고, 누구/무엇이라도 섬길 수 있는 인물입니다. 에브라임이 재물을 얻기 위해서면 거짓 저울도 사용하는 것처럼, 조상 야곱은 여자를 얻기 위해 이방 땅에서 종살이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여호와는 모세를 보내 이방 땅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해 돌보셨습니다. “쳤고”와 “보호 받았거늘”의 동사는 히브리어로는 동일합니다. 야곱은 여자를 얻기 위해 누구/무엇인가를 돌보고,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보내신 예언자를 통해 돌봄을 받습니다.

 

종결부: 징계의 심판(14)

하나님의 승리에 대한 신뢰는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하시고 승리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회복의 약속을 붙잡는 것은 하나님이 고난 중에도 새로운 시작을 주실 것임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승리와 회복의 약속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14에브라임이 격노하게 함이 극심하였으니 그의 주께서 그의 피로 그의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그의 수치를 그에게 돌리시리라(14)

 

여호와를 괴롭히며, 이웃에게 피를 흘리게 하고 수치를 가한 에브라임에게 남은 유일한 것은 여호와의 진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행위에 따라 그대로 같으실 것입니다. 예브라임은 자신의 악행에 책임을 지고 상용하는 징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교만과 자아를 내려놓고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의지하며 인애와 공의를 지키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의미와 방향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회복을 기다리시며, 회개와 순종을 통해 진정한 회복과 평안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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