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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서(01-02)


비슷한 것 같은 가짜에 대한 교훈

요한2서 1장 7-13절


이단(異端), ‘끝’이 다른 집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이던 이들이 이제는 사단의 하수인이 되어 교회를 미혹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유포하는 가르침은 교회의 교훈과 매우 유사하여 분별이 어렸습니다. 그러니 기준을 명확히 해야 했습니다. 요한은 그 분별 기준과 대처 방법을 일러줍니다.

 

편지 본문의 두 번째(7-11)와 마무리 부분(12-13)입니다. 이전 부분과 달리 ‘계명’과 ‘행하다’라는 단어 대신 ‘속이는 자’나 ‘적그리스도’ 등으로 묘사되는 제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교회 밖에서 안으로 영향을 끼치려는 거짓 교사들입니다. 예님께서 육체로 오신 메시아임을 부인하고 그렇게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저자는 이들의 영향력을 조심할 것을 당부합니다.

 

독자를 향한 명령: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자(7-11)

지금도 사단은 교회를 넘어뜨리고 하고 있습니다. 진리와 구분하기 어렵도록 포장하여 인간의 욕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이단이 득세하는 것은 우리가 진리를 알고 전하는 일보다, 세상에서 더 많이 소유하고 더 유명해지는 데 관심을 쏟았기 때문입니다. 더 알 것이 없을 만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안이하게 생각하여 사탄이 거짓 진리를 심을 모판을 만들어준 것입니다.

7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8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9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10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11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7-11)

본 서의 독자들에게 요한은 몸담고 있는 곳은 아니지만, 거짓 교사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순회하며 악한 영향력을 퍼뜨리곤 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도 대표적으로 나타납니다. 요한은 거짓 교사들을 적그리스도로 칭하고 철저히 조심하여 가정 교회에 영접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1) 현재 상황: 속이는 자가 출현함(7)

본문은 요한 2서 본론의 두 번째 부분입니다. 5-6절과 달리 저자와 독자 외에 제 3의 인물을 언급함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은 바로 거짓 교사들입니다. 그들을 미혹하는 자와 적그리스도라고 표현합니다. 그들의 영향력을 조심하라는 명령에 앞서 7절은 그들과 관련한 현재 상황을 서술합니다. 미혹자는 자, 곧 적그리스도가 세상에 많이 나왔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심을 부인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정체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육체성에 대한 이해가 거짓 가르침의 핵심으로 보고 거짓 교사들이 영지주의나 가현설주의와 관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한 1서 4:2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표현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오셨는가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약속된 메시아인가라는 정체성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요한 1서 2:22과 5:1에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또한 요한 1서 4:3에서도 예수를 시인하는 것을 중요시 여깁니다. 요한일서 4:3은 4:2에서 적그리스도가 말하는 내용과 반대의 것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이 과정에서 참 고백과 거짓 고백의 대조점은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셨다는 내용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인하는가 입니다. 즉, 저자의 관심은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바른 고백에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면에서 동일한 적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언급한 요한 2서 7의 표현도 ‘예수=메시아?’공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교사들은 아마도 비기독교인 유대인들일 것입니다.

(2) 독자를 향한 명령과 이유 1(8-9)

7절에 근거해 거짓 교사들에 관한 명령을 합니다. 저자는 거짓 교사 자체와 싸우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독자들 교회 바깥의 사람들인 듯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상당히 컸습니다. 요한 1서에 의하면 교회를 분열시키고 나갔기 때문입니다(요한1서 2:19). 이에 저자는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온전한 상급을 받도록 스스로 조심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들의 가르침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8).

조심하라는 명령은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저자인 ‘우리’와 관련 있고 다른 하나는 그로 인해 독자들이 얻게 되는 결과입니다. 거짓 교사에 대한 문제지만, 저자인 ‘우리’와 독자인 ‘너희’와의 관계에 집중한 것입니다. 첫째, ‘우리’와 관련해서, 독자들의 결정과 삶으로 저자가 공들여 일한 것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합니다. 저자가 일한 것은 복음을 전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는 통로였습니다. 그런데 만일 독자들이 거짓 교사의 가르침을 따르면, 그들은 진리와 상관없게 되고 하나님의 공동체는 와해됩니다. 저자의 수고도 허사가 됩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진짜 관심은 독자들의 상태입니다. 이렇게 말한 것은 독자와 저자의 관계성을 근거로 독자로 하여금 저자 편에 계속 머물러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둘째, 독자들이 얻게 되는 결과와 관련해 저자는 그들이 온전한 상급 받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미래 관점을 갖고 있지만, 정확한 의미는 추론하기 어렵습니다. 신자의 행위에 대한 보상은 아닐 것입니다. 9절에서 언급한 하나님과의 관계 표현으로 미루어 보면 아마도 구원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지 않고 그 관계의 온전함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9절에서는 명령의 이유에 대해 부연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조하여 바른 진리에 거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교훈이란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저자가 전한 복음의 내용을 의미합니다. 또한 대조되는 이 두 그룹은 모두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며 저자가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 것입니다.

결국, 9절은 예수의 정체성과 사역에 대한 두 반응을 가상으로 설정해 바른 가르침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지속되지만,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따라 바른 가르침에서 이탈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지속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독자들로 하여금 바른 길을 계속 유지하라는 간접 권면입니다. 

(3) 독자를 향한 명령과 이유 2(10-11) 

7-9절에서 설명한 원리에 따라 구체적 행동을 촉구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독자들에게 가서 저자의 가르침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집 안으로 들이지 말고 인사의 말조차 건네지 말라고 합니다(10). 거짓 교사가 저자의 교회들을 순회하며 잘못된 가르침을 퍼뜨리는 상황을 염두에 둔 듯합니다. 초대 교회에서 순회 선교사들을 받아들여 말씀을 듣는 관습이 있었는데, 거짓 교사들에게는 그런 기회를 제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1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만일 그들을 받아들이면 그들의 악한 일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사람들을 환대하고 가정에 들인다는 것은 교제함을 의미합니다. 그들과 교제한다는 것은 그들의 거짓 가르침에 동조하는 것이 되기에 그 시작조차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 명령은 사랑하라는 계명에 배치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반드시 진리로 분별하는 것과 함께 가야 합니다(참조. 고린도전서 13:5-6). 진리로 분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저자가 4-6절에서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사랑의 계명을 나중에 언급한 것도 10-11절의 권면과 관계있는 듯합니다. 진리와 사랑을 함께 고려해야 함을 말합니다 

 

문안 인사와 결어(12-13)

거짓을 환대하는 것은 거짓을 동조하는 일입니다. 진리에서 떠난 자들과의 교제는 아예 진리를 몰랐던 자들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칩니다. 타 종교를 배격하는 무례한 기독교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에 분별없이 대응하는 무모함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거짓과는 인사하지도 말라고 명령하고 마칩니다.

12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대면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3택하심을 받은 네 자매의 자녀들이 네게 문안하느니라(12-13)

서로 사랑하라던 장로가 그리스도의 교훈 밖에 있는 자들은 집에 들이지도 인사도 말라고 명령합니다. 이단들을 향한 인간적인 무례함을 정당화하는 명령이 아닙니다. 그들을 가정교회의 모임에 초청하지 말고, 그들의 악한 일에 동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1) 저자의 방문 계획과 목적(12)

방문 계획을 소개함으로 편지를 마무리하기 시작합니다. 독자들에게 쓸 것이 많지만, 종이와 먹을 통해 하지 않고 얼굴과 얼굴을 보고 전하기 원한다고 합니다.

저자의 방문은 두 가지 효과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하나는 그들을 만나 얼굴과 얼굴을 보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들에게 거짓 교사들의 위험과 바른 가르침에 대한 것을 직접 전함으로 독자들이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저자의 기쁨을 더하게 해줄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독자들의 상황을 듣고 기뻐한다고 편지 본론을 시작하고, 미래의 방문을 통해 독자들이 굳건하게 서게될 것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독자의 상황이 저자의 기쁨 요소라는 것을 잘 전달해줍니다. 역시 독자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저자의 목회적 마음입니다.

(2) 문안 인사(13)

문안 인사로 서신을 맺습니다. 택하심을 받은 ‘너’의 자매의 자녀들이 네게 문안한다고 합니다. 저자의 인사가 아니라 독자들을 향한 다른 교회들의 인사입니다. 택하심 받은 ‘너’의 자매란 1절의 ‘부녀’라는 표현과 연결됩니다. 저자의 영향력으로 세워진 또 다른 교회일 것입니다. 또한 그 자매의 자녀들은 교회 구성원을 의미합니다. 이 표현은 교회를 가족 구성원으로 묘사해서 마치 가족끼리 서로 안부를 묻듯 친밀한 사랑의 관심을 전한다는 말입니다.


비슷한 것은 가짜입니다. 가짜는 늘 진짜처럼 다가와 진짜 행세를 합니다. 그러니 진짜를 제대로 모르면 진짜를 가장한 가짜를 가려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짜와 맞설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서 모무는 것이 우선이고, 최선입니다. 비슷하면 ‘의심’부터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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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2(01-01)


실천하는 사랑의 계명

요한 1 1-6


요한2서는 13절밖에 안 되는 짧은 편지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만은 묵직합니다. 첫 인사말에서부터 서신을 보내는 이유가 적혀 있습니다. 요한은 진리와 사랑으로 한 가족 된 교회를 향해 진리를 떠난 사랑’, ‘사랑 없는 진리를 경계하며, 진리와 사랑이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합니다.

 

거짓 선생들로 인한 문제를 안고 있는 교회에게 편지를 씁니다. 1-2절은 누구에게 인사라는 편지 도입부의 전형적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신자에 대한 긴 설명은 저자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진리와 관련한 독자들의 상황입니다. 본문의 시작인 4-6절 역시 진리 문제를 다루는데, 이는 전체적으로 요한2서가 진리 문제를 중심으로 독자들을 권면하고픈 의도를 반영합니다.

 

문안 인사(1-3)

목자와 양이 그리고 교회와 교회가 직분과 거리를 뛰어넘어 서로 격려와 일깨움으로 교제할 수 있는 것은 진리때문이고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고 그분의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할 하나님의 지혜라는 진리가 우리를 하나로 묶어줍니다.

1장로인 나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2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로 말미암음이로다 3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1-3)

장로는 편지를 받는 성도들을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고, 자신과 함께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교회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라고 소개합니다. 이제 함께 장로 요한이 기록한 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발신자와 수신자(1-2)

 발신자 : 장로(1a)

요한2서는 당시에 편지 도입부의 전형적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발신자는 장로이고 수신자는 부녀와 그 자녀들입니다. 이 표현은 현대 독자들에게 마치 암호와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지 확실치 않기 때문입니다. 보통 발신자에 대해서는 이름을 밝히지만, 요한2서는 그냥 장로라고 말합니다. 이 단어가 연장자를 의미하는지 교회 직분을 의미하는지는 모호합니다. 하지만 이 표현으로 시작한 의도는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다른 설명 없이 장로가라고만 쓴 것은 개인적 관계가 아닌 사회적 관계 속에서 독자에게 말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존경받는 연장자 혹은 교회의 지도자로서 말입니다.

 수신자 : 부녀와 그의 자녀(1b)

수신자의 정체도 확실치 않습니다. 부녀와 그의 자녀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논의가 있지만, 현대 학자들은 지역 교회와 그 구성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편지의 대상이 꼭 한 교회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거짓 교사의 가르침이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저자의 여러 교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듯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발신자에 비해 수신자 정보가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수신자 상태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수신자에게 대한 관심은 두 가지 표현으로 전달됩니다. 첫째, 독자들을 진리 안에서 사랑한다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진리만 예수에 대한 바른 가르침, 곧 예수가 메시아라는 복음의 내용이며(7) 요한1서에서 다루었던 것입니다(요한1 2:22;4:2;5:1). 더 나아가 저자는 여러 성도들도 독자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그 사람들을 진리를 아는 모든 자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복음의 진리로 독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하고픈 것입니다. 둘째, 저자가 왜 독자를 사랑하는지를 추가합니다. 저자 안에 있고 영원히 함께할 진리 속에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교회를 흔드는 거짓 교사들과 대조해 누구의 가르침이 참인지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추가 표현들에 의하면 저자는 독자들이 거짓 교사를 따르지 않고 자신이 전한 참 진리의 복음을 계속 붙잡고 살기를 기대합니다. 성도를 향한 목회적 마음의 표현입니다.

 문안 인사(3)

발신자와 수신자를 소개한 후 문안 인사로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빕니다. 3절 표현에는 세 가지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모두 신약의 편지 중 여기에만 나옵니다. 첫째, 복의 기원을 언급할 때 아버지라는 표현(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을 반복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강조합니다. 둘째, 진리와 사랑 안에서라는 표현입니다. 진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예수님에 대한 복음의 내용입니다. 사랑은 진리로 얻게 된 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이 표현은 일차적으로 이후 전개될 사랑에 대한 것(5-6)과 진리에 대한 설명(4,7-11)의 복선입니다. 또한 복자들 삶의 모습을 향한 간접 권면도 있습니다.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는 표현입니다. 편지는 보통 독자를 위한 것이기에 너희라는 말로 인사하고 을 바란다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와 미래 직설법을 쓴 것은 진리로 인한 구원의 결과가 저자가 전한 복음에 있음을 확신시키는 것입니다. 이렇듯 문안 인사 역시 1-2절에서처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저자가 전한 바른 진리를 계속 붙잡고 사랑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독자를 향한 긍정적 확증과 권면(4-6)

진리가 인도하는 대로 행하고 진리가 암시하는 대로 생각할 때, 진정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고 교회입니다. 그 실천은 곧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는 새롭지 않은 계명입니다. 문제는 진리를 따라 사랑을 행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이 첨단을 걷는 새로운 진리, 아무도 몰랐던 비밀스런 진리, 아무나 알 수 없는 특권적인 진리가 있다고 미혹합니다. 이런 중에서도 바울은 긍정적인 확신과 바른 권면합니다.

4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5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6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4-6)

진리에 순종하여 사랑하는 공동체에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함께합니다. 그 반대도 사실입니다. 장로 요한의 기쁨은 성도들이 진리를 알 뿐 아니라 실천하면서 사는 것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1) 계명에 따라 걷는 것을 기뻐함(4) 

이제 편지 본론의 시작합니다. 저자가 크게 기뻐했다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너의 자녀들중에 우리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독특한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너의 자녀들이 라는 표현입니다. 1절에서 언급한 부녀와 그의 자녀들 중 자녀에 초점 맞춘 것으로 교회 공동체 구성원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자녀 중 일부라고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진리의 계명을 다룬 점입니다. 1-3절에 이어 계속해서 진리에 대해 집중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영향력 때문입니다. 셋째,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라는 표현입니다. 우리라는 표현은 3절의 문안 인사와 연결된 것으로 복음의 진리를 가르친 저자 그룹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진리가 아버지께로 온 것임을 말하는 것은 거짓 교사들과 다르게 저자의 복음이 참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넷째, 저자의 목회적 관심입니다. 본문은 저자가 무엇에 기뻐하는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단순히 그들의 평안이라기보다 진리 안에서의 삶입니다. 독자에게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 지를 말하는 간접 권면입니다. 

(2) 사랑의 계명을 따라 살 것을 권면(5-6) 

교회 구성원들이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근거로 하나님의 또 다른 계명에도 집중하라고 권면합니다. 4절과 몇 가지 면에서 다릅니다. 첫째, 4절은 너의 자녀들에게 집중했다면 5절부터는 부녀여라는 표현으로 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합니다. 둘째, 4절이 진리 차원에만 집중했다면 5절부터는 사랑의 계명에 집중합니다. 셋째, 4절은 교회 구성원들이 진리 안에 있다는 것에 기뻐하지만, 5절부터는 계명에 근거해 쉽다는 권면을 합니다. 그 권면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단순히 독자에게만 명령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담고 있는 저자 그룹 안에서 함께 사랑의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역시 거짓 교사의 영향력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서로 사랑하자는 권면 이후 6절까지 추가 설명을 합니다. 먼저 사랑하자는 것은 새 언약 안에서의 계명입니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맺은 옛 언약처럼 예수를 통한 새 언약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계명 지킴이 필요합니다. 그 계명은 옛 언약의 십계명이 말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새 언약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기분의 메시아요 완전한 계시자인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요한일서 3:23; 요한복음 13:34). 독자들에게 이 계명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로부터 직접 들은 가르침을 복음을 전할 때 이미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5절은 이 계명을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 말하고 6절에서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처음부터를 강조한 것인데, 중간에 거짓 교사가 끼어든 것은 원래 가르침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결국, 저자가 전하고 싶은 것은 독자들이 이미 사랑의 계명을 알고 있다는 것과 그것에 따라 실제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진리의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자기만 알던 사람이 자기를 내어주는 사람이 된는 뜻이고, 자기 맘대로 살던 사람이 진리를 따라 산다는 뜻입니다. ‘진리의 사랑’, 이것은 종교적 수사(修辭)가 아닙니다. 실체이고 실제적인 삶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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