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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서(01-02)


비슷한 것 같은 가짜에 대한 교훈

요한2서 1장 7-13절


이단(異端), ‘끝’이 다른 집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이던 이들이 이제는 사단의 하수인이 되어 교회를 미혹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유포하는 가르침은 교회의 교훈과 매우 유사하여 분별이 어렸습니다. 그러니 기준을 명확히 해야 했습니다. 요한은 그 분별 기준과 대처 방법을 일러줍니다.

 

편지 본문의 두 번째(7-11)와 마무리 부분(12-13)입니다. 이전 부분과 달리 ‘계명’과 ‘행하다’라는 단어 대신 ‘속이는 자’나 ‘적그리스도’ 등으로 묘사되는 제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교회 밖에서 안으로 영향을 끼치려는 거짓 교사들입니다. 예님께서 육체로 오신 메시아임을 부인하고 그렇게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저자는 이들의 영향력을 조심할 것을 당부합니다.

 

독자를 향한 명령: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자(7-11)

지금도 사단은 교회를 넘어뜨리고 하고 있습니다. 진리와 구분하기 어렵도록 포장하여 인간의 욕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이단이 득세하는 것은 우리가 진리를 알고 전하는 일보다, 세상에서 더 많이 소유하고 더 유명해지는 데 관심을 쏟았기 때문입니다. 더 알 것이 없을 만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안이하게 생각하여 사탄이 거짓 진리를 심을 모판을 만들어준 것입니다.

7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8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9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10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11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7-11)

본 서의 독자들에게 요한은 몸담고 있는 곳은 아니지만, 거짓 교사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순회하며 악한 영향력을 퍼뜨리곤 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도 대표적으로 나타납니다. 요한은 거짓 교사들을 적그리스도로 칭하고 철저히 조심하여 가정 교회에 영접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1) 현재 상황: 속이는 자가 출현함(7)

본문은 요한 2서 본론의 두 번째 부분입니다. 5-6절과 달리 저자와 독자 외에 제 3의 인물을 언급함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은 바로 거짓 교사들입니다. 그들을 미혹하는 자와 적그리스도라고 표현합니다. 그들의 영향력을 조심하라는 명령에 앞서 7절은 그들과 관련한 현재 상황을 서술합니다. 미혹자는 자, 곧 적그리스도가 세상에 많이 나왔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심을 부인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정체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육체성에 대한 이해가 거짓 가르침의 핵심으로 보고 거짓 교사들이 영지주의나 가현설주의와 관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한 1서 4:2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표현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오셨는가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약속된 메시아인가라는 정체성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요한 1서 2:22과 5:1에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또한 요한 1서 4:3에서도 예수를 시인하는 것을 중요시 여깁니다. 요한일서 4:3은 4:2에서 적그리스도가 말하는 내용과 반대의 것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이 과정에서 참 고백과 거짓 고백의 대조점은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셨다는 내용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인하는가 입니다. 즉, 저자의 관심은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바른 고백에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면에서 동일한 적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언급한 요한 2서 7의 표현도 ‘예수=메시아?’공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교사들은 아마도 비기독교인 유대인들일 것입니다.

(2) 독자를 향한 명령과 이유 1(8-9)

7절에 근거해 거짓 교사들에 관한 명령을 합니다. 저자는 거짓 교사 자체와 싸우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독자들 교회 바깥의 사람들인 듯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상당히 컸습니다. 요한 1서에 의하면 교회를 분열시키고 나갔기 때문입니다(요한1서 2:19). 이에 저자는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온전한 상급을 받도록 스스로 조심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들의 가르침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8).

조심하라는 명령은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저자인 ‘우리’와 관련 있고 다른 하나는 그로 인해 독자들이 얻게 되는 결과입니다. 거짓 교사에 대한 문제지만, 저자인 ‘우리’와 독자인 ‘너희’와의 관계에 집중한 것입니다. 첫째, ‘우리’와 관련해서, 독자들의 결정과 삶으로 저자가 공들여 일한 것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합니다. 저자가 일한 것은 복음을 전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는 통로였습니다. 그런데 만일 독자들이 거짓 교사의 가르침을 따르면, 그들은 진리와 상관없게 되고 하나님의 공동체는 와해됩니다. 저자의 수고도 허사가 됩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진짜 관심은 독자들의 상태입니다. 이렇게 말한 것은 독자와 저자의 관계성을 근거로 독자로 하여금 저자 편에 계속 머물러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둘째, 독자들이 얻게 되는 결과와 관련해 저자는 그들이 온전한 상급 받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미래 관점을 갖고 있지만, 정확한 의미는 추론하기 어렵습니다. 신자의 행위에 대한 보상은 아닐 것입니다. 9절에서 언급한 하나님과의 관계 표현으로 미루어 보면 아마도 구원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지 않고 그 관계의 온전함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9절에서는 명령의 이유에 대해 부연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조하여 바른 진리에 거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교훈이란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저자가 전한 복음의 내용을 의미합니다. 또한 대조되는 이 두 그룹은 모두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며 저자가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 것입니다.

결국, 9절은 예수의 정체성과 사역에 대한 두 반응을 가상으로 설정해 바른 가르침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지속되지만,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따라 바른 가르침에서 이탈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지속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독자들로 하여금 바른 길을 계속 유지하라는 간접 권면입니다. 

(3) 독자를 향한 명령과 이유 2(10-11) 

7-9절에서 설명한 원리에 따라 구체적 행동을 촉구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독자들에게 가서 저자의 가르침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집 안으로 들이지 말고 인사의 말조차 건네지 말라고 합니다(10). 거짓 교사가 저자의 교회들을 순회하며 잘못된 가르침을 퍼뜨리는 상황을 염두에 둔 듯합니다. 초대 교회에서 순회 선교사들을 받아들여 말씀을 듣는 관습이 있었는데, 거짓 교사들에게는 그런 기회를 제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1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만일 그들을 받아들이면 그들의 악한 일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사람들을 환대하고 가정에 들인다는 것은 교제함을 의미합니다. 그들과 교제한다는 것은 그들의 거짓 가르침에 동조하는 것이 되기에 그 시작조차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 명령은 사랑하라는 계명에 배치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반드시 진리로 분별하는 것과 함께 가야 합니다(참조. 고린도전서 13:5-6). 진리로 분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저자가 4-6절에서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사랑의 계명을 나중에 언급한 것도 10-11절의 권면과 관계있는 듯합니다. 진리와 사랑을 함께 고려해야 함을 말합니다 

 

문안 인사와 결어(12-13)

거짓을 환대하는 것은 거짓을 동조하는 일입니다. 진리에서 떠난 자들과의 교제는 아예 진리를 몰랐던 자들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칩니다. 타 종교를 배격하는 무례한 기독교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에 분별없이 대응하는 무모함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거짓과는 인사하지도 말라고 명령하고 마칩니다.

12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대면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3택하심을 받은 네 자매의 자녀들이 네게 문안하느니라(12-13)

서로 사랑하라던 장로가 그리스도의 교훈 밖에 있는 자들은 집에 들이지도 인사도 말라고 명령합니다. 이단들을 향한 인간적인 무례함을 정당화하는 명령이 아닙니다. 그들을 가정교회의 모임에 초청하지 말고, 그들의 악한 일에 동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1) 저자의 방문 계획과 목적(12)

방문 계획을 소개함으로 편지를 마무리하기 시작합니다. 독자들에게 쓸 것이 많지만, 종이와 먹을 통해 하지 않고 얼굴과 얼굴을 보고 전하기 원한다고 합니다.

저자의 방문은 두 가지 효과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하나는 그들을 만나 얼굴과 얼굴을 보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들에게 거짓 교사들의 위험과 바른 가르침에 대한 것을 직접 전함으로 독자들이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저자의 기쁨을 더하게 해줄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독자들의 상황을 듣고 기뻐한다고 편지 본론을 시작하고, 미래의 방문을 통해 독자들이 굳건하게 서게될 것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독자의 상황이 저자의 기쁨 요소라는 것을 잘 전달해줍니다. 역시 독자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저자의 목회적 마음입니다.

(2) 문안 인사(13)

문안 인사로 서신을 맺습니다. 택하심을 받은 ‘너’의 자매의 자녀들이 네게 문안한다고 합니다. 저자의 인사가 아니라 독자들을 향한 다른 교회들의 인사입니다. 택하심 받은 ‘너’의 자매란 1절의 ‘부녀’라는 표현과 연결됩니다. 저자의 영향력으로 세워진 또 다른 교회일 것입니다. 또한 그 자매의 자녀들은 교회 구성원을 의미합니다. 이 표현은 교회를 가족 구성원으로 묘사해서 마치 가족끼리 서로 안부를 묻듯 친밀한 사랑의 관심을 전한다는 말입니다.


비슷한 것은 가짜입니다. 가짜는 늘 진짜처럼 다가와 진짜 행세를 합니다. 그러니 진짜를 제대로 모르면 진짜를 가장한 가짜를 가려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짜와 맞설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서 모무는 것이 우선이고, 최선입니다. 비슷하면 ‘의심’부터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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