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2서(01-01)
실천하는 사랑의 계명
요한이서 1장 1-6절
요한2서는 13절밖에 안 되는 짧은 편지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만은 묵직합니다. 첫 인사말에서부터 서신을 보내는 이유가 적혀 있습니다. 요한은 진리와 사랑으로 한 가족 된 교회를 향해 ‘진리를 떠난 사랑’, ‘사랑 없는 진리’를 경계하며, 진리와 사랑이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합니다.
거짓 선생들로 인한 문제를 안고 있는 교회에게 편지를 씁니다. 1-2절은 누구에게 인사라는 편지 도입부의 전형적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신자에 대한 긴 설명은 저자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진리와 관련한 독자들의 상황입니다. 본문의 시작인 4-6절 역시 진리 문제를 다루는데, 이는 전체적으로 요한2서가 진리 문제를 중심으로 독자들을 권면하고픈 의도를 반영합니다.
문안 인사(1-3)
목자와 양이 그리고 교회와 교회가 직분과 거리를 뛰어넘어 서로 격려와 일깨움으로 교제할 수 있는 것은 ‘진리’때문이고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고 그분의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할 하나님의 지혜라는 진리가 우리를 하나로 묶어줍니다.
1장로인 나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2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로 말미암음이로다 3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1-3)
장로는 편지를 받는 성도들을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고, 자신과 함께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교회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라고 소개합니다. 이제 함께 장로 요한이 기록한 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발신자와 수신자(1-2)
➀ 발신자 : 장로(1a)
요한2서는 당시에 편지 도입부의 전형적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발신자는 장로이고 수신자는 부녀와 그 자녀들입니다. 이 표현은 현대 독자들에게 마치 암호와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지 확실치 않기 때문입니다. 보통 발신자에 대해서는 이름을 밝히지만, 요한2서는 그냥 ‘장로’라고 말합니다. 이 단어가 연장자를 의미하는지 교회 직분을 의미하는지는 모호합니다. 하지만 이 표현으로 시작한 의도는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다른 설명 없이 ‘장로가’라고만 쓴 것은 개인적 관계가 아닌 사회적 관계 속에서 독자에게 말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존경받는 연장자 혹은 교회의 지도자로서 말입니다.
➁ 수신자 : 부녀와 그의 자녀(1b)
수신자의 정체도 확실치 않습니다. ‘부녀와 그의 자녀’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논의가 있지만, 현대 학자들은 지역 교회와 그 구성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편지의 대상이 꼭 한 교회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거짓 교사의 가르침이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저자의 여러 교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듯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발신자에 비해 수신자 정보가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수신자 상태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수신자에게 대한 관심은 두 가지 표현으로 전달됩니다. 첫째, 독자들을 진리 안에서 사랑한다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진리만 예수에 대한 바른 가르침, 곧 예수가 메시아라는 복음의 내용이며(7) 요한1서에서 다루었던 것입니다(요한1서 2:22;4:2;5:1). 더 나아가 저자는 여러 성도들도 독자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그 사람들을 ‘진리를 아는 모든 자’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복음의 진리로 독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하고픈 것입니다. 둘째, 저자가 왜 독자를 사랑하는지를 추가합니다. 저자 안에 있고 영원히 함께할 진리 속에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교회를 흔드는 거짓 교사들과 대조해 누구의 가르침이 참인지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추가 표현들에 의하면 저자는 독자들이 거짓 교사를 따르지 않고 자신이 전한 참 진리의 복음을 계속 붙잡고 살기를 기대합니다. 성도를 향한 목회적 마음의 표현입니다.
➂ 문안 인사(3)
발신자와 수신자를 소개한 후 문안 인사로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빕니다. 3절 표현에는 세 가지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모두 신약의 편지 중 여기에만 나옵니다. 첫째, 복의 기원을 언급할 때 ‘아버지’라는 표현(‘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을 반복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강조합니다. 둘째, ‘진리와 사랑 안에서’라는 표현입니다. 진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예수님에 대한 복음의 내용입니다. 사랑은 진리로 얻게 된 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이 표현은 일차적으로 이후 전개될 사랑에 대한 것(5-6)과 진리에 대한 설명(4,7-11)의 복선입니다. 또한 복자들 삶의 모습을 향한 간접 권면도 있습니다.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는 표현입니다. 편지는 보통 독자를 위한 것이기에 ‘너희’라는 말로 인사하고 ‘…을 바란다’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와 미래 직설법을 쓴 것은 진리로 인한 구원의 결과가 저자가 전한 복음에 있음을 확신시키는 것입니다. 이렇듯 문안 인사 역시 1-2절에서처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저자가 전한 바른 진리를 계속 붙잡고 사랑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독자를 향한 긍정적 확증과 권면(4-6)
진리가 인도하는 대로 행하고 진리가 암시하는 대로 생각할 때, 진정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고 교회입니다. 그 실천은 곧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는 새롭지 않은 계명입니다. 문제는 진리를 따라 사랑을 행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이 첨단을 걷는 새로운 진리, 아무도 몰랐던 비밀스런 진리, 아무나 알 수 없는 특권적인 진리가 있다고 미혹합니다. 이런 중에서도 바울은 긍정적인 확신과 바른 권면합니다.
4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5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6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4-6)
진리에 순종하여 사랑하는 공동체에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함께합니다. 그 반대도 사실입니다. 장로 요한의 기쁨은 성도들이 진리를 알 뿐 아니라 실천하면서 사는 것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1) 계명에 따라 걷는 것을 기뻐함(4)
이제 편지 본론의 시작합니다. 저자가 크게 기뻐했다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너의 자녀들’중에 ‘우리’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독특한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너의 자녀들’이 라는 표현입니다. 1절에서 언급한 부녀와 그의 자녀들 중 ‘자녀’에 초점 맞춘 것으로 교회 공동체 구성원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자녀 중 일부라고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진리의 계명을 다룬 점입니다. 1-3절에 이어 계속해서 진리에 대해 집중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영향력 때문입니다. 셋째,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라는 표현입니다. ‘우리’라는 표현은 3절의 문안 인사와 연결된 것으로 복음의 진리를 가르친 저자 그룹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진리가 아버지께로 온 것임을 말하는 것은 거짓 교사들과 다르게 저자의 복음이 참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넷째, 저자의 목회적 관심입니다. 본문은 저자가 무엇에 기뻐하는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단순히 그들의 평안이라기보다 진리 안에서의 삶입니다. 독자에게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 지를 말하는 간접 권면입니다.
(2) 사랑의 계명을 따라 살 것을 권면(5-6)
교회 구성원들이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근거로 하나님의 또 다른 계명에도 집중하라고 권면합니다. 4절과 몇 가지 면에서 다릅니다. 첫째, 4절은 ‘너의 자녀들’에게 집중했다면 5절부터는 ‘부녀여’라는 표현으로 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합니다. 둘째, 4절이 진리 차원에만 집중했다면 5절부터는 사랑의 계명에 집중합니다. 셋째, 4절은 교회 구성원들이 진리 안에 있다는 것에 기뻐하지만, 5절부터는 계명에 근거해 쉽다는 권면을 합니다. 그 권면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단순히 독자에게만 명령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담고 있는 저자 그룹 안에서 함께 사랑의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역시 거짓 교사의 영향력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서로 사랑하자’는 권면 이후 6절까지 추가 설명을 합니다. 먼저 ‘사랑하자’는 것은 새 언약 안에서의 계명입니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맺은 옛 언약처럼 예수를 통한 새 언약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계명 지킴이 필요합니다. 그 계명은 옛 언약의 십계명이 말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새 언약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기분의 메시아요 완전한 계시자인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요한일서 3:23; 요한복음 13:34). 독자들에게 이 계명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로부터 직접 들은 가르침을 복음을 전할 때 이미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5절은 이 계명을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 말하고 6절에서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처음부터’를 강조한 것인데, 중간에 거짓 교사가 끼어든 것은 원래 가르침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결국, 저자가 전하고 싶은 것은 독자들이 이미 사랑의 계명을 알고 있다는 것과 그것에 따라 실제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진리의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자기만 알던 사람이 자기를 내어주는 사람이 된는 뜻이고, 자기 맘대로 살던 사람이 진리를 따라 산다는 뜻입니다. ‘진리의 사랑’, 이것은 종교적 수사(修辭)가 아닙니다. 실체이고 실제적인 삶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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