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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30-01)


말씀을 통해 주는 지혜

잠언 30장 1-17절


‘야베스의 기도’가 빗나간 기복주의 영성을 조장하며 한국교회 안에서 신드롭을 일으킬 때 열광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낯설고 또 잊힌, 그래서 늘 아쉽고 아타깝게 여겼던 기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굴의 기도’입니다. 잠언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이 기도는 잠언의 정수인 지혜의 백미를 보여주는 기도입니다.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에 이어 겸손히 하나님을 높이는 기도,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욕망을 경계하라는 교훈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 30장 전체가 아굴의 잠언인데, 오늘은 전반부와 중반부를 묵상합니다. 2-9절이 전반부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인정할 때 참된 진리의 길로 갈 수 있고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10-17절은 전반부의 가르침을 기초로 하여 순종과 만족에 대한 여러 가르침을 베푸는데, 우리의 일상생활에 일어나는 일들을 강한 비유적 언어로 표현해냅니다.

 

표제(1)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넘어 계신 분입니다. 자신의 무지를 짐승에 비유하는 것은 단순히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음을 깨달은 자의 정직한 고백입니다.

 

1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 곧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1)

 

1절은 30장 전체의 표제입니다. 아굴이 전해준 말씀이며, 이 말씀은 또한 히브리어 ‘마싸’로 표현되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아굴이 누구인지, 야게, 이디엘, 우갈이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방 사람들 중에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졌던 사람들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혜를 위한 말씀의 중요성(2-9)

부와 가난 모두 그 자체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지혜는 그 상황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앞에서 마음을 지키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아굴처럼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에 있기를 원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2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3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4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5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6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7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8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2-9)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넘어 계신 분입니다. 자신의 지혜를 짐승에 비유하는 것은 단순히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음을 깨달은 자의 정직한 고백입니다.

 

(1) 지혜를 갖지 못한 한계(2-4)

 

2절부터 아굴은 매우 논리적이고도 화려한 어법을 통해 자신의 논지를 전개해 나갑니다. 2절에서 자신이 지혜를 소유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 어떤 다른 사람보다도 어리석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3절에서는 자신이 지혜를 배우지 못했고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지혜’와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란 잠언 9:10에서 병행되어 나타난 잠언의 대표적인 어휘 쌍으로, 지혜를 강조하여 서술하는 표현 양식입니다. 즉, 아굴은 자신이 잠언 1-29장에서 설명해온 잠언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굴이 지혜를 갖지 못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는 지혜자로서 지금 잠언 30장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2-3절에서 아굴의 표현은 강조를 위한 문예적 서술로서, 사람이 지혜를 갖는 것이 사실상 너무나 어렵다는 점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4절에서 이런 해석의 명확한 근거를 확보하게 됩니다. 4절은 하늘에 올라갔다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땅의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4절이 가리키는 존재는 창조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2-4절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지혜를 가지신 분이라는 점을 독특한 논리적 구조를 통해 강조하여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말씀의 중요성(5-6)

 

5-6절은 말씀의 중요성을 서술합니다. 5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순전하여, 하나님께 피하는 자에게 방패가 되어주심을 말합니다. 6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훈은 계속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언가를 더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주어집니다. 말씀을 그대로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책망을 당하게 되고, 결국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기에 거짓말하는 자로 판명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하나님만이 지혜를 가지셨음을 강조한 2-4절에 이어, 5-6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였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배울 수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3) 여호와 경외의 중요성(7-9)

 

7-9절은 참 지혜를 소유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말씀을 의지하게 될 때 얻게 되는 지혜의 삶을 보여줍니다. 아굴은 죽기 전에 두 가지 일을 하나님께 구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헛된 것과 거짓말을 멀리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5-6절에 의하면 거짓말을 멀리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붙들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첫째 소원은 말씀 중심의 삶을 살 때 이룰 수 있습니다. 아굴의 둘째 간구는 조금 더 깊은 의미로 나아갑니다.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시고 오직 내게 정하신 분량의 양식을 주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이런 간구의 핵심은 ‘만족’이 ‘나의 만족한 상태’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기준’으로부터 비롯됨을 깨닫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만족하여 하나님을 모른다 하거나 만족하지 못하게 되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주사는 어느 정도의 ‘분량’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원리에서 벗어나서 만족과 불만족이 핵심이 된다면, 그 어느 경우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삶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아굴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갈 때 참 만족이 있음을 아름다운 문예적 표현을 통해서 힘 있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혜로 인한 만족(10-16)

사람은 왜 잘 안 변합니까? 타고 난 성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성장 과정에서의 각인된 경험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경험을 토대로 오늘을 바라보고, 또한 내일을 예상합니다. 결국 ‘과거’로 인해 오늘의 나는 잘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삶은 정반대입니다. ’과거’가 아닌, 반드시 일어나리라 확신하는 ‘미래’를 토대로 오늘을 보는 것입니다. 때문에 믿음으로 사는 삶은 분명 변화를 동반할 수 밖에 없습니다.

 

10너는 종을 그의 상전에게 비방하지 말라 그가 너를 저주하겠고 너는 죄책을 당할까 두려우니라 11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12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도 자기의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13눈이 심히 높으며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 14앞니는 장검 같고 어금니는 군도 같아서 가난한 자를 땅에서 삼키며 궁핍한 자를 사람 중에서 삼키는 무리가 있느니라 15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16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10-16)

 

겸손을 배우면 교만이 보이고, 자족을 배우면 탐욕이 보입니다. 남을 비방하면 결국 그 비방이 자신에게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짐승에 비유하는 겸손한 이가 있는가 하면(2), 눈꺼풀이 내려올 줄 모르는 교만한 이가 있습니다.

 

(1) 상전과 종(10)

 

10절은 상전과 종의 관계에 대해서 다룹니다. 종을 그 상전 앞에서 비방하면 종의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2-9절에서 신앙적인 원리를 다루었다면, 10절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다루기 시작합니다. 특별히 10절은 주변 문맥과 잘 연결되지 않는 주제를 홀로 다루고 있는 한 절로 구성된 개별잠언입니다.

 

(2) 지혜 없는 무리의 실례(11-14)

 

11-14절은 지혜 없이 행하는 네 종류의 무리에 대해서 서술합니다.

11절은 부모를 저주하며 축복하지 않는 무리를 언급합니다. 마땅히 공경을 표해야 할 권위의 대상을 인정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공동체의 원리를 해치는 무리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잠언 전체의 맥락에서, 특별히 잠언 1~9장에서 잠언의 독자들에게 가르침을 베푼 주인공인데, 그 주인공을 무시한다는 것은 지혜의 가르침을 저버린다는 의미가 됩니다.

12절은 스스로 깨끗하게 여기지만 사실은 씻지 않아서 매우 더러운 상태에 있는 무리입니다. 잠언의 거시적인 맥락에서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미련함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13절은 눈이 높아진 교만한 무리를 언급합니다. 잠언의 거시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거만한 자’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교훈을 받지 않으려 하며 지혜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자들입니다.

14절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핍박하는 지도자의 무리입니다. 잠언 10-29장에서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악인들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들이 이미 주어진 바 있습니다. 11-14절은 잠언 1-9장에 나온 중요한 가르침들을 위반하고 거절하는 무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자들이 되지 않도록, 지혜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 되도록,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3) 만족을 모르는 경우들(15-16)

 

15-16절은 만족함을 모르는 여러 존재들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15절 상반절에는 만족함을 알지 못해 계속 달라고 외치는 거머리의 두 딸들이 등장합니다. 15절 하반절부터 16절까지에서는 족함을 알지 못하는 서너 가지가 등장합니다. 사실상 네 가지를 말하는데, 첫 두 가지가 서로 연결되고 마지막 두 가지가 서로 연결됩니다.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는 죽음과 생명의 이미지를 표현합니다. 스올은 죽음의 장소이고, 아이 배지 못하는 태는 생명이 없는 곳입니다. 물로 만족하지 못하는 땅과 만족을 모르는 불은 서로가 서로를 상쇄하는 관계입니다. 15-16절의 죽음과 생명 없음 그리고 자연물은 참된 만족을 찾지 못함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참된 만족은 피조물로부터 나오지 않으며, 7-9절이 이미 알려준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원리로 붙잡을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자녀(17)

아무리 악이 편만해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지혜자들이 젊은이들에게 엄격한 도덕률을 제시하고 경험하게 하는 목적은 그들이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난 현실을 볼 때 마음에 불편함과 거부감이 생기게 끔하려는 것입니다.

 

17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17)

 

17절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순종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잠언 전체의 거시적인 맥락에서 보면,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가르침과 연결됩니다. 지혜를 소유하지 못한 자는 패망의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삶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는 깨지고 이 시대의 불의와 인생의 무상함은 더욱 분명해지곤 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당연시 여기진 말아야 합니다. 죄에 젖어 죄를 생산하며 살기보다 죄가 가져다준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세상의 혼돈을 단번에 바로잡지 않고 그냥 두시는 여백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지혜와 믿음으로 절망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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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9-01)

 

 


재물을 사용하는 지혜

잠언 19장 1-14절


 

성경은 '부의 위험성을 지적하지만 부 자체를 나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결핍이나 빈곤 등을 해결해야할 일로 말하며 풍성함을 복이라고 말해줍니다. 심지어 생명력이 고갈되어 온전하지 못한 상태를 죽음에 이미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말할 정도입니다. 따라서 재물에 대한 공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 가치를 긍정할뿐 아니라 돈이 갖고 있는 막강한 파괴력도 잘 인지하여 우리 시대에 돈이 갖는 전능성과 거룩성을 과감하게폭로하고 해체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자들의 몫입니다.

 

 

  • 본문의 중심내용은 재물입니다. 잠언이 가르치는 지혜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1-9절을 통해 집중적으로 조명합니다. 재물은 중요하나, 그 재물을 사용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현실의 재물 문제를 헤쳐나가야 합니다. 10-14절은 공동체 안에서 분노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여러 가지 경우를 들어 설명합니다.

 

재물에 대한 가르침 1(1-5)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것이 더 큰 미덕입니다. 불의한 재물을 모으려고 혀를 잘못 사용하거나 재물에 대한 소원만 있지 참된 지식이 없이 서두르기만 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기 뜻대로 돈이 벌리지 않으면 사람도 하나님도 원망합니다.

 

1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2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 3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4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5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하는 자도 피하지 못하리라(1-5)

 

어리석은 마음은 재물을 따라 움직이고, 재판에서도 침과 구너력 앞에서 진실을 덮고 거짓을 말하게 합니다. 잘못을 용서하고, 과오를 인정하며,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지혜를 얻는 길입니다.

 

(1) 재물에 대한 가르침(1-4)

 

1절은 재물에 대한 주제를 비교잠언(‘~보다 ~이 낫다’는 형태로 이루어진 잠언)의 형식으로 설명합니다.

가난해도 성실한 것이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가 어떤 자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가난해도 성실한 자와 비교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패역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는 자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불의의 재물을 누리는 것보다 정직한 가난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1절은 이어서 9절까지 이어지는 재물에 대한 논의를 열어주는 서론입니다.

잠언 19:1-9은 불의의 재물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2절은 지식이 없는 욕심은 선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지식은 물론 지혜의 유사어휘입니다. 즉, 지혜롭지 못하게 욕심을 내면 잘못된 결과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3절은 사람이 자기 미련함 때문에 실수하고서는 하나님을 원망한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2-3절이 무엇을 가르치는 것입니까? 바로 1절에서 나온 패역하고 미련한 자의 결국을 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불의의 재물을 모으려고 할 때, 잠시는 잘될지 모르지만 결국은 잘못된 길로 가서 악한 결과를 맞게 될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4절은 재물이 많으면 친구가 많고 재물이 적으면 친구가 없어진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진술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현실을 말할,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2) 거짓 증거에 대한 경고(5)

 

1-4절에 이어서 5절은 갑작스럽게 거짓 증거 및 거짓말에 대해서 경고합니다. 거짓 증거는 물론 재물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거짓 증거와 거짓말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불의의 행동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거시적인 관점에서 재물과 어느 정도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즉 5절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다가 잘못을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4절의 가르침과 연결될 수 있겠고, 특히 4절에서 재물이 많아야 친구가 많다는 현실 인식을 신앙적 관점으로 재조명하여, 재물을 위해 불의한 행동을 하지 말 것을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재물에 대한 가르침 2(6-9)

지혜자는 재물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따라서 그것으로 자기 배를 불리지 않고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며 돈을 쌓는 것 자체를 기쁨으로 삼지 않습니다. 타인의 필요를 채우는 데 쓰기 때문에 지혜로운 부자 곁에는 친구가 많고, 그에게 너그러움과 은혜를 구하는 자들이 더 많이 생깁니다.

 

6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7가난한 자는 그의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 하지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지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 8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 9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뱉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6-9)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미워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증인과 거짓말을 퍼뜨리는 자를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눈앞에 놓인 작은 이익 때문에 거짓으로 형제와 이웃을 어려움에 빠지게 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1) 재물에 대한 가르침(6-8)

 

6절부터는 다시금 재물에 대한 문제가 등장합니다. 6절에서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은 선물에 대한 가르침인데, 선물을 주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친구가 많다는 현실을 제시합니다. 7절은 “가난한 자는 그의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하지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지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라고 역시 유사한 메시지를 전하는데, 재물이 없는 자는 형제에게 미움을 받게 될 뿐 아니라 친구까지 없어진다는 점을 말합니다.

6-7절은 동일하게 재물이 꼭 필요한 우리 삶의 현장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물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해도 괜찮습니까? 8절에서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은 지혜와 명철의 중요성을 언급하는데, 지혜를 얻은 자야말로 자기 영혼을 사랑하는 자이고, 명철을 지키는 자가 바로 선을 발견한 자임을 강조합니다. 잠언 전체에서 지혜와 명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적 관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8절은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여호와 경외를 가장 기본적인 삶의 해석법으로 삼아야 함을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8절은 6-7절에서 말한 재물의 중요성에 대해서 신앙적인 관점에서 제한을 걸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재물은 꼭 필요하지만, 재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신앙적으로 옳고 합당한 선 안에서 재물은 의미가 있습니다.

 

(2) 거짓 증거에 대한 경고(9)

 

9절은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뱉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라는 사실상 5절과 거의 동일합니다. 거짓 증인이 되는 자와 거짓말을 하는 자는 결국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9절은 6-8절의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이는 5절이 1-4절의 연장선상에 있음과 같습니다. 5절에서는 거짓말하는 자는 피하지 못한다고 조금 소극적으로 표현했으나, 9절은 거짓말하는 자는 망할 것이라고 더 적극적으로 말합니다. 재물이 중요하나, 불의한 재물의 유혹에 넘어가면 망하게 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분노에 대한 가르침(10-14)

분노는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며 타인을 모두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간주할 때 나옵니다. 거룩한 분노도 있겠지만, 이기적인 분노는 오만함에서 나옵니다.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어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심지어 하나님마저도 자기 기준에 따라 움직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 11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12왕의 노함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의 이슬 같으니라 13미련한 아들은 그의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14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10-14)

 

10-14절은 ‘분노’라는 새로운 주제를 다룹니다. 다만 10절은 분노를 직접 다루지는 않고, 종이 방백을 다스리는 것이 합당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여기서 종이 방백을 다스리는 것과 비교되는 사항이 있는데, 바로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입니다.

‘사치’란 1-9절에 나온 재물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즉 10절에서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라는 1-9절의 논의에서 11-14절의 분노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는 디딤돌 역할을 합니다. 11절부터는 분노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다룹니다. 11절에서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라는 분노를 잘 조절하는 것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허물이 있을 때 넘어가 주는 것이 결국 유익이 된다고도 말합니다. 12절에서 “왕의 노힘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의 이슬 같으니라”라는 왕의 분노에 대해서 말하는데, 왕이 화를 내면 사자의 부르짖음과 같아서 두려운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왕의 진노를 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12절은 정당한 분노 혹은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분노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만나게 되면, 가능한 한 그런 분노를 피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13절에서 “미련한 아들은 그의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라는 다투는 아내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내의 다툼이란 넓게 보았을 때 분노의 주제와 연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투기를 잘하는 아내가 그 남편에게 있어서 쏟아지는 빗방울 같음은 마치 미련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재앙인 것과 같습니다. 아내는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14절에서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라는 슬기로운 아내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다고 말합니다. 13절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다툼을 삼가는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내들은 분노를 잘 조절할 수 있어야 하며, 남편들은 아내가 분노를 잘 조절하여 신앙적인 덕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러한 아내의 분노에 대한 적용점은 물론 남편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13-14절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분노를 잘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지혜로운 남편, 아내, 부모, 자녀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의 분노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화가 나는 상황은 있을 수 있으나, 그 화를 잘 조절하여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사회의 정의를 세우기 위한 왕의 정당한 분노는 풀 위의 이슬같이 부당한 권력에 의해 짓눌린 생명력을 복원하고 자유의 공기를 마시게 해줍니다. 가정에서도 분노하며 다투는 아내 또는 남편이 있는 집이나 부모를 업신여기는 자녀가 있는 집이 행복할 리 없습니다. 분노를 잘 조절할 줄 아는 아내와 남편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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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31-02)


현숙한 아내에 대한 지혜

잠언 31장 10-31절


인생에서 배우자를 만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은 없을 겁니다. 배우자를 만난 후의 삶은 그 이전의 삶과는 아주 달라집니다. 그 한 존재가 배우자에게 그리고 가족 전체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좋은 아내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아내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르무엘의 어머니는 좋은 아내에 빗대어 ‘지혜’를 소유하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 축복을 가져오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 단락은 잠언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현숙한 여인을 칭송한 노래입니다. 현숙한 여인은 잠언이 언급한 모든 삶의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성취하는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지혜의 길을 상징합니다. 지혜를 얻은 자는 현숙한 여인을 아내로 얻은 자이며, 삶의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현숙한 여인의 가치(10)

현숙한 여인은 훌륭한 신붓감을 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또한, 지혜의 현현입니다. 모든 사람이 갖추기를 기대해야 할 지혜를 의인화한 것입니다. 그의 가치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없고, 그의 도덕성과 능력을 모든 이들을 이롭게 합니다. 그의 이타적인 성품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닮았습니다. 동시에 그는 자기 자신을 향해서도 소홀함이 없습니다.

10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10)

10절은 현숙한 여인 즉 능력을 지닌 여인에 대한 칭찬의 노래를 시작하는 첫 구절입니다.

앞 1-9절에 이어서 여인이 주인공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과연 누구일까?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3절에서 왕을 멸망시키는 부류의 여인을 멀리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했습니다.

만약 10-31절 역시 르무엘 왕의 어머니의 교훈이라고 볼 수 있다면, 왕의 어머니는 1-9절에서는 피해야 할 여인을 말한 후에, 10-31절에서는 선택해야 할 여인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여인의 가치는 매우 높아서, 진주보다도 더 귀합니다. 아무나 얻을 수 있는 여인이 아니기에 참으로 귀하게 여겨야 하는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과연 누구입니까? 우리는 본문을 읽어나가면서 그 대답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현숙한 여인의 삶(11-12)

현숙한 여인은 보석보다 귀합니다. 진주가 여자의 몸을 빛나게 하듯이, 현숙한 여인은 그 남편을 빛나게 합니다. 현숙한 룻을 얻은 덕분에 보아스는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올랐습니다(룻 4:21-22). 당신은 스스로 빛나고 인정받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자신으로 인해 자기 배우자와 동료들이 빛나길 원하십니까?

11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12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10-12)

이제 현숙한 여인이 자기 남편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먼저 그녀는 남편에게 신뢰를 받습니다. 그녀로 말미암아 가정의 필요가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산업’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샬랄’인데, 고대사회의 전리품을 뜻합니다. 고대사회의 여성이 전리품을 집에 가져온다는 것은 상당히 어색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현숙한 여인이 사실상 남성이 해야 할 일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12절은 현숙한 여인이 살아 있는 동안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최고의 배우자입니다.

 

현숙한 여인의 능력(13-19)

지혜는 종교적인 영역에서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영역에서도 그 효력을 발휘합니다. 겉으로는 신앙이 좋은 교회의 직분자이지만 가정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을 볼 때 당황스럽습니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 모두 인정과 존경을 받는다면 그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13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14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 오며 15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16밭을 살펴 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 17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 18자기의 장사가 잘 되는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19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13-19)

본문에서는 현숙한 여인이 가정을 위해 수행하는 일들의 목록을 제공합니다. 이 목록에서 우리가 다시금 발견하게 되는 특징은 고대사회에서 남성들이 수행했을 만한 일들이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는 점입니다. 먼저 여성이 수행했을 일들을 살펴보시겠습니다.

13절에서 양털과 삼을 구하여 기쁘게 손으로 일하는 것인데, 이는 실을 짜는 것을 말합니다. 15절에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음식을 나눠주고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18절에서 밤에 등불을 끄지 않고 오히려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아 이전에 만든 실을 사용하여 베를 짭니다. 21절에서는 가족들을 위해서 옷을 미리미리 지어 입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제 남성들이 수행했을 일을 현숙한 여인이 하는 묘사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4절에서는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고대의 무역은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여인의 묘사로는 그리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16절에서 밭을 평가하고 구입하고 포도원을 개간하는 모습 역시 남편이 수행하는 일로 생각하는 편이 더 잘 어울립니다. 즉, 이 여인은 남성이 수행하는 일과 여성이 수행하는 일을 모두 해내는 존재입니다. 과연 이 여인은 누구입니까?

 

현숙한 여인의 헌신(20-29)

누구든지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남자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찾습니다. 하지만 참된 아름다움은 외모에 있지 않습니다. 외적인 조건을 만족시킬 때 관계까지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참된 아름다움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20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21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자기 집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 22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23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24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맡기며 25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26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27자기의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28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29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20-29)

현숙한 여인은 남을 돌아봅니다. 자신만 위해 일하지 않고, 가난한 자에게 손을 내밉니다. 자기를 이하여 옷을 입지만, 집안의 종들을 비롯한 모든 이를 위해 따뜻한 옷을 마련합니다. 추운 겨울과 미래를 성실히 준비한 후 미소 짓는 이 여인은 과연 능력과 존귀로 옷 입은 사람입니다.

(1) 현숙한 여인의 성품(20-22)

20-22절에서는 현숙한 여인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묘사들이 발견됩니다. 20절에서 현숙한 여인은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구제합니다. 곤고한 자를 돌아보는 것은 왕의 직무로 31:8-9에서 설명된 바 있는데, 바로 그런 일을 현숙한 여인이 행하고 있습니다. 21절에서 여인은 겨울을 대비하는 옷을 미리 만드는 치밀한 준비성을 보입니다. 아굴의 잠언 24-28절에서 언급된 개미, 사반, 메뚜기, 도마뱀처럼 이 여인은 매우 지혜로운 여인임에 틀림없습니다. 22절에서 이 현숙한 여인은 자기를 위하여 이불을 짓습니다. 자신을 돌아볼 줄도 아는 현명한 여인입니다.

(2) 현숙한 여인의 남편(23)

23절에 남편이 하는 일이 묘사되는데, 이 남편은 특별히 가정을 위해 하는 일이 없고 오직 성문에서 장로들과 함께 앉았다가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일을 합니다. 아내가 모든 일을 다 감당하고 있는 것이 되므로, 이 여인이 누구인지 우리의 궁금증은 더욱 증폭됩니다.

(3) 현숙한 여인의 지혜로움(24-27)

24-27절에서 현숙한 여인의 지혜로움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24절에서 그녀는 그동안 만든 베로 옷을 지어 팝니다. 25절에서는 미래를 대비한 자신감을 나타내고, 26절에서는 지혜를 베풀어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27절에서 이 여인은 항상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않은 온전한 자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4) 현숙한 여인의 가족(28-29)

28-29절에 이르면 자녀들과 남편이 일어나 그녀를 칭찬합니다. 이 세상에 능력 있는 여인이 많지만, 그중에서 이 여인이 가장 훌륭하다는 진심 어린 감사와 칭찬을 전합니다. 이 여인은 참으로 완벽하고 존귀한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누구입니까?

 

결론(30-31)

지혜자의 부모는 지혜로운 아들로 인해 칭송을 받고 즐거움을 누리듯이 현숙한 여인으로 인해 그의 남편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습니다. 이에 자식들이 일어나 감사하며 남편은 아내 칭찬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기혜는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이 ‘지혜자’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30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31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30-31)

우리는 30절에서 이 현숙한 여인의 정체성을 깨닫게 됩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인’입니다. 잠언 전체의 맥락에서, 특별히 잠언의 서론으로 여겨지는 1-9장에서는 “여호와 경외가 지혜의 근본이다”라고 가르칩니다(잠 1:7; 9:10).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경외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제 잠언의 결론 부분인 31장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인 이 여인은 30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인’으로 묘사됩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누구입니까?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관점을 지닌 여인, 지혜인 것입니다. 31:10-31의 남편은 지혜를 자기 인생의 궁극적 배우자로 선택한 사람을 뜻합니다. 지혜가 그의 삶의 모든 영역들을 축복한 것입니다. 1-9장에서 지혜 여인을 선택하라는 권고를 받은 잠언의 독자는 10-29장에서 삶의 많은 이슈들에 대한 가르침을 배웠고 그 가르침을 실천해 왔습니다.

이제 31장의 결론에 이르렀을 때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데,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특징을 지닌 지혜가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이끌어온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를 선택했더니 가정의 문제, 재정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 등 모든 삶의 이슈들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잠언 31장에서 잠언서의 결론을 읽게 됩니다. 지혜를 선택한 자는 참으로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멋진 그림으로 만나게 됩니다. 우리도 이 남편처럼 지혜를 선택한다면, 그리고 10-29장에서 설명되는 삶의 문제들을 만날 때마다 그 지혜를 붙들고 여호와를 경외하려고 노력한다면, 31:10-31에 묘사된 은총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잠언의 여정을 마치게 되지만, 동시에 잠언을 배운 사람으로서 새로운 삶의 단계로 더 깊이 나아가야 하는 도전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지혜를 선택하여 올바른 길로 걸어가는 은총의 삶을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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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31-01)


르무엘 왕을 향한 어머니의 지혜

잠언 31장 1-9절


왕은 절대권력자입니다. 자신이 가진 힘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왕이 자기 힘을 마음대로 사용했다고 그를 막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왕은 그런 길을 걷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왕이 걸어야 할 마땅한 길은 어떠한 길입니까?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서월대로 얻은 아들에게 왕이 걸어야 할 올바른 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 단락은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가르친 교훈으로, 뒤이어 등장하는 10-31절의 현숙한 여인에 대한 노래로 연결됩니다. 르무엘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왕을 멸망케 하는 부류의 여인과 술을 멀리할 것을 권고합니다. 그러한 여자와 술은 왕이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공평을 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왕의 직무는 백성을 위하여 공평을 행하는 것입니다.

 

표제(1)

아무리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군가가 자신에게 조언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 왕은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선한 일을 가르치고 그것을 행할 수 있도록 하며 악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그 길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한결같은 소원입니다. 왕의 어머니는 자녀인 왕에게 왕으로서 바른 태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르무엘 왕이 말씀한 바 곧 그의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잠언이라(1)

먼저 “르무엘 왕이 말씀한 바 곧 그의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잠언”이라는 표제가 등장합니다.

잠언 31:1-9의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1-9절이 바로 뒤 본문인 10-31절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라는 문제입니다. 1-9절을 10-30절과 별개로 보는 견해와 1-9절과 10-31절을 모두 르무엘 왕 어머니의 잠언으로 보아 1절을 31장 전체의 표제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우리는 1-9절과 10-31절이 서로 연결된다는 견해를 취하여 31장을 이해해보려고 합니다.

사실은 잠언 전체의 흐름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합니다. 잠언 1-9장에서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발견됩니다(물론 잠언 6:20 등과 같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이 언급되는 곳도 있지만, 대개는 아버지의 잠언이다). 그런데 31장은 어머니의 가르침입니다.

1-9장에서 잠언의 독자는 결혼하지 않은 청년으로 불리며 지혜와 결혼할 것을 권고받는데, 3장에서는 이미 결혼한 중년 남성으로 묘사됩니다. 1-9장에서는 독자가 솔로몬의 아들로서 왕권을 물려받는 왕족으로 묘사되는데, 31장에서는 출신을 알 수 없는 르무엘이라는 존재에게 가르침이 주어집니다. ‘르무엘’은 누구인지에 대한 의견은 다양합니다. 그가 누구인지 알려면, 잠언 첫 시작을 살펴야 합니다.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1:1)라고 하였습니다. 잠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솔로몬 왕의 잠언입니다. 잠언은 왕과 같은 특정한 지도자를 포함하여 언약공동체의 작은 부분인 가정에서 지혜의 삶을 살아가는 자를 위한 책이라는 사실을 잠언의 결론부에서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왕으로서 주의해야 할 점(2-9)

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 자기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유혹에 넘어가면 왕 자신과 나라는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이 정갈하게 마음을 지켜서 살펴야 하는 것은 백성과 나라의 안위입니다. 잠언의 피날레를 장식하면서, 왕의 어머니는 간절한 마음으로 아들인 왕에게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세를 조언하고 있습니다.

2내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내 태에서 난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서원대로 얻은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3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하지 말지어다 4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고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들에게 마땅하지 않도다 5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곤고한 자들의 송사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6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7그는 마시고 자기의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자기의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8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9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2-9)

본문은 르무엘 왕을 향한 어머니의 지혜로운 훈계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하여 얻은 아들이 바르고 정의로운 왕이 되기를 원하는 어머니는 왕권을 위협하는 여자와 술 취함에 대해 경고하면서 힘없는 자들의 편에 서는 통치자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1) 멸망케 하는 여자를 주의(2-3)

2절에서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내 아들아 무엇이냐?”라는 불완전한 문장을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 아들에게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데, 그 질문을 일부러 표현하지 않은 채 아들을 세 번이나 부르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하고 싶은 말은 3절에 등장합니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모든 여자를 멀리하라는 일반적인 권고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3하반절에 어떤 여자를 멀리해야 하는 지가 구체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하반절에서 어머니는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함으로써, 멀리해야 하는 여인이 어떤 종류의 여인인지 알려줍니다. 바로 왕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여자를 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여인은 어떤 여인입니까? 우리는 그 대답을 듣기 전에 포도주와 독주에 대한 가르침을 먼저 들어야 합니다. 그 후에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2) 포도주와 독주를 주의(4-7)

4절에서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왕에게는 아니다!’라는 단호한 어법으로 원문을 시작합니다. 왕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왕에게 마땅하지 않은 것은 바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는 것입니다. 알코올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면 안 된다는 권고입니다.

이런 주류를 마시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5절에 등장합니다. 술을 마시다가는 나라의 법규를 잊어버려서 곤고한 자들에 대한 재판을 잘못 처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곤고한 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곤고한 자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려서 악인들이 이득을 보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5절에서 독주와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이 있는 자에게 주어 그것을 마시고 고통을 잊게 하라고 말합니다. 포도주와 독주의 기능은 잊게 만드는 것입니다. 르무엘이 마시게 되면 나라의 법도를 잊게 될 것이지만(5), 가난한 자에게 주면 자신의 가난함을 잊게 될 것입니다(7).

7절은 가난한 자로 하여금 가난을 잊게 만들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 술을 가난한 자에게 주면 그가 가난을 잊을 정도로 포도주와 독주가 강한 성분을 지녔다는 의미입니다. 가난한 자가 마시고 가난을 잊을 정도이니, 왕이 마시면 법도를 잊고 불공정한 통치를 하게 될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3-4절과 5-7절을 연결해서 보아야 합니다.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르무엘에게 삼가 주의하라고 경고한 대상은 왕을 멸망시키는 여인과 포도주/독주였습니다. 그 이유는 왕의 공의로운 통치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여인과 포도주/독주를 공통된 이미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포도주와 같은 여인 혹은 여인과 같은 포도주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왕의 공평한 통치를 방해하는 여러 가지 유혹을 상징하는 비유로도 이해됩니다. 왕의 통치를 어지럽히는 그 어떠한 것도 왕은 멀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지혜의 삶입니다.

(3) 공의를 성취하는 왕(8-9)

8절에 이르게 되면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르무엘에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교훈을 전달합니다. 말 못하는 자와 사라져가는 자를 위해서 재판에서 입을 열어 말하라는 것입니다. 왕은 재판에서 최종 결정권을 지닌 권위자이므로, 그가 입을 열어 말한다는 것은 가난한 자를 위한 결정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르무엘 왕이 여인과 독주를 피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의 통치를 통해 가난한 자를 변호하기 위함입니다.

9절에서 이러한 왕의 직무는 다시 한번 강조됩니다.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는 것이 왕이 해야 할 일입니다. 르무엘 왕에게 주는 어머니의 권고는 8-9절에서 갑작스럽게 종료됩니다. 이는 가난한 자를 위해 신원하는 것이 왕의 직무의 핵심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공동체의 지도자는 그 공동체 내에서 가장 약하고 힘없는 자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이런 가르침은 28-29장의 공동체 지도자에 대한 가르침에서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르무엘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지금까지 배워온 1-29장의 잠언들을 실제 삶의 현장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권고를 듣게 됩니다. 지혜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삶의 구체적인 영역들에서 그 가르침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 예가 멸망케 하는 여인을 피하는 것과 포도주와 독주를 피하는 것입니다. 실천의 발걸음이 이런 두 가지 예에 제한되지 말아야 함은 물론입니다. 지혜의 길을 걷기 위해, 여호와 경외의 길로 가기 위해,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가난한 자를 돌보기 위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는 삶의 세세한 부분들에서까지 올바른 것과 잘못된 것을 분별하며 진실한 열매를 거두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지도자의 덕목은 화합입니다. 화합을 위해서는 소외된 자를 본류에 끌어 올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공동체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주위에 소외된 지체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도와주고, 함께 하여 공동체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지도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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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30-02)


세상 만물을 통해 얻는 지혜

잠언 30장 18-32절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창조 세계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세상살이에 대한 교훈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피조 세계를 보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사람보다 지혜로운 미물들에게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하며 겸손히 살아야 합니다.

 

본 단락은 아굴의 잠언인 30장의 후반부로서 ‘~한 것 서너 가지’라는 공통된 형식을 사용합니다. 깨닫지 못하는 서너 가지(18-20), 세상이 견딜 수 없는 서너 가지(21-23), 지혜로운 것 네 가지(24-28), 잘 걷는 것 서너 가지(29-31)를 연이어 묘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참된 권위 앞에 겸손해야 하며, 교만한 것이 곧 미련한 것임을 강조합니다(32-33).

 

깨닫지 못하는 서너 가지(18-20)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취 없어져 버린 것이 있습니다. 사라져버리면 그 심각성을 잘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독수리의 자취, 뱀의 자취, 배의 자취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음녀의 자취입니다. 음행을 저지르고도 감쪽같이 속여서 죄를 적발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혜자는 음녀의 위험성을 깨닫고 멀리해야 합니다.

18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19곧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 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20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의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18-20)

18-20절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서너 가지를 언급합니다. 이 구절에서 ‘깨닫다’라는 표현은 빈 동사인데, 잠언 전체 맥락에서 지혜를 얻게 된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즉, 18-20절의 서너 가지는 잠언이 알려주는 지혜와 합치되지 못하는 것들일 수 있습니다.

서너 가지 중에서 첫째부터 셋째의 경우는 모두 자연물입니다. 독수리의 자취, 뱀의 자취, 배의 자취입니다. 세 가지 모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취가 사라져버리는 경우입니다. 핵심이 되는 넷째 자취는 남녀가 함께한 자취인데, 특별히 음녀의 자취가 그렇다고 20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음녀에게 유혹을 당한 자취는 금방 사라진다는 것인데, 사라지는 이유는 음녀가 거짓말을 일삼기 때문입니다. 먹고 나서 입을 씻어 흔적을 지우는 것처럼, 악을 행해놓고도 금방 악을 행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존재가 바로 음녀입니다.

18-20절은 음녀가 거짓말에 매우 능숙하기 때문에 음녀의 자취를 발견하기 어렵고, 따라서 그녀가 음녀인지 알기도 어려우며, 이런 음녀의 유혹을 물리치기도 어렵다는 것을 말합니다. 참된 지혜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음녀를 멀리해야 합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서너 가지(21-23)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다가 있던 것도 놓치게 됩니다. 무엇을 이루거나 가지고 싶다고 해도 먼저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를 얻기 위해 고집부리다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욕심을 부리는 이유 주 하나는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입니다.

21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이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22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른 것과 23미움 받는 여자가 시집 간 것과 여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21-23)

21-23절은 세상을 진동시키기 때문에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서너 가지를 말합니다. 자신에게 합당한 자리가 아닌 다른 이의 자리를 차지했기에,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들입니다.

첫째부터 셋째는 종이 임금이 된 것,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른 것. 미움받는 여자가 시집을 간 것입니다. 모두 자신이 합당하지 않은 행복을 얻은 경우들입니다. 이 중 둘째로 음식으로 배부른 것에 대한 언급은 30장의 큰 주제 중 하나인 ‘만족’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21-23절은 자신에게 합당하지 않은 자리에 대해서 잘못된 욕심을 내는 것, 즉 ‘탐욕’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넷째는 여종이 여주인의 자리를 빼앗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종이 탐욕을 내어 여주인을 내쫓은 사건을 말합니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은 18-20절에서 넷째가 음녀였는데, 21-23절의 넷째 역시 잘못을 행한 여인이라는 점입니다. 잠언 5-7장에서 음녀는 아버지에게 교훈을 받은 아들을 유혹하여 정한 배필을 버리고 자신을 따르도록 권합니다. 여종이 여주인의 자리를 빼앗은 것은 지혜를 버리고 미련함을 택하도록 하는 경우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것 네 가지(24-28)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나 허락하신 자리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리고 그 빈 곳에 욕심과 불만을 채우면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만이나 죄악으로 이끌리는 마음이 생기면 신속히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24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 넷이 있나니 25곧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준비하는 개미와 26약한 종류로되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과 27임금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와 28손에 잡힐 만하여도 왕궁에 있는 도마뱀이니라(24-28)

18-20절의 서너 가지와 21-23절의 서너 가지가 부정적인 내용을 다루었다면, 24-28절의 네 가지와 29-31절의 서너 가지는 긍정적인 내용을 다룹니다. 24-28절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것들을 언급합니다. 이 네 가지는 모두 자신의 약점을 극복한 경우들입니다. 힘이 없지만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하는 개미, 약한 종류지만 바위에 집을 지어 스스로를 보호하는 사반, 임금이 없지만, 함께 힘을 합해서 일하는 메뚜기, 그리고 손에 잡힐 만큼 작은 크기지만 가장 넓은 왕궁에서 살아가는 도마뱀이 바로 그런 경우들입니다. 21-23절에서 언급된 경우들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부당한 수단을 동원했지만, 24-28절에 나타난 경우들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정당한 수단을 동원하였습니다. 참 지혜로운 경우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가장 잘 걷는 것 서너 가지(29-31)

종이 임금이 되고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르고 미움을 받는 자가 시집을 가는 것, 그리고 여종이 여주인의 자리를 빼앗는 것은 모두 질서를 깨뜨리고 전복하는 경우입니다. 자신에게 합당하지 않은 자리를 욕심내서 차지하는 탐욕입니다. 탐욕은 또 다른 탐욕을 부릅니다. 그렇게 차지한 자리는 타인에 의해 찬탈의 대상이 됩니다. 만족하지 못하면 죄를 범하고 추악해집니다.

29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30곧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하는 사자와 31사냥개와 숫염소와 및 당할 수 없는 왕이니라(29-31)

29-31절에서는 가장 잘 걷는 서너 가지를 언급합니다.

‘잘 걷는다’는 것은 발걸음을 좋게 만들었다는 의미로서, 지혜로운 발걸음을 취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장 강해서 그 어떤 짐승 앞에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사자, 사냥개, 숫염소,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아무도 당할 수 없는 왕입니다. 사자, 사냥개, 숫염소는 모두 강한 힘을 가져서 자신의 걸음을 양보할 필요가 없는 동물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왕도 그 누구 앞에서도 자신의 걸음을 양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왕의 걸음이 이 구절에서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참된 권위를 뜻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잠언 전체 맥락에서 길 혹은 걸음은 지혜의 길을 뜻합니다(참조. 잠 4:10-27). 길을 좋게 한 왕이란 지혜를 구하여 진리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 얻게 된 진실한 권위를 뜻합니다. 지혜의 길을 얻었기에 자신의 삶에서 당당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공동체 가운데로 이끌 수 있는 권위를 얻은 것입니다. 지혜를 얻은 최종적인 삶의 결과를 보여주는 묘사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미련함을 버리고 겸손하라(32-33)

미련한 일을 하지 말라는 권면으로 아굴은 잠언을 마무리합니다.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손으로 자기 입을 가려 막으라고 합니다. 이는 타인의 분노를 사고 다툼으로 이어지고 결국 공동체의 질서를 깨뜨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잘못할 수 있지만 더는 확산되지 않도록 절제하고 자제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32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혹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 33대저 젖을 저으면 엉긴 젖이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 같이 노를 격동하면 다툼이 남이니라(32-33)

아굴의 잠언 마지막 구절은 미련한 일을 하지 말라는 권고입니다. 만약 미련해서 스스로 높은 척하였다면 그래서 악한 일을 행했다면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고 입을 막는 것이 좋다고 가르칩니다. 그런 어리석은 말을 통해 다른 이의 분노를 사게 된다면, 결국 다툼이 일어나 공동체의 질서와 안정을 해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젖을 저으면 엉긴 젖이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과 같이, 미련한 일을 저지르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하므로, 미련한 말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스스로 절제하고 통제하라는 것입니다. 32-33절을 요약하면 미련함을 버리라는 권고임을 알 수 있습니다.

 

30장의 해석과 적용

18-20, 21-23절은 음녀를 주의하라는 권고로 해석되고, 24-28, 29-31절은 지혜를 취하여 진실한 권위를 얻으라는 권고로 이해됩니다. 이제 32-33절은 미련함을 버려야 한다고 다시 한번 권합니다. 미련함을 버리고 지혜를 취하라는 권고입니다. 아굴의 잠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올바른 만족을 추구하며, 음녀의 길을 버리고 지혜의 길을 취하라고 가르칩니다. 매우 독특한 문예적 어휘와 형식들을 사용하였으나 그 전반적인 내용은 우리가 앞서 배워온 잠언 1-29장의 내용과 거의 일치합니다. 아굴은 다양한 자연물과 인생사의 경우들을 예로 언급하면서, 우리 인생의 행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30장의 서른세 절을 통해서 요약 정리하여 보여줍니다. 아굴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세계관과 삶의 실천 원리들은 여호와 경외를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굴의 잠언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지혜 없음을 깨닫고 말씀을 중심으로 지혜를 발견하며 살아가는 행보를 보여줍니다. 인생의 여러 가지 경우들에 부딪치면서 때로는 깨닫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때로는 견딜 수 없어 고통하며, 때로는 지혜를 발견하여 즐거워하고, 때로는 진정한 권위를 발견하여 그 앞에서 겸손을 배웁니다. 참 지혜의 길은 추상적인 이론의 길이 아닙니다. 아굴처럼 말씀의 원리를 일상생활을 통해서 실천해가는 하루하루의 행보가 바로 지혜의 길, 명철의 길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여전히 하나님을 벗어나고 싶어 하고 마음대로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백성으로서 그분 안에 거할 때 평안을 누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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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29-02)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

잠언 29장 15-27절


말씀이 부재하던(삿 21:25) 사사시대는 신앙과 윤리, 공동체와 다음 세대의 위기까지 총제적인 난국에 빠졌습니다. 오늘 본문도 토라에 기초한 징계가 없고 지혜가 제대로 계승되지 않을 때 공동체가 얼마나 위태로울 수 있는지를 일깨워줍니다.

 

본문은 공동체의 지도자를 위한 잠언으로, 공동체 구성원들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5-17절에서는 자녀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며, 18-21절은 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고, 22-24절은 교육의 중요한 실례들을 제시하며, 25-27절은 교육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에 있음을 알려줍니다.

 

올바른 자녀 교육의 중요성(15-17)

자녀의 신앙을 방치하면 결국 부모에게 수치가 되어 돌아오고, 자녀가 지혜로우면 부모에게 기쁨이 되어 돌아옵니다. 당장에는 악인들이 득세하여 꼭 의로운 길을 가르칠 필요가 없어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악인이 멸망하게 될 것이니 자식을 징계해서라도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 과정이 어렵겠지만 반드시 즐거움으로 돌려받을 것입니다.

15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16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지나니 의인은 그들의 망함을 보리라 17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15-17)

오늘 본문이 처음으로 강조하는 주제는 자녀 교육입니다.

15절은 자녀에게 채찍과 꾸지람을 내려야만 올바로 교육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채찍과 교육은 물리적인 체벌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바르게 가르치기 위한 훈육 과정을 일반적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반절에서 ‘임의로 행하게 버려둔 자식’이란 부모에게서 떨어져 지내게 된 자라는 표현인데, 자녀 교육이 부모에게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는 잠언의 맥락에서 이해하면 ‘부모의 훈육을 받지 않고 자란 자녀’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15절은 자녀를 훈육하지 않으면 나중에 부모의 수치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6절은 악인이 많아질 때 죄도 많아지지만, 의인들은 결국 악인의 멸망을 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즉, 지금 당장은 악인이 흥왕하고 죄들이 많아지는 것을 볼지 모르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그 악인들은 결국 패망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16절을 15절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자녀들을 양육함에 있어서 근시안적인 태도를 취해서 올바른 훈육을 소홀히 하면 안 되고, 오히려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생의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훈계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17절이 이러한 15-16절의 의미를 요약해줍니다. 자식을 훈육하면 결국 그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특별한 즐거움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공동체 교육의 중요성(18-21)

여기서 묵시는 선지자의 예언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가정이나 공동체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 백성들은 방자히 행하지 않고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미련한 종들이 되게 하느니 차라리 엄하게 교육하는 것이 어리석은 종들로 인한 대가를 치르는 것보다 낫습니다.

18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19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따르지 아니함이니라 20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21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 체하리라(18-21)

18절부터는 자녀 교육을 넘어서서 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교육을 강조합니다.

18절은 묵시 즉 예언이 없으면 백성들의 삶의 모습이 나태해진다고 말합니다. 하반절은 율법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음을 제시합니다. 즉, 공동체가 올바로 운영되려면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예언과 율법이 가르쳐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언과 율법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뜻하는 말입니다. 즉 18절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의 원리를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시합니다.

19-21절은 이러한 공동체 교육이 올바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공동체가 어떤 피해를 입을 수 있는지 구체적인 예들을 보여줍니다. 19절은 종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만약 종을 엄히 가르치지 않고 좋은 말로 달래려고만 한다면, 그 종은 주인이 원하는 것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19절은 교육에 있어서 원칙을 명확하게 세우고 그 원칙을 실행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훈육이 필요한 때에 사랑의 용서를 베푸는 것은 공동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20절은 말이 조급한 사람에 대한 경고입니다. 말이 조급한 사람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말이 조급한 사람이란 말을 적절하게 하지 못하는 자, 즉 말의 논리성과 설득력을 갖지 못한 사람을 말합니다. 19절이 말만으로 가르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면, 20절은 말을 설득력 있게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즉 20절은 19절의 가르침이 잘못된 방향으로 치우지지 않도록 보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올바른 공동체 교육에는 적절한 말로 베푸는 가르침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해야 하는지, 왜 우리가 미련함을 멀리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원리는 무엇인지 지식으로 교육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며, 이런 가르침을 적절하게 베풀지 않으면 공동체 구성원들이 미련함에 빠지게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21절은 종을 올바로 양육하지 못했을 때의 결과를 미리 보여줍니다. 19-20절에서 말한 대로 엄한 훈계 및 적절한 말로 가르치지 않으면, 그 종이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는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결과를 맞게 될 것입니다. “자식인 체하리라”는 번역의 원문의 의미는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21절의 내용은 명확합니다. 공동체 교육을 소홀히 하면 언젠가 그 대가를 반드시 지불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교육의 중요한 실례들(22-24)

말이나 감정도 지혜롭게 표현해야 합니다. 말이 급하면 실수가 많아지고, 급하게 화내면, 죄 짓기가 쉽습니다. 듣기는 속히 하여도 말하기와 성내기는 더딜수록 좋습니다. 말이나 감정을 교만하게 표현한다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22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23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24도둑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저주를 들어도 진술하지 아니하느니라(22-24)

22-24절은 공동체 교육에 있어서의 실례들을 제시합니다.

22절은 노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음을 알려줍니다. 분노를 잘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분노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않으면, 공동체 안에 다툼이 발생하게 되고 범죄가 증가하게 됩니다.

23절은 교만과 겸손에 대해서 말합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겸손하게 사는 성품을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그 교만 때문에 결국 낮아지게 되지만 겸손하면 영광으로 이어지게 됨을 가르칠 때, 공동체는 겸손함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로 인해 서로 존중하고 섬기는 아름다운 공동체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24절은 다른 사람의 죄에 동참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도둑이 훔쳐 온 장물을 나누는 데 동참하면, 나중에 그 일이 탄로 나서 조사를 받게 될 때 도둑 편을 들면서 거짓 진술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잘못된 일이나 악한 계획은 처음부터 멀리하고 가까이하지 않도록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명확한 가르침을 베풀어야 합니다.

 

여호와 경외의 중요성(25-27)

진정한 안정은 여호와께 있습니다.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이 참된 지혜의 길입니다. 세상과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지만, 여호와를 의지하면 높은 망대나 요새에 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역사의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결코 사람을 찾아가 인가넞깅 해결책을 도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의인의 길이 악인의 미움을 사겠지만,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25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26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27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바르게 행하는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25-27)

이제 우리는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수집한 잠언 25-29장의 결론부에 이르렀습니다. 25-27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적 관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25절은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스스로 걸리게 되지만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게 됨을 말합니다. ‘안전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 원어는 ‘높아지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망대나 요새 같은 높은 곳에 거함으로 안전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와는 그에게 피하는 자에게 요새와 망대가 되시는 분입니다.

26절은 이런 여호와 중심성을 더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주권자의 얼굴을 구하는 자가 많으나, 재판의 결과는 여호와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재판이 열리기 전에 주권자를 찾아서 사정을 설명하고 호의를 베풀어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 도음이 될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겠지만, 진정한 재판의 결과를 이끌어 내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경외의 길로 갈 때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습니다.

27절은 의인과 악인을 대조합니다.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바르게 행하는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의인과 악인은 서로를 미워한다는 뜻입니다. 의인과 악인은 각자 걸어가는 길이 달라서 동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공동체를 교육함에 있어서,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함을 가르쳐야 합니다. 다시 말해 여호와 경외의 길을 선택하도록 공동체 구성원들을 최선을 다해서 훈육해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은 공동체의 평안과 안정으로 결실할 것입니다. 이런 훈육에 소홀하면 공동체가 무너지고 지혜의 가치를 잃게 되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니,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이 잠언 말씀을 통해 공동체 교육의 중요성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세상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세상을 이깁니다. 바른 부제의 시대를 임재의 시대로 바꾸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자녀에게 부지런히 이 지혜의 길, 생명의 길, 경외의 길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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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29-01)


지혜로운 통치하는 왕의 지혜

잠언 29장 1-14절


한 신문에 실린 ‘두 대통령 이야기’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닮은 듯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여성 대통령의 과거와 현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흥미로운 제목과 달리 내용은 씁쓸했습니다. 소통과 약자에 대한 지도자의 자질을 다루고 있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스크랩 해놓았던, 그 기사를 다시 꺼내놓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난세의 영웅, 아니 ‘지혜와 자비’를 겸비한 지도자가 더욱 그리운 아침입니다.

 

본문은 28장에 이어서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지 조언을 제공합니다.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여 설명하고(1-2), 지혜로운 재물 사용에 대해 가르치며(3-4), 스스로 올무에 빠지지 말 것을 조언한 후(5-6), 공동체를 이끌 때 기억해야 할 여러 실례들을 알려주고(6-12), 마지막에는 가난한 자를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13-14).

 

의인의 통치와 악인의 통치(1-2)

지혜로운 통치자는 정당한 책망을 귀담아듣지만, 책망을 외면하는 목이 곧은 통치자는 패망을 당하고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통치자는 아첨하는 말과 진실한 말을 잘 구별할 줄 압니다. 악한 통치자는 백성에게 탄식만 안겨주겠지만 의로운 통치자의 등장에는 백성들이 즐거워할 것입니다.

1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2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1-2)

1절은 가르침을 받을 때 잘못을 돌이킬 줄 아는 것이 지혜임을 알려줍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은 충고와 교훈을 받을 때 목이 곧아서 즉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패망이 찾아올 때 그를 도와서 다시금 일어나게 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으로 모두에게 이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르침과 조언에 감사하는 사람으로 공동체에 알려진 사람 주변에는 많은 이들이 모여들게 되어 더 큰 유익을 받게 됩니다. 공동체의 지도자가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중요하게 여겨야 함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2절은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나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한다고 말합니다. 1절과 연결해보면, 의인이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충고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조언을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자가 있을 때 공동체는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지만, 지도자가 자신의 견해만을 고집하는 사람일 때는 공동체 전체가 고통을 당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재물 사용(3-4)

의로운 지도자가 공동체를 튼튼하게 세웁니다. 반면 악하고 교만한 지도자는 공동체를 소란하게 만듭니다. 성적으로 문란하고 불의한 이들은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무너뜨립니다. 또한 경청은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입니다. ‘지도자의 소통 부재’가 공동체의 위기를 초래합니다.

3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와 사귀는 자는 재물을 잃느니라 4왕은 정의로 나라를 견고하게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3-4)

3-4절은 재물에 관한 주제를 다룹니다. 특별히 3절 하반절은 ‘창기와 사귀는 자’를 언급합니다. 창기와 만나는 자는 당연히 재물을 쉽게 허비하게 됩니다. 창기와 만난다는 것은 지혜를 잃은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재물을 정당하지 못한 대상에 사용하게 되며, 그럴 때 재물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3절은 지혜로운 삶의 관점을 유지하여 삶의 방향성과 재물을 관리해야 한다는 조언을 주고 있습니다. 4절은 왕이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줍니다. 왕이 만약 뇌물을 받게 되면 나라를 멸망의 길에 빠뜨리게 됩니다. 뇌물을 즐겨 받든지, 억지로 받는지 모두 다 뇌물이며, 멸망의 길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왕은 재물로 나라를 통치하려 하지 말고, 오직 공의로 나라를 다스리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원리인 정의와 공의의 원리를 기준으로 삼을 때, 재물을 오히려 더 풍성하게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올무에 빠지지 말라(5-6)

쓴 책망은 영혼을 살리고, 단 거짓말이 영혼을 죽입니다. 선지자들의 숱한 경고에도 묵이 곧아 회개하지 않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식잔에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옳은 말에 귀를 막고 거짓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스스로 올무에 갇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괴로워도 반드시 들어야 할 말씀이 있고 아무리 기분 좋아도 흘려보내야 할 소리가 있습니다.

5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6악인이 범죄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이나 의인은 노래하고 기뻐하느니라(5-6)

5-6절은 올무라는 공통 주제가 있는 잠언들입니다. 5절은 이웃에게 아첨하는 말을 하는 것은 그 사람 앞에 그물을 펼쳐놓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아첨하는 말은 부드럽고 매끄럽게 말함으로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는 말을 가리킵니다. 마음이 미혹되면 자신 앞에 펼쳐진 그물을 알아채지 못하고 거기에 빠지게 되고 맙니다. 따라서 내 귀에 솔깃한 말, 나를 칭찬하는 말,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을 들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귀에 솔깃한 말이 나를 넘어뜨리는 유혹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항상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6절은 이어서 악인의 범죄가 스스로에게 올무가 된다는 점을 말합니다. 악인은 악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으로부터 이득을 취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런 악한 계획은 자신에게 올무가 되어 자신을 넘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에 반해 의인은 노래하고 기뻐합니다. 의인은 자신의 앞에 그물이 펼쳐질 때 그것을 분별해 낼 수 있으며, 또한 항상 계획을 선하게 세우기 때문에 자기 올무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길을 걸어가게 될 때 그 길은 만족과 기쁨이 가득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공동체 운영을 위한 교훈(7-12)

지혜로운 통치자는 창기와 사귀지 않으며, 뇌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정의로 견고하게 하여 나라를 세우며 가난한 자의 형편을 헤아려줍니다. 가난하여 억울함을 당하는 자들을 신원해 줍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7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 8거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하게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 9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은 그침이 없느니라 10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 11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12관원이 거짓말을 들으면 그의 하인들은 다 악하게 되느니라(7-12)

7-12절에서는 지혜로운 지도자가 되기 위한 다양한 가르침을 베풀고 있습니다. 특별히 선한 종류의 사람과 악한 종류의 사람을 대조하는 기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7절은 의인과 악인을 대조합니다. 의인이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준다고 말합니다. 가난한 자의 마음을 살피고 그들의 생활을 돕는 지도자가 곧 의인인 것입니다. 악인은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다가 패망의 길로 가고 맙니다.

8절은 거만한 자와 슬기로운 자를 대조합니다. 거만한 자는 성읍을 다툼 가운데로 몰아넣지만, 슬기로운 자는 발생한 분노조차 없어지게 만듭니다. 잠언에서 거만한 자는 지혜를 거절한 자를 뜻하며, 슬기로운 자는 지혜를 선택한 자를 말합니다. 지혜로운 지도자는 공동체에 있어서 평안함과 안정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그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9절은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를 대조합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재판정에 함께 서게 되면, 둘 중 누군가가 웃는지 노하든지, 결국 화평함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지혜자 때문이 아니라 미련한 자 때문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화평함을 알지 못하기에 다툼을 끝까지 끌고 가려고 하며,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끼칩니다.

10절은 피 흘리기 좋아하는 자와 정직한 자를 대조합니다. 피 흘리기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해서 그의 피를 이유 없이 흘리게 합니다. 자신의 죄됨이 온전한 자 앞에서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직한 자는 그렇게 온전한 자가 억울하게 피해를 볼 때 그를 구원해주려고 노력합니다. 10절은 주변의 이웃이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자를 도와주고 그 편에 함께 서서 힘을 보태는 것이 참된 지혜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공동체의 삶인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11절은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를 대조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다 드러내지만, 지혜로운 자는 감정을 억제합니다.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겠으나, 감정을 모두 그냥 발출하는 것이 지혜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 드러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감정이 중요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감정도 중요한 줄 알고 옆에 있는 형제자매와 공동체 구성원들의 감정과 의견을 존중하는 사람이야말로 지혜로운 지도자입니다.

12절은 공동체 지도자가 거짓말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지도자가 거짓말에 쉽게 흔들리게 되면,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지도자가 분별력이 없으므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로 지도자를 속이려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동체에는 공명과 정의가 세워지는 대신 거짓말로 자신의 이득을 도모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지도자의 분별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교훈입니다.

 

가난한 자를 신원하라(13-14)

거만한 통치자는 성읍을 요란하게 하지만, 슬기로운 통치자는 노를 그치게 합니다. 그들은 경솔하게 어리석은 자와 다투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감정을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통치자는 감정을 잘 억제하여 말할 때와 거둘 때를 잘 헤아려 발언합니다.

13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14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13-14)

13-14절은 공동체의 지도자가 가난한 자를 보살펴야 함을 알려줍니다.

13절은 공동체 안에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함께 살고 있는 객관적인 현실을 담담하게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사람들이 모두 함께 살아가도록 하셨다는 일반은총의 원리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 모두에게 생명을 주시며 삶을 유지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악인들의 편을 들어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이 14절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왕이 가난한 자를 공평하게 변호해주어 억울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 그 왕위가 견고하게 서게 됩니다.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평의 원리를 따라 살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고, 그럴 때 공동체가 튼튼해지고 구성원들이 만족스런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공동체든지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아가며,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같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다른 처지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함께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지도자는 열린 귀, 온유하고 공평한 마음, 약자를 돕는 손길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지도자의 덕목은 은혜와 정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반영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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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28-02)


충성된 종이 되는 지혜

잠언 28장 19-28절


로또를 비롯해 도박 사업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아첨하는 자가 성공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일확천금이나 대박을 염원하고 있고, 충언보다는 아첨을 더 좋아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 잠언 기자는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본 단락은 28장 전반부에 이어서 의인과 악인의 대조를 재물 사용과 연관 지어 설명합니다. 특별히 재물 사용을 잠언의 여러 주제와 연결합니다. 재물과 성실함(19-20), 공평함과 재물(21-22), 언어사용과 재물(23-24), 탐욕과 재물(25-27)로 나눠서 서술합니다. 마지막 구절인 28절은 이런 모든 내용을 함축하여 의인과 악인을 설명합니다.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재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잘 알려줍니다.

 

성실함과 재물(19-20)

모든 부가 다 축복은 아닙니다. 어떻게 버느냐가 문제입니다. 성실하게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겠지만, 속히 부자가 되려는 자, 타인의 것에 욕심을 내는 자는 도리어 형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또 공정하지 못한 재판으로 얻은 재물도 축복이 아닙니다. 재물 자체에만 눈이 먼 자는 빈궁이 찾아와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19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따르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 20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19-20)

19-20절은 재물의 주제를 성실함과 연관시킵니다. 19절은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와 ‘텅 빈 것’을 따르는 자를 비교합니다.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기업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반면 텅 빈 것을 따르는 사람이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지 않으신 것, 즉 다른 사람에게 주신 것에 욕심을 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는 자는 풍성한 삶을 누리지만,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에 욕심을 내는 사람은 오히려 궁핍하게 되어 ‘텅 빈 상태’에 이르게 될 뿐입니다.

20절은 19절의 내용을 하나의 원리로 잘 표현합니다. 성실함으로 사는 자는 많은 복을 얻게 되지만, 속히 부하게 되려 하는 자는 벌을 받게 됩니다. 성실한 자의 예가 자기 기업을 경작하는 자이고, 속히 부하게 되려는 자의 예가 헛된 것을 따르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는 탐욕을 버리고 성실함의 가치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는 삶의 태도로 드러납니다.

 

공평함과 재물(21-22)

모든 것을 쉽게 얻으려고 하면, 도리어 많은 것을 잃는 법입니다. 땅을 일구는 것은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사람 관계가 마찬가지입니다. 혀로 아첨하면, 쉽게 사람의 인정과 환심을 얻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땅을 경작하듯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경책하는 사람은 진정한 벗을 얻을 것입니다.

21사람의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한 조각 떡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범법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22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21-22)

21-22절은 재물을 공평함이라는 주제에 연결하게 합니다.

21절은 사람의 낯을 보아주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낯을 보아준다는 것은 재판이나 어떤 공적인 결정을 하는 상황에서 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여 공정하지 못한 결정을 내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을 말씀하셨고, 공의와 정의가 무너지면 심판을 내릴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삼하 8:15; 사 5:7). 그런데 21b절은 사람이 이런 정의와 공의를 생각보다 쉽게 포기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한 조각 떡 때문에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은 매우 작은 탐욕으로부터 기인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한 조각 떡 때문에 사람의 낯을 보아주기 시작하면, 하나님 지혜의 길을 버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22절은 21절의 메시지를 더 발전시킵니다.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잘못된 눈을 지닌 자입니다. 특별히 23:6에 의하면 악한 눈을 지닌 자는 ‘인색한 자’입니다. 자신이 가진 재물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탐욕을 부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런 악한 눈을 지닌 자는 재물을 얻는 데만 마음이 급해서 결국 가난이 자신에게 임할 것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재물을 모으는 데 욕심을 내지만, 결국 그 욕심으로 인해서 오히려 더욱 가난한 상태에 떨어지게 되고 말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21절과 연결해보면, 한 조각 떡에 욕심을 내어 재판 중에 정의와 공의를 해치면, 그 잘못으로 인해 빚어질 결과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탐욕을 버리고 공평을 행하는 것이 지혜이며, 그 길이 또한 자신의 재물을 지킬 수 있는 바른길입니다.

 

언어사용과 재물(23-24)

좋은 말만 하는 사람보다는 뼈 아프게 하는 책망이 더 유익하며 더 진실하고 견고한 인간관계를 만들어냅니다. 재물 욕심 때문에 부모에게마저 거짓말을 하는 자는 결국 자기 자신을 멸망시키고 말 것입니다. 즉 자기 유익을 구하는 사람의 언어는 관계를 파괴하고 자신도 파괴합니다.

23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 24부모의 물건을 도둑질하고서도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 받게 하는 자의 동류니라(23-24)

23-24절은 재물을 언어사용과 연결합니다. 23절은 사람을 경책하는 자가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 사랑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사람을 경책한다는 것은 사랑으로 훈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27장 전반부에서 참된 친구의 충고에 대해 우리는 이미 배운 바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경책하기보다는 부드러운 혀만을 사용하려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좋은 말만 하려고 하고 진정성 있는 충고와 뼈아프게 만드는 조언은 좀처럼 주지 않는 사람은 처음에는 호감을 사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진정한 관계를 맺게 되지는 못합니다. 진정한 경책을 하는 사람이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게 됨은 자명한 일입니다.

24절은 이러한 인간관계와 언어사용의 문제를 구체적인 재물의 문제로 연결시킵니다. 부모의 것을 도적질하고서도 죄가 아니라고 하는 자녀의 경우를 예로 듭니다. 이런 자녀는 재물에 대한 욕심에 흔들려 거짓말을 합니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 정직한 언어사용을 포기하는 것은 결국 자멸을 초래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는 정직한 길을 가는 삶의 태도를 견지합니다.

 

탐욕과 재물(25-27)

자기 욕망을 따라 살지 않고 여호와를 의지할 때 복을 누리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망하겠지만,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기 위해 재물을 쓰는 자는 주리는 법이 없지만, 인색한 자는 하나님께서 저주하실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재물보다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생명입니다.

25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26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27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25-27)

25-27절은 재물 문제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주제인 탐욕을 다룹니다.

25절은 탐욕이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를 명쾌하게 서술합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란 ‘욕망이 넓은 사람’인데, 많은 것을 가지려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서 다툼을 일으키게 됩니다. 탐욕이 공동체의 분열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소유를 가지고 싶어 하는 죄된 행동을 실행에 옮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이러한 탐욕을 버리려 노력할 것이며, 따라서 오히려 더 풍족하게 되는 은총을 맛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탐욕을 버릴 수 있을까? 그 해답을 26절이 제시합니다. 26a절은 자신의 마음을 믿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자기 마음을 신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미련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잠언은 늘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참 지혜라고 가르칩니다(잠 3:5).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신뢰하게 되면 자신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탐욕을 파악할 수 없게 되고, 결국은 그 탐욕에 이끌려 죄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대하여 항상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며, 신뢰의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삶의 길이며 하나님의 응답을 얻을 방법입니다.

27절은 이러한 탐욕의 문제에 있어서 매우 구체적인 실례를 소개합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기 위해서 자신의 재물을 나누어줄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면 오히려 풍요해질 것이지만,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구제를 피하기 위해서 눈을 질끈 감는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된다는 권고를 줍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나의 소유가 줄어들 그것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누는 사람에게 더 큰 풍요함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나눔이 곧 지혜이며 지혜의 열매는 생명과 풍성함인 것입니다. 25-27절은 재물 사용에 있어서 탐욕을 멀리하고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하며, 오히려 다른 이들을 위해서 나누는 삶을 살 때,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풍요함을 맛보게 된다고 가르쳐줍니다.

 

 의인과 악인(28)

쉽고 빠르게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은 불법을 저지르기 쉽습니다. 또한, 헛된 것을 좇으며 자신을 의지하는 자는 버림받겠지만, 느려도 신실하게 사는 이는 하나님과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것입니다.

28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고 그가 멸망하면 의인이 많아지느니라(28)

28절은 28장 전체의 결론입니다.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게 되고 악인이 멸망하면 의인이 많아진다는 교훈입니다. 이 교훈은 가난과 부라는 재물의 문제 및 탐욕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재물에 우선순위를 둔 지혜 없는 자가 곧 악인이며, 그런 사람이 많아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되고 결국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악인들이 사라지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재물을 선하게 사용하는 의인들이 일어나 그 공동체에는 행복과 감사가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28장은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재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해야 할 것인지 가르침을 줍니다. 의인의 관점에서, 지혜자의 관점에서 재물보다 더 중요한 여호와 경외의 신앙을 기준으로 삼을 때, 그 공동체의 재정을 통해 하나님의 평강과 만족이 공동체 구성원들 모두에게 흡족하게 주어질 것입니다.


지도자는 아첨이나 아부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도록 돕는 경책의 말, 충고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아첨 혹은 아부 역시 뇌물과 마찬가지로 판단력을 흐리게 합니다. 아첨하는 자가 당장은 지도자의 눈을 멀게 하여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아첨하는 자가 많으면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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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28-01)


의인과 악인을 다스리는 지혜

잠언 28장 1-18절


잠언서에서 지혜란 ‘공의와 정와 정직’(2:9)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갈수록 부자와 가나안 사람들의 차이가 심화되어 가는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라는 강조는 공의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잠언 기자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왕으로서 어떻게 의인과 악인을 다스릴지에 대한 지혜를 소개합니다.

 

28-29장은 의인과 악인의 문제를 다루는데, 주로 공동체 지도자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1-5절에서는 의인과 악인의 모습을 대조하고, 6-11절은 부와 가난의 문제를 다루는데 율법에 대한 순종과 연결하게 합니다. 12-18절은 앞선 두 주제를 묶어서, 가난한 자를 돌아볼 줄 아는 의로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유다의 왕에게 적용되는 말씀이었을 것이며, 또한 백성들 중의 리더들 및 현대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교훈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의인과 악인(1-5)

구린 데가 있어서 쫓아오는 자가 없는데도 항상 도망하는 지도자가 있으면 그 나라는 주관자가 많아집니다. 하지만 의인이 다스리면 오래도록 견고한 나라가 섭니다. 악한 지도자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율법을 버린 자를 칭찬하며 정의를 깨닫지 못하지만, 여호롸를 찾는 의인은 정의를 깨닫습니다. 본문은 ‘누구에게 나라를 맡길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사자같이 담대한 의인이라고 대답합니다.

1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2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 3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가난한 자는 곡식을 남기지 아니하는 폭우 같으니라 4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5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1-5)

악인은 스스로 망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쫓겨 살게 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입니다.

1절은 의인과 악인을 대조합니다. 악인은 늘 두려움에 쫓겨 도망 다녀야 하는 마음이지만, 의인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자신이 있기에 당당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 악인의 마음과 의인의 마음이 28-29장 전체를 조명하는 렌즈가 됩니다.

2절은 이런 의인과 악인의 문제를 공동체의 리더십으로 연결합니다. 나라에 죄가 많으면 지도자가 많아져서 올바른 리더십이 세워지지 못하지만, 명철이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그 공동체가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혜로운 의인이 이끄는 공동체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로운 지도자와 악한 지도자는 어떻게 다릅니까? 이것을 3-5절에서 다룹니다. 3절은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가난한 자는 곡식을 쓸어가 하나도 남기지 않는 폭풍우와 같다고 말합니다. 이는 악한 지도자를 가리키는 묘사입니다. 악한 지도자는 백성들을 이용하고서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악한 지도자는 공동체를 돌보지 않으며 오직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4절은 의인과 악인의 문제를 율법과 연결합니다. 악인은 율법을 버린 자에게서 칭찬을 받고 율법을 지키는 자에게 대적 당합니다. 즉, 악인이란 바로 ‘율법과 관련 없는 자’입니다. 율법을 버리고 지키지 않는 자가 바로 악인이라는 것입니다.

5절은 그런 악인은 정의를 행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여호와를 찾는 의인이야말로 모든 것을 깨닫는 명철을 소유했습니다. 의인이란 지혜를 소유한 지도자인데, 말씀을 자신의 통치 기준으로 삼고,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의로운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또 우리 공동체의 지도자가 이러한 의의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함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부와 가난의 문제(6-11)

부와 가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누구든지 부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면 부한 악인과 가난한 의인 가운데서는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잠언은 가난한 의인의 삶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가난해도 성실한 자가 부유하지만 굽게 하는 자보다 낫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와 사귀되 탐욕이 많은 자를 멀리해야 합니다.

6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7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음식을 탐하는 자와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8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이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 9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10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한 자는 복을 받느니라 11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나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아느니라(6-11)

잠언 기자는 6-11절에서는 부와 가난의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6절은 비교잠언(‘~보다 ~이 더 낫다’라는 형식의 잠언)입니다. 가난해도 올바르게 길을 가는 사람이 부유하면서 길을 굽게 가는 사람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가난한지 부유한지 아닌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길을 올곧게 가는지 아니면 굽어진 형태로 길을 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느냐의 여부에 우선순위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6절의 메시지는 7절로 그대로 이어집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가 지혜로운 아들이며, 탐욕을 부리는 자를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한다고 가르칩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결국 탐욕을 부리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부유함을 최고의 우선순위로 생각하게 되어, 결국은 굽은 길을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문제,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을 가는 문제를 가장 우선적인 삶의 이슈로 지킬 때, 재물의 문제가 올바로 균형 잡힌다는 것입니다.

8절은 잘못된 우선순위의 예를 제공합니다. 비싼 이자를 놓아 돈을 벌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재산을 저축하는 셈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악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 약하게 모은 재물을 결국 빼앗아 가셔서 선한 사람에게로 옮기실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 경외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데 재물에 우선순위를 두면, 하나님께서 그 재물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옮기신다는 것입니다.

9절은 다시금 율법의 중요성을 말하는데, 사람이 율법을 듣지 않으려고 하면, 그의 기도조차 가능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재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어떻게 거룩한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지혜의 길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10절은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지게 됨을 말합니다.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인도한다는 것은, 앞뒤 구절의 문맥을 참고해 생각해본다면, 악한 방법을 사용해서 정직한 자들을 유혹하여 그들로부터 재물을 빼앗으려는 계획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게 악한 계획을 세우면 결국 자기가 판 함정에 자기가 빠지게 된다고 말합니다. 10절은 8절과 유사합니다. 재물에 우선순위를 두어 악함에 치우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10b절이 말하듯이, 온전한 자 즉 지혜의 길로 행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11절은 부요함과 가난함을 비교하면서 6-11절의 모든 논의를 요약, 정리합니다. 먼저 상반절은 부자가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긴다는 점을 제시합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긴다는 말은 ‘자기 눈에 지혜롭다’라는 것으로 26장 전반부의 미련한 자에 대한 잠언들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본 적이 있는데, 미련함보다 더 나쁜 상태를 지칭하며 결국은 지혜를 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하반절은 반대로 ‘가난해도 명철한 자’를 말합니다. 여기서는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명철한 자, 즉 가난하지만, 지혜를 가진 자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살핍니다. 자기 안에 어떤 허물과 잘못이 있지는 않은지 살피고, 하나님의 뜻대로 삶을 이끌어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10절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게 됩니다. 악한 자의 재물이 결국 이런 가난한 자에게로 오게 될 것이며, 영광의 자리에 이르게 될 것이고, 사자처럼 당당하고 담대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6-11절은 부와 가난의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자가 되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지 말라(12-18)

왜 가난한 의인의 삶을 선택해야 합니까? 부한 의인은 사람과 하나님께 모두 외면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불의한 부자가 나타나면 다들 숨기에 바쁩니다. 반대로 의인이 흥하는 것을 모두가 기뻐합니다. 악인은 재앙에 빠지고 구덩이에 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복을 받고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2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 13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14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15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 16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 17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함정으로 달려갈 것이니 그를 막지 말지니라 18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12-18)

악인이 권세를 가지면 힘없고 가난한 이들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고통을 겪습니다. 12-18절은 공동체의 지도자들에 대한 교훈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2절은 의인의 기쁨에는 영광이 있지만,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을 찾아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숨어버린다는 점을 말합니다. 의인의 흥왕은 모두가 기뻐하지만, 악인의 흥왕은 모두의 고통이 된다는 것입니다.

13절은 12절에서 말하는 의인과 악인이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역할을 합니다. 의인이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는 사람입니다. 악인이란 자신의 죄를 숨기는 자입니다. 자신이 미련함을 깨닫고 여호와 경외의 길로 가려고 엎드리는 사람이 의인이며, 그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얻게 됩니다.

14절은 이러한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해줍니다. 경외하는 자는 복되지만, 미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집니다. 죄를 회개하여 의인이 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복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죄를 계속 숨기는 자는 악인으로 남아 있게 되기에 재앙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돌이킨 의인과 죄를 숨기는 악인은 공동체 안에서 어떠한 지도자가 될 것입니까? 15절은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지도자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는 먹이를 잡고 기뻐하며 으르렁거리는 사자와 같고, 또한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곰과 같아서 가난한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으려고 쉬지 않고 노력합니다.

16a절은 ‘이런 악인을 무지한 치리자’라고 명명합니다. 명철을 소유하지 못한 자 곧 지혜가 없는 자입니다. 그러한 지도자는 포악을 크게 행하여 가난한 백성을 압제합니다. 하반절은 의로운 지도자에 대해 언급합니다.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게 됨을 말합니다. 지혜의 길을 선택했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17절은 이어서 악한 지도자의 모습을 한 번 더 묘사합니다. ‘사람의 피를 흘린 자’란 ‘사람의 피를 흘렸기에 죄책감을 느끼게 된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은 함정으로 즉 죽음을 향해 스스로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죄책감에 시달려서 스스로의 악함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파멸을 자초하게 됩니다.

18절은 12-17절의 내용을 요약해줍니다. 온전함 가운데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넘어지게 된다고 말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자기의 의를 세우는 자들보다 스스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자들이 있을 때 행복해집니다. 의롭게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기준이 되어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그분이 창조하신 사람들을 부유하든 가난하든 상관없이 존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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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27-02)


부지런히 살아가는 삶의 지혜

잠언 27장 14-27절


페이스북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역설적으로 개인의 얼굴(페이스)은 사라지고 이와 함께 언어가 파괴되고 언어폭력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개념도 변하여 페이스북 친구와 같은 가상의 친구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특별히 오늘 말씀은 더 큰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본문은 27장 전반부에서 다룬 진실한 인간관계에 대한 주제를 계속 이어갑니다. 잘못된 관계의 예를 들고(14-16), 진실한 관계의 유익을 자세히 설명합니다(17-22). 진실한 관계 가운데 자신의 삶이 다듬어지고 하나님을 따르는 지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어서 23-27절은 양 떼를 돌볼 때 삶이 윤택해진다는 설명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잘못된 관계의 예(14-16)

그릇된 인간관계는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과는 좋은 관계를 맺기 어렵습니다. 아침에 큰소리로 축복하는 것은 그 동기가 어찌 되었든지 남을 배려하는 일은 아닙니다. 늘 다툼을 일으키는 여자를 집 안에 붙잡아두는 일은 바람을 잡는 것과 같고, 기름을 움켜쥐는 것과 같습니다.

14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15다투는 여자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16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으니라(14-16)

앞서서 13절은 잘못된 관계의 예로 보증 서는 것을 들었습니다.

14절은 이 주제를 이어갑니다.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이웃을 축복하는 것이 저주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할 때는 이웃을 위한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 사실은 그에게 저주처럼 생각될 수 있음은, 진정한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좋은 예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올바른 관계임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15-16절 역시 잘못된 관계의 예를 들어줍니다. 다툼이 습관이 된 아내에 대해 말하는데, 이는 잠언 19:13b절을 좀 더 확장한 내용입니다.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빗방울입니다. 즉 굵게 떨어지는 빗방울입니다. 그래서 그런 아내를 집 안에 두는 것은 바람을 두는 것과 같습니다. 집안에 아내가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툼이 이미 습관이 된 여인을 집 안에 있게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여자가 집 밖으로 나간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그 여인의 마음이 가정을 위해 올바른 방향을 취하지 않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잘못된 인간관계를 말합니다. 다투는 사람은 자신의 입장, 자신의 이익만을 계산합니다. 마치 15절에 나오는 것처럼 아침에 이웃을 큰 소리로 축복하며 시끄럽게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진실한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에, 공동체에 해악을 끼칠 뿐입니다.

 

진실한 관계의 유익(17-22)

참 관계는 타인에게 유익을 줍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친구가 친구를 다듬어줍니다. 또 유익한 관계 안에서는 상대방 안에서 자기 마음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참 관계 안에서는 외적으로만 잘 보이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그 칭찬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게 됩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관계를 맺는 방식에 익숙한 어리석음을 벗겨내는 일은 매우 힘듭니다.

17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18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에게 시중드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19물에 비치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치느니라 20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21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 22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아니하느니라(17-22)

17절부터는 진실한 관계가 가져오는 유익을 하나씩 설명해 나갑니다. 17절은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친구가 친구를 다듬는다고 말합니다. 진실한 인간관계를 갖게 되면, 내가 상대방을 다듬어주고 세워주게 되고, 그가 나를 다듬어주고 세워주게 됩니다. 적절한 충고, 따끔한 조언을 주려 하며, 진정한 사랑을 베풀게 되고, 참고 인내해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적당히 좋은 관계가 아니라, 실제로 서로를 위하는 복된 관계를 이루는 것이 필요합니다.

18절은 무화과나무의 예를 들면서 자기 주인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결국 영광을 얻게 됨을 말합니다. 이 구절은 리더와 구성원들의 관계를 말합니다. 서로를 위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유익을 얻기 원한다면, 먼저 그 사람을 위하고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한 관계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관계입니다.

19절은 해석이 어려운데, ‘사람의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비쳐집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서 나의 마음을 읽어내게 된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그에 대해서 진실한 마음을 가지면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실한 결과가 나올 것이고, 그 사람에 대해 잘못된 마음을 가지면 결국 잘못된 결과가 나오게 된다는 충고입니다. 내가 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으려고 하느냐가 결국 그 사람과의 관계를 결정하게 될 것이니, 우리는 처음부터 진실한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20절은 19절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20절은 사람의 눈이 만족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보는 것’은 19절의 ‘물에 비치는 현상’과 연결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을 거울로 삼아 그대로 비쳐지기에,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서 어떤 만족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보면, 다른 사람이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는 결코 충족되지 않습니다. 눈이 원하는 대로 모두 기대하면, 만족은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진실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진정한 유익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기보다, 먼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친구가 친구를 빛나게 하고, 주인을 지키는 사람이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이니,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이를 먼저 만족케 해야 하는 것입니다.

21절 역시 해석이 어렵습니다. 대개는 칭찬으로 사람을 시험해서 그 사람의 진실함 여부를 테스트하고, 그 사람을 훈련한다는 것으로 해석하곤 하는데, 우리는 원문에 근거해서 좀 다른 해석을 해보려 합니다. 사람의 행실 혹은 사람됨이 칭찬의 진실성을 가려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칭찬한다고 해서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칭찬을 받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은이 도가니를 통과해야 진짜 은이 되는 것처럼, 칭찬은 그 사람의 삶을 통과해야 진짜 합당한 칭찬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에게 주어지는 칭찬을 기뻐하고 자랑하지 말고, 그 칭찬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칭찬을 마냥 기뻐하는 것은 진정한 인간관계가 아닙니다. 칭찬을 받을 때 조심해야 하고 겸손해야 하며 진실한 인간관계를 이뤄가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22절은 갑자기 미련한 자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미련한 자는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빻아도 그 미련함이 벗겨지지 않는다는 것은 미련한 자를 가르쳐서 고치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문맥에서 미련한 자는 누구입니까? 진실한 인간관계를 멀리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칭찬받았다고 무작정 기뻐하는 자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고 있고, 이런 실수에 빠지지 않습니다.

 

양 떼를 돌보는 자가 되라(23-27)

지혜로운 자는 재물 자체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에서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임합니다. 영원하지 않은 재물의 속성을 잘 인식하고 허락하신 삶의 자리에서 날마다의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는 통로가 됩니다.

23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24대저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25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26어린 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27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의 음식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23-27)

23-27절은 새로운 주제를 다룹니다. 자신의 양 떼를 잘 돌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3절은 양 떼를 잘 돌보라고 명령합니다. 그 이유는 24-25절에 나오는데, 지금 가지고 있는 재물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풀을 벤 후에 새로 움이 돋는 것처럼, 내일이 되면 내일의 양식이 필요할 것이니, 날마다 새롭게 노력하고 새롭게 거두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26-27절은 열심히 노력하면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됨을 가르쳐줍니다. 어린 양을 기르면 옷이 되고 염소를 기르면 밭을 사는 돈이 되고, 염소의 젖을 짜면 음식이 되고, 결국 이 모든 것은 여종의 생명이 됩니다. 여기서 여종들이란 단순히 여종들만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종들이란 가족 구성원의 가장 낮은 자들이기에, 이 구절은 가족 구성원 전체가 삶의 윤택함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23-27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삶의 자리에 마음을 두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가져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삶의 자리를 지킵니다. 게으름을 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열매를 거두고 풍족함을 누리게 됩니다.

27장 전반부에서 나타난 진실한 관계를 유지하는 삶, 마지막 문단인 23-27절에서 나타난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은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움이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경우들입니다. 우리는 사람에 대하여, 내게 맡겨주신 직분과 직장과 사업에서 주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는 유익이 되는 인생이 되도록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지혜로운 삶은 진실한 관계 안에서 이뤄집니다. 서로를 위한 진실한 관계 안에서 나누는 따뜻한 사랑과 따끔한 조언은 서로의 모난 부분을 다듬어 주고 날카로운 부분을 깎아 함께 빛나는 존재로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을 모든 관계의 중심에 두고 자신을 앞세우기보다는 남의 유익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진실한 관계를 든든히 세우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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