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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6-02)


 공평과 정의를 구하는 지혜

잠언 16장 16-33절


하나님께 부와 권세가 아닌 지혜를 구했던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지도자에게 지혜란 공평과 정의, 자비와 은혜로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성품이며,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들에게 주시려는 복입니다.

 

누가 지혜로운 자이며 누가 어리석은 자입니까? 지혜로운 자는 기꺼이 낮아져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며 물질보다는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운 삶을 택하고 입으로는 선한 지식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자입니다. 반면, 어리석은 자는 이웃을 입과 행동으로 이간질하고 분쟁을 일으키는 자며 궁극적으로 이웃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자입니다.

 

지혜자와 우매자의 대조(16-33)

지혜는 여호와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에서 나오는 지혜로운 말은 생명의 샘이 되어 활력과 생기를 주고 즐거움과 기쁨을 주며,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줍니다. 즉 관계를 회복시키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 지혜의 말입니다. 반대로 어리석은 말은 관계를 파괴하고 생명력을 읽게 합니다.

16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 17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이니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 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19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20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21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철하다 일컬음을 받고 입이 선한 자는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하느니라 22명철한 자에게는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되거니와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되느니라 23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의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의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 24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25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26고되게 일하는 자는 식욕으로 말미암아 애쓰나니 이는 그의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 27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 같은 것이 있느니라 28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29강포한 사람은 그 이웃을 꾀어 좋지 아니한 길로 인도하느니라 30눈짓을 하는 자는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느니라 31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32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33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16-33)

교만은 죄의 핵심입니다. 교만은 그저 자기가 남보다 낫다 생각하며 사람들 앞에 우쭐대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추악함과 무익함을 깨닫지 못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1) 지혜로운 자와 교만한 자(16-19)

먼저, 16-19절의 금언들은 지혜로운 자와 교만한 자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16절은 지혜와 명철의 가치가 금과 은보다 더 귀한 것이고, 정직한 자의 길은 악을 떠나는 것이며, 이런 길을 지키는 것이 결국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악을 떠나 지혜를 따라 정직하고 바른길을 가는 것이 바로 생명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에(17) 금이나 은보다 귀한 것입니다.

18절 대조적으로 교만한 자나 거만한 마음은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란 표현은 15:33의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18절이 교만 즉, 높아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19절은 18절과는 대조적으로 낮아짐 즉, 겸손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19절에서 겸손한 자는 기본적으로 ‘가난한 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겸손한 자와 마음을 낮춘다는 것은 단순히 마음으로 동조하는 정도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과 함께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대조되는 삶은 교만한 자들과 탈취물을 나누는 삶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탈취물이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쪽이 얻는 노획물입니다. 지혜자는 교만한 마음을 가진 자들과 함께 폭력적인 것으로 얻은 부유한 삶을 사는 것보다는 가난을 택하겠다고 말합니다.

(2) 지혜로운 자의 말(20-24)

20-24절에는 언어생활에 대한 교훈이 반복되며 ‘말씀’과 ‘말’이라는 단어가 절마다 나타납니다.

먼저, 20절은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구체적으로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잠언에서 언급된 축복이나 행복은 일반적인 복이 아니라 항상 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행복과 축복을 의미합니다.

21절은 지혜로운 자가 사회적으로 누리는 특권을 설명합니다. 마음이 지혜롭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20절에서 언급한 여호와를 의지함으로써 분별력을 지니게 된 지혜로운 자를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은 명철하다는 칭송을 받게 됩니다. 또한 ‘학식’은 기본적으로 가르침이란 뜻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설득력 있는 말로 사람들을 지혜의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22절은 명철과 어리석음을 대조합니다. 명철은 그것을 가진 사람에게 생명의 샘이 되어 그에게 기쁨과 생기를 주는 반면, 어리석음은 그의 주인을 어리석은 길로 인도하므로 평탄치 못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23-24절은 지혜로운 자의 말의 특징을 설명합니다. 일단 지혜로운 마음은 그의 입에 지혜가 있고 그의 입술에 지식을 더합니다. 23절의 그의 입술에 지식을 더한다는 표현은 21절의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한다’와 동일한 표현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진 사람은 말을 통해서도 그의 지혜로움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그 지혜로 자신과 다른 이에게 유익을 가져다준다고 설명합니다. 24절은 이런 지혜로운 자들의 말이 갖는 실제적인 영향력을 묘사합니다. ‘선한 말’ 즉, 즐겁고 기쁨을 주는 말은 꿀송이처럼 달콤하여 우리 마음에 즐거움과 행복을 주어 마음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뼈’로 상징된 육체도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언의 교훈에는 말에 대한 교훈이 많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공동체를 살리고 사람들을 살리고 힘을 주는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3) 어리석은 자의 말(25-30)

25-30절에는 ‘사람’이란 단어가 매 절마다 반복되고 있는데, 특히 ‘불량한 사람’, ‘패역한 사람’, ‘말쟁이’, ‘강포한 사람’, ‘눈짓을 하는 사람’, ‘입술을 닫는 자’ 등 여러 종류의 악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25절은 14:12과 동일한 표현으로서,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는 겉모습만 보아서는 알 수 없음을 드러냅니다. 진정한 실체는 알 수 없으며, 사람의 말과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 지혜로운 사람인지 어리석은 사람인지를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여기서는 사망의 길로 가는 사람을 예로 들어 26절부터 악한 사람들에 대한 교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6절의 ‘노력하는 자는 식욕으로 인하여 애쓰나니’라는 문장은 인간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인간이 자신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반면, 이는 ‘그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라’라는 문장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먹는 문제로 한정하고 ‘독촉하다’라는 말을 사용하여 식욕이 인간의 노동을 더욱 힘들고 고단하게 만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식욕은 인간이 갖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으로 모든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더 가지려는 인간의 욕망이 삶을 더 힘들고 피곤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탐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27-30절까지는 다양한 악인이 등장합니다. 첫째, 불량한 사람으로서 이들은 다른 사람을 해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의 입술은 맹렬하게 타는 불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불량자는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죽이고 해를 가하는 무섭고 포악한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1:11-14에 나오는 강도의 무리에 서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입술로 지식을 더하는 지혜로운 사람과 대조가 됩니다.

28절에서는 여기저기 다툼을 일으키고 다니는 패역한 자가 등장합니다. 패역하다는 말은 완고하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주 다른 사람과 분쟁을 일으킵니다. 또한, 말쟁이는 앞에서 정정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뒤에서 험담이나 중상모략을 하거나 여기저기 다니며 소문을 퍼트리는 사람입니다. 이런 말쟁이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깨뜨리며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29절에서는 강포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폭력배로서 사람들을 유혹하여 좋지 않은 길로 인도합니다.

30절은 위에서 나온 인물보다 더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악한 행위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거나 눈짓을 하는 것은 은밀히 악한 일을 꾸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입술을 닫는다는 것은 자신의 악한 일입니다. 이루어질 때까지 말을 하지 않고 은밀하게 일을 진행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나 모사들이 주로 이런 식으로 자기들의 악한 일을 도모합니다.

(4) 여러 가지 교훈들(31-33)

31-33절은 앞의 단락들과 특별하게 연결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 31-32절은 ‘지혜’라는 주제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31절의 백발은 장수를 의미하는데 장수는 지혜롭고 공의로운 길을 산 사람이 얻는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발을 영화의 면류관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또한, 32절에서는 지혜자 중에서 특히 분노를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얻는 유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32절은 전형적인 비교 잠언으로 분노를 참는 것과 용사를 비교합니다.

33절은 인간이 계획하지만, 그것을 이루시는 이는 여호와라는 사실을 언급한 1절과 9절의 주제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제비뽑는 행위는 인간의 일이지만 제비뽑기의 결과는 온전히 여호와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성취하신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나와 나의 삶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인식하여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따라 지혜롭게 살 것인지 아니면 어리석은 자로 살 것인지를 청중이나 독자에게 묻고 지혜롭게 살 것을 촉구하기 위함입니다.


지혜는 세상 속에서 약삭빠르게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일과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성경의 지혜는 약자들을 배려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의 유익이 곧 나의 유익임을 인식하며,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태도입니다. 그럴 때 우리 공동체가 풍요로워진다는 믿음이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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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6-0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법

잠언 16장 1-15절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1-9)과 왕의 주권(10-15)이라는 두 가지 주제와 대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권위 아래 내 권한을 두는 일, 하나님의 공평 위에 왕의 권위를 세우는 일, 모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답게, 지도자를 지도자답게 만드는 중요한 원칙을 배워봅니다.

 

사람이 계획을 세우고 어떤 일을 할지라도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각자의 인생에 여호와의 개입을 기대하고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한편, 세상에 있는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공의를 행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공의가 바로 그의 왕좌를 지지하는 기반입니다. 지혜자는 이런 왕들을 잘 보좌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교훈(1-9)

누구든 인생의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한 대로 바라는 대로 계획을 세운 대로 되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우리는 그걸 이뤄낼 만큼의 능력이 없고 수많은 변수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최대 변수이시며 또 변치 않는 상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1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2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3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4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5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6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7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8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1-9)

젊은이들에게 가정과 왕궁에서 갖추어야 할 적절한 행동을 가르칩니다. 16장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주제는 모든 행위의 동기를 감찰하시는 하나님과 모든 일을 주관하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것입니다.

(1) 인간의 계획과 여호와의 성취(1-3)

잠언 16:1-9의 단락은 8절을 제외한 모든 절에서 여호와가 등장하여 단락을 구성하고 있으며, 여기서는 여호와의 역할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여호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1-3절은 전체적으로 인간과 여호와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경영’은 인간이 일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말의 응답’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첫째는 단어의 의미를 그대로 살려서 말을 적절하게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마음에 순서를 정하고 생각을 하지만 경우에 합당한 지혜로운 말은 여호와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15:23의 ‘입의 대답’과 연결됩니다. 둘째 해석은 전통적인 해석으로서 입의 대답을 말에만 한정하지 않고 모든 사건으로 확대하여 모든 일의 성취는 여호와께로부터 나온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 해석은 16:3과 연결되어 동일한 주제를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말로 해석하든지 혹은 일의 성취로 해석하든지 간에 인간의 입을 주관하시고 인간의 삶을 주관하시는 이는 여호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꼭 기억해야 할 사항입니다.

2절은 사람의 행위와 심령의 대조로서,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어떤 사람의 모든 행위가 죄나 악한 의도가 없는 순수하고 깨끗한 것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은 행위가 아닌 마음의 상태를 보시기 때문에 그가 악한 의도로 일을 하였는지 혹은 선한 의도로 일을 하였는지 분명하게 평가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시야는 한정되기 때문에 잘못 판단하고 자신과 남을 속일 수 있지만, 결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3절은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성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행사’ 즉, 우리의 일을 여호와께 맡긴다는 것은 여호와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분별하며 일을 계획하고 준비한다는 의미이지 내가 계획을 모두 세운 후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라고 맡기는 태도는 아닙니다. 이렇게 계획 단계부터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계획을 세우고 일을 해나가면 하나님께서 인간이 할 수 없는 부분들과 결과를 책임져주신다는 뜻입니다.

(2) 여호와와 악인(4-8)

4-8절에서는 여호와와 악인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4절은 악인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다’라고 포괄적인 범주를 말한 후에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다’라고 언급함으로써, 말하고 싶은 대상을 꼭 집어서 말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절에서의 핵심 주제는 악인의 존재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온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께서 왜 악인을 만드셨으며 악인을 그냥 두고 보시는지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이에 대해 잠언은 모든 만물이 그의 행위에 상응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악인들에게는 악한 날 즉, 심판의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5절은 악한 자들의 예로서 교만한 자를 들어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매우 가증스럽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이들을 반드시 벌하실 것입니다. 벌을 피하기 위해 인간들끼리 아무리 연대를 하고 함을 키워도 전능한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6절은 하나님의 벌을 피하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인간의 연대가 아니라 인자와 진리를 행하며 여호와를 경외함으로써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고 악에서 떠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자와 진리는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이며, 이같이 인자와 진리를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7절은 6절의 행위의 결과로 이렇게 인자와 진리를 행하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원수라도 화목하게 만들어주신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기쁘시게 한다는 표현은 5절의 ‘여호와의 미워함이라’와 대조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살 길은 오직 여호와께 나오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8절은 7절과 연결하여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행동을 기술합니다. 적지만 공의로운 소득이 정의롭지 못한 많은 소득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공의는 하나님의 성품 중 하나로서, 공의로운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인생을 의미합니다. 이런 삶은 많은 소득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복된 삶입니다.

(3) 여호와와 인간의 행위(9)

19절은 1절과 3절의 내용을 반복함으로써 1~9절까지의 단락을 마감합니다. 결국, 인간의 모든 삶의 길은 여호와의 손에 있으므로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라는 것이 이 단락의 주제입니다.

 

왕에 대한 교훈들(10-15)

한 분 궁극적인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왕을 세우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공의와 공평으로, 인자와 진리로 다스려야 합니다. 그 왕의 백성들 역시 하나님께 하듯이 의롭고 정직한 말로 인간 왕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10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의 입이 그르치지 아니하리라 11공평한 저울과 접시 저울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다 그가 지으신 것이니라 12악을 행하는 것은 왕들이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 13의로운 입술은 왕들이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하게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 14왕의 진노는 죽음의 사자들과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쉬게 하리라 15왕의 희색은 생명을 뜻하나니 그의 은택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10-15)

국가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통치 기관으로, 정의와 고평을 실행하며 강자의 힘을 제어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본적으로 법과 질서를 성실히 지킬 뿐 아니라, 국가기관과 책임자들이 법을 만들고 집행할 때, 하나님의 공의에 맞는지 잘 살펴 여야 합니다.

(1) 왕의 공의(10-12)

10-15절은 왕들에 대한 교훈을 다루는 부분으로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왕들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백성을 다스려야 하는지, 우리는 백성으로서 그 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10절의 금언은 왕을 하나님의 신탁을 받아 재판을 존재로 그리고 있습니다. 왕은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재판 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재판을 하기 때문에 재판장으로서 성실하고 올바르게 재판해야 할 의무를 지녔습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정의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11절의 공평한 저울과 접시저울, 저울추는 상거래를 할 때 사용되는 측량 단위들로서 물건을 팔고 사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가 지켜져야 함을 드러냅니다.

12절에서 ‘왕들이 혐오하는 것’(‘미워할 바’로 번역됨)은 5절의 ‘여호와께서 혐오하는 것’(‘미워하시나니’로 번역됨)과 같은 단어와 형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왕은 하나님이 끔찍이 미워하시는 악을 멀리해야 하고 공의와 공평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왕의 보좌가 든든하게 설 수 있습니다. 왕의 자리를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호와의 공의를 실행하지 않는 왕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그의 날을 단축하십니다. 결론적으로, 공의의 하나님이 백성을 다스릴 왕에게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질은 바로 공의입니다.

(2) 왕의 진노와 기뻐하는 것(13-15)

13-15절은 왕 앞에 섰을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 것이 지혜로운지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왕은 공의를 지키는 선한 왕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이 왕은 의로운 말과 정직한 말을 하는 사람을 기뻐합니다.

14절은 왕의 다른 면모를 이야기하는데, 왕이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리와 주고 빼앗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가 화를 내면 사람의 생명도 빼앗을 수 있다고 진술합니다. 하지만 왕이 화가 난 경우에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의 노를 쉬게 할 수 있으며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왕의 희색은 왕의 얼굴이 밝아졌다는 의미로 지혜로운 말을 듣고 기분이 풀렸다는 의미입니다. 왕의 기분이 풀리면 죽이려고 했던 사람도 살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진 왕은 은혜를 베풀게 되는데, 이는 봄비를 품은 구름으로 비유됩니다. 봄비는 곡식을 여물게 하는 소중한 비로 왕의 은혜가 백성들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왕의 말은 권위가 있기 때문에 지혜자들은 왕을 지혜로운 말로 잘 보필해야 하며 왕은 이런 지혜로운 말을 잘 경청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개인도 나라도 건실하게 세워지려면 지켜져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내 힘으로 이루려는 계획, 그리고 공평과 정의를 배제한 권력은 언제 전복될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관념이 아닌 삶으로 인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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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5-02)


 순종하는 자가 얻는 지혜

잠언 15장 19-33절


노르웨이는 6년 연속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2014 세계 번영 지수’에 따르면, 노르웨이는 8개 분야 중 특히 사회구성원 간의 협조나 네트워크, 자선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서 69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잠언은 다양한 주체들을 통해 사회구성원 간에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로움과 우매함의 구분이 ‘말’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가르침이나 조언자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에게 시기적절한 말로 도움을 주는 자가 지혜로운 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부모를 경시하고 자신만 믿고 모든 것으로부터 귀를 닫아 버리는 자는 죽음의 길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매자의 길과 지혜자의 길(19-24)

지혜자와 우매자를 여러 방면에서 대조합니다. 지혜자가 곧고 평탄한 길을 가는 자라면 미련한 자는 스스로 자기 삶에 장애물을 놓는 사람입니다. 지혜자는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만 미련한 자는 독선적이고 독단적이어서 경영이 무너집니다. 지혜자는 때에 맞는 말을 하며 생명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습니다. 이는 악인의 종착지가 사망인 것과 대조됩니다.

19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20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21무지한 자는 미련한 것을 즐겨 하여도 명철한 자는 그 길을 바르게 하느니라 22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23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24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 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에 있는 스올을 떠나게 되느니라(19-24)

19-24절 단락은 처음과 마지막에 각각 ‘게으른 자의 길’과 ‘정직한 자의 길’ 그리고 ‘지혜로운 자의 생명길’이 나타나 수미일치(처음과 끝에 같거나 유사한 말을 써서 단락을 나타내고 강조하는 형식)를 이루며 한 단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19절의 금언은 게으른 자의 길을 가시밭으로, 정직한 자의 길을 ‘대로’(15:19)로 묘사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게으른 자의 대조로 부지런한 자가 아니라 ‘정직한 자’를 들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게으름이 단순히 꾸물거리고 일을 미루는 것만이 아니라 부정직한 말이나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런 게으른 자가 가는 길은 가시 울타리와 같습니다. 이 ‘가시 울타리’는 게으른 자가 걷는 길에서 만나는 문제들, 곧 장애물을 말합니다. 반대로, ‘정직한 자’가 가는 길은 높이 쌓아 올린 길이며 장애물을 찾아볼 수 없는 곧고 평탄한 길입니다.

20-21절은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20절에서 지혜자는 10:1과 같이 부모를 기쁘시게 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출애굽기 20:12의 계명을 지키며 부모를 공경할 뿐만 아니라 부모가 전하는 훈계를 들으며 그 훈계로부터 지혜를 얻습니다(4:1; 13:1). 반면, 미련한 자는 부모의 가르침과 경책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13:1; 15:5), 더 나아가 부모를 멸시하고 경멸합니다(19:26). 나를 낳고 기르신 부모를 공경하고 기쁘시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뜻을 따르는 지혜자의 참 모습입니다.

21절은 미련한 자의 헛된 즐거움을 20절의 지혜자의 참된 즐거움과 대조하여 교훈하는 금언입니다. 21절의 ‘미련한 것’은 문자적으로 ‘마음이 미련한 것’을 말합니다. 무지한 자가 스스로의 마음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을 따라 행악하기를 즐거워하며 악인의 길을 걷는다는 의미입니다(10:23; 15:9).

22-23절은 조언에 대한 금언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22절에서 미련한 자는 자기 계획이나 생각을 다른 이들과 의논하지 않는 자로 소개됩니다. 그는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겨 자신의 미련함을 따라 혼자 결정하기 때문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11:14과 같이 친밀하게 조언하는 자들을 곁에 많이 두고 신중하게 판단하여 행하기 때문에 자기가 뜻한 바를 이룹니다. 이처럼 일을 계획하고 진행함에 있어서 나를 맹신하는 교만에 빠지지 말고, 주위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뜻하는 바를 이루는 지혜입니다(13:10). 23절에서는 특히 적절한 때에 건네는 올바른 조언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24절에는 19절에 나타난 ‘길’의 주제가 다시 반복되어 나타나 서로 연결됩니다. 여기서도 선택할 수 있는 두 길을 제시합니다. ‘위로 향하는 길’과 ‘아래로 향하는 길’은 각각 ‘생명의 길’과 ‘스올(죽음)로 가는 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가는 길은 19절에 언급되었듯이 높이 쌓여 걸릴 것이 없는 곧게 뻗어 있는 길로서 생명을 주는 길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길이 지향하는 곳과 종착하는 곳은 죽음입니다.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과 기뻐하시는 것(25-29)

여호와는 자신을 경외하는 지혜자를 기뻐하시고 자신을 멸시하는 미련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교만한 자와 악인의 잔꾀를 미워하셔서 그들의 집을 허십니다. 그들이 뇌물로 얻은 불의한 이익이 도리어 그들의 집을 해롭게 하게 하십니다. 악인은 멀리하시지만, 의인의 기도는 들으십니다. 의인이 숙고하여 내놓은 선하고 정결한 말을 기뻐하십니다.

25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 26악한 꾀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 27이익을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게 되느니라 28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29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25-29)

15장의 마지막 단락인 25-33절에는 ‘여호와’란 명칭이 다른 곳보다 자주 나타나면서(25, 26, 29, 33), 10-15장의 주제들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즉, 지혜로운 아들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여호와의 훈계를 따르는 자라고 요약됩니다. 특히 25-29절은 말에 대한 주제가 두드러져, ‘의인의 선한 말’(26), ‘대답할 말’(28), ‘기도’(29)와 함께 악인의 입으로 쏟는 ‘악한 말’(28)이 나타납니다.

25절의 금언은 여호와가 교만한 자를 미워하고 그 집을 허무신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집’은 장소적 개념만이 아니라 가족 집안의 의미를 포함하고 모든 재물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교만한 자가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며 자신의 것을 쌓지만 여호와는 그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심으로 그를 심판하심을 명백히 설명합니다. 반면, 가난한 과부는 의지할 곳이 없기에 겸손히 여호와만 의지하고 그의 도움을 받는 자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이 직접 그들의 삶에 관여하시고 그들을 돌보십니다.

26절에서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악인의 집을 무너뜨리실 뿐만 아니라(25)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행위의 시발점이 되는 악한 생각과 계획도 몹시 싫어하심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꿀송이 같이 달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는’(16:24) 의인의 선한 말은 여호와께서 귀히 여기십니다.

27절은 경제생활에 관한 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합당하지 않은 이익에 마음을 빼앗겨 다른 이들을 해하며 이익을 챙기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그와 같은 불의한 재물은 결국 그 사람의 집안을 해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불의의 재물을 싫어하는 지혜로운 자는 생명을 소유하게 됩니다. 결국, 의인의 집은 든든히 세워지며, 여호와가 그 집을 풍성케 하십니다(12:7; 14:1; 14:11; 15:6).

28-29절에는 잠언의 주요 단어인 ‘의인’과 ‘악인’이 교차 대구를 이루며 언어생활에 관한 금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28절은 2절과 유사한 내용으로서 의인은 사려 깊은 말을 하지만, 악인은 거침없이 악을 내뱉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고 설명합니다. 29절에서는 각각 의인과 하나님, 악인과 하나님의 관계를 묘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와는 관계를 단절하시나 의인과는 가까이하시고 그의 기도에 귀 기울이십니다.

 

훈계를 따르는 자와 싫어하는 자(30-33)

지혜를 추구하는 삶은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며, 동시에 우리 전 인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지혜를 추구하면 마음에 선한 질서가 작동하여 몸과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마음의 즐거움으로 얼굴이 빛나고, 뼈가 든든해집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은 우리를 존귀한 자로 사람과 하나님 앞에 서게 합니다. 이는 모든 관계에 있어서도 건강해진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30눈이 밝은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 31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에 있느니라 32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 33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30-33)

30-33절에는 ‘경계’, ‘훈계’, ‘견책’이라는 단어가 공통적으로 나와 서로 연결되며, 훈계를 따르는 자와 훈계를 싫어하는 자를 대조합니다.

30절의 금언은 지혜가 훈계를 따르는 자의 눈을 밝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육체에도 활력을 주고 강건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31절에서는 지혜자를 ‘생명을 주는 교훈을 듣는 귀를 가진 자’로 설명하는데 이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귀로만 듣고 끝나는 행위가 아니라 삶으로 응답하는 순종이 있어야 함을 확실히 설명해줍니다.

이와 반대로, 훈계를 받기 싫어하는 자는 32절에서 자신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생명을 버리고 죽음의 길을 선택한 미련한 자입니다.

33절의 금언은 여호와 경외가 지혜의 훈계라고 선언합니다. 잠언의 서문(1:2)에서부터 나온 단어인 ‘훈계’는 무엇보다 지혜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지혜의 대치어로 나오며,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로 소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훈계 듣는 일을 기뻐하지 않지만, 잠언에서는 계속적으로 그 훈계를 소홀히 여기지 말고 거절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훈계를 들으면 지혜로운 분별력과 통찰력을 얻고 그에 따른 유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훈계는 여호와 경외를 그 밑바탕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33절에서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바로 지혜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훈계의 내용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9:10)이며 나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3:5-7)을 의미합니다.


자기 입장과 맥란만 중요시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고르반이나 모르쇠로 반응하지 말고 굳게 드리운 휘장을 찢고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적극적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예방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각박한 일상에서 무엇을 통해 활력을 돋우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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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5-01)


 의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잠언 15장 1-18절


말은 곧 그 사람 자신이고, 예배는 그의 신앙 자체이며, 행복에 관한 생각은 그의 가치관을 대변합니다. 만일 여기에서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다면 말도, 예배도, 행복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진실한 마음에서 그 사람의 성품과 가치관, 본성이 집약되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다음 항목을 통해 우리의 진정성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의인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을 하며 아버지의 훈계를 따르고 여호와 경외함으로 마음을 즐겁게 하여 주위에 덕을 끼치는 자입니다. 반면, 우매한 악인은 말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며 아버지의 교훈을 멸시하고 분을 쉽게 내는 미련한 길을 걷는 자입니다.

 

온화한 말과 과격한 말(1-4)

말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실제로 말을 잘 다루고 잘 듣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아무리 언변이 유창해도 그 말에 진정성을 담지 못하면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힘듭니다.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따뜻한 말은 생명나무와 같습니다.

1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2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3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4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1-4)

1절은 나의 말이 상대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오는지를 설명해줍니다. 나의 부드러운 대답은 상대방의 분노조차 내쫓지만, 고통과 모욕이 담긴 말은 상대방의 화를 끓어오르게 합니다.

1절과 수미일치를 이루는 4절은 나의 말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언급합니다. 여기서 ‘온순한 혀’는 ‘치료의 혀’라는 뜻이고 ‘폐역한 혀’는 ‘속임의 혀’, ‘사악함의 혀’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말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생명나무와 같지만 사악한 말은 영혼을 깨부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1, 4절을 2, 3절과 연결해서 볼 때, 심한 말과 속임의 말로 남에게 고통을 주는 자는 미련한 자며 악한 자입니다. 정직한 말을 하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며 부드럽게 말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며 선인이고, 이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는 말을 언제 어디서나 다 감찰하십니다. 그만큼 언어생활은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언어가 나와 상대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신중하게 생각하여, 일상의 말이나 행동에서 늘 여호와 경외를 근본으로 온화함, 신실함, 정직함이 진심으로 배어 나오도록 애써야 합니다.

 

훈계를 따르는 지혜자와 거부하는 우매자(5-12)

훈계를 따르는 어부가 지혜의 유무를 결정합니다. 벌써 여러 번 반복되는 주제입니다. 그만큼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과 타인으로부터 겸허하게 권면과 책망을 수용하여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자가 지혜롭습니다. 실수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 실수를 통해서 더 온전해지는 것이 지혜입니다.

5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6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 7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하여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정함이 없느니라 8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9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10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 11스올과 아바돈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리요 12거만한 자는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5-12)

5-12절에서는 지혜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우매자가 각각 ‘미련한 자’와 ‘거만한 자’로 5절과 12절에 소개되어 하나의 단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5절에서 슬기로운 자는 지혜로운 아들로서, 앞서 10:1; 12:1; 13:1; 15:10에서 언급되었듯이 아버지의 훈계를 따르며 그의 책망을 듣고 삶을 고치는 자입니다. 반면, 우매자는 삶의 경험과 지혜에서 오는 아버지의 훈계를 하찮게 여기며 따르기를 거부합니다.

6-7절에서 지혜자는 아버지의 훈계를 받아 그 지식을 마음에 쌓으며(2:1; 9:9; 10:14; 13:1), 그 입술로 지식을 널리 전파하는 자로 설명됩니다. 의인은 지식만 얻는 자가(5) 아니라 집에 보물도 쌓아 이웃에게 나눠주는 자입니다(6). 반면, 악인의 불의하게 모은 재물은 그와 그의 주변 사람에게 불안과 고통을 주고(6), 궁극적으로는 파국으로 치닫게 만듭니다(10:1-5). 그의 마음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식 또한 없기에 미련하고, 기본 바탕이 견고하지 않으며 올바르지 않습니다(7). 그러므로 믿을 수 없는 악인의 말은 결국 공허하게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한편, 8-9절은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과 기뻐하시는 것을 악인과 의인의 대조되는 예배 생활과 삶을 통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행악자의 길을 가면서 형식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절대로 받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정직하고, 의로운 삶을 사는 자의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의 일상 모습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정직한 언행과 공의를 따라 사는 모습이 일상에 지속하여 나타날 때 하나님이 기도와 예배를 받으시며, 그러한 자가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10-12절의 금언들은 하나님이 바른길을 저버린 자와 책망받기 싫어하는 자를 엄히 징계하고 심판하실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10절을 5절과 연결해서 볼 때, 자신의 잘못이나 허물에 대한 책망과 징계를 받는 것을 싫어하는 자는 곧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미련한 자로서 필연적으로 죽음의 심판을 맞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11절은 사람이 볼 수도 없고 근접할 수 없는 곳인 스올과 아바돈 즉, 죽음의 영역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드러난다는 점을 밝힙니다. 3절에서와같이 감찰하시는 여호와 앞에서는 숨길 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 사람의 마음과 행위뿐만이 아니라 숨겨 있는 모든 것도 하나님께서는 보고 아십니다(시 139:1-4, 7-8; 눅 12:2). 그러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감찰하시고 나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의 교훈을 받으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거만한 자는 책망받기를 싫어하여,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지혜자들을 피하는 우매한 자입니다(12).

 

즐거운 마음과 근심의 마음(13-18)

지혜의 길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선순환의 질서를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물론 악한 세력의 반대도 있고, 또 의미 있는 역사는 시간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변수도 있지만, 궁극에는 즐거움과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질서를 거스르면 눈앞에의 성공에도 마음에는 근심과 불안이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분을 내고 미워하고 번뇌하게 됩니다.

13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14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15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16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7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8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13-18)

13-18절은 내면의 즐거움과 근심을 대조적으로 묘사한 금언이 주를 이릅니다.

13, 14절은 원문에서 ‘마음’이라는 단어가 각 절의 첫 단어로 등장하여 반복됨으로써 지혜자와 우매자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금언에서는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지혜자의 삶이라고 제안합니다. 13절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즐거움이 밖으로 드러나 사람의 얼굴을 빛나게 하지만, 마음에 근심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는 ‘심령’(영혼)을 상하게 한다고 지적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지혜자의 삶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라 하더라도 바른 마음을 갖고 즐거워하는 것이 영육 간에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웁니다.

14절의 금언은 명철한 자는 마음에서부터 지식을 얻으려고 노력하여 찾고 구하나 미련한 자는 입으로 미련한 것을 즐길 뿐이라고 가르칩니다. ‘즐기다’는 원래 ‘목양하다’라는 의미로서, 미련한 자가 자신의 마음뿐 아니라 입으로도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그런 어리석음을 추구하여 더욱더 미련한 자의 삶을 키우게 됨을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런 우매자의 모습은 지혜자가 마음을 잘 다스려 점점 더 지혜로워지는 모습과 상반됩니다.

15절의 ‘고난받는 자’는 16-17절과 연결하여 볼 때 ‘가난한 자’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15절에서는 가난한 자가 험악한 현실 속에서 어려움과 고통과 불행을 겪고 있음을 묘사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삶의 현장이 가난과 고통 속에 있음을 드러내 줍니다. 그러나 마음이 즐거울 때는 어려운 환경이 닥쳐도 고난으로 여기지 않고 내적 안정과 평안을 소유하게 되어 날마다 잔치하듯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됩니다. 특히 15절은 13-14절과 16-17절의 중심에 등장하고 마음과 ‘즐거운(좋은)’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두 단락을 의미상 서로 연결해줍니다.

16-17절에는 ‘~하는 것이 ~보다 낫다(좋다)’라는 표현이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16절에서 ‘가난한 자’의 모습은 15절의 고난 받는 자와 연결성을 가지며, ‘부한 자의 마음과 대조되어 나타납니다. 비록 가난하여 많은 것을 누리지 못하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이 재물이 많아 다투고 시기하는 삶을 사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이처럼 여호와 경외의 가치는 삶에 질적인 기쁨과 풍성함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지혜를 소유하는 것이 많은 재물을 소유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가치 있습니다. 17절은 15절처럼 잔치와 먹고 마시는 장면을 예로 들었으며, 이번에는 두 종류의 식사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비록 가난하여 채소를 먹을 수밖에 없어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잔칫상에 차려진 기름진 음식을 먹으며 싸우는 것보다 낫습니다.

17절도 16절과 마찬가지로 지혜로운 자의 삶이 물질의 소유나 그 풍부함에 있지 않음을 교훈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곧 여호와를 경외하며 사는 지혜자의 삶입니다.

18절은 다시 1절의 ’분노’와 연결됩니다. 1절에서는 유순한 대답이 분노를 내쫓는다고 설명하였고, 18절에서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쉽게 표출하면 싸움만 커질 뿐 화평을 가져올 수 없다고 말합니다(14:17; 29). 즉, 화평한 말을 할 줄 알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강한 절제력을 실천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말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예배는 하나님의 관계에서, 행복은 가족과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또한, 그 어느 것 하나에서도 진심이 빠져선 안 됩니다. 지금 우리의 삶에서 가장 삐걱거리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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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4-02)

 


가난한 자를 지으신 하나님

잠언 14장 20-35절


안녕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배후를 들여다보면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기독교인입니다. 부패한 사회 현상의 들러리가 되는 것도 모자라 앞장서고 있으니 통탄할 일입니다. 손에 넣은 것은 다 독점하려는 자는 결국 자기 꾀에 잠식당할 것입니다. 시험대에 오른 기독교 신앙, 어떻게 건져낼 수 있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함으로써 나와 하나님 간의 올바른 관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그를 의지하며 그의 성품과 말씀을 따라 살 때 나와 나 자신, 나와 타인 사이에도 올바른 관계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경외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왕과 같은 제사장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데 기초석이 되어줍니다.

 

악과 선을 도모하는 자(20-24)

지혜로운 자는 재물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재물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참다운 지혜는 인자와 진리를 사랑하는 성품을 동반하여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깁니다. 이런 마음이 있기에 지혜 있는 자에게 재물은 면류관이 되지만 어리석은 자에게 재물은 미련한 것이 됩니다.

20가난한 자는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21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22악을 도모하는 자는 잘못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 23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24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미련한 것이니라(20-24)

먼저 20-24절은 부와 재물에 관련된 금언과 악과 선을 도모하는 자의 대조를 보여줍니다. 20절은 부와 가난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말합니다. 가난한 자의 궁핍과 고통은 물질에서만 나타나지 않고 이웃 관심의 부재와 인색한 마음에서 비롯된 미움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부유한 자는 재물이 풍부하므로 그의 주변에 친구가 많습니다. 20절이 부와 가난으로 인해 타인에 게 어떤 응대를 받는지에 대해 말한다면, 21절은 가난한 자를 대하는 태도를 대조하여 이웃을 업신여기는 죄를 짓지 말고 가난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행복을 맛보라고 권합니다. 22절의 금언은 악을 계획하는 자와 선을 계획하는 자를 대조합니다. 여기서 ‘도모하다’라는 ‘밭을 갈다’, ‘일구다’의 뜻으로서, 선악을 계획하는 것을 선악을 심고 거두는 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즉, 악한 음모를 갈고 있는 자는 제대로 좋은 것을 수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을 일구는 자는 인자와 진리를 얻습니다. 인자와 진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리키는 데 자주 사용되었으므로 선을 추구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지지와 관심과 보호를 받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3, 24절은 20, 21절과 마찬가지로 부와 재물에 관련된 금언입니다. 23절은 일이나 노력은 하지 않고 말만 앞세운다면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음을 교훈합니다. 24절은 앞서 18절이나 4:9; 8:21과도 연결됩니다. 앞에서는 지혜와 지식이 사람의 면류관이라고 언급했는데, 14:24에서는 지혜자의 재물이 사람의 면류관이라고 말합니다. 이 금언은 재물 자체보다 재물을 소유한 자와 재물 관리에 초점이 있습니다. 지혜자에게 재물이 있다는 말은 그가 정직하게 재물을 모았거나, 분별력이 있어 가진 재물을 자신과 남을 위해 적절히 쓸 줄 안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의미든 여기서는 지혜자가 소유하거나 사용하는 재물은 그 사람의 됨됨이, 분별력, 긍휼을 보여주는 영화로운 면류관과 같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소유를 모으거나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자기의 미련함만 보일 뿐입니다.

 

여호와 경외의 유익(25-27)

지혜로운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입니다. 그는 진실한 말로 타인의 생명을 구하며 거짓말로 속이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강하게 신뢰하기에 두려움이 없으며 그 자녀에게도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그 확신 때문에 생명의 샘처럼 생명의 활력과 생기 넘치게 살 수 있습니다.

25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26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27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25-27)

25-27절은 정직과 여호와 경외에 대한 금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25절을 포함하여 진실한 증인에 대한 권유와 거짓 증인에 대한 경고는 잠언에 종종 나옵니다(5; 19:5, 9.28; 21:28; 24:28; 25:18 등). 이는 법정에서나 일상에서의 거짓말이 중죄임을 확실히 밝히고, 정직한 말을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권유합니다. 26절과 27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유익과 이에 따르는 영향력을 설명합니다. 26절은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흔들리지 않는 신뢰가 되어주실 뿐 아니라 그의 자녀에게도 지정의와 사랑을 실천하게 되어 사회적, 윤리적, 신앙적으로 패망과 죽음으로 인도하는 덫에 피난처가 되어주신다는 점을 밝혀 여호와 경외의 영향력을 교훈합니다. 27절은 여호와 경외를 생명의 샘으로 비유하며 여호와 경외가 기쁨과 활력과 생기와 치료의 근원임을 드러냅니다. 그뿐 아니라 여호와 경외를 통하여 하나님이 내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지 알게 되므로, 매사에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게 되어 사회적, 윤리적, 신앙적으로 패망과 죽음으로 인도하는 덫에 빠지지 않도록 해준다고 설명합니다. 13:14에서는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을 생명의 샘으로 표현했는데, 이 구절과 연결해서 볼 때 지혜자의 교훈이 여호와 경외를 기반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실히 말해줍니다.

 

지혜로운 왕과 백성(28-35)

지혜로운 왕은 자기 위에 참다운 왕이 계심을 아는 자입니다. 따라서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속히 분내지 않으며 권력을 남용하여 백성을 학대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공의로 나라를 다스립니다. 지혜로운 신하 역시 왕에게 은총을 입습니다. 지혜로운 백성과 왕이 만날 때 여호와께서 복을 내리시는 견고한 나라가 설 수 있습니다.

28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29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30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31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32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33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 34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35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에게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28-35)

28-35절은 첫 부분인 28절과 마지막 부분인 34, 35절에 왕과 백성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어 한 단락을 형성하고 그 중간에는 여호와 경외와 지혜자, 어리석음과 지혜 등에 대한 교훈을 제시합니다.

잠언 10장 이후로 14:28에서의 왕의 첫 등장은 26-27절과 연결하여 볼 때, 여호와를 경외하고 신뢰하며 영적, 도덕적으로 생명의 샘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모범으로 예시된 것입니다. 왕의 자격과 역할에 대해 신명기 17:14-20에서 구체적으로 소개되었듯이 하나님이 왕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영적 지도자로서 하나님이 맡기신 백성을 정의와 공평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늘 듣고 배워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28절에 의하면, 왕의 영광을 보여주는 것은 군사력이나 다른 나라와의 정치적 유대 관계나 자신의 부귀와 명성이 아니라 그를 지도자로 존중하며 지지하는 백성이 많고 적음에 있습니다.

29절은 감정 표출에 대한 경고로서 첫째, 분노를 늦추라고 권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로 소개하셨습니다(출 24:6), 하나님도 인간의 무지와 실수와 죄에 대해 긍휼한 마음으로 참으심을 기억하여 내 안에 솟구치는 분노의 불길을 꺼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이야말로 지혜자와 의인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둘째, 성급한 마음을 삼가라고 권고합니다. 감정과 순간의 판단이 이성을 앞지르게 두는 것은 올바른 판단력과 통찰력을 흐리게 하는 어리석은 일이며, 이로 인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인내심과 이해심을 갖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언행을 실천하는 훈련이 우리에게 요구됩니다. 29절에 이어 30절도 내면에 대한 금언으로서, 마음에 명화가 있으면 영육 간에 생명력이 지속되지만 시기와 질투가 있다면 뼈가 썩듯 몸과 마음에 고통과 죽음이 따름을 설명합니다. 4:23이나 5:2, 6에서 언급하였듯이 마음을 지키는 것이 생명의 근원이며 생명의 길입니다.

31절은 21절과 연결됩니다. 21절에서는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였고, 이제 31절에서는 그와 같은 행위가 근본적으로 여호와를 존경하는 데서 나온다고 설명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다른 이의 필요를 살피고 긍휼히 여기며 존중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타인이나 나를 동등하게 흙에서 창조하셨으며 관심 있게 돌보고 계심을 깨닫고 인정할 때 생기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난한 자를 돌보는 일이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의무(레 19:15; 신 10:17-19; 시 72:4, 12-14: 잠 31:9)임을 제대로 알고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32절은 의인이 죽음의 순간에도 피난처를 얻을 수 있는 것(‘소망이 있느니라’로 번역됨)은 그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33절은 지혜와 우매의 장소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는 앞서 13:16에서도 슬기로운 자를 여호와 경외의 지식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행동하는 자로 소개하면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력을 바탕으로 부주의하게 어리석음을 펼치는 미련한 자와 대조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34, 35절은 다시금 28절의 왕과 백성의 주제로 돌아갑니다. 정의가 실행될 때 도시와 나라가 번영하지만(11:11), 지도자나 백성의 죄는 나라를 망칩니다(34). 왕은 슬기로운 신하와 욕을 끼치는 신하를 분별하여 나라를 견고히 세워야 합니다. 이처럼 한 나라의 견고함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정의를 구현하는지 여부에 달려있습니다.


흙으로 지음 받은 우리는 이 땅에서 청지기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지혜로운 자만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들을 잘 관리할 수 있습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는 지혜로운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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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4-01)


지혜자와 우매자의 대조한 지혜

잠언 14장 1-19절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그 길이 반드시 사망의 길(12)이라는 말씀 앞에 멈추어봅니다. 사람이 보는 눈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는 사람 자체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내 삶을 헛되이 하는 일, 내 죽음마저 헛되이 하는 일, 그 출발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이나 생각, 언어와 행실,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이해하기에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 무지와 나약함을 인정하고, 삶의 질서뿐 아니라 삶의 무질서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지혜자와 우매자의 말(1-6)

지혜의 길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 때문입니다. 그 출발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멸시하는 것이며, 그 끝은 생명의 번성, 그리고 패망과 죽음입니다. 그 삶의 방식은 정직과 깨끗함, 거짓과 더러움 등으로 명확히 구분됩니다. 우리가 취할 태도는 분명합니다.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는 것입니다.

1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2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하느니라 3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4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5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6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7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8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1-8)

1절은 지혜로운 자의 집 짓는 주제를 소개합니다. 지혜로운 여인이 집을 짓는다는 말은 가족을 위해 자기의 시간과 재능과 지혜를 쏟는다는 의미입니다. 31:10-31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현숙한 여인(‘힘의 여인’)에 대한 이상적인 묘사가 지혜로운 여인이 집을 세우는 예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미련한 여인은 게으르고 어리석으므로 있는 집조차 자신의 손으로 허물게 될 것입니다.

이 지혜의 여인이나 미련한 여인은 문자 그대로 지혜롭거나 미련한 여인을 의미하기도 하고 지혜와 우매 자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금언이 말하려 하는 것은 한 가정을 제대로 세우는 데 있어 여호와 경외를 기초로 하는 정직, 근면, 언행 등을 실천하는 지혜가 필수라는 것입니다.

2절에서는 정직한 삶과 그릇된 삶을 사는 자들의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여호와에 대한 태도에서 찾습니다. 정직한 길을 가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하나님의 성품과 말씀을 따라 자기도 정직과 의의 삶을 실천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멸시하는 자는 그의 말씀 또한 업신여기므로 자기 멋대로의 삶을 삽니다.

이와 같이 잠언이나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지식적인 면만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항상 같은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3, 5절은 지혜자와 우매자의 언어생활을 통해 2절에서 언급한 정직한 삶과 그릇된 삶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정직을 말하며 말이 필요한 때가 언제인지 분별하고 조절할 수 있는 절제력을 또한 그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신실한 자이므로 오직 진실을 말하는 증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정직한 언행을 통하여 자신과 남들을 위기에서 구하고 존귀를 얻습니다(10:21; 12:8, 13; 13:6). 그러나 미련한 자의 입에는 교만의 막대기가 있어 말을 함부로 하고 남에게 상처를 줍니다. 또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아무 때나 감정을 쏟아 표현하며 거짓말을 늘어놓아 자신에게 수치를 가져오고 남도 멸망시킵니다(10:31; 12:13, 16-20; 13:2-3),

4절에서는 소가 없으면 구유도 없으므로 처리할 일도 없고 몸이 편하지만, 소를 돌보고 잘 키우면 밭을 갈거나 추수 때와 곡식을 털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어 유익하다고 설명합니다. 1절의 집을 세우는 여인처럼 가축이나 집안의 돌봐야 할 것을 제대로 돌보면 본인과 가정에게 이득이 돌아온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6-8절은 지식과 관련하여 거만한 자와 지혜로운 자를 구분합니다. 미련한 자는 종종 거만한 자 즉, 남을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자, 남의 훈계를 싫어하고 거절하는 자로 소개됩니다(9:7-9). 이처럼 거만한 자가 지식을 찾으려 해도 지식은 거기 없지만, 분별력 있는 자는 지식을 찾는 일이 쉽습니다. 이 지식은 판단력이나 통찰력을 의미하는데, 이런 지식에는 여호와 경외가 그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근본적으로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으므로 바른 판단력과 통찰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말에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써 얻게 되는 지혜와 선 대신 어리석음과 거짓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이나 언행을 왜곡하고 쉽게 타협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분별력 있는 자는 겸손함으로 지혜를 추구하므로 어떤 생각이나 언행에 있어서 여호와 경외가 깃들어 있는지를 쉽게 분별합니다. 또한, 자기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가고 있는 목적지가 바른지를 똑바로 파악합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9-15)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지혜는 그 이면을 보고 더 멀리까지 보는 능력입니다. 속단하지 않고 판단을 유보하며 오늘의 행복이 내일의 불행의 실마리가 되고 오늘의 고난이 내일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톱니임을 아는 능력입니다. 눈앞의 이득을 위해 원칙을 포기하지 않고 오늘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능력이 지혜에서 나옵니다.

9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10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은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11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12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13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14마음이 굽은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가득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 15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행동을 삼가느니라(9-15)

9-15절의 대부분의 금언은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에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이중성이 있음을 교훈합니다.

9절에서는 죄를 가볍게 보는 어리석음을 지적합니다. 죄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없는데도 미련한 자는 자신의 죄를 우습게 생각하는 착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는 타인이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회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정직한 자는 죄의 심각성을 깨달은 자이므로 죄를 지었을 때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여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께 회개하여 용서와 은총을 입게 됩니다.

10절의 금언은 사람의 마음의 진정한 상태를 알고 그 감정을 공유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이 금언이 자기 마음의 고통과 즐거움을 아는 자는 자기 자신뿐임을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기 마음의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아시는 분이 하나님뿐임을 기억하라고 넌지시 강조합니다.

11절은 1절의 ‘집’의 주제로 돌아가 악인들의 집과 정직한 자들의 집의 흥망을 대조합니다. 1절에서 지혜와 우매가 집을 세우고 허무는 요인이라고 말했다면 여기서는 경건과 불경건 또는 정의와 불의가 집을 흥하게 하고 망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가정이나 공동체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서는 지식과 신앙과 윤리가 함께 역동적으로 작동해야 함을 말합니다.

12, 13, 15절은 9, 10절과 유사하게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며 안 보이는 부분에 대조적인 요소가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12절에서는 ‘길’을, 13절은 ‘감정’을, 15절은 ‘말’을 주제로 들었습니다.

12절에서는 사람이 보기에는 바르나 사망으로 가는 길이 있고, 이와 반대되는 길도 있다고 소개합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가는 인생의 여정이나 남이 가는 인생의 여정의 끝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의 길을 쉽사리 판단하고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동시에 내가 가는 길을 주의 깊게 살펴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그분의 말씀을 따라가고 있는지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이제 13절은 누군가의 웃음 속에도 슬픔이 담겨 있을 수 있고 즐거움의 끝이 근심과 눈물로 변할 수도 있음을 나타냅니다. 즉, 사람의 현재나 미래의 감정은 복잡하고 미묘하므로 겉모습만을 보고 사람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또한, 현재의 모습으로 장래의 모습을 단정 짓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15절에서는 아무 말이나 쉽게 믿는 분별력 없는 우매자의 모습과 자신의 행동을 살피고 삼가는 지혜자의 모습을 대조하여 외관상으로 드러나는 언어와 행실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주의하도록 교훈합니다. 이처럼 삶에 있어서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을 언급하는 것은 삶의 복잡성과 인간의 한계성을 깨달아 겸손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더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남을 존중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지혜자와 우매자(16-19)

집을 세우거나 무너뜨리는 것, 집안을 망하게 하거나 흥하게 하는 것, 다 자기 손으로 하는 일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몸을 삼가고 두려워할 줄 알기에 악을 피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자신만만하여 조심성이 없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자신은 물론이고 한 가정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16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17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18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19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한 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16-19)

16-19절은 지혜자와 우매자, 의인과 악인의 본질과 보응에 대해 언급합니다.

16절은 1, 8절 등의 지혜로운 자의 특징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떠나는 삶을 사는 것임을 재확인해줍니다. 이에 반해 어리석은 자는 건방지고 교만하여 스스로를 최고로 여긴다고 지적합니다. 17절은 악인의 보응을 언급하는 금언으로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악을 계획하는 자는 어리석음과 죄에 빠지며 다른 이로부터 미움과 수치를 당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18절은 6-8절과 유사하게 지식과 관련하여 지혜자와 우매자를 설명합니다. 우매한 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마치 유산처럼 상속받고 자기뿐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전달하려 듭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지식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면류관을 쓰듯 자기 머리를 지식으로 장식합니다.

19절은 의인과 악인의 상관관계를 설명합니다. 악인은 그의 행악으로 인해 결국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의인 앞에 굴복하며 그에게 은혜를 구하고, 의인에게 복종하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꾀에 속는 줄도 모르고 자신이 최고인 줄 압니다. 하지만 지혜 있는 사람은 불리해 보여도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가기에 무한 은혜를 공급받으며 나아갑니다. 당신은 자신의 가정을 어떻게 이끌고 가겠습니까? 하나님께 더 많은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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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3-02)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는 지혜

잠언 13장 14-25절


잠언은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결말에 대해서 명백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일수록 결말의 해답을 지혜를 따르는 데서 찾지 않고 지혜를 거슬러 계속 역주행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얻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생명과 패망이라는 갈림길에서 나와 우리 가정이 생명의 샘에 거할 수 있는 지혜에 귀를 열어봅시다.

 

지혜 있는 자의 가르침은 본인과 다른 사람에게 생명의 샘과 같이 삶에 기쁨과 생기와 활력을 가져다줍니다. 그 가르침을 겸손히 받는 자는 지식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분별력과 통찰력을 얻게 되므로 어떤 어려움과 위기라도 지혜롭게 대처해나갈 수 있습니다.

 

지혜자와 선한 교훈(14-19)

성경에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얻는 창조질서나 세상의 이치에 대한 밝은 이해를 의미하기도 하고 실제적인 기술을 뜻하기도 하며 올바른 분별력이나 판단력을 뜻하기도 합니다. 지혜자의 가르침과 교훈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쓸데없는 자존심과 헛된 명예욕은 사망의 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위기는 내면을 살피게 하고, 생명의 길을 안내하여 자신을 변화하도록 이끕니다.

14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15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사악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16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거니와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 17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 18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받는 자는 존영을 받느니라 19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느니라 20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21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22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 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23가난한 자는 밭을 경작함으로 양식이 많아지거니와 불의로 말미암아 가산을 탕진하는 자가 있느니라 24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25의인은 포식하여도 악인의 배는 주리느니라(14-25)

본문은 지혜 있는 자의 영향력을 생명, 샘, 양약으로 다양하게 말합니다. 이어서 훈계를 수용하는 것의 중요성,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재물의 비유들을 이야기합니다. 지혜는 자신뿐 아니라 자손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1) 지혜자와 선한 교훈(14-19)

잠언 13:14-19은 12-19절 단락의 일부입니다. 12절과 19절에 ‘소원’이란 단어가 공통으로 나와 한 단락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중간에는 17절을 제외하고 훈계와 말씀의 유의와 관련한 금언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17절도 언어와 관련된 ‘사신’(‘전령’의 의미)에 대한 금언이므로 다른 구절들과 연결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시작인 14절은 지혜자의 ‘가르침’(‘교훈’으로 번역됨)에 대해 설명함으로써 13절의 말씀, 계명과 연결되며, 가르침의 유익으로 제시한 생명의 샘은 12절의 소원의 성취를 표현한 ‘생명나무’와 의미상 연결됩니다. 지혜자의 가르침은 말씀이나 계명처럼 여호와 경외를 기초로 하는 내용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지혜자의 가르침은 가르침 받은 자에게 마땅한 보상을 제공해 주는데(13), 그 보상에는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생명의 샘과 같은 역할도 포함되었습니다(14). 즉,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죽음처럼 다가오는 위기와 어려움을 자기가 받은 가르침의 잣대로 판단하고 선택함으로써 건짐을 받을 수 있고, 샘에서 물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듯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며 정의와 사랑을 실행함으로써 신앙과 생활에 생명력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15절에서는 14절의 지혜자의 가르침이 선한 지혜와 연결되는데, 이때 선한 지혜는 ‘선한 분별력’ 또는 ‘좋은 지각’(시 111:10)을 의미하며, 신실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자의 생각이나 분별력과 대조됩니다. 지식적, 도덕적, 신앙적으로 선하고 적절한 판단력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은혜를 베풀 수 있게 만듭니다. 이와 같은 올바른 분별력은 여호와 경외에서 비롯됩니다. 16절에서는 슬기로운 자를 여호와 경외의 지식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행동하는 자로 소개하면서,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력을 바탕으로 부주의하게 어리석음을 펼치는 미련한 자와 대조합니다.

17절은 ‘악한 사자’와 ‘충성된 사신’을 대조하는 금언입니다. ‘악한 사자’는 자기를 보낸 주인에게 충성되지 못하고 주인의 의견을 제대로 전해주지 못해 주인을 궁지에 몰아넣는 종입니다. 그러나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종은 정직과 전략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주인과 자신에게 양약(‘치유’의 뜻)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

18절은 13절과 유사한 금언이며 훈계에 대한 대조적인 반응이 낳는 각각의 결과를 묘사합니다. 여호와 경외를 바탕으로 하는 지혜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궁핍과 수치를 당하게 되지만, 그러한 책망을 받아들일 줄 아는 자는 풍요로움과 존경을 얻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궁핍이나 수치는 단순히 물질적인 궁핍과 정신적 수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 신앙, 도덕 등, 여러 방면에서 일어나는 결과로 이해해야 합니다.

19절은 12절의 주제인 소원 성취와 관련된 금언입니다. 12절에서는 지연된 소망과 성취된 소망이 사람에게 주는 상실감과 만족감을 대조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19절에서는 특별히 ‘성취된 소원’과 ‘미련한 자의 악’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성취된 소원이 ‘마음에 달다’라는 말은 ‘마음에 기쁨이 넘친다.’라는 표현입니다. 소원이 성취되면 생명 나무처럼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만족감과 활력을 제공 받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고 악에 머물기를 선택했으므로 그가 행한 악으로 인해 참된 만족이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2) 의인과 악인의 보응(20-25)

20절은 지혜자의 친구와 우매자의 친구가 되는 일을 대조하며 지혜로운 자(또는 지혜 자체)와 친구가 되라고 권유합니다. 지혜로운 자들의 친구가 되면 그들로부터 올바른 지식을 전달받고 분별력 있는 생각과 행동을 배우게 되어 자기 자신의 지혜도 함께 커갑니다. 이런 지혜로운 자들은 올바른 지식과 분별력과 통찰력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이들과 동행하면 기쁨과 만족을 얻고 계속 성장하며 여러 방면에서 양질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미련한 자들의 친구가 되면 그들의 분별력 없는 말과 행동으로 인해 자기 자신도 어려움과 어리석음에 빠지기에 십상입니다. 잠언의 앞부분에서도, 숨었다가 까닭 없이 사람의 피를 흘리자고 제안하는 강도의 무리(1:11-14)나, 정직을 버리고 불의와 행악을 저지르는 무리(2:13-15), 아첨과 번지르르한 외모로 젊은이를 유혹하는 음녀(2:16-19),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 자를 붙들어 사망의 연회에 초대하는 미련한 여인(9:13-18) 등의 예로 우리가 특히 주의를 기울여 멀리해야 하는 대상이 누군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이런 자들은 판단력이나 통찰력이 부족하고 생각이 악하므로 이들과 동행하면 후회와 수치가 몰려와 결국 영적, 도덕적으로 패망하고 죽게 됩니다.

21-23절은 의인과 악인의 보응과 재물에 대한 금언인데 서로 같은 단어나 주제가 나와 연결됩니다. 21, 22절은 선한 보응과 선한 사람(‘선인’으로 번역됨)이라는 공통 단어와 함께 의인과 악인에 대해 언급합니다.

22, 23절은 ‘재물’과 ‘가산’이라는 유사한 단어와 함께 재물에 관해 설명합니다. 먼저 21절은 죄인과 의인의 보응에 대한 금언입니다. 죄인에게 악(재앙)이 따르나 의인은 선한 것으로 보응을 받습니다. 특히 죄인에게 따르는 ‘재앙’이 20절에서 미련한 자의 친구에게 따라오는 ‘재앙’(‘해’로 번역됨)과 연결됨으로써 죄인과 미련한 자가 서로 연결됩니다(결과적으로 의인과 지혜로운 자도 서로 연결됩니다).

잠언을 비롯하여 성경에서는 미련한 자와 악인이나 죄인을 크게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그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1:7; 시 10:4; 14:1; 렘 2:13, 19 등). 이런 자들은 지식이나 능력에 한계가 있는 자기 자신이나 다른 것을 의지하고 자신의 눈에 옳다 생각되는 대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것을 거두게 됩니다.

21절의 의인은 22절에서 ‘선한 사람’으로 지칭됩니다. 21절에서 의인은 선한 보응이 약속되어 있는데, 23절에서는 그 약속이 그에게만 아니라 대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밝힙니다. 선한 자들은 자기가 받은 산업을 자녀와 손자들에게 물려주고 그들로 하여금 그 유산을 누릴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죄인이 쌓아 놓은 재물은 그들의 후손이 소유하지 못하고 의인과 그들의 후손이 누리게 됩니다. 욥기 27:16-17에서도 악인이 은이나 옷을 티끌처럼 가득히 쌓아둔다 해도 의인이 그것을 다 차지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의인과 악인에게 약속된 보응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와 섭리 아래 성취됩니다.

23절은 가난한 사람에 대해 언급되며 위의 금언들과 재물이나 ‘의’라는 주제로 연결됩니다. 가난하다 하더라도 새롭게 갈아엎은 땅을 경작함으로써 양식을 늘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는 사회에 정의가 없다면(‘불의로 인하여’로 번역됨) 그들이 모은 재산을 다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24절에서는 자식을 부지런히 제대로 훈육하는 것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매를 아끼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23:13-14에서도 회초리로 때려도 죽지 않으니 매를 아끼지 말라고 교훈하며 특히 이와 같은 훈계가 자식의 생명을 무덤에서 구해낼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자식에게 매를 아끼지 말라는 표현은 체벌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잘못을 제때에 따끔하게 처벌해서 잘못을 바로잡아 올바른 삶을 살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편법과 상술이 난무할지라도 끝까지 지혜를 붙들고 따르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존영을 지키는 길입니다. 이 세상에서 지혜와 맞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확고한 길로 인도해주는 말씀을 더욱 신뢰하며 잠언이 주는 삶의 반전을 경험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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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3-01)

  


의인과 악인이 받을 보응에 대한 지혜

잠언 13장 1-13절


의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온갖 좋은 복들을 가져오는 능력이 됩니다. 의인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도움을 입고 곤란에서 구원을 받는 것은 바로 그 의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악인이 부지불식간에 수치와 패망에 이르게 되는 까닭은 바로 그가 행한 악 때문입니다. 복은 의의 열매이고 저주는 악의 열매입니다.

 

여호와 경외를 근본으로 하는 지혜의 훈계에 경청하며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언어생활이나 경제생활 등에 완전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정직한 말과 절제 있는 말을 통하여 선의 열매를 맺고 부와 재물에 대한 분명한 판단을 통하여 근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언어생활과 그 결과(1-6)

말에는 살리고 죽이는 힘이 있습니다. 부모의 훈계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지혜로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가지만, 훈계를 거부하는 사람은 그 어리석음으로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또한, 입을 열 때와 닫을 때를 구분하지 못한 채 함부로 이야기는 것은 멸망을 자처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1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2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3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4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5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 데에 이르느니라 6공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하게 하느니라(1-6)

1-6절의 금언은 대부분 훈계를 비롯하여 정직, 침묵 등의 언어생활과 이런 생활이 미치는 영향을 설명합니다. 1절은 훈계의 말을 들으라는 교훈(10:8; 12:1, 15)이며, 아버지의 훈계를 듣는 자가 지혜롭고 겸손한 아들이고 반대로 꾸지람을 듣지 않는 자는 거만하고 미련한 자라고 설명합니다. 이 금언은 1-9장에서 아버지의 강연과 지혜의 초청에 빈번히 등장하는 ‘내 말을 듣고 행하라’는 명령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같이 아버지나 지혜가 주는 훈계를 받아들이는 데는 그 말을 경청하려는 겸손한 태도와 열린 마음, 그 훈계가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함을 인식하는 분별력, 이를 실행하려는 결단과 의지가 꼭 필요합니다.

1절이 말을 듣는 것에 관한 금언이라면 2, 3, 5절은 말을 하는 것에 관한 금언입니다. 먼저, 2절에서는 말이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며 입으로 뱉는 말에는 그에 따른 열매가 있어 각자 그 열매를 먹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마음이 정직하고 화평한 자는 정직하고 화평한 말을 하여 선(복록)이라는 열매를 먹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신실하지 못한 자는 거짓말과 폭력적인 말을 하므로 폭력의 열매를 맛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말이 가져오는 열매의 종류와 질은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말을 어떻게 하느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3절에서는 말로 인한 열매를 맛보게 되므로(2) 말을 삼가는 자가 지혜롭다는 교훈을 줍니다. 말을 삼가느냐 맘대로 놀리느냐에 따라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거나 멸망을 당할 수 있습니다. 18:21의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다’는 금언이 이를 잘 요약해 줍니다.

말과 관련하여, 야고보는 혀에 실수가 없는 자가 완전한 자라고 하였습니다(약 3:2). 그는 배의 키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서 말이 지닌 엄청난 힘과 그 영향력을 지적하며 혀를 길들이라고 권면합니다(약 3:3-5), 크고 단단한 배라도 광풍이 불면 바다에서 이리저리 밀려가지만, 이때 흔들리는 큰 배를 움직이고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조종실의 작은 키입니다. 혀도 배의 키처럼 몸의 작은 기관이지만 지구를 들었다 놓았습니다. 할 수 있을 정도의 큰 허풍을 늘어놓을 수도 있고 작은 불씨와 같이 삽시간에 산을 태우거나 사람을 매장할 수 있는 파괴력이 있으며 자신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인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의 힘은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쪽으로도 얼마든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칭찬하고 화평의 말로 용기와 위로를 제공할 수 있으며 죽으려 하는 자도 살릴 수 있는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혀를 길들여 정직과 화평을 말하고, 필요 없는 말을 삼가 화를 면하고, 선한 열매를 맺어 나와 다른 이에게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1절의 아버지의 훈계를 듣는 지혜로운 자는 2-3절에서 조언하는 언어생활을 실천할 수 있고, 이제 4절에서 교훈하는 근면 정신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마음에 원하는 바가 있지만, 손을 게을리 움직이고 무엇이든 미루며 잠만 재촉하는 자는 가난해지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6:9-11; 13:4; 19:24; 23:33-34). 그러나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개미처럼 미리 준비하고 일하는 자는 원하는 바를 풍족하게 얻게 됩니다(6:6-8).

5절에서는 다시 언어생활로 돌아가 정직한 말을 권면하고, 6절에서는 의로운 행동을 권합니다. 정직한 자는 거짓말을 미워하지만 거짓말하는 자는 양심도 없고 이기적이고 추악한(‘행위가 흉악하여’로 번역됨) 자이므로 결국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2, 3절에서 언급했듯이, 말에서 마음의 태도를 엿볼 수 있으며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또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그 과정에 있어 정직한 말을 포함하여 정의와 완전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정의가 온전한 자를 보호한다는 말은 정의롭게 말하고 행동해야 어떤 일을 당했을 때 두려울 것이 없고 감출 것이 없어 무죄로 판명이 나듯 마땅한 보상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불의와 부정과 같은 악을 추구하는 자는 죄인으로 타락하여 결국 패망하고 말 것입니다.

9절은 의인과 악인의 빛을 대조하는 금언입니다. 여기서 ‘빛’이나 ‘등불’은 ‘생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욥 3:20). ‘의인의 빛이 즐거워한다(‘환하게 빛난다’로 번역됨)’는 말은 그의 삶에 즐거움과 만족이 지속되며 풍요로움이 점점 더해간다는 뜻입니다. ‘악인의 등불이 꺼진다’는 말은 악인의 삶에 질적으로 풍요로운 불꽃이 타오르지 못하고 결국 꺼지고 만다는 의미입니다(욥 18:5; 21:17).

10절은 1절의 훈계에 대한 유익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금언입니다. 권면을 듣는 자는 겸손하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알며 남의 의견을 수렴하여 적절한 선택을 할 줄 아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훈계를 듣기 싫어하는 자는 남의 의견 자체를 업신여기고 자기 생각을 남보다 더 낫게 여기므로 교만하여 필요 없는 다툼을 일으킵니다.

 

부와 재물(7-11)

겉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부자인 것처럼 자랑하지만, 실제로는 가진 게 하나도 없는 사람도 있고, 가난한 것처럼 실제로는 부자인 사람도 있습니다. 내실 있는 알찬 삶이야말로, 겉치례를 중시하는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삶입니다. 이렇게 재물은 사람의 부귀를 나타내는 척도도 되지만, 근심과 협박의 근거도 될 수 있습니다.

7스스로 부한 체하여도 아무 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8사람의 재물이 자기 생명의 속전일 수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 9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10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11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7-11)

7절에 이르면 주제는 언어생활에서 경제생활로 변합니다. 특히 7-11절의 금언은 9, 10절을 제외하고 모두 재물이란 단어가 공통으로 나와 부와 가난의 척도, 재물의 영향력, 재물을 얻는 방법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7절은 실제로는 가난하면서 부자인 체하며 허세를 부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실제로는 부자인데도 부를 드러내지 않고 숨기거나 또는 검소한 삶을 사는 자도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금언은 자신의 부나 가난을 그대로 드러내라는 뜻이 아니라, 부와 가난의 척도를 개인의 겉모습이나 행동으로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줌으로써 빈부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방지해줍니다.

8절에서는 부와 가난의 영향력에 대해 언급합니다. 재물이 많은 자는 때로 납치나 협박 등 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위기의 때에 몸값을 지불할 수 있으므로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상대적으로 이러한 위기와 협박에서 대부분 자유롭고 안전할 때가 많습니다.

7, 8절에서 부와 가난의 현실적이고 상대적인 실체와 가치를 일깨워준다면, 이제 11절에서는 재물을 모으는 윤리적 방법에 대해 교훈합니다. 헛되이 모은 재물은 입김같이 사라지게 되지만 열심히 지속적으로 모은 것은 늘어갑니다.

 

마음의 소원과 말씀(12-13)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후 자기의 소유로 자신의 가치를 과시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재물에 대한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는 중요한 척도가 됩니다. 재물을 의지하는 것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재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사람을 평가하는 태도나 재물을 위해서 사람을 이용하는 대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2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13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12-13)

12절은 19절까지 한 단락을 이루는데, 이 단락의 처음과 마지막에 ‘소원’이란 단어가 공통으로 나오고 그 중간에는 훈계와 말씀에 관련된 금언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먼저, 12절에서는 소망이 지연되고 안 이루어질 때의 상실감과 소망이 이루어졌을 때의 만족감을 대조적으로 기술합니다. 지연되는 소망이나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은 사람을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피폐하게 만듭니다. 이와 반대로 성취된 소원은 생명 나무와 같이 심리적, 육체적으로 만족감과 활력을 제공해 줍니다.

13절은 다시 1절과 10절의 금언으로 되돌아가서 ‘훈계’를 대하는 반응에 따르는 결과를 밝힙니다. 여기서는 ‘말씀’과 ‘계명’(명령)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어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들은 잠언에서 아버지의 ‘교훈’ 즉, 1절의 훈계나 ‘꾸지람’, 10절의 권면과 대치될 수 있는 말입니다. 이는 아버지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기초로 하여 훈계와 권면의 말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경외하며 실행하는 자는 그에 따른 보상을 받지만, 말씀을 멸시하는 자에게는 패망이 기다립니다.


흐르는 맑은 시냇물의 근원이 작은 옹달샘이듯, 우리의 무성한 말의 근원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의 정원을 잘 가꾸는 것이야말로 풍성한 말의 축복을 위한 근원입니다. 마음의 옹달샘을 생명의 말씀으로 채우십시오. 생명의 성령으로 채우십시오. 그때에 마음의 샘에서 생명의 말들이 흘러나와 인생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이 땅을 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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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2-02)


 진실한 입술과 거짓된 혀

잠언 12장 15-28절


학교 현장 이야기를 들어보면, ‘분노조절장애’나 ‘주의력결핍장애’를 가진 아동의 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합니다. 작은 일에도 참지 못하고 거친 행동을 나타내거나 매순간 산만하게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타고난 성격 탓으로만 돌릴 수 없습니다. 성품과 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교육풍토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의인의 길에는 생명이 있으며 사망이 없습니다. 그는 거짓과 악을 멀리하는 자이며, 지혜와 판단력이 있어 진실한 말을 입에 담고 화평을 조언하는 자입니다. 그의 정직한 말과 행동은 자신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며, 이웃을 구하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며, 하나님으로부터 기뻐하심을 입습니다.

 

정직한 말과 거짓말(15-23)

충고를 수용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모욕을 당할 때 인내하며, 합당한 충고를 수용합니다. 이에 반해 어리석은 사람은 충고를 듣는 즉시 분노하며 합당한 충고마저 거부합니다. 옳다고 생각했던 일에 대해 누군가 잘못했다고 충고할 때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15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16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17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 18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19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20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 21의인에게는 어떤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려니와 악인에게는 앙화가 가득하리라 22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23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15-23)

15-23절은 미련한 자와 지혜로운 자를 대조하는 금언으로 시작하고(15-16) 역시 유사한 내용의 대조적 금언으로 끝남으로써(23) 한 단락을 이루며, 그 중간(17-22)에는 진실하고 화평한 언어생활을 도모하는 금언이 등장합니다.

수미일치(처음과 끝이 같거나 유사한 내용으로 단락을 형성하여 그 주제를 강조하는 구조) 형식을 이루는 15, 16, 23절에도 ‘권고’, ‘분노를 드러냄’, ‘전파하다’와 같은 언어와 관련된 단어가 나와 17-22절과 연결됩니다. 15, 16, 23절에 나타나는 지혜자와 우매자가 구분되는 행동을 살펴보면 첫째, 자신의 생각에 대한 마음의 태도로알 수 있습니다(15). 미련한 자에게 있어 옳고 그름의 기준은 자기 눈입니다. 그러므로 제 눈에 바르다고 생각하는 말과 행동을 하며 다른 사람의 권고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런 행위를 죄의 시작으로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사사 시대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했다”(삿 17:6; 21:25)는 구절이 그 시대의 영적, 도덕적 상황을 적절히 묘사합니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왕으로 여기지 않고 그의 말씀을 업신여겼으므로 제사장을 돈으로 사기도 하고 사사들이 수십 명의 자녀를 거느리며 호의호식하는 등 무슨 일에든지 자기의 사리 판단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기의 눈에 어떻게 보이든지 어떻게 생각되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하는 자입니다.

둘째, 지혜자와 우매자의 차이는 감정 조절에서 나타납니다(16). 우매자는 성급하여 자신의 화나 울분을 즉각적으로 터트리지만, 지혜자는 수치를 당할 때조차 감정을 다스리며 신중하게 행동합니다.

셋째, 자신에게 있는 것을 드러낼 때와 삼갈 때를 인지하는 여부에서 나타납니다(23). 지혜자는 필요한 경우에만 자기의 지식을 발설하고 평소에는 겸손히 그 지식을 간직하지만, 우매자는 때를 가리지 않고 맘속에 있는 미련함까지도 전파하여 자기 무덤을 파는 자입니다.

지혜자와 우매자의 대조 중간 부분에 있는 17-22절은 진실과 화평을 말하는 자를 높이는 금언입니다. 여기서 진실과 화평을 말하는 자는 15, 16, 23절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자와 동일시됩니다. 잠언에서 언어생활에 관한 조언으로 1-9장에서는 ‘입술로 지식을 지키라’(5:2), ‘거짓을 멀리하라’(4:24)는 명령 정도가 나왔으며, 거짓 증언과 중상모략이 하나님의 혐오 대상(6:16-19)임을 밝혀 정직과 지혜의 말을 권면하였습니다. 특히, 의인화된 지혜가 자신의 언어의 주된 내용이 바로 선, 정직, 진리, 의이며 굽은 것이 없다고 설명함으로써 지혜로운 말이란 무엇인지 그 특징을 정의해 주었습니다(8:6-10).

이에 비해, 10-15장에서는 언어와 관련된 금언이 상대적으로 빈번히 소개됩니다. 특히 오늘 본문 전(10:1-12:14)까지 나온 의인(또는 지혜자)의 언어에 대한 금언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의인이 사용하는 언어의 특징, 언어가 자신과 다른 이에게 미치는 영향, 다른 사람과 하나님의 반응으로 요약됩니다. 결국, 의인 자신, 의인과 타인(과 공동체), 의인과 하나님의 역동적인 관계에서 지혜로운 언어생활을 함양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첫째, 의인이 사용하는 언어의 성격과 특징으로 언어에 지혜와 지식이 담겨 있고(10:13, 31; 11:9), 정직하며(10:18), 천은과 같은 가치가 있고(10:20), 절제할 줄 알며(10:19), 남의 비밀에 침묵할 줄 안다(11:12, 13)고 언급되었습니다. 둘째, 의인의 언어가 자신에게 미치는 유익 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으로는 입의 허물로 인해 덫에 걸리지 않고 환난에서 벗어나는 축복(12:12)과 입의 열매대로 복을 받는다는 약속(12:14) 등이 나왔습니다. 셋째, 의인의 언어에 대한 타인의 반웅으로는 칭찬과 축복이 언급되었습니다(10:7). 넷째, 의인의 언어가 다른 이와 공동체에게 끼치는 영향력으로는 다른사람을 구하며(12:6), 생명의 샘과 같이 활력과 치유를 주고(10:11), 여러 사람을 교육하며(10:21), 자기가 속한 도시에 평안과 번영을 가져온다(11:11, 14)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17-22절을 중심으로 오늘 본문인 12:15-28에서 기술하는 의인의 언어를 살펴보시겠습니다. 첫째, 의인의 언어의 특징으로서 그의 언어에는 거짓과 위증이 없이 정직하며(17, 22), 재판에 정의를 가져오고(17), 선하며(25), 영원성이 있고(19), 발설할 때와 침묵할 때를 알며(23), 화평과 희락이 담겨 있다(20)는 점을 설명합니다. 둘째, 의인의 언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기쁨과 사랑입니다(22). 셋째, 의인의 언어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으로는 건강이나 치유(18, ‘양약’으로 번역됨)와 즐거움(25)이 예로 나왔습니다. 넷째, 의인의 언어가 이웃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으로는 지식의 전달을 설명합니다(23).

이처럼 오늘 본문에서는 무엇보다 재판에서의 정직한 증언을 강조하며, 남을 해치는 말이 아닌 치유를 주는 화평의 말을 추가하고, 이와 같은 지혜로운 언어생활에 따라오는 기쁨을 나타냅니다.

 

부지런함과 게으름(24-28)

부지런하지 않고서는 부귀할 수 없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시작했어도 게으르게 행동한다면 어떤 열매도 손에 쥘 수 없습니다. 어떤 자리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노력과 부지런함의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계획했던 일들의 진행을 돌아보면서 그 계획했던 일들을 잘 이루어 나가길 바랍니다.

24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25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26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 27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28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24-28)

15-23절의 금언들은 언어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이제 24-28절의 금언들은 대부분 경제생활에 있어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논하고 의인과 악인의 삶을 대조합니다.

먼저 24, 27절은 부지런한 자와 게으른 자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24절은 부지런한 자가 주인이 되며 게으른 자는 종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25절에서는 근면을 사람의 부귀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애써 잡은 사냥감조차 요리하지 않는 게으른 행동은 밥그릇에 손을 얹고도 입으로 퍼 올리기를 싫어하는 행동(19:24)과 같습니다. 결국, 미련한 자는 있는 것조차 누리지 못하며, 원하는 것이 있어도 얻지 못하고(13:4), 남의 종살이를 할 처지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25절은 마음의 근심과 선한 말의 결과인 우울함과 즐거움을 대조적으로 설명합니다. 사람을 좌절시키고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에 자리 잡은 근심과 상처와 아픔입니다. 그러나 선한 말은 상대방에게 위로를 주고 그 사람을 즐겁게 해줍니다. 여기서 ‘즐겁게 하다’라는 동사는 20절의 ‘희락’의 동사형으로 나왔으므로 이를 연결해보면 선한 말이란 거짓과 악이 없는 말이며 평안과 화평을 조언하는 말로도 설명됩니다. 26, 28절은 의인과 악인에 대해 언급하는 금언이므로 서로 연결됩니다. 26절은 의인과 악인의 행동이 자기 자신과 이웃에게 미치는 영향을 대조하며, 28절은 의인의 길의 특징을 기술합니다. 의인은 지혜로운 자이므로 자기만이 아니라 이웃까지도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더구나 그가 인도하는 길은 사망이 없으며 오로지 생명이 있어 자신과 다른 이에게도 유익을 주는 길입니다. 여기서 ‘길’은 삶에서 선택하고 추구하고 있는 방향을 의미합니다.

한편, 악인은 본인이 저지른 악행으로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올가미에 걸리게 하는 자며 방황하는 자입니다. 앞서 14절에서는 악인이 자기 입술의 실수와 허물로 인해 그물에 걸려 수치를 당하는 예를 들었습니다. 이와같이 악인의 언행이 자신에게 해를 주는 근본적인 이유는 악인에게 여호와 경외가 없으므로 삶의 길이 어둠과 같기 때문입니다(4:14-19).


“매를 아끼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13:24) 하였고,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혀 있으나 훈계의 매가 그것을 멀리 쫓아낸다”(22:15) 하였습니다. 훈계가 폭력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자녀가 소중한 만큼 훈계를 아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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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2-01)
 


의로운 삶의 유익

잠언 12장 1-14절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살다보면, 이따금 ‘의롭게 살아서 뭐하나?’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편법과 이기심으로 사는 인생이 성공하는 듯 보이고, 원칙을 지키며 의의 길을 좇는 이들은 뒤처져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의로운 사람의 길은 생명이요, 미련한 사람의 길은 죽음이라고 경고합니다. 더불어, 의로운 삶의 유익을 보여주며 격려합니다.
 
의인과 악인 또는 지혜자와 우매자의 대조적인 모습은 그들의 생각, 말, 행동, 사람들에게서 듣는 평판,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보응 등 자신과 자신, 자신과 타인, 자신과 하나님 간의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이런 관계 안에서 현재 내가 선택하는 마음의 태도와 말과 행동이 내가 맺을 열매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의인과 악인의 특징(1-3)

자신이 가장 지혜롭고 완벽하다고 생각하여 훈계를 거부하는 사람이 사실상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과 연약함을 깨닫고, 교훈과 책망을 수용할 때 지혜롭게 되는 것입니다. 의인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 뿌리를 하나님께 내렸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기반으로 삼고 있습니까?
1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2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라 3사람이 악으로서 굳게 서지 못하거니와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1-3)
잠언 12장은 의인과 악인의 본질을 언급하며 진실하고 화평한 말과 근면 정신을 함양합니다. 오늘 본문인 1~14절은 의인과 악인의 삶을 대조하는 금언 중 말과 재물의 주제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며, 나머지 15-28절은 정직과 화평의 말과 근면이 강조되었습니다.
먼저, 1-3절에서는 의인과 악인의 본질(1, 3)과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보응(2)에 대해 말합니다. 의인과 악인의 본질적인 구분은 첫째, 훈계를 받아들이는 여부에서 나타납니다. 1절은 훈계를 좋아하는 자와 싫어하는 자를 각각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과 미련한 짐승으로 대조함으로써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였습니다. 12:1의 현명한 사람과 미련한 짐승의 구별은 구체적으로 그들이 지식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여기서 지식은 ‘지혜’의 다른 표현으로써 훈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깨달음과 교훈을 지칭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자신이나 타인의 생각과 판단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3:5-7) 그런 교만한 마음에는 훈계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둘째, 의인과 악인은그들이 삶의 기초를 어디에 뿌리내렸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3절은 의인과 악인을 나무로 비유하여 각각의 뿌리가선과 악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 결과 악인에게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미래가, 의인에게는 견고하고 안정된 미래가 기대됩니다. 이와 같은 비교는 시편 1편의 물가에 심긴 나무와 바람에 날리는 겨, 또는 예레미야 17:5-8의 사막의 마른 나무와 물가에 뿌리내린 청청한 나무의 비교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선으로 굳게 서는 의인은 결국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며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자입니다.
이와 같은 의인과 악인의 본질과 결과(1, 3)는 그들에게 나타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성(2)과도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훈계를 좋아하고 선으로 견고히 서 있는 의인에게 은총을 주시나, 훈계를 싫어하고 악을 좋아하여 악을 꾀하는 자들은 정죄하실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의 언행과 결과(4-8)

말과 생각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냅니다. 의인은 바른 생각과 정직한 행동으로 그가 의인임을 드러내고, 악인은 다른 사람을 해하며 속이는 일을 도모하여 그가 악인임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악인이 날고뛰어도 결국 마지막에 남은 것은 의인입니다. 우리 생각과 말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4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5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이니라 6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7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8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굽은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4-8)
 4-8절의 금언들은 부인이 남편에게 미치는 영향력(4), 의인과 악인의 대조적인 생각, 말, 운명(5-8)에 대한 내용을 기술합니다.
먼저 4절은 ‘어진 여인’을 자기 남편의 면류관과 같은 존재로, ‘수치스러운 여자’를 자기 남편의 뼈를 썩게 하는 존재로 소개합니다. 어진 여인은 문자적으로는 힘의 여인이며 성경 다른 곳에서 ‘현숙한 여인’으로도 번역되었습니다(잠 31:10-31; 룻 3:11). 이때 ‘힘’이란 육체적 힘만이 아니라 성품, 경제력, 재능 등에서 뛰어남을 의미합니다. 잠언의 마지막 단락인 31:10-31의 ‘힘의 여인’에 대한 이상적인 묘사가 이 점을 잘 드러내 줍니다.
이 단락은 ‘힘의 여인을 누가 찾겠느냐?’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그와 같은 여인을 찾는 지혜로운 남자가 되라는 권면입니다. 이런 여인의 값어치는 진주보다 귀하며(31:10) 이와 같은 여인은 본인도 영광을 얻고(11:16) 그녀의 남편에게도 면류관(12:4)이 되어 남편 또한 영광을 얻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여인이 힘의 여인으로 불리며 가정과 사회에서 칭찬을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녀가 근본적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이기 때문이며 이를 삶에 실천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31:30).
한편, 수치스러운 여자는 어떠한가? 본인에게 치욕거리를 만드는 이 여인은 남편의 뼈를 썩게 하는 자입니다. 뼈가 썩는 것은 살에 상처가 나는 것보다 훨씬 그 상태가 심각하고 위중합니다. 몸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썩어 들어가는 고통과 냄새와 괴로움은 당사자의 몸과 마음을 다망가뜨리고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힘의 여인이나 수치스런 여인을 잠언 1~9장에서 각각 여인으로 의인화된 지혜(1:20-33; 2:10-22: 4:5-9; 8:1-36; 9:1-6)와 우매(2:16-19; 5:1-23; 6:20-35; 7:127: 9:13-18)와도 연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현명한 여자를 찾고 음녀를 피하라고 권면한 것은 누구든 여호와 경외를 근본으로하는 지혜를 얻고 미련함을 벗어나라는 권면이기 때문입니다.
5-8절은 의인과 악인의 대조적인 생각(5), 말(6),운명(7-8)에 대한 금언들로 구성되어 의미상 연결됩니다. 5-6절은 의인과 악인의 말이 생각으로부터 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의인은 정의를 생각하고 정직한 말을 하므로 자신과 다른 이들을 궁지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속임수를 계획하고 남을 무고히 해치려고 음모를 꾸며자신과 다른 이들을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악인의 이런 모습은 1:8-19의 무죄한 사람을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며 사람의 피를 흘리려는 강도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7-8절은 이 같은 악인과 의인의 언어와 행동으로 인한 결과를 공통적으로 말합니다. 7절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반응(행동)이며, 8절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반응(말)입니다. 의인은 정직을 선택하는 지혜자이므로 사람들에게서 칭찬의 말을 듣고,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를 입어 그와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견고해집니다.
이와 반대로, 악인은 마음이 비뚤어져 거짓과 남을 해하려는 언행을 일삼으므로 사람들로부터 멸시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와 그의 공동체가 파괴되어 자취를 감출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이 맺는 열매(9-14)

불법으로 얻은 소득을 방탕하게 사용하고, 수고로이 일하지 않으면서 일확천금을 꿈꿉니다. 잠시 그럴듯한 모습을 갖추지만, 그 열매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의롭게 살아갈 때 참 열매를 얻을 수 있고, 깊은 뿌리로 말미암은 열매라야 튼실합니다. 속성으로 키워 모양만 낸 열매에 현혹되지 말고, 하나님께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9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나으니라 10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11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12악인은 불의의 이익을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 13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14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9-14)
9-14절의 금언들은 10절을 제외하고 의인과 악인의 재물(9, 11, 12)과 언어(13, 14) 그리고 이로 인한 열매를 대조합니다. 9절은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보다 조개 속의 진주에 가치를 두라는 금언입니다. 가진 것이나 능력이 부족한데도 외적으로 뻐기며 포장하는 삶을 추구하는 자는 자신과 남을 속이는 미련한 자이며 후회와 고통만 증대됩니다. 그러나 설령 남들이 몰라주고 업신여긴다 해도 실제로는 종을 부릴 정도로 재물과 지혜와 능력을 가진 자는 삶에 기쁨과 만족이 넘칩니다.
10-14절은 의인과 악인의 대조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입니다. 10절은 의인과 악인의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다룹니다. 의인은 마음에 긍휼과 자비가 있어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까지도 보살필 정도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마음에는 긍휼이 없으며, 그에게 있어 긍휼이란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고 꾸민 잔인하고 악한 궤계일 뿐입니다.
11-12절은 다시 재물과 그에 따른 결과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11절은 9절과도 내용상 연결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땅을 성실히 경작한 자는 그에 따라 풍성한 소득을 얻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러나 방탕하고 헛된 것을 뒤쫓는 자는 9절의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입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음식보다 분별력이 핍절한 자입니다.
11절에 이어 12절에서도 의인과 악인의 열매에 대해 말합니다. 악인은 다른 악한 자들의 탈취물까지도 탐하지만, 의인의 뿌리는 열매를 맺습니다. 이때 의인의 뿌리는 의인이 지향하는 삶의 방향을 상징하는 표현이며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신뢰와 실천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3-14절은 입술의 열매에 대한 금언입니다. 악인은 본인의 말로 인해 스스로 덫에 빠져들지만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납니다. 이처럼 사람은 자기가 뿌린 말과 행동의 열매를 먹게 됩니다.


불의한 방식으로 손쉽게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올바름을 추구하며 산다는 것은 힘겨운 일입니다. 쉽게 열매 맺지 못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은 많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그럼에도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의로운 삶이 주는 유익과 가치를 확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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