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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5-02)


순종하는 자가 얻는 지혜

잠언 15장 19-33절


노르웨이는 6년 연속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2014 세계 번영 지수’에 따르면, 노르웨이는 8개 분야 중 특히 사회구성원 간의 협조나 네트워크, 자선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서 69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잠언은 다양한 주체들을 통해 사회구성원 간에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로움과 우매함의 구분이 ‘말’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가르침이나 조언자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에게 시기적절한 말로 도움을 주는 자가 지혜로운 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부모를 경시하고 자신만 믿고 모든 것으로부터 귀를 닫아 버리는 자는 죽음의 길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매자의 길과 지혜자의 길(19-24)

지혜자와 우매자를 여러 방면에서 대조합니다. 지혜자가 곧고 평탄한 길을 가는 자라면 미련한 자는 스스로 자기 삶에 장애물을 놓는 사람입니다. 지혜자는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만 미련한 자는 독선적이고 독단적이어서 경영이 무너집니다. 지혜자는 때에 맞는 말을 하며 생명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습니다. 이는 악인의 종착지가 사망인 것과 대조됩니다.

19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20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21무지한 자는 미련한 것을 즐겨 하여도 명철한 자는 그 길을 바르게 하느니라 22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23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24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 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에 있는 스올을 떠나게 되느니라(19-24)

19-24절 단락은 처음과 마지막에 각각 ‘게으른 자의 길’과 ‘정직한 자의 길’ 그리고 ‘지혜로운 자의 생명길’이 나타나 수미일치(처음과 끝에 같거나 유사한 말을 써서 단락을 나타내고 강조하는 형식)를 이루며 한 단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19절의 금언은 게으른 자의 길을 가시밭으로, 정직한 자의 길을 ‘대로’(15:19)로 묘사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게으른 자의 대조로 부지런한 자가 아니라 ‘정직한 자’를 들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게으름이 단순히 꾸물거리고 일을 미루는 것만이 아니라 부정직한 말이나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런 게으른 자가 가는 길은 가시 울타리와 같습니다. 이 ‘가시 울타리’는 게으른 자가 걷는 길에서 만나는 문제들, 곧 장애물을 말합니다. 반대로, ‘정직한 자’가 가는 길은 높이 쌓아 올린 길이며 장애물을 찾아볼 수 없는 곧고 평탄한 길입니다.

20-21절은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20절에서 지혜자는 10:1과 같이 부모를 기쁘시게 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출애굽기 20:12의 계명을 지키며 부모를 공경할 뿐만 아니라 부모가 전하는 훈계를 들으며 그 훈계로부터 지혜를 얻습니다(4:1; 13:1). 반면, 미련한 자는 부모의 가르침과 경책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13:1; 15:5), 더 나아가 부모를 멸시하고 경멸합니다(19:26). 나를 낳고 기르신 부모를 공경하고 기쁘시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뜻을 따르는 지혜자의 참 모습입니다.

21절은 미련한 자의 헛된 즐거움을 20절의 지혜자의 참된 즐거움과 대조하여 교훈하는 금언입니다. 21절의 ‘미련한 것’은 문자적으로 ‘마음이 미련한 것’을 말합니다. 무지한 자가 스스로의 마음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을 따라 행악하기를 즐거워하며 악인의 길을 걷는다는 의미입니다(10:23; 15:9).

22-23절은 조언에 대한 금언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22절에서 미련한 자는 자기 계획이나 생각을 다른 이들과 의논하지 않는 자로 소개됩니다. 그는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겨 자신의 미련함을 따라 혼자 결정하기 때문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11:14과 같이 친밀하게 조언하는 자들을 곁에 많이 두고 신중하게 판단하여 행하기 때문에 자기가 뜻한 바를 이룹니다. 이처럼 일을 계획하고 진행함에 있어서 나를 맹신하는 교만에 빠지지 말고, 주위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뜻하는 바를 이루는 지혜입니다(13:10). 23절에서는 특히 적절한 때에 건네는 올바른 조언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24절에는 19절에 나타난 ‘길’의 주제가 다시 반복되어 나타나 서로 연결됩니다. 여기서도 선택할 수 있는 두 길을 제시합니다. ‘위로 향하는 길’과 ‘아래로 향하는 길’은 각각 ‘생명의 길’과 ‘스올(죽음)로 가는 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가는 길은 19절에 언급되었듯이 높이 쌓여 걸릴 것이 없는 곧게 뻗어 있는 길로서 생명을 주는 길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길이 지향하는 곳과 종착하는 곳은 죽음입니다.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과 기뻐하시는 것(25-29)

여호와는 자신을 경외하는 지혜자를 기뻐하시고 자신을 멸시하는 미련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교만한 자와 악인의 잔꾀를 미워하셔서 그들의 집을 허십니다. 그들이 뇌물로 얻은 불의한 이익이 도리어 그들의 집을 해롭게 하게 하십니다. 악인은 멀리하시지만, 의인의 기도는 들으십니다. 의인이 숙고하여 내놓은 선하고 정결한 말을 기뻐하십니다.

25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 26악한 꾀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 27이익을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게 되느니라 28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29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25-29)

15장의 마지막 단락인 25-33절에는 ‘여호와’란 명칭이 다른 곳보다 자주 나타나면서(25, 26, 29, 33), 10-15장의 주제들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즉, 지혜로운 아들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여호와의 훈계를 따르는 자라고 요약됩니다. 특히 25-29절은 말에 대한 주제가 두드러져, ‘의인의 선한 말’(26), ‘대답할 말’(28), ‘기도’(29)와 함께 악인의 입으로 쏟는 ‘악한 말’(28)이 나타납니다.

25절의 금언은 여호와가 교만한 자를 미워하고 그 집을 허무신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집’은 장소적 개념만이 아니라 가족 집안의 의미를 포함하고 모든 재물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교만한 자가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며 자신의 것을 쌓지만 여호와는 그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심으로 그를 심판하심을 명백히 설명합니다. 반면, 가난한 과부는 의지할 곳이 없기에 겸손히 여호와만 의지하고 그의 도움을 받는 자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이 직접 그들의 삶에 관여하시고 그들을 돌보십니다.

26절에서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악인의 집을 무너뜨리실 뿐만 아니라(25)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행위의 시발점이 되는 악한 생각과 계획도 몹시 싫어하심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꿀송이 같이 달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는’(16:24) 의인의 선한 말은 여호와께서 귀히 여기십니다.

27절은 경제생활에 관한 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합당하지 않은 이익에 마음을 빼앗겨 다른 이들을 해하며 이익을 챙기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그와 같은 불의한 재물은 결국 그 사람의 집안을 해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불의의 재물을 싫어하는 지혜로운 자는 생명을 소유하게 됩니다. 결국, 의인의 집은 든든히 세워지며, 여호와가 그 집을 풍성케 하십니다(12:7; 14:1; 14:11; 15:6).

28-29절에는 잠언의 주요 단어인 ‘의인’과 ‘악인’이 교차 대구를 이루며 언어생활에 관한 금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28절은 2절과 유사한 내용으로서 의인은 사려 깊은 말을 하지만, 악인은 거침없이 악을 내뱉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고 설명합니다. 29절에서는 각각 의인과 하나님, 악인과 하나님의 관계를 묘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와는 관계를 단절하시나 의인과는 가까이하시고 그의 기도에 귀 기울이십니다.

 

훈계를 따르는 자와 싫어하는 자(30-33)

지혜를 추구하는 삶은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며, 동시에 우리 전 인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지혜를 추구하면 마음에 선한 질서가 작동하여 몸과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마음의 즐거움으로 얼굴이 빛나고, 뼈가 든든해집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은 우리를 존귀한 자로 사람과 하나님 앞에 서게 합니다. 이는 모든 관계에 있어서도 건강해진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30눈이 밝은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 31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에 있느니라 32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 33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30-33)

30-33절에는 ‘경계’, ‘훈계’, ‘견책’이라는 단어가 공통적으로 나와 서로 연결되며, 훈계를 따르는 자와 훈계를 싫어하는 자를 대조합니다.

30절의 금언은 지혜가 훈계를 따르는 자의 눈을 밝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육체에도 활력을 주고 강건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31절에서는 지혜자를 ‘생명을 주는 교훈을 듣는 귀를 가진 자’로 설명하는데 이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귀로만 듣고 끝나는 행위가 아니라 삶으로 응답하는 순종이 있어야 함을 확실히 설명해줍니다.

이와 반대로, 훈계를 받기 싫어하는 자는 32절에서 자신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생명을 버리고 죽음의 길을 선택한 미련한 자입니다.

33절의 금언은 여호와 경외가 지혜의 훈계라고 선언합니다. 잠언의 서문(1:2)에서부터 나온 단어인 ‘훈계’는 무엇보다 지혜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지혜의 대치어로 나오며,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로 소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훈계 듣는 일을 기뻐하지 않지만, 잠언에서는 계속적으로 그 훈계를 소홀히 여기지 말고 거절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훈계를 들으면 지혜로운 분별력과 통찰력을 얻고 그에 따른 유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훈계는 여호와 경외를 그 밑바탕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33절에서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바로 지혜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훈계의 내용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9:10)이며 나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3:5-7)을 의미합니다.


자기 입장과 맥란만 중요시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고르반이나 모르쇠로 반응하지 말고 굳게 드리운 휘장을 찢고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적극적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예방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각박한 일상에서 무엇을 통해 활력을 돋우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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