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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7-02)

 


 의인을 의롭게 하라

잠언 17장 15-28절


지혜는 심오하면서도 누구나 붙잡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하는 이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셨습니다.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혜를 얻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결국, 의와 지혜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그분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며, 불의와 미련함은 그 반대입니다. 오늘은 인간관계, 말, 그리고 재판의 맥락에서 지혜와 미련함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잠언 17:15-28은 1-14절에 이어서 미련한 자라는 중심 주제를 이어가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주제들을 펼칩니다. 미련한 자의 삶에서 벗어나 지혜로운 자가 되어 공동체와 자기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며, 그렇게 하려고 지혜로운 언어사용을 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혜와 인간관계(15-18)

지혜롭지 못한 것은 미숙함과 어리숙함을 의미합니다. 그는 때에 맞게 행동하지 못하고 행동의 강조를 조절하지 못합니다. 사랑해야 할 때와 사랑을 거둘 때, 도와주어야 할 때와 참아야 할 때를 분별하지 못하여, 결국 자기 자신을 어려움에 몰아넣고야 맙니다. 선한 의도가 어리석은 행실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15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느니라 16미련한 자는 무지하거늘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 함은 어찜인고 17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18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의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15-18)

하나님 앞에서는 옳고 그름이 분명합니다. 이 둘을 혼동하거나 반대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입니다. 의인을 괴롭히거나 악을 대우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비록 완벽할 순 없더라도, 세상의 여러 일에 대해서 내 이익을 떠나, 옳고 그름을 바로 판단하고 바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악인과 의인(15)

잠언 17장 후반부는 미련한 자라는 17장 전반부의 주제를 계속해서 이어 나갑니다. 미련한 자는 악인을 의롭다고 판단하고 의인을 악하다고 판단합니다. 이는 의도적인 악함이라기보다는 판단력이 부족한 경우를 말한다고 생각됩니다. 어떤 행동이 의로운 것인지, 어떤 행동이 악한 것인지에 대해서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17절의 의미를 악을 의롭게 평가하고 의로운 일을 악하게 평가하는 의도적인 거짓말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해석 중 어떤 것을 취하든, 이러한 잘못된 평가 뒤에는 미련함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미련한 자는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2) 지혜의 가치(16)

“미련한 자는 무지하거늘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함은 어찜인고”에서 ‘무지한 자’란 마음을 갖지 못한 자라는 뜻으로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판단력이 흐린 미련한 자는 지혜의 가치를 가늠하지 못해서 어떤 값을 주고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혜는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미련한 사람입니다.

(3) 지혜와 인간관계(17-18)

이 두 구절은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지혜 없는 자)를 대비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베풉니다. 이웃을 향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이 지혜요 분별력인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이러한 분별력을 갖고 있지 못하여 실수를 범합니다. 그 전형적인 예가 18절에 나오는 보증의 예입니다. 그는 ‘마음이 부족한 자’ 즉 판단력이 부족한 자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해 보증을 서며 자신의 물건을 보증품으로 맡깁니다. 그것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일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고 자기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웃을 돕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나, 적절한 분별력을 사용하여 참된 도움이 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련함의 결과(19-22)

참 지혜자는 바른말을 하면서 동시에 때에 맞는 말을 합니다. 바른말도 적절한 때를 맞추지 않으면 효과를 낼 수 없습니다. 때로 해야 할 말을 감추고 참는 것이 더 지혜로울 때가 있습니다. 가령 들을 귀 없는 자를 향하여 말을 삼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충고로 관계를 어긋나게 하는 것보다 지혜롭습니다.

19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죄과를 좋아하는 자요 자기 문을 높이는 자는 파괴를 구하는 자니라 20마음이 굽은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 21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 22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19-22)

악인이 악을 드러내는 첫째 방법은 바로 혀입니다. 그들은 악한 생각을 말로 쏟아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본성이 있고, 타락한 생각을 말로 나타낼 수 있기에 성경은 말을 아끼는 것이 지식이요, 명철이라 가르칩니다.

(1) 미련함의 결과 1(19-20)

이렇듯 참된 분별력을 갖지 못하게 되면 여러 가지 잘못된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그 첫 번째 경우가 다른 사람과 다투거나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높이려 하는 것입니다. 다툼으로써 자신에게 유익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높임으로 유익을 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바로 미련함이며, 그 결과 죄를 범하게 되고 스스로 멸망할 뿐입니다.

둘째, 이러한 자는 그 마음 즉 판단력이 굽었고 그래서 또한 혀도 굽었기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은 마음 곧 판단력이 굽게 되면 그 결과로 혀도 굽게 된다는 점입니다. 내면에 미련한 모습이 깃들게 되면, 그 미련함은 겉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특별히 혀를 잘못 사용하는 실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언어사용의 문제는 27-28절의 언어생활에 대한 언급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됩니다.

(2) 미련함의 결과 2(21-22)

21절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에 의하면, 미련한 자는 자신의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게 됩니다.

21절은 25절과 사실상 같은 내용을 보여줍니다. 부모에게 근심을 끼친다는 것은 미련한 자가 속한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인 가정에서 행복과 평안의 결과를 낳지 못하는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됨을 의미합니다.

22절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라는 미련한 자 자신의 내면에 미치는 결과로서 마음이 상하게 되어 육신의 건강까지 해치게 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마음이 즐거운 사람은 큰 유익을 얻게 됩니다. 미련한 사람이 되느냐 아니면 지혜로운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서 육신과 삶의 행복과 안녕이 좌우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련함이 공동체에 미치는 결과(23-26)

지혜가 그 빛을 발휘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의로운 자를 외롭다고 하고 불의한 자를 불의하다고 말하기는 너무 쉽고 상식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때로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일이 세상에 비일비재합니다. 하지만 지혜자는 하나님께서 공의와 정의를 거스르는 일을 묵과하지 않으실 것을 믿는 자들입니다.

23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 24지혜는 명철한 자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 25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26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것은 선하지 못하니라(23-26)

미련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 가족뿐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도 해악을 끼치게 됩니다. 그는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합니다. 여기서 재판이란 ‘미쉬파트’라는 단어로, ‘공의’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즉 미련한 자는 공동체 안에서 지켜져야 하는 공의까지 어그러지게 만듭니다. 그 이유를 24절에서 찾을 수 있는데, 미련한 자는 눈을 땅끝에 두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자가 생각하는 바가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묘사하는 문구입니다. 미련한 자는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공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미련한 자가 부모에게 근심거리가 된다는 언급이 21절에 이어 다시 한번 언급됩니다. 미련한 자는 의인을 벌하고 정직한 귀인을 때리는데, 이것 역시 공동체 안에서 잘못된 영향을 미치게 되는 현상에 대한 언급입니다. 미련한 자는 결국 공동체에 유익을 끼치기는커녕 여러 해악을 끼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와 말의 관계(27-28)

참 지혜는 바른말을 하는 것뿐 아니라, 때에 맞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침묵’은 단순히 ‘말 없음’이 아니며 그것도 하나의 언어입니다. 말과 말 사이의 멈춤도 언어입니다. 말하지 않음이 거부를 가리킬 수도 있고 비겁한 승인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의에 대한 단호한 거부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27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 28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27-28)

17장의 마지막 부분인 27-28절은 미련한 자의 주제와 언어생활을 서로 연결합니다. 27절에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라는 먼저 지혜로운 언어사용의 경우를 언급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삼가서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하고, 말이 적기 때문에 안정감 있는 성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28절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라는 이런 언어생활의 주제에 있어서 반어법적인 언급을 제시합니다. 심지어 미련한 자라도 말을 적게 하면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처럼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심지어 미련한 것보다도 더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 말수를 줄이고 신중하게 언어생활을 해야 합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거짓으로 다툼을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하기 때문입니다. 새삼스럽게도 참 지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신뢰하는 데서 나온다는 진리를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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