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02-02)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
학개 2장 10-23절
옥새(玉璽)는 왕이 사용하는 도장을 말합니다. 도장이 찍히는 곳은 왕의 명령이자 왕의 권한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옥새는 매우 귀중한 물건입니다. 옥새는 매우 특별하고 소중하게 관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하나님의 옥새처럼 여기십니다.
본문은 학개가 전달한 네 개의 예언 중에 세 번째 예언입니다. 그동안 부정했던 백성들이었지만 이제는 복을 주시겠다고 선언하시는 예언 및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을 회복시켜주는 예언을 동시에 내려주셨습니다. 백성들의 마음 및 지도자의 마음을 깊이 만져주시는 회복의 은혜시는 분이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성전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본문은 깊이 있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예언(10-19)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매우 귀중한 자녀들로 취급하십니다. 절대로 자녀들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고만 계실 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에게 복보다는 화를 내리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방치할 때, 어떤 결과가 맺었는지 상기시킵니다.
10다리오 왕 제이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12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13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14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15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 16그 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이십 고르뿐이었었느니라 17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18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19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10-19)
세 번째 예언은 하나님께서 학개에게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주어졌습니다. 두 번째 예언이 주어진 후 약 두 달이 지난 시간이었고,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예언으로 그들의 마음을 북돋우기 원하셨습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거룩’과 ‘부정’의 주제를 가지고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건축에 대한 주제에서 율법에 대한 질문으로 본문 주제가 바뀝니다. 선지자 학개를 통해 제사장들에게 질문하시고 대답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를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⑴ 율법을 기초로 한 부정 선언(11-14)
학개는 먼저 12절을 통해서 거룩한 고기를 옷자락에 싸서 옮기다가 다른 옷자락 등에 닿으면 그 닿은 것 역시 거룩해지느냐고 물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이에 ‘아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정리하면 ‘거룩은 전염되거나 전파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13절에서는 ‘부정의 전염성’에 대해서 질의했습니다. 누군가 시체를 만져서 부정해졌는데 그가 12절에 언급된 기름, 음식 등을 만지게 되면 그것들이 부정해지겠느냐는 질문인비다. 제사장들은 이에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정리하면, ‘부정은 전염된다’는 것입니다. 거룩은 전염되지 않고 부정은 전염된다는 이 대조가 뜻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부정은 너무나 쉽게 공동체 가운데 퍼지게 되기에, 조그만 잘못으로 인해서도 공동체 전체가 금방 타락하게 됨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총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볼 때, 불결한 상태임을 지적한 것입니다(14). 그러므로 성전을 완성할 백성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불결함에서 돌이켜 거룩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학개는 14절에서 바로 이 점을 선언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백성이, 나라가, 그 백성들이 한 모든 일들까지도 다 부정하다는 것입니다. 이 선언은 포로귀환 공동체 전체가 부정케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그들이 성전 건축을 하지 않았기에, 그로 인해 모든 공동체 및 그들이 하는 모든 일들까지도 다 부정으로 전염되게 되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부정함의 결과, 첫 번째 예언에서 언급되었듯이 백성들은 하나님의 축복 대신 저주를 경험하게 되었고, 두 번째 예언에서 언급되었듯이 그들의 마음은 위축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백성의 부정함 자체를 다루시고 새롭게 하려고 시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내용이 바로 15절 이하에 이어집니다.
⑵ 축복을 선언(15-19)
학개는 ‘오늘부터 마음을 두라’(15)고 권고합니다. 이 말은 과거를 돌아보라는 뜻이 아니라, 오늘부터 일어날 일에 마음을 두고 살펴보고 기대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즉 성전의 주춧돌이 놓이기 이전에는 어떠했겠습니까? 그 내용이 16절에 나옵니다. 이십 더미를 얻을 것이라 예상했다가 열 더미를 얻었고, 포도즙은 오십을 얻을 것이라 여겼는데 이십을 얻을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언약의 저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기에 언약의 축복 대신 저주가 임하여 백성들의 삶이 곤핍해진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해석이 17절에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기근과 메뚜기와 우박 재앙으로 백성들을 치셨지만 백성들이 돌아오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재앙들은 여호와께 돌아와 그분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는 학개의 첫 번째 예언과 두 번째 예언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두 예언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선언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학개 1:13; 2:4),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먼저 돌아오셔서 그들과 함께해주셨던 것입니다. 백성들이 그 은혜를 깨닫고 성전 재건을 다시금 시작하게 되자, 이제 하나님은 세 번째 예언을 통해서 그들의 곤핍한 삶의 근원적 문제였던 ‘부정함’ 즉 죄와 불신앙으로 오염된 근본을 새롭게 변화시켜주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 선포를 요약하면 ‘너희가 이제 성전 재건을 시작했으니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겠다’라는 메시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부터 일어날 일을 살펴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오늘’이란 세 번째 예언이 내려온 아홉째 달 이십사일을 말합니다. 19절은 백성들이 그 동안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서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오늘부터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설 것이라 선포합니다. 나무에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신명기 28장의 저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상태를 회복시켜 축복을 받는 삶으로 바꾸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백서들을 향해 먼저 돌아오시고, 그 은혜로 성전 재건을 시작한 백성들을 보시고서는 그 행동을 기뻐하시면서 복을 더 주겠다고 하시는 하나님, 언약 백성을 회복시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네 번째 예언(20-23)
하나님께서는 화(禍)와 복(福)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이 잘못된 길을 갈 때는 벌을 주셨지만, 올바른 길을 갈 때는 한없는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에서는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착수하자 하나님께서는 거두어 가신 복을 다시 주겠다며 격려해주십니다.
20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1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22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23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20-23)
불순종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들이 죄를 깨닫고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 경제적인 재난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부터 복을 내리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지런히 수고하지만 기대 이하의 결과는 맺습니다.
⑴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 선언(21-22)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을 향하여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다’(21)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22절의 도입부입니다. 22절이 본론인데,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으로 열방의 왕국들을 진동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그 열방들의 병거 및 그 병거를 탄 자들을 엎드러뜨리실 것이요, 그들은 서로를 죽이고 멸망하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스룹바벨에게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스룹바벨은 여호야긴의 후예로, 다윗 가문을 이어 왕이 될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열방 제국인 페르시아의 총독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스룹바벨에게 페르시아 제국을 두려워하지 말고 성전 건축을 담대하게 수행해나갈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페르시아를 움직이셔서 성전 재건이 문제없이 이루어지게 할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스룹바벨이 하나님의 이 선포를 들었을 때 큰 담대함을 얻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⑵ 스룹바벨을 인장 반지로 삼으심(23)
2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을 ‘내 종’이라 부르시면서 그를 인장 반지로 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장 반지란 왕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로서, 한국적 의미의 옥쇄입니다. 그 반지의 도장을 찍어 왕이 문서에 결재를 함으로 모든 정책이 반포됩니다. 이 구절은 예레미야 22:24을 반추합니다. 예레미야 22:24-30에서 하나님께서는 고니야(즉 여호야긴)가 하나님의 손의 인장 반지일지라도 빼어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줄 것이며(예레미야 22:24), 그 후손 중에는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다시 없을 것이라고 저주를 선언하셨습니다(예레미야 22:30). 스룹바벨은 분명히 이 저주를 알고 있었을 것이며, 그런 저주를 받은 가문의 후손이 유다의 지도자 노릇을 하고 있기에 성전 재건이 중단되었을 것이라 여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스룹바벨을 향해 주님은 ‘내가 너를 인장 반지로 삼겠다’고 선언하심으로 스룹바벨의 마음의 상처와 괴로움을 위로하시고 풀어주셨다. 스룹바벨은 이 말씀을 듣고 더욱 힘을 내어 성전 건축에 박차를 가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공동체뿐 아니라 공동체의 지도자 개인의 마음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그를 위로하시고 말씀으로 세우셔서 다시금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이 다윗 가문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그러하다. 우리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인해 성전은 결국 완성되었고, 우리의 삶에서도 그 하나님의 왕국은 반드시 완성되고야 말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일기장을 펼쳐놓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실패 원인을 조목조목 알려주셨습니다. 백성의 회개와 믿음의 작은 싹만 보시고도 섭섭함과 안타까움을 다 털어내시고 백성을 일으키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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