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01-01)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령
학개 1장 1-15절
누구나 한 번 정도는 신앙 생활을 하다가 슬럼프에 빠져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신앙이 점점 침체하는 것을 걷잡을 수 없도록 빠져듭니다. 한번 슬럼프 빠지면 회복하기가 정말로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예 신앙을 떠나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혹시 지금 신앙의 슬럼프에 빠져들고 있는 사람 있습니까? 본 학개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신앙 회복을 간절히 외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당신에게 회복시켜 주는 능력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본문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건축에서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일과 집에만 몰두하여 하나님께 소홀하였습니다. 선지자 학개를 통해 그들의 문제를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해결할 수 있도록 친히 도우셨습니다.
시대적인 배경(1-2)
‘소명(召命)’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부르셨기에, 우리의 존재나 행위 전체를, 소유 전체가 특별한 헌신과 역동성으로 그분의 소환에 응답하여 그분을 섬기는 데 투자된다는 진리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성전 재건에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1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1-2)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학개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라고 권고하십니다. 학개서는 크게 4편의 예언으로 기간은 약 4달 동안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습니다. 본문은 그 중에 첫 번째 설교에 해당됩니다.
⑴ 시간적인 배경(1)
주전(B.C) 586년 바벨론에 의해 남 유다는 멸망을 당합니다. 그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70년 후에 약속대로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학개를 통해 먼저 지도자인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에게 임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할 때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먼저 말씀하신 것은 그만큼 공동체에서 지도자의 역할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없을 때 교회는 영광을 잃게 되고 백성들은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⑵ 환경적인 배경(2)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들은 성전 재건에 대한 명령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기쁨 마음으로 건축하려 했지만, 당시 예루살렘 주변에 살던 사마리아인들의 방해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 결과, 성전 재건은 중단되었습니다. 더욱이 중단 이후 16년이 지나도록 건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한 심각한 상태를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내 백성’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 백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핑계거리로서 입에 달고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라는 말을 지적하십니다. 그들은 성전을 건축해야할 사명은 알고 있지만, 건축하지 못한 이유 있는 변명거리였습니다. 사실상 그들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 즉 ‘건축할 분위기가 아니다.’란 완곡한 표현으로 성전 재건을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전 중단한 대신에, 자기 집만 화려하게 꾸미는 데만 집중하였던 것입니다.
백성들의 문제(3-11)
어려운 상황에 처한 성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현재 너무 맘몬(돈)에 매여서 노예가 되어 있지 않는지, 자신의 영적 상태를 살피면서 하나님께서 멀어져 있다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학개는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태도와 자신들이 겪고 있는 형편 간의 관계를 생각해보도록 촉구합니다.
3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4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6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7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8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9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10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3-11)
하나님의 도움 없이 관심을 쏟는 당신의 수고는 헛수고가 됩니다. 따라서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에 무관심한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요즘 당신이 관심을 쏟는 일은 어떤 일입니까?
⑴ 잘못된 우선순위(3-5)
하나님께서는 학개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포로 귀환 백성들에게 ‘성전이 폐허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자기 집 일에만 신경을 쓰며 사는 것이 옳으냐?’고 물으며, 그 때문에 그들의 모든 수고가 헛수고가 되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조 기법을 사용해서 말씀하셨습니다(4). 백성들이 좋은 집에 거주하고 있는 데 반해 하나님의 집은 황폐한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포로 귀환 공동체는 충격이 다가왔을 것입니다.
핵심 메시지를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5)고 하셨습니다. 이는 ‘너희 길에 마음을 두라’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길’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향과 태도를 뜻합니다. 그들은 자기 행위를 살필 시간도 없이 분주하게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정말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살피라는 것입니다.
⑵ 잘못된 우선순위 결과(6-11)
지난 16년 동안 성전을 재건하지 않은 채 지내온 백성들에게 그들의 삶을 마음을 다해 반추해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분주하게 살아온 삶은 어떤 결과를 맺겠습니까? 그 이유를 알려줍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6)고, 대조 기법을 사용하여 백성들이 원한 삶의 모습과 실제 삶의 모습을 비교합니다. 잘못된 우선순위로 살아간 백성들에게 불만족이었습니다. 많이 뿌려도 적게 거두었고, 먹어도 배부르지 못했고, 마셔도 흡족하지 못했습니다. 삯을 받아도 모이지 않았습니다.
6절이 설명하는 내용들은 사실상 시내산 언약의 저주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신명기 28장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시내산 언약의 축복과 저주를 설명하는데,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면 복을 얻게 되지만 그 율법에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게 됨을 말합니다. 그 저주의 내용 중에 학개 1:6의 내용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신명기 28:38에는 ‘많은 종자를 들에 뿌릴지라도…거둘 것이 적을 것이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8장의 다른 부분에는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그 대가를 얻지 못하는 여러 경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집을 건축했지만 거주하지 못하고 포도원을 심었으나 열매를 따지 못하고 토지 소산을 얻었지만 먹지 못하게 된다는 경우들입니다(신명기 28:30-33). ‘노력하였으나 결과를 얻지 못함’이 바로 학개 1:6의 주제이기에, 신명기에 나타나는 시내산 언약의 저주, 즉 불순종의 결과로 나오게 된 저주를 언급하고 있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 것은 포로귀환 공동체가 성전을 재건하지 않음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결과가 됨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7절에서 5절의 명령을 다시 반복하십니다. 각자 자신의 길에 마음을 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책망이 아닙니다. 자신의 길에 마음을 두고,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자세히 살피라는 권고입니다. 성전 없이 살아가야 하는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판단되는 문구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이 8절에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확하게 명령하십니다. 성전을 재건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9-11절에서 성전 재건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고난으로 닥쳐왔음을 다시금 자세히 서술해 나가십니다. 이기적인 백성들은 거둔 것을 집으로 가져갔지만 하나님께서 불어버리셨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이 축복을 주지 않았고,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 등 모든 일에 가뭄이 찾아왔습니다. ‘곡물’, ‘새 포도주’, ‘기름’은 소선지서에서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목록으로 자주 등장하는 요소들입니다(참조. 호세아 1:8). 하나님께서는 포로귀환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성전을 건축함을 통해서 다시금 언약의 복된 상태를 누리기 원하셨습니다.
말씀에 대한 반응(12-13)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이 세상 무엇보다 주님을 더 존귀하게 여기는 우리 마음입니다. 돈이 없어도 지식이 짧아도 직장을 잃어도 몸이 건강하지 못한다고 해도 주님을 기뻐하실 영광의 처소가 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만족하십니다.
12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13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12-13)
하나님께서는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선지자 학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유대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대표로 하여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목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상 ‘청종하다’란 순종을 의미합니다. 이유는 여호와께서 학개를 보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생각하며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주인공으로 여겨, 그분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13절에서 학개를 통해 매우 중요한 말씀을 전달하십니다. 바로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라는 선포이십니다. 이 구절의 신학적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하신다는 임재의 선포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하나님의 임재가 실제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성전 건축이 먼저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완성되어야 하나님께서 오셔서 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순서를 뒤집으시고, 성전이 아직 재건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라고 먼저 선포하셨습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 들을 때, 이 말씀은 단순한 예언이 아닌 매우 급진적인 신적 메시지였습니다. 성전이 건축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벌써 오셨다는 것은 바로 성전이 반드시 재건될 것이라는 확인의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선포를 통해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시작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완성되도록 역사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언의 결과(14-15)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그것을 인식하든지 안 하든지 그 백성들과 동행하십니다. 또한 항상 동행하시겠다고 약속해주십니다. 하나님과 지도자와 그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이 먼저 세워질 때 눈에 보이는 성전도 세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선지자의 말을 청종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반응하며, 온 백성은 하나님께서 일깨워주신 마음을 따라 성전을 재건하는데 착수합니다.
14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15그 때는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더라(14-15)
이러한 학개 선지자의 예언 선포로 인한 결과가 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스룹바벨의 마음, 여호수아의 마음, 포로귀환 공동체의 모든 백성들의 마음이 감동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켰다’는 표현으로 쓰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번역된 단어는 ‘영혼’이라는 뜻이다. 앞서 5절과 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마음을 너희의 길에 두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영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좀 더 근본적인 내적 변화를 언급하시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감동시키다’이란 단어는 ‘잠든 상태를 깨워 일으키다’ 혹은 ‘방향성/운동성을 부여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그들의 영혼이 사실상 움직이지 않는 잠든 것 같은 상태였는데 학개의 메시지를 통해서 그들의 영혼이 깨어나 움직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라는 하나님의 선제적인 선포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여섯째 달 십사일에 하나님의 전 공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장에 나타난 첫 번째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백성들을 단순히 책망하시는 데서 머물지 않으시고, 오히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라는 예언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그들의 영혼을 움직여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을 반드시 완성하시며, 그 백성들이 그 하나님의 일에 사용되도록 친히 일하시는 분입니다.
객도, 주인도, 지붕도 없는 하나님의 집에 가장 큰 손실은 백성의 마음이 떠났다는 것, 백성은 하나님에 대해 마음을 비웠고, 하나님께서는 백성들로 인해 마음이 베였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삶에 분주했다면, 이제라도 주의 집에 꽉 찬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돌아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그 일을 이루는 소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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