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31-01)
블레셋과 전쟁에서 전사한 사울
사무엘상 31장 1-13절
인생에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대부분 죽음이라고 답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마지막이요 이별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인생의 최후를 맞이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 목숨이 다하면, 새로운 세상을 시작합니다. 인생은 새로운 탄생에 즐거움도 있지만, 죽음을 통한 인생의 궁극적인 방향과 목적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 본 장은 사울의 최후를 소개합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전투에서 패배하고 도망했습니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했는데, 사울의 세 아들들도 죽었습니다. 블레셋 병사가 쏜 화살에 사울도 맞아서 중상을 입고 쓰러졌습니다. 사울은 살아날 가능성이 없음 깨달고 스스로 칼 위에 엎드려져 죽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 매달았는데, 야베스 사람들이 그 사울과 아들들 시체를 야베스로 가져다가 장사지냈습니다.
블레셋 전쟁에서 패배한 사울(1-2)
반복되는 실수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겸허하게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신의 야망과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게 되어지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처음 실수할 때, 하나님께 자신을 내려놓고 매 순간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더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습니다.
1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2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1-2)
본문이 ‘사무엘상’의 마지막입니다. 연극으로 말하면 한 막을 끝내고, 서서히 막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내용으로 2막이 전개될 것입니다. 사무엘상은 전반부는 사무엘 선지자의 인생에 대해, 후반부의 주인공은 사울의 전 생애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울의 최후를 그림으로 끝내고 있습니다.
(1) 도망하는 이스라엘(1)
본문 31장은 28장에서 엔돌의 신접한 여인에게 신탁을 받은 사울의 이야기와 다시 연결됩니다.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불안한 사울은 전쟁이 어떻게 될지 묻기 위해 여호와를 찾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결국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신탁을 듣게 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하고 내일 전투에서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을 것이라는 신탁을 받습니다. 사울은 이런 기막힌 신탁을 듣고 그 밤에 돌아갔고, 그 다음 날이 바로 31장의 블레셋과의 전쟁입니다.
그런데 31장에서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투는 아주 간단하게 서술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쳤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하였고, 일부는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참고로 고대 전투의 무기는 칼이나 활, 창 등 모두 관통상을 입히는 무기들이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자’라는 단어는 ‘관통상을 입은 자’라는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변변하게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하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28:19의 예언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 넘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손에 아말렉을 넘기셔서 아말렉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간 것과 반대되는 모습입니다.
(2) 사울의 세 아들(2)
블레셋 군사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예언대로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세 아들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를 함께 죽습니다.
2절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사울의 세 아들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집요하게 추적하여 이들을 죽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예언하신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요나단도 같이 죽는데, 그는 비록 아버지의 뜻을 어겨 다윗을 살려주고, 자신과 아버지의 왕위를 위태롭게 하여 원수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아버지의 창에 죽을 뻔도 하였지만, 끝까지 아버지를 떠나지 않고 충성하며 사울의 아들로 살다 사울의 아들로 죽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살았던 이유는 인생의 우선순위를 잘 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생에서 우선순위의 첫째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다윗을 살려준 것입니다. 다음 순위는 왕이자 아버지인 사울에 대한 충성과 사랑입니다. 사울이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했지만, 아버지의 아들로서, 한 나라의 왕자로서 의무를 다하며 아버지 곁에 머물렀고, 아버지와 같이 죽었고, 죽어서도 아버지가 받는 수치와 모욕을 함께 받았습니다. 요나단은 자신이 섬기는 두 아버지, 하나님과 사울에게 충성하며 살다 용사로서 전사하였습니다.
사울의 죽음(3-7)
나이가 들수록 힘이 생길수록 조심해야 합니다. 인생 끝에는 정말로 하나님만이 우리의 왕이시고 주인이시라고 진심으로 고백하고 다 내려놓고 그분만이 높임을 받으시도록 모든 것을 쏟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평생 했는데, 말년의 모습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 못하다면 비극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섬기는 교회들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보다 못하다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입니다.
3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잡으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에게 중상을 입은지라 4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5무기를 든 자가 사울이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6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7골짜기 저쪽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쪽에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었음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에서 사니라(3-7)
아들들의 죽음을 간단하게 언급한 것과는 달리 사울이 어떻게 죽었는지 본문은 자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은 아마도 자신이 패했다는 것을 인지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로는 적에게 붙잡혀 처참하게 모욕을 당하며 죽임당하게 될 것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1) 사울의 죽음(3-4)
3절에서 ‘사울이 패전하매’로 번역되었는데, 원문의 뜻을 살려 해석하면 전쟁이 사울에게는 감당할 수 없이 무거운 것이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사울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셨거나 요나단이 함께하거나 다윗이 함께 싸웠습니다. 그동안은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셨기 때문에 무거운 줄 모르고 감당할 수 있었지만, 혼자 싸우는 지금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고 힘든 짐이 된 것입니다. 결국 지금은 하나님께서 사울과 함께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사울은 싸우다 힘에 부쳐 도망하였고, 도망하다가 활에 맞아 중상을 입었습니다. 사울은 더는 도망할 수 없다는 것과 오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신탁이 이루어질 것임을 간파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왕 죽을 바에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의 손에 모욕적으로 죽지 않고 덜 모욕적인 죽음을 택하고 싶었습니다.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란 표현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을 비하하여 부를 때 쓰는 표현으로, 다윗이 골리앗에게 사용했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무기 든 자인 수행원에게 죽여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무서워서 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사울은 스스로 자기 칼 위에 넘어져 죽습니다.
(2) 전쟁의 결과(5-7)
사울의 무기 든 자도 사울의 죽음을 보고 따라 죽습니다. 6절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과 무기 든 자의 죽음을 다시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신탁대로 같은 날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사울은 평생을 블레셋과 싸우다 결국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7절은 전쟁이 완전히 끝난 후의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으로 이스르엘 골짜기 건너편에 있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남겨두고 도망갔고, 요단 동편에 있던 사람들도 도망하였습니다. 사울이 죽은 후에 블레셋은 북으로 이스르엘 지역과 동쪽으로 요단 동편까지 진출하여 살았다고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런 블레셋의 확장은 사울이 왕권을 잡은 초기 상황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한 이유가 블레셋의 강성함을 보고 그들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는데, 사울의 마지막 순간의 상황은 왕을 세운 효과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강성하기 위해서는 왕정제도가 이스라엘을 강하게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순종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줍니다.
사울의 죽음과 장사(8-13)
아무리 좋은 자리에 앉아있어도, 아무리 권력과 재물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삶은 비참한 말로(末路)를 걷게 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끝까지 움켜쥐려고 애써도, 그것들도 인생은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진솔하게 내려놓을 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고 자신의 야욕에 매여 몸부림쳤던 사울 왕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입니다.
8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9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의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알리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에 보내고 10그의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의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11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12모든 장사들이 일어나 밤새도록 달려가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내려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가서 거기서 불사르고 13그의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 나무 아래에 장사하고 칠 일 동안 금식하였더라(8-13)
전쟁에서 승리한 블레셋은 사울 왕의 시신을 확인하고 시신을 능욕합니다. 이 사실은 신전에 고함으로써 자기 신 아스다롯이 여호와를 이긴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울의 패배는 하나님의 패배가 dsl라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결과였습니다.
(1) 벧산 성벽에 매달린 사울(8-10)
사울의 시체를 모욕하는 블레셋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 날 블레셋 사람들은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서 전쟁터를 돌아다녔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물건이 귀했기 때문에 죽은 병사들이 입고 있던 갑옷이나 무기들을 전리품으로 챙겼습니다.
이렇게 돌아다니던 중에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과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발견합니다. 사울의 죽음을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머리를 베고, 갑옷을 벗기고 사자들을 보내어 블레셋 전역과 산당에 사울의 죽음을 알립니다. 이스라엘의 왕 사울의 죽음은 블레셋에게는 큰 경사이며 축하할 일이기 때문에, 산당에 알려 감사의 제사를 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의 죽음을 감사하기 위해 사울의 갑옷은 아스다롯 신전에 보관합니다. 이전에 골리앗을 죽여 머리를 베고 그의 칼을 놉에 있는 성소에 둔 것과 비슷합니다. 이제 상황이 역전되어 블레셋에게 모욕을 주던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모욕을 받고 있는 모습이 더 잘 드러냅니다. 그의 시체는 이스르엘 산지에 있는 벧산 성벽에 못 박아 놓는데, 12절을 보면 사울의 시체와 함께 세 아들의 시체도 같이 못 박아 놓았습니다.
이것은 사울의 시체가 안장되지 못하게 하여 죽은 자를 철저하게 욕보이는 행동입니다. 사울이 두려워하던 일이 죽은 후에 자신의 시체에 행해진 것입니다.
(2) 장사하는 야베스(11-13)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의 장례를 치름이 소식이 요단 동편 지역에 살고 있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알려집니다. 사울은 이전에 암몬의 손에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구해준 적이 있었습니다(삼상 10:27-11:15), 그것에 보답하기 위해 길르앗 야베스의 용사들은 먼 길을 밤새 달려와 죽음을 무릅쓰고 사울과 사울의 세 아들의 시체를 수습합니다. 시신을 야베스로 가져가 그곳에서 화장하고 야베스에 있는 에셀나무 밑에 그의 뼈를 묻어주고, 그를 위해 7일 동안 금식하며 애도를 표합니다.
12-13절에서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행동을 자세히 설명하는데, 이들이 사울에 대해서 매우 용감하고 신의 있고 예의 있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울이 처음 왕이 되어 아직 순수할 때 이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 하나로 이스라엘 사람을 모아 암몬과 전쟁해서 이들을 구했는데, 그 은혜를 자신이 죽은 후에 이와 같은 정중한 장례로 보답 받게 된 것입니다. 선을 선으로 갚으시고 악을 악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아 왕으로 뽑혔던 늠름하고 순수했던 사울은 왕권을 잡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하나님께 버림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사울은 하나님만이 진정한 왕이시자 우리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잊는 순간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때를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울은 40년이라는 통치를 했지만, 그의 마지막은 매우 비참했습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 잘했다 칭찬받은 성도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인생의 결말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도 가장 큰 숙제입니다. 아름다운 인생으로 마감하려면, 처음부터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최후까지 책임을 져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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