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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26-01)


다시 다윗을 죽이기 위해 쫓는 사울

사무엘상 26장 1-12절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항상 깨어 있을 것에 대해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이것은 베드로 시대에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쉬지 않고 공격해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 십 사람들이 다시 사울에게 다윗의 은신처에 관한 정보를 고발하였습니다. 사울은 선발한 삼천 명의 군사를 데리고 광야로 가서 진을 쳤습니다. 밤중에 다윗이 아비새와 함께 사울의 진영에 잠입하여 잠자고 있는 사울 곁에 이르렀습니다. 아비새는 창으로 사울을 찔러 죽이겠으니 허락해달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자를 해할 수 없다고 말하며, 사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다윗을 잡기 위해 십 광야로 온 사울(1-5)

사람의 마음과 약속은 매우 쉽게 변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불안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나 그리고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들의 사랑과 다르게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이 기쁘고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1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 2사울이 일어나 십 광야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가서 3사울이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가에 진 치니라 다윗이 광야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광야로 들어옴을 알고 4이에 다윗이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 5다윗이 일어나 사울이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사령관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에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1-5)

 

다윗은 나발에게 사사로운 복수를 해서 큰 실수를 범할 뻔했는데, 지혜로운 여인인 나발의 아내 아비가엘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하고 있는지 깨닫고 즉시 돌이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나발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앞으로 사울 역시 처리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은 계속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 십 사람들의 고발(1)

 

사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며 울었습니다. 심지어 다윗이 미래 왕이 될 것이라는 사실까지 시인했습니다. 자신의 후손들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맹세를 요구하기까지 했습니다(삼상 24:16-22). 그러나 사단은 사울을 주변 사람들을 통해 또 충동질합니다. 다윗에게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도록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다윗으로부터 하나님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사무엘상 23:19에 등장했던 십 사람들이 여기 다시 등장하여 또다시 다윗이 하길라 산 수풀에 있다고 사울 왕에게 알려줍니다. 23장과 연결해서 보면 사울이 이들에게 다윗이 숨은 곳을 찾아 확실해지면 자신에게 보고하라는 명령이 아직도 유효했기 때문에 십 사람들이 여전히 다윗에 대한 정보를 사울에게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24장에서 사울은 다윗에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 다윗이 자신을 살려준 일에 감격하여 다윗을 의롭다고 이야기하고, 다윗을 다음 왕으로 인정하기까지 하였습니다.

 

(2) 사울의 군사 이동(2-3a)

 

26장에서 사울은 십 사람들의 말을 듣자마자 다시 충동질이 일어납니다. 그는 바로 다윗을 잡기 위해 병사 3,000명을 이끌고 십 광야로 갑니다. 다윗을 죽이겠다는 사울의 생각은 사무엘서 안에서 시종일관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24장에서 다윗을 ‘내 아들아’하고 부르던 사울의 모습이 비정상적이고 특별한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면 사람은 변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울의 군사 3,000명은 24장에서 특별히 선별하여 모은 바로 그 군사들입니다. 사울은 다윗이 숨어 있다고 알려진 하길라 산 길가에 진을 칩니다. 다윗은 그 근처 광야에 있다가 사울이 자신을 쫓기 위해 광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가려는 최종 목적지가 어딘지 확인합니다. 이것은 우연히 사울과 만나게 된 24장과 다른 점으로, 다윗의 행동이 적극적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다윗의 감시(3b-5)

 

사울이 진 친 곳을 알게 된 다윗은 그곳으로 가서 직접 사울의 진을 정탐합니다. 5절은 다윗이 사울의 진을 관찰한 내용으로 다윗은 여러 진들 중에 특히 사울과 군대장관 아브넬이 자리 잡은 진을 관찰하였는데, 사울이 진 가운데 누워있고 나머지 군사들이 그를 호위하며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아브넬이 사울 옆에 있는 것을 보면, 사울이 아브넬의 호위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사울이 다윗을 추적할 때는 아브넬이 동행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처음 사울과 동행하였습니다.

 

사울의 진영을 정탐하는 다윗(6-7)

하나님의 사명은 수많은 사람이 환영하는 자리이기보다 죽음을 무릅쓴 위험한 자리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시한 사명자들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목숨을 걸고 순종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제자의 사명을 따라 말씀에 순종하기를 기뻐하십니다.

 

6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이르되 누가 나와 더불어 진영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하니 아비새가 이르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7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6-7)

 

아비새는 다윗의 부름 앞에서 죽을 수 있는 위험한 사명이었지만 순종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3,000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정탐꾼들을 보내 확인했습니다. 정탐꾼들은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왔다고 보고합니다.

 

(1) 자원한 아비새(6)

 

사울의 진을 관찰한 다윗은 밤에 진에 있는 사울에게 가려고 하였고 자신과 함께 다니는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누가 자신과 같이 가려는지 묻습니다. 그동안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여기서는 다윗의 사람들의 이름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군대도 점점 체계를 갖추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고, 여기서 이름이 언급되는 인물들은 군대 내에서 지위가 높고 다윗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헷 사람 아히멜렉의 이름은 여기서 유일하게 등장하는데, 돈으로 고용된 용병으로 추측됩니다. 아비새는 여기서 처음 등장하는데, 그는 다윗의 여자 형제인 스루야의 아들로 다윗의 조카이며, 그의 형제는 요압과 아사헬이 있습니다. 다윗의 질문에 조카 아비새가 같이 가겠다고 자원합니다. 헷 사람 아히멜렉은 같이 가겠다고 하지 않는데, 사실 밤에 사울의 진영으로 가자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아무리 밤이어도 망을 보는 사람들이 있고 수많은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달랑 둘 혹은 셋만 적 진영 중심에 있는 사울에게 간다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한 아히멜렉은 침묵하였고, 대조적으로 아비새는 용감하게 다윗을 따라가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이후에도 아비새는 항상 돌격대장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2) 사울 진영에 잠입(7)

 

밤이 되자 다윗과 아비새는 사울의 군대가 있는 곳으로 갑니다. 다윗이 가서 보니 낮에 본 것과 같은 대형으로 사울은 진 가운데서 누워 자고 있고 아브넬과 병사들은 그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점은 창이 사울의 머리 쪽 땅에 박혀 있는 것입니다. 위험한 상황이 생겼을 때, 사울이 창을 쉽게 잡기 위해서 머리맡에 박아놓은 것입니다. 이런 진의 모습은 사울을 철저하게 보호하기 위해 배열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전에 다윗에게 죽을 뻔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나름대로 자신을 방어하는 데 상당히 신경을 쓴 것입니다.

 

사울의 창과 물병만 들고 나오는 다윗(8-12)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며 구원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오늘도 이 세상에 공의과 정의를 베풀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감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8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9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10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11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12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8-12)

 

하나님께서는 사울과 모든 군사들을 깊이 잠들게 하심으로 다윗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다윗과 아비새는 사울이 잠들어 있는 적진 가장 깊은 곳으로 침투했습니다. 사울은 진영 한가운데 모든 군사들에게 둘러싸여 보호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1) 아비새의 말(8)

 

다윗과 아비새는 사울의 진에 들어섰습니다. 그곳에서 무방비로 사울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본 아비새는 이번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24:4에서 변을 보기 위해 혼자 동굴에 들어온 사울을 보고 다윗의 사람들이 한 말과 같습니다. 이번에도 사울은 다윗에게 무방비로 노출된 것입니다. 아비새는 허락만 하면 자신이 창으로 한 번에 죽이겠다고 장담합니다. 다시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이 상황에서 사울을 죽이는 것은 너무 쉽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봐도 여호와께서 사울을 다윗의 손에 주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다윗의 대답(9-11)

 

하지만 다윗은 이번에도 사울을 죽이겠다는 것을 말립니다. 지난번처럼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죽이는 것은 죄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의문문으로 ‘무죄하겠느냐?’고 물었는데, 이것은 분명하게 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왜 죽이지 말라고 하는지 설명합니다.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면서 여호와께서 사울을 치실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래서 그의 생명이 다해서 죽든지 아니면 전쟁터에서 망하든지 어쨌든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3) 떠나가는 다윗(12)

 

이것은 지난번과 달라진 것으로 다윗은 나발 사건을 겪으면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그분이 선한 것은 선한 대로 악한 것은 악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다시 한 번 아비새에게 여호와께서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손대는 것을 금하신다고 설득하며 물병과 창만 가져가자고 말합니다.

여기서도 다윗은 이전과 동일하게 사울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병과 창은 물과 무기를 상징하며,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윗이 가져간다는 것은 사울의 생명을 가져간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물건을 가지고 나오는 것에 대해 어떤 심적인 동요도 없습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행동일 뿐 지난번처럼 직접 해를 가하려는 시도를 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물건들은 후에 자신이 사울을 죽일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았다는 증거품들로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담하게 적진 중앙을 돌아다니는데 아무도 보거나 알아채 사람도 없고 심지어 깨어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윗과 아비새는 모두가 깊이 잠들어 있는 조용한 진에 들어가서 물병과 창만 들고 나온 샘입니다. 이에 대해 화자는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전부 깊은 잠에 빠지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 사울이 있는 적진으로 들어가는 다윗을 보호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을 잠재워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여호와의 적극적인 개입이 나타납니다. 26장은 24장과 거의 비슷한 사건이지만, 지난번에는 수동적인 모습이 강했던 다윗이 이제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자신이 주도적으로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사울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생명 싸개 속에 넣고 보호해주시는 반면, 자신의 원수인 사울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동일한 상황이라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는 상태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는 상태의 우리 삶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다윗의 경험을 통해, 그리고 나와 내 주변의 신앙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 손에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우리도 다윗처럼 세상과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절호의 기회를 죄를 짓는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하나님께 범죄하는 유혹으로 생각하면서 아비스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다윗은 나발 사건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수를 하나님의 손에 심판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손에 사울을 죽여서 피흘림을 통한 자신의 노력으로 왕이 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그러한 방법이 왕이 빨리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지는 모르지만, 다윗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혹시 우리도 환경과 조건에 따라 편한 쪽으로 말씀을 적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건이 허락된다면 언제나 범죄할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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