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50-01)

죽음 앞에서도 언약을 붙든 야곱
창세기 49장 29절-50장 14절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가보다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왔는가가 더욱 중요합니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긴 가치와 믿음을 따라 삶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참된 믿음은 현재의 상황에만 머물지 않고 앞으로 이루어질 약속과 소망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또한 우리의 삶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믿음과 삶의 방향을 남기게 됩니다. 슬픔과 이별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변함없이 이어져 갑니다.
개 요 ********************
야곱이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며 믿음의 유언을 남기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도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조상들이 묻힌 곳에 자신도 장사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후 야곱의 죽음 앞에서 가족들과 애굽 사람들은 깊이 슬퍼하며 큰 애도를 나타냅니다. 또한 요셉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가나안 땅에 장사하며 끝까지 부모의 유언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본문은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믿음과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순종의 중요성을 보여 줍니다.
본문 강해 **********************
야곱의 유언과 죽음 (29-33절)
우리는 죽음으로써 우리 삶을 평가받고 우리의 믿음에 대한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약속의 씨인 세상의 구조,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우리도 야곱처럼 죽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있는 다른 믿는 자들에게 돌아갑니다. 야곱과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은 가나안 땅이 그들에게 주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소망 뒤에는 이보다 훨씬 좋은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29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30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32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33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29-33)
야곱은 열두 아들에게 마지막 축복을 마친 뒤, 이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합니다. 그는 아들들에게 자신을 애굽이 아니라 조상들이 묻힌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장사하라고 유언합니다. 야곱은 죽음의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의 땅을 바라보며 믿음의 정체성을 붙듭니다. 그리고 모든 유언을 마친 후 평안히 숨을 거두며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갑니다.
(1) 야곱의 마지막 유언 (29-30절)
야곱은 아들들에게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유언을 남깁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의 마지막 순간을 차분하게 준비합니다. 그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형을 피해 도망쳐야만 했으며 라반에게 속아 고된 노동을 해야 했으며 아내 라헬과 아들 요셉을 잃고 치눈물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종착역에 선 그의 마지막은 신세 한탄이 아니라 자녀들을 모아놓고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29절)라고 유언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장례 장소의 선택이 아닙니다. 그곳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같은 믿음의 조상들이 뭍힌 약속의 자리였습니다.
야곱은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간다”라고 말합니다(29절). 이것은 단순히 죽음을 의미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이 표현은 죽음을 통해 조상들의 공동체에 더해진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창 25:8), 이스마엘(창 25:17), 이삭(창 35:29)의 죽음에서도 같은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이는 죽음 이후에도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영역과 다스림 안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야곱의 유언한 막벨라 굴은 단순히 가족 묘지에 묻히는 것을 넘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조상들과 이어진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는 죽음을 모든 것의 끝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계속 이어지는 삶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을 끝까지 붙들며 믿음 가운데 생애를 마무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죽음 앞에서 분명합니다. 그는 애굽에서 오랜 세월 살았습니다. 그의 가족은 애굽에서 번성하였고,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대제국 애굽이 그의 마지막 집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애굽은 안전하고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굽 땅 중에서 가장 명당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피라미드와 같은 화려한 묘실을 만드는 것이 훨씬 영광스럽고 후손에게 안정적인 자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자신을 애굽에 묻지 말고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장사해 달라고 유언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은 애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있었기 때문입니다(창 17:8). 그는 마지막 순간 눈앞에 애굽의 영광 대신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선택하였습니다. 사실 겉으로만 본다면 막벨라 굴을 그저 어둡고 좁은 무덤일 뿐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본다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약속의 표시였습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그와 같이 고백한 것입니다. ‘나의 소망은 화려한 애굽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있다’라고 말입니다.
이 장면은 믿음의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 세상의 성공과 안정과 풍요로움이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을 하나님의 약속에 있습니다. 야곱은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이 애굽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히 11:21-22).
죽음을 앞둔 요셉은 이제 마지막 당부를 아들들에게 전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시신을 반드시 선조들이 묻혀있는 가나안 땅의 가족묘에 매장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애굽으로 건너오기 전에 약속하신 말씀이 성취되고 있습니다. ‘내가…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46:4).
(2) 약속의 가나안 장지 (30-32절)
야곱은 막벨라 굴이 어디에 있는지 매우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그곳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굴입니다(30절). 이 막벨라 굴은 조상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 은 사백 세겔을 주고 값 주고 산 땅입니다(창 23:16-20). 그곳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야곱의 아내 레아가 묻혀 있었습니다(창 49:31).
야곱이 이 장소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단순히 장례 장소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들들은 이미 그 장소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어린 시절 가나안에서 살았던 요셉도 기억하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막벨라 굴의 위치와 의미를 다시 강조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사실을 마지막 순간까지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오랜 세월 살았습니다. 그의 가족은 애굽에서 번성하였고,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애굽은 안전하고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을 애굽에 묻지 말고 가나안 땅에 장사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은 애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있었기 때문입니다(창 17:8).
야곱은 죽음을 끝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이어지는 삶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정체성이 애굽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3) 절망이 아닌 약속 (33절)
야곱은 아들들에게 명령하기를 마친 뒤,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둡니다(33절). 본문은 그의 죽음을 매우 평안하게 묘사합니다. 그는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 죽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믿음 안에서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특별히 성경은 야곱이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다”라고 기록합니다(33절). 이것은 단순한 죽음의 표현이 아닙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으로 돌아감을 의미하며, 절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 안에 자신을 맡기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육신은 땅에 묻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안에서 계속 이어진다는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야곱의 삶은 완전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형 에서를 속였고, 도망자의 삶을 살았으며, 수많은 눈물과 고난의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끝까지 붙드시고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 마지막은 믿음으로 마무리됩니다.
창세기의 야곱 이야기는 인간의 연약함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사람을 붙드시고 끝까지 언약 가운데 인도하십니다. 야곱은 죽는 순간까지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믿음 안에서 생애를 마쳤습니다.
우리 역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현재의 환경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크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까지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야곱을 위한 애굽의 애도 (50:1-6절)
사람의 삶은 죽음 이후에도 남겨진 이들의 기억과 태도를 통해 그 의미가 드러납니다. 진실한 사랑과 존경은 마지막 순간에 더욱 깊이 나타나며, 함께 슬퍼하고 기억하는 모습 속에서 관계의 소중함이 드러납니다. 또한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삶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과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삶 속에서 다른 이들에게 존중과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2그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3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4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원하건대 바로의 귀에 아뢰기를 5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 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6바로가 이르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버지를 장사하라(1-6절)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믿음 가운데 생애를 마치고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갑니다. 이후 본문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깊이 슬퍼하는 요셉과 애굽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합니다. 또한 요셉은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바로에게 가나안 장례에 대한 허락을 요청하며 마지막 책임을 감당합니다.
(1) 요셉의 슬픔 (1절)
야곱이 숨을 거두자 요셉은 아버지의 얼굴에 엎드려 울며 입을 맞춥니다(1절). 이것은 단순한 애도의 표현이 아니라, 오랜 세월 가족의 아픔과 이별을 겪어 온 아들이 마지막으로 드리는 사랑과 존경의 행동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갔던 요셉은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나 마침내 아버지와 다시 만나게 되었고, 이제 그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곁에서 지키게 됩니다.
특히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야곱에게 주셨던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창 46: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약속은 정확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며 그의 눈을 감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신실하게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이후 요셉은 의원들에게 아버지의 시신을 향품으로 처리하게 합니다(2절). 이는 당시 애굽 왕실에서 사용하던 장례 방식으로, 왕족과 귀족들에게 베풀어지던 특별한 예우였습니다. 시신을 처리하는 데에는 약 40일이 걸렸고, 이어서 애굽 사람들은 70일 동안 야곱을 위해 애곡하였습니다(3절). 당시 애굽 왕의 장례 기간이 약 72일 정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야곱은 왕족에 가까운 수준의 존경을 받은 것입니다.
야곱은 본래 가나안의 나그네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지막을 존귀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을 끝까지 붙드시고 영화롭게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2) 애굽의 애도 (2-3절)
야곱의 죽음 앞에서 슬퍼한 것은 가족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애굽 사람들 역시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였습니다(3절). 70일 동안 이어진 애곡은 야곱이 애굽 사회 안에서 얼마나 큰 존경을 받고 있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야곱은 애굽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가나안에서 내려온 외국인이며 나그네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 야곱의 가족을 보호하셨고, 결국 애굽 사람들까지 야곱의 죽음을 슬퍼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을 세상 가운데서도 존귀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또한 이 장면은 한 사람의 삶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남길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믿음의 사람은 죽음 이후에도 기억되며, 그의 삶의 흔적은 공동체 안에 오래 남게 됩니다. 야곱의 인생은 완전한 삶이 아니었지만, 하나님과 동행한 그의 믿음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습니다.
(3) 요셉의 지혜와 신실함 (4-6절)
장례 기간이 지나자 요셉은 바로에게 아버지를 가나안 땅에 장사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합니다(4-5절). 그런데 그는 직접 바로에게 나아가기보다 왕궁 사람들을 통해 조심스럽게 요청합니다. 당시 장례 기간에는 시신과 관련된 부정함 때문에 공식적인 왕실 출입이 제한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요청 방식에는 깊은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아버지가 애굽에 묻히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버지가 이미 가나안 땅에 자신을 위한 묘지를 준비해 두었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5절). 이는 정치적 오해와 불필요한 긴장을 피하면서도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한 신중한 접근이었습니다.
만일 요셉이 단순히 “애굽이 아닌 가나안에 묻히기를 원한다”고만 말했다면, 애굽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상들의 묘지에 장사되는 것은 당시 문화 속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던 일이었기에, 바로는 그의 요청을 허락합니다(6절).
요셉은 총리의 자리에서 지혜롭게 행동하였지만, 동시에 끝까지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는 신실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권세 한가운데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의 방향은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가나안에서 치른 장례 (50:7-14절)
참된 믿음과 사랑은 말로만 끝나지 않고 마지막까지 책임 있게 행동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은 어려움과 수고가 따르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과 가치가 있습니다. 또한 인생은 현재의 편안함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목적과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맡겨진 책임과 약속을 끝까지 신실하게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7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8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9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10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11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 강 건너편이더라 12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13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14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7-14절)
앞에서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유언을 따라 장엄한 장례 행렬과 함께 가나안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장례는 단순한 가족의 장례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향한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야곱은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드러내며 가나안에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이제 본문은 장례의 애통과 아들들의 순종, 그리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통해 믿음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1) 장엄한 장례 행렬 (7-9절)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유언을 따라 장례를 위해 가나안으로 올라갑니다. 성경은 그 모습을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7-8절)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올라간다”는 표현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애굽보다 높은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땅을 향한 신앙의 방향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장례는 단순한 가족 장례가 아니었습니다. 요셉 혼자만 움직인 것이 아니라 바로의 신하들과 애굽의 장로들, 병거와 기병까지 함께 동행하였습니다(7-9절). 이는 마치 왕의 장례를 연상하게 하는 장엄한 행렬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떼가 심히 컸더라”(9절)라고 강조합니다.
애굽의 고위 관리들까지 야곱의 장례에 참여한 것은 야곱과 요셉이 애굽에서 얼마나 존귀하게 여김을 받았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때 나그네였던 야곱의 가문을 높이셨습니다. 야곱은 살아서는 나그네로 살았지만, 죽음에서는 왕과 같은 존귀함을 받게 되었습니다(창 47:9, 히 11:13).
그러나 이 장례를 통해 드러나는 더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야곱의 가족은 애굽에서 큰 성공과 영광을 누리고 있었지만, 야곱을 애굽에 묻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향한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온 가족과 애굽의 고위직들이 함께한 이 장례 행렬은, 우리의 미래가 화려한 애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특히 이 장면은 훗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출애굽하는 모습을 미리 떠올리게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며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실 더 큰 구원의 역사가 그림자처럼 드러나고 있습니다(출 12:41-42).
흥미로운 점은 지금 이 장면에서는 애굽의 병거와 기병이 야곱을 약속의 땅으로 호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훗날 출애굽 때에는 같은 애굽의 병거와 기병이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게 됩니다(출 14:6-9). 지금은 애굽이 야곱의 몸을 가나안으로 보내주고 있지만,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강한 손으로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십니다(출 6:6, 12:31-33). 그래서 야곱의 장례는 작은 출애굽의 그림자와도 같은 장면입니다. 아직 온 가족이 가나안에 정착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방향은 이미 약속의 땅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야곱은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정체성이 애굽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창 49:29-32, 히 11:21-22). 믿음은 살아 있는 동안의 삶뿐 아니라 죽음 이후의 방향까지 결정하게 합니다.
(2) 가나안 백성의 반응 (10-11절)
장례 행렬은 요단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렀고, 요셉은 아버지를 위해 7일 동안 애곡합니다. 성경은 이를 “심히 크고 중한 애통”이라고 표현합니다(10절). 이것은 야곱의 죽음이 단순한 한 가족의 슬픔을 넘어 공동체 전체에 큰 영향을 주는 사건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가나안 주민들은 이 장례 행렬과 애곡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애통이 너무도 크고 깊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곳의 이름을 “아벨미스라임(אָבֵל מִצְרַיִם)”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는 뜻입니다(11절). 이 장면은 애굽 사람들조차 야곱의 죽음을 깊이 슬퍼했음을 보여 줍니다.
이 장례는 애굽 사람들만 본 것이 아니라 가나안 사람들도 함께 목격하였습니다. 애굽은 야곱을 존귀하게 보내고, 가나안은 그 장례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야곱의 몸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갑니다. 마치 야곱이 죽음을 통해 후손들에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너희의 미래는 애굽의 번영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가나안을 향하고 있다.”
또한 장례의 슬픔은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보여 줍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죽음 이후에도 삶의 흔적과 영향력을 남깁니다. 야곱의 믿음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후손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메시지를 남기고 있습니다(히 11:21).
(3) 야곱의 유언대로 행한 아들들 (12-13절)
이제 성경의 시선은 야곱의 아들들에게로 향합니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유언에 순종하여 야곱을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막벨라 굴에 장사합니다(12-13절). 이것은 단순히 장례 절차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지막 뜻에 대한 순종이며 믿음의 행동이었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오랫동안 갈등과 상처가 가득한 가정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속임과 질투, 미움과 폭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들들은 함께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며 한마음으로 움직입니다. 함께 가나안으로 올라가 장례를 치르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 동안 이 가정을 다루시고 회복시키신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막벨라 굴은 아브라함이 구입한 가족 묘지였습니다. 그곳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레아가 묻혀 있었습니다(창 23:19-20, 49:31). 야곱이 이곳에 묻히기를 원한 이유는 단순히 조상들과 함께 있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창 17:8). 그는 죽어서도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기를 원하였습니다.
특히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반복해서 가나안 땅이 강조되는 것은, 훗날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미리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출 3:7-8). 따라서 야곱의 장례는 단순한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바라보게 하는 장면입니다.
(4) 장례를 마치고 애굽으로 돌아옴 (14절)
장례를 마친 후 요셉과 형제들은 다시 애굽으로 돌아옵니다(14절).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머물지 않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갔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가나안에 묻혔지만, 그의 자손들은 여전히 애굽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하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시간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주실 뿐 아니라, 가장 정확한 때에 그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들은 언약의 땅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었지만 현실 속에서는 여전히 애굽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 모습은 믿음의 삶이 이미 약속을 받았지만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은 상태 속에서 살아가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히 11:13). 하나님의 백성은 현실 속에 살아가지만, 마음의 방향은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을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 마지막에서 야곱은 죽음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생애를 마무리합니다. 요셉과 아들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끝까지 순종하며 믿음의 책임을 감당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나그네와 같았던 야곱의 삶을 존귀하게 하시고, 그의 마지막까지 신실하게 인도하십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의 성공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함을 보여 줍니다. 우리 역시 인생의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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