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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요한복음(12)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의 도약

-요한복음 443-54-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를 갈망하게 됩니다. “하나님, 이번 문제만 해결해 주시면 정말 잘 믿겠습니다라는 조건부 기도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왕의 신하도, 아들의 죽음이라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기적 치유 사건을 넘어, 우리의 신앙이 표적(Sign)’에 머무르는지, 아니면 말씀(Word)’에 나아가는지를 깊이 돌아보게 합니다.

 

익숙함의 함정: 갈릴리의 환대와 그 속내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에서 성공적인 사역을 마치고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44절에서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존경받지 못한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열렬히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그 환대의 질을 주목해야 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대한 이유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루살렘 명절에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45). 그들에게 예수님은 생명의 주님이 아닌 볼거리 제공자에 불과했습니다. 익숙함은 본질을 가려버립니다. 우리 또한 종교적 열심이나 익숙함에 갇혀, 예수님 그분 자체보다 그분이 주시는 무언가에만 몰입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야 합니다.

 

결핍에서 터져 나온 간구: 왕의 신하의 절박함

 

이 냉랭한 영적 분위기 속에 한 왕의 신하가 등장합니다. 그는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 3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왔습니다. 사회적 지위와 부를 가진 인물이었지만, 죽어가는 아들 앞에서는 무력한 한 아버지일 뿐이었습니다. 주님,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49)라고 간절히 외칩니다.

그의 간구에는 절실함이 묻어 있지만, 믿음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반드시 직접 와야만하며, ‘죽기 전에오셔서야 아들이 낫는다고 여겼습니다. 공간과 시간에 제한된 믿음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48)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이는 신하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증거에만 의존하는 모든 세대를 향한 탄식이기도 합니다.

 

말씀이 사건이 되는 때: 보지 않고 믿는 믿음

 

예수님은 신하의 요구대로 직접 가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짧게 말씀하십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50).

이 장면이 에세이의 핵심이며, 우리의 신앙이 나아갈 전환점입니다. 신하는 예수님의 손길을 보지 못했고 아들의 상태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보고 들은 것은 오직 말씀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50).

신하는 자신의 경험과 논리를 내려놓고 내려오셔서 직접 안수해 주셔야 한다는 고집을 꺾었습니다. 말씀 하나에 자신의 전 존재를 던진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해 낙심할 때가 많은 이유는,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심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표적이 당장 나타나지 않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적은 말씀이 선포될 때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은혜의 확인: “그때인 줄 알고

 

가버나움으로 돌아가던 신하는 아들이 살아났다는 종들의 소식을 듣습니다. 아이가 낫기 시작한 때를 묻자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라는 답을 받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말씀하신 그 시간(제칠시, 오후 1시경)이었습니다.

신하는 말씀을 믿고 길을 떠났으며, 나중에야 그 말씀이 실제 사건임을 확인했습니다. 믿음은 보고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걸어가다 보니 확인되는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신하뿐 아니라 온 가족이 믿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위기가 가정의 구원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이 기록한 두 번째 표적의 결말입니다.

 

결론: 당신의 가버나움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4장의 이 사건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표적을 보고 믿으려 합니까, 아니면 말씀이기에 믿으려 합니까?”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 주님은 화려한 기적을 먼저 보여주시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저 가라, 평안하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는 고요한 말씀만 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할 일은 왜 표적을 주지 않으시느냐하고 항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붙들고 묵묵히 자신의 가버나움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삶에는 수많은 말씀의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일하시는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말씀을 믿고 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 이미 아들은 살아났고 문제는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표적을 구하는 신앙에서 말씀을 사는 신앙으로의 도약, 이것이 오늘 우리 모두가 누려야 할 가장 큰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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