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요한복음(08)

주인공의 자리를 내어주는 기쁨
-요한복음 3장 22-36절-
비교와 시기의 파도를 넘어서
유대 광야의 바람이 거세게 불던 날, 세례 요한의 제자들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스승에게 세례를 받았던 예수라는 청년에게 사람들이 몰려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있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제자들의 이 말 속에는 서운함과 시기심, 그리고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불안감이 서려 있었습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이 제자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합니다. 나의 성공보다 타인의 성장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내가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자리에서는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 위기의 순간, 세례 요한이 던진 대답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의 뒤통수를 치는 영적 각성을 선사합니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것
요한은 흔들리는 제자들을 향해 가장 먼저 ‘존재의 근원’을 확인시킵니다.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이는 자신의 사역과 인기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잠시 위탁받은 것임을 고백하는 청지기 정신의 극치입니다.
우리가 불행해지는 이유는 내가 가진 것을 나의 힘으로 쟁취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내 능력, 내 업적, 내 자리가 모두 나의 것이라고 믿을 때,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무너집니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을 ‘그리스도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로 명확히 규정합니다. 조연이 주연의 자리를 탐내지 않을 때 비로소 극 전체가 아름다워지듯, 요한은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신랑의 친구가 누리는 역설적인 기쁨
요한은 자신을 ‘신랑의 친구’에 비유합니다. 혼인 잔치의 주인공은 신랑입니다. 친구의 역할은 신랑의 음성을 듣고, 신랑이 돋보이도록 돕는 것에 있습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가장 깊은 신비를 발견합니다. 나의 영향력이 커져야 기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그분이 높여질 때 비로소 내 기쁨이 완성된다는 역설입니다. 이는 자기 비하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존귀한 분의 영광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최상의 만족입니다. 내가 작아질 때 비로소 내 안의 그리스도가 커지며, 그때 비로소 인간은 존재의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본문의 정점은 30절의 위대한 고백에 있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 고백은 기독교 영성의 정수이자, 거듭난 자가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입니다.
‘쇠한다’는 것은 단순히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촛불이 태양 빛 아래서 그 빛을 잃듯, 더 큰 영광 안으로 흡수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사라져야 할 시간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라는 참된 빛이 오자 스스로 광야의 메아리가 되어 사라지기를 선택했습니다. 주인공의 자리를 내어주는 이 용기는 오직 ‘위로부터 오시는 이’(31절)를 온전히 신뢰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결론: 영생을 소유한 자의 넉넉함
본문의 마지막은 아들을 믿는 자에게 있는 ‘영생’에 대해 선언합니다. 영생은 단순히 죽어서 가는 천국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가치를 소유함으로 이 땅의 비교와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상태, 즉 하나님의 통치 아래 머무는 삶을 뜻합니다.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부터 지탄받는 이유 중 하나는 ‘흥하려는 욕망’ 때문인지 모릅니다. 내가 흥하고, 내 이름이 드러나며, 내 공동체가 커지는 것에 매몰될 때 우리는 세례 요한이 가졌던 그 순전한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으로 기뻐하고 있습니까? 타인보다 앞서 나가는 성취감입니까, 아니면 내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고 있다는 설레임입니까?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요한의 고백은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이 연출하시는 장엄한 구원의 드라마를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요한처럼 고백해 봅시다. “주님, 당신만 흥하십시오. 나는 당신의 기쁨 곁에서 기꺼이 사라지겠습니다.” 어둠이 물러가고 참 빛이 비치는 그 자리에서, 우리의 기쁨은 비로소 충만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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