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요한복음(06)

밤의 방문자에게 임한 하늘의 빛
-요한복음 3장 1-25절-
어둠이 짙게 깔린 예루살렘의 밤,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의 이름은 니고데모. 당대 유대 사회의 최고 엘리트 조직인 산헤드린 공회의원이며, 존경받는 바리새인이자 율법의 스승입니다.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이는 그가 왜 남들의 눈을 피해 이 밤에 젊은 랍비 예수를 찾아왔겠습니까? 요한복음 3장은 이 비밀스러운 만남을 통해 인류가 직면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과 그에 대한 하늘의 해답을 제시합니다.
지식의 한계를 넘어선 갈급함
니고데모는 예수를 향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 부르며 예우를 갖춥니다. 그는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보며 지성적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그의 지성적 접근을 단번에 뛰어넘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절)
여기서 ‘거듭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노덴’은 ‘다시’라는 뜻과 동시에 ‘위로부터’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이를 생물학적인 재탄생으로 오해하여 “어머니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 날 수 있느냐”며 반문합니다. 이는 땅의 문법으로 하늘의 언어를 해석하려 할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한계입니다. 우리 역시 신앙을 도덕적 수양이나 지적 동의로만 여긴다면, 니고데모가 느꼈던 그 막막함 속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물과 성령의 변화 역사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5절) 물은 씻음과 회개를, 성령은 새로운 생명의 창조를 의미합니다. 거듭남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성취하는 ‘개선’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일어나는 ‘근본적인 재창조’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되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 성령의 역사는 인간의 통제 밖에 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 남듯, 성령으로 난 사람은 삶의 방향과 목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종교적 의무감에 시달리던 삶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사귐이 있는 삶으로의 전이, 이것이 바로 거듭남의 신비입니다.
들린 놋 뱀과 십자가
니고데모가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구약의 민수기 사건을 인용하십니다.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자들이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보았을 때 살았던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는 구원의 예표입니다.
이 대목에서 성경 전체의 요절인 요한복음 3장 16절이 선포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은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 비극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나아옵니다.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가 결국 예수님의 장례식에 향품을 가지고 나타나 빛의 아들로 변화되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고백
본문의 마지막 부분(22-25절)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유대인 사이의 정결 예식 논쟁을 다룹니다. 많은 이들이 예수께로 몰려가는 것을 시기하는 제자들에게 요한은 위대한 고백을 남깁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0절)
이는 거듭난 자가 가져야 할 마땅한 태도입니다. 거듭남의 증거는 내가 주인공이 되는 삶이 아니라, 내 삶의 보좌를 그리스도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나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더욱 선명해지는 과정입니다.
결론: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현대판 니고데모들이 많습니다. 종교적 배경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있으며, 성경 지식도 해박하지만 정작 ‘생명의 생동감’을 잃어버린 채 밤거리를 헤매는 영혼들입니다.
거듭남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하늘의 문은 지식의 열쇠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는 믿음의 눈으로 열립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성도들이 낡은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의 바람을 따라 새 생명의 항해를 시작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어둠의 밤을 지나 찬란한 하나님 나라의 아침을 맞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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