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요한복음(03)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시작되는 혁명
요한복음 1장 35-51절
인생은 길을 찾는 과정이라기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구하는 갈증의 연속에 가깝습니다. 요한복음 1장 35-51절까지 이어지는 제자들의 부름 이야기는 바로 그 ‘갈증’에서 시작됩니다.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의 뒤를 밟기 시작했을 때, 예수님은 뒤를 돌아보며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십니다. “무엇을 구하느냐?”
이 질문은 2천 년 전 유대 광야를 걷던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복잡한 도심 속에서, 혹은 고요한 침묵 속에서 각자의 삶을 꾸려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지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성공을 구합니까, 위로를 구합니까, 아니면 내 존재의 근원을 확인받고 싶어 합니까? 제자들은 그 질문에 "선생님, 어디 계십니까?"라고 답합니다. 그들은 예수의 지식이 아니라 그의 삶이 머무는 자리를 궁금해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복잡한 설명 대신 짧은 초대를 건네십니다. “와서 보라(Come and See).”
마주침, 그 전염되는 신비
신앙은 논리적 설득으로 완성되는 체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주침’의 신비입니다. 안드레는 예수와 함께 머물렀던 단 하루의 경험만으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은 곧장 곁에 있는 사람에게 흘러갑니다. 그는 형제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외칩니다.
흥미로운 것은 시몬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시선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을 보자마자 그의 본질과 미래를 꿰뚫어 보십니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베드로)라 하리라.” 주님은 우리의 흔들리는 현재 너머에 있는 ‘반석’ 같은 가능성을 먼저 보시는 분입니다. 누군가를 주님께 인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향한 주님의 이 따뜻하고도 예리한 시선 속으로 그를 밀어 넣어주는 일입니다.
편견의 담장을 넘는 "와서 보라"
하지만 모든 만남이 순탄한 것만은 아닙니다. 빌립의 인도를 받은 나다나엘은 냉소적으로 반응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그의 냉소는 합리적이었습니다. 나사렛은 작고 보잘것없는 동네였고, 메시아가 그런 곳에서 나올 리 없다는 지식은 당시의 상식이었습니다.
이때 빌립은 나다나엘과 신학적 논쟁을 벌이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하셨던 그 말을 되풀이할 뿐입니다. "와서 보라."진리는 말의 성벽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직접 마주하는 현장에 있다는 것을 빌립은 직관적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결국 나다나엘은 예수를 만납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예수를 발견하기 훨씬 전부터, 예수께서 이미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던 자신을 보고 계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무화과나무 아래는 율법을 묵상하고 하나님을 찾던 고독한 기도의 장소였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가장 깊은 고독과 진심 어린 몸부림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찾기 전에, 그분이 먼저 우리를 주목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열린 하늘, 일상이 기적이 되는 지점
이 만남의 대서사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는 장엄한 약속으로 갈무리됩니다. 이는 구약의 야곱이 꿈꾸었던 하늘 사닥다리가 이제 예수라는 인격을 통해 이 땅에 실재하게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저 괜찮은 스승을 만나러 갔을 뿐이지만, 그들이 도착한 곳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고민, 관계의 어려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안고 주님의 초대인 "와서 보라"에 응답할 때, 우리는 닫혔던 우리 삶의 하늘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신앙은 거창한 구호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늘 나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것이며, "와서 보라"는 초대에 기꺼이 내 시간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당신의 '무화과나무 아래'는 어디입니까? 주님은 지금도 그곳에서 당신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통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와서 보라"는 소망의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찬란한 마주침의 신비가 오늘 당신의 삶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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