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냐(14-02)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날
스가랴 14장 12-21절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에게 정의로운 심판을 내리셔서 그들의 교만과 악행을 무너뜨리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의 백성을 회복하시고 축복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십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삶이 중요합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게 하고 공동체를 강화하는 데 기여합니다.
- 하나님의 남은 백성으로 대변되는 예루살렘의 구원이라는 주제(1-11)에 이어, 12-21절에서는 여호와의 날의 궁극적인 본질이 드러납니다. 곧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심지어 예루살렘을 공격하러 왔던 이방인조차 여호와를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12-19). 이로써 여호와께 성결이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20-21).
민족들에 대한 징벌과 민족들의 여호와 경배(12-19)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시고, 그들의 교만과 악행을 무너뜨리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이루어짐을 나타냅니다. 또한, 그의 백성을 회복하시고 축복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십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소망을 가져야 하며,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삶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게 하고 공동체를 강화하는 데 기여합니다.
12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은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들의 살이 썩으며 그들의 눈동자가 눈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들의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요 13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크게 요란하게 하시리니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며 14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싸우리니 이 때에 사방에 있는 이방 나라들의 보화 곧 금 은과 의복이 심히 많이 모여질 것이요 15또 말과 노새와 낙타와 나귀와 그 진에 있는 모든 가축에게 미칠 재앙도 그 재앙과 같으리라 16○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17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18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19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12-19)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시고, 그들의 교만을 무너뜨리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회복과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 나아와 그를 예배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1) 민족들에 대한 징벌(12-15)
12-15절은 16-19절에 대한 예비적 성격을 지닙니다. 16-19절에서는 여호와의 날에 온 민족이 여호와께 경배하러 오는 최절정의 상황을 묘사합니다. 12-15절에서의 민족들에 대한 징벌은 여호와의 뜻이 온전히 펼쳐지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미 9-11절에서 여호와만이 온전한 왕이심이 강조되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 관계에서 종종 표현된 것으로, 여호와의 왕 되심은 이제 온 천하에 공포되었습니다. 그래서 온 민족이 여호와께 경배하기 위해 이제 시온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여기서 민족들에 대한 징벌의 묘사는 여호와의 정의가 온전히 세워지며, 그것도 철저하게 세워진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12-13절의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묘사에서 다시금 주변 나라에 대한 심판이 다루어집니다. 또한 이는 언약적인 맥락에서의 회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은 후 언약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언약적인 저주와 축복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선포되었습니다(레 26장; 참조. 신 28장). 하나님께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레 26:7-9) ‘너희의 땅에서 안전하게 거주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곧 여호와의 날에 궁극적으로 이뤄질 일들은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또한 여호와의 날에 대한 묘사에서 이스라엘의 응답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며 신실하게, 그리고 책임 있는 태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12절의 ‘그들의 살이 썩으며’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자들, 곧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의 최후를 처절하고 잔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염병과 관련한 심판인 듯합니다. 비록 현재는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고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분명하고도 철저하게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해 신실하게 좋을 것을 간접적으로 강조합니다. 13절 역시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초래하게 될 대적들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묘사합니다. 14절은 전쟁의 승리로 인해 차지하게 될 전리품을 묘사합니다. 완벽한 승리를 통해 그 결과를 누리게 될 것을 묘사합으로써 전쟁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약속합니다(학 2:7). 15절에서는 여호와가 내리는 재앙의 범위가 가축에게까지 확대됩니다. 그럼으로써 재앙이 미치는 효과를 강조합니다.
(2) 민족들의 여호와 경배(16-19)
16-19절은 여호와께 성결을 강조하는 20-21절과 더불어 여호와의 날에 관한 최절정이자 최종 마무리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묘사된 온 민족이 여호와께 경배한다는 것은 이미 아브라함 언약(창 12:3,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시내산에서 언약이 체결되는 배경에서도 확인됩니다. 이때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온 민족이 여호와 앞에 나오게 될 것이라 기대됩니다(출 19:6). 그런 약속과 이상이 여호와의 날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스가랴서에서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레위기에서도 자세히 설명하듯이, 16절의 ‘초막절’은 출애굽 후 초막에서 거주하던 것을 기억하게 하는 절기입니다(레 23:43; 민 29:12 이하), 에스라 3:4과 8절에서는 성전 건축 전에 지킨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막절과 성전 건축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연하게도 시기(‘일곱째 달 열닷새 날’)가 겹쳐서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왜 하필 초막절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날에 언약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예루살렘 주민이라고 해서 모두 여호와의 날에 복을 받는 게 아닙니다. 여호와를 인정하고 그분께 경배하러 오는 자들만 여호와 앞에서 그분의 백성으로 인정받게 됩니다(17). 비를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언약적인 저주에 해당합니다(레 26장; 신 28장). 척박한 환경의 가나안 땅을 고려할 때,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크나 큰재앙입니다. 18절에서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애굽 족속으로 대변되는 이방 민족들에게도 여호와를 경배하러 오는 것이 허락됨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나아오지 않는다면 임박한 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 19절에서는 애굽 사람뿐만 아니라 ‘이방나라 사람’이라고 명백히 언급합니다.
여호와께 성결(20-21)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그분의 거룩한 성품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삶은 우리의 신앙의 근본입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의 행동과 결정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하고, 그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 됩니다.
20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21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20-21)
20-21절은 16-19절에서와 같이 여호와의 날의 최절정입니다. 여호와의 날에 온 민족이 여호와를 여호와로 인정하고 경배하게 됩니다(16-19). 동시에 세상을 향한 여호와의 계획(거룩하게 됨)이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이 거룩함은 여호와의 성품이기도 하면서, 자신의 백성에게 요구하며 이스라엘을 통해 온전히 실현되기를 원하는 이상이기도 합니다(레 19:2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또한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은 시내산 언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의 핵심 내용이기도 합니다(출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와 같이 거룩함이 온전히 실현되는 것이 여호와의 날에 대한 최절정의 묘사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20절과 21절에 반복되는 ‘성결’이라는 주제는 시내산 언약을 맺을 때 언약 백성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신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문구는 특히 제사장의 직무와 관련하여 여호와 앞에서 구별됨을 뜻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호와의 날 새 하늘과 새땅에 임할 새로운 질서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가장 흔한 것조차 하나님께 거룩하게 되는 날을 가리킵니다. 그만큼 여호와의 계획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날이 될 것을 의미합니다. 20절의 ‘말 방울’은 가장 하찮은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가장 사소한 것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새겨져 여호와 앞에서 구별됨이 만연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원래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문구는 제사장의 금으로 만든 패 위에 새겨진 것이었습니다(출 28:36). 번쩍이는 금패와 작고 하찮은 말방울의 대조가 인상적입니다.
‘솥’에 대해서도 비슷한 맥락에서 언급됩니다. 전에는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고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에 가까워질수록 사용되는 재료와 레위인 제사장, 또는 대제사장이 접근할 수 있는 곳을 제한하였습니다. 즉 거록함을 차별화하여 하나님께 가까워질수록 더욱 높은 수준의 거룩함이 요구되었습니다. 예컨대, 성전에서 사용되는 솥이라 하더라도 그 쓰임과 용도에 따라 차별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맥락 아래, 여기서 제단 앞 주발과 차이가 없게 합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이는 모든 것이 거룩하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20절에서는 여호와의 전에 있던 솥으로 한정했으나, 이제 21절에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있는 모든 솥으로 확대합니다. 점차 확대하여 결국 모든 솥이 성전에서 사용될 수 있을 만큼 거룩함이 확대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21절에서 ‘가나안 사람’이 언급되는 것은 특이합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상인들로 잘 알려졌기 때문에 이 단어가 상인들을 가리킬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상인은 문맥상 어울리지 않습니다. 가나안 사람은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 가증한 것의 대상이었습니다(스 9:1-2). 여기서 ‘가나안 사람’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가증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시고, 그분의 백성을 회복하실 것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과 구원의 약속을 주시며, 모든 민족이 그를 예배하는 날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약속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고, 공동체의 연합을 촉진합니다. 결국,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은 진정한 평화와 기쁨으로 이어질 것입니다.[임마누엘]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38 스가랴(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가랴(18) - 스바냐 14장 1-11절 - 하나님과 함께하는 새 시대 (0) | 2025.01.21 |
---|---|
스가랴(17) - 스가랴 13장 1-9절 -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0) | 2025.01.21 |
스가랴(16) - 스가랴 12장 1-14절 -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의 약속 (0) | 2025.01.21 |
스가랴(15) - 스가랴 11장 1-17절 - 하나님의 목자와 거짓 목자 (0) | 2025.01.21 |
스가랴(14) - 스가랴 10장 1-12절 -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의 약속 (0) | 2025.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