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냐(13-01)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스가랴 13장 1-9절
신앙의 여정에서 겪는 고난과 시험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기회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시며,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지지하는 삶을 살도록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격려해야 합니다. 결국, 이러한 연대감이 우리 신앙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 스가랴 13장은 12장에 이어 여호와의 날과 관련한 여러 모습 가운데 몇몇 양상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1-6절에서 여호와의 날은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리는 날로 묘사됩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우상과 거짓 선지자들이 제거되는 날이 될 것입니다. 7-9절에서 여호와의 날은 목자를 치므로 양이 흩어지지만, 그 흩어진 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신실한 자들을 모으는 날이 될 것입니다.
깨끗케 하는 샘 죄 씻음의 날(1-6)
죄의 씻음은 단순한 용서를 넘어서 영적 성장의 중요한 과정입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있게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와 정결함은 신앙 생활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십니다. 이러한 은혜를 통해 우리는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1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2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3사람이 아직도 예언할 것 같으면 그 낳은 부모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니 살지 못하리라 하고 낳은 부모가 그가 예언할 때에 칼로 그를 찌르리라 4그 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환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 5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할 것이요 6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는 어찌 됨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1-6)
12:10-14은 여호와의 날을 애통하는 날로 소개합니다. 곧 사람들은 여호와의 임재 앞에서 자신의 죄를 돌아보며 애통하게 될 것입니다. 13:1-6에서는 이런 애통에 이어, 이제 여호와의 주도 아래 하나님의 백성(하나님의 자녀)이 돌아올 길이 제시됩니다. 곧 죄와 더러움을 깨끗하게 하는 샘이 열리게 되어 이스라엘이 정결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날에 애통과 죄 사함을 통해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도 회복될 것입니다. 13장에서도 역시 ‘그 날에’라는 표현을 반복하며, 12장에서부터 시작된 주제가 통일되게 이어져 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 죄 씻음의 날 선포(1)
1절의 ‘죄와 더러움’라는 표현은 포괄적 의미의 죄를 가리킵니다. ‘죄’는 흔히 사용되는 개념으로 하나님의 기준을 어기는 것을 가리키고, ‘더러움’은 정결 의식과 관련된 제의적 개념입니다. 각각 구분되는 개념을 가리키기보다는 두 단어가 한 쌍을 이루어 온갖 죄를 포괄적으로 의미하고 있습니다. ‘샘’은 생명의 근원을 가리킵니다. 여기서도 죄와 더러움의 씻음을 통해 궁극적으로 생명을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샘은 적절한 비유입니다. 죄와 더러움을 씻음은 곧 깨어진 관계 회복의 신호탄입니다. 궁극적으로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죄 씻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새 영’을 약속하는 에스겔 본문(36:25-29)에서도 정결함의 주제는 매우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1절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범했던 포괄적인 죄를 하나님께서 온전히 해결하시겠다는 그분의 광범위한 은혜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2) 우상과 거짓 선지자의 제거(2-6)
2절에서 언급된 ‘이름’은 구약에서 종종 존재, 성격, 명성을 포함하는 용어입니다(삼상 25:25). 여기서도 우상의 이름을 끊어지게 한다는 것은 단순히 이름 정도가 아니라 우상의 존재나 명성 자체를 근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짓 선지자의 근절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회복과 관련이 있습니다. 신명기 18:15-20에서 밝히고 있듯이 선지자를 세우는 것은 여호와 자신입니다. 즉 주도권이 여호와께 있으며, 선지자는 자기 뜻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뜻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말씀이 아니라, 청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씀만 가려서 전하려 합니다(렘 14:14:23:16; 겔 13:6-8). 그러나 여호와의 날에 청중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더 이상 거짓 선지자에게서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봅니다. ‘더러운 귀신은 12:10의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에서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이라기보다 사람의 영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12:10에서도 하나님의 영보다는 사람의 영을 가리킨다). 여기서도 악한 영보다는 사람의 영에 작용한 더러운 영향이나, 더러운 생각들을 완전히 뿌리 뽑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이 아직도 예언할 것 같으면 그 낳은 부모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니 살지 못하리라 하고 낳은 부모가 그가 예언할 때에 칼로 그를 찌르리라.” 3절은 우상과 거짓 선지자들의 근절을 강조하기 위해 가정의 예를 듭니다. 사람이 예언할 때 그를 낳은 부모가 칼로 찌르는 상황은 단순한 사실적 묘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거짓 예언에 대해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경고하고, 거짓 예언의 근절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부모의 사랑만큼 강한 관계도 거짓 예언을 근절하는 일에 방해가 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이 거짓 예언을 없애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편, 4절의 ‘털옷’은 선지자처럼 보이게 하는 눈속임 혹은 도구를 뜻합니다. 엘리야도 같은 단어는 아니지만 털옷을 입고 다니기도 했습니다(왕상 19:13). 여기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속이기 위해 겉으로 흉내 내는 행위까지도 근절될 것을 말합니다.
3절이 실제 일어난 일을 진술한 것이 아니라 가정의 예를 든 것처럼, 5-6절 역시 가정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6절의 ‘네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는 아마도 거짓 선지자들이 신의 뜻을 구하기 위해 자해해서 생긴 상처를 가리킬 것입니다. 바알 선지자들이 간구한 바를 얻기 위해 자해하는 모습이 성경에도 나옵니다(왕상 18:28). 상처를 물어보는 것은 ‘네가 거짓 선지자가 아니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어볼 때 친구 집에서 난 상처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나는 거짓 선지자가 아니라고 거짓으로 핑계를 대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는 거짓 선지자들이 공공연하게 배척될 것을 보여주는 예언입니다.
양을 흩으심 : 하나님의 사람이 구별되는 날(7-9)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명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7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8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9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7-9)
7-9절은 갑작스럽게 목자에 대한 심판 내용이 나오는 듯합니다. 그러나 12장에서부터 이어져 온 맥락을 고려하면, 여호와의 날은 여호와 앞에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구별되는 날이기도 함을 보여줍니다. 여호와의 날은 구원의 날이기도 하지만(12:19) 애통(12:10-14)과 죄 씻음의 날(1-6절)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날은 양을 흩어서 그 가운데 남은 자를 세우는 날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7-9).
(1) 목자를 치라는 명령(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7절의 첫 표현인 ‘칼’은 이미 11:7에서도 심판의 도구로 언급된 바 있습니다. 여기서도 심판의 인상이 매우 강렬할 것임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칼이 목자를 치고 그로 인해 양들이 흩어지는데, 강렬한 칼의 이미지로 시작해서 급박하게 양들이 흩어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목자’는 스가랴 선지자가 상징적 행동을 통해 수차례 보여주기도 했으며,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계속해서 가리켰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목자를 치는 행위는 양을 흩는 과정을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내 짝 된 자’의 ‘내 짝’은 건장하고 젊고 강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는 심판의 ‘칼’과 대조를 이룹니다. 동시에 역설적으로 ‘칼’의 심판이 강력할 것임을 보여줍니다.
(2) 시험을 통과하는 하나님의 백성(8-9)
8절에서 선지자는 이 온 땅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남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삼분의 일’에 대한 언급은 에스겔 5:2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삼분의 일’이라는 표현은 연단을 통해 하나님 백성으로 남게 된 ‘남은 자’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8-9절의 묘사는 역사적으로 성취될 사건이라기보다는 종말론적으로 여호와의 날에 성취될 일반적 묘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신실하지 못한 자들에게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이 되지만, 신실한 남은 자들에게 여호와의 날은 연단을 통해 받는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한편, 8절의 ‘멸망하고’라는 표현은 언약과 관련된 의도적 사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자르다’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언약을) 맺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언약을 어길 경우에 처하게 될 상황을 동물의 쪼개짐을 통해 보여주듯이, 이제 언약을 어긴 자들도 이와 같은 심판의 운명에 처 해지게 됩니다.
9절에서는 남는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여 시험할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내 이름을 부를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부름말은 사랑의 기호와 같습니다. 즉 ‘내 이름을 부르리니’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회복과 소통을 의미합니다(욜 2:32: 습 3:9). 다시 말해, 온전한 여호와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됨을 보여주는 종말론적 구원의 표지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하시고 이스라엘이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한다는 것은, 전형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친밀한 관계, 깨어진 언약이 다시금 회복됨을 표현합니다(레 26:12; 렘 30:22; 32:38; 겔 36:28: 37:27;참조. 계 21:7).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회복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깨끗한 샘과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죄의 씻음과 정결함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집니다. 또한,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시며,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지지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이 약속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구원을 경험하며, 더욱 깊이 있는 신앙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역사를 간직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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