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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14-01)


하나님과 함께하는 새 시대

스바냐 14장 1-11절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회복과 구원의 약속을 주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약속을 믿고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난을 아시고, 그 가운데 함께하십니다. 그의 약속은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킵니다.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 12장에서부터 이어온 여호와의 날에 대한 주제가 최절정에 이릅니다. ‘그 날에’라는 표현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그날은 예루살렘이 포위되고 함락되지만, 궁극적으로는 남은 백성이 구원받는 날(1-5), 새 하늘과 새 땅의 혁신적인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6-11).

 

예루살렘의 포위와 구원(1-5)

구원하신 백성과 함께 만들 나라는 광명의 나라입니다. 모든 악의 세력이 진멸되는 날의 그림입니다. 모든 성도들 안에 미움과 다툼, 경쟁심, 열패감, 근심, 걱정, 욕심이 없는 나라를 만들 것입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빛이 되고 우리 속에 어둠을 드러내 주는 빛이 될 때, 겸손한 빛, 온유한 빛, 관대한 빛으로 다가갈 때 수치를 당하지 않고서도 내 허물과 약함을 보고 돌이키게 될 것입니다.

 

1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네 가운데에서 나누이리라 2내가 이방 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당하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 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3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이방 나라들을 치시되 이왕의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4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5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이를지라 너희가 그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1-5)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위해 회복과 구원의 약속을 주십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분의 보호를 믿고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의로운 심판을 통해 세상을 정화하시고,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십니다. 그분의 왕국이 세워질 것이며, 우리는 그 왕국의 일원으로서 그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지지하며 믿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1) 예루살렘의 포위(1-2a)

 

예루살렘이 포위당하며 약탈당하지만, 그 가운데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14:2). 이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친히 싸우시며 피할 길을 내신다(14:3-5). ‘남은 자’를 언급하는 것으로 볼 때, 여호와께 신실함을 요구하는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2:1-9에서 묘사하는 예루살렘의 구원이라는 주제에 비해 14:1-3에서는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장면이 추가됩니다. 3절에서는 분명히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위해 싸우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14:4-21에서는 여호와의 날에 있을 구원과 승리의 주제가 돋보입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약탈당하는 모습은 종말에 있을 고난, 고통과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이러한 고난의 상황은 하나님께서 베풀 구원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그동안 주로 ‘그 날에’라고 표현되었던 때의 문제가 ‘여호와의 날’이라는 사실로 분명히 드러나게 됩니다(1).

 

(2) 예루살렘의 구원(2b-5)

 

2절의 ‘남은 백성’과 관련된 메시지에서, 13:79에 나오는 흩어지는 양들 가운데 ‘작은 자들’, 즉 남은 자의 주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약탈당하게 되지만, 여호와로 말미암아 희망은 여전히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여호와의 날은 고통이나 고난이 없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나 착각과는 다릅니다(물론 여호와의 날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요소가 있다; 참조 14:6-9) 항상 희망과 승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고난 가운데서의 승리, 곧 고난을 통한, 고난을 이겨낸 구원이 허락되는 날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이방 나라들을 치시되 이왕의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3절은 자'가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하는 분명한 근거를 제시합니다. 남은 자의 희망은 여호와의 날이 여호와가 자신의 백성을 위해 싸우시는 때라는 사실로부터 비롯됩니다. 이 주제는 12:1-9에서 예루살렘의 구원을 노래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자신의 백성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에서 신적 전사(Divine Warrior)의 이미지로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그때에는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물을 내리며 이 산과 저 산이 요동합니다(삿 5:4). 전사로서의 하나님과 관련한 이미지적인 묘사 혹은 서사적 진술은 오경에서도 수차례 나타난 바 있습니다(신 1:30).

4절의 ‘감람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본문의 정황만으로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스가랴 4장에 나온 ‘두 감람나무’와 관련하여 추정해볼 수 있을 뿐입니다. (비록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4장에서 ‘두 감람나무’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역할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두 감람나무’와 관련한 환상은 성전 건축이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통해 완성되고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언약 관계)가 회복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스가랴서 내에서 메시아를 통한 온전한 회복을 미리 선취하게 하는 문학적 역할을 합니다. ‘두 감람나무’의 이전 환상은 4절에서 현재적 의미(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통한 회복)와 더불어 미래적 의미(궁극적으로 메시아를 통환 온전한 회복)로 확장 발전되고 있습니다.

5절의 ‘그 산 골짜기’는 감람산이 동서로 갈라져 생긴 골짜기를 가리킵니다. 골짜기는 피난처로 다른 곳에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렘 21:13; 48:8). 산골짜기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는 상징입니다. ‘아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한편, 유다 왕 웃시야 때의 지진은 아모스 1:1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데, 아마도 이 지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지진으로 인한 엄청난 재앙은 포로기 이후 사람들의 뇌리에도 깊이 각인될 만큼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단순히 재앙으로만이 아니라, 예루살렘이 침략당하고 함락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피하게 되는 상황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곧 엄청난 재앙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심을 예언합니다. ‘모든 거룩한 자들’은 여호와와 함께 골짜기로 도망 나온 자들을 가리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새 예루살렘(6-11)

어떻게 이 빛의 통치를 누릴 수 있습니까? 어떻게 성령에 충만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만끽할 수 있습니까? 그분의 통치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분이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것을 인정하는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홀로 우리의 왕이시고 우리를 다스릴 분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분 앞에서 온 땅이 부복할 만큼 위대하고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6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것들이 떠날 것이라 7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8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9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10온 땅이 아라바 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쪽 림몬까지 이를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 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 11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6-11)

 

여호와의 날에 사람들은 여호와의 임재를 새롭게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흔히 예언서에서 여호와의 임재 가운데 여호와의 심판을 묘사하는 것과 일치합니다(사30:26: 렘 4:23-27 암 5:20).

 

(1) 여호와의 임재 경험(6-7)

 

6-7절에서 자연 현상의 급격한 변화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을 때(출 19장), 심판의 메시지를 전할 때 이런 모습을 보이셨습니다(사 30:26; 렘 4:23-27; 암 5:20). 6절의 ‘광명한 것들이 떠날 것이라’라는 표현은 문맥상 7절과 비슷한 개념을 전달합니다. 여호와의 날에 빛은 하나님이 처음 창조한 빛이나 광명(천체)과는 다른 새로운 빛, ‘새 하늘과 새 땅’을 여는 빛으로 비춰집니다(참조. 계 21장). 7절의 ‘어두워 갈 때에 빛’은 낮과 밤에 비치는 빛, 광명(6)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빛은 사라져도 어둠 가운데 발하는 빛은 있을 것입니다(참조. 계 21:23).

 

(2)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생수(8)

 

8절은 예루살렘에서 ‘생수’가 나오는 것을 묘사합니다. 여호와의 임재로 말미암아 생명의 근원이 시작됩니다. 예레미야 2:13과 7:13에서 ‘여호와를 생수의 근원’으로 표현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에스겔 47장에서는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성전은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영적 공급을 가리킵니다. 여기서도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이 있는 곳으로, 예루살렘 역시 종종 여호와의 임재를 가리키는 상징이 됩니다. ‘동해’는 사해를 가리키며(겔 47:18), ‘서해’는 지중해를 가리킵니다(신 11:24). 동해와 서해에 대한 언급은 온갖 바다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름’과 ‘겨울’에 대한 언급은 건기와 우기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생수가 흘러나올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3) 새 예루살렘(9-11)

 

8절의 임재에 관한 주제는 9-11절에서 더욱 발전되어 새 예루살렘의 새로움이 언명됩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에 대한 9절의 선포에서 여호와의 왕 되심이 재천명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날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러한 언약 관계의 온전한 회복은 여호와의 날에 완성될 것입니다.

10절의 ‘아라바’는 헤브론에서 아카바 만까지 뻗는 요단강의 열곡(두 개의 평행한 단층애로 둘러싸인 좁고 긴 계곡)을 가리킵니다. 일반명사로 볼 경우 아라바는 ‘평원’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예루살렘을 제외한 나머지 주변 지역이 낮아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상대적으로 예루살렘이 높아지는 것을 부각하며, 예루살렘의 회복, 안전을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게바’는 예루살렘 북동쪽으로 대략 1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하며, ‘림몬’은 예루살렘 남쪽, 약 35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합니다. 이것들은 예루살렘 주변의 산지를 말합니다. 아라바 같이 되었다는 것은 낮아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베냐민은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하므로(렘 37:13), ‘베냐민 문’은 예루살렘의 북쪽에 위치합니다. ‘첫 문 자리’는 명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예루살렘 주변 지역을 가리킵니다. ‘성 모퉁이 문’은 성의 북쪽과 서쪽 벽이 합쳐지는 곳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넬 망대’는 예루살렘의 북쪽 벽에 위치하고, ‘왕의 포도주 짜는 곳’은 왕의 동산(느 3:15) 근처의 남쪽에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표현들은 예루살렘과 그 주변 지역이 높아지는 것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11). 언약적인 저주로 인한 심판을 가리킬 때, 땅에 사람이 거주하지 않게 되었다는 맥락에서 ‘야샤브’가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저주로 인한 땅의 황량한 모습을 가리킬 때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람들이 살게 된다는 ‘야샤브’가 저주가 아닌 축복을 상징하는 맥락에서 쓰입니다. ‘저주’는 예루살렘 멸망으로 완전히 파괴된 것을 가리킬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다시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온전한 언약 관계가 실현될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위해 회복과 구원의 약속을 주십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분의 보호를 믿고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정의로운 심판을 통해 세상을 정화하시고,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십니다. 그분의 왕국이 세워질 것이며, 우리는 그 왕국의 일원으로서 그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발전시키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지지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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