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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3-01)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경배

다니엘 3장 1-18절


조선들은 하늘의 날씨를 인생에 비유하면서 교훈을 삼았습니다. 날씨는 좋은 날도 있지만, 항상 좋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항상 구진 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있지만 좋은 날도 많이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도 항상 잘 나가는 좋은 날도 있지만, 나쁜 날도 있기 마련입니다. 좋은 날도 있다가 좋지 않은 날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잘 나갈 때, 나중을 위해 잘 준비합니다.

 

  •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니엘에서 세 친구들로 바뀝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생명을 내놓아야 하는 박해 상황에 처합니다. 땅의 권력자에 의해 배교적 타협을 강요받습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단호하게 신앙적 의무에 따른 죽의 길을 선택하고 풀무불의 처형장으로 들어간다. 믿음이 현실 권력과 충돌할 때 신앙인은 자신의 믿음에 충실해 할 의무가 있고, 이를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다.

 

신상 건립과 낙성식(1-7)

성도들은 세상의 유혹에 맞서 하나님만을 경배해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께 충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외부의 압력이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이는 세상의 권위에 대한 순종과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나타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우선시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1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2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보내어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을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게 하매 3이에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여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 앞에 서니라 4선포하는 자가 크게 외쳐 이르되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로 말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5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6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7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려 절하니라(1-7)

 

본문은 권력의 압박과 우상 숭배의 유혹을 보여줍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에 따라 모두가 우상에게 경배할 때, 진정한 신앙의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세상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지켜야 함을 교훈합니다.

 

(1) 신상 건립(1a)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거대한 상을 만들게 합니다. 상의 높이는 육십 규빗이고, 너비는 여섯 규빗이었다. 높이가 거의 30m, 너비가 3m에 이르는 거대한 상입니다. 조형적으로 특이한 것은 높이와 너비의 비율입니다. 높이가 너비의 열 배가 된다. 2장과 관련 시켜 느부갓네살이 상에 자신의 모습을 새겨 신처럼 경배하게 했습니다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갈대아 사람들의 참소(12,14,18)는 신에게 봉헌된 상, 바벨론의 주신인 마르둑의 신상을 생각해볼 수 있다. 고대의 통치자들은 권력과 통치를 공고하려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곤 했습니다. 신상이 세워진 곳은 두라 평지다. 왕이 직접 주관하는 국가적 행사로 신상의 봉헌식이 거행된다. 왕의 명령에 따라 모든 관리가 두라 평지에서 거행되는 낙성 예식에 참석합니다. 신상의 봉헌식이 왕에 대한 충성심을 확인해보는 자리로 변질 된다.

 

(2) 낙성식 거행(1b-7)

 

2절과 3절에 등장하는 여덟 개의 관직명은 여러 지역과 분야에서 행정적·사법적 책임을 담당한 고위 관료들을 포함합니다. 27절에도 등장하는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은 개별 지방이나 집단의 행정을 책임진 최고위직에 해당합니다. 네 번째와 여섯 번째의 “모사”와 “재판관”은 사법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자들이고, 다섯 번째의 “재무관”은 나라의 재정과 금고를 담당하는 자들입니다. 일곱 번째의 “법률사”는 좋은 번역이 아니다. 치안을 담당하는 자들로 치안판사가 어울리는 번역입니다. “각 지방의 모든 관원”은 성읍에서 행정을 담당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선포하는 자가 모인 자들에게 왕의 명령을 전달합니다.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로 말하는 자들”은 고위관료들이 백성들과 나라들을 대표해서 봉헌식에 참석했음을 시사합니다. 앗수르나 바사처럼 바벨론도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다민족과 다국가로 구성된 제국이었다.

4-5절은 선포하는 자가 모인 무리에게 외친 말입니다.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가 나면 모두 왕이 세운 신상에 절해야 합니다. 엎드려 절하지 않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 속으로 던져질 것입니다. 왕의 위협적 명령이 참석자들을 짓누르는 가운데 봉헌식의 축제가 거행된다. 악기 소리가 나자 참석자들은 모두 왕이 세운 금상에 절합니다. ‘엎드려 절하다’는 가장 기본적인 경배 행위에 속합니다. 신명기 율법은 일월성신이나(신 4:19) 신들에게(신 8:19) 절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합니다. 느부갓네살의 억압적 조치는 고대근동에서 다른 유사한 예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신격화된 왕권의 오만함에서 나온 것 같다. 왕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과 신상에 절하는 것이 동일시되면서 느부갓네살 왕은 신의 자리로 옮겨진다. 왕의 절대 권력이 거대한 신상을 통해 대변된다.

 

갈대아 사람들의 참소(8-12)

성도들은 자신의 신앙 때문에 비난이나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신앙 생활의 일부분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신앙 공동체 내에서도 질투와 경쟁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외부의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성도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8○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니라 9그들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르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10왕이여 왕이 명령을 내리사 모든 사람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엎드려 금 신상에게 절할 것이라 11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2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8-12)

 

본문은 신앙을 지키기 위한 용기와 결단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바벨론의 압박 속에서도 믿음을 굳건히 지킨 사드락, 메삭, 아벤느고의 모습이 우리에게 본보기가 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께 충성해야 함을 교훈합니다.

 

(1) 참소자들의 등장(8)

 

왕의 위협적 명령 안에 함축된 긴장이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갈대아 사람들이 유다 사람들을 참소합니다. 전체 유다 사람들이 아니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고발을 당합니다. 갈대아 사람들의 고발은 느부갓네살의 명령에 따른 것이기에 겉보기에는 악의적인 중상모략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 고발이 왕에 대한 충성심에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 갈대아 사람들은 구약성경에서 자주 바벨론 사람들과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2장의 경우처럼 전문적인 점성가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변방에 속한 유다 출신 지혜자와의 경쟁에서 밀린 바벨론 점성가들이 기회를 잡아 이들의 제거하려고 시도한 것입니다(참조, 에 3:811). 이들은 왕의 명령을 핑계로 이방 경쟁자를 합법적으로 고발합니다.

 

(2) 참소 내용(9-12)

 

10-11절의 고발은 5-6절에서 선포하는 자가 외친 왕의 명령을 거의 문자적으로 인용합니다. 왕의 통치 아래 있는 백성은 누구든지 신상에 엎드려 절해야 했습니다. 2:49을 받는 12절은 왕이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고위 관리로 임명했음을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왕이 직접 바벨론 지방의 일을 맡긴 자들이 왕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고발 내용은 이중적입니다. 이들은 왕의 명령을 존중하지도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았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왕의 명령을 무시한 반역자로, 종교적으로는 신상에 절하지 않은 무신론자로 고발을 당합니다. 다신론적 세계에서 볼 때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주 왕과 신의 권위를 무시하는, 곧 국가와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본 질서를 부정하는 자들처럼 보였습니다.

 

재판왕의 심문과 위협(13-18)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을 나타냅니다. 세상의 명령과 위협에 맞서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중요합니다. 이는 세상의 권위에 대한 저항의 필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13○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14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16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13-18)

 

본문에서는 믿음이 외부의 압박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구원 여부와 관계없이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줍니다.

 

(1) 왕 앞에 끌려온 세 친구들(13)

 

느부갓네살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불러 사실 여부를 추궁하며 심문합니다. 분노한 절대 권력자 앞에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한 일이 없는 유다의 세 청년이 선다. 느부갓네살은 갈대아 사람들의 고발 내용(12) 가운데 첫 번째(“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를 빼고 두 번째에 관해서만 진위를 확인하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양자택일을 위협합니다.

 

(2) 왕의 위협(14-15)

 

15절은 대응하는 두 개의 조건문으로 구성됐는데, 두 번째 조건문에만 귀결문이 뒤따른다. 첫 번째 조건문 다음에 나오는 “좋거니와”는 번역에 따른 삽입입니다. 두 개의 조건문이 대등하지 않고 두 번째에 무게중심이 두어졌다. 신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화형에 처해지는 것은 확실하지만, 신상 앞에 절합니다고 자동으로 목숨이 구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사람을 살리거나 죽이는 권한이 자신에게 있음을 주장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15절의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는 주장은 과장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결정은 신의 고유 역할입니다. 그런데 지상 패권을 장악한 권력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신의자리를 탐하곤 합니다(참조, 왕하 18:35 사 36:20) 이렇듯 신의 역할을 자처하는 느부갓네살의 오만이 이 사건에 여호와의 개입을 초래합니다. 죽을 위기에 처한 세 친구는 풀무불의 처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지 않는다. 신성모독적 권력 앞에 여호와의 침묵은 그분의 무능력을 의미합니다.

 

(3) 세 친구의 답변: 복종의 거절(16-18)

 

세 친구가 의지하는 여호와께서 그 능력을 의심받는 위기 상황에 내몰리신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생사결정권이 자기 손에 있다는 왕에게 단호하게 응수합니다. “우리가 이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입니다”(16). 외교적 수사 없이 직설적으로 표출된 이들의 이 답변은 왕의 위협이나 권위를 무시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느부갓네살은 그렇게 들었겠지만). 목숨을 부지하려고 왕과 타협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 표명입니다. 맹렬히 타오르는 풀무불이 무서워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17-18절은 이들의 순교자적 단호함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하나님의 구원 능력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는다. 죽음의 위협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살아남는 것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지, 그분의 의무에 속하지 않음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12:1-3의 경우처럼, 죽음 이후에 있을 부활에 대한 소망을 내다보며 순교의 길을 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계시를 통한 내적 확신에 근거해서 왕의 위협에 단호하게 맞서는 것도 아니다. 놀랍게도 신앙 양심이 이들로 하여금 타협하지 않고 올곧은 길로 가게합니다. 이들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살든지 죽든지 우상숭배를 거절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 신실하게 남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위협에 노출된 자에게 요청되는 최고의 덕목은 ‘신앙인의 신실함’입니다. 신앙인은 세상 권력에 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불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구원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지만, 구원받지 못하더라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외부의 압박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유지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며, 하나님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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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2-04)


느부갓네살 꿈을 해석한 다니엘

다니엘 2장 31-49절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오감의 느낌을 전부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감을 통해 정확히 느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만물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은 희미한 별빛과 같으며, 육감으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영감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감이나 육감의 느낌보다 영원하고 신실하며 전능하신 주님을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

 

  • 세상의 역사는 강대국의 각축장도 우연의 산물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그분께서 정하신 목표를 지향해가는 과정입니다. 패한 자가 퇴장하고 승리한 자가 무대의 주역으로 등장하지만,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에 따른 전환일 뿐입니다. 이 전환, 곧 민족들의 흥망성쇠는 무한히 계속되지 않습니다. 정한 때가 되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에 의하여 대체됩니다.

 

왕이 꾼 꿈의 내용(31-36a)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주관하시며 세상의 나라의 흥망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세상의 나라는 변화와 이동이 불가피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미래에 대한 꿈과 해석을 통해 우리는 신앙 안에서 준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31○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32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3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34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35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36그 꿈이 이러한즉(31-36a)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왕은 큰 동상이 나타났고, 각 부분은 서로 다른 왕국을 상징합니다. 다니엘은 이 꿈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드러내며, 결국 하나님이 모든 왕국을 다스리신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1) 신상의 모양(31-33)

 

느부갓네살이 꿈에서 본 것은 번쩍이는 한 거대한 상(像)으로, 그 모습이 무시무시했습니다. 그 상은 사람 형태를 갖췄는데, 각 부분이 다른 금속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머리는 순금, 가슴과 팔은 은, 배와 넓적다리는 놋, 종아리는 쇠, 발은 쇠와 진흙이었습니다. 쇠로 된 종아리와 쇠와 진흙으로 된 발은 동질성과 이질성을 함께 보여줍니다. 쇠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종아리와 발은 동질적이고, 진흙이 섞였다는 점에서 발은 종아리로부터 구별됩니다. 눈부신 광채로 가려져 있지만, 상에는 구조적 취약점이 있었습니다. 금속으로 된 무거운 몸통을 지탱해주는 발이 서로 뒤섞일 수 없는 쇠와 진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가장 강하게 만들어져야 할 부분이 가장 약하게 만들어졌습니다.

 

(2) 태산을 이루는 돌(34-36a)

 

손대지 아니한 돌이 떨어져 나와 쇠와 진흙으로 된 발을 치자 거대한 상이 산산이 부서져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여름 타작마당의 겨처럼 바람에 날려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됐고, 상을 친 돌은 거대한 산이 되어 온 세상을 채웠습니다. 금속으로 만든 거대한 상의 묘사에 비하여 그 상을 부순 돌의 묘사는 매우 소박합니다.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떨어져 나온 돌이었습니다. 금속으로 된 거대한 상이 초자연적 손의 간섭에 의해 파괴됐습니다. 상을 친 이후 변화된 돌의 놀라운 모습도 담담하게 묘사합니다. 상을 흔적도 없이 날려 보낸 돌이 거대한 산이 되어 온 세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돌은 떨어져 나오는 처음부터 세상을 가득 채우는 마지막까지 신비하게 작용합니다.

 

꿈의 해석(36b-45)

하나님께서는 인간 역사를 주관하시며, 세상의 각 나라의 흥망성쇠를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나라는 서로 다른 시대와 상황 속에서 존재하지만 결국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역사 속에서 왕국들은 흥하고 망하는 과정을 겪게 되며, 이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을 아시고, 그분의 뜻에 따라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36…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 37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38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머리니이다 39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세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40네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숴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숴뜨리고 빻을 것이며 41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42그 발가락이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숴질만할 것이며 43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44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45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 하니(36b-45)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왕의 꿈을 해석하며 동상의 각 부분이 바벨론, 메대-바사, 그리스, 로마 제국을 나타낸다고 설명합니다.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이 세운 왕국이 영원히 서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인간의 왕국은 무너지고, 하나님의 왕국이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임을 강조합니다.

 

(1) 도입부(36b)

 

다니엘은 왕에게 꿈의 내용을 밝히고, 그 해석을 시작합니다. 꿈의 해석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꿈을 해석할 것임을 강조합니다. 꾼 꿈의 내용을 그대로 해석합니다.느부갓네살 왕은 꿈을 꾼 주체이자, 그 꿈의 해석을 통해 자신의 왕국의 운명을 이해해야 하는 인물입니다. 다니엘은 왕이 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돕고자 합니다.

 

(2) 네 금속의 해석(37-40)

 

그의 통치는 놀라울 정도로 화려합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주셨고, “사람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을 모두 그의 손에 넘겨 다스리게 하셨습니다(참조. 렘 27:6; 28:14). 바벨론의 신 마르둑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의 정치적 성공을 허락하시고 이뤄주셨습니다. 둘째와 셋째 나라는 마치 곁가지에 속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둘째 나라는 첫째와 비교해서 언급됩니다. 은이 금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두 번째 나라는 느부갓네살이 대표하는 바벨론보다 못합니다. 놋으로 된 셋째 나라에 관해서는 아무 평가 없이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라고 간단하게 언급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통치자로 세우신 느부갓네살과 달리 셋째 나라의 경우에는 통치권이 어디에서 왔는지 달리 언급하지 않습니다. 모든 금속을 압도하는 쇠의 강인함을 활용해서 넷째 나라의 처음에 해당하는 쇠로 된 종아리를 해석합니다. 쇠가 모든 것을 부수고 깨뜨리는 것처럼 넷째 나라는 모든 것을 부수고 깨뜨릴 것입니다. 넷째 나라의 파괴적·침략적 성격이 강조됩니다(참조. 7:7). 은의 둘째 나라와 놋의 셋째 나라는 각각 메대와 바사를, 온 세상을 부수고 짓밟는 쇠로 된 종아리의 넷째 나라는 알렉산더 대왕의 그리스를 가리킵니다.

 

(3) 발과 발가락의 해석(41-43)

 

쇠로 된 정강이와 달리 발과 발가락은 단일한 금속이 아닙니다. 일부는 진흙으로, 일부는 쇠로 됐습니다. 부서지지 않는 강한 쇠와 쉽게 부서지는 약한 진흙이 공존합니다. 쇠로 된 정강이에서 나온 나라가 겉보기와 달리 취약할 것을 시사합니다. 거대한 상의 취약점으로 제시됐던 쇠와 진흙의 섞임이 43절에서는 다른 관점에서 해석됩니다. 쇠와 진흙이 하나로 섞일 수 없는 것처럼 나누인 나라들이 연합을 시도하지만 실패할 것입니다. 셀류코스 왕조와 프톨레미 왕조 사이의 정략결혼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전 252년 프톨레미 2세는 딸 베레니케를 아내가 있었던 안티오코스 2세에게 주어 결혼시키지만, 혼인 동맹은 얼마가지 못해 베레니케와 그녀의 아들이 살해당하는 파국으로 끝납니다(참조. 11:6). 주전 193년 안티오코스 3세는 애굽의 내정에 안정적으로 간섭하기 위해 딸 클레오파트라를 프톨레미 5세에게 아내로 주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의 뜻과 달리 죽을 때까지 프톨레미 왕조에 충실하게 남습니다(참조. 11:17). 쇠와 진흙을 섞어놓아도 따로따로인 것처럼 안티오코스 왕조와 프톨레미 왕조의 연합이 그러합니다.

 

(4) 영원히 설 한 나라(44)

 

44절은 34-35절의 해석입니다. 네 금속으로 된 상이 대변하는 땅의 나라들이 멸망하면 새 시대가 시작됩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한 나라를 세우실 것인데, 그 나라가 앞의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땅 위에 영원히 세워집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 받으시는 분께서(20) 세우신 나라이기에 국권이 다른 민족에게 넘어가지 않고 영원히 존속합니다.

 

(5) 꿈의 요약과 결론적 진술(45)

 

32-34절을 요약하는 45절 전반은 주제에서는 27-30절을 받습니다. “크신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왕에게 “장래 일”을 알려주신 것인데, 이는 땅의 역사가 그분의 결정과 계획에 따라 그분께서 세우신 목표를 향해 진행되어 갈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유일한 결정권자이시고, 세상 권력은 종속변수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실 한 나라가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킬 것이기에, 돌이 떨어져 나온 산은 하나님으로, 손대지 아니한 돌은 하나님의 통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높임을 받는 다니엘과 세 친구(46-49)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우리의 신앙의 기초가 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신앙 생활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신실한 종에게 적절한 보상을 주십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충실할 때, 그분이 우리를 지켜보시고 축복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6○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게 하니라 47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48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 49왕이 또 다니엘의 요구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세워 바벨론 지방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고 다니엘은 왕궁에 있었더라(46-49)

 

본문에서는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의 꿈 해석에 감명받아 그를 높이고 귀한 선물을 주며 총리로 임명합니다. 다니엘은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왕의 일을 맡게 하여 그들과 함께 일하게 합니다. 이로써 하나님이 다니엘을 통해 이루신 놀라운 일과 그의 신실함이 드러납니다.

 

(1) 다니엘을 경배하는 왕(46)

 

느부갓네살의 반응은 요셉의 꿈 해석에 대한 바로의 반응(창 41:37-39)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극적입니다. 그는 신하가 왕에게 예를 표하듯, 신에게 경배하듯, 다니엘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는 엎드려 다니엘에게 경배하고 그에게 예물과 분향을 올리도록 명령합니다. 바로의 경우와 달리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을 통해 그의 하나님에게로 나아갑니다. “신들의 신”과 “모든 왕의 주재”는 내용상 동격으로, 바벨론에서는 원래 만신전의 우두머리인 마르둑에게 주어진 칭호였습니다. 바벨론 군대에 약탈당한 예루살렘 성전의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에 의해 최고 신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2) 다니엘의 하나님을 인정하는 왕(47)

 

47절 후반은 28-29절을 느부갓네살의 입장에서 그대로 받습니다. 다니엘이 은밀한 것을 나타낼 수 있었음은 그의 하나님께서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였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을 통해 종말(“후일”)을 향해 나아가는 역사의 비밀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습니다.

 

(3) 고위직에 임명된 다니엘과 친구들(48-49)

 

바로의 꿈 이야기가 요셉이 애굽 온 땅의 총리로 세움을 받는 것으로(창 41:41-43) 끝나는 것처럼 느부갓네살의 꿈 이야기도 다니엘이 높임을 받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6절의 약속에 따라 다니엘에게 세 종류의 상급이 주어집니다. 물질적 상에 관해서는 “귀한 선물”을 많이 주었다고 포괄적으로 언급합니다. 다른 두 종류의 상급은 정치적·종교적 지위와 관련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높임을 받을 뿐만 아니라 모든 지혜자를 관리하는 총감독이 됩니다. 바벨론은 지역을 여러 행정구역으로 나누고 이를 총독에게 맡겨 통치하였는데, 바벨론 지방 전체를 다스리는 총독은 그 가운데 으뜸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지역의 행정을 책임지는 총독에 임명됐다는 것은 다니엘이 왕 다음 자리에 올랐음을 의미합니다. 최고의 행정직에 임명된 다니엘에게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사람(2)과 같은 다양한 부류의 지혜자들을 관리 감독하는 직분까지 맡겨집니다. 포로로 잡혀 온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행정과 종교를 책임지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다니엘은 세 친구를 잊지 않습니다. 그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바벨론 지방의 일을 맡겨주시도록 왕에게 청탁하고, 왕은 청탁을 들어 줍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을 강조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지혜로 왕의 꿈을 해석하며,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반응은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높이신 결과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진리를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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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2-03)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한계

다니엘 2장 24-30절


 

어려운 순간에 직면할 때, 신뢰와 용기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에게 힘과 평안을 줍니다. 또한, 겸손은 신앙 생활에서 중요한 덕목으로, 자신의 능력에 의존하기보다는 하나님께 의존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겸손한 태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기여합니다. 결국, 신뢰와 용기, 겸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우리의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만듭니다.

 

  •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과 그 해석을 알려주기 전에 그 은밀한 것이 누구에게서 나왔는지를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다니엘이 바벨론 지혜자들보다 십 배나 뛰어난 능력을 소유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꿈의 근원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꿈을 주신 분만이 꿈을 알 수 있기에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이 의지하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장래 일을 알려주려고 은밀한 것을 나타내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왕 앞에 나아가는 다니엘(24-25)

하나님께서는 특정한 시대와 상황 속에서 사람을 세우셔서 그분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일할 때 그분의 뜻을 전하는 사명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의존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용기와 믿음 가지고 담대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신앙 생활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24이에 다니엘은 왕이 바벨론 지혜자들을 죽이라 명령한 아리옥에게로 가서 그에게 이같이 이르되 바벨론 지혜자들을 죽이지 말고 나를 왕의 앞으로 인도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 해석을 왕께 알려 드리리라 하니 25○이에 아리옥이 다니엘을 데리고 급히 왕 앞에 들어가서 아뢰되 내가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찾아내었나이다 그가 그 해석을 왕께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24-25)

 

24-25절과 16절 사이의 긴장

 

16절에서 다니엘은 직접 왕을 찾아가 지혜자들의 처형을 유예해주도록 부탁하고 왕의 허락을 받아냅니다. 그의 자유로운 왕궁 출입과 왕의 각별한 신임을 전제합니다. 반면에 24절의 다니엘은 근위대장 아리옥을 찾아가서 왕을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유력자가 다리를 놓아주기 전에는 왕께 나아갈 수 없는 인물처럼 묘사합니다. 25절에서는 왕에게 처음으로 소개되는 인상을 주며, 26절의 왕은 전에 다니엘이 자기에게 한 약속을 모르는 것 같이 반응합니다. 24-25절과 16절 사이의 긴장은 의도적인데, 14-16절의 역할에 주목하면 설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14-16절이 없었다면 다니엘도 바벨론 지혜자들과 함께 왕 앞에 불려간 것이 됩니다. 곧 이 세 절은 다니엘을 바벨론 지혜자들로부터 구별해주고 왕 앞에서 한 저들의 주장에서 다니엘을 제외시켜 주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바벨론 지혜자들처럼 다니엘도 왕을 만나지만 저들과 달리 그는 왕의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다니엘이 왕을 찾아갔음은 그가 해결책을 알고 있었음을 전제합니다.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배워 바벨론 지혜자들과 함께 활동하지만, 다니엘은 지혜와 지식의 근원이신 하늘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지혜자입니다.

 

(1) 아리옥에게 알현을 부탁하는 다니엘(24)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는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으로부터 ‘왕의 그 일’을 알게(21-22) 된 다니엘이 근위대장 아리옥을 찾아가 두 가지를 부탁합니다. 먼저, 바벨론 지혜자들을 죽이지 말도록 요청합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계시적 꿈이기에 바벨론 지혜자들이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지혜자들의 절망적 처지에 눈을 감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왕을 알현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에스더 4:11에 의하면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서는 누구도 안뜰에 들어가 왕에게 나아갈 수 없고, 위반하면 죽음에 처 해집니다. 바벨론도 바사와 사정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2) 다니엘을 왕에게 소개하는 아리옥(25)

 

다니엘의 확신에 찬 부탁에 아리옥이 즉각적으로 호응해 그를 데리고 왕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리옥의 이러한 행동은 목숨을 담보로 내놓아야 하는 매우 위험스런 결단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잘못하면 그를 소개한 아리옥도 화를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참조. 1:8-10). 다니엘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리옥은 왕에게 다니엘을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서 한 사람”으로 소개합니다(참조, 창 41:12). 신분과 출신지만 언급할 뿐, 이름이나 직분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을 무시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2장의 문맥에서는 왕의 진노에 떨어진 바벨론 지혜자들로부터 다니엘을 분리해주는 소개입니다.

 

은밀한 것을 알려주신 하늘의 하나님(26-30)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간의 마음과 꿈을 아십니다. 이를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중요한 기초입니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26왕이 대답하여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꾼 꿈과 그 해석을 네가 능히 내게 알게 하겠느냐 하니 27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지혜자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28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은 이러하니이다 29왕이여 왕이 침상에서 장래 일을 생각하실 때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가 장래 일을 왕에게 알게 하셨사오며 30내게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심은 내 지혜가 모든 사람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이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에게 알려 주려 하심이니이다(26-30)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할 기회를 얻고, 그 꿈의 의미를 하나님께서 그에게 알려주셨음을 강조합니다. 그는 자신이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 덕분에 이 일을 수행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결국, 다니엘은 왕에게 꿈의 내용을 설명하며 하나님의 뜻과 왕국의 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1) 다니엘에게 꿈과 해석을 요청하는 왕(26)

 

아리옥에 의해 유다에서 온 유배자로 소개된 다니엘이 화자에 의해 벨드사살로 소개됩니다. 아마도 다니엘은 이름을 물은 왕에게 환관장이 지어준 바벨론식 이름으로 답했던 것 같습니다.

 

(2) 하늘에 계신 하나님 계시라 대답한 다니엘(27-28)

 

왕의 질문으로 대화가 시작됩니다. 바벨론 지혜자들에게는 “내게 알게 하라”고 명령하거나 위협했는데(5,9), 다니엘에게는 그의 능력을 의심하며 질문합니다. “내가 꾼 꿈과 그 해석을 네가 능히 내게 알게 하겠느냐?” 고대 근동에서 인정받는 바벨론 지혜자들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일(10-11)이기에, 유다에서 사로잡혀 온 청년에 대한 왕의 회의적 태도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왕의 회의적 질문이 다니엘에게 하늘의 하나님을 소개해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줍니다. 다니엘은 왕의 의심을 반박하지 않고 답변의 출발점으로 활용합니다. 왕이 물은 것은 “은밀한 것”이기에 바벨론 지혜자들이 왕께 보일 수 없었습니다. 저들이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답변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은밀한 것’은 종말의 비밀, 곧 하나님께서 미리 결정하시고 감추어놓은 마지막 때의 사건들을 가리킵니다. 은밀한 것은 신적 영역 안에 존재하기에 오직 신적 존재의 중재나 천상적 경험을 통해서만 알려집니다. 다니엘은 처음부터 느부갓네살의 꿈이 은밀한 것임을 알고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찾아가 도움을 구했습니다(18). 반면에 바벨론 지혜자들은 “육체와 함께 살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하고 (바르게) 항변하면서도 “왕께서 물으신 것”이 은밀한 것임을 알지 못하고, 단지 “어려운 일”로 돌려버렸습니다(11).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바벨론 지혜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은밀한 것은 하늘의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누구에게도 접근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미래의 사건을 확정해서 감춰두신 분만 이를 드러내실 수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시지만, 활동 범위는 이스라엘로 제한되지 않습니다. 다니엘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늘의 하나님은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는 분으로(21) 나라들과 민족들의 흥망성쇠를 결정하십니다. 구체적으로 그분은 꿈을 통해 느부갓네살에게 은밀한 것을 보여주시며 후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려주십니다. 마르둑을 섬기는 바벨론 왕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부터 바벨론과 그 이후에 올 나라들의 운명에 관한 계시를 전해 받습니다.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역사가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의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일정에 따라 그대로 전개될 것을 보여줍니다. 근동의 패권을 장악하고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하나님 시간표의 일부를 담당할 뿐입니다. “후일에”는 미래에 있을 결정적 전환기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3) 왕에게 은밀한 일을 알게 하신 하나님(29)

 

왕이 꿈을 꾸게 된 외적 상황에 관해 언급하는 29절은 전체적으로는 28절을 반복하면서 한 가지 새로운 내용을 소개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에게 우연히 계시적 꿈이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침상에서 “장래 일”(문자적으로, ‘이후로 일어날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가 그에게 “장래 일”(문자적으로, ‘일어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침상의 느부갓네살을 상념에 빠지게 한 앞으로 일어날 일에 관한 구체적 언급은 없지만 얼마간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근동의 패권을 장악한 바벨론 제국의 왕으로서 그는 왕권 계승과 같은 바벨론의 앞날을 걱정했을 것입니다.

 

(4) 전달자의 역할을 맡은 다니엘(30)

 

요약하자면, 장래 일을 고심하는 왕에게 장래 일을 결정하시는 분께서 장래 일을 알려주셨습니다. 장래 일이 느부갓네살에게 맡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장래 일은 확정된 것이기에 이를 미리 알지라도 그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장래 일의 한 부분에 피동적으로 참여할 뿐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의 마지막 언급은 다니엘의 역할에 관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어떻게 지혜자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알 수 없는 은밀한 것을 알게 됐는지를 왕에게 설명해줍니다. 그의 지혜나 자질이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지혜로 밝혀낸 것이 아니라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가 알려주셔서 알게 됐습니다. 사람에게 속하지 않는 신적 비밀이 “밤에 환상으로”(19) 다니엘에게 주어졌습니다. 또 다니엘에게 은밀한 것이 나타난 데는 그럴 만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해석을 왕에게 전해 환상의 의미를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땅의 패권을 장악한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상대역을 맡고 다니엘은 양자를 이어주는 중개인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느부갓네살이 계시를 직접 수령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통해 간접적으로 은밀한 것을 알려주십니다.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마음의 생각들’)은 28절의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머리의 환상들’)과 동일합니다. 히브리적 사유에 따르면 마음은 사고하고 결정하는 신체 기관입니다. 머리의 환상은 예외적인 표현인데, 아마도 환상이 일차적으로는 눈으로 보는 시각적 경험이기 때문에 머리와 결합된 것 같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하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로 왕의 꿈을 밝혀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다니엘의 겸손한 태도는 우리에게 진정한 지혜가 무엇인지 일깨워 줍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결국, 이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것을 권면하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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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2-02)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지혜

다니엘 2장 14-23절


 

이 세상과 우주 만물은 24시간 동안 정확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힘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으면 세상은 1초도 질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지구를 끌어당기는 힘은 만유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두려움과 염려에 빠지게 됩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고 감사하며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곳에서부터 천국이 시작됩니다.

 

  • 느부갓네살의 분노가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도 미칩니다. 바벨론 지혜자들과 함께 죽을 수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 다니엘은 왕을 찾아가 시간을 달라 부탁하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께로 나아갑니다. 바벨론의 지혜자들은 “육체와 함께 살지 아니하는 신들”만이 왕의 꿈을 보일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 신들을 찾지 않고, 다니엘은 은밀한 것을 알려주시는 하늘의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합니다.

 

다니엘의 개입(14-16)

어려운 상황에서 신중함과 지혜로 대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그분의 지혜를 의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겸손의 표현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만듭니다. 하나님께 의존할 때, 진정한 평안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합니다.

 

14왕의 시위대 장관 아리옥이 바벨론 박사들을 죽이러 나가매 다니엘이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 15왕의 장관 아리옥에게 물어 가로되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뇨 아리옥이 그 일을 다니엘에게 고하매 16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 구하기를 기한하여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보여 드리겠다 하니라(14-16)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은 내적 평화를 가져다주며 불안과 두려움을 덜어줍니다. 또한, 기도를 통해 지혜와 인도를 받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찾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은 신앙을 더욱 깊게 하고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져, 미래의 도전에 잘 대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합니다.

 

(1) 사정을 알게 된 다니엘(14-15)

 

다니엘이 뒤늦게 등장합니다. 왕의 꿈에 관해 모르기는 바벨론 지혜자들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는 열 배나 뛰어난 지혜와 총명을 가진 자답게 처신합니다. 그는 지혜자들을 처형하려고 나가는 왕의 근위대장 아리옥을 만나 신중하게 말을 겁니다. 그는 먼저 상황 파악을 시도합니다. 왕의 명령을 너무 서둘러 집행하지 말도록 요청하면서 아리옥에게 사건의 전말을 알아봅니다. 사정을 알게 된 다니엘은 주저하지 않고 행동에 나섭니다.

 

(2) 왕에게 시간을 부탁하는 다니엘(16)

 

왕을 찾아가서 처형의 유예를 부탁합니다. 꿈을 말해주시면 해석해주겠다고 말하는 지혜자들을 “시간을 지연하려” 한다고 내친 왕이 “시간을 주시면” 꿈의 의미를 알려주겠다는 다니엘의 부탁은 들어줍니다. 바벨론의 지혜자들은 왕이 불가능한 일을 요구한다고 주장했지만, 다니엘은 왕의 요구를 충족시켜드리겠다고 약속합니다. 왕의 요청대로 꿈과 그 해석을 알려줄 능력은 없지만, 그는 그 일을 가능하게 해주실 분, 여호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간구와 응답(17-19)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의 중요한 수단으로,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키는 도구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할 수 있으며, 마음과 생각을 그분께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하신다는 믿음은 기도의 힘을 확고히 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분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기도는 우리의 신앙 여정을 풍요롭게 만드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17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동무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고하고 18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사 자기 다니엘과 동무들이 바벨론의 다른 박사와 함께 죽임을 당치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구하게 하니라 19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이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17-19)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친구들과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구절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의지하고 지혜를 요청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그들에게 꿈과 그 해석을 드러내심으로써 신뢰와 믿음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1) 세 친구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다니엘(17-18절)

 

왕의 처형 명령을 잠시 유예시키는 데 성공한 다니엘은 집으로 돌아와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사정을 알리고, 함께 하나님께 기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다니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 왕의 꿈의 은밀한 것을 보여주실 수 있음을 믿고 도움을 호소합니다. 이 점에서 다니엘은 바벨론 지혜자들과 구별됩니다. 그들은 신들만이 왕의 일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지만(11) 정작 그 신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습니다. “은밀한 일”은 신적 계시에 의해서만 해석될 수 있는 종말적·우주적 비밀을 가리킵니다. “불쌍히 여기심”이 간구의 근거가 됩니다. 아무도 자기 의나 권리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분의 긍휼에 호소할 뿐입니다. 결국 다니엘과 세 친구의 간구가 응답을 받습니다. 밤의 환상 가운데 “은밀한 것”이 다니엘에게 나타납니다. 계시가 주어졌다는 사실만 말할 뿐, 은밀한 것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2) 환상 중에 계시를 받는 다니엘(19)

 

지혜자들은 왕의 꿈을 “왕의 그 일”(10) 또는 “왕께서 물으신 것”(11)이라고 말하는데, 18절과 19절은 이를 “은밀한 것”으로 언급합니다. 한마디로, 왕의 꿈은 신의 의지가 담긴 계시적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바벨론의 전통 지혜와 기술로는 알 수 없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수 있는 신적 비밀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다니엘의 감사 찬양을 통해 우리는 수동태로 사용된 “나타나 보이매”의 실질적 행위자가 하나님임을 알게 됩니다.

 

감사의 찬양(20-23)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태도는 신앙 생활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것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삶의 최우선으로 삼는 것은 신앙의 핵심으로, 그분의 뜻을 따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사는 것은 그분의 은혜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통해 우리는 신앙적으로 성장하고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결국,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20다니엘이 말하여 가로되 영원 무궁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21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 22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데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23나의 열조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바 일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20-23)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을 주시는 분임을 찬양하는 다니엘의 기도가 나타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의 주관자이며, 그분의 뜻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함을 일깨워줍니다. 다니엘은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지혜와 계시를 인정하며, 이를 통해 신앙의 본질을 강조합니다.

 

(1) 찬양(20-22)

 

다니엘서에는 모두 네 개의 찬양이 나오는데(2:20-23; 4:2-3; 4:34-35; 6:26-27), 첫 번째 찬양은 다른 세 찬양과 양식적으로 구별됩니다. 첫 번째 찬양만 감사기도를 배경으로 합니다. 좀 더 주목할 만한 차이는 찬양의 주체입니다. 하나님 백성에 속한 다니엘이 드리는 첫 번째 감사 찬양(2:20-23)을 제외한 다른 새 찬양은 모두 이방 왕의 입에서 나옵니다. 4장에서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6장에서는 메대 왕 다리오가 찬양합니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세상 나라를 다스리던 자들의 입을 통해 유배민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영원한 통치가 선포됩니다. 찬양에 앞서 그 동기가 먼저 언급됩니다. 지혜와 능력이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분의 이름을 찬송해야 합니다. 히브리적 사고에 따르면 이름은 인격을 대표하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함과 하나님을 찬양함은 내용상 동일합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는 의례적 표현이 아닙니다. 고대 근동의 신들은 땅의 나라들처럼 영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두머리 신도 때가 되면 새로운 젊은 신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기에 찬양을 받는 신들의 이름이 시대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부침을 거듭하는 이방 신들과 달리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분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왕으로 통치하시기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을 받으십니다. “지혜와 능력”(참조. 욥 12:13)은 왕의 통치 덕목에 속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은 지혜와 능력으로 모든 피조 세계를 다스리십니다. 다니엘의 송영은 누가 참된 왕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세상을 통치하는 것 같지만, 이는 겉모습에 불과할 뿐입니다. 바벨론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왕의 번민도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21절은 네 개의 현재분사를 사용해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으로 하시는 일을 구체적으로 기술합니다. 그분은 때와 계절을 바꾸시고, 왕들을 내치기도 세우기도 하시고, 지혜자와 총명한 자에게 지혜와 지식을 주십니다.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는 자연의 계절적 순환보다는 시간과 역사를 결정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바벨론의 점성술이 전제하는 것처럼 때와 계절은 하늘의 별자리가 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능력으로 정해진 때를 단축시키실 수도 연장시키실 수도, 또 역사의 진행을 바꾸실 수도 있습니다.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는 바로 앞에 나온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의 구체적 진술입니다. 왕의 통치 기간과 왕권의 교체는 하나님께서 바꾸시는 때와 계절에 상응하여 결정됩니다. 겉으로는 정치적 사건처럼 보이지만, 민족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결정과 계획에 따른 역사의 전개 과정입니다.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 하나님게서는 바벨론의 지혜 전통에 대한 비판입니다. 참된 지혜와 지식은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서 기원합니다. 축적된 전통을 학습해서 얻은 지혜와 지식으로는 하나님께서 바꾸시는 때와 계절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지혜와 지식의 근원을 모르는 바벨론 지혜자들이 꿈의 내용을 말하라는 왕의 요구에 전혀 응답할 수 없었음은 당연합니다. 22절도 세 개의 분사를 사용해 전지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드러내시는 “깊고 은밀한 일”은 사람이 접근할 수 없도록 깊은 곳에 감춰진,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때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 신적 비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7-12장에서 천상적 존재를 통해 다니엘에게 당신의 깊이 감춰진 비밀을 알려주십니다.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는 땅의 악한 세력과 관련한 언급으로, 악의 준동이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음을 보여줍니다. 악한 세력은 독자적으로 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세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간 동안 승리를 즐기다가 제 역할이 끝나면 다시 퇴장해야 합니다.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는 참된 빛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현존 가운데 있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빛은 자주 구원과 승리를 상징하지만, 여기서는 지혜의 빛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바벨론 지혜자들은 지혜의 근원을 모르기에 왕의 꿈을 알아낼 수 없지만,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을 아는 다니엘은 그분과 함께 거하는 빛의 도움을 받아 깊고 은밀한 일,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깨달아 압니다.

 

(2) 감사(23)

 

다니엘의 기도가 찬양에서 감사로 넘어갑니다. 그는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지혜와 능력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바벨론의 신들과 달리 다니엘의 하나님께서는 위기에 처한 당신 종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가 구한 것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관한 보편적·전통적 진술(21-22)이 개인적·경험적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됩니다. 공동체의 전통과 신학을 담고 있는 찬양이 개인의 현재적 경험에서 나오는 감사와 유기적으로 결합합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함께 간구하지만, 응답은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아는 (1:17) 다니엘에게만 주어집니다.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는 다니엘의 해석에 신적 권위를 덧입혀줍니다. 바벨론 지혜자들과 달리 다니엘은 지혜자와 총명한 자에게 지혜와 지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간구해 은밀한 것을 밤의 환상 중에 보았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세상의 능력으로 세상이 볼 수 없는 세계를 보게 하시고, 세상이 들을 수 없는 것을 세상의 소리를 듣게 하십니다. 이러한 능력으로 자신의 사람들에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는 것은 기도와 말씀입니다. 이것으로 영적인 것들을 분별하게 하십니다. 영적인 촉각을 더욱 민감하게 하시며, 성령님이 주시는 세상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죄악 많은 세상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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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2-01)


꿈을 통한 하나님의 메시지

다니엘 2장 1-13절


 

선거철이면 후보들은 자신들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마치 자신들만이 불가능 없는 ‘슈퍼맨(Superman)’처럼 행동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정치를 하면 많은 것을 하겠다고 공약을 내놓습니다. 막상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는 불가능은 없다.”고 큰소리쳤지만, 그는 살아가면서 불가능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환경에서도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가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 모든 환상과 꿈을 해석할 수 있고,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지혜와 총명을 가진 다니엘의 이야기입니다. 대근동을 정복한 바벨론 제국의 왕 느부갓네살이 꿈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임의로 생사를 결정짓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자가 자기 꿈 하나 해결하지 못해 불안해합니다. 땅의 통치자들이 주장하는 권력의 실체와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사건의 도입부(1)

꿈은 잠자고 있는 동안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경험되어집니다. 그래서 의미 있는 꿈도 있겠지만, 대부분 의미 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모든 꿈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은 평범한 꿈이 아니라 특별한 꿈이었습니다. 그는 그 꿈에 담긴 의미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1느부갓네살이 다스린 지 이 년이 되는 해에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1)

 

여호와께서 다니엘에게 주신 지혜와 통찰력과 꿈과 환상의 해석 능력(1:17)이 2장에서 구체적으로 발휘됩니다. 전통적인 기술과 주술적 능력에 의존하는 바벨론의 지혜자들과 점쟁이들의 무능력과 여호와에 의존하는 다니엘의 능력이 대조됩니다. 이 대조는 결국 다니엘의 하나님과 바벨론 신들의 대결이기도 합니다. 꿈의 해석은 전문적 지식이 있으면 누구에게나 가능하지만, 해석의 대상인 꿈의 내용은 계시를 주신 분과 받은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해석자가 꿈의 내용까지 안다면, 그의 해석은 계시를 주신 분에게서 기원하기에 확실합니다. 더 나아가 꿈이 세계사의 진행과 관련한 것이기에 바벨론의 신들이 아니라 다니엘의 신이 역사를 경영하시는 분이 됩니다. 땅의 역사와 민족들의 운명이 강대국과 그들의 신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 유배민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결정과 통제 아래 있습니다.

 

왕과 갈대아 전문가를 사이의 대화(2-12)

하나님께서는 모든 지혜의 근원이십니다. 사람의 지혜는 제한적이고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무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은 완벽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그분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2왕이 그의 꿈을 자기에게 알려 주도록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를 부르라 말하매 그들이 들어가서 왕의 앞에 선지라 3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알고자 하여 마음이 번민하도다 하니 4갈대아 술사들이 아람 말로 왕에게 말하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왕께서 그 꿈을 종들에게 이르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하는지라 5왕이 갈대아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명령을 내렸나니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의 집을 거름더미로 만들 것이요 6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보이면 너희가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내게서 얻으리라 그런즉 꿈과 그 해석을 내게 보이라 하니 7그들이 다시 대답하여 가로되 청컨대 왕은 꿈을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8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분명히 아노라 너희가 나의 명령이 내렸음을 보았으므로 시간을 천연하려 함이로다 9너희가 만일 이 꿈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를 처치할 법이 오직 하나이니 이는 너희가 거짓말과 망령된 말을 내 앞에서 꾸며 말하여 때가 변하기를 기다리려 함이니라 이제 그 꿈을 내게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해석도 보일 줄을 내가 알리라 10갈대아 술사들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세상에는 왕의 그 일을 보일 자가 하나도 없으므로 크고 권력 있는 왕이 이런 것으로 박수에게나 술객에게나 갈대아 술사에게 물은 자가 절대로 있지 아니하였나이다 11왕의 물으신 것은 희한한 일이라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 한지라 12왕이 이로 말미암아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다 죽이라 명령하니라(2-12)

 

본문에서는 인간의 지혜와 능력이 한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왕의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만이시며, 이를 통해 우리는 기도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해야 함을 배웁니다. 또한,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느부갓네살의 꿈과 번뇌(2-3)

 

느부갓네살이 통치 제2년에 꿈을 꾸고 그로 인해 번민하며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고대 세계에서 왕은 자주 꿈을 통해 계시를 받습니다(참조, 창 20:3-7; 41:17). 꿈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번민하던 느부갓네살이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전문가들을 소집합니다. 다니엘은 전문가들을 소집하라는 왕의 명령에서 제외됐습니다. 다니엘의 뒤늦은 등장은 아마도 동일하게 환상과 꿈을 해석하는 일을 담당하는 다니엘을 바벨론의 전문가들로부터 구별시키기 위한 왕의 배려처럼 보입니다. 바벨론의 전문가들은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11)라고 말하면서도 신들에게 의존하지 않지만, 다니엘은 “은밀한 일에 대하여”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께 간구합니다(18절).

 

(2) 첫 번째 대화(4-6)

 

왕이 부른 까닭을 알게 된 갈대아 사람들이 왕에게 예를 갖춰 인사하고, 꿈을 알려주시면 해석해드리겠다고 정중하게 아룁니다. 전례에 따라 긴장 없이 시작된 대화가 왕의 위협적 답변으로 전혀 예기치 않는 상황으로 돌변합니다. 왕은 꿈의 해석뿐만 아니라 꿈의 내용도 알아내라고 단호하게 명령합니다. 꿈과 해석을 알게 하지 못하면 몸이 쪼개지고 집은 거름더미가 될 것이고, 꿈과 해석을 보이면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이 주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꿈까지 알게 하라는 왕의 명령은 고대 세계에서도 이례적입니다. 왕이 어떤 연유에서 꿈까지 보이라고 위협했는지는 모릅니다. 꿈의 내용을 잊어버렸거나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겠지만, 문맥에 따르면 왕이 해석자들을 불신하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꿈 해석만 가지고는 그 해석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길이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당사자만 알 수 있는 꿈 내용을 알아낼 수 있다면, 그 해석의 확실성도 확보될 수 있었습니다. 잘못 해석된 계시는 왕과 나라의 운명에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참조 왕상 22:1-36).

 

(3) 두 번째 대화(7-9)

 

술사들이 다시금 꿈을 말해 달라고 부탁하는 7절은 내용상 4절의 반복이지만, 문체가 일부 바뀝니다. 4절에서 술사들은 2인칭 명령으로 왕에게 꿈을 말해 줄 것을 부탁하고(개역개정의 “왕은”은 번역에 따른 첨가다) 여기서는 동일한 내용이 왕을 주어로 하는 3인칭 문장으로 기술됩니다. 왕 앞에 서서 당당하게 말하던 술사들이 왕의 터무니없는 명령에 당황해 아주 조심스럽게 부탁합니다. 왕이 꿈을 알려주는 경우에만 그의미를 밝힐 수 있다고 에둘러 말합니다. 술사들이 상황의 심각성과 자신들의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자신감을 상실하고 좀 더 겸손하게 부탁하는 술사들에게 한 왕의 답변은 그러한 명령을 내리게 된 왕의 속마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왕은 이들이 시간을 벌기위해 술수를 부린다고 신랄하게 책망합니다. 꿈의 내용을 알면, 어떤 식으로든 간에 해석은 가능해집니다. 그 해석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나중 문제입니다. 때로는 시간이 지나 확인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미 상황이 바뀌어버린 후이기에 의미가 없어집니다. 해석자들에 대한 왕의 철저한 불신이 이들에게 해석의 정당성을 입증해보도록 요청합니다. 당사자만 아는 꿈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해석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집니다. 해석의 확실성은 무엇보다도 해석자의 놀라운 능력으로 확인될 수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징조나 꿈의 해석은 일반적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철저한 불신과 회의는 예외에 속합니다.

 

(4) 세 번째 대화(10-12)

 

죽음의 위기에 처한 갈대아인들이 왕의 요구에 이의를 제기하며 합리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것을 간곡히 부탁합니다. 이들은 먼저 왕의 꿈을 밝히지 못하는 자신들을 변호합니다. 왕이 요구하는 대로 꿈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왕이 요구한 것은 사람의 한계 밖에 있는 일이다. 자신들이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왕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전통에 의지해 왕의 요구가 부당함을 지적합니다. 바벨론의 어떤 왕도 박수나 술객이나 갈대아인에게 그와 같은 일을 물은 적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위대하고 막강한 왕일지라도 사람의 능력에 속하지 않는 것은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요구는 오래전부터 확립돼온 왕과 갈대아인 사이의 신뢰 관계를 파괴하는 일입니다. 세 번째는 신학에 근거합니다. 신들만 왕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습니다. 꿈이 신적 계시의 매체이기에 꿈을 꾼 자는 물론 꿈을 통해 계시를 전하는 신도 꿈의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와 함께 살지 아니하는 신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과는 다른 차원에 속하는 신들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신만 왕이 무슨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혜자들의 합리적인 호소는 왕의 분노를 더할 뿐이었습니다. 지혜자들을 모두 죽이라는 왕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왕의 분노를 초래한 갈대아인의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다니엘에 의해 그대로 인정받습니다(27). 갈대아인이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하고 말한 것처럼, 다니엘도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라고 말합니다(28). 느부갓네살이 물은 것은 오직 신에 의해서만 답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자가 다르지 않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다니엘은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에게로 나아가 그분으로부터 “은밀한 것”을 전해 받는데(17-19), 갈대아인들은 자기 신들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신들은 보일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는 갈대아인의 태도는 이들이 의지하는 신들의 무능력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죽음의 위협에 처해서도 찾지 않는 신이라면, 그는 더 이상 신이 아닙니다.

 

위기에 처한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13)

훌륭한 업적을 이룬 왕도 인간의 한계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큰 권력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불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위기 속에서 인간의 연약함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결국,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13왕의 명령이 내리매 지혜자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죽이려고 찾았더라(13)

 

왕의 초법적인 명령으로 바벨론의 지혜자들뿐만 아니라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왕의 명령을 집행하기 위해 사람들이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찾습니다. 이들은 왕의 부름을 받지는 못했지만, 지혜자들을 죽이라는 왕의 명령에는 포함됩니다. 이들이 부름을 받지 못한 이유는 달리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바벨론 지혜자들과 한 부류인지, 또는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지혜자인지를 이제 보여주어야 합니다.


세상의 법칙을 느부갓네살 왕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을 이용하지만, 필요 없으면 과감히 수많은 사람들을 버리고 희생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세상의 법칙과는 반대입니다.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천하보다 귀하게 가치 있게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법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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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1-02)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를 경험한 다니엘

다니엘 1장 8-21절


 

주변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에 대해 반응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과 조건에 처해 있느냐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어떤 반응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믿음의 사람으로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즐거워하며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추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분량을 따라 나타난 것입니다. 그 사람의 분량, 그릇의 크기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자신이 얼마만큼 크기를 가진 사람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글로벌 리더(Global Leader)로 사용하길 때는 먼저 그 사람의 그릇을 만들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 본문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경건을 위해 거룩한 결단합니다. 그들은 세상의 풍요로운 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왕의 진미를 거절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관리한 환관장에게 10일 동안 채식과 물만 먹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한 믿음의 결단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결과를 맺게 하십니다. 믿음의 결단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감화시키시면서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왕의 음식을 거절하는 다니엘과 세 친구(8-16)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 편에 서기로 작정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다니엘은 원치 않는 곳에서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살아야했지만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기로 작정하였습니다.

 

8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0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11환관장이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12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 14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 동안 시험하더니 15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16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8-16)

 

바벨론에 포로 끌려온 다니엘은 어떤 희망도 없었습니다. 이방 바벨론 생활을 요구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는 뜻을 정합니다. 비록 그들은 바벨론 포로이지만 마음과 신앙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겠다고 작정했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 외에 다른 언약을 맺어서 하나님께 반역할 수 없다는 뜻을 가졌던 것입니다.

 

(1) 환관장을 찾아가는 다니엘(8-10)

 

다니엘서에서는 네 유다 소년의 대표로 다니엘이 등장합니다. 다니엘이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환관장을 찾아가 부탁합니다. 채식과 물만 먹고 마시겠다는 다니엘의 제안은 왕의 음식에 고기가 포함됐음을 시사합니다. 일부 고기와 포도주는 먼저 신들에게 바쳤졌던 음식일 수 있어서 율법을 범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이방 땅에서 정과 부정에 관한 율법의 가르침을 준수하려는 열심에서 왕의 음식을 거절한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공동식사를 통해 바벨론 왕과 연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음식을 거절했을 수도 있습니다. 왕의 음식에는 일종의 성례전적 의미가 함축돼 있습니다. 바벨론 왕궁에서 일해야 하지만, 왕에게 운명적으로 종속된 신하로 남기를 거절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종교적·민족적 전통과 유다 자손의 정체성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위험을 무릅쓰며 행동에 나섭니다. 바벨론 왕궁에 다니엘을 도와줄 사람은 없었지만, 다니엘을 돕도록 바벨론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분은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니엘의 결심을 뒷받침해주십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간섭으로 환관장의 은혜와 긍휼을 얻습니다. ‘은혜와 긍휼’(참조, 렘 16:5;호 2:19; 슥 7:9)은 동정심이나 연민의 뜻 이상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단어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헌신을 표현해왔습니다. 헤세드(은혜)는 구속적이며 헌신적인 언약적 사랑을, ‘라하밈’(긍휼)은 값없이 용서하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모성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가장 잘 보여 주는 표현이 바벨론 왕궁의 고위관리인 환관장에게 적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환관장의 은혜와 긍휼이 아니라, 동사 ‘얻게 하신지라’의 주어 ‘하나님께서 환관장을 움직여 다니엘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게 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 준수를 위해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다니엘이 하나님의 구속사적 중재로 환관장의 은혜와 긍휼을 경험한 것입니다.

 

(2) 감독관을 설득하는 다니엘(11-14)

 

환관장의 은혜와 긍휼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는 다니엘에게 호의적인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다니엘의 요청을 그대로 들어주지는 못합니다. 그는 왕의 신하로서 왕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이 직접 소년들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지정했기에, 왕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는 한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기름진 음식 대신 채소만 먹으면 얼굴이 수척해질 수 있기에 탄로 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사로잡혀 온 유대 소년들을 위해 환관장이 자기 목숨을 걸 수는 없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왕의 노여움을 사면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웠습니다(참조, 2:12). 다니엘은 몸을 사리는 환관장에게 거절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른 길을 제안합니다. 그는 환관장이 자신과 동료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맡겨 감독하게 한 사람을 찾아갑니다. 이번에는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타협안을 마련하여 찾아갑니다.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기보다는 상대의 어려운 처지를 인정하면서 설득을 시도합니다. 환관장을 찾아갔을 때는 아무 대안 없이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를 무조건 먹지 않겠다고 거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험 삼아 열흘 동안만 채식을 먹고 물을 마시게 한 후에 다른 소년들의 얼굴과 비교하여 그 다음에 어떻게 할지 결정하자고 제안합니다. 위험성이 없지는 않은 제안이지만, 열흘 동안만 시험 삼아 해보는 것이기에 왕이나 환관장에게 들킬 염려가 적었습니다. 감독관은 다니엘의 제안을 받아들여 열흘 동안 채식과 물만 먹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로 하여금 감독관에게서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 결과입니다. 뜻을 세우고 이를 이뤄나가는 다니엘에게서 지혜자의 면모가 보입니다. 열흘은 결정의 실질적 결과가 나타나는 기간을 가리킬 것입니다(참조, 창 24:55; 삼상 25:38).

 

(3) 허락받은 다니엘의 요청(15-16)

 

판단을 감독관에게 맡긴 다니엘의 구체적 제안이 놀라운 결실을 맺습니다. 환관장은 이들의 얼굴이 초췌하여 또래의 소년들만 못할 것을 염려했는데,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왕의 진미를 먹은 다른 소년들보다 얼굴빛도 더 좋았고 살도 더 올랐습니다. 이제 감독관은 다니엘의 요청을 그대로 수락하고 네 소년에게 왕의 음식 대신 채식을 줍니다. 당연히 채식과 물이 왕의 음식과 포도주보다 몸에 더 좋아서 네 소년이 다른 소년들보다 더 건강해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채식을 선택한 소년들이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에 열흘은 너무 짧습니다. 이는 다니엘의 결단과 결과에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셨음을 시사해줍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소년들의 열심에 하나님께서 기꺼이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곳이 바벨론 왕궁일지라도, 상대가 온 땅을 정복한 바벨론 왕일지라도, 여호와께서 하시려는 일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믿음을 지키려는 자가 있는 곳이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기에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네 소년의 성공적 결말(17-20)

하나님께서 끝없이 패역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와 포로로 끌려가게 하신 것을 이스라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하셨습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위로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갔지만,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절대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바벨론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부하고 채식과 물만으로 절제된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다니엘과 친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17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18왕이 말한 대로 그들을 불러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느부갓네살 앞으로 데리고 가니 19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가 없으므로 그들을 왕 앞에 서게 하고 20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17-20)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에게 지혜와 이해를 주셨음을 보여줍니다. 이 구절은 신앙을 지키며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의 노력과 충성을 보상하신다는 교훈을 전달합니다.

 

(1) 지혜를 주신 하나님(17)

 

유다의 네 소년은 왕궁 교육에서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합니다. 3년의 짧은 기간에 유대 출신 소년들이 갈대아의 학문과 언어를 배워서 지혜자가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지만 이들은 해냈습니다. 이들의 재능이 남달리 뛰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소년들이 이방 땅에서 이방의 학문을 배워 완전히 습득할 수 있도록 학문적 능력과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학문”은 배움이나 지식으로,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을 잘 재판할 수 있도록 여호와께 지혜와 지식을 구했습니다(대하 1:10-12). 바벨론은 오랜 종교적·문학적 전통에서 나온 방대한 양의 서적을 자랑했습니다. 이 서적을 읽으려면 아카드어를 배워야 했고, 이해를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유다에서 사로잡혀 온 네 소년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의 도움을 받아 바벨론의 지혜와 전통을 정복합니다. 특히 다니엘은 더 뛰어났는데, 그에게는 “모든 환상과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도 주어집니다. 이 능력을 힘입어 2장과 4장에서 바벨론의 지혜자들이 풀 수 없었던 꿈과 환상을 해석합니다.

 

(2) 느부갓네살 앞에 선 소년들(18-19)

 

3년의 교육과정이 끝나자 환관장이 교육생들을 느부갓네살 왕 앞으로 데리고 갑니다. 왕은 대화를 통해 네 명의 유다 소년만 한 인물이 없음을 알고 자기 곁에 둡니다.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자신들을 포로로 잡아 왔던 느부갓네살 왕을 모시게 됩니다.

 

(3) 바벨론의 지혜를 압도하는 소년들(20)

 

이들은 뛰어난 능력으로 왕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습니다. 왕이 어떤 것을 물어보아도 지혜와 총명에 있어 바벨론의 모든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뛰어났습니다. ‘십 배’는 완전수로 네 소년의 능력이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소년들에게 주신 학문과 깨달음과 지혜 앞에 바벨론 종교의 초라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바벨론의 신들에게 패한 것처럼 보였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유다의 네 소년을 통해 바벨론 왕궁에 당신의 능력을 과시하십니다. 변방에 속한 유다의 종교가 고대 근동에서 인정받던 바벨론의 종교를 압도합니다.

 

맺는 말: 고레스 왕 원년(21)

하나님께 쓰임 받는 시간에도 낙담하고 실망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외로움과 피곤함에 지쳐 힘들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결국, 하나님께 의지하며 다시 일어설 힘을 찾게 됩니다. 이 마지막 21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으면 볼 수 있습니다.

 

21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21)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주전 606년 바벨론 침략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 온 다니엘은 고레스 원년까지 칠십년이 조금 못 미치는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학문과 지혜 덕분에 바벨론 왕궁에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서에 따르면 메대 사람 다리오가 바벨론을 이어받지만(5:30-31), 성경의 다른 책들에 의하면 주전 539년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합니다. 고레스 왕 원년은 주전 538년에 해당합니다.


다니엘이 신앙을 지키며 굳건한 결단을 내린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은혜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켰습니다. 이러한 다니엘의 삶은 우리에게 신앙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충성과 헌신에 응답하시며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도 다니엘처럼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키길 소망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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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1-01)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다니엘 1장 1-7절


 

이스라엘의 역사는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될 수 있지만, 믿음의 법칙을 따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때 강해졌고, 반대로 그렇지 못할 경우 약해져 주변 나라에 침공을 받았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원리를 적용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강력한 삶을 살지만, 그렇지 못하면 연약해집니다. 이러한 의미를 깨닫도록 다니엘서를 주셨으며, 이를 통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승리하는 삶으로 인도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 바벨론으로 사로잡혀온 유다의 네 청년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복자들의 기준에 따라 발탁되어 바벨론 왕궁에서 교육을 받게 됩니다.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할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고 이방 민족들 가운데 살아남는 것이 가능합니까?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핵심적 요소는 무엇입니까?

 

도입부(1-2)

주변에 악인이 득세할 때, 세상은 정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며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하게 됩니다. 하박국 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죄악이 만연했고, 선지자는 하나님께 탄식했습니다. 선지자가 보기에는 하나님께서 악행을 방관하는 것처럼 보였고, 이는 하나님께서 무능력한 분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서의 첫 부분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1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2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1-2)

 

다니엘서는 특이하게도 전쟁에 관한 보고로 시작합니다. 때는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이고, 전쟁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의 포위공격이고, 그 결말은 유다 왕 여호야김의 유배와 일부 성전 기물의 약탈입니다.

 

(1)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침략(1)

 

전쟁의 동기나 목적, 경과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포위당한 예루살렘의 운명에 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전쟁 자체보다 그 배후에 주목합니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지만, 그의 손에 여호야김과 성전 기물을 넘겨주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유다를 받쳐주는 두 기둥인 왕권과 성전이 뿌리째 흔들리지만 완전한 파국은 아닙니다. 느부갓네살의 승리와 유다의 패배는 여호와의 계획에 속합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언급하지 않지만,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여호와의 징벌적 개입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2) 여호야김의 유배와 일부 성전 기물의 약탈(2)

 

성전 기물의 운명에 관해서 상세히 언급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약탈한 성전 기물을 시날 땅으로 가져가 신전 보물 창고에 보관합니다. “신전”은 바벨론의 국가신 마르둑의 신전입니다. 약탈한 신전 기물을 정복자의 신전으로 옮겨놓는 것은 고대 세계의 풍습인데, 성전 기물은 점령지의 약탈품이라도 성별된 물건들이기에 더럽혀져서는 안 됩니다. 다니엘서의 문맥에서 바벨론 신전으로 옮겨진 성전 기물은 5장에 나오는 벨사살 왕의 연회를 예비해주고, 넓게는 여호와의 활동 무대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겨졌음을 시사합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은 주전 606년으로,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침공과 여호야김의 유배는 여기에만 나옵니다. 다니엘서에 따르면 여호야김의 통치 기간이 삼 년인데, 열왕기하 23:36과 역대하 36:5에 의하면 여호야김은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609-598) 다스립니다. 시날 땅은 바벨론의 전통적인 이름입니다. 전설적인 사냥꾼 니므롯의 활동 무대인(창 10:10) 시날 땅은 소위 바벨탑이 건설된 곳이고(창 11:2), 스가랴의 환상에서는 악이 추방되는 곳입니다(슥 5:11). 다니엘서에서 부정적 함의를 갖고 사용됐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바벨론을 가리키는 전통적인 용어이기에 사용했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신학적 의도에서 바벨론을 시날 땅으로 표현했다면, 이야기의 무대를 여호와 신앙에 적대적인 악의 세력이 웅거하다가 심판받은 시날 땅으로 지칭함으로써 처음부터 유배민들이 여호와 신앙에 적대적인 세력에 둘러싸여 당하게 될 시련과 승리를 암시적으로 보여줍니다.

 

왕궁의 교육생으로 뽑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3-7)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선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방법으로 그를 섬기도록 하십니다. 반면, 악한 사람은 악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위해 선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결국, 각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3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4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5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6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7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3-7)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의 유혹과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야 함을 강조합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벨론에서의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신앙과 원칙을 지키며,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지식을 통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 이스라엘 소년을 선발하라는 왕령(3)

 

왕은 궁전의 고위 관료인 환관장 아스나스에게 이스라엘의 유배민들 가운데서 왕족과 귀족 출신의 총명한 소년들을 발탁하여 왕궁에서 일할 수 있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합니다.

 

(2) 선발 기준(4)

 

선택의 기준으로 세 가지 지침이 주어집니다. 첫째는 신분과 관련한 것으로, “왕족과 귀족” 출신이어야 합니다. 왕족이나 귀족에 속한 포로들을 교육하고 대접해 충성스런 신하로 만들어 활용하는 일은 고대 세계에서 드물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외모와 관련한 것으로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운” 소년이어야 합니다. “흠이 없고”는 레위기에 제의적 용어로 등장하지만, 제의와 상관없는 문맥에서도 사용됩니다. 사무엘하 14:25 압살롬의 외모를 소개하면서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말하고, 아가 4:7에서 솔로몬은 자기 신부를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하고 말합니다. 아름다움은 자주 왕의 외모를 묘사하는데 사용되는 표현으로(참조, 삼상 9:2; 16:12; 왕상 1:6), 미학적 평가를 넘어 자질의 충분함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셋째는 능력과 관련한 것으로,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한” 소년이어야 합니다. 교육 내용이 아카드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오래되고 방대한 종교적 전통이기에 남다르게 뛰어나지 않으면 이수할 수 없습니다.

선발된 이스라엘 소년들이 배워야 할 분야는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였습니다. “학문”은 글로 기록된 문서를, “갈대아 사람의 언어”는 아카드어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소년들이 바벨론의 옛 언어인 아카드어로 기록된 문서, 곧 점쟁이를 위한 전문적 문헌을 읽을 수 있게 훈련을 받습니다. 20절은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바벨론의 박수와 술객으로 교육받았음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3) 왕의 음식과 포도주(5)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 “왕 앞에 서게 될” 소년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가 양식으로 주어집니다. 교육생들은 3년 동안 매일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를 먹습니다. 사무엘하 11:8에 의하면 다윗은 우리아에게 왕의 음식물을 하사합니다(참조, 왕하25:29-30). 왕이 음식물을 신하에게 나눠주는 전통은 신하를 왕에게 예속시키는 일종의 성례전적 성격을 갖는 풍습입니다. 왕이 주는 음식을 먹는 자는 왕에게 속한 신하로서 왕에게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바벨론에서 3년의 교육 기간이 일반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전체 교육은 보통 5-7세에 시작해서 16-24세 사이의 어느 시점까지 계속됐던 것 같습니다. 왕실의 후계자를 위한 높은 수준의 교육은 14세에 시작했습니다. 3년은 아카드어를 모르는 사람이 언어를 새로 배워 바벨론의 광범위한 학문을 익히기에는 너무 짧은, 하나님의 도움에 의해서만 가능한 기간입니다. 17절은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4)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6)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온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유다 출신의 네 소년 이름이 특별히 언급됩니다. 3절의 “이스라엘 자손”이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를 포함한다면, “유다 자손”은 네 소년의 집안이 유다 지파에 속했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집안이 중요했던 고대 세계에서는 인물을 소개할 때 보통 아버지의 이름을 함께 알려주는데, 여기서는 당사자의 이름만 언급됩니다. ‘유다 자손 가운데서’는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특정 집안에 속한 인물이 아니라 전체 유다에 속한 인물임을 시사해줍니다.

 

(5) 바벨론식 개명(7)

 

교육을 책임진 환관장이 네 소년의 이름을 벨드사살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로 바꿔줍니다. 아마도 바벨론 왕궁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바벨론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개명은 바벨론의 권력에 종속된 네 소년의 처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바벨론 왕궁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지만, 자기 이름도 마음대로 주장할 수 없는 피정복민에 불과합니다. 특이하게도 다니엘은 왕의 음식에 관해서는 적극적으로 저항하는데(8-16), 이스라엘의 신명 ‘엘’(하나님) 또는 ‘야’(여호와)를 포함하는 히브리 이름이 바벨론 세계에 적합한 이교적 이름으로 바뀐 것에는 달리 반응하지 않고 이를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3장도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의 히브리어 이름 대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바벨론식 이름을 사용합니다. 이름을 바꾸는 행위가 이스라엘의 신학적 전통에 반하는 일이 아니었음을 전제합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창씨 개명 같은 지배 권력에 의해 강제된 집단 개명은 고대 근동에 없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의 환관장에 의한 일방적 개명은 이들만의 문제로, 유배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개인적 결정에 따라, 특히 이방인들 가운데서 정치적으로 활동할 때 이방식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여호야긴의 손자로 제2성전을 완공시킨 스룹바벨은 ‘바벨의 싹’을,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는 ‘마르둑의 숭배자’를 의미합니다. 에스더는 별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스타’라 또는 바벨론의 사랑의 여신 ‘이쉬타르’에서 온 이름입니다.

요약하자면, 이방적·이교적 환경에 온전히 노출된 유배민들에게 개명은 정치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선택지였고, 음식 규정의 준수는 민족적·종교적 정체성 유지의 필요조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 신앙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인도하십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벨론의 문화와 압박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들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하나님의 말씀과 원칙을 따르며 살아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신앙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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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서론


 

영적 생활에서 뜻을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뜻을 정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십니다. 뜻을 정하고 의지를 드려서,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대로 살지 못하면, 환경에 따라 생각합니다. 마치, 죽은 물고기가 떠내려가지만,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뜻을 정하지 않으면, 세상의 환경에 따라 떠내려갑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했습니다. 뜻을 정하고 난 후에 어떤 일을 겪었습니까? 그것을 생각 가운데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보게될 것입니다.

 

1. 제목

책 이름은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본서의 기록자이자 중심 인물인 ‘다니엘’을 따른 것입니다. ‘다니엘’(Daniel)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뜻입니다. 유다 백성이 포로로 사로잡혀 가게 되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열방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킨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이름입니다.

 

2. 저자

 

저자는 다니엘입니다.

 

(1) 내적 증거

 

본서가 자체적으로 다니엘의 기록임을 밝히고 있습니다(1:1, 7:1, 8:1, 9:1, 10:1-2, 11:1). 또한 ‘나 다니엘’이라는 1인칭이 나오기도 합니다 (9:2,20, 10:2).

 

(2) 외적 증거

 

예수님도 감람산 강화에서 본서의 마지막 부분이 다니엘의 글임을 언급했습니다(9:27, 11:31, 12:11, 마 24:15).

 

3. 기록 연대

본서의 저자가 다니엘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확고합니다. 다니엘은 B.C.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잡혀 가서 바사왕 고레스 3년까지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본서는 당연히 다니엘이 B.C.6세기로 볼 수 있습니다. 본서의 내용을 참고해 보면 바벨론이 함락한 B.C.539년 이후부터 바사의 고레스왕 9년인 B.C.530년 사이에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4. 다니엘의 위치

다니엘서는 대선지서입니다. 대선지서(이사야서,예레미야서,에스겔서, 다니엘서) 중에 가장 짧은 책입니다. 대선지서와 소선지서의 기준은 분량 순입니다.

다니엘서가 대선지자에 속한 이유는 역사적으로 2500년 세계사를 담고 있어서, 세계사의 뼈대가 되는 책입니다. 종말까지 나오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 가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세계의 통치자로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것을 내다보고 그 내용을 기록한 책입니다.

 

5. 기록 목적

본 다니엘서는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후 하나님이 여전히 유다 백성에게 세계의 주권자임을 밝히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바벨론 왕들은 유다 예루살렘의 성전을 훼파하고 성전 기구들을 강탈하여 자신들의 신정에 두므로 자신들의 신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세계에 공포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유일신 사상은 조롱거리가 되었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던 유다 백성들은 갈등과 고뇌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일련의 기적과 권능을 소개하고 미래 역사를 소개하므로 하나님이 이방 거짓 신들과 달리 세계 역사를 주관하는 통치자임을 밝힙니다.

 

6. 다니엘의 특징

①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초토화되므로 이방신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제국의 운명을 포함한 모든 인간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열흘간 식물만 먹으면서도 고기를 먹은 다른 사람들보다 기름졌던 다니엘과 세 친구의 용모, 느부갓네살왕의 꿈 내용에 대한 다니엘의 해석, 풀무불 가운데서 구원받은 다니엘의 세 친구 사건, 느부갓네살왕이 정신 이상으로 7년 동안 짐승처럼 살리라는 경고, 벨사살왕의 잔치석상에서 벽에 새겨진 예언의 신속한 성취, 사자굴에서 구원받은 다니엘 사건 등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이 포로 생활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방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구원해 주실 수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의 염원인 하나님 나라 건설을 이루어 주실 수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② 기도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기도의 힘을 믿고 왕의 시위대 장관인 아리옥에게 자신이 느부갓네살왕의 꿈의 내용과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 속에 던져지는 상황 속에서도 능히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70년이 지나면 유다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귀환시켜 주시겠다고 한 약속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유다 백성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귀환해 성전을 재건할 수 있었습니다 (대하36:22-23, 스6:15).

 

③ 부활 사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가 부활하여 영생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영벌을 받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부활 개념은 이사야나 욥의 사상과도 일치합니다. 욥은 벌레들이 자신의 몸을 파먹은 후에도 자신의 눈으로 구속자를 볼 기회를 사모했습니다(욥 19:25-27).

 

④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유다 백성들의 끝없는 배신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구원을 준비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비록 선지자의 외침이 거부되고 철저한 파괴가 이루어졌을지라도 메시야를 통한 회복과 번영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7. 환상에 나타난 4대 제국

본서는 여러 가지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하에 미래의 역사 전개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를 보여줍니다.

2장에 나오는 신상의 금머리는 바벨론(바빌로니아) 제국(B.C.605-539)을, 은가슴과 발은 바사(페르시아) 제국(B.C.539-331)을, 놋배와 넓적다리는 헬라(그리이스) 제국(B.C.331-63)을, 철종아리는 로마 제국(B.C.63-A.D.476)을, 뜨인돌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7장에 나오는 사자는 바벨론 제국을, 곰은 바사 제국을, 표범은 헬라 제국을, 괴물같은 짐승은 로마 제국을 상징합니다. 8장에 나오는 숫양은 바사 제국을, 숫염소는 헬라 제국을 상징합니다. 9장에 나오는 70이레 중 마지막 이레는 세상 마지막 때에 있을 7년 대환난을 상징합니다. 그런 환상들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 유다를 중심한 세상 국가들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예언한 내용들입니다.

 

8. 내용분해

 

1. 역사편(1-6장)

 

1) 다니엘의 궁중생활(1장)

2) 다니엘의 해몽(2장)

3) 세친구, 풀무불에 던지움(3장)

4) 느부갓네살의 발광(4장)

5) 벨사살의 향연(5장)

6)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지움(6장)

 

2. 계시편(7-12장)

 

1) 네 짐승(7장)

2) 수양과 수염소와 작은 뿔(8장)

3) 70주의 예언(9장)

4) 마지막 예언(10-12장)

   (1) 천사와의 대화(10장)

   (2) 열방에 대한 예언(11장)

   (3) 종말의 예언(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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