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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11-01)


역사의 흐름 속의 하나님의 계획

다니엘 11장 1-19절


 

세상의 권세는 강해 보이지만 결국 유한하며 사라집니다. 여러 왕들의 흥망성쇠가 역사 속에 나타나듯이, 인간의 권력은 한계를 가집니다. 반면, 하나님의 나라는 흔들리지 않으며 영원히 지속됩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힘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영원한 승리를 보장합니다.

 

  • 바사와 그리스를 간략히 언급한 후에 셀류코스와 프톨레미 왕조의 세력 다툼을 전자에 초점을 맞춰 기술합니다. 두 왕조의 거듭된 갈등과 대립은 두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유다의 생존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지만, 유다에 관해서는 단편적으로만 언급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 백성의 운명에 아무 관심이 없으신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단편적 언급은 유다의 운명이 하나님에 의해서만 결정됨을 보여줍니다.

 

역사적 소개와 바사(559-331)의 네 왕(1-2)

하나님께서는 권세를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은 신앙 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모든 상황을 주관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두려움 없이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1내가 또 메대 사람 다리오 원년에 일어나 그를 도와서 그를 강하게 한 일이 있었느니라 2○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보라 바사에서 또 세 왕들이 일어날 것이요 그 후의 넷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충동하여 헬라 왕국을 칠 것이며(1-2)

 

하나님께서는 모든 권세를 다스리시며, 우리는 그분의 주권을 신뢰해야 합니다.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믿고 인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배운 교훈들을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1) 역사적 소개(1)

 

“다리오 원년에 일어나 그를 도와서 그를 강하게 한일”은 바벨론의 멸망과 관련된 말처럼 보입니다. 도움을 받은 ‘그’가 다리오를 가리키는지 미가엘을 가리키는지는 불분명하지만, 10장의 문맥과 민족들의 수호천사에 관한 신학은 후자를 지지합니다. 세마포 옷을 입은 천사가 바사 군주와 싸울 때 미가엘이 도와주듯이(10:13), 미가엘이 바벨론 군주와 싸울 때 세마포 옷을 입은 천사가 그를 도와준 듯합니다. 바사와 헬라의 운명은 하나님의 결정에 속하기에 반드시 이뤄질 참된 것(진리)입니다.

 

(2) 바사의 네 왕(2)

 

고레스 이후 바사를 통치한 열왕 가운데 네 명만 언급된다. 고레스, 다리오, 아하수에로, 아닥사스다입니다. 헬라 왕국을 칠 넷째 왕에 관해서는 특별히 큰 재물을 모아 강력해진 왕이라고 말합니다. 바사 왕들 가운데 다리오 1세(주전 522-486년)와 아하수에로 1세(주전 486-465년)가 그리스를 침략했고,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아하수에로 1세의 부에 관해 언급했기에 넷째 왕을 아하수에로 1세로 추측하며, 또한 다리오 3세로 볼 가능성도 있습니다.

 

헬라: 알렉산더(336-323)와 제국의 분열(3-4)

세상의 권세는 인간의 뜻대로 유지되지 않고 결국 사라집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영원히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간적인 힘과 영광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주권자이시며, 역사는 그분의 계획 속에서 움직입니다.

 

3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 4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라(3-4)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며 자기 좋을 대로 행동하는 “한 능력 있는 왕”은 당시 알려진 거의 모든 지역을 점령한 알렉산더 대왕을 가리킵니다. 후계자도 지명하지 못한 채 주전 323년 서른셋의 나이로 죽습니다. 이복동생 아르히다이오스(Philip Arthidaeus)와 유복자 알렉산더 4세는 각각 주전 317년과 310년에 암살당합니다. 알렉산더의 적통이 뿌리째 제거되고, 그의 제국은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넘어갑니다. 혼란스런 후계자 전쟁 끝에 알렉산더의 부하 장수들이 대제국을 나누어 통치하기로 합의합니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드라게(발칸반도 동부)와 소아시아, 바벨론과 그 동쪽 지역을 포함하는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와 북아프리카의 네 왕국으로 분할됩니다.

 

셀류코스 1세(312/305-281)(5)

세상의 권력과 지위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영원하지 않습니다. 역사 속의 왕국과 지도자들의 흥망성쇠를 통해 모든 권력의 이동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힘이나 지위를 의지하지 말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참된 주권자로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의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5○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주들 중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의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5)

 

강한 “남방의 왕”은 알렉산더 사후 이집트를 차지하고 프톨레미 왕조(주전 323-30년)를 창건한 프톨레미 1세를, “그 군주들 중 하나”는 셀류코스 왕조를 연 셀류코스 1세를 가리킵니다. 바벨론의 총독 자리를 얻었던 셀류코스는 주전 316년 안티고노스를 피해 프톨레미에게로 도망해 그의 장수가 됩니다. 주전 312년 프톨레미를 도와 가사(Gaza)에서 안티고노스와 싸워 이긴 후 다시 바벨론의 총독직을 얻고, 주전 301년 입소스(Ipsus) 전투에서 안티고노스가 죽은 후에는 프톨레미 왕조보다도 더 큰 나라의 왕이 됩니다.

 

안티오코스 2세(261-246), 셀류코스 2세(246-225)(6-9)

인간이 세운 약속과 연합은 불완전하여 결국 무너집니다. 참된 평화는 인간의 계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이루어집니다. 세상의 권력과 부귀영화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결국 헛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주권자이시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참된 승리를 가져옵니다.

 

6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단합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그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그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도와 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 7○그러나 그 공주의 본 족속에게서 난 자 중의 한 사람이 왕위를 이어 권세를 받아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8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은과 금의 아름다운 그릇들은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9북방 왕이 남방 왕의 왕국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6-9)

 

본문에서는 남왕국과 북왕국 간의 정치적 동맹과 갈등이 언급됩니다. 남왕국의 왕이 북왕국의 왕에게 딸을 보내 결혼 동맹을 맺지만, 이 결혼은 결국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후 북왕국은 힘을 키워 남왕국을 공격하고, 여러 전쟁을 통해 권력을 확장하려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1) 파국으로 끝난 정략결혼(6)

 

제2차 시리아 전쟁(주전 260-253년)이 끝난 후에 프톨레미 왕조는 정략결혼을 통해 셀류코스 왕조와 정치적 화친을 모색합니다. 주전 252년 프톨레미 2세는 딸 베레니케를 아내가 있는 안티오코스 2세와 결혼시킵니다(6).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난 직후 안티오코스는 이혼한 아내 라오디케와 다시 화해하고, 라오디케와 그녀의 두 아들이 거주하던 에베소에 머물다가 갑자기 죽습니다.

 

(2) 프톨레미 3세의 보복 원정(7-8)

 

라오디케는 안티오코스가 죽기 직전에 자기 아들 셀류코스 2세를 후계자로 지명했다고 주장하고, 안디옥에 머물던 베레니케는 오라버니 프톨레미 3세에게 군사적 도움을 요청합니다. 프롤레미는 원정에 나서 안디옥에 입성하지만, 누이와 조카의 목숨을 구하지는 못합니다. 이집트 군대가 도착하기 직전 라오디케의 앞잡이들에 의해 베레니케와 그녀의 아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이집트에서 데려온 수행원들(“도와 주던 자”)도 죽음을 피하지 못합니다. 프톨레미는 누이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안디옥을 떠나 메소포타미아로 올라가 많은 승리를 거두고, 소아시아의 에베소도 수중에 넣습니다. 그의 성공적인 원정은 갑작스럽게 중단됩니다. 반역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철수합니다.

 

(3) 셀류코스 2세의 실지 회복(9)

 

소아시아와 시리아 지방으로 밀려났던 셀류코스 2세는 프톨레미가 잠시 활동을 멈춘 사이 실지를 회복합니다.

 

안티오코스 3세(223-187)(10-19)

세상의 권세를 쫓는 자들은 갈등과 혼란 속에서 살아갑니다. 참된 평화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서만 가능합니다. 인간의 지혜와 계략은 한계가 있으며,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권력을 의지하는 자는 몰락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영원한 소망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행하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10○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이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11남방 왕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과 싸울 것이라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는 그의 손에 넘겨 준 바 되리라 12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의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 13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군대를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14그 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환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걸려 넘어지리라 15이에 북방 왕은 와서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점령할 것이요 남방 군대는 그를 당할 수 없으며 또 그가 택한 군대라도 그를 당할 힘이 없을 것이므로 16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니 그를 당할 사람이 없겠고 그는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의 손에는 멸망이 있으리라 17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의 나라를 망하게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 18그 후에 그가 그의 얼굴을 바닷가로 돌려 많이 점령할 것이나 한 장군이 나타나 그의 정복을 그치게 하고 그 수치를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19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려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10-19)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기도한 후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천사는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지연된 이유를 설명하며, 영적 전쟁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사랑하고 그의 기도를 듣고 계시다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1) 첫 번째 시리아 전쟁(10-12)

 

셀류코스 2세의 아들 셀류코스 3세는 통치 3년 만에 암살당하고, 동생 안티오코스 3세가 형의 자리를 계승합니다. 주전 221년 유약한 프톨레미 4세가 왕위에 오르자 안티오코스 3세가 원정에 나섭니다. 주전 217년 안티오코스는 애굽의 국경 근처에 있는 라피아(”견고한 성“)에서 프톨레미 4세에게 크게 패합니다. 그러나 프톨레미는 승리의 여세를 활용하지 못하고 안티오코스와 강화조약을 체결합니다. 프톨레미 왕조는 세력 확장에 나설 만큼 그렇게 강하지 못했습니다.

 

(2) 두 번째 시리아 전쟁(13-15)

 

13-15절은 안티오코스의 두 번째 시리아 전쟁과 관련한 말씀입니다. 군사력을 재정비한 안티오코스는 주전 204년 프톨레미 5세가 여섯 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많은 물자와 함께 대군을 거느리고 원정에 나섭니다. 안티오코스 편에 가담하여 프톨레미를 치는 자들(“여러 사람”)은 그와 동맹을 맺은 마케도니아 왕 빌립과 프톨레미에 반기를 든 애굽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도 분열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는 친(親) 셀류코스 노선을 추종하는 유다 사람들일 것입니다.

 

(3) 안티오코스 3세의 영화(16-18a)

 

안티오코스에 우호적인 일부 유다 사람들이 “환상”의 도움을 받아 프톨레미에 반기를 들지만, 스코파스(Scopas)가 지휘하는 프톨레미 군대의 반격을 받은 안티오코스가 퇴각함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결정적인 싸움은 주전 200년에 벌어집니다.

 

(4) 안티오코스 3세의 종말(18b-19)

 

스코파스의 원정군이 헤르몬 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파네아스(Paneas)에서 안티오코스에게 참패를 당합니다. 누구도 안티오코스의 진격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프톨레미의 지배 아래 있던 유다와 예루살렘(“영화로운 땅”)도 그의 수중에 떨어집니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통로를 확보한 안티오코스가 전쟁 대신 안정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그는 프톨레미 5세와 강화조약을 맺고 정략결혼으로 이를 보강합니다. 그는 딸 클레오파트라(“여자의 딸”)를 프톨레미 5세에게 주어 결혼시킵니다. 18절은 주전 197-190년 사이의 파국적 원정을 요약합니다. 동맹국 마케도니아 왕 빌립이 로마에 결정적으로 패하자 안티오코스는 소아시아로 원정을 떠나 그리스의 많은 섬들을 점령하고, 주전 196년에는 발칸 반도 동쪽의 드라게(Thrace)에 도달합니다. 주전 192년 그리스로 원정갔다가 191년 테르모필래(Thermopylae)에서 로마에 패하고, 190년 돌아오는 길에 스미르나 근처의 마그네시아(Magnesia)에서 다시 참패를 당합니다. 안티오코스의 오만에 종지부를 찍고 그의 오만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한 “한 장군”은 로마의 집정관 스키피오를 가리킵니다. 소아시아 원정은 안티오코스에게 치명적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로마의 봉신이 되어 돌아옵니다. 주전 189년의 아파미아(Apamea)조약에 따라 안티오코스는 소아시아의 지배권과 전진기지였던 엘레판틴과 그의 함대를 로마에 넘겨주고 전쟁 배상금도 지불해야 했습니다. 과도한 배상금을 마련할 길이 막막해진 안티오코스는 자신이 통치하는 지역의 성전(“자기 땅 산성들”)을 약탈합니다. 그는 주전 187년 엘리마이스(Elymais)에서 벨 신전을 약탈하려다가 수치스런 죽음에 넘겨집니다.


다니엘은 깊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과정에서 영적 전투의 실체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기 위해 천사를 보내시며, 그가 겪는 고난과 갈등을 이해하고 위로하십니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다니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확신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와 인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리의 영적 성장에 필수적임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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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10-02)


하나님의 사자 응답의 메시지

다니엘 10장 10-21절


 

기도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즉시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때로 응답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연은 우리의 영적 성장과 훈련을 위한 과정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결국, 기도는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게 하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 환상적 존재가 큰 충격과 놀람에 빠진 다니엘이 기운을 회복해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세 단계에 걸쳐 세심하게 도와줍니다. 먼저 그는 손의 접촉과 격려의 말로 얼굴을 땅에 대고 쓰러진 다니엘을 일으켜 세워주고, 뒤이어 그의 입술에 손을 대어 말할 수 있게 입을 열어주고, 마지막으로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다니엘에게 손을 대며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다니엘의 간구와 관련된 소개(10-14)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 따라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물리적 세계를 넘어서 영적 세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고, 필요한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는 그분의 계획과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이해는 기도의 인내와 믿음을 더욱 강화시킵니다.

 

10○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었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11내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하더라 그가 내게 이 말을 한 후에 내가 떨며 일어서니 12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13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 14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10-14)

 

본문에서 다니엘은 기도로 하나님께 간구하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그에게 응답합니다. 사자는 다니엘의 기도가 들려졌음을 전하며, 영적 전투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이는 기도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응답의 타이밍을 강조합니다.

 

(1) 다니엘을 일으켜 세우는 천사(10-11a)

 

큰 충격을 받고 탈진 상태에 빠진 다니엘이 메시지를 받을 수 있도록 천상적 존재가 그를 일으켜 세우고 힘을 북돋아 주는 과정이 자세하게 기술됩니다. 땅바닥에 엎드러진 다니엘이 두 단계를 거쳐서 일어섭니다. 먼저 천상적 존재의 손이 그를 만지고 흔들자 다니엘이 무릎과 손바닥을 땅에 대고 엎드린 자세로 반쯤 일어나고, 뒤이어 “(발로) 일어서라”는 명령에 따라 떨며 일어납니다. 9:23에서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말한 것처럼 여기에서도 천상적 존재는 다니엘을 “큰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 부릅니다.

 

(2) 첫날에 응답받은 다니엘의 말(12)

 

천상적 존재는 떨며 일어선 다니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하며 힘을 내도록 격려하고(참조, 창 15:1; 26:24; 삿 6:23), 자신이 오게 된 과정과 목적을 알려줍니다. 다니엘은 세 이레를 다 채울 때까지 금식하고 애도하지만, 세 이레의 끝에 답변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춘 첫날에 다니엘의 말이 하나님에게 들렸습니다(참조. 9:23). 다니엘이 결심을 실행에 옮긴 바로 그날 하나님께서는 천상적 존재를 보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금식과 애도 안에 담긴 다니엘의 진정성과 열심을 인정해주셨습니다.

 

(3) 천사의 도착이 지체된 이유(13)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는 다니엘이 하나님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임을 보여주는 구체적 예입니다. “네가 깨달으려 하여”는 다니엘이 특별한 목적을 갖고 세 이레 동안 음식을 절제하고 애도하기로 결심했음을 시사해줍니다. 또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는 다니엘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간구했음을 전제합니다.

 

(5) 천사가 온 목적(14)

 

14절에 의하면 다니엘이 깨닫기 원한 것은 마지막 날의 일입니다. 곧 다니엘은 마지막 때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기 위한 목적으로 금식하며 애도했습니다. 이미 첫째 날에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됐음에도 이십일 일이 돼서야 전달의 책임을 맡은 천사가 다니엘에게 도착합니다(참조 9:20-23). 천상적 존재는 도착이 지연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첫날부터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기를 파견하셨지만 방해하는 세력이 있어 늦게 도착했습니다.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길을 막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의 도움을 받아 오게 됐습니다. 바사 왕국의 군주는 하늘에서 바사 왕국을 보호하고 대표하는 천사장을, 미가엘은 이스라엘의 천상적 보호자를 가리킵니다(12:1). 다니엘서의 신학에 따르면 지상의 사건은 천상의 사건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땅에서 바사와 이스라엘의 대립은 천상에서 바사 왕국의 군주와 이스라엘의 수호천사 미가엘의 대립으로 나타납니다. 천상적 존재는 “마지막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다니엘이 깨닫게 하려고 왔습니다. 동사 ‘깨달다’에 의해 14절은 12절과 1절에 연결됩니다. 다니엘이 “깨달으려 하여”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자(12), 그를 “깨닫게 하러” 천상적 존재가 와서 보여주었기에 (14) 다니엘은 마지막 때에 관한 환상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1).

 

다니엘과 천사의 대화(15-21)

영적 전투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을 통해 그분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가 필요할 때 도와주시는 위로의 존재입니다. 신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해야 하며,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이러한 이해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 큰 힘과 방향성을 제공합니다.

 

15그가 이런 말로 내게 이를 때에 내가 곧 얼굴을 땅에 향하고 말문이 막혔더니 16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내가 곧 입을 열어 내 앞에 서 있는 자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주여 이 환상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 17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내 주의 이 종이 어찌 능히 내 주와 더불어 말씀할 수 있으리이까 하니 18○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를 강건하게 하여 19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20그가 이르되 내가 어찌하여 네게 왔는지 네가 아느냐 이제 내가 돌아가서 바사 군주와 싸우려니와 내가 나간 후에는 헬라의 군주가 이를 것이라 21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항할 자는 너희의 군주 미가엘뿐이니라(15-21)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중요한 메시지를 듣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사자는 다니엘에게 그의 기도가 들려졌음을 전하며, 페르시아 왕국과의 영적 전투에 대해 설명합니다. 또한, 마지막 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언급하면서, 다니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자는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명을 부여하며, 그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안내합니다. 이 구절은 기도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1) 말문이 막힌 다니엘(15)

 

천사의 말에 다니엘은 충격과 탈진에 빠집니다. 8-9절에서는 갑작스럽게 출현한 천상적 존재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고 두려워 기력을 상실한 채 얼굴을 땅에 대고 쓰려지고, 여기서는 그의 말을 듣고 얼굴을 땅으로 숙인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합니다. 충격으로 말을 잃어버린 채 망연자실 서 있는 다니엘을 “인자와 같은 이”가 도와줍니다.

 

(2) 입술을 만져 입을 열어주는 천사(16a)

 

입술을 만져 말할 수 있게 입을 열어주자 다니엘은 환상 때문에 고통이 엄습해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대화는커녕 숨조차 쉴 수 없다고 호소합니다. “인자와 같은 이”는 문자적으로 ‘사람의 아들들의 형상처럼 (생긴 이)’입니다. 7:13의 “인자 같은 이”와 구별되는 천상적 존재입니다.

 

(3) 무력감을 호소하는 다니엘(16b-17)

 

“근심”은 ‘해산의 고통’을 가리키는 단어로 다니엘이 자신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절망적인 고통에 떨어졌음을 시사해줍니다. ‘~의 입/입술에 대다’의 모티브는 이사야와 예레미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의미는 서로 다릅니다. 이사야 6:6-7에서는 죄사함의 제의적 정결의식과 관련해서, 예레미야 1:9에서는 예레미야의 선포와 하나님의 말씀의 일치를 보여주는 상징적 행위로 사용됩니다.

 

(4) 다니엘에게 힘을 주는 천사(18-19a)

 

다니엘의 경우에는 충격으로 인해 벙어리가 된 다니엘이 다시 말을 할 수 있도록 입술을 열어줍니다. 숨도 쉴 수 없다고 호소하는 다니엘에게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행동과 언어를 통해 용기를 내도록 도와줍니다. 입술을 만져 말문을 열어주었던 것처럼 다시 다니엘을 만져 힘을 북돋아 주고,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도록 격려합니다. 천상적 존재의 격려에 원기를 회복한 다니엘은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됐다고 응답합니다.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의 문자적으로는 ‘사람 모양처럼 (생긴 이)’입니다. 천상적 존재가 다니엘을 세 번 만지는데, 그때마다 그를 가리키는 표현이 다릅니다. 10절에서는 “손”이 다니엘을 16절에서는 “인자와 같은 이”(‘사람의 아들들의 모습처럼 [생긴 이]’)가 그의 입술을 18절에서는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사람 모양처럼 [생긴 이]’)가 그를 만집니다. 세 표현 모두 5절의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5) 천사에게 말하도록 요청하는 다니엘(19b)

 

11-12절과 19절에서 천상적 존재가 동일하게 다니엘을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 부르며 “두려워하지 말라” 위로하고 있는데, 이것도 같은 인물임을 시사합니다. 환상 중에 본 천상적 존재이기에 모호하게 보여주기 위해, 또는 천상적 존재와의 만남이 촉발한 당혹감과 두려움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표현을 달리했을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보기에 천상적 존재는 ‘사람처럼’ 생겼습니다.

 

(6) 앞날의 요약적 소개(20-21)

 

이미 14절에서 자신이 온 목적을 다니엘에게 말하였기에 20절의 질문 “내가 어찌하여 네게 왔는지 네가 아느냐”는 수사적 질문일 것입니다. “이제 내가 돌아가서 바사 군주와 싸우려니와”는 13절에 연결됩니다. 천상적 존재는 바사 왕국의 군주에 의해 이십일일 동안 길이 막혔다가 미가엘의 도움으로 다니엘에게 올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에게 마지막 때의 일을 다 알려주면 다시 돌아가서 바사 군주와 싸워야 합니다.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환상을 경험한 바사 왕 고레스 제3년의 시점에서 볼 때 바사는 땅을 지배하는 살아 있는 세력입니다. “내가 나간 후”는 바사 군주와 싸우고 전쟁터를 떠난 후를 가리킬 것입니다. 바사의 멸망이 하나님 백성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바사 군주의 뒤를 이어 헬라의 군주가 오는데, 바사 군주와 싸울 때처럼 이스라엘 군주 미가엘만이 그를 도와 헬라의 군주를 대적합니다. 이스라엘의 고난이 바벨론을 넘어 바사와 헬라 시대에도 계속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수호천사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은 14절의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의 또 다른 표현으로, 구체적으로는 11:2-12:4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지상에서 일어날 일을 모두 하늘의 책에 기록해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정한 것이기에 어떤 경우에도 변경되거나 탈락하지 않고 반드시 그대로 이뤄집니다. “기록된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고, 반드시 성취될 것이기에 “진리의 글”입니다. 민족들의 운명과 역사의 진행을 기록해놓은 진리의 글은 7:10의 하나님께서 짐승들을 심판하실 때 펴놓은 책들하고는 기능상 구별됩니다.


결론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분임을 강조하며 시작됩니다. 이 구절은 기도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우리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영적 전쟁의 실체를 인식하고 이를 기도로 싸워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셔서 어려움 속에서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마지막으로, 믿음과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중요하며,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지므로 우리는 그 안에서 평안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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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10-01)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믿음

다니엘 10장 1-9절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힘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며, 그분의 뜻을 기다리는 인내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신실한 분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 제삼년 첫째 달에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마지막 환상을 봅니다. 다른 환상들과 달리 환상 경험의 외적 환경과 천상적 존재를 만난 다니엘의 반응에 많은 절을 할애합니다. 크게 결심하고 세 이레 동안 금식하는 다니엘에게 한 천상적 존재가 나타나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을 알려줍니다. 다니엘이 환상을 경험할 때 여러 사람이 있었지만, 다니엘만 환상 안으로 들어가 천상적 존재의 음성을 듣습니다.

 

환상 보고의 도입부(1)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을 듣고 진리를 찾기 위해 시간을 내야 합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도전과 갈등은 우리의 신앙과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기 위해서는 기도와 성경 묵상이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훈련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는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바사 왕 고레스 제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으니라(1)

 

도입부는 10-12장에 기술된 계시의 진정성과 확실성을 강조합니다. “큰 전쟁”에 관한 말씀은 다니엘이 분명하게 이해하고 기록한 참된 계시입니다. 어떤 연유에서 다니엘을 “벨드사살이라 이름하는 다니엘”로 소개하는지는 불분명합니다. 환관장이 지어준 이름 벨드사살은 이곳을 제외하면 언제나 느부갓네살과 관련해서만 사용됩니다(2:26; 4:8,9,18,19; 5:12). 1:21에 의하면 다니엘은 고레스 원년까지 활동하는데, 여기서는 다니엘이 바사 왕 고레스 제삼년에도 환상을 봅니다. 양자 사이의 긴장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제삼년의 중요성과 의미 때문에 사용한 것 같습니다. 다니엘서의 구조에 있어 제삼년은 역사의 전환점을 시사해주는 듯합니다. 다니엘서는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지 삼 년이 되는 해” (1:1)로 시작하고, 히브리어 다니엘서 본문을 다시 시작하는 8:1에서도 다니엘은 “벨사살 왕 제삼년”에 환상을 보고, 다니엘서의 마지막 환상은 “바사 왕 고레스 제삼년”에 주어집니다. 세 번 “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다바르’는 원래 의미에 따라 ‘말씀’으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환상을 통해 말씀이 계시 됐는데, 그 내용은 큰 전쟁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앞으로 극심한 환난의 시대가 전개될 것을 암시해줍니다.

 

환상 경험의 준비(2-4)

 

영적인 준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이해하시고, 우리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십니다. 우리는 마음 속의 염려와 슬픔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고백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준비가 되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신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합니다.

 

2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3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4첫째 달 이십사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 가에 있었는데(2-4)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3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한 후, 한 특별한 환상을 보게 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슬픔과 염려로 인해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24일째에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와의 만남이 예고됩니다.

 

(1) 세 이레의 금욕(2-3)

 

다니엘의 금식이 비교적 자세히 서술됩니다. 그는 세 이레 동안 슬퍼하며 좋은 떡을 먹지 않고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고 기쁨을 바르지도 않습니다. 세 이레의 금식은 예외적으로 긴 기간입니다(참조, 에 4:16). 현재 문맥에서는 13절의 바사 왕국의 군주에 의해 길이 막힌 이십일 일에 일치합니다.

“좋은 떡”은 아마도 출애굽 사건에 나오는 “고난의 떡”에 대비되는 표현 같습니다. 신명기 16:3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말고 이레 동안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바벨론 시대 이후 첫째 달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는 달이었습니다. 아마도 다니엘은 조상들이 애굽에서 겪은 고난에 참여하기 위해 첫째 달에 좋은 떡을 먹지 않고 애도했던 것 같습니다. 9장에서는 금식하고 애도하면서 멸망에 떨어진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고백했는데, 여기서는 그 배경이 달리 언급되지 않습니다. 12절의 “네가 깨달으려 하여”와 11장의 기도 응답으로 주어진 메시지에 따르면 다니엘은 무엇인가를 깨닫기 위해 금식과 애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2) 환상을 경험한 때와 장소(4)

 

다니엘은 “첫째 달 이십사일”에 힛데겔, 곧 티그리스 강가에서 환상을 봅니다. 날짜의 정확한 기록은 계시의 확실성을 보여주지만, 계시가 주어진 시점을 거듭 연월일(年月日)로 기록하는 에스겔의 경우와 달리 다니엘서에서는 일반적으로 해만 나오는데, 여기에서만 달과 날까지 제시됩니다. 세 이레의 금식이 끝나고 환상을 받는 “첫째 달 이십사일”을 특별히 알려주어야 할 어떤 필요가 있었음을 시사해줍니다. 이스라엘의 축제 전통에 따르면 첫째 달인 니산월(3/4월)십사 일 저녁에 유월절을 지키고 십오 일부터 이레동안 무교병을 먹는 무교절 축제를 즐깁니다(참조. 레23:5-6; 신 16:3). 이십사 일까지 세 이레를 금식했기에 다니엘이 유월절과 무교절의 기간에도 금식했음을, 곧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절기 규정을 무시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자유를 빼앗기고 다시 이방의 종이 되었기에 다니엘에게 유월절은 더 이상 축제의 날이 될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이방 땅에서 이방 민족의 지배를 받고 살기에 해방을 기념하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즐길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애도하고 금식하며 왕정 시대처럼 유월절과 무교점을 해방의 절기로 지킬 수 있게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천사의 모습에 관한 묘사(5-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크고 위대한 존재인지를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존재하며, 우리는 이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기 위해서는 기도와 묵상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의 임재를 느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의 신앙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듭니다.

 

5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6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5-6)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환상 중에 한 사람을 보게 되는데, 그 사람은 옷이 세마포로 되어 있고, 금으로 된 띠를 두르고 있습니다. 그의 얼굴은 번개처럼 빛나고, 눈은 타오르는 불 같으며, 목소리는 많은 물소리와 같습니다. 이 모습은 매우 경외감을 주며, 다니엘은 그에게 깊은 영향을 받습니다.

 

(1) 입은 옷의 묘사(5)

 

다니엘은 환상 가운데 세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우바스 순금 띠를 두른 한 사람을 봅니다. 세마포 옷은 원래 직무 수행 중인 제사장이 입는 옷으로 정결함과 거룩함을 상징하지만(참조, 레 6:10; 16:4; 겔 44:17), 여기서는 다니엘이 보고 있는 사람이 초자연적 존재임을 시사해줍니다(참조, 겔 9:2,3,11; 10:2, 6-7; 막 16:5; 계 15:6). 우바스 순금은 우바스에서 수입한 금을 가리킵니다(참조, 렘 10:9). 일부 고대 역본은 솔로몬이 금을 수입했던 오빌(왕상 9:28; 10:11)로 번역했지만, 우바스의 위치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2) 얼굴과 신체의 묘사(6)

 

얼굴과 신체를 묘사하는 데 사용한 비유적 표현은 에스겔이 그 강가에서 본 네 생물의 묘사에서도 유사하게 등장합니다. ‘황옥 같은 몸’은 ‘황옥 같이 보이는 바퀴’에서(겔 1:6), ‘번갯불 같은 얼굴과 횃불 같은 눈’은 ‘횃불 모양의 생물과 그 가운데의 번개’에서(겔 1:13), ‘빛난 놋과 같은 팔과 발’은 ‘광낸 구리 같이 빛나는 생물의 다리’에서 (겔 1:7), ‘무리의 소리와 같은 말소리’는 ‘군대의 소리 같은 생물의 날개 소리’ (겔 1:24)에서 상응하는 표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본 사람의 묘사가 에스겔이 그 강가에서 본 네 생물의 묘사에 매우 가까움을 보여줍니다. 다니엘은 힛데겔 강가에서 본 “한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그 서술된 모습이 요한계시록 1:13-16에 묘사된 인자와 유사함에 근거하여 10장의 신적 존재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해왔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인자 같은 이의 모습을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았다고 묘사합니다. 다니엘의 묘사와 일부 유사성이 있지만, 거의 모든 주석자들은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이 에스겔에 의존했다는데 의견을 같이합니다. 전에 가브리엘을 만났을(8:17-18) 때보다 더욱 충격을 받은 것처럼 다니엘이 격하게 반응하기에(10:8-9) 때로는 더 높은 지위의 천상적 존재를 추측하기도 하지만, 이는 환상 경험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은 이해다. 본문에 따르면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본 “한 사람”은 가브리엘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거나 해석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의 도움을 받습니다(10:13,21). 또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9:23) 하고 말했듯이 “한 사람”도 다니엘을 “큰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 부릅니다(10:11). 이런 유사성을 고려해 판단하면, “한 사람”은 가브리엘 또는 그와 유사한 역할을 담당하는 천상적 존재로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반응(7-9)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 주변의 이해와 지지가 부족하더라도 개인의 믿음과 경험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그분의 거룩함과 위엄을 인식하고 경외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신앙 생활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7이 환상을 나 다니엘이 홀로 보았고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은 이 환상은 보지 못하였어도 그들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느니라 8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9내가 그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의 음성을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7-9)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환상을 본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지 못하고 두려워 도망칩니다. 다니엘은 그 환상으로 인해 매우 두렵고 힘이 빠져 쓰러지게 됩니다. 그 후, 그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그 앞에 엎드리게 되며, 깊은 감정과 경외감을 느낍니다.

 

(1) 다니엘만 본 환상(7-8a)

 

다니엘은 환상을 자기만 “홀로” 보았음을 반복적으로 언급합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있었지만 환상을 본 사람은 다니엘뿐이었습니다. 환상 안에 들어온 자만 신적 사건을 경험하고, 환상 밖에 있는 자는 이상한 현상만 목도할 뿐입니다. 마지막 때의 계시는 다니엘에게만 주어졌고, 10-12장에 기술된 환상의 진정성과 확실성은 환상을 직접 경험한 다니엘에 의해서만 보장됩니다. 함께 있던 사람들은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신비스럽고도 두려움을 야기한 어떤 특별한 사건을 경험했다는 사실만 확인해줄 수 있습니다.

 

(2) 혼수상태에 빠진 다니엘(8b-9)

 

초자연적 영역에 속한 신적 존재와의 갑작스런 만남에 다니엘은 사색이 되어 탈진 상태에 빠집니다. 그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다니엘은 얼굴 땅에 대고 깊은 잠에 빠집니다. 경이로우면서도 압도적인 신적 사건(계시)에 완전히 사로잡힌 피조물이 경험하는 전율의 혼수상태입니다(참조, 창 15:12; 삼상 28:20; 겔 1:28).


기도와 금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다니엘은 고난과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응답을 기다립니다. 이 구절은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할 때 우리의 두려움이 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며,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일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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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9-02)

 


환상을 설명하는 가브리엘

다니엘 9장 20-27절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간절하게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러내는 수단입니다. 또한, 기도는 힘이 있어 우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 다니엘은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자이기에 그가 기도를 시작하자 하나님께서 가브리엘에게 명령을 내리십니다. 다른 예언자들과 달리 하나님의 응답이 가브리엘을 통해 전달됩니다. 다니엘이 기도를 통해 알기 원했던 예레미야의 칠십년이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와 한 이레의 세 시기로 나뉘는 일흔 이레로 해석됩니다. 칠십이나 칠십의 일곱 배수인 일흔 이레 모두 완전수에 해당합니다.

 

다니엘에게 오는 가브리엘(20-21)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의 기본으로, 우리의 마음과 필요를 그분께 드러내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신앙을 강화하는 핵심적인 수단입니다.

 

20○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21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20-21)

 

본문에서 다니엘은 기도하는 중에 천사가 나타나 그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천사는 다니엘에게 기도가 도달했음을 알리고, 하나님이 그를 귀하게 여기신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다니엘의 기도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응답을 강조합니다.

 

(1) 가브리엘의 등장 배경 (20-21a)

 

20절은 4a절과 함께 다니엘이 드린 기도(4b-19)의 바깥 틀의 역할을 합니다. 4절에 사용된 세 개의 동사 가운데 ‘기도하다’와 ‘자복하다’의 두 동사가 여기에도 나오고, 세 번째 동사 ‘이르다’는 같은 의미의 ‘말하다’로 바뀌어 나옵니다. ‘자복하다’의 목적어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는 5-14절의 요약이고, ‘간구하다’에 연결된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는 15-19절의 요약입니다. 4a절과 비교했을 때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동사의 시제입니다. 4절은 세 동사를 ‘와우 미완료’로 사용하면서 다니엘이 기도하고 간구한 사실(일어난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데, 여기서는 네 동사가 모두 현재분사로서 ‘말하고 기도하고 자복하고 간구하는 중에’(동시성)가 강조됩니다. 다니엘이 아직 기도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벌써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가브리엘에 의해 다니엘에게 계시되는 역사의 진행 과정이 그의 기도와 상관없이 결정된 하나님의 계획임을 시사합니다. 하나님의 확정된 의지에 속하기에 지체되거나 변경되지 않고 반드시 이뤄집니다.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은 “황폐한 성소”(17)가 재건되고 시온 산이 다시 하나님의 거룩한 산이 되길 바라는 다니엘의 소망이 담긴 표현입니다.

 

(2) 가브리엘의 도착(21b)

 

가브리엘의 도착 시간으로 제시된 “저녁 제사를 드릴 때”는 매일 드리는 제사(8:12,13)의 중요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전에 본 환상이 7장 또는 8장의 환상을 가리키는지는 불분명합니다.

 

가브리엘의 고지(22-27)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고 그의 뜻을 이해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진정한 회개가 필요하며,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첫걸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정해진 시간 안에 이루시므로, 우리는 그의 신실함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깊은 신앙을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22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23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24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25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26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22-27)

 

본문에서 다니엘은 간절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받습니다. 천사는 다니엘에게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합니다. 70주 동안의 기간이 정해져 있으며, 그 중에서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끊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회복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마지막에는 황폐한 것이 임하며,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질 것임을 알립니다.

 

(1) 가브리엘이 온 목적(22-23)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죄를 회개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9:1-21). 이에 하나님은 가브리엘을 보내어 다니엘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칠십 년의 해석에 앞서 가브리엘은 먼저 자신이 다니엘에게 온 목적이 그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을 곰곰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주체는 다니엘이지만(2), 깨달음은 신적 계시를 통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속하는 예언은 계시의 빛에 의해서만 참된 이해가 가능합니다. 예언 해석이 예언과 한 차원에 놓이면서 해석에도 동등한 신적 권위가 주어집니다. 다시금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응답이 주어졌음을 강조합니다. 다니엘은 특별히 하나님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기에 그가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말씀이 내렸습니다. “명령”과 “일”을 가리키는 단어 ‘다바르’는 둘 다 ‘말씀’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말씀은 24-27절의 계시를 가리킵니다.

 

(2) 예레미야의 칠십 년 해석(24-27)

 

가브리엘이 예레미야가 선포한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2)의 의미를 풀어줍니다. 한 해가 ‘주간(週間)의 해’로 계산돼 칠십 년이 일흔이레, 곧 사백구십 년으로 확장됩니다. 여섯 동사를 사용해 일흔 이레의 마지막에 성취될 일들을 간략히 기술합니다. 처음 세 동사는 부정적이고, 뒤의 세 동사는 긍정적입니다. 허물과 죄와 죄악은 동의어로, 죄악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옵니다. ‘영원한 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움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7,14,16). 이스라엘에 행하신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8:12-14과 관련해서는 성전의 회복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환상과 예언은 일차적으로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가리키지만, 폭넓게는 종말에 관한 모든 예언을 포함합니다. 환상과 예언이 그대로 실현돼 진실이었음이 확증됩니다. “지극히 거룩한 이”는 ‘가장 거룩한 곳’으로 옮겨야 합니다. 원래는 지성소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성소를 가리킵니다. 성소의 기름부음은 성소의 봉헌을 의미합니다. 안티오코스 4세에 의해 더러워진 성소가 유다 저항군의 지도자 마카비에 의해 회복돼 다시 여호와께 봉헌됩니다.

25절은 다음과 같이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는 (이것을) 알고 깨달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재건하라는 말씀이 내린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지도자가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가 흐르리라. 또 예순두 이레 동안 (예루살렘이) 다시 광장과 해자를 갖춰 재건되겠지만, 어려운 때가 되리라.’ 두 주기의 기간이 주어집니다. 첫 번째는 일곱 이레로,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말씀)이 내린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일어나기까지의 기간입니다. 사람의 말(영)일 경우에는 유배민의 귀환과 성전의 재건을 허락한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스 1:1-4)을, 하나님의 말씀일 경우에는 예레미야의 칠십 년 예언 또는 23절의 말씀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의 문맥에서는 세 번째 가능성, 곧 다리오 왕 원년에 가브리엘을 통해 다니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입니다. “기름 부음” 의식은 왕과 제사장에게 적용되기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누구인지는 불분명합니다. 아마도 스룹바벨과 함께 성전 재건을 주도한 대제사장 여호수아일 수 있습니다(슥 4:14). 일곱 이레 다음에 올 시대에는 예순두 이레의 기간이 주어집니다. 첫 번째 기간은 시작과 마지막에 초점을 맞추는데, 두 번째 기간은 전체를 뭉뚱그려 요약적으로 기술합니다. 재건된 예루살렘에 많은 주민이 정착해 살면서 광장도 마련하고 적의 침입으로부터성을 보호할 수 있게 성 주변에 해자도 세웁니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벗어나 사회적·경제적으로 활발하게 살아가지만, 평안이 보이지 않는 “곤란한” 시대입니다.

26-27절은 악이 기승을 부리고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는 마지막 한 이레에 관한 언급입니다. 예순두 이레가 지난 후에 잘려나갈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주전 170년 대제사장 메넬라오스의 술수에 빠져 살해당한 오니아스 3세를 가리킵니다(참조. 11:22; 마카비하 4:23-28).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릴 “한 왕(지도자)의 백성”은 대제사장 야손이나 메넬라오스를 지도자로 하는 유대의 헬라주의자들보다는 안티오코스 4세가 예루살렘에 주둔시켜놓은 셀류코스 왕조의 병사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에 주둔한 안티오코스의 용병들이 예루살렘과 성소를 허물어버리지는 않았지만, 상주하는 이방인들로 인해 성읍과 성소가 더러워졌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이 그곳에 주둔한 이방 병사들의 통제를 받고, 예루살렘 성소의 제단 위에는 이 이방인들이 자기 신에게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가증한 것”이 세워집니다. 여호와의 성소가 올림포스의 신 제우스에게 돌려집니다. “그의 마지막”은 안티오코스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자주 전쟁의 표상으로 사용되는(참조. 11:10,22,26,40) 홍수는 안티오코스가 전쟁의 패배로 죽게 될 것을 시사합니다. 죄악이 끝나고 하나님의 의가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마지막 때는 전쟁의 황폐함이 지배하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12:1)의 때입니다. 마지막 한 이레 동안 안티오코스가 저지를 악행이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안티오코스가 동맹(“언약”)을 맺을 “많은 사람들”은 유대의 삶과 종교를 헬라화하려는 유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안티오코스는 헬라주의적 유대인들을 정치적으로 지원하면서 이들의 도움을 받아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한 유대의 지배권을 강화합니다. 심지어는 “그 이레의 절반”이 지나서는 제사와 예물을 금지시킵니다. “그 이레의 절반”은 7:25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에 상응하는 표현입니다.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는 문자적으로는 ‘가증한 것의 날개를 타고 황폐하게 하는 자가 오리라’ 정도로 옮길 수 있습니다. ‘황폐하게 하는 자’는 셀류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이고, “가증한 것”은 여호와의 제단 위에 세운 이교의 제단입니다(참조. 마카비상 1:54). 예루살렘 성소가 더러워지는 기간은 황폐하게 하는 자가 예정된 멸망에 떨어지기까지입니다. 곧 한 이레의 남은 반 동안 제사가 중단되다가, 가증한 것을 세워 성소를 황폐하게 만든 “황폐하게 하는 자”가 멸망하고 성소가 다시 회복됩니다. 역사적으로, 주전 167년에 중단된 예루살렘 성소의 제사가 대략 3년이 지나 주전 164년에 재개됩니다.


하나님의 응답과 계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진정한 회개와 간구의 모범을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세우십니다. 70주라는 기간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완성을 상징하며,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신실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의 사역을 예고하며, 우리에게 희망과 믿음을 줍니다. 결국,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하고, 그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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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9-01)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다니엘의 기도

다니엘 9장 1-19절


 

개인과 공동체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첫걸음입니다. 이를 위해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신자들은 기도를 통해 신앙 생활의 기초를 다져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 다니엘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대신하여 여호와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는 먼저 예루살렘을 황무지로 만든 조상들의 불순종을 철저하게 고백하고, 이들의 죄를 징벌하신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합니다. 심판이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는 사건이기에 구원의 동기를 이스라엘의 신학적 전통이나 공동체의 회개에서 찾지 않고, 출애굽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긍휼에서 기대합니다.

 

도입부: 예레미야의 칠십 년 예언을 숙고하는 다니엘(1-2)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고 그 뜻을 이해하려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신앙을 정립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그분의 뜻을 구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신앙 생활의 기초가 되며,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1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1-2)

 

본문에서 다니엘은 바사 왕 고레스를 통치하던 첫 해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합니다. 그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해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 동안 지속될 것임을 깨닫습니다. 이로 인해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금식하기로 결심합니다.

 

(1) 다리오 원년(1)

 

바벨론의 왕권을 이어받은(참조. 5:31; 사 13:17; 렘 51:28) 다리오 왕 원년에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칠십년 예언(참조, 렘 25:11-12; 29:10)을 다시 생각해본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2) 예레미야의 칠십 년(2)

 

메대 사람 다리오에 의한 바벨론의 멸망으로 예레미야의 칠십 년이 성취된 것 같은데, 유다의 운명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유다의 완전한 해방과 회복은 여전히 요원했습니다. 더 나아가 8장의 “마지막 때”를 배경으로 읽자면 바벨론의 멸망을 새로운 구원 시대의 출발로 반기기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환상에 따르면 바벨론에 의해 파괴된 성소가 먼 미래에 다시 또 다른 세상 권력에 의해 유린됩니다. 바벨론의 멸망이 유다의 온전한 구원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과 환상 경험에 직면해서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바벨론의 멸망으로 이미 성취된 예언인지 그렇지 않으면 아직 그 완전한 성취를 기다려야 할 예언인지를 알고자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다니엘(3-4a)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진정한 겸손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성도들은 기도할 때 자신의 마음을 정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또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3○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3-4a)

 

본문에서 다니엘은 금식하며 기도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구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대하고 두려운 하나님”으로 부르며, 언약을 지키고 사랑하시는 분으로 찬양합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1) 참회의 외적 모습(3)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는 행위는 애도나 참회와 관련한 의식으로(참조. 스 9:3-4;느 9:1;에 4:1-4;욘 3:6), 다니엘이 단순히 칠십 년의 역사적 의미를 알기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님을 시사해줍니다. 10:2-3의 금식 기도와 비교해보면 좀 더 분명해집니다. 뒤따르는 죄의 고백과 긍휼의 간구도 그의 기도가 더 심각한 상황에서 나왔음을 보여줍니다.

 

(2) 참회의 기도(4a)

 

다니엘은 여호와로 칠십 년의 예언을 기억나게 하시고 그분의 용서와 긍휼을 구하기 위해 참회자의 모습으로 언약의 주께로 나아간 것 같습니다(참조. 사 62:1,6-7). 다니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죄를 고백하며 기도를 드립니다(5-19).

 

기도의 내용(4b-19)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용서와 자비를 베푸실 준비가 되어 계십니다. 이는 성도들에게 회개의 필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또한 기도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며, 하나님과의 소통이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회개와 기도를 통해 더욱 깊은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4b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5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7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8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마는 9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10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1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12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13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내렸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달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4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5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16주여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따라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들에게 수치를 당함이니이다 17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18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19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4b-19)

 

본문에서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스라엘의 죄와 불순종을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용서를 간구하며, 예루살렘과 성전의 회복을 요청합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죄의 고백(4b-11a)

 

먼저 다니엘의 하나님께서 이중적으로 소개됩니다.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참조. 신 6:22; 7:21; 삼하 7:23; 느 1:5; 9:32)은 특히 출애굽 가운데 계시된 하나님의 능력과 관련한 표현입니다. 애굽에서 당신 백성을 해방시키실 때 바로에게 보여주셨던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신 6:22)는 지금도 다시 가능합니다.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참조, 신 7:9,12)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에 뿌리를 둔 진술인데, 다니엘은 이를 하나님 중심적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과 인애를 지키시는 분이기에 지금이라도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면 그분에 의해 언약관계가 회복될 수도 있습니다. 인자(헤세드)는 그분 백성을 위해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가리킵니다. 유다의 멸망을 초래한 죄를 유배의 끝 무렵에 회고적으로 고백하기에 불순종의 구체적 내용보다는 불순종을 범한 사실 자체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표현이나 단어를 바꿔가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을 단조로울 정도로 거듭 자백합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법도와 규례를 떠나고(5b), 그분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갔고(11), 그분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습니다(10). ‘우리’는 그분 목소리(10,11)와 그분의 종 예언자들의 목소리(6)를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범죄하고 패역하며 행악하고 반역하였고(5), 그분께 배신을 저지르고(7), 그분께 범죄하고(8), 그분께 패역하였습니다(9). 이스라엘 전체가 죄에 사로잡혔음도 거듭 강조됩니다. ‘우리’는 자신들을 포함시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6),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7),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8), “온 이스라엘”(11)이 모두 여호와께 죄를 범했다고 고백합니다. 죄로 인해 멸망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얼굴에 가득한 수치(7,8)는 역설적으로 여호와의 의로움에 관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언약을 지키시는 여호와는 공의로우신 분이기에, 수치가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의 운명이 됩니다.

 

(2)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11b-14)

 

유다에 파국적 재앙을 초래한 죄를 고백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심판의 정당성을 인정합니다. 유다의 멸망과 유배는 죄악을 떠나 진리 깨닫기를 거절하고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을 징벌하시는 언약의 하나님께서 행하신 공의로운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이 당신 명령을 준행하지 않을 경우 저주가 임할 것을 선포하셨는데(참조. 레 26:27-45; 신 28:15-68)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12절의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은 유다를 다스렸던 통치자들을 가리킵니다. 13절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는 ‘여호와의 호의를 간청하다’를 의미하고, 여기서는 회개가 그 방법이 됩니다. 14절의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사오니”는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대처를 잘 보여줍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시다가 죄가 한계를 넘어 돌이킬 수 없다고 판단하셨을 때 징벌하십니다(참조. 출 32:34; 사 18:4-6). 그분은 오래 참으시지만, 어느 하나 간과하지는 않으십니다.

 

(3) 긍휼의 간구(15-19)

 

회고적 고백에서 여호와의 현재적 개입으로 옮겨가면서 표현 방식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죄를 고백할 때는 7절에서 한 번 호격이 사용되는데, 도움을 호소하는 단락에서는 매 절이 호격으로 시작하면서 기도자의 간절함과 절박함이 그대로 표출됩니다. 또 하나님께 간구할 때 이스라엘은 언제나 “주의 백성”으로(15,16,19), 예루살렘은 “주의 성”(16,19) 또는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18)으로, 예루살렘 성소는 “주의 거룩한 산” (16절) 또는 “주의 황폐한 성소”(17)로 불립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여호와와의 사적이고도 특별한 관계가 강조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백성임을, 예루살렘이 그분의 도성임을, 성소가 그분의 성소임을 거듭 언급하면서 소유주 되시는 여호와의 긍정적이고도 즉각적인 개입을 호소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18,19)은 소유 관계를 보여주는 표현으로, 예루살렘 성과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 속한 그분의 성과 백성임을 보여줍니다. 개입의 동기는 철저하게 여호와에게서 찾습니다.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방 민족들에게 수치를 당하기에 여호와의 진노가 떠나고 그분의 “얼굴 빛”이 황폐한 성소에 비추기 전에는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얼굴 빛”은 분노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구원과 호의를 베풀기 위해 이스라엘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여호와의 따뜻한 모습을 함축합니다. 죄로 인한 징벌로 멸망했기에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자격이 없지만, 그분의 크신 긍휼에 의존해서 용서를 간구합니다. 구원을 부탁할 만한 공의로운 업적으로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지만, 그분께서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베풀어주셨던 그분의 공의로운 행위들에 근거하여 도움을 간구합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구원은 오직 “주를 위하여”(17), “주 자신을 위하여”(19) 그분께서 개입하실 때만 가능합니다(참조. 사 48:11; 렘 14:7). 이런 배경에서 볼 때 다니엘의 간구가 출애굽 사건을 언급하면서(15)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출애굽이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신(출 2:23-25) 하나님의 일방적 구원 행위라면, 출애굽의 하나님께서 다시 다니엘의 간구를 들으시고 “주 자신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절망적 운명에 개입하시는 것도 충분히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회개와 간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죄와 민족의 죄를 인정하며 하나님께 진정한 회개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그분의 자비를 구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준비가 되어 계십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회개와 간구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결국,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이끌어내는 첫걸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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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8-02)


다니엘과 가브리엘의 만남

다니엘 8장 15-27절


 

하나님께서는 모든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그분의 뜻은 각 사건 속에 분명히 드러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나 혼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힘과 위로를 줍니다. 이러한 신뢰 속에서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 환상의 묘사에 상응해서 그 해석도 작은 뿔에 집중됩니다. 여러 시대 후에 올 작은 뿔의 등장이 다니엘이 본 환상의 핵심이기에 그때를 위하여 환상은 봉인돼야 합니다. 주전 2세기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175-164년)의 등장과 그의 일시적 성공, 그에 의한 경건한 유대인들의 박해와 그의 멸망은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땅의 시간표에 따른 것입니다.

 

해석자 가브리엘의 출현(15-18)

우리는 삶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영적 이해와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나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계획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경외심은 우리에게 신앙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항상 역사하시며, 그분의 섭리를 신뢰해야 합니다.

 

15○나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보고 그 뜻을 알고자 할 때에 사람 모양 같은 것이 내 앞에 섰고 16내가 들은즉 을래 강 두 언덕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 외쳐 이르되 가브리엘아 이 환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하더니 17그가 내가 선 곳으로 나왔는데 그가 나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 18그가 내게 말할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어 깊이 잠들매 그가 나를 어루만져서 일으켜 세우며(15-18)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환상을 이해하기 위해 천사 가브리엘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나타나 환상의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하며,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장면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천사의 역할이 강조됩니다.

 

(1) 사람 모양 같은 것(15)

 

거룩한 이들의 대화를 듣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다니엘이 자기 앞에 “사람 모양 같은 것”이 있음을 보고, 올래 강 두 언덕 사이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사람 모양 같은 것”은 문자적으로는 ‘용사의 모습처럼 (보이는 이)’입니다. 젊은 용사처럼 보이는 이가 13절에 나오는 두 거룩한 이들 가운데 하나인지는 불분명합니다.

 

(2) 가브리엘의 등장(16)

 

사람의 목소리에 따르면 사람 모양 같은 것의 이름은 ‘가브리엘’입니다. 신구약성경에 가브리엘은 해석자 또는 계시의 전달자로 등장합니다(참조. 8:16; 9:21; 눅 1:19,26). 가브리엘에게 “이 환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고 명령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모호합니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장소는 가브리엘과 같은 천상적 존재임을 시사합니다(참조. 12:6-7).

 

(3) 다니엘의 반응(17)

 

사람의 목소리는 다니엘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목소리임을 보여줍니다. 10:5에서 다니엘은 천상적 존재를 “한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다니엘의 반응이 매우 극적입니다. 자기에게 다가오는 가브리엘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다니엘이 신적 경험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압도당합니다.

 

(4) 다니엘을 일으켜 세우는 가브리엘(18)

 

혼수상태에 빠진 다니엘이 메시지를 받을 수 있도록 가브리엘이 손을 대어 일으켜 세웁니다(참조. 10:10-11,15-19). 가브리엘은 다니엘을 ‘인자’라고 부르며, 그가 본 환상이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한 때 끝”은 성도들이 박해를 당하고 성전이 더러워지는 마지막 단계의 기간을 가리킵니다(참조. 12:4).

 

환상의 해석과 봉인(19-2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대해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변화와 권력의 흐름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하며,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인식해야 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게 만들어 줍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인도를 통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에게 힘과 확신을 줍니다.

 

19이르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임이라 20네가 본 바 두 뿔 가진 숫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21털이 많은 숫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그의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22이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네 뿔이 났은즉 그 나라 가운데에서 네 나라가 일어나되 그의 권세만 못하리라 23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반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 그 얼굴은 뻔뻔하며 속임수에 능하며 24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그가 장차 놀랍게 파괴 행위를 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25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으로 속임수를 행하고 마음에 스스로 큰 체하며 또 평화로운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 또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깨지리라 26이미 말한 바 주야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니 너는 그 환상을 간직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19-26)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환상을 통해 말세의 사건과 그에 대한 해석을 보여줍니다. 이 환상에서는 메디아와 페르시아, 그리고 그리스 제국에 대한 예언이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한 큰 뿔을 가진 양과 염소의 싸움이 상징적으로 설명됩니다. 마지막으로, 환상의 해석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그리스의 통치에 대한 경고가 주어집니다.

 

(1) 마지막 때의 환상(19)

 

19절은 내용상 17b절의 반복입니다. 다시금 환상이 진노의 마지막 때에 속한 것임이 강조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통치자를 진노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이 이방 통치자들에 의해 박해를 당하는 시대는 여호와의 진노 아래 있는 때가 됩니다. 포로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특히 경건한 유대인들이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하는 안티오코스의 통치는 여호와의 구원을 기다려야 하는 그분의 진노 기간입니다. 해석은 20절부터 시작됩니다. 숫양과 숫염소의 행동에 관해서는 생략하고 이들의 정체만 명시적으로 해석해줍니다.

 

(2) 메대와 바사 왕들(20)

 

두 뿔을 가진 숫양(3-4)은 메대와 바사의 왕들이고, 숫염소(5-7)는 헬라 왕으로 “그의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헬라의 첫 번째 왕입니다. 큰 뿔이 꺾이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네 뿔은 네 나라로, 큰 뿔의 권세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분열된 네 나라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고, 단지 그 세력이 이전보다 많이 약화될 것만 말합니다. 알렉산더 사후에 그의 제국은 후계자들에 의해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드라게와 소아시아, 바벨론과 그 동쪽 지역을 포함하는 시리아(셀류코스 왕조), 그리고 이집트(프톨레미 왕조) 등 네나라로 나뉩니다.

 

(3) 헬라의 첫 번째 왕(21)

 

메대-바사에서 알렉산더 대왕의 그리스를 거쳐 네 후계자의 나라로 이어지는 이 100년 이상의 기간이 뼈대만 간략하게 언급됩니다. 다니엘의 환상(9-12)에 일치하여 해석도 작은 뿔에 집중됩니다. 작은 뿔은 분명 셀류코스 왕조에서 나온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주전 175-164년)를 가리킬 것입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세계사적으로는 대단한 인물이 아니지만, 예루살렘의 입장에서는 잊을 수 없는 왕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경건한 자들의 눈에 그의 통치는 재앙이었습니다.

 

(4) 네 나라(22)

 

“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반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등장합니다.

 

(5) 마지막 때의 한 왕(23-25)

 

23절의 악인들로 가득한 “이 네 나라 마지막 때”, 17절의 “정한 때 끝”, 19절의 ‘진노의 마지막 때’와 “정한 때 끝”, 26절의 “여러 날 후”는 동의적 표현으로 모두 안티오코스 시대를 가리킵니다. 그의 시대는 반역자들이 가득한 시대입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을 박해하는 자들로 세상이 가득 찼을 때가 악이 일시적 승리를 누리다가 멸망하는 마지막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죄악이 가득 찰 때까지 내버려 두시다가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마지막 때에 일어날 왕은 ‘그 얼굴이 뻔뻔하며 속임수에 능한’ 자입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합니다. 주저 없이 폭력을 사용하고 능수능란하게 계략을 꾸밉니다. 그런데 그의 강성함은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땅의 역사를 홀로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결정에서 기인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그는 제한된 권력을 휘두르며 승리를 구가합니다. 끔찍할 만큼 파괴를 자행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망시킵니다. “강한 자들”은 뿌리까지 뽑힌 세 뿔(7:8,20,24)을 가리키는 것 같고, “거룩한 백성”(문자적으로 ‘거룩한 이들의 백성’)은 유다 백성뿐만 아니라 이들을 보호하는 천상적 존재까지 모두 포함하는 표현일 것입니다. 왕위 계승의 우선권을 갖고 있던 조카들을 제거하고 보좌에 오른 안티오코스는 헬레니즘을 강요하면서 많은 유대 사람을 배교의 길로 내몹니다. “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으로 속임수를 행하고”는 11:21-35에서, “마음에 스스로 큰 체하며”는 11:36-39에서 구체적으로 다시 언급됩니다. “평화로운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는 안티오코스가 파견한 징세관이 예루살렘 주민을 좋은 말로 진정시킨 후 기습공격을 하여 성을 점령하고 많은 사람들을 죽인 사건(참조. 마카비상 1:29-30)을 역사적 배경으로 합니다. 속임수로 성공한 안티오코스는 교만하여 여호와마저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자기 자리를 높이려던 바벨론 왕이 스올의 맨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처럼(사 14:12-15), 안티오코스도 만왕의 왕을 대적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그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깨지리라”는 안티오코스가 만왕의 왕에 의해 징벌을 받아 죽게 될 것을 시사합니다. “주야에 대한 환상”은 특히 매일 드리는 제사의 중단에 관한 계시를 가리킵니다. 11-14절에 의하면, 작은 뿔의 악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소가 더러워져서 이천삼백 주야 동안 매일 드리는 제사가 중단되고, 그 후에야 성소가 다시 정결하게 됩니다.

 

(6) 봉인된 환상(26)

 

마지막 때에 일정 기간 동안 작은 뿔이 승리하고 성도가 박해를 당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그분의 계획에 속하는 것으로 어떤 경우에도 바뀌거나 취소될 수 없습니다. 이 환상은 “여러 날 후의 일”이기에 안티오코스 4세가 통치할 때까지 봉인되어야 합니다(참조. 12:4,9). 동시대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선포되는 예언과 달리 다니엘의 환상은 후대의 사람을 위한 것이기에 문자로 기록되어 은밀하게 보관됩니다. “여러 날”은 문자적으로는 ‘많은 날들’로, 먼 미래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참조. 겔 12:27). 여기서는 “정한 때 끝” 또는 “마지막 때”와 내용상 동일합니다.

 

다니엘의 반응(27)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에서는 때때로 고통과 어려움이 따르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이러한 고통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는 우리의 영적 성장에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이 관계를 통해 진정한 이해와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27이에 나 다니엘이 지쳐서 여러 날 앓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 내가 그 환상으로 말미암아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27)

 

7장의 경우처럼 환상을 경험한 다니엘의 반응으로 끝을 맺습니다. 환상과 그 해석이 다니엘을 “여러 날”(문자적으로 ‘날들’) 동안 병들어 누워 있게 만듭니다. 성소가 더러워지고 제사가 중단되기에 네 짐승의 환상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는 다니엘이 벨사살의 신하로 활동 중 임을 전제합니다. “놀랐고”의 동사 ‘샤맘’은 원래 ‘황폐하게 하다’를 의미합니다. 건물이 무너져 폐허가 되듯이 다니엘이 환상으로 인해 거의 혼절합니다. 이백년 이후에나 있을 사건을 보았기에 해석을 다 듣고도 다니엘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말한 바 주야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다니엘은 마지막 때에 박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환상과 그 해석의 기록을 봉인해서 잘 간수해두어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에서는 때때로 고통과 어려움이 따르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이러한 고통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는 우리의 영적 성장에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이 관계를 통해 진정한 이해와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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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8-01)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의 우리의 역할

다니엘 8장 1-14절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며, 이는 성도들에게 신뢰와 안정을 줍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동안 인내와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러한 기다림은 영적 성장의 중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악의 세력이 존재하지만,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승리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며 영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따라서 항상 깨어 있는 자세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 8장의 환상이 내다보는 전체 기간은 주전 6세기 중반에서 주전 2세기 초중반 사이의 대략 사백 년에 걸친 긴 기간이지만, 관심은 그 마지막 시기에 집중됩니다. 역사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숫양의 메대-바사(3-4)와 숫염소의 그리스(5-7)는 배경으로 언급되고 네 뿔(8) 가운데 하나에서 나오는 작은 뿔(9-12)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환상 다음에 나오는 천사들의 대화(13-14)도 마지막에 등장하는 작은 뿔의 파괴적 행태만 주제로 삼습니다.

 

도입부: 환상을 경험한 때와 장소(1-2)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통해도 자신의 뜻과 계획을 전달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소통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항상 활동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신실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적으로 준비하고 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1나 다니엘에게 처음에 나타난 환상 후 벨사살 왕 제삼년에 다시 한 환상이 나타나니라 2내가 환상을 보았는데 내가 그것을 볼 때에 내 몸은 엘람 지방 수산 성에 있었고 내가 환상을 보기는 을래 강변에서이니라(1-2)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바벨론 왕국의 제3년, 즉 벨사살 왕의 통치 중에 환상을 보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수산 성에서 환상을 경험하며, 엘람 지방의 강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목격합니다. 이 장면은 다니엘의 예언적 사명이 시작되는 배경을 제공합니다.

 

(1) 환상을 경험한 시점(1)

 

다니엘이 벨사살 왕 제 삼년에 다시 환상을 봅니다. “처음에 나타난 환상”은 벨사살 왕 원년에 본 7장의 환상을 가리킵니다. 2년이 지난 후에 본 환상에서는 처음 두 나라는 탈락하고 그 뒤를 잇는 바사와 그리스만 등장합니다.

 

(2) 환상을 경험한 장소(2)

 

다니엘은 엘람 지방 수산 성의 을래 강가에서 환상을 봅니다. 에스겔처럼(참조. 겔 8:1-3;11:24:40:2) 환상 중에 바벨론에서 엘람의 수산으로 옮겨진 듯합니다. 환상의 무대 “엘람 지방 수산”은 환상의 내용이 바사 제국과 관련됐음을 시사합니다. 을래는 그리스·로마 자료에 올레우스(Eulaeus)로 알려진 수사 근처를 흐르는 강 또는 인공 수로들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수산은 엘람 왕국의 수도로, 구약성경에는 바사의 도성으로 나옵니다.

 

두 뿔 가진 숫양(3-4)

모든 권력과 세력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 세력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이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든 일을 자신의 뜻대로 완성하실 것입니다.

 

3내가 눈을 들어 본즉 강 가에 두 뿔 가진 숫양이 섰는데 그 두 뿔이 다 길었으며 그 중 한 뿔은 다른 뿔보다 길었고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더라 4내가 본즉 그 숫양이 서쪽과 북쪽과 남쪽을 향하여 받으나 그것을 당할 짐승이 하나도 없고 그 손에서 구할 자가 없으므로 그것이 원하는 대로 행하고 강하여졌더라(3-4)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환상 중에 두 숫양이 서 있는 것을 보고, 하나는 다른 하나보다 더 크고 강력하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는 숫양이 서쪽, 북쪽, 남쪽으로 나아가며, 그 앞에 어떤 것도 대적할 수 없음을 목격합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역사 속에서 강력한 제국의 부상을 나타냅니다.

 

(1) 더 긴 나중에 난 뿔(3)

 

다니엘은 두 뿔 가진 숫양이 강가에 서 있는 것을 봅니다. 숫양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의 관심은 숫양의 큰 두 뿔과 그의 눈부신 활동에 집중됩니다. 숫양은 긴 두 뿔을 갖고 있는데, 나중 나온 뿔이 더 길었습니다. 강력한 두 뿔을 가진 숫양이 서쪽과 북쪽과 남쪽을 향하여 들이받지만, 그 숫양을 당해낼 짐승이 없었습니다.

 

(2) 원하는 대로 행하는 숫양(4)

 

숫양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면서 더욱 강해졌습니다. 두 뿔 가진 숫양은 메대와 바사가 결합하여 하나의 나라를 이루었음을 전제하는데, 메대와 바사를 두 나라로 간주하는 7장의 이해와는 구별됩니다.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더라”는 메대와 바사의 역사를 반영합니다. 주전 7세기 후반부터 6세기 초반까지 그 세력을 크게 떨치던 메대는 바사 왕고레스에 의해 주전 550년에 점령당했습니다. 메대를 무력으로 통합시킨 바사는 거칠 것 없이 사방으로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바사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큰 뿔 가진 숫염소(5-8)

하나님께서는 세력의 부상과 몰락을 주관하십니다.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권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 모든 것을 이끌어갈 것입니다.

 

5○내가 생각할 때에 한 숫염소가 서쪽에서부터 와서 온 지면에 두루 다니되 땅에 닿지 아니하며 그 염소의 두 눈 사이에는 현저한 뿔이 있더라 6그것이 두 뿔 가진 숫양 곧 내가 본 바 강 가에 섰던 양에게로 나아가되 분노한 힘으로 그것에게로 달려가더니 7내가 본즉 그것이 숫양에게로 가까이 나아가서는 더욱 성내어 그 숫양을 쳐서 그 두 뿔을 꺾으나 숫양에게는 그것을 대적할 힘이 없으므로 그것이 숫양을 땅에 엎드러뜨리고 짓밟았으나 숫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자가 없었더라 8숫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5-8)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두 마리 숫양과 하나의 수컷 염소를 보는 환상을 설명합니다. 수컷 염소는 강력하게 성장해 숫양을 이기고, 큰 뿔이 부러진 후 네 개의 작은 뿔이 나타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구절은 세계 강국의 부상과 몰락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냅니다.

 

(1) 서쪽에서 오는 숫염소(5)

 

두 번째 짐승은 숫염소입니다. 숫양에 비하여 숫염소의 묘사는 훨씬 역동적이고 공격적입니다. 한 숫염소가 서쪽에서 달려오는데, 너무 빨라서 다리가 땅에 닿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는 방향 “서쪽에서부터”는 숫염소가 특정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2) 숫양을 짓밟아버리는 숫염소(6-7)

 

두 눈 사이에 “현저한 뿔”이 있는 숫염소가 무서운 기세로 숫양을 들이받아 그 두 뿔을 꺾어버리고, 땅바닥에 쓰러진 숫양을 짓밟아버립니다. 숫양은 숫염소의 공격에 대항하지 못하고 희생당합니다. 메대-바사를 상징하는 숫양을 짓밟는 숫염소는 그리스이고, “두 눈 사이의 큰 뿔”은 알렉산더(356-323년) 대왕입니다(20-21). 주전 336년 마케도니아 왕이 된 알렉산더는 334년 봄에 원정을 떠나 331년 봄에 티그리스 강 상류에 있는 가우가메라(Gaugamela)에서 다리오 3세의 대군을 괴멸시키고 바사를 멸망시켰습니다. 이백 년 이상 근동의 패자로 군림하던 바사가 새로운 군사전략으로 무장한 신흥강국에 의해 참혹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숫양이 ‘원하는 대로 행하고 강하여지다가’ 갑작스럽게 등장한 더 강한 숫염소로 인해 종말을 맞듯이, 숫염소의 현저한 뿔도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3) 큰 뿔을 대체하는 네 뿔(8)

 

힘이 더욱 커져 정점에 도달했을 때 그 큰 뿔이 예기치 않게 꺾이고, 그 자리에 네 개의 뿔이 하늘 사방으로 납니다. 바사를 정복한 알렉산더는 그때까지 누구도 가보지 못했던 지역으로 원정을 떠났습니다. 북쪽으로는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약사르테스까지, 동쪽으로는 펀잡 지방까지, 남쪽으로는 인도양까지 가는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만, 그의 통치는 단명(短命)으로 끝났습니다. 알렉산더는 주전 323년 서른셋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후계자를 지명하지 못하고 죽었기에 대제국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많은 전쟁 끝에 네 명의 후계자들(diadochoi)이 분할 통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대략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드라게(발칸반도 동부)와 소아시아, 바벨론과 그 동쪽 지역을 포함하는 시리아,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왕국으로 나뉩니다.

 

한 작은 뿔(9-12)

세상에서 하나님에 대한 반역은 계속될 것입니다. 교만은 결국 타락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경고의 메시지를 제공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반역을 결코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반드시 정의를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심판과 정의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9○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쪽과 동쪽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10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커져서 그 군대와 별들 중의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들을 짓밟고 11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없애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12그의 악으로 말미암아 백성이 매일 드리는 제사가 넘긴 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9-12)

 

본문에서는 한 작은 뿔이 등장하여 강력하게 성장하고, 하늘의 군대와 성소를 대적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 작은 뿔은 진리와 제사를 멸하고 성소를 더럽히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큰 고통을 초래합니다. 이 구절은 악의 세력이 하나님의 계획에 도전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주권이 승리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1) 땅에서 커지는 작은 뿔(9)

 

다니엘의 시선이 네 뿔 가운데 어느 한 뿔에서 나오는 “작은 뿔 하나”에 쏠립니다. 작은 뿔이 남쪽과 동쪽과 영화로운 땅을 향해 심히 커집니다. 작은 뿔은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를 가리킵니다(참조. 11:21-45). 영화로운 땅은 예루살렘 또는 유다를 가리킵니다. 정치적·평면적 차원에서 기술한 뿔의 활동이 이번에는 신학적·공간적 시각에서 조명됩니다. 신화적 언어와 표상을 사용해 그의 위세와 교만을 기술합니다(참조. 사 14:12-15).

 

(2) 하늘의 군대와 싸우는 작은 뿔(10)

 

뿔의 위세가 하늘 군대에까지 미쳐 그 군대와 별들 가운데 일부를 땅에 떨어뜨리고 짓밟습니다. ‘하늘 군대와 별들’은 동격으로, 이스라엘 편에서 싸우는 천상적 존재를 가리킵니다. 묵시문학적 사고에 따르면 땅에서 유다 백성이 뿔에 의해 박해당하는 것은 하늘에서 유다를 보호하는 천상적 존재들이 뿔에게 속한 다른 천상적 존재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일부 하늘 군대와 별들이 땅에 떨어진 것은 일부 경건한 유다 사람들이 순교하였음을 의미합니다. 뿔은 더 나아가 군대의 주재에게도 오만하게 행동합니다. “군대의 주재”는 군지도자를 지칭하는데(참조. 창 21:22; 삼상 12:9), 여기서는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킵니다.

 

(3)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는 작은 뿔(11-12)

 

뿔이 직접 군대의 주재를 공격하는 것은 아니고 예루살렘 성소를 공격함으로써 여호와께 대적합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없애고 성소를 뒤엎습니다. 안티오코스가 제사를 폐지한 것은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소의 번제단 위에 이방의 제단이 세워졌기에(마카비상 1:59) 율법에 따른 제사가 불가능해졌습니다.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번제단이 부정해져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된 것은 성전이 허물어진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원문이 불분명한 12절은 다음과 같이 옮길 수 있습니다. ‘사악함 때문에 매일 드리는 제사와 함께 군대가 (그것에게 넘겨진다.’ 일일 번제가 불가능해지고, 일부 하늘의 군대와 율법에 신실한 자들이 희생을 당합니다. 여호와의 성소가 던져지는 것처럼 뿔이 진리를 땅에 던집니다. “던지며”와 11절의 “헐었으며”는 히브리어로는 동일합니다. “진리”는 율법을 가리킵니다. 성소가 더럽혀져 기능을 상실하고 율법의 가르침이 억압을 당하지만, 뿔은 일마다 형통합니다.

 

천사들의 대화를 듣는 다니엘(13-14)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인류 구속의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러한 계획은 성도들에게 인내와 믿음을 가지고 기다릴 것을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때때로 긴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정결함을 유지해야 하며,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듭니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따를 수 있습니다.

 

13내가 들은즉 한 거룩한 이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이가 그 말하는 이에게 묻되 환상에 나타난 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14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였느니라(13-14)

 

본문에서는 두 천사가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데 필요한 기간에 대해 대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한 천사가 다른 천사에게 저녁 아침이 지나야 성소가 정결하게 될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계획과 인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 질문: “어느 때까지”(13)

 

다니엘의 환상이 시각적 경험에서 청각적 경험으로 바뀝니다. 그는 두 거룩한 이가 말하는 것을 듣슨비다. “거룩한 이”는 7:16의 “그 곁에 모셔 선 자들”처럼 천상적 존재를 가리킵니다.

 

(2) 답변: “이천삼백 주야까지”(14)

 

“다른 거룩한 이”가 뿔의 승리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를 묻자, “한 거룩한 이”가 이천삼백 주야까지 매일 드리는 제사가 없어지고 성소와 군대(“백성”)가 짓밟힘을 당한 후에야 성소가 다시 정결해져 기능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천삼백 주야는 아침과 저녁으로 드리는 번제가 중단된 기간을 가리킬 것입니다. 하루에 두 번 드리기에 이천 삼백 번의 번제는 날수로 계산하면 천백오십 일이 됩니다. 성소가 더러워진 천백오십 일 동안 제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7:25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성도들이 박해를 당하는 기간입니다. “망하게 하는 죄악”은 일차적으로는 여호와의 번제단 위에 세워진 제우스를 위한 제단(참조. 9:27; 11:31; 12:11)을 가리키지만, 예루살렘과 성전에 행한 뿔의 모든 악행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구속 역사에 대한 확신을 제공합니다. 하나님은 예언을 통해 미래의 사건들을 미리 알려주시며, 성도들에게 인내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저녁 아침의 기간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시간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영적으로 정결함을 유지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신실하게 역사하시며,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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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7-02)


다니엘의 통찰력: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

다니엘 7장 15-28절


 

성도들은 세상의 권세가 일시적임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 아래에서 평안을 찾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이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는 기도와 말씀 연구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확신은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결국, 성도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는 그들의 신앙을 더욱 굳건하게 합니다.

 

  • 다니엘이 본 환상들을 설명합니다. 바벨론에서 메대로, 메대에서 바사로, 바사에서 그리스로 패권이 넘어가는 땅의 역사는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혼돈의 바다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시간표에 따른 통제된 진행입니다. 마지막 때에 세상 통치자에 의해 성도들이 박해를 당하겠지만, 이 또한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제한된 시간의 고난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멸망할 것입니다.

 

첫 번째 반응과 해석(15-18)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유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그분의 뜻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의 중요한 방법입니다. 또한, 말씀 연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와 말씀의 실천은 신앙 생활의 기초가 됩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15○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머리 속의 환상이 나를 번민하게 한지라 16내가 그 곁에 모셔 선 자들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말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려 주며 이르되 17그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 18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15-18)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환상으로 인해 심히 놀라며 그 의미를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세상의 권세가 심판받고, 성도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은 영원한 왕국의 일원이 되어 그분의 통치 아래에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임을 강조합니다.

 

(1) 다니엘의 반응(15)

 

다니엘은 깊은 환상을 보면서 자신의 이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함을 나타냅니다. 네 짐승의 환상이 다니엘을 혼란과 놀람에 빠뜨립니다. 환상에서 나타나는 권세와 시련은 다니엘에게 심각한 영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이는 현실 세계에서도 신자들이 마주하는 도전과 고난을 상징합니다.

 

(2) 천사에게 해석을 묻는 다니엘(16)

 

다니엘은 환상에 대한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그 의미를 알고자 합니다. 환상을 이해할 수 없던 다니엘은 “그 곁에 모셔 선자들 중 하나”에게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묻습니다. 다니엘의 질문은 개인적인 이해를 넘어, 이 환상이 신의 백성 전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3) 환상의 해석(17-18)

 

천상적 존재는 환상의 내용을 요약적으로 알려줍니다. 거대한 네 마리 짐승은 이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고, 그 마지막에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어 영원히 통치할 것입니다. 넷째 짐승을 “땅의 넷째 나라”로 해석하는 23절은 “네 왕이 네 나라”의 의미로 사용됐음을 보여줍니다. 네 짐승의 환상이 네 금속으로 이뤄진 신상의 꿈(2장)과 구조적으로 일치하기에, 첫째 짐승은 바벨론이 되고, 또 유사한 표상들이 사용된 8장에 따르면 넷째 짐승과 셋째 짐승은 각각 그리스와 주전 331년 알렉산더에 의해 멸망 당한 바사가 되고, 다니엘서의 역사 이해에 따르면 둘째 짐승은 바벨론을 계승한 메대가 됩니다(5:30-31).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은 천상적 존재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다니엘서의 종말론적 배경에서 보면 천상의 싸움과 지상의 싸움은 유기적으로 연결되기에 미가엘의 보호를 받는 유다 백성이 이 성도들에 포함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반응과 해석(19-27)

세상의 권세와 악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의 권세가 아무리 강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 생활 중 겪는 어려움과 고난은 하나님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그분의 의도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성도들에게 소망과 인내를 줍니다.

 

19이에 내가 넷째 짐승에 관하여 확실히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더라 그 이는 쇠요 그 발톱은 놋이니 먹고 부서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서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을 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그의 동류보다 커 보이더라 21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에게 이겼더니 22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 23○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라서 온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서뜨릴 것이며 24그 열 뿔은 그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6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요 27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19-27)

 

본문에서는 강력한 짐승과 그 권세가 심판받고, 하나님의 의로운 다스림이 이루어질 것임을 설명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을 겪더라도 결국 승리하게 되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희망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일원으로서 경배와 순종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1) 넷째 짐승에 관한 다니엘의 반응(19-20)

 

다니엘의 관심이 아주 무섭게 생긴 네 번째 짐승에 집중됩니다. 그는 네 번째 짐승과 그 머리의 열 뿔, 특히 세 뿔을 밀치고 나오는 다른 한 뿔의 진상에 관해 알기를 원합니다. 넷째 짐승과 열 뿔과 열한 번째 뿔에 관한 묘사는 7-8절을 거의 그대로 반복합니다. 세 뿔을 밀치고 나온 다른 한 뿔이 성도들과 싸워 압도합니다. 성도들이 희생당하고 환난에 떨어지지만, 다른 한 뿔의 승리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개입하시기 전까지만 승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오셔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판결을 내리시면 성도들이 나라를 차지하게 됩니다. 승리한 듯했던 폭력적인 권력이 때가 되면 하나님의 간섭으로 멸망에 떨어집니다. 여기서도 “성도들”은 천상적 존재를 가리킵니다. 묵시문학적 사고에 따르면 지상의 싸움과 천상의 싸움은 서로 병행합니다. 이스라엘이 땅에서 헬라와 싸울 때 천상에서는 이스라엘의 수호천사 미가엘이 헬라의 수호천사에 싸웁니다(10:20-21).

 

(2) 넷째 짐승에 관한 부가적 묘사(21-22)

 

땅에서 이스라엘의 박해와 패배는 하늘에서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수호천사가 적대적 민족의 수호천사에 의해 공격당하기 때문입니다(참조. 8:10). 이런 배경에서 보면, 성도들과 싸우는 뿔은 패권을 추구하는 지상 통치자를 넘어 그 배후에서 작용하는 천상의 악한 세력도 상징할 수 있습니다.

 

(3) 환상의 상세한 해석(23-27)

 

한 천사가 다니엘에게 넷째 짐승과 그 뿔들에 관해 상세히 설명합니다. 넷째 짐승은 이전의 다른 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잔혹한 나라로, 온 세상을 집어삼키고 짓밟아 으스러뜨립니다. 이 짐승의 머리에 난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고, 세 뿔을 밀치고 나올 열한 번째 뿔은 앞의 세 왕을 쓰러뜨리고 보좌를 차지할 자입니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성도들을 괴롭히고, 때와 법을 고칠 것입니다. 성도들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그의 손에 넘겨집니다. 하지만 이 폭군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심판이 시작되면 권세를 빼앗기고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고, 박해를 당하던 거룩한 백성에게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주어집니다. 땅의 모든 나라와 민족이 영원한 나라를 넘겨받은 성도들을 섬기며 복종할 것입니다. 열 뿔이 상징하는 열왕은 셀류코스 왕조의 열 왕을, 제거되는 세 왕은 셀류코스 4세와 그의 두 아들 데메트리오스와 안티오코스를 가리킬 것입니다. 세 뿔을 밀치고 나오는 열 한 번째 뿔이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Antiochus IV Epiphanes, 175-164) 임은 분명합니다. 그의 악행은 한마디로 신성모독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는 그가 주조한 동전에 쓰인 글과 관련한 고발입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주전 173/2년에 ‘왕 안티오코스, 신의 현현’(BASILEWS ANTIOCOUQEOU EPIFANOUS)이라는 글이 적힌 동전을, 주전 1698년에는 여기에 ‘승리자’(NIKHFOROU)가 첨가된 동전을 발행했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에피파네스’와 같은 신적 수식어를 사용한 최초의 헬라 왕입니다. 경건한 유다 사람들에게 지상 왕에게 붙여진 ‘에피파네스’와 같은 표현은 여호와의 신성과 유일성을 모독하는 행위와 다름없었습니다. 안티오코스가 고치려고 한 “때와 법”은 종교적 절기와 할례 같은 모세 율법입니다. 헬레니즘을 다양한 민족들의 통합 이데올로기로 삼은 안티오코스는 유다 민족의 고유한 관습을 억압하고 이교적 제의로 대체하려 하였습니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표현에 어떤 의미가 내포됐는지는 모호합니다. 보통은 세 단위를 모두 합해서 완전수 칠 년의 반에 해당하는 삼 년 반을 만들어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과 관련시켜 이해합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주전 167년 키스레브(Chislev; 11-12월의 아홉번째달) 15일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증한 것”(9:27)을 세우고 그 달 25일에 우상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대략 3년 지나 주전 164년 키스레브 25일에 유다 마카비가 셀류코스 왕조의 세력을 예루살렘에서 몰아내고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여호와께 바쳤습니다. 성전이 더러워졌기에 이 기간 동안 경건한 유다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정한 짧은 기간이 지나면 뿔을 재판하는 법정이 열리고, 뿔은 통치권을 빼앗기고 완전한 멸망에 떨어집니다. 같은 법정 모티브가 사용된 9-10절로부터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뿔을 심판하는 재판장임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로 옮긴 아랍어 표현은 문자적으로는 ‘끝까지’입니다. 뿔의 승리와 멸망이 시간적으로 대비됩니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성도들을 박해했던 뿔이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영원히) 멸망합니다. 13-14절에서는 “인자 같은 이”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가 주어지는데, 27절에서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주어집니다. 인자 같은 이의 권세가 영원한 권세인 것처럼 백성의 나라도 영원한 나라이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인자 같은 이를 섬기는 것처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다” 유다 백성을 섬기며 복종합니다. 인자 같은 이와 거룩한 백성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됐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은 문자적으로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이들의 백성’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이들’이 천상적 존재들(천사들)이기에, ‘거룩한 이들의 백성’은 이들의 보호 아래 있는 유다 백성입니다. 구약성경의 전통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몫으로 그분의 보호 아래 있지만, 다니엘서에서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천사장 미가엘이 이스라엘을 지켜줍니다(참조. 12:1). 당혹감에 사로잡힌 다니엘에 대한 묘사로 네 짐승의 환상 이야기가 끝을 맺습니다.

 

맺는 말(28)

성도들은 세상의 권세와 힘이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이는 인간의 권력과 세상의 통치가 결국에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영원한 주권이 남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그의 계획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세상의 유혹이나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은 믿음의 길을 걷는 것이며, 참된 안정과 평화를 경험하는 길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소망과 목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28그 말이 이에 그친지라 나 다니엘은 중심에 번민하였으며 내 얼굴빛이 변하였으나 내가 이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느니라(28)

 

“그 말이 이에 그친지라”(문자적으로, ‘여기가 말의 끝이다’)는 1절 마지막의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와 짝을 이루며 전체 단락의 시작과 끝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내가 이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느니라”도 내용상 1절의 “그 꿈을 기록하며”에 상응합니다. “나 다니엘은 중심에 번민하였으며”는 15절의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와 함께 환상의 해석(15-27)을 감쌉니다. 다니엘은 환상 해석을 듣고도 환상의 의미를 몰랐을 때와 유사하게 반응합니다. 나라들의 멸망과 그 뒤를 잇는 성도들의 영원한 통치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된 다니엘이 중심에 번민하여 얼굴빛이 변합니다. 그 이유는 달리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세상의 권세와 악이 결국 심판받을 것임을 강하게 알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보호하시며, 그들에게 마지막 승리를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을 신뢰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서 소망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봐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의 의를 이루시며, 모든 권세를 그리스도에게 맡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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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7-01)


바다에서 나온 네 짐승을 꿈꾸는 다니엘

다니엘 7장 1-14절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과 왕국을 다스리시며, 인간의 왕국은 불안정하고 변동성이 크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인간의 권력은 결코 영원하지 않으며, 결국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게 됩니다. 성도들에게 정의와 공의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줍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시고, 최종적으로 승리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는 신앙의 힘과 인내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 2장에서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해주었던 다니엘이 여기서는 꿈에서 세 개의 서로 관련된 환상을 봅니다. 첫 번째는 바다에서 나오는 네 짐승의 환상이고, 두 번째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왕좌에 앉아 바다에서 나온 네 짐승, 특히 네 번째 짐승을 심판하시는 환상이고, 세 번째는 인자 같은 이가 구름과 함께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는 나오는 환상입니다.

 

바다에서 나온 네 짐승(1-8)

세상의 왕국은 변동성이 크고 불안정합니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세상의 권력이 영원하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강력한 악의 힘과 불의가 존재하며, 이는 성도들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악과 불의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정의를 이루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인내해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다니엘이 그의 침상에서 꿈을 꾸며 머리 속으로 환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2다니엘이 진술하여 이르되 내가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3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 4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보는 중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받았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더라 5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쪽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것에게 말하는 자들이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더라 6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 7내가 밤 환상 가운데에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매우 강하며 또 쇠로 된 큰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더라 8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첫 번째 뿔 중의 셋이 그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더라(1-8)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네 짐승의 환상을 보며 인간의 왕국이 변동성과 불안정성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각 짐승은 강력한 악의 힘과 세상의 불의를 상징하며, 이는 신자들에게 도전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악과 불의를 심판하실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합니다.

 

(1) 도입부(1)

 

“벨사살 왕 원년에” 이는 다니엘서의 역사적 배경을 제공합니다. 다니엘은 밤의 환상 가운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를 휘젓는 것을 봅니다. 그는 꿈의 내용을 기록하고 간략히 설명하는데, 이는 그의 신앙적 책임을 보여주며,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2) 네 짐승의 출현(2-3)

 

“하늘의 네 바람”은 동서남북을 가리킵니다. 온 세상에서 거대한 바람이 불어와 바다를 뒤흔듭니다. “큰 바다”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혼돈의 세력을 상징하는(참조. 시 74:13; 사 27:1) 혼돈의 바다입니다(참조, 사 51:10; 암 7:4). 혼돈의 바다에서 모양이 다른 거대한 짐승 네 마리가 올라왔습니다.

 

(3) 사자와 같은 첫째 짐승(4)

 

첫 번째 것은 사자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를 달고 있었습니다. 들짐승 가운데 가장 힘센 사자와 날짐승 가운데 가장 힘센 독수리의 결합은 첫 번째 짐승의 압도적인 힘을 시사해줍니다. “그 날개가 뽑혔고”가 현재 문맥에서 세력의 약화를 함축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뒤따르는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함께 고려하면, 사자에게 사람의 자세를 마련해주기 위한 준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두 발로 일어선 사자의 모습은 근동의 그림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됩니다. 사람의 자세를 갖게 된 사자에게 “사람의 마음”이 주어집니다(참조. 4:16). 사자에게 주어지는 사람의 마음은 4장에서 짐승 수준으로 낮아졌다가 다시 인간의 위엄을 회복하는 느부갓네살의 운명과 관련한 언급 같습니다. 교만의 징벌을 통해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게 됐기에 바벨론을 상징하는 첫 번째 짐승에 관해서는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 같다(참조. 2:37-38).

 

(4) 곰과 같은 둘째 짐승(5)

 

두 번째 곰 같은 짐승은 메대를 상징합니다. “몸 한쪽을 들었고”가 공격하기 위해서 앞발을 들었다는 의미인지, 단지 몸의 한쪽을 다른 쪽에 비해 올렸다는 의미인지, 또는 (쇠퇴기의 시작을 상징하는) 몸을 돌리기 위한 자세인지 불분명합니다. 다수는 앞발을 세우고 먹이를 향해 덤벼드는 공격적인 모습으로 이해합니다. “입의 잇 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의 해석도 다양하지만, 먹이를 뜯어먹는 곰의 난폭한 모습에 관한 현실적이고도 생생한 묘사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5) 표범과 같은 셋째 짐승(6)

 

세 번째는 네 머리와 네 날개가 달린 표범과 같은 짐승으로 바사를 상징합니다. 첫 번째 짐승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짐승으로 묘사됩니다. 새의 날개는 독수리 날개보다 왜소하고, 표범은 사자보다 덩치가 작고 힘이 약한 짐승입니다. 유다의 입장에서 볼 때 바사는 바벨론에 비하여 위협적이지 않았습니다. 짐승의 네 날개는 바사 군대의 신속한 움직임을 상징합니다. 네 머리는 네 날개와 함께 세상의 네 방향, 곧 사방으로 확장된 바사의 통치권을 시사합니다. 세 번째 짐승에게만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2:39에서도 세 번째로 등장하는 “놋 같은 나라”가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6) 열 뿔을 가진 넷째 짐승(7)

 

잘 알려진 동물에 비교해 처음 세 짐승과 달리 네 번째 짐승은 어떤 동물에도 비교되지 않습니다. 뿔을 열 개나 달고 있고, 앞의 모든 짐승과 다르게 생겼다고만 말합니다. 상상할 수 없는 무서운 짐승입니다. 커다란 쇠 이빨로 먹이를 으스러뜨리고 남은 것은 짓밟았습니다. 쇠는 느부갓네살이 꿈에서 본 네 금속으로 만들어진 신상에서도 네 번째 나라를 상징했습니다(2:40). 다니엘서의 역사 이해에 따르면 네 번째 짐승은 바사를 무너뜨린 ‘그리스’를 가리킵니다. 뿔은 힘이나 세력을 상징하고(슥 2:1-4), 열 뿔은 알렉산더 대왕 이후의 그리스 왕들이나 셀류코스 왕조의 왕들을 가리킵니다. 다니엘이 뿔에 주목합니다. 열 뿔 사이에서한 작은 뿔이 나오더니 먼저 나온 뿔 가운데서 세 개가 그것 앞에서 뽑혀 나갑니다. “작은”은 ‘하찮은’을 의미합니다(참조. 11:21).

 

(7) 사람의 눈과 입을 가진 작은 뿔(8)

 

작은 뿔에 달린 “사람의 눈같은 눈”은 오만함과 뻔뻔스러움을(참조. 8:23), “큰 말”을 하는 입은 교만함을(참조. 11:36) 함축합니다. “다른 작은 뿔”은 우선적인 왕위 계승권을 가진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주전 175년 셀류코스 왕조의 보좌를 차지한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를 가리킵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9-10)

하나님께서 심판의 자리에 앉아 계신 것은 성도들에게 큰 소망과 위로를 제공합니다. 이는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이 정의를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을 상기시킵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믿음을 통해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궁극적으로 정의를 세우실 것입니다. 이로 인해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은 신앙의 근원이 됩니다.

 

9○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10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9-10)

 

환상의 무대가 혼돈의 바다에서 땅의 법정으로 옮겨집니다. 왕좌들이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자리에 앉으십니다. 하나님을 재판장으로 하는 재판이 열립니다. 역사를 주관하시고 민족들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최고 재판장이시기도 합니다(참조. 시 82:1; 94:2; 96:13).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는 문자적으로는 ‘날들에 있어 오래 되신 분, 연세가 많으신 분’으로, 하나님의 영원성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왕좌들이 놓인 장소가 언급되지 않았지만, 바퀴가 달린 보좌의 표상은 재판이 열리는 무대가 천상에서 지상으로 옮겨졌음을 시사해주니다. 다니엘의 시선이 보좌에 앉으신 분에서 그 주변으로 옮겨집니다. 불꽃 같은 보좌에 앉으신 분 앞에서 불이 강처럼 뿜어 나와 흐르고,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그분을 모시고 서서 시중을 듭니다.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불의 강은 하나님의 신비스럽고도 초월적인 권능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천천의 섬기는 자와 만만의 모셔 선 자는 하늘 어전회의의 표상에 속하는 언급으로, 재판장으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좌하는 천상적 존재들을 가리킵니다(참조. 왕상 22:19). ‘펼쳐진 책들’은 짐승의 운명을 결정하는 재판과 관련된 책입니다.

 

짐승들의 심판(11-12)

교만은 정말 위험하고 무섭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악과 불의를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성도들에게는 정의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주어집니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믿음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반드시 승리하실 것입니다.

 

11그 때에 내가 작은 뿔이 말하는 큰 목소리로 말미암아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의 시체가 상한 바 되어 타오르는 불에 던져졌으며 12그 남은 짐승들은 그의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11-12)

 

본문에서는 마지막 짐승이 매우 두렵고 강력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그 입에서 나오는 큰 말을 통해 교만과 악을 드러냅니다. 이 짐승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되며, 다른 짐승들은 권세를 잃으나 생명은 유지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와 정의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1) 네 번재 짐승의 멸망(11)

 

다니엘은 네 번째 짐승이 멸망 당하는 것을 봅니다. 네 번째 짐승이 ‘어떻게’, ‘누구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는지는 달리 언급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관심은 짐승의 완전한 죽음을 선포하는 데 집중됩니다. 짐승이 살해당하고 몸이 부서져 타는 불에 던져집니다. 쇠 이빨로 먹이를 으스러뜨리고 발로 짓밟아버리는 무시무시한 네 번째 짐승이 영원한 멸망에 떨어집니다.

 

(2) 생명을 보존하는 처음 세 짐승(12)

 

처음 세 짐승의 운명도 언급되는데, 이들에게는 사뭇 다른 판결이 내려집니다. 통치권을 빼앗기지만, 네 번째 짐승과 달리 완전한 죽음에 넘겨지지는 않습니다. 한동안 생명을 보존하게 됩니다. 처음 세 짐승과 네 번째 짐승이 상이한 운명의 판결을 받는 이유는 달리 언급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짐승들이 상징하는 나라들이 차례로 멸망하기에 정한 시기가 이르기까지 생명이 보존된다는 말도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심판의 주된 관심이 네 번째 짐승의 멸망에 있기에 처음 세 짐승의 운명이 달리 언급된 것 같습니다.

 

인자 같은 이(13-14)

하나님의 계획은 인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며, 이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과 확신을 제공합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진리를 통해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순종은 매우 중요하며, 이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이끕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결국, 이러한 교훈은 성도들이 믿음의 길을 견고히 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13○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13-14)

 

본문에서는 인자 같은 이가 구름을 타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그는 모든 민족과 언어가 그에게 경배하며, 그의 통치가 영원하고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왕국이 세상에 임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오는 인자 같은 이(13)

 

다니엘은 또 밤의 환상 중에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 곧 천사들과 함께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앞으로 나오는 것을 봅니다. 인자 같은 이의 정체에 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고, 단지 그가 네 번째 짐승이 멸망 당한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세상 통치권을 위임받게 될 것만 말합니다. 인자 같은 이의 신분이 모호하게 처리됐음은 그가 누구인지보다 그의 역할에 초점이 맞춰졌음을 보여줍니다. 본문은 누가 짐승들과 싸워 이들을 멸망시키는지 직접 언급하지 않습니다.

 

(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오는 인자 같은 이(14)

 

9-10절의 재판정은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 의해 짐승들이 멸망 당할 것을 시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13-14절의 인자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과 함께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로 인도를 받는 모습은 전쟁에서 적들을 물리치고 왕에게로 나아오는 용사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짐승들을 법정에 세워 심판하시고 그들에게서 권세를 빼앗아 인자 같은 이에게 주시고, 후자의 경우에는 짐승들과 싸워 이기고 돌아온 인자 같은 이에게 하나님께서 세상 통치권을 넘겨주십니다. 짐승들의 나라들과 달리 인자 같은 이의 통치는 영원하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그의 주권을 이루시며, 그 어떤 권세와 세력도 그의 계획을 저지할 수 없습니다. 인자 같은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그는 모든 민족의 구원자이자 영원한 왕으로서 다스리십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합니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하며, 그의 나라를 세상에 전파하는 사명을 이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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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6-02)


사자굴 속에 던지지 다니엘

다니엘 6장 16-28절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고백하고 그를 의지하는 용기를 가져야 하며, 이는 개인의 신앙을 강화하고 공동체에 신앙의 힘을 전파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자를 결코 잊지 않으시고,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우리의 삶이 다른 이들에게 믿음의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왕의 총애도 다니엘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떨어지고, 왕은 번뇌하고, 음모자들은 승리를 즐깁니다. 하지만 음모자들의 주도면밀한 계획은 바로 여기까지였습니다. 풀무불이 왕의 권력 밖에 있었던 것처럼 봉인된 사자 굴도 이들의 능력 밖에 있었습니다. 사자굴은 오직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만 활동하실 수 있는 공간입니다.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16-17)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신앙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호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 삶의 힘이 되고,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이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믿음의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16○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17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으매 왕이 그의 도장과 귀족들의 도장으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에 대한 조치를 고치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더라(16-17)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지기로 결정하고, 그에게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라고 말합니다. 왕은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진 후, 큰 돌로 굴 입구를 막고 왕의 도장을 찍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왕은 다니엘의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자신의 명령을 지키게 됩니다.

 

(1) 다니엘의 하나님께 맡기는 왕(16)

 

해가 지도록 버티던 왕이 신하들의 압력에 굴복합니다. 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처형이 즉각 집행됩니다. 사자 굴로 끌려가는 다니엘에게 왕은 자신의 소망을 담은 간절한 마음을 전합니다. 왕의 권력으로는 구해줄 수 없지만, 신이 개입하신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너의 하나님” 앞에 첨가된 “네가 항상 섬기는”은 다니엘의 신앙적 성실함을 강조합니다. 다리오는 다니엘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긴밀한 관계에서 구원 가능성을 본 듯합니다(참조, 3:15).

 

(2) 어귀를 돌로 막아 봉인하는 신하들(17)

 

사람들이 돌을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자, 왕과 귀족들은 도장으로 그곳을 봉인합니다. 다니엘에게 우호적인 왕도, 다니엘에게 적대적인 자들도 더는 어떻게 할 수 없게 됩니다.

 

다니엘의 경이로운 구원(18-24)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자를 반드시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의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은 다른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신앙적 결단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되어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18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하니라 19○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20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21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22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3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24○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18-24)

 

다리오 왕은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진 후 밤새도록 못이겨 슬퍼하며 기도합니다. 다음 날 아침 왕은 급히 사자굴로 가서 다니엘이 살아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사자들의 입을 막아주셔서 무사히 구출되었음을 보고하며, 왕은 기쁨과 놀라움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 다니엘을 찾아가는 왕(18-19)

 

다니엘의 처형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왕궁으로 돌아간 왕은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금식하고 오락을 멀리하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웁니다. 금식은 자주 종교적인 애도 행위에 속하지만, 여기서는 왕의 큰 슬픔을 표현합니다. 무리의 교활한 음모에 떨어져 죽음에 넘겨진 총애하는 신하의 목숨을 구해줄 수 없었던 왕은 좌절감과 절망감에 아무 음식도 먹지 못하고 밤올 새웁니다. 왕은 신하들에게 속아 명령을 반포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며 참회의 밤을 보낸 것 같습니다. 금식과 번민의 밤을 보낸 왕은 날이 밝자마자 급히 사자 굴로 갑니다. 신이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왕은 봉인된 사자굴에서 신적 구원이 발생했는지를 알아보려고 급히 굴로 간 것입니다. 밤이 고통과 절망의 시간이라면, 어둠을 밀치고 나오는 새벽은 여호와께서 개입하시는 구원과 소망의 시간입니다.

 

(2) 다니엘을 부르는 왕(20)

 

사자굴에 가까이 간 왕은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을 부릅니다. 확신하지는 못했지만, 소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을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며 다니엘의 운명에 하나님을 끌어들입니다. “살아 계시는”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활동성을 의미하고, “종”은 다니엘이 주인이신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자임을 보여줍니다. 왕이 마지막 소망을 두었던 하나님에 의한 다니엘의 구원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3) 다니엘의 응답(21-22)

 

사자굴에서 왕의 외침에 응답하는 다니엘의 음성이 들립니다. 다니엘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공손하게 인사를 올립니다.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는 왕을 알현할 때 드리는 의례적인 인사로(2:4; 3:9; 5:10), 다니엘이 왕궁에 있는 것만큼이나 사자굴에서 안전하게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대적과 사자가 목숨을 노릴지라도, 왕이 보호해주지 못할지라도 다니엘은 동요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항상” 섬기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함을 누립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는지를 왕에게 설명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사자 굴로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들의 입을 막아 보호해주셨습니다(참조. 3:25; 히 11:33).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생사는 하나님만 결정하십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기적적 구원에 근거해서 왕에게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합니다. 누구도 봉인된 사자굴에서 살아날 수 없기에 다니엘의 구원은 신적 사건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벌하시고 의인을 구하시기에 신적 간섭에 의한 구출은 다니엘의 무죄 증명이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왕의 금령을 어긴 다니엘을 구해주셨다는 것은 왕의 금령이 그분의 의지에 반한 것이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금령을 만들게 한 자들이 왕을 위험에 빠뜨린 자들입니다. 금령이 반포되기 전에 다니엘은 왕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가 왕에게 더 충성할 수 있음을, 세상의 왕보다 하늘의 왕을 우선하는 것이 세상의 왕에게 더 도움이 됨을 보여줍니다. 왕은 살아 있다는 다니엘의 말을 듣고 심히 기뻐합니다. 다니엘에 대한 왕의 총애가 얼마나 큰지를 시사해줍니다. 왕의 명령에 따라 굴에서 끌어올려진 다니엘을 살펴보니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참조. 3:27).

 

(4) 다니엘의 구원과 음모자들의 멸망(23-24)

 

다니엘의 기적적 구원으로 이제 누가 사자 굴에 들어가야 할지가 분명해졌습니다. 왕은 지체 없이 명령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자들을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집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준비해놓은 나무에 달렸던 것처럼(에 7:9-10) 음모자들이 다니엘을 위해 마련해놓은 사자 굴에 떨어집니다. 이들이 죄가 없다면 다니엘의 경우처럼 신이 개입해서 지켜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굴 바닥에 채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달려들어 이들의 뼈를 모조리 부수어버립니다.

 

왕의 조서와 맺는 말(25-28)

하나님께서는 모든 권세 위에 계시며, 어떤 상황에서도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타인에게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신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은 결국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은 공동체 전체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25○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되 원하건대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26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7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28○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25-28)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구원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백성에게 다니엘의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명령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사자들의 입을 막아주셔서 안전하게 구출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다니엘은 왕과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함을 증명하며,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1) 조서를 내리는 다리오(25)

 

풀무불에 던져졌던 세 친구가 불에 탄 냄새도 없이 살아나온 놀라운 사건을 경험한 느부갓네살이 바벨론 제국의 모든 나라들과 민족들에 회람용 조서를 내린 것처럼(3:28-29) 다리오도 회람용 조서를 내립니다. 조서의 도입부(25)는 느부갓네살의 두 번째 조서의 도입부(4:1)와 유사합니다.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은 메대-바사 제국의 모든 나라들과 민족들이 읽어야 할 조서임을 보여줍니다.

 

(2) 경외 받으실 다니엘의 하나님(26)

 

봉인된 사자굴에서 기적같이 살아나온 다니엘을 통해 알게 된 “다니엘의 하나님”은 제국의 모든 나라와 민족이 알고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입니다.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는 조서의 서두에 오는 상투적인 인사입니다. 히브리어 샬롬에 해당하는 “평강”은 삶의 모든 분야에서 안녕과 평화가 가득찬 상태를 가리킵니다. 다리오가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데, 어감에서 느부갓네살과 많이 다릅니다. 느부갓네살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3:29)하고 위협적으로 말하는데, 다리오는 다니엘의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도록 권면합니다.

 

(3)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27)

 

26-27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다양한 표현은 이미 앞에 나왔던 것들입니다. 6:21에도 나오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은 능력과 권능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4:34의 “영생하시는 이”에 상응하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는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면 현역에서 은퇴하는 고대 근동의 신들과 달리 변함없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멸망하지 아니할 나라와 무궁한 권세는 2:44; 4:3,34에도 나옵니다. 만신전과 세상 나라는 부침과 흥망성쇠를 거듭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쇠함 없이 영원히 지속되고, 그분의 권세는 누구에게도 양도되지 않습니다. 그분의 구원 능력(참조. 3:28-29)은 사자의 입에서 다니엘을 구하시는 그분의 “이적과 기사”를 통해 다리오가 직접 목격한 사건입니다. 이적과 기사를 베풀어 바로의 집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하신 하나님께서 봉인된 사자굴에서 당신 종을 구원하시는 이적과 기사를 베푸십니다. 한마디로, 제국의 모든 백성은 다니엘의 하나님을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 고백하고 찬양해야 합니다(참조. 4:1-2). 사자굴의 이야기가 다니엘의 성공적 삶에 대한 요약으로 끝을 맺습니다(참조 3:30; 2:48; 5:29).

 

(4) 다니엘의 형통(28)

 

시기심에 사로잡힌 대적들에 의해 사자 굴에 들어갔다가 구원을 받은 다니엘은 다리오 왕의 시대를 넘어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이 통치할 때도 중요한 직분을 맡아 활동합니다. 다니엘을 제거하려던 음모자들의 의도와 달리 다니엘은 다음 시대에도 형통합니다. 악한 자들이 악한 꾀로 하나님의 종을 죽음의 함정에 빠뜨릴 수는 있어도, 하나님을 “항상 섬기는” 자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왕조는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순서에 따라 바벨론에서 메대를 거쳐 바사로 바뀌지만, 하나님께 언제나 신실한 다니엘은 변함없이 왕궁의 중요 인물로 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구원하신 기적을 통해 그의 신실함을 드러냅니다. 신앙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호하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다니엘의 충성과 기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다리오 왕은 다니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믿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신앙의 힘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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