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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2-01)


꿈을 통한 하나님의 메시지

다니엘 2장 1-13절


 

선거철이면 후보들은 자신들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마치 자신들만이 불가능 없는 ‘슈퍼맨(Superman)’처럼 행동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정치를 하면 많은 것을 하겠다고 공약을 내놓습니다. 막상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는 불가능은 없다.”고 큰소리쳤지만, 그는 살아가면서 불가능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환경에서도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가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 모든 환상과 꿈을 해석할 수 있고,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지혜와 총명을 가진 다니엘의 이야기입니다. 대근동을 정복한 바벨론 제국의 왕 느부갓네살이 꿈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임의로 생사를 결정짓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자가 자기 꿈 하나 해결하지 못해 불안해합니다. 땅의 통치자들이 주장하는 권력의 실체와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사건의 도입부(1)

꿈은 잠자고 있는 동안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경험되어집니다. 그래서 의미 있는 꿈도 있겠지만, 대부분 의미 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모든 꿈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은 평범한 꿈이 아니라 특별한 꿈이었습니다. 그는 그 꿈에 담긴 의미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1느부갓네살이 다스린 지 이 년이 되는 해에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1)

 

여호와께서 다니엘에게 주신 지혜와 통찰력과 꿈과 환상의 해석 능력(1:17)이 2장에서 구체적으로 발휘됩니다. 전통적인 기술과 주술적 능력에 의존하는 바벨론의 지혜자들과 점쟁이들의 무능력과 여호와에 의존하는 다니엘의 능력이 대조됩니다. 이 대조는 결국 다니엘의 하나님과 바벨론 신들의 대결이기도 합니다. 꿈의 해석은 전문적 지식이 있으면 누구에게나 가능하지만, 해석의 대상인 꿈의 내용은 계시를 주신 분과 받은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해석자가 꿈의 내용까지 안다면, 그의 해석은 계시를 주신 분에게서 기원하기에 확실합니다. 더 나아가 꿈이 세계사의 진행과 관련한 것이기에 바벨론의 신들이 아니라 다니엘의 신이 역사를 경영하시는 분이 됩니다. 땅의 역사와 민족들의 운명이 강대국과 그들의 신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 유배민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결정과 통제 아래 있습니다.

 

왕과 갈대아 전문가를 사이의 대화(2-12)

하나님께서는 모든 지혜의 근원이십니다. 사람의 지혜는 제한적이고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무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은 완벽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그분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2왕이 그의 꿈을 자기에게 알려 주도록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를 부르라 말하매 그들이 들어가서 왕의 앞에 선지라 3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알고자 하여 마음이 번민하도다 하니 4갈대아 술사들이 아람 말로 왕에게 말하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왕께서 그 꿈을 종들에게 이르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하는지라 5왕이 갈대아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명령을 내렸나니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의 집을 거름더미로 만들 것이요 6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보이면 너희가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내게서 얻으리라 그런즉 꿈과 그 해석을 내게 보이라 하니 7그들이 다시 대답하여 가로되 청컨대 왕은 꿈을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8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분명히 아노라 너희가 나의 명령이 내렸음을 보았으므로 시간을 천연하려 함이로다 9너희가 만일 이 꿈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를 처치할 법이 오직 하나이니 이는 너희가 거짓말과 망령된 말을 내 앞에서 꾸며 말하여 때가 변하기를 기다리려 함이니라 이제 그 꿈을 내게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해석도 보일 줄을 내가 알리라 10갈대아 술사들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세상에는 왕의 그 일을 보일 자가 하나도 없으므로 크고 권력 있는 왕이 이런 것으로 박수에게나 술객에게나 갈대아 술사에게 물은 자가 절대로 있지 아니하였나이다 11왕의 물으신 것은 희한한 일이라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 한지라 12왕이 이로 말미암아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다 죽이라 명령하니라(2-12)

 

본문에서는 인간의 지혜와 능력이 한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왕의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만이시며, 이를 통해 우리는 기도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해야 함을 배웁니다. 또한,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느부갓네살의 꿈과 번뇌(2-3)

 

느부갓네살이 통치 제2년에 꿈을 꾸고 그로 인해 번민하며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고대 세계에서 왕은 자주 꿈을 통해 계시를 받습니다(참조, 창 20:3-7; 41:17). 꿈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번민하던 느부갓네살이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전문가들을 소집합니다. 다니엘은 전문가들을 소집하라는 왕의 명령에서 제외됐습니다. 다니엘의 뒤늦은 등장은 아마도 동일하게 환상과 꿈을 해석하는 일을 담당하는 다니엘을 바벨론의 전문가들로부터 구별시키기 위한 왕의 배려처럼 보입니다. 바벨론의 전문가들은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11)라고 말하면서도 신들에게 의존하지 않지만, 다니엘은 “은밀한 일에 대하여”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께 간구합니다(18절).

 

(2) 첫 번째 대화(4-6)

 

왕이 부른 까닭을 알게 된 갈대아 사람들이 왕에게 예를 갖춰 인사하고, 꿈을 알려주시면 해석해드리겠다고 정중하게 아룁니다. 전례에 따라 긴장 없이 시작된 대화가 왕의 위협적 답변으로 전혀 예기치 않는 상황으로 돌변합니다. 왕은 꿈의 해석뿐만 아니라 꿈의 내용도 알아내라고 단호하게 명령합니다. 꿈과 해석을 알게 하지 못하면 몸이 쪼개지고 집은 거름더미가 될 것이고, 꿈과 해석을 보이면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이 주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꿈까지 알게 하라는 왕의 명령은 고대 세계에서도 이례적입니다. 왕이 어떤 연유에서 꿈까지 보이라고 위협했는지는 모릅니다. 꿈의 내용을 잊어버렸거나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겠지만, 문맥에 따르면 왕이 해석자들을 불신하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꿈 해석만 가지고는 그 해석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길이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당사자만 알 수 있는 꿈 내용을 알아낼 수 있다면, 그 해석의 확실성도 확보될 수 있었습니다. 잘못 해석된 계시는 왕과 나라의 운명에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참조 왕상 22:1-36).

 

(3) 두 번째 대화(7-9)

 

술사들이 다시금 꿈을 말해 달라고 부탁하는 7절은 내용상 4절의 반복이지만, 문체가 일부 바뀝니다. 4절에서 술사들은 2인칭 명령으로 왕에게 꿈을 말해 줄 것을 부탁하고(개역개정의 “왕은”은 번역에 따른 첨가다) 여기서는 동일한 내용이 왕을 주어로 하는 3인칭 문장으로 기술됩니다. 왕 앞에 서서 당당하게 말하던 술사들이 왕의 터무니없는 명령에 당황해 아주 조심스럽게 부탁합니다. 왕이 꿈을 알려주는 경우에만 그의미를 밝힐 수 있다고 에둘러 말합니다. 술사들이 상황의 심각성과 자신들의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자신감을 상실하고 좀 더 겸손하게 부탁하는 술사들에게 한 왕의 답변은 그러한 명령을 내리게 된 왕의 속마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왕은 이들이 시간을 벌기위해 술수를 부린다고 신랄하게 책망합니다. 꿈의 내용을 알면, 어떤 식으로든 간에 해석은 가능해집니다. 그 해석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나중 문제입니다. 때로는 시간이 지나 확인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미 상황이 바뀌어버린 후이기에 의미가 없어집니다. 해석자들에 대한 왕의 철저한 불신이 이들에게 해석의 정당성을 입증해보도록 요청합니다. 당사자만 아는 꿈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해석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집니다. 해석의 확실성은 무엇보다도 해석자의 놀라운 능력으로 확인될 수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징조나 꿈의 해석은 일반적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철저한 불신과 회의는 예외에 속합니다.

 

(4) 세 번째 대화(10-12)

 

죽음의 위기에 처한 갈대아인들이 왕의 요구에 이의를 제기하며 합리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것을 간곡히 부탁합니다. 이들은 먼저 왕의 꿈을 밝히지 못하는 자신들을 변호합니다. 왕이 요구하는 대로 꿈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왕이 요구한 것은 사람의 한계 밖에 있는 일이다. 자신들이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왕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전통에 의지해 왕의 요구가 부당함을 지적합니다. 바벨론의 어떤 왕도 박수나 술객이나 갈대아인에게 그와 같은 일을 물은 적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위대하고 막강한 왕일지라도 사람의 능력에 속하지 않는 것은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요구는 오래전부터 확립돼온 왕과 갈대아인 사이의 신뢰 관계를 파괴하는 일입니다. 세 번째는 신학에 근거합니다. 신들만 왕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습니다. 꿈이 신적 계시의 매체이기에 꿈을 꾼 자는 물론 꿈을 통해 계시를 전하는 신도 꿈의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와 함께 살지 아니하는 신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과는 다른 차원에 속하는 신들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신만 왕이 무슨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혜자들의 합리적인 호소는 왕의 분노를 더할 뿐이었습니다. 지혜자들을 모두 죽이라는 왕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왕의 분노를 초래한 갈대아인의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다니엘에 의해 그대로 인정받습니다(27). 갈대아인이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하고 말한 것처럼, 다니엘도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라고 말합니다(28). 느부갓네살이 물은 것은 오직 신에 의해서만 답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자가 다르지 않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다니엘은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에게로 나아가 그분으로부터 “은밀한 것”을 전해 받는데(17-19), 갈대아인들은 자기 신들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신들은 보일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는 갈대아인의 태도는 이들이 의지하는 신들의 무능력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죽음의 위협에 처해서도 찾지 않는 신이라면, 그는 더 이상 신이 아닙니다.

 

위기에 처한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13)

훌륭한 업적을 이룬 왕도 인간의 한계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큰 권력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불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위기 속에서 인간의 연약함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결국,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13왕의 명령이 내리매 지혜자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죽이려고 찾았더라(13)

 

왕의 초법적인 명령으로 바벨론의 지혜자들뿐만 아니라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왕의 명령을 집행하기 위해 사람들이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찾습니다. 이들은 왕의 부름을 받지는 못했지만, 지혜자들을 죽이라는 왕의 명령에는 포함됩니다. 이들이 부름을 받지 못한 이유는 달리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바벨론 지혜자들과 한 부류인지, 또는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지혜자인지를 이제 보여주어야 합니다.


세상의 법칙을 느부갓네살 왕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을 이용하지만, 필요 없으면 과감히 수많은 사람들을 버리고 희생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세상의 법칙과는 반대입니다.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천하보다 귀하게 가치 있게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법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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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1-02)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를 경험한 다니엘

다니엘 1장 8-21절


 

주변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에 대해 반응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과 조건에 처해 있느냐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어떤 반응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믿음의 사람으로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즐거워하며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추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분량을 따라 나타난 것입니다. 그 사람의 분량, 그릇의 크기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자신이 얼마만큼 크기를 가진 사람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글로벌 리더(Global Leader)로 사용하길 때는 먼저 그 사람의 그릇을 만들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 본문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경건을 위해 거룩한 결단합니다. 그들은 세상의 풍요로운 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왕의 진미를 거절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관리한 환관장에게 10일 동안 채식과 물만 먹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한 믿음의 결단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결과를 맺게 하십니다. 믿음의 결단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감화시키시면서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왕의 음식을 거절하는 다니엘과 세 친구(8-16)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 편에 서기로 작정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다니엘은 원치 않는 곳에서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살아야했지만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기로 작정하였습니다.

 

8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0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11환관장이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12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 14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 동안 시험하더니 15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16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8-16)

 

바벨론에 포로 끌려온 다니엘은 어떤 희망도 없었습니다. 이방 바벨론 생활을 요구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는 뜻을 정합니다. 비록 그들은 바벨론 포로이지만 마음과 신앙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겠다고 작정했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 외에 다른 언약을 맺어서 하나님께 반역할 수 없다는 뜻을 가졌던 것입니다.

 

(1) 환관장을 찾아가는 다니엘(8-10)

 

다니엘서에서는 네 유다 소년의 대표로 다니엘이 등장합니다. 다니엘이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환관장을 찾아가 부탁합니다. 채식과 물만 먹고 마시겠다는 다니엘의 제안은 왕의 음식에 고기가 포함됐음을 시사합니다. 일부 고기와 포도주는 먼저 신들에게 바쳤졌던 음식일 수 있어서 율법을 범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이방 땅에서 정과 부정에 관한 율법의 가르침을 준수하려는 열심에서 왕의 음식을 거절한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공동식사를 통해 바벨론 왕과 연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음식을 거절했을 수도 있습니다. 왕의 음식에는 일종의 성례전적 의미가 함축돼 있습니다. 바벨론 왕궁에서 일해야 하지만, 왕에게 운명적으로 종속된 신하로 남기를 거절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종교적·민족적 전통과 유다 자손의 정체성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위험을 무릅쓰며 행동에 나섭니다. 바벨론 왕궁에 다니엘을 도와줄 사람은 없었지만, 다니엘을 돕도록 바벨론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분은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니엘의 결심을 뒷받침해주십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간섭으로 환관장의 은혜와 긍휼을 얻습니다. ‘은혜와 긍휼’(참조, 렘 16:5;호 2:19; 슥 7:9)은 동정심이나 연민의 뜻 이상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단어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헌신을 표현해왔습니다. 헤세드(은혜)는 구속적이며 헌신적인 언약적 사랑을, ‘라하밈’(긍휼)은 값없이 용서하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모성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가장 잘 보여 주는 표현이 바벨론 왕궁의 고위관리인 환관장에게 적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환관장의 은혜와 긍휼이 아니라, 동사 ‘얻게 하신지라’의 주어 ‘하나님께서 환관장을 움직여 다니엘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게 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 준수를 위해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다니엘이 하나님의 구속사적 중재로 환관장의 은혜와 긍휼을 경험한 것입니다.

 

(2) 감독관을 설득하는 다니엘(11-14)

 

환관장의 은혜와 긍휼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는 다니엘에게 호의적인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다니엘의 요청을 그대로 들어주지는 못합니다. 그는 왕의 신하로서 왕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이 직접 소년들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지정했기에, 왕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는 한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기름진 음식 대신 채소만 먹으면 얼굴이 수척해질 수 있기에 탄로 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사로잡혀 온 유대 소년들을 위해 환관장이 자기 목숨을 걸 수는 없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왕의 노여움을 사면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웠습니다(참조, 2:12). 다니엘은 몸을 사리는 환관장에게 거절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른 길을 제안합니다. 그는 환관장이 자신과 동료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맡겨 감독하게 한 사람을 찾아갑니다. 이번에는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타협안을 마련하여 찾아갑니다.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기보다는 상대의 어려운 처지를 인정하면서 설득을 시도합니다. 환관장을 찾아갔을 때는 아무 대안 없이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를 무조건 먹지 않겠다고 거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험 삼아 열흘 동안만 채식을 먹고 물을 마시게 한 후에 다른 소년들의 얼굴과 비교하여 그 다음에 어떻게 할지 결정하자고 제안합니다. 위험성이 없지는 않은 제안이지만, 열흘 동안만 시험 삼아 해보는 것이기에 왕이나 환관장에게 들킬 염려가 적었습니다. 감독관은 다니엘의 제안을 받아들여 열흘 동안 채식과 물만 먹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로 하여금 감독관에게서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 결과입니다. 뜻을 세우고 이를 이뤄나가는 다니엘에게서 지혜자의 면모가 보입니다. 열흘은 결정의 실질적 결과가 나타나는 기간을 가리킬 것입니다(참조, 창 24:55; 삼상 25:38).

 

(3) 허락받은 다니엘의 요청(15-16)

 

판단을 감독관에게 맡긴 다니엘의 구체적 제안이 놀라운 결실을 맺습니다. 환관장은 이들의 얼굴이 초췌하여 또래의 소년들만 못할 것을 염려했는데,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왕의 진미를 먹은 다른 소년들보다 얼굴빛도 더 좋았고 살도 더 올랐습니다. 이제 감독관은 다니엘의 요청을 그대로 수락하고 네 소년에게 왕의 음식 대신 채식을 줍니다. 당연히 채식과 물이 왕의 음식과 포도주보다 몸에 더 좋아서 네 소년이 다른 소년들보다 더 건강해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채식을 선택한 소년들이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에 열흘은 너무 짧습니다. 이는 다니엘의 결단과 결과에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셨음을 시사해줍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소년들의 열심에 하나님께서 기꺼이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곳이 바벨론 왕궁일지라도, 상대가 온 땅을 정복한 바벨론 왕일지라도, 여호와께서 하시려는 일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믿음을 지키려는 자가 있는 곳이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기에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네 소년의 성공적 결말(17-20)

하나님께서 끝없이 패역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와 포로로 끌려가게 하신 것을 이스라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하셨습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위로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갔지만,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절대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바벨론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부하고 채식과 물만으로 절제된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다니엘과 친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17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18왕이 말한 대로 그들을 불러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느부갓네살 앞으로 데리고 가니 19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가 없으므로 그들을 왕 앞에 서게 하고 20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17-20)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에게 지혜와 이해를 주셨음을 보여줍니다. 이 구절은 신앙을 지키며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의 노력과 충성을 보상하신다는 교훈을 전달합니다.

 

(1) 지혜를 주신 하나님(17)

 

유다의 네 소년은 왕궁 교육에서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합니다. 3년의 짧은 기간에 유대 출신 소년들이 갈대아의 학문과 언어를 배워서 지혜자가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지만 이들은 해냈습니다. 이들의 재능이 남달리 뛰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소년들이 이방 땅에서 이방의 학문을 배워 완전히 습득할 수 있도록 학문적 능력과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학문”은 배움이나 지식으로,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을 잘 재판할 수 있도록 여호와께 지혜와 지식을 구했습니다(대하 1:10-12). 바벨론은 오랜 종교적·문학적 전통에서 나온 방대한 양의 서적을 자랑했습니다. 이 서적을 읽으려면 아카드어를 배워야 했고, 이해를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유다에서 사로잡혀 온 네 소년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의 도움을 받아 바벨론의 지혜와 전통을 정복합니다. 특히 다니엘은 더 뛰어났는데, 그에게는 “모든 환상과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도 주어집니다. 이 능력을 힘입어 2장과 4장에서 바벨론의 지혜자들이 풀 수 없었던 꿈과 환상을 해석합니다.

 

(2) 느부갓네살 앞에 선 소년들(18-19)

 

3년의 교육과정이 끝나자 환관장이 교육생들을 느부갓네살 왕 앞으로 데리고 갑니다. 왕은 대화를 통해 네 명의 유다 소년만 한 인물이 없음을 알고 자기 곁에 둡니다.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자신들을 포로로 잡아 왔던 느부갓네살 왕을 모시게 됩니다.

 

(3) 바벨론의 지혜를 압도하는 소년들(20)

 

이들은 뛰어난 능력으로 왕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습니다. 왕이 어떤 것을 물어보아도 지혜와 총명에 있어 바벨론의 모든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뛰어났습니다. ‘십 배’는 완전수로 네 소년의 능력이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소년들에게 주신 학문과 깨달음과 지혜 앞에 바벨론 종교의 초라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바벨론의 신들에게 패한 것처럼 보였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유다의 네 소년을 통해 바벨론 왕궁에 당신의 능력을 과시하십니다. 변방에 속한 유다의 종교가 고대 근동에서 인정받던 바벨론의 종교를 압도합니다.

 

맺는 말: 고레스 왕 원년(21)

하나님께 쓰임 받는 시간에도 낙담하고 실망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외로움과 피곤함에 지쳐 힘들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결국, 하나님께 의지하며 다시 일어설 힘을 찾게 됩니다. 이 마지막 21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으면 볼 수 있습니다.

 

21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21)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주전 606년 바벨론 침략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 온 다니엘은 고레스 원년까지 칠십년이 조금 못 미치는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학문과 지혜 덕분에 바벨론 왕궁에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서에 따르면 메대 사람 다리오가 바벨론을 이어받지만(5:30-31), 성경의 다른 책들에 의하면 주전 539년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합니다. 고레스 왕 원년은 주전 538년에 해당합니다.


다니엘이 신앙을 지키며 굳건한 결단을 내린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은혜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켰습니다. 이러한 다니엘의 삶은 우리에게 신앙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충성과 헌신에 응답하시며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도 다니엘처럼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키길 소망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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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1-01)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다니엘 1장 1-7절


 

이스라엘의 역사는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될 수 있지만, 믿음의 법칙을 따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때 강해졌고, 반대로 그렇지 못할 경우 약해져 주변 나라에 침공을 받았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원리를 적용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강력한 삶을 살지만, 그렇지 못하면 연약해집니다. 이러한 의미를 깨닫도록 다니엘서를 주셨으며, 이를 통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승리하는 삶으로 인도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 바벨론으로 사로잡혀온 유다의 네 청년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복자들의 기준에 따라 발탁되어 바벨론 왕궁에서 교육을 받게 됩니다.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할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고 이방 민족들 가운데 살아남는 것이 가능합니까?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핵심적 요소는 무엇입니까?

 

도입부(1-2)

주변에 악인이 득세할 때, 세상은 정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며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하게 됩니다. 하박국 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죄악이 만연했고, 선지자는 하나님께 탄식했습니다. 선지자가 보기에는 하나님께서 악행을 방관하는 것처럼 보였고, 이는 하나님께서 무능력한 분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서의 첫 부분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1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2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1-2)

 

다니엘서는 특이하게도 전쟁에 관한 보고로 시작합니다. 때는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이고, 전쟁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의 포위공격이고, 그 결말은 유다 왕 여호야김의 유배와 일부 성전 기물의 약탈입니다.

 

(1)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침략(1)

 

전쟁의 동기나 목적, 경과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포위당한 예루살렘의 운명에 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전쟁 자체보다 그 배후에 주목합니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지만, 그의 손에 여호야김과 성전 기물을 넘겨주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유다를 받쳐주는 두 기둥인 왕권과 성전이 뿌리째 흔들리지만 완전한 파국은 아닙니다. 느부갓네살의 승리와 유다의 패배는 여호와의 계획에 속합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언급하지 않지만,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여호와의 징벌적 개입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2) 여호야김의 유배와 일부 성전 기물의 약탈(2)

 

성전 기물의 운명에 관해서 상세히 언급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약탈한 성전 기물을 시날 땅으로 가져가 신전 보물 창고에 보관합니다. “신전”은 바벨론의 국가신 마르둑의 신전입니다. 약탈한 신전 기물을 정복자의 신전으로 옮겨놓는 것은 고대 세계의 풍습인데, 성전 기물은 점령지의 약탈품이라도 성별된 물건들이기에 더럽혀져서는 안 됩니다. 다니엘서의 문맥에서 바벨론 신전으로 옮겨진 성전 기물은 5장에 나오는 벨사살 왕의 연회를 예비해주고, 넓게는 여호와의 활동 무대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겨졌음을 시사합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은 주전 606년으로,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침공과 여호야김의 유배는 여기에만 나옵니다. 다니엘서에 따르면 여호야김의 통치 기간이 삼 년인데, 열왕기하 23:36과 역대하 36:5에 의하면 여호야김은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609-598) 다스립니다. 시날 땅은 바벨론의 전통적인 이름입니다. 전설적인 사냥꾼 니므롯의 활동 무대인(창 10:10) 시날 땅은 소위 바벨탑이 건설된 곳이고(창 11:2), 스가랴의 환상에서는 악이 추방되는 곳입니다(슥 5:11). 다니엘서에서 부정적 함의를 갖고 사용됐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바벨론을 가리키는 전통적인 용어이기에 사용했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신학적 의도에서 바벨론을 시날 땅으로 표현했다면, 이야기의 무대를 여호와 신앙에 적대적인 악의 세력이 웅거하다가 심판받은 시날 땅으로 지칭함으로써 처음부터 유배민들이 여호와 신앙에 적대적인 세력에 둘러싸여 당하게 될 시련과 승리를 암시적으로 보여줍니다.

 

왕궁의 교육생으로 뽑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3-7)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선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방법으로 그를 섬기도록 하십니다. 반면, 악한 사람은 악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위해 선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결국, 각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3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4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5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6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7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3-7)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의 유혹과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야 함을 강조합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벨론에서의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신앙과 원칙을 지키며,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지식을 통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 이스라엘 소년을 선발하라는 왕령(3)

 

왕은 궁전의 고위 관료인 환관장 아스나스에게 이스라엘의 유배민들 가운데서 왕족과 귀족 출신의 총명한 소년들을 발탁하여 왕궁에서 일할 수 있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합니다.

 

(2) 선발 기준(4)

 

선택의 기준으로 세 가지 지침이 주어집니다. 첫째는 신분과 관련한 것으로, “왕족과 귀족” 출신이어야 합니다. 왕족이나 귀족에 속한 포로들을 교육하고 대접해 충성스런 신하로 만들어 활용하는 일은 고대 세계에서 드물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외모와 관련한 것으로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운” 소년이어야 합니다. “흠이 없고”는 레위기에 제의적 용어로 등장하지만, 제의와 상관없는 문맥에서도 사용됩니다. 사무엘하 14:25 압살롬의 외모를 소개하면서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말하고, 아가 4:7에서 솔로몬은 자기 신부를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하고 말합니다. 아름다움은 자주 왕의 외모를 묘사하는데 사용되는 표현으로(참조, 삼상 9:2; 16:12; 왕상 1:6), 미학적 평가를 넘어 자질의 충분함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셋째는 능력과 관련한 것으로,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한” 소년이어야 합니다. 교육 내용이 아카드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오래되고 방대한 종교적 전통이기에 남다르게 뛰어나지 않으면 이수할 수 없습니다.

선발된 이스라엘 소년들이 배워야 할 분야는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였습니다. “학문”은 글로 기록된 문서를, “갈대아 사람의 언어”는 아카드어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소년들이 바벨론의 옛 언어인 아카드어로 기록된 문서, 곧 점쟁이를 위한 전문적 문헌을 읽을 수 있게 훈련을 받습니다. 20절은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바벨론의 박수와 술객으로 교육받았음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3) 왕의 음식과 포도주(5)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 “왕 앞에 서게 될” 소년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가 양식으로 주어집니다. 교육생들은 3년 동안 매일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를 먹습니다. 사무엘하 11:8에 의하면 다윗은 우리아에게 왕의 음식물을 하사합니다(참조, 왕하25:29-30). 왕이 음식물을 신하에게 나눠주는 전통은 신하를 왕에게 예속시키는 일종의 성례전적 성격을 갖는 풍습입니다. 왕이 주는 음식을 먹는 자는 왕에게 속한 신하로서 왕에게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바벨론에서 3년의 교육 기간이 일반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전체 교육은 보통 5-7세에 시작해서 16-24세 사이의 어느 시점까지 계속됐던 것 같습니다. 왕실의 후계자를 위한 높은 수준의 교육은 14세에 시작했습니다. 3년은 아카드어를 모르는 사람이 언어를 새로 배워 바벨론의 광범위한 학문을 익히기에는 너무 짧은, 하나님의 도움에 의해서만 가능한 기간입니다. 17절은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4)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6)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온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유다 출신의 네 소년 이름이 특별히 언급됩니다. 3절의 “이스라엘 자손”이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를 포함한다면, “유다 자손”은 네 소년의 집안이 유다 지파에 속했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집안이 중요했던 고대 세계에서는 인물을 소개할 때 보통 아버지의 이름을 함께 알려주는데, 여기서는 당사자의 이름만 언급됩니다. ‘유다 자손 가운데서’는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특정 집안에 속한 인물이 아니라 전체 유다에 속한 인물임을 시사해줍니다.

 

(5) 바벨론식 개명(7)

 

교육을 책임진 환관장이 네 소년의 이름을 벨드사살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로 바꿔줍니다. 아마도 바벨론 왕궁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바벨론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개명은 바벨론의 권력에 종속된 네 소년의 처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바벨론 왕궁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지만, 자기 이름도 마음대로 주장할 수 없는 피정복민에 불과합니다. 특이하게도 다니엘은 왕의 음식에 관해서는 적극적으로 저항하는데(8-16), 이스라엘의 신명 ‘엘’(하나님) 또는 ‘야’(여호와)를 포함하는 히브리 이름이 바벨론 세계에 적합한 이교적 이름으로 바뀐 것에는 달리 반응하지 않고 이를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3장도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의 히브리어 이름 대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바벨론식 이름을 사용합니다. 이름을 바꾸는 행위가 이스라엘의 신학적 전통에 반하는 일이 아니었음을 전제합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창씨 개명 같은 지배 권력에 의해 강제된 집단 개명은 고대 근동에 없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의 환관장에 의한 일방적 개명은 이들만의 문제로, 유배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개인적 결정에 따라, 특히 이방인들 가운데서 정치적으로 활동할 때 이방식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여호야긴의 손자로 제2성전을 완공시킨 스룹바벨은 ‘바벨의 싹’을,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는 ‘마르둑의 숭배자’를 의미합니다. 에스더는 별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스타’라 또는 바벨론의 사랑의 여신 ‘이쉬타르’에서 온 이름입니다.

요약하자면, 이방적·이교적 환경에 온전히 노출된 유배민들에게 개명은 정치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선택지였고, 음식 규정의 준수는 민족적·종교적 정체성 유지의 필요조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 신앙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인도하십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벨론의 문화와 압박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들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하나님의 말씀과 원칙을 따르며 살아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신앙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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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서론


 

영적 생활에서 뜻을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뜻을 정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십니다. 뜻을 정하고 의지를 드려서,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대로 살지 못하면, 환경에 따라 생각합니다. 마치, 죽은 물고기가 떠내려가지만,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뜻을 정하지 않으면, 세상의 환경에 따라 떠내려갑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했습니다. 뜻을 정하고 난 후에 어떤 일을 겪었습니까? 그것을 생각 가운데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보게될 것입니다.

 

1. 제목

책 이름은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본서의 기록자이자 중심 인물인 ‘다니엘’을 따른 것입니다. ‘다니엘’(Daniel)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뜻입니다. 유다 백성이 포로로 사로잡혀 가게 되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열방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킨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이름입니다.

 

2. 저자

 

저자는 다니엘입니다.

 

(1) 내적 증거

 

본서가 자체적으로 다니엘의 기록임을 밝히고 있습니다(1:1, 7:1, 8:1, 9:1, 10:1-2, 11:1). 또한 ‘나 다니엘’이라는 1인칭이 나오기도 합니다 (9:2,20, 10:2).

 

(2) 외적 증거

 

예수님도 감람산 강화에서 본서의 마지막 부분이 다니엘의 글임을 언급했습니다(9:27, 11:31, 12:11, 마 24:15).

 

3. 기록 연대

본서의 저자가 다니엘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확고합니다. 다니엘은 B.C.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잡혀 가서 바사왕 고레스 3년까지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본서는 당연히 다니엘이 B.C.6세기로 볼 수 있습니다. 본서의 내용을 참고해 보면 바벨론이 함락한 B.C.539년 이후부터 바사의 고레스왕 9년인 B.C.530년 사이에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4. 다니엘의 위치

다니엘서는 대선지서입니다. 대선지서(이사야서,예레미야서,에스겔서, 다니엘서) 중에 가장 짧은 책입니다. 대선지서와 소선지서의 기준은 분량 순입니다.

다니엘서가 대선지자에 속한 이유는 역사적으로 2500년 세계사를 담고 있어서, 세계사의 뼈대가 되는 책입니다. 종말까지 나오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 가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세계의 통치자로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것을 내다보고 그 내용을 기록한 책입니다.

 

5. 기록 목적

본 다니엘서는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후 하나님이 여전히 유다 백성에게 세계의 주권자임을 밝히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바벨론 왕들은 유다 예루살렘의 성전을 훼파하고 성전 기구들을 강탈하여 자신들의 신정에 두므로 자신들의 신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세계에 공포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유일신 사상은 조롱거리가 되었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던 유다 백성들은 갈등과 고뇌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일련의 기적과 권능을 소개하고 미래 역사를 소개하므로 하나님이 이방 거짓 신들과 달리 세계 역사를 주관하는 통치자임을 밝힙니다.

 

6. 다니엘의 특징

①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초토화되므로 이방신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제국의 운명을 포함한 모든 인간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열흘간 식물만 먹으면서도 고기를 먹은 다른 사람들보다 기름졌던 다니엘과 세 친구의 용모, 느부갓네살왕의 꿈 내용에 대한 다니엘의 해석, 풀무불 가운데서 구원받은 다니엘의 세 친구 사건, 느부갓네살왕이 정신 이상으로 7년 동안 짐승처럼 살리라는 경고, 벨사살왕의 잔치석상에서 벽에 새겨진 예언의 신속한 성취, 사자굴에서 구원받은 다니엘 사건 등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이 포로 생활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방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구원해 주실 수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의 염원인 하나님 나라 건설을 이루어 주실 수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② 기도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기도의 힘을 믿고 왕의 시위대 장관인 아리옥에게 자신이 느부갓네살왕의 꿈의 내용과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 속에 던져지는 상황 속에서도 능히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70년이 지나면 유다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귀환시켜 주시겠다고 한 약속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유다 백성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귀환해 성전을 재건할 수 있었습니다 (대하36:22-23, 스6:15).

 

③ 부활 사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가 부활하여 영생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영벌을 받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부활 개념은 이사야나 욥의 사상과도 일치합니다. 욥은 벌레들이 자신의 몸을 파먹은 후에도 자신의 눈으로 구속자를 볼 기회를 사모했습니다(욥 19:25-27).

 

④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유다 백성들의 끝없는 배신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구원을 준비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비록 선지자의 외침이 거부되고 철저한 파괴가 이루어졌을지라도 메시야를 통한 회복과 번영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7. 환상에 나타난 4대 제국

본서는 여러 가지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하에 미래의 역사 전개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를 보여줍니다.

2장에 나오는 신상의 금머리는 바벨론(바빌로니아) 제국(B.C.605-539)을, 은가슴과 발은 바사(페르시아) 제국(B.C.539-331)을, 놋배와 넓적다리는 헬라(그리이스) 제국(B.C.331-63)을, 철종아리는 로마 제국(B.C.63-A.D.476)을, 뜨인돌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7장에 나오는 사자는 바벨론 제국을, 곰은 바사 제국을, 표범은 헬라 제국을, 괴물같은 짐승은 로마 제국을 상징합니다. 8장에 나오는 숫양은 바사 제국을, 숫염소는 헬라 제국을 상징합니다. 9장에 나오는 70이레 중 마지막 이레는 세상 마지막 때에 있을 7년 대환난을 상징합니다. 그런 환상들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 유다를 중심한 세상 국가들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예언한 내용들입니다.

 

8. 내용분해

 

1. 역사편(1-6장)

 

1) 다니엘의 궁중생활(1장)

2) 다니엘의 해몽(2장)

3) 세친구, 풀무불에 던지움(3장)

4) 느부갓네살의 발광(4장)

5) 벨사살의 향연(5장)

6)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지움(6장)

 

2. 계시편(7-12장)

 

1) 네 짐승(7장)

2) 수양과 수염소와 작은 뿔(8장)

3) 70주의 예언(9장)

4) 마지막 예언(10-12장)

   (1) 천사와의 대화(10장)

   (2) 열방에 대한 예언(11장)

   (3) 종말의 예언(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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