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01-01)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다니엘 1장 1-7절
이스라엘의 역사는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될 수 있지만, 믿음의 법칙을 따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때 강해졌고, 반대로 그렇지 못할 경우 약해져 주변 나라에 침공을 받았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원리를 적용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강력한 삶을 살지만, 그렇지 못하면 연약해집니다. 이러한 의미를 깨닫도록 다니엘서를 주셨으며, 이를 통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승리하는 삶으로 인도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 바벨론으로 사로잡혀온 유다의 네 청년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복자들의 기준에 따라 발탁되어 바벨론 왕궁에서 교육을 받게 됩니다.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할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고 이방 민족들 가운데 살아남는 것이 가능합니까?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핵심적 요소는 무엇입니까?
도입부(1-2)
주변에 악인이 득세할 때, 세상은 정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며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하게 됩니다. 하박국 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죄악이 만연했고, 선지자는 하나님께 탄식했습니다. 선지자가 보기에는 하나님께서 악행을 방관하는 것처럼 보였고, 이는 하나님께서 무능력한 분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서의 첫 부분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1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2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1-2)
다니엘서는 특이하게도 전쟁에 관한 보고로 시작합니다. 때는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이고, 전쟁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의 포위공격이고, 그 결말은 유다 왕 여호야김의 유배와 일부 성전 기물의 약탈입니다.
(1)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침략(1)
전쟁의 동기나 목적, 경과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포위당한 예루살렘의 운명에 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전쟁 자체보다 그 배후에 주목합니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지만, 그의 손에 여호야김과 성전 기물을 넘겨주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유다를 받쳐주는 두 기둥인 왕권과 성전이 뿌리째 흔들리지만 완전한 파국은 아닙니다. 느부갓네살의 승리와 유다의 패배는 여호와의 계획에 속합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언급하지 않지만,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여호와의 징벌적 개입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2) 여호야김의 유배와 일부 성전 기물의 약탈(2)
성전 기물의 운명에 관해서 상세히 언급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약탈한 성전 기물을 시날 땅으로 가져가 신전 보물 창고에 보관합니다. “신전”은 바벨론의 국가신 마르둑의 신전입니다. 약탈한 신전 기물을 정복자의 신전으로 옮겨놓는 것은 고대 세계의 풍습인데, 성전 기물은 점령지의 약탈품이라도 성별된 물건들이기에 더럽혀져서는 안 됩니다. 다니엘서의 문맥에서 바벨론 신전으로 옮겨진 성전 기물은 5장에 나오는 벨사살 왕의 연회를 예비해주고, 넓게는 여호와의 활동 무대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겨졌음을 시사합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은 주전 606년으로,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침공과 여호야김의 유배는 여기에만 나옵니다. 다니엘서에 따르면 여호야김의 통치 기간이 삼 년인데, 열왕기하 23:36과 역대하 36:5에 의하면 여호야김은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609-598) 다스립니다. 시날 땅은 바벨론의 전통적인 이름입니다. 전설적인 사냥꾼 니므롯의 활동 무대인(창 10:10) 시날 땅은 소위 바벨탑이 건설된 곳이고(창 11:2), 스가랴의 환상에서는 악이 추방되는 곳입니다(슥 5:11). 다니엘서에서 부정적 함의를 갖고 사용됐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바벨론을 가리키는 전통적인 용어이기에 사용했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신학적 의도에서 바벨론을 시날 땅으로 표현했다면, 이야기의 무대를 여호와 신앙에 적대적인 악의 세력이 웅거하다가 심판받은 시날 땅으로 지칭함으로써 처음부터 유배민들이 여호와 신앙에 적대적인 세력에 둘러싸여 당하게 될 시련과 승리를 암시적으로 보여줍니다.
왕궁의 교육생으로 뽑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3-7)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선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방법으로 그를 섬기도록 하십니다. 반면, 악한 사람은 악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위해 선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결국, 각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3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4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5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6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7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3-7)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의 유혹과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야 함을 강조합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벨론에서의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신앙과 원칙을 지키며,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지식을 통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 이스라엘 소년을 선발하라는 왕령(3)
왕은 궁전의 고위 관료인 환관장 아스나스에게 이스라엘의 유배민들 가운데서 왕족과 귀족 출신의 총명한 소년들을 발탁하여 왕궁에서 일할 수 있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합니다.
(2) 선발 기준(4)
선택의 기준으로 세 가지 지침이 주어집니다. 첫째는 신분과 관련한 것으로, “왕족과 귀족” 출신이어야 합니다. 왕족이나 귀족에 속한 포로들을 교육하고 대접해 충성스런 신하로 만들어 활용하는 일은 고대 세계에서 드물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외모와 관련한 것으로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운” 소년이어야 합니다. “흠이 없고”는 레위기에 제의적 용어로 등장하지만, 제의와 상관없는 문맥에서도 사용됩니다. 사무엘하 14:25 압살롬의 외모를 소개하면서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말하고, 아가 4:7에서 솔로몬은 자기 신부를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하고 말합니다. 아름다움은 자주 왕의 외모를 묘사하는데 사용되는 표현으로(참조, 삼상 9:2; 16:12; 왕상 1:6), 미학적 평가를 넘어 자질의 충분함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셋째는 능력과 관련한 것으로,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한” 소년이어야 합니다. 교육 내용이 아카드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오래되고 방대한 종교적 전통이기에 남다르게 뛰어나지 않으면 이수할 수 없습니다.
선발된 이스라엘 소년들이 배워야 할 분야는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였습니다. “학문”은 글로 기록된 문서를, “갈대아 사람의 언어”는 아카드어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소년들이 바벨론의 옛 언어인 아카드어로 기록된 문서, 곧 점쟁이를 위한 전문적 문헌을 읽을 수 있게 훈련을 받습니다. 20절은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바벨론의 박수와 술객으로 교육받았음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3) 왕의 음식과 포도주(5)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 “왕 앞에 서게 될” 소년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가 양식으로 주어집니다. 교육생들은 3년 동안 매일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를 먹습니다. 사무엘하 11:8에 의하면 다윗은 우리아에게 왕의 음식물을 하사합니다(참조, 왕하25:29-30). 왕이 음식물을 신하에게 나눠주는 전통은 신하를 왕에게 예속시키는 일종의 성례전적 성격을 갖는 풍습입니다. 왕이 주는 음식을 먹는 자는 왕에게 속한 신하로서 왕에게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바벨론에서 3년의 교육 기간이 일반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전체 교육은 보통 5-7세에 시작해서 16-24세 사이의 어느 시점까지 계속됐던 것 같습니다. 왕실의 후계자를 위한 높은 수준의 교육은 14세에 시작했습니다. 3년은 아카드어를 모르는 사람이 언어를 새로 배워 바벨론의 광범위한 학문을 익히기에는 너무 짧은, 하나님의 도움에 의해서만 가능한 기간입니다. 17절은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4)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6)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온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유다 출신의 네 소년 이름이 특별히 언급됩니다. 3절의 “이스라엘 자손”이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를 포함한다면, “유다 자손”은 네 소년의 집안이 유다 지파에 속했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집안이 중요했던 고대 세계에서는 인물을 소개할 때 보통 아버지의 이름을 함께 알려주는데, 여기서는 당사자의 이름만 언급됩니다. ‘유다 자손 가운데서’는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특정 집안에 속한 인물이 아니라 전체 유다에 속한 인물임을 시사해줍니다.
(5) 바벨론식 개명(7)
교육을 책임진 환관장이 네 소년의 이름을 벨드사살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로 바꿔줍니다. 아마도 바벨론 왕궁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바벨론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개명은 바벨론의 권력에 종속된 네 소년의 처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바벨론 왕궁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지만, 자기 이름도 마음대로 주장할 수 없는 피정복민에 불과합니다. 특이하게도 다니엘은 왕의 음식에 관해서는 적극적으로 저항하는데(8-16), 이스라엘의 신명 ‘엘’(하나님) 또는 ‘야’(여호와)를 포함하는 히브리 이름이 바벨론 세계에 적합한 이교적 이름으로 바뀐 것에는 달리 반응하지 않고 이를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3장도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의 히브리어 이름 대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바벨론식 이름을 사용합니다. 이름을 바꾸는 행위가 이스라엘의 신학적 전통에 반하는 일이 아니었음을 전제합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창씨 개명 같은 지배 권력에 의해 강제된 집단 개명은 고대 근동에 없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의 환관장에 의한 일방적 개명은 이들만의 문제로, 유배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개인적 결정에 따라, 특히 이방인들 가운데서 정치적으로 활동할 때 이방식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여호야긴의 손자로 제2성전을 완공시킨 스룹바벨은 ‘바벨의 싹’을,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는 ‘마르둑의 숭배자’를 의미합니다. 에스더는 별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스타’라 또는 바벨론의 사랑의 여신 ‘이쉬타르’에서 온 이름입니다.
요약하자면, 이방적·이교적 환경에 온전히 노출된 유배민들에게 개명은 정치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선택지였고, 음식 규정의 준수는 민족적·종교적 정체성 유지의 필요조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 신앙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인도하십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벨론의 문화와 압박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들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하나님의 말씀과 원칙을 따르며 살아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신앙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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