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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09-01)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

스가랴 9장 1-8절


 

하나님께서는 열국을 심판하시며, 그의 백성을 철통같이 지켜주실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 백성을 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왕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심으로 가능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적을 심판하고 언약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는 겸손한 왕이자 목자이시며, 대적에게는 강력한 용사이십니다.

 

  • 스가랴 7-8장이라는 한 단위의 메시지가 끝나고 9장에서 새로운 단락이 시작됩니다. 이 주제는 예루살렘의 구원이라는 주제는 변함없이 계속됩니다. 갑작스럽게 1-8절에서 온 민족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가운데 정의가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다른 예언서에서도 등장하는 메시지입니다.

 

이웃 나라에 대한 심판(1-8)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과 국가에 대한 주권을 가지십니다. 그들은 각자의 행동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심판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의와 공의를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올바르게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1여호와의 말씀이 하드락 땅에 내리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봄이니라 2그 접경한 하맛에도 임하겠고 두로와 시돈에도 임하리니 그들이 매우 지혜로움이니라 3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요새를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도다 4주께서 그를 정복하시며 그의 권세를 바다에 쳐넣으시리니 그가 불에 삼켜질지라 5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어질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주민이 없을 것이며 6아스돗에는 잡족이 거주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7그의 입에서 그의 피를, 그의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거하리니 그들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지도자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8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가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1-8)

 

스가랴 1-8장까지 1부를 마친 다음, 9-14장까지는 미래의 메시아의 나라에 대한 다양한 모습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먼저 9-11장까지는 장차 오실 겸손하실 메시야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12-14장으로 미래에 메시아의 나라에 대한 또 다른 모습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스가랴의 주요 내용
1-8장 9-14장
메시아의 왕국을 위한 준비 메시아의 오심을 통한
구원과 통치

 

9장 1-8절은 이웃 나라 곧 온 민족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며, 9절 이후에서 본격적인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런 양상은 아모스서와 비슷합니다. 아모스서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향해 심판 메시지를 전하기 전에 온 민족에 대한 심판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웃 나라에 대한 심판은 곧 이스라엘에게는 회복과 복의 메시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모스서에서는 온 민족에 대한 심판이 유다와 이스라엘에 경고가 되는 메시지였습니다. 유다와 이스라엘 온 민족과 다를 바가 없는 죄를 지었고, 또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온 민족과 마찬가지로 심판 메시지를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온 민족에 대한 심판은 공의의 차원에서 죄악에 대한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함이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온 땅에 전달되고, 그런 거룩함을 닮아 거룩한 모습이 열방에게서 드러나기를 바라십니다. 온 민족이 거룩함과 거리가 먼 삶을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리지 못한 이스라엘의 책임입니다. 이스라엘이 복의 근원이 되어 복을 전달해야 하며 제사장 나라가 되어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열방에 대한 심판을 단순히 이스라엘을 세워주기 위한 방편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한편, 심판 대상이 유다와 먼 이웃 나라에서 점차 가까운 나라로 이동하는 패턴은 아모스서에서도 비슷하게 묘사되는데, 유다도 예외 없이 심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 여호와의 말씀(1)

 

12:1에서는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라고 번역했지만, 여기서는 ‘맛사’의 번역을 생략했습니다.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맛사는 일부 본문에서 제목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잠 30:1; 31:1; 왕하 9:25: 렘 23:33-34; 말 1:1). 여기서도 역시 새로운 단락을 시작하면서, 아마도 제목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 북쪽 나라: 하드락, 다메섹, 하맛(1-2a)

 

하드락은 다메섹 북쪽에 위치한 시리아와 아람 지역의 도시입니다. 다메섹은 시리아의 수도이기도 하고, 페르시아 제국 시대에는 유다 지역을 다스리는 총독이 거주하던 도시입니다. 하맛은 시리아의 주요 도시이며, 본문(1절과 함께)에서는 다메섹의 접경지대에 하맛이 위치한 것으로 소개됩니다. 이방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가 임했다고 하는 것은 이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봄이니라’라는 표현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키’가 있습니다. 앞의 ‘여호와의 말씀이 하드락 땅에 내리며 다메섹에 머물리니’라는 표현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따라서 학자들은 70인역에 근거하여 사람들이 여호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문맥상으로는 여호와의 주권적 행사를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지중해 해안(북쪽) : 두로, 시돈(2b-4)

 

두 도시 두로와 시돈은 베니게(페니키아) 지역에서 중요한 두 도시로 나란히 등장합니다. 에스겔에서도(27:8) 두로의 ‘지혜자’들을 언급한 바 있는데, ‘그들이 지혜로움이니라’라는 표현은 냉소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3절에서처럼 두로는 요새를 건축하고 금과 은을 쌓으며 지혜롭게 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지혜로움은 소용이 없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두로의 특징으로 ‘자기를 위하여 요새를 건축하며’라고 했는데, 이 표현은 당시 두로의 상황과 잘 어울립니다. 앗수르의 공격을 5년(주전 622년에 끝남)과 13년(주전 572년에 끝남; 겔 29:18)동안 버텼습니다. 두로는 그만큼 요새로서의 자연적 입지 조건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명성이 있더라도 여호와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될 것입니다(9:4, ‘주께서 그를 정복하시며’). 두로의 명성에는 요새뿐만 아니라 금과 은도 포함되는데, 여기서는 이것들이 ‘티끌’과 ‘진흙’과 같다고 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부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그것도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될 것입니다.

 

4절의 ‘주께서 그를 정복하시며’라는 표현 앞에 ‘보라!’를 의미하는 불변화사 ‘힌네’가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두로와 시돈을 정복하심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또한 지혜롭다고 하는 두로와 시돈의 군사적 요새와 재물이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두로를 심판하는 메시지는 흥미롭습니다. ‘그의 권세를 바다에 쳐넣으시리니’라는 표현은 두로가 정복당하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본래 두로는 육지에도 성읍을 두고 섬에도 성읍을 두어 좀처럼 공략하기가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은 주전 332년에 육지를 먼저 점령한 후, 거기에서 나온 건축폐기물로 섬에 있는 성읍까지 연결해 두로를 멸망시켰습니다.

 

(3) 블레셋 도시 국가: 아스글론, 가사, 아스, 에그론(5-8)

 

앞의 나라들에 대한 심판 메시지와는 다르게, 블레셋 도시 국가들이 당하는 고통의 내적 심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호와의 심판이 북쪽에서부터 유다에 가까운 나라로 임박하면서 그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을 것입니다(참조. 신 2:25). 이 도시 국가들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들입니다. 지리적 순서의 원근에 따라 언급되는 순서가 결정되었습니다.

6절의 ‘잡족’은 아스돗이 다른 민족에게 멸망 당하게나 쫓겨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만’은 사람이 자랑하거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가리킵니다(사 13:19; 호 5:5;7:10). 여기서는 블레셋이 지금까지 쌓아온 영광이나 자랑 모두를 가리키며, 이것들을 끊겠다는 심판의 메시지를 뜻합니다. 여기서 단순히 교만은 마음의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쌓은 구체적인 업적과 관련됩니다. 블레셋의 업적은 그들을 교만한 상태로 몰아갔습니다.

7절은 온 민족의 심판과 더불어 구원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는 8:20-23에서도 밝혔듯이 열방이 여호와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장면과 일치합니다. ‘가증한 것’은 우상에 바친 제물로 보입니다. 이는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바친 자들이 나누어 먹음으로써 이 사이에 낀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거하리니’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블레셋에게서 가증한 것을 제거함으로써 ‘그들도 남아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그 결과를 보게 됩니다. 곧 블레셋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임을 뜻합니다. 이는 하나님 자신의 백성뿐만 아니라 온 민족을 구원하시겠다는 종말론적 메시지에 해당합니다. ‘유다의 한 지도자 같이 되겠고’라는 표현은 블레셋을 구원하는 것을 점진적으로, 그리고 최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죄와 우상을 제거하는 일, 그리고 남은 자를 두는 일, 이제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유다에 합류하여 지도자까지 되는 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이방인과 유대인의 경계는 무너질 것입니다(참조. 롬 11:17-18).

‘여부스 족속’(8)은 산지에 살았으며(수 11:3), 다윗이 쫓아내기 전까지는 예루살렘 성읍을 차지했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여부스 족속은 유다 족속에 흡수되어 일꾼이 됐습니다(대하 8:7-8).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라는 표현은 여부스 족속이 유다 족속이 아니었으나 그들이 이스라엘에 흡수된 것처럼, 블레셋도 이와 비슷한 운명이 될 것을 시사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과 국가에 대한 주권을 가지시며, 그들의 행동에 따라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이해해야 합니다. 역사 속에서 적극적으로 일하시며, 그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행동으로 이어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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