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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에세이(01)


하나님의 가족으로 초대

- 요한복음 1 1-18절


 

세상에는 수많은 말이 떠돕니다.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고, 어떤 말은 비수가 되어 가슴을 후빕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통틀어 단 하나의 말씀을 꼽으라면, 우리는 주저 없이 요한복음 1장의 서두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곳에는 시간이 시작되기 전부터 계셨던 한 존재가, 차가운 육신의 옷을 입고 우리 곁으로 걸어 들어온 경이로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침묵을 뚫고 나온 첫 마디, “생명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이 말씀은 고요한 철학적 사유가 아니었습니다. 만물을 존재하게 한 역동적인 에너지였으며, 어둠을 가르고 솟구친 빛이었습니다. 요한은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은 때로 생명력을 잃은 무채색과 같습니다. 반복되는 실패, 관계의 단절, 그리고 죽음이라는 실존적 공포 앞에서 인간의 언어는 무력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선포합니다. 그 어떤 어둠도 이 빛을 이길 수 없다고 말입니다. 우리 안에 꺼지지 않는 생명의 불씨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참 빛이신 그분이 우리 영혼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낯선 방문객, 그리고 영접의 용기

가장 슬픈 구절은 11절입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창조주가 피조물의 세상에 손님처럼 찾아왔지만,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기득권의 성벽을 쌓느라, 혹은 먹고사는 일의 분주함에 매몰되어 정작 생명의 주인을 문밖에 세워둔 셈입니다.

하지만 신앙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그 낯선 방문객을 나의 삶으로 모셔 들이는 영접의 용기입니다. 요한은 이를 권세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혈통으로 쟁취하는 자격증이 아닙니다. 그저 그분의 이름을 믿고 마음의 빗장을 푸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이 권세는 세상의 권력과는 다릅니다. 이는 무너진 자를 다시 일으키고, 증오를 사랑으로 바꾸며, 죽음 너머의 영원을 바라보게 하는 하늘의 능력입니다.

 

우리 사이에 텐트를 치신 하나님

14절은 이 에세이의 절정이자 기독교 신앙의 심장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여기서 거하다는 말은 장막을 치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이 죄로 얼룩진 인간의 동네에 당신의 텐트를 나란히 치셨다는 사실은 얼마나 파격적인가요? 그분은 고결한 상아탑에 앉아 훈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겪는 배고픔, 외로움, 배신감, 그리고 육체의 고통을 고스란히 겪으시며 우리 곁에서 숨 쉬십니다. “나도 안다, 나도 겪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임재야말로 우리가 고난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은혜라는 이름의 파도

율법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를 보게 합니다. 요한은 이를 은혜 위에 은혜라고 묘사했습니다. 이는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한 번의 은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겹겹이 쌓이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분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그분의 눈물을 통해, 그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봅니다. 그 얼굴은 심판자의 얼굴이 아니라, 돌아온 탕자를 안아주시는 자애로운 아버지의 얼굴입니다.

 

글을 맺으며

요한복음 11-18절은 단순한 교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는 초청장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분은 오늘도 우리 삶의 좁은 골목길에 텐트를 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독자 여러분, 오늘 하루 당신의 마음 한 켠을 그분께 내어드리면 어떨까요? 세상의 소란을 잠재우고 내 안에 찾아오신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충만한 은혜와 진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빛은 이미 와 있고, 어둠은 결코 그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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