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요한복음(10)

가면을 벗고 대면하는 참된 예배
-요한복음 4장 15-26절-
“그 물을 내게 주소서” : 갈증의 전이
사마리아 우물가, 유대인 청년 예수와 이름 없는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는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여인은 간절히 요청합니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15절)
이 요청은 얼핏 보면 편리한 삶을 향한 욕망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뙤약볕 아래 무거운 물동이를 지고 사람들의 눈총을 피해 우물을 찾아와야 하는 그 고단한 일상을 끝내고 싶다는 절규입니다. 그러나 이 호소의 이면에는 육체적 노동보다 더 무거운 ‘삶의 허무’와 ‘존재론적 갈증’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더 좋은 환경, 더 편안한 생활을 위해 기도하지만, 사실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환경의 개선이 아니라 우리 영혼을 짓누르는 근원적인 목마름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네 남편을 불러오라” : 직면해야 할 나의 민낯
여인의 요청에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던지십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16절) 이 구절은 복음서에서 가장 날카로운 질문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왜 갑자기 그녀의 아픈 과거와 사생활을 들추시는 걸까요? 그것은 참된 생명수를 마시기 위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자신에 대한 정직한 직면’이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며 짧게 답합니다. 사실이지만 모든 것을 드러내지는 않은, 방어적인 진실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녀의 감추고 싶은 생애를 관통하십니다.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고 지금 사는 이도 남편이 아니라는 그 아픈 진실을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 지적은 정죄가 아니라 ‘해방’을 위한 빛입니다. 여인은 지금까지 여러 남편을 통해 자신의 갈증을 해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남자도, 그 어떤 관계도 그녀의 속사람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녀가 붙들고 있던 썩은 동아줄과 같은 ‘대체물’들을 들추어내어, 이제는 그 헛된 노력을 멈추고 참된 구원자를 바라보라고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예배, 장소의 문제를 넘어 존재의 문제로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자 여인은 당황하며 화제를 전환합니다. 그녀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해묵은 논쟁거리인 ‘예배 장소’에 대해 묻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20절)
이는 본질을 피하려는 종교적 회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배의 진정한 정의를 내려주십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21절) 예수님은 예배를 ‘어디서(Where)’ 하느냐의 문제에서 ‘누구에게(Whom)’, 그리고 ‘어떻게(How)’ 하느냐의 문제로 옮겨 놓으십니다.
참된 예배는 특정한 장소나 형식에 갇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24절) 여기서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인간의 꾸며진 겉모습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나의 가장 정직한 상태(진리)로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면을 벗고, 숨겨둔 ‘남편’과 같은 우상들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창조주 앞에 서는 것, 그것이 바로 예배의 본질입니다.
“내가 그니라” : 기다림의 끝에서 만난 메시아
대화가 깊어지자 여인은 고백합니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25절) 그녀의 지식은 관념적이었고 그 기대는 막연한 미래에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자기 계시를 하십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26절)
멀리 계신 줄 알았던 하나님, 미래에나 오실 줄 알았던 구원자가 지금 내 눈앞에서, 나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다 아시면서도 여전히 사랑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대화하고 계신다는 사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여인은 더 이상 물동이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내면에서 드디어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이 솟구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결론 : 당신의 우물가에서 들려오는 음성
우리는 모두 사마리아 여인과 닮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남편(우상)'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살며, 그것이 나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고 반복해서 우물가를 찾습니다. 그리고는 본질적인 신앙의 문제보다는 장소나 형식, 종교적 지식이라는 껍데기 뒤에 숨으려 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당신의 우물가에 앉아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아픈 곳을 정확히 짚어내시며 물으십니다. “네가 지금 의지하고 있는 그것이 정말 너를 행복하게 하느냐?”
이 질문은 당신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그 지독한 갈증에서 건져내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의 축복 속으로 초대하시려는 사랑의 음성입니다. 이제 낡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지금 당신 곁에서 말씀하시는 그분, “내가 그니라”고 선언하시는 그리스도를 대면하십시오. 그분과 마주 앉는 그 자리가 바로 당신의 인생이 변하는 가장 거룩한 예배의 처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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