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요한복음(11)

고립된 성읍을 깨운 복음의 메아리
-요한복음 4장 27-42절-
침묵을 깨는 파격, 물동이를 버려둔 결단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이어진 예수와 여인의 대화가 절정에 달했을 때, 제자들이 돌아옵니다. 그들은 스승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생경한 장면에 당혹감을 느끼지만, 그 파격적인 권위에 눌려 감히 이유를 묻지 못합니다. 바로 그 침묵의 찰나, 본문에서 가장 역동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28절)
여기서 ‘물동이’는 단순한 가재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녀를 우물가로 끌어당기던 생존의 집착이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정오의 뙤약볕 아래 홀로 서게 했던 수치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를 대면한 순간, 그녀는 평생 자신을 옭아매던 결핍의 상징을 미련 없이 내던집니다. 참된 생명수를 맛본 자에게 더 이상 세상의 두레박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경험한 영혼은 이처럼 소중히 여기던 ‘나만의 성벽’을 허물고 타인을 향해 뛰어가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와서 보라” : 수치심이 변하여 증언이 되다
동네 사람들을 피해 숨어 지내던 여인이 역설적으로 그 동네 한복판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29절).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의 과거를 아는 이들의 눈길을 두려워하던 그녀가, 이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는 분을 만났다는 사실을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신비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완벽한 사람으로 포장해주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상처와 과거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보여주는 생명의 빛입니다. 그녀의 짧은 한마디, “와서 보라(Come and see)”는 논리적인 설득보다 강렬했습니다. 진실한 변화는 그 어떤 신학적 변증보다 강력한 전염력을 가집니다. 그녀가 버려둔 물동이의 무게만큼, 그녀의 외침은 사마리아인들의 닫힌 마음을 거세게 두드렸습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영적 추수의 시급함
동네 사람들이 예수를 향해 몰려오는 동안, 우물가에서는 예수와 제자들 사이에 또 다른 대화가 오갑니다. 먹을 것을 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양식은 곧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눈앞의 배고픔보다 영혼의 갈급함을 채우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35절). 제자들은 그저 사마리아라는 척박한 땅, 상종하기 싫은 이방의 땅만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곳에서 복음에 굶주려 이미 하얗게 익어버린 영혼의 곡식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안 된다’고 포기한 그곳, ‘가망 없다’고 고개를 돌린 그 현장이 사실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가장 뜨거운 추수터일 수 있음을 성경은 엄중히 경의합니다.
들음에서 경험으로 : 신앙의 개인적 내면화
여인의 증언을 듣고 몰려온 사마리아인들은 예수께 청하여 이틀을 더 머물게 합니다. 그리고 이 기간을 통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처음에 여인의 말을 듣고 믿었던 이들이 이제는 직접 예수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알듦이라”(42절).
신앙의 여정에는 반드시 이 단계가 필요합니다. 누군가의 간증이나 부모의 신앙, 혹은 목회자의 설교를 통해 ‘들어서 아는 단계’를 넘어, 하나님을 ‘친히 대면하여 경험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마리아인들은 편견의 벽을 허물고 예수와 이틀간 함께 머무르며 그분의 인격과 진리에 젖어 들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는 유대인만의 메시아가 아닌 ‘세상의 구주’로 고백되었습니다. 가장 소외된 땅 사마리아가 전 세계를 향한 복음의 보편성을 선포하는 전초기지가 된 것입니다.
결론: 당신의 성읍을 깨우는 메아리가 되십시오
요한복음 4장은 고립된 한 여인으로 시작해, 온 성읍의 축제로 끝이 납니다. 한 사람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갔을 때, 혐오와 편견으로 가득했던 사마리아는 생명의 환희로 가득 찼습니다.
오늘 당신이 버려두어야 할 물동이는 무엇입니까? 과거의 상처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시선입니까? 혹은 나만의 안락함 속에 안주하려는 영적 게으름입니까?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눈을 들어 밭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가족, 당신의 직장, 당신이 속한 공동체는 이미 복음의 빛을 기다리며 하얗게 익어 있습니다.
이제 당신의 성읍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만난 예수, 당신의 갈증을 해갈해주신 그분을 “와서 보라”고 외치십시오. 당신의 정직한 증언이 누군가에게는 예수와 직접 대면하게 하는 징검다리가 될 것입니다.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사마리아인들이 빛으로 걸어 나왔듯, 당신의 용기 있는 한 걸음이 메마른 이 세상에 영원한 샘물이 흐르게 하는 기적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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