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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요한복음(13)


낫고자 하는 의지와 찾아오시는 은혜

-요한복음 51-15-


예루살렘 양문 곁에 위치한 베데스다(Bethesda)’는 히브리어로 자비의 집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묘사하는 그곳의 풍경은 이름과는 사뭇 다릅니다. 수많은 병자와 장애인들이 모여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할 때 가장 먼저 뛰어 들어갈 행운만을 기다리던 그곳은, 사실 자비보다는 처절한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누군가 치유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누군가를 앞질러야만 하는 이 역설적인 장소는, 오늘날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세상을 거울처럼 비추어 줍니다.

 

절망이 일상이 된 38년의 시간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주님의 시선은 한 사람에게 머뭅니다. 바로 38년 동안 병마에 갇혀 지낸 한 남자였습니다. 38년이라는 세월은 단순히 긴 시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꿈이 마모되고 소망이 화석화되어, 마침내 자신의 고통조차 무기력한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된 절망의 깊이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뜻밖의 질문을 던지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치유를 바라고 그곳에 누워 있는 자에게 던지기엔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그의 무너진 마음 중심을 꿰뚫는 부르심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병상에 누워 지내며 그는 낫고 싶다는 갈망보다는 환경 탓남 탓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의 대답을 보십시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그는 자신의 무능력과 타인의 무관심을 한탄할 뿐, 눈앞에 계신 생명의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세상의 방식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자리를 들고 일어나는 순종의 능력

 

예수님께서는 그의 구차한 변명에 일일이 대꾸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즉각적이고 단호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 말씀은 선포되는 순간 역사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를 물속으로 밀어 넣어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병자가 집착하던 베데스다의 규칙을 완전히 넘어서서, 오직 말씀이라는 새로운 생명의 법으로 그를 살려내셨습니다. 그가 들고 일어난 자리는 어제까지 그를 묶어 두었던 실패의 상징이자, 그가 벗어날 수 없었던 한계의 경계선이었습니다. 이제 그 자리는 더 이상 그를 짓누르는 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승리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삶의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기다립니다. 누군가 나를 도와주기를, 혹은 행운의 물결이 나에게 먼저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베데스다 행각 아래 누워 있곤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복은 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반응하여 지금 누워 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안식의 참된 의미와 온전한 회복

 

이 기적 이후 유대인들과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38년 된 병자가 치유받았다는 생명의 환희보다,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는 형식적 규칙에만 집착했습니다. 그들에게 안식일은 굴레였으나, 예수님께 안식일은 고통받는 영혼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참된 쉼의 날이었습니다.

주님은 이후 성전에서 그를 다시 만나 말씀하십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말씀은 육체의 치유보다 더 시급한 것이 영혼의 구원임을 일깨워 줍니다. 진정한 치유의 완성은 단순히 몸이 건강해지는 것을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죄의 습성에서 벗어나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가는 글: 당신의 베데스다는 어디입니까?

 

오늘날 우리도 각자의 베데스다에 누워 있을지 모릅니다. 돈이나 명예, 혹은 타인의 인정이라는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며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물으십니다. 네가 진정으로 낫고자 하느냐?”

신앙은 요동치는 세상의 물결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 변치 않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제 남 탓과 환경 탓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십시오. 우리를 억누르던 절망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십시오. 38년의 어둠을 단번에 끝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삶의 진정한 안식이자 유일한 소망이십니다과거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주님과 함께 성전을 향해 걸어가는 복된 성도들의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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