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요한복음(09)

결핍, 그리고 영원한 갈증의 해갈
-요한복음 4장 1-14절-
사마리아, 금기된 땅을 향한 의도적인 발걸음
유대의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를 내리쬐는 정오,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향하는 여정 중 ‘사마리아’라는 땅을 통과하기로 결심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는 부정함의 상징이었고,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결코 발을 들이지 않는 기피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라는 표현을 통해, 이 여정이 우연이 아닌 신성한 목적을 가진 ‘의도적인 만남’이었음을 시사합니다.
우리 인생에도 반드시 지나가야만 하는 ‘사마리아’가 있습니다.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상처, 소외된 기억, 혹은 사회적 통념 때문에 외면하고 싶은 내면의 어두운 골짜기 말입니다. 예수는 바로 그곳, 가장 소외되고 버려진 곳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한 여인을 기다리십니다.
정오의 고독, 우물가에 앉은 여인의 갈증
야곱의 우물가에 한 여인이 나타납니다. 그녀가 물을 길으러 온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제육시(정오)’였습니다. 보통 여인들이 서늘한 저녁에 함께 모여 물을 긷는 것과 대조적으로,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가장 뜨거운 태양 아래 홀로 서 있었습니다. 이는 그녀가 겪고 있었을 사회적 고립과 말할 수 없는 내면의 수치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녀에게 ‘물’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인 동시에, 매일 반복해야 하는 고단한 노동의 굴레였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진짜 목말랐던 것은 육신의 갈증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비난 섞인 시선, 채워지지 않는 관계의 공허함, 그리고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존재론적 고독이 그녀를 사마리아의 뙤약볕보다 더 뜨겁게 달구고 있었습니다. 현대인들 역시 각자의 ‘우물가’에 서 있습니다. 성공, 명예, 소유라는 두레박을 던져 끊임없이 물을 길어 올리지만, 돌아오는 것은 여전한 목마름뿐입니다.
“내게 물을 좀 달라” : 신의 겸손한 손길
예수님은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건네십니다. “내게 물을 좀 달라.” 이 짧은 부탁은 당시의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는 파격이었습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에게, 남성이 여성에게, 그리고 랍비가 죄인이라 손가락질받는 여인에게 말을 거는 것은 당대의 상식을 뒤엎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결핍을 가진 자로서 그녀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이는 신이 인간에게 다가오는 지극히 겸손한 방식입니다. 그분은 정죄하거나 가르치려 들기 전에, 그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인 것처럼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이 '부탁'은 여인의 닫힌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신앙은 우리가 신을 위해 무엇을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시는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의 우물과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
예수님은 여인의 의구심 섞인 질문에 답하시며, 비로소 이 만남의 본질을 드러내십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세상이 주는 물은 마실 때뿐입니다. 갈증을 잠시 잊게 할 뿐, 결코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매달리는 세상의 가치들은 마시면 마실수록 더 큰 갈증을 유발하는 ‘소금물’과 같습니다. 반면, 예수께서 약속하신 물은 밖에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시는 자의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그것은 외부 환경이나 조건에 지배받지 않는 근원적인 생명력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4절) 이 말씀은 신앙이 단순히 갈증을 해소하는 소극적 행위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근원을 바꾸어 놓는 창조적인 역사임을 선포합니다.
결론 : 당신의 두레박을 내려놓을 시간
오늘날 우리는 무수히 많은 우물을 파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어떤 우물도 영혼의 갈증을 온전히 해갈해주지 못합니다.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정오의 뙤약볕 아래 홀로 서 계십니까? 채워도 채워도 가시지 않는 공허함 때문에 반복적으로 세상의 두레박을 내리고 계십니까?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여인을 기다리셨던 주님은 지금 당신의 인생 곁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이십니다. “네가 마시는 그 물로는 다시 목마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주는 생명수를 마신다면, 너의 내면은 결코 마르지 않는 샘이 될 것이다.”
이제 낡은 두레박을 내려놓고 그분 앞에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나의 결핍을 감추기보다 그분께 내어 보일 때, 우리는 비로소 ‘다시 목마르지 않는’ 참된 자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당신의 메마른 일상 위에, 영원히 솟아나는 생명의 샘물이 흐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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