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02-02)
라합의 믿음과 구원의 이야기
여호수아 2장 15-24절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편안하게 안주(安住)하는 것을 원합니다. 한 곳에 자리를 잡고 편안히 사는 것이나 현재의 상황이나 처지에 만족한 삶을 사는 것을 원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위치(position)이나 지키고 안주하려는 자세는 편안함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현대인들은 주변 환경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을 살다보니깐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 민수기와 신명기 둘 다에서 정탐 활동 자체를 무제 삼고 비난하는 분위기는 전혀 감지되지 않습니다. 다만 정탐 활동 후 그들의 불신과 낙심,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는 태도를 질책하고, 그것 때문에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평가합니다. 현재의 여리고성 정탐 활동과 이어지는 아이 성 탐색 자체에 대해서 여호수아서는 아무런 부정적 평가를 내리지 않으며 오히려 장당하고 필수적인 활동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정탐꾼들의 탈출(15-16)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성장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안주하는 것은 편안함을 줄 수 있어도 절대 성장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성장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장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본문의 라합 여인을 통해 그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15○라합이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 내리니 그의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주하였음이라 16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뒤쫓는 사람들이 너희와 마주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서 사흘 동안 숨어 있다가 뒤쫓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의 길을 갈지니라(15-16)
라합은 지체 없이 정탐군들을 탈출시킵니다. 성문이 닫혔을 뿐 아니라 그들의 신분이 드러나 성중에 소식이 퍼졌을 것이기에 은밀한 탈출이 필요했습니다. 날은 어두워져 눈에 띄지 않는 성벽을 통한 탈출을 감행하였습니다. 라합의 집은 ‘성벽 위에’ 있었습니다. 문자적 의미는 ‘그녀의 집은 성벽에 있었고 그녀는 벽에 살고 있었다’입니다. 대부분의 번역들이 매우 모호합니다. 특별히 그녀의 집이 ‘성벽의 바깥쪽에 있었다’는 번역은 여리고 성의 성벽이 이중 구조였다는 사실에 기반한 번역으로 보입니다. 어떤 형식으로 집이 지어져 있든지 간에, 그녀의 집이 안쪽 성벽이 아닌 바깥쪽 성벽 바로 위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은 그녀가 자신의 집 창문에서 성벽으로 곧바로 줄을 달아 내렸다는 사실에서 확인됩니다. 라합은 두 정탐꾼을 자신의 집의 창문으로부터 줄을 매달아 탈출시킵니다. 날이 어두워졌고 인적이 드문 성벽 근처라는 특징으로 인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합은 그들에게 수색대를 피해 산으로 올라가 사흘간 숨어 지내라고 충고합니다. 라합의 말은 여리고 군인들의 수색 활동이 매우 철저하고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정탐꾼들과 라합의 서약(17-21)
우리는 약속을 지키고 신뢰를 바탕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그분의 보호와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단순한 말로 끝나지 않고 실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믿고 확신을 가질 때, 그분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신앙 생활에서 중요한 원칙입니다.
17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리니 18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19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가서 거리로 가면 그의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손을 대면 그의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20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하니 21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17-21)
정탐꾼들은 라합과 약속한 서약에 대한 보증의 징표, 곧 앞서 라합이 요구했던 징표를 제시합니다. 그 징표와 더불어 정탐꾼들은 서약에 대한 책임을 다함으로써 라합에게 무슨 일이 발생할 경우 면책될 것입니다. 그 징표는 붉은 줄입니다. 정탐꾼들은 라합에게 온 가족과 친족이 함께 구출되도록 그녀의 집에 모여 있을 것을 당부합니다. 성경에서는 여러 차례 한 사람으로 인해 가족이 연대 구원을 얻는 사례가 나타납니다(예,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 노아와 그의 가족; 라합과 그녀의 가족; 사도행전에서 고넬료와 그의 가족 등). 또한 한 사람으로 인해 가족 전체가 망하기도 합니다(예. 아간과 그의 가족). 마치 구원의 문제에서 연좌제가 적용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동시에 멸족에서 개인의 결단으로 생명을 얻는 사례도 존재합니다(예. 고라의 아들들). 특별히 고라의 아들들이 구원을 얻은 사례는 구약에서도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결국 가족과 공동체의 연대보다는 개인의 결단이 최종적이고 궁극적 기준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라합의 가족과 가까운 친족들은 나중에 결국 라합의 집에 한데 모임으로써 모두 구원을 얻는다. 가족들 각자의 선택에 의한 결과라 볼 수 있습니다(민 26:10-11; 대상 9:19;20:9).
여기서 왜 정탐꾼들은 ‘붉은 줄’을 징표로 제시했습니까? 분명 이 붉은 줄은 구원의 생명줄이었습니다. 히브리어 ‘티크봐’가 ‘희망’이라는 뜻의 단어이기도 하므로 학자들은 이 단어가 의도적으로 여기서 사용된 것으로 봅니다. ‘티크봐’가 ‘끈’으로 사용되는 것은 여호수아의 이 본문에서만 나타납니다(수 2:18,21). 여기서 ‘희망’과 ‘끈’의 의도적 연결은 라합과 그의 가족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줄인 소망의 끈이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정탐꾼들은 ‘붉은 줄’을 매달라 했습니까?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그 줄이 정탐꾼들을 탈출시킨 밧줄이었을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라합이 내린 밧줄(헤벨)과 그 붉은 줄(후트)은 각각의 히브리어가 다르고 본문의 대화를 통해서 ‘붉은 줄’은 정탐꾼들이 단순히 성벽에 달아맬 표징으로 건네준 것으로 추론됩니다. 어떤 사람은 원래 창녀의 집 표시로 평소에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달아 놓았다는 견해를 내놓지만 증거가 없으며, 그 경우 다른 창녀들의 집에도 붉은 줄이 달려 있었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라합의 집을 특정하는 표시 기능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앞서 말한 대로 정탐꾼들의 ‘이 붉은 줄을 매라’는 말에서 그 줄은 정탐꾼들이 건넨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이 ‘붉은 줄’에서 그리스도의 ‘붉은 피’를 찾으려 합니다. 그리스도의 붉은 피가 생명을 구원한 피라는 것이 이 생명줄인 ‘붉은 줄’에 암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 붉은 줄은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한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함부로 판단하기 어려운 해석인데, 일단 성경에서 ‘붉은 색’이 언제나 자동적으로 ‘피’와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붉은색’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피를 암시한다는 과도한 풍유적 해석은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 ‘붉은 줄’의 기능을 볼 때 피와의 관련성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출애굽 시 유월절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양의 피를 좌우 문설주와 문 상인방에 바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붉은 피’는 그 집안에 있는 가족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모든 장자를 죽인 여호와의 사자가 양의 피가 발라진 집은 그냥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정탐꾼들이 요구한 ‘붉은 줄’은 이스라엘 군인들을 그냥 지나가게 함으로써 라합의 모든 가족과 친족의 생명을 지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서 거리로 가면 그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다’(19). 이런 측면에서 ‘붉은 색’이 이 줄의 색깔로 선택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물론 붉은 색의 줄이 성벽의 색깔을 배경으로 단지 쉽게 눈에 띄기 때문일 수도 있으니, 그런 해석을 주의하라는 지적 또한 정당합니다. 그러나 또한 붉은 색을 피와 관련지어 해석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닌 듯합니다.
정탐꾼들은 붉은 줄로 표식이 된 그 집의 안전을 보장합니다. 그러나 만일 라합의 가족과 친족 중 누구라도 그 집밖으로 나온다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반면에 아무라도 이스라엘 군인이 붉은 줄의 표식을 무시하고 라합의 집으로 들어가 그들을 해친다면, 그 책임은 자신들에게 있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19). 이렇게 해서 라합의 집은 파도가 휩쓰는 홍수 속의 구원의 방주와 같고 유월절의 재앙 가운데 피가 발라진 안전한 집과 같습니다. 만일 노아 가족 중 누군가 방주를 타지 않는다면, 피가 발라진 문설주 밖으로 나간다면 재앙을 피할 수 없듯이, 라합의 집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구원에서 배제됩니다. 이것은 다시 한 번 구원은 결국 무임승차가 아닌 개인의 선택과 결단의 결과임을 말해줍니다. 정탐꾼들은 라합 또한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정탐꾼들은 만일 그녀가 여리고에 정보를 건네주어 배신한다면, 그 책임은 라합 자신이 져야 하며 그 서약은 파기되고 자신들은 무고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라합은 다시 한 번 그들 간의 맹세에 충실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그들을 보낸 뒤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달아 놓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을 살렸던 동일한 창문을 통해 라합과 그의 가족들이 생명을 얻습니다.
정탐꾼들의 귀환과 보고(22-24)
우리는 지혜롭고 신중하게 행동할 때 안전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인도하심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우리를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의지할 때, 그분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따를 때 우리는 안전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과 신뢰는 우리 삶의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22○그들이 가서 산에 이르러 뒤쫓는 자들이 돌아가기까지 사흘을 거기 머물매 뒤쫓는 자들이 그들을 길에서 두루 찾다가 찾지 못하니라 23그 두 사람이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나아가서 그들이 겪은 모든 일을 고하고 24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하더라(22-24)
수색대를 따돌리고 탈출에 성공한 두 정탐꾼은 라합의 조언대로 산으로 올라가 사흘 동안 숨어 지냈습니다. 여기서도 사흘은 동태를 살피기에 충분한 기간을 의미하는 어림수의 기간일 수 있습니다. 여리고의 수색대는 ‘모든 길을’ 다니면서 정탐꾼들을 색출하려 애썼습니다. 이것은 수색대가 그들의 예상 탈출로를 모두 봉쇄하고 검문하면서 인근 지역을 뒤졌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정탐꾼들이 이미 정보를 입수해 산에 잠복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주로 길목을 차단하여 수색 활동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탐꾼들은 이스라엘 진영으로 무사히 복귀한 뒤, 여호수아에게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의 자초지종을 보고했습니다. 아마 보고 내용에는 여리고에 대한 기본적인 군사적 정보와 더불어 라합의 손에 의한 탈출극이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정탐꾼들의 보고는 고무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여리고 성이 이중벽으로 견고하게 차단된 요새화된 성이라는 것을 보고 왔지만, 여리고와 그 땅의 모든 사람들이 강 건너에 세력을 구축한 이스라엘과 그들의 하나님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져 있음을 알렸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신실하심을 배울 수 있습니다. 라합의 믿음과 용기는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신뢰하게 만듭니다. 정탐꾼들과 라합 사이의 약속과 신뢰는 우리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뢰와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우리의 믿음은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때, 우리는 진정한 구원을 누리게 됩니다. 이 모든 교훈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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