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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1-03)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의 삶

누가복음 11장 27-36절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견문과 학식을 보고 ‘안목(眼目)’이라고 합니다. 안목은 시력과는 다릅니다. 시력이 눈으로 사물을 보는 힘이라면, 안목은 그 이면의 것까지 보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안목이 낮으면 많은 좋은 것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키우고 높여야할 가장 중요한 안목은 무엇이겠습니까?

 

  • 본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무지를 책망하시고, 빛이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따르는 영적인 안목에 중요성을 언급하는 내용입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야할 이유를 세 가지를 통해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시각을 가지라고 권고하셨습니다.

 

말씀을 지키는 자의 복(27-28)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향하여 손가락질 합니다. 교회를 향한 손가락질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겠습니까? 그것과 상관이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한 여인이 찬양합니다. 그것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볼 수 있습니다.

 

27이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28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27-28)

 

이전에 단락에서 예수님께서는 무리와 논쟁을 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말씀을 나누시던 시점에 한 여인이 등장하는데, 이 여인은 아마도 예수님의 말씀에 크게 감화를 얻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예수님을 낳은 어머니가 복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말 자체에는 아무런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참조 눅 1:48). 그러나 뒤이어 등장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 여인의 말에서 빠져있는 무엇인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자신을 낳은 어머니가 복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복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지키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제는 앞서 언급되었던 주제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서 이 땅 가운데 임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의 내용을 지키며 사는 것이 진정한 복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자신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라는 도전으로 갈무리됩니다.

 

악한 시대의 보일 표적(29-32)

세상의 탐욕에 빠지지 않으려면, 영적으로 깨어 분별할 줄 아는 밝은 눈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청종하고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만 밝아질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도 밝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써, 영적 분별력을 얻고 세상의 어둠을 밝힐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개인과 지역 사회가 함께 변화될 수 있습니다.

 

29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31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2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29-32)

 

많은 기적을 보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들이 또 다른 표적을 구했다는 것은 그들이 불신앙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악한 세대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요나의 표적 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 이 세대의 표적 요구(29-30)

 

예수님께서는 확실하고 유일한 표적이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온 이방인들을 언급하면서 당시 유대인들의 불신앙을 들어내십니다. 첫 번째 이방인들은 니느웨 사람들이었습니다. 선지자 요나가 마지못해 전한 메시지를 듣고서도 그들은 회개했습니다. 두 번째 이방인은 남방 시바 여왕이었습니다. 이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듣기 위해 남부 아라비아에서부터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솔로몬을 통해 전해진 말씀을 듣고자 땅 끝에서부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방인이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던 사람들입니다.

이 두 사건의 주인공들은 이방인들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 믿음으로 반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위대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불신앙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불신앙을 가진 유대인들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이방인들이 더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2) 솔로몬과 요나보다 크신 분 예수(31-32)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31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31)

32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32)

 

이방인이었던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했는데, 당시 사람들은 요나보다 더 큰 분이신 예수님의 메시지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방인이었던 남방 여왕도 솔로몬의 말을 듣기 위해 멀리서도 찾아왔는데, 당시 유대인들은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운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말씀하신데도 듣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말씀에 대한 불순종을 빗대어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이방인들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이방인보다 낫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다는 것은 핑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심판의 날에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불신앙의 반응을 보인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눈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34). 그들은 니느웨 사람들보다 더 악한 것임으로 심판의 날에 니느웨 사람들과 남방 여왕이 일어나서 그들의 불신앙의 죄를 책망하고 정죄할 것입니다.

종종 성도들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많은 성경 지식이나 교회 안에 직분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순종이 없는 지식은 강퍅한 심령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순종이 없는 직책은 알맹이 없는 형식만 만들어 냅니다. 그러므로 정말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간곡히 부탁하셨습니다.

 

18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18-20)

 

예수님께서는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가장 강력하고 분명한 구원을 증거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한 증거로 요나보다도 크고 솔로몬보다도 위대하신 분으로서 구원의 메시지를 들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분명한 증거에 흔들림 없는 신앙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몸의 등불인 눈(33-36)

세상이 어두워진 것은 빛이 없어서 어두워진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가 어두워진 현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살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빛을 찾아서 헤매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어두움이 점점 빌려오고 있습니다.

 

33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34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35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36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33-36)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어두운 상황을 통해서 비유로 설명합니다.

 

(1) 빛이신 예수님(33)

 

격언조의 다소 수수께끼와 같은 이 말씀은 종종 이 문맥과 상관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실제로 마태복음의 병행구들은 상당히 다른 문맥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등을 켜서 등경 아래에 두지 않는다. 그 이유는 들어가는 사람들이 빛을 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어구는 현 문맥 속에서 구체적인 함의를 가집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빛이시라는 것입니다.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참 빛을 비추기 위해서 예수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2) 눈은 몸의 등불(34-36)

 

‘당신의 눈은 몸의 등불이다’라는 표현은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눈을 통해서 빛이 몸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고, 눈이 몸으로 하여금 그 길을 찾을 수 있게 한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각각의 경우에서 중요한 것은 눈이 얼마나 건강하냐에 달려 있습니다. 눈이 건강하면 몸이 밝을 것이고 눈이 건강하지 못하면 몸이 어두울 것입니다. 이것은 빛이신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빛이신 자신과 자신의 말씀이 사람들의 삶을 두루 비추고 있는지 질문하십니다. 이 빛이 사람을 밝히면 그 사람은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을 것이고 온전히 밝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이 수수께끼 지혜 문헌 같은 누가의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이 세대의 거부라는 문맥 속에서 분명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오신 빛이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는 어두움에 거하게 될 것이고, 그와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게 될 것입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따를 때 우리의 눈이 밝아집니다. 그리고 눈이 밝아질 때 우리의 삶도 밝아진 것입니다. 말씀으로 가득 충만해서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빛이 되길 바랍니다. 빛이신 예수님과 동행하며 말씀의 빛을 따라 사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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