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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2-01)


하늘 법정에서의 신앙 고백

누가복음 12장 1-12절


 

세상에 질병은 무서워합니다. 질병을 통해서 죽음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가장 경계해야 할 큰 질병이 있습니다. 암도, 에이즈도. 급성전염병도 아닌 무서운 질병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위선(僞善)입니다. 위선은 자신을 망가지게 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란시스 쉐퍼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논쟁 이후에, 제자들에게 외식(外飾)에 대해 엄격히 가르치셨습니다. 계속해서 복음을 전할 때, 유대 지도자들의 위협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진정으로 두려워할 대상을 가르치시며, 또한 안심할 수 있는 이유들을 설명하십니다.

 

바리새인의 위선을 주의(1-3)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비난한 것은 기독교에 대해 비난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진실하지 못하고 외식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안티 기독교인들은 성도답지 못한 위선을 지적하고 비판한 것입니다.

 

1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2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1-3)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들어내셨습니다. 즉시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11:53).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경계를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위선(僞善)의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또한 위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1)고 권고하십니다. ‘외식(外飾)’의 의미는 ‘마스크를 쓰다.’라는 뜻입니다. 대부분 외식은 눈앞에 이익만 보고 먼 날에 일어날 일을 외면한 결과입니다. 눈앞의 사람만 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외면하는 근시안적인 마음에서 나옵니다.

예수님께 서로 밟힐 정도로 많은 무리가 몰려왔습니다. 제자들을 가르치면서도 무리가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무리가 있는 가운데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누룩’은 ‘위선’의 비유어로 사용하십니다. 반죽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침투력을 가진 누룩이 눈에 보이지 않듯이,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태도는 누룩처럼 보이지 않게 급속히 침투해서 공동체를 부패시킵니다. 누룩이 침투한 여부가 반드시 겉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태도도 드러나고 알려질 수밖에 없습니다(2).

4-11절이 제자들에게 다가오는 핍박을 소재로 삼는 것을 고려하면, 1-3절의 누룩은 제자들이 핍박받는 상황에서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8-1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핍박 중에 제자들이 인자를 시인할 것을 강조하시기 때문에, 제자들은 말과 관련해서 위선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곳에서 말한 모든 것이 밝은 데서 들리고 어두운 데서 귓속말로 나눈 대화도 지붕 위에서 모두가 알아듣도록 퍼질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제자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복음인 줄 알면서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은 위선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위를 진리로 믿고 있다면, 반대와 위협에도 믿는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믿고 있으면서 드러내지 않는 위선은 시간문제일 뿐 언젠가 드러납니다. 이런 점에서 제자의 핵심적인 특성은 진실함입니다. 진실함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드러내실 때가 온다는 두려움을 가질 때 실현됩니다. 거짓으로 한순간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진실을 공해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4-7)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길입니다. 그의 뒤를 따라가는 제자들은 환난이나 박해, 심지어는 죽음까지 따라오겠지만,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만 위해 사는 사람들은 고난이나 죽음은 두려운 일이겠지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주십니다.

 

4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6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7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4-7)

 

제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내적인 면에서 ‘외식’만이 아닙니다. 외적으로 바리새인들은 복음 사역하는 제자들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 진짜 두려어 해야할 분(4-5)

 

예수님께서는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돌봄을 강조하기 위해 ‘나의 친구들에게’ 말한다고 표현하십니다(참조. 요 15:13-15). 제자들을 ‘친구’로 칭한 장면은 누가복음에서 이 구절뿐입니다.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친구는 모든 것을 공유하는 관계를 말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길을 공유하며, 하나님 아버지도 제자들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하시는 것처럼 제자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돌보시는 아버지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친구인 제자들에게 몸만 죽일 수 있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4). 몸만 죽이는 자들은 죽음 이후의 더 무서운 행위는 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죽음 이후에 지옥에 던져 넣을 수 있는 분, 곧 하나님입니다(5). 지옥은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던져질 최후의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5절, ‘...곧 죽인 후에…그를 두려워하라 그를 두려워하라’의 헬라어 문장을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로 시작하고 맺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핍박받는 상황을 전제로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에서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십니다. 제자들을 핍박할 사람들보다 당연히 하나님이 훨씬 강하십니다. 사람의 위협이 두려워 항복하게 되면 더 무서운 분의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통제권(6-7)

 

4-5절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6-7절에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의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묘사하기 위해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의 논법에 따라 작은 참새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이 참새보다 훨씬 귀한 제자들을 기억하고 참으로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머리카락의 예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공급하심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가장 작은 부분까지도 알고 개입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제자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돌봄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제자의 여정에 개입하고 섭리로 반응하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하나님의 시선이 언제나 자신에게 머물고 있음을 의식함으로써,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비극적인 현실에서 돌봄의 손길이 머물고 있음을 신뢰해야 합니다.

 

무엇을 말할지 염려하지 말라(8-12)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인정하고 시인합니다. 이는 성령께서 함께 계셔서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앙 고백은 하늘 법정에서 중요한 평가를 받게 되며, 종말의 시각에서 현재의 삶을 바라보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우리의 고난 속에서도 굳건한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8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9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10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11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12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8-12)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강조하시며, 제자들이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시인하면 예수님도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들을 시인할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부인하면 예수님도 그들을 부인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종말의 시각에서 현재를 바라보고, 고난 속에서도 신앙을 굳게 지킬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1) 하늘 법정에서 평가(8-10)

 

본문에서는 지상에서의 행위가 하늘 법정에서 평가받게 될 것을 땅과 하늘의 대조로 설명하십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인자를 시인하면 인자이신 예수님도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하실 것입니다(8). 반대로 사람들 앞에서 인자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부인될 것입니다(9).

8-9절은 전형적인 하늘 법정 또는 천상 회의 장면을 배경으로 삼습니다. 하늘 법정에는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천사들과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변호하는 역할을 맡아 지상에서 고난 중에 신앙을 고백한 자를 변호하시고 고백하지 않은 자를 외면하십니다. 재판은 종말에 열리고 집행될 것입니다. 종말에는 현재 지상에서 살아온 삶과 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지상에서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면 고난이 가중되고 부인하면 고난을 피할 수 있겠지만, 종말의 하늘 법정에서 내려지는 결과는 역전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종말의 시각에서 현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핍박과 같이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놓일 때일수록 더욱 시선을 미래로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관점에서 고난을 견딜 것을 이미 5절에서 언급하셨습니다. 누가는 두 번째 책에서 죽음으로 핍박을 견딘 스데반이 하늘 법정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본 모습을 묘사할 것입니다(행 7:55-56). 이처럼 제자들은 미래에 주어질 하나님의 반응을 생각하면서 현재 이곳에서 행동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자를 한 번이라도 부정한 자에게 기회는 없는 것입니까?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도 제자들을 굳게 세우는 사명을 수행합니다(22:54-62).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는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 자체를 부정하고 무시하는 것입니다. 핍박이 오기 전에는 신앙이 참된 여부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기대와 달리 핍박과 위협이 닥칠 때 돌이키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사역을 부정하는 자는 잘못된 신앙관을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배교와 같아서, 구원의 길로 돌이킬 수 없으므로 용서받지 못합니다.

 

(2) 제자들과 성령과의 관계(11-12)

 

성령을 언급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성령의 관계를 이어가십니다(11-12). 예수님께서는 다가오는 핍박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예고하십니다. 제자들에게 핍박을 가하는 장소와 주체인 회당과 위정자들과 권세 있는 자들은 유대와 이방의 환경을 포괄합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뿐 아니라 앞으로 그를 따르게 될 제자들은 적대적인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것입니다. 그때 어떻게 대답할지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필요한 말을 가르쳐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6-7절의 약속이 실현될 것을 예고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고난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는 하나님의 기억에서 사라졌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아닙니다. 제자들이 어려움에 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그런 어려움에 처한 제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보호하시고 대처하게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이 하늘 법정에서 어떻게 평가받게 되는지를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시인하면 예수님도 우리를 시인하시고, 부인하면 부인하실 것입니다.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부정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하지만, 고난 속에서도 신앙을 굳게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우리는 종말의 시각에서 현재를 바라보며, 고난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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