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08-04)
질병과 죽음을 승리하신 예수님
누가복음 8장 40-56절
현대 시대는 이전보다 더 큰 믿음을 요구합니다. 시대정신이 실용과 물질, 쾌락을 선호하기에 믿음을 갖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이성의 마비나 지적 자살로서의 믿음이 아닌, 신뢰로서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신뢰의 믿음이야말로 이 시대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재의 도전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앞 단락에서 부정한 이방 지역에서 부정한 남자를 구원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의적으로 부정한 여자와 죽은 소녀를 시유하고 회복하십니다. 두 사건은 회당장 야이로가 딸의 회복을 위해 예수님께 간청하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딸이 회복되는 기적으로 마칩니다. 중간에 등장한 혈루증 환자는 회장장 야이로가 가져야 하는 믿음의 모본을 보여줍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간청(40-42)
예수님께서는 장소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셨고, 믿음이 있는 곳에서 역사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는 곳에서 역사하십니다. 치유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굳건한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40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41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42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40-42)
예수님 일행은 이방인 지역 데가볼리에서 귀신 들린 자를 고치 후 유대인의 땅 갈릴리로 돌아오셨습니다.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거절하였으나 많은 유대인들은 환영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7:19-20; 벧후 3:12-14). 예수님께 관한 소식이 유대 지역에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서 말씀을 듣고 문제를 해결하기 원했습니다.
예수님을 환영하고 기다리던 사람 중에 회당장 야이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41). 그는 회당의 지도자로서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신분이나 학식을 내려놓고 예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에게는 하나 밖에 없는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열두 살 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으로 가던 도중에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린 것(49)은 딸이 사실상 눈을 감기 직전에 있음을 가리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합니다. 유대교에서 명망 있는 지위의 회당장은 예수님의 능력 외에는 소망이 없다고 확신했기에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야이로는 예수님께 자신의 집으로 오실 것을 간청했고,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의 집으로 향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나오지 않고 이동하는 동작만 언급된 것은 예수님의 행동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 딸을 고치러 갈 때 무리가 밀려들었습니다. ‘밀려든다’는 숨통을 막았다는 뜻으로(8:14) 씨 뿌리는 자의 이야기에서 ‘기운을 막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동사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예수님을 간절히 원했고 질식할 정도로 예수님과 함께 이동하고 있음을 묘사합니다.
혈루증 여자의 치유(43-48)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숨기지 말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 나아가 해결책을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43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44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45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4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47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48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43-48)
무리가 밀어닥치는 가운데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여자는 야이로만큼 절박한 마음으로 예수께 나왔습니다. 혈루증은 나병처럼 사회-종교적으로 부정한 병이어서 환자는 사회에서 격리되고 제의적으로 격리됐습니다.
여자는 12년 동안 질병으로 고생했으므로 12년 동안 피가 나올 때마다 격리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자는 모든 사물과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어버리는 부정결의 원인이었습니다. ‘너희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부정에서 떠나게 하여 그들 가운데에 있는 내 성막을 그들이 더럽히고 그들이 부정한 중에서 죽지 않도록 할지니라’(레 15:31). 환자는 피가 12년 동안 흘러 늘 생명의 위험을 안고 살아야 했고 부정결한 여자로 멸시받았을 것입니다. 여자는 오랜 투병생활로 나약해진 상태인데도 예수님의 옷자락을 몰래 만집니다. 혈루증 환자가 군중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율법을 위반하는 죄입니다. 그녀가 만진 사람은 하루 동안 부정하게 됩니다. 유대 사회에서 부정과 정결은 사회를 유지하는 원리였고 유대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표지였습니다. 그러나 치유의 방법을 눈앞에 두고서 물러나기에는 그녀가 그동안 겪은 고통과 수치가 너무 컸습니다.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자 즉시 병이 치유됩니다. 여자에게서는 부정하게 하는 피가 흘러나왔지만 예수님에게서는 정결하게 하고 치유하는 능력이 흘러 나왔습니다. 오랫동안 병의 상태에 민감했던 여자는 출혈이 멈추고 몸의 원기가 회복되는 것을 곧바로 느낍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라고 묻자 모두 아니라고 말합니다(45). 베드로는 무리가 밀고 있는 와중에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느냐는 식으로 묻습니다(45b).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이 분명하므로 손을 댄 자가 있다고 거듭 말씀하십니다(46). 예수님의 능력이 나갔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부정을 정결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모든 것을 압도하므로 예수님께서는 오염되지 않고 부정을 정결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여자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떨면서 예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손을 댄 이유와 나은 상태를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합니다(47). 예수님의 치유하는 능력을 믿고 옷자락을 만지는 것도 믿음이고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 무리 가운데 서는 것도 믿음입니다.
첫째, 믿음으로 여자는 병을 치유 받고 정결하게 됐습니다. 원칙적으로는 부정한 여자가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댔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일정 기간 정결 의식을 행해야 하고 여자는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여자의 행위를 위법한 것이 아니라 능력을 얻게 된 통로로 보십니다. 누가 행전에서 ‘믿음’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으므로 다른 존재(예수님)에게 의존하는 것을 말합니다(5:20; 7:7-9, 50). 믿음은 구체적인 행위로 표현됩니다. 여자의 믿음은 부정과 정결의 경계를 뛰어넘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행위로 나타났습니다. 40-56절에는 두 명의 절박한 사람이 등장하고, 여자의 절박한 심정은 부정과 정결의 규례를 넘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44-47절에 손을 대는 동작이 네 차례 언급됩니다(44, 45, 46, 47). 믿음은 절박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의 절박한 행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다렸으나(40)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으로 손을 대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간구한 사람이 예수님의 능력(뒤나미스)를 경험합니다. 둘째, 믿음은 공동체로 회복되는 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자는 신체의 치유를 얻었으나 아직 사회-종교적 정결의 문제를 해결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보다 나이가 더 많을 가능성이 높은 여자를 딸로 부름으로써 그녀를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로 환영하십니다. 구원은 공동체로 회복되는 개념을 포함합니다. ‘평안히 가라’(48)는 작별 인사로 공동체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나누는 인사입니다(예: 7:50). 뿐만 아니라 평안(평화)은 천사들이 예수님을 통해 주어질 것이라고 약속한 선물입니다.
여자는 부정과 정결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죄로 사람들의 정죄와 하나님의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가족으로 복귀합니다. 외적인 조건에 의한 부정이 한 영혼이 공동체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가 공동체로 회복된 사실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기 위해 그녀를 중앙에 세우셨습니다. 질병은 여자를 격리시켰으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몸의 치유와 명예를 선사했습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정결과 부정의 규례가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근거합니다.
죽은 소녀를 살리신 예수님(49-56)
하나님께서는 아주 작은 믿음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질병과 죽음이 가져다준 소외와 슬픔과 절망에서 구원하여 참된 자유와 쉼을 안겨 주십니다. 이것은 선지자가 예언한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에 구원하는 능력이 있음(8:12)을 좀 더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려주시고 있습니다.
49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50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51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52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53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54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55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56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49-56)
예수님께서 혈루증 앓았던 여자와 말씀을 나누시는 중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야이로에게 와서 딸이 죽었다는 비보를 전합니다(49). 이는 야이로가 처음 예수님께 왔을 때 딸이 죽어간다(42)는 보고가 사실이었음을 증거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집으로 올 이유가 없으니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49)라고 말합니다.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쉽게 포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혈루증 환자와 만나는 동안 시간이 지체되고 야이로의 딸은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12년을 혈루증으로 시체처럼 지냈던 여자는 딸로 살아났으나 12년을 살았던 야이로의 딸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야이로의 소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50).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50).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에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품게 하십니다.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 것과 믿음을 가질 것을 권면하십니다. 혈루증 여자의 역전된 운명이 야이로의 딸의 운명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이로에게 있어서 믿음의 모본은 혈루증 환자의 믿음입니다. 야이로는 혈루증에서 치유 받은 여자처럼 예수님의 능력을 신뢰해야 하고, 처음보다 더 강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긍휼을 기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누구도 함께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51). 집에서는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했습니다(52). 예수님께서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53). 전문적으로 애곡하는 사람들은 비웃습니다(53). 예수님께서는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야 일어나라’고 명령하십니다(54). 그러자 영이 돌아와 아이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정한 시체의 손을 붙잡는 것으로 생명을 부여하십니다. 혈루증을 앓은 여자처럼 소녀는 예수님의 거룩한 능력에 접촉됨으로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지시하십니다. 혈루증 여자가 자신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면 열두 살 소녀는 아버지의 믿음으로 생명을 얻습니다. 아버지의 절박한 믿음과 사랑이 예수님을 찾았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믿음을 사용해 소녀를 살리셨습니다. 믿음의 가족과 공동체는 서로를 위해 예수님에게 매달리고 기적을 공유하므로 이런 가족과 공동체에 속한 것은 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능력을 본 자들은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허기와 기갈, 체념과 슬픔과 중독의 세상에 희망을 이야기하고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허황된 말로 희망고문하지 말고, 참 희망이신 주님을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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