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누가복음(08-02)


자연까지도 다스리시는 예수님

누가복음 8장 16-25절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의 백성 없이 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주님을 통해 임했으며,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통해 확장됩니다. 자신의 안위보다 하나님 나라를 더 소중히 여기는 이들로 인해 성장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말씀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대한 내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6-18절은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특권을 얻은 것과 이 비밀이 널리 공개되는 것을 말합니다. 19-21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족을 규정하는 기준임을 알립니다. 22-25절은 예수님의 정체를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 시련과 위험에 처한 제자들에게 필수적임을 말해줍니다.

 

등불의 비유(16-18)

하나님 나라는 ‘드러난 비밀’입니다. 죄가 진리를 아는 빛을 가렸기 때문에, 이미 알려졌지만 대분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해 비밀로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그 진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들만 알 수 있습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등불처럼 진리의 빛을 드러냅니다.

 

16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17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18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16-18)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을 비유를 통해 말씀합니다. 네 종류의 땅에 대한 비유와 해설에서 강조한 것과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의 중요성은 등불의 비유(또는 격언)에서도 계속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16). 등불은 밝히려고 켜는 것이지 감추려고 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공간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녁 식사에 손님들을 초대한 경우 등불은 필수적입니다. 여기서 ‘등불’과 ‘빛’은 다릅니다. ‘등불’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받아들인 제자들이나 신자들이며, ‘빛’은 예수님의 가르침 또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인 복음도 빛에 해당합니다. 등불은 ‘들어오는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등경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복음의 빛을 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8:10).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복음을 듣습니다. 사람들은 등불을 통해 빛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자들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과 복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과 사역을 통해 이미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7절은 ‘왜냐하면’으로 시작하므로 등불을 등경 위에 두어 빛을 비추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등불의 빛은 숨어 있는 것을 드러내고 감춰진 것을 알리고 드러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들은 숨겨지고 감춰진 것으로 제자들에게 계시됐습니다(8:10). 제자들이 깨닫기 시작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행 2:36). 이와 같이 하나님의 비밀이 제자들을 통해 온 세상에 알려지고 있으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어떤 태도로 듣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18a). 가진 자들에게는 더 많이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중하게 듣고 순종하는 사람은 말씀을 소유하게 됩니다. 씨가 좋은 땅 ‘안으로’ 심긴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인내로 지키기 때문에 말씀이 그 사람의 삶을 통해 구현됩니다.

결국 종말의 잔치를 즐기는 감격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가지지 않은 자들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마저 빼앗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18절은 씨가 뿌려진 땅의 비유와 연결됩니다(1-15). 열매를 맺지 못하는 세 종류의 땅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외면하거나 일시적으로만 관심을 두고 마는 사람들은 들었던 말씀을 마귀에게 빼앗겨버립니다. 결국 말씀을 통해 구원을 얻는 기회를 놓침으로써 생명마저 빼앗기게 됩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알기 시작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좋은 땅의 태도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바르게 들은 말씀은 제자들의 삶을 통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기 때문에, 세월이 갈수록 예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알고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가족(19-21)

하나님 나라에는 혁명적 가족관계가 전제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자기 가족이라고 하십니다. 가족은 혈통을 따라 형성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 가족의 기준은 ‘말씀’입니다.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거듭나 날마다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 자녀 됨의 증거입니다.

 

19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20어떤 이가 알리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2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19-21)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주제는 예수님의 가족이 찾아온 장면에서도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왔지만, 무리가 많아 예수께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습니다(19). 그러자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어머니와 동생들이 보기 원하여 밖에 서 있다고 전합니다(20).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21).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가족의 정의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전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들, 들은 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신 예수님(22-25)

예수님을 향한 반응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이 예수님의 가족이자 천국의 백성입니다. 당신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떤 분입니까? 예수님을 만나셨다면 그분을 붙드셔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참빛이신 예수님을 전하셔야 합니다.

 

22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23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24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25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22-25)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기 시작했으나(8:10), 계속해서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풍랑이 잔잔해지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들이 지키고 순종해야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자연을 제어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과 제자에 바다가 고요해지는 현상으로 입증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질병을 치유하는 권위뿐 아니라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 권위를 갖고 계시며, 제자들을 위협하는 악의 세력을 제압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선지자들과 달리 기도를 하지 않고도, 즉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일 없이 자신의 말로 혼돈을 잠잠하게 만들어버리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암시들입니다. 배에 올라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던 중에 일어났습니다(22). 배를 타고 갈 때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광풍이 호수에 불어 닥쳤습니다(23). ‘광풍’은 아래서 위로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으로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강력한 바람입니다. 광풍이 ‘내려오다’라는 표현은 호수의 서쪽 산과 골짜기에서 바람이 갑자기 하강하는 것을 묘사합니다. 산과 골짜기에서 내려온 광풍이 호수 아래서 위로 휘몰아치는 식으로 제자들이 탄 배를 공격했기 때문에 배는 금방 침몰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면서 ‘주여 주여 우리가 죽어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24). 제자들은 이번 위기는 자신들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시편 44:23-24의 내용처럼 예수님께서 깨어 문제를 해결해주시길 요청합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 바람과 성난 파도를 꾸짖자 호수가 조용해졌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이제까지 ‘꾸짖다’라는 단어는 귀신(4:35, 41)과 열병(4:39)을 꾸짖을 때 사용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꾸짖으신 것을 명령하신 것으로 말합니다(25). 예수님께서는 악의 세력을 꾸짖고 제자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구약에는 폭풍이 잠잠하게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시 65:7; 89:9; 104:6-7; 107:23-30), 하나님께서는 바다를 꾸짖어 제압하십니다(시 18:15; 104:7; 106:9; 사 50:2; 나 1:4). 유대인들은 무질서와 악의 세력이 바다에 출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바다를 제압하고 자기 백성을 보호하십니다(시 89:8-11; 107:23-30; 참조. 시 69:1-3,30-36; 124편; 욘 1장).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권능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은 그의 명령으로 보입니다. 충격적인 기적을 경험한 제자들은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라고 서로 묻습니다. 놀라움과 두려움은 누가복음에서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인간의 반응입니다(1:13, 30, 50; 2:9-10; 5:10). 누가는 혼돈과 무질서를 제어하신 ‘그는 누구인가?’이 질문은 독자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라고 질문하십니다. 제자들에게 필요한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제자들은 이제까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을 믿었지만, 바람과 물을 복종시키는 하나님의 고유한 권능을 가진 신적인 존재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습니다(시 104:6-9; 느 1:4). 바다의 바람과 성난 파도보다 예수님의 능력이 더 크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예수님에 대한 바른 반응입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열매 맺지 못하는 세 종류의 땅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더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더 깊이 아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고 험한 시련을 이길 수 있는 길입니다.

제자들의 믿음은 윤리적 열매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위험과 시련에 맞서는 태도로도 나타나야 합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말씀을 참으로 들었는지 여부는 높은 수준의 윤리로 나타날 뿐 아니라 위기에 담대하게 대처하는 태도로도 판명 납니다. 예수님의 정체, 곧 그가 하나님이신 사실을 알 때 위험과 시련을 담대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평소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믿는 것처럼 보여도 인생의 위기가 외부에서 닥쳐오면 하나님의 부재를 불평하고 절망하기 쉽습니다.


‘제자’란 주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분처럼 사는 자입니다. 온 세상과 영합하지 않고 등경 위의 불처럼 세상을 비추셨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그 나라를 증거 하셨습니다. 그리고 참 사랑과 믿음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신뢰 속에 인생을 걸으셨던 그 본을 따라 잘 듣고 순종하여 하늘 가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 배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