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09-01)
제자들에게 사명과 책임의 부여하신 예수님
누가복음 9장 1-17절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믿음은 단순한 생각이나 감정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나타나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믿음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실생활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 예수님께서는 본격적으로 열두 제자에게 사명을 맡기기 시작하며, 사명을 위해 권능과 권위를 부여합니다. 열두 제자는 예수님의 사역에 참여하면서 예수님의 정체와 운명을 배웁니다. 헤롯은 제자들의 사역을 통해 부각된 예수님의 정체에 관심을 둡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먹이는 사건에 열두 제자를 적극 참여시키십니다.
제자들을 파송하시는 예수님(1-6)
어떤 사람은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해내려는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욕이 넘치면 과욕을 부릅니다. 그것은 자신을 들어내는 욕심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혼자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할 때가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떠나야 할 때가 있음 또한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일을 감당할 만한 사람에게 맡기셨습니다.
1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2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3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4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5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6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1-6)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권세를 주어 악한 영과 질병을 고치게 하십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병을 고치기 위해 보내집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지시한 대로 각 마을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믿음을 전파하며 여행합니다.
(1) 열두 제자들을 파송하신 예수님(1-2)
9장부터 열두 제자는 예수님의 사역에 본격적으로 참여합니다.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고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병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부여하십니다(1). 부르신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4:5,43;6:20; 7:28; 8:1,10) 치유하는 것(5:17; 6:18-19;7:7; 8:47)입니다. 이는 이사야 61:1-2의 실현이며,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자신의 사명입니다(4:18-19). 이사야 61장은 성령으로 기름 부음받은 종의 사역을 예고했는데, ‘종’의 사역이 ‘종들’에게로 위임됩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실현할 수 있는 권능(뒤나미스, 4:14,36; 5:17; 6:19; 8:46)과 권위(엑수시아, 4:6,32,36;5:24)를 주십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고, 부름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실행해야 합니다. 오히려 부족할수록 하나님께서 주신 권능과 권위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2) 열두 제자에게 사역 지침을 주신 예수님(3-6)
이어서 예수님은 사명을 수행하는 제자들의 태도에 대해 가르치십니다(3-5). 제자는 무슨 사명을 맡았는지 알아야 하지만 어떻게 사명을 수행할 것인지도 알아야 한다. 제자들은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여행을 위해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고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준비하지 말아야 한다(3절).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어야만 이 세상의 재물과 욕망에 눈길이 돌아가지 않게 된다(8:14). 제자들에게 요구된 준비는 광야 길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여정을 떠올린다(출 12:11). 하나님 나라의 해방을 경험한 사람들의 목표는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을 소개받는 사람은 전파자의 태도, 즉 하나님의 다스림을 의존하는 삶을 통해서도 복음을 봅니다. 제자는 어느 집에 들어가서 환대를 받으면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는 집으로 옮기지 말고 끝까지 한곳에 머물러야 합니다(4). 제자는 기본적으로 섬김받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환대를 받기도 하지만 배척당하기도 합니다. 만일 어떤 도시가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으면 도시를 떠날 때 발에서 먼지를 떨어내야 합니다(5). 이는 복음을 거부한 책임이 그 도시에 있다는 뜻입니다. 사명을 맡은 제자들은 여러 마을을 다녔고 모든 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쳤습니다(6). ‘복음을 전하다’(유앙겔리조마이)와 ‘치유하다’(쎄라퓨오)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사명을 요약하는 용어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기쁜 일이고, 하나님 나라는 회복을 특징으로 삼습니다. 돈과 부를 통해 안정을 얻으려는 욕망은 생명을 질식시켜버리고 맙니다. 제자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최고의 기쁨과 치유책으로 전파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검소한 태도로 복음적인 삶을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보기 원하는 헤롯(7-9)
우리의 말과 행동은 주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자신과 타인의 정체성을 깊이 탐구하고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믿음과 신앙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영적 질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우리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서로를 이해하고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7○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8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9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7-9)
7-9절은 제자들에 대한 반대가 있을 것을 예고합니다.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가 제자들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일을 듣고 매우 당황합니다(7). 그는 갈릴리 지역을 통치했으므로(3:1) 그곳에서 일어난 최근의 일을 보고받았습니다. 열두 제자가 예수님의 사역을 수행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제자들의 활동을 통해 예수님의 사역을 목격했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헤롯이 보고받은 내용에 따르면, 대중은 예수님에 대해 세 가지로 이해했습니다. 사람들은 선지자 요한이 살아났다고도 하고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고 옛 선지자 중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했습니다(7b-8). 공통점은 예수님을 살아난 선지자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헤롯은 자신이 요한을 참수형으로 죽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요한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헤롯은 도대체 예수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들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보고 싶어 합니다. ‘그를 보고 싶어하다’는 23:8에도 사용됩니다. 23:8은 헤롯이 예수님을 통해 표적을 보고 싶어 하는 것으로 부연 설명합니다. 헤롯의 관심은 예수님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욕망이나 호기심을 채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보고 싶은 것을 획득하려는 태도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듣지 못한 것입니다. 믿음과 순종의 태도로 예수님의 메시지를 들을 때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10-17)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고통과 필요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것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는 믿음을 줍니다. 공동체의 힘과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도 깨닫게 됩니다. 또한, 믿음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제공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삶에서 실천해야 할 중요한 가치입니다.
10○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11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12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13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14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15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16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17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10-17)
본문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돌아와 사역의 보고를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데리고 외딴 곳으로 가서 휴식을 취하려 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라오고,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가르치며 병자를 고치십니다. 결국,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5천 명을 먹이게 하십니다.
(1)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신 예수님(10-11)
예수님이 맡기신 사명을 수행하고 돌아온 사도들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보고합니다(1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벳새다에 가십니다. 무리가 경로를 파악하고 따라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선포하고 병을 치유하십니다(11).
(2) 먹을 것을 고민하는 제자들(12-14a)
날이 저물어가자 제자들은 예수님께 와서 무리를 보내 마을과 촌에서 식사를 해결하도록 지시하라고 요청합니다(12). 왜냐하면 무리가 모인 빈 들에는 먹을 음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하십니다(13). 이에 제자들은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 생선뿐이니 많은 무리를 위해서는 그만큼의 음식을 사야 할 정도라고 대답합니다(13). 그곳에 모인 무리는 오천 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리를 오십 명씩 앉히라고 지시하십니다(14).
(3)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맛보게 하신 예수님(14b-17)
제자들이 지시대로 앉히자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를 들고 하늘을 향해 감사하고 제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도록 하십니다(15-16). 빈 들에서 오천 명이 음식을 공급받은 장면은 출애굽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사건이나(출 16:4-36) 엘리사가 무리를 먹이고도 음식이 남은 장면을 떠올립니다(왕하 4:38-44).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은 여러 측면에서 해석됩니다.
첫째, 오병이어 사건은 메시아의 만찬입니다. 광야 식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가진 마지막 만찬, 주의 만찬을 예고합니다. 두 사건 모두 빵을 취하고, 감사하고, 떼고, 주는 순서로 전개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 온 사람들을 앉게 하셨고 주의 만찬에서도 그들과 함께 앉으셨는데, 두 장면에 사용된 ‘카타클리노’는 만찬에 참여한 사람들의 비스듬히 기대는 자세를 가리키는 전형적인 동사입니다(9:14-15;24:30; 참조. 7:36; 14:8). 또한 오천 명의 식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식사(24:36-43)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의 식사(24:13-32, 33-35)처럼 일상의 음식을 나누는 식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상의 식사에 사람들을 초대하고 환대하십니다. 본문에 기록된 광야의 식사에는 정결 예식이 없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정하고 가난한 자들을 조건 없이 환대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상의 식탁을 통해 환대하시고 교제하십니다. 사회의 중심부에 들지 않은 자들을 언제나 식탁으로 환영하고 기뻐하십니다. 이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고 계시를 나누는 것이 그가 오신 목적입니다. 화려한 건물이 없는 곳에서도 예수님을 만나고 교제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정형화된 예전을 통해서 뿐 아니라 일상의 소박한 만남을 통해 예수님과 교제하고 그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둘째, 오천 명이 먹은 사건은 가난한 자들에게 전해진 기쁜 소식에 해당합니다. 무리는 예수께서 제공하신 음식으로 배불렀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병을 치료할 뿐 아니라(11) 배고픔도 해결하는 능력을 갖고 계시는 점을 강조합니다(6:21). 마리아는 허기진 사람들이 배불리 먹게 될 것을 예고했습니다(1:53).
셋째, 제자들은 식사를 섬기는 종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사람들을 섬기는 책임을 제자들에게 요구하셨고, 이는 둘째 의미와 비슷합니다. 부를 사용해 가난한 사람을 돕는 행위는 누가복음에서 강조하는 제자도의 핵심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권세를 받아 사역에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는 사명을 부여받았으며,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으로, 믿음의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하나님께서 부족함을 채우시고, 우리를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결국,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며, 그분의 사랑과 능력을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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