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누가복음(09-03)


변화산에서 본 모습을 보여주신 예수님

누가복음 9장 28-36절


 

삶에서 우리는 때로는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은 논리나 인간적인 가능성으로 예측할 수 없는 기적적인 상황들입니다. 기도 응답은 그러한 기적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제자들의 변화산 경험 또한 그와 같은 기적적인 체험입니다. 이러한 기적적인 상황을 통해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믿음을 강화하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 앞 단락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수난에 대해서 예고하신 후에 제자도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볼 사람이 있다고 언급하십니다. 문맥에서 이것은 분명히 변화산 사건과 하나님 나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을 구약의 그림 언어들을 배경으로 설명해갑니다.

 

본 모습을 변화된 예수(28-31)

 

드라마가 끝날 때 잠깐 다음 회를 요약해 보여주는 것을 ‘예고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변화 사건도 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고난 뒤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하늘나라에 대한 영적인 예고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를 통해 예수님의 영광을 미리 경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영광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예고편’이셨습니다.

 

28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28-31)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함께 산에 올라가 기도하던 중 변형되어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하며, 그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신성함과 다가올 고난과 영광을 예고하는 사건입니다.

 

(1) 제자들을 데리고 산으로 오르신 예수님(28)

 

“이 말씀”이란 누가복음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등장하는 앞 단락 전체를 말하는 것일 수 있으나 보다 구체적으로는 9:27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2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신약성경의 난해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말씀이 종종 재림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는데 그렇게 이해했을 때 난제는 청중 가운데 누군가는 죽기 전에 이 일을 경험해야 하기 때문에 적절한 해석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적지 않은 누가 신학자들은 연이어 등장하는 변화산 사건을(9:28-36) 이 말씀과 연관하여 이해하려고 시도합니다. 즉 변화산 사건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이라는 이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제자들을 데리고 변화산으로 가신 것에서 변화산 사건과 하나님 나라 사이에 일종의 분명한 암시가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변화산 사건의 경험이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할 것에 대한 선취 혹은 미리 보여줌의 기능은 감당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권능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로 이해하는 것은 다소간 무리가 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 나라라는 것은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어느 하나의 사건을 언급한다기보다는 예수님의 생애, 가르침, 변화산 사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등을 포괄적으로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따로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셨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변화산이 어디인지는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다볼산이 제시되었으나, 헐몬산이나 메론산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세 명을 데리고 변화산의 경험을 하게 하셨다는 것은 이들이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시사해줍니다. 이러한 특별한 관계가 나중에 9:46에 등장하는 것처럼 누가 더 큰 자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습니다.

 

(2) 변모되신 예수님과 엘리야와 모세의 등장(29-30)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변화산 사건의 연관성은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변모에 관한 누가의 서술은 출애굽기 24장에 등장하는 모세의 모습과 사뭇 유사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한다면, 누가는 예수님께서 변모되셔서 광채가 나는 모습을 띠게 된 것을 마치 모세의 시내산 배경 속에서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모세가 시내산에서 변형된 이야기는 매우 유명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한 것을 후일 유대문헌 전승에서는 모세의 대관식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승에 익숙한 독자들은 예수님께서 변모하신 것을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등극하시는 것의 선취로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변화산 기사가 종말론적 성취의 관점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사건에 엘리야와 모세가 등장해서 예수님과 더불어 말씀하셨다는 것에 의해서도 지원됩니다. 신명기 18:15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나(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라는 언급이 등장합니다. 이 본문에 근거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실 때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변화산 사건에서 종말론적인 기대 속에 등장하는 모세가 등장했다고 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또한 말라기 선지자는 4:5에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보낼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종말론적인 문맥 속에서 역사의 마지막에 등장할 것이라 기대되었던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 문맥에서 등장했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이 구약이 이야기했던 하나님 나라의 통치라는 종말론적 사건의 성취와 연관되어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3) 예루살렘에서 성취될 엑소더스(31)

 

개역개정은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 번역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본문을 직역한다면 ‘그가 예루살렘에서 성취하실 그의 떠남(엑소더스)을 말했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신약이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구원을 출애굽의 그림 언어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31절은 그러한 관점에서 예수님께서 성취하실 구원을 분명한 출애굽의 언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유월절 절기를 지키면서 출애굽의 구원(Exodus-deliverance)을 연례적으로 함께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메시아를 통해서 이루어질 종말론적 희망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즉 출애굽의 이야기가 마지막 날들(the last days)의 구원을 내다보는 근거가 된 것입니다(탈굼의 출 12:42 해석을 참조). 그런데 누가가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될 구원의 이야기를 출애굽의 그림 언어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제자들의 반응과 하늘의 반응(32-36)

우리는 영적 체험과 깨달음을 통해 신앙을 깊이 이해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또한 그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삶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를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인도합니다.

 

32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35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32-36)

 

베드로와 동료들은 예수님의 변형된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깨어났습니다. 하늘에서 들린 음성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인하며 그의 말씀을 따르라고 명령했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싸여 침묵을 지켰습니다.

 

(1) 제자들과 베드로의 반응(32-33)

 

32절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졸다가 깼다고 언급됩니다. 누가의 보도에 따르면 아마도 이들은 예수님과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한 것같이 보입니다. 자다 깨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베드로는 느닷없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서 초막을 세 개를 짓겠다고 제안합니다. 초막을 짓는 이유는 그들이 그곳에 머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곳에 머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게 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베드로와 다른 두 제자들도 이 장면을 목격한 후에 이 사건이 가지는 종말론적인 의미를 발견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33절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았을 때 그럴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이 사건을 경험한 후에 자기가 하는 말을 자신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 하늘에서 들린 음성과 제자들의 반응(34-36)

 

이때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마가와 마태는 ‘사랑받는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누가는 예수님께서 ‘선택받은 자’라는 사실을 더합니다. 이 표현은 앞서 언급된 신명기 18:15의 말씀을 반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실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말을 들으라는 권면을 받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누가는 예수님을 마지막에 일으키실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맥에서 제자들은 종말론적 성취의 그림 속에서 하늘로부터 ‘저의 말을 들으라’는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음성이 제자들에게 들렸다고 하는 것은 특별히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이 음성을 들은 제자들은 비록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의 뜻과 기대와는 다르다 하더라도 이제부터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와 마가의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내려오면서 세 명의 제자들에게 이 일에 관해서 침묵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누가는 예수님의 침묵 요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제자들의 침묵에 대해서만 언급합니다.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은 하늘나라의 영광을 미리 보여준 영적인 예고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신성과 그의 다가올 고난과 영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음성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굳게 지키며,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 배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